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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양산IC 35번국도 접속 우회전 1차선 확장공사 19일 오후 5시 준공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 7월 1일에 개통되었다. 양산IC 이전은 2005년 11월 14일 양산~부산간 8차선 확장과 함께 현 위치인 롯데제과 앞으로 이전하였다. 당초 양산IC는 베다스다병원 앞에 위치하여 교통체증이 매우 심하였다.양산IC 톨게이트 양산IC 영업소 한국도로공사가 실시한 경부고속도로 양산IC 진출부 1차선 확장 공사가 개통 예정시기인 6월 20일보다 하루 앞당긴 19일 오후 5시에 개통되었다. 경부선 양산톨게이트(TG)를 나온 다음 우회전하여 국도35호선을 연결하는 차산이 좁아서 출퇴근 시간에 극심한 병목 현상이 발생하였다.1차선 확장공사 현장, 롯데제과 건너편이다. 19일 오후 3시 넘어 확장공사 현장을 방문하여 공사 책임자에게 물어보니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잠시 후 오후 5시에 개통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개통 직전의 공사 현장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구간인 상북방향 우회전 차선을 1차선 확장하는 사업에 국비 3억 5천만 원을 투입해 지난 4월 13일부터 약 3개월여간 공사를 해왔다.공사 차단막이 있는 구간이 바로 1차선 확장 구간이다. 35번국도의 고가도로 구간이 위로 지나가고 아래는 고속도로 진출입 구간이다. 통도사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전동지게차 전시장이 우측에 있다. 고가도로 왼쪽으로 고속도로에서 나온 차량들이 35번 국도에 접속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가도로 하부의 양산IC 진출입 구간 병목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양산IC와 35번국도 접속구간을 입체적인 교차로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도로공사가 공사비를 아끼기 위하여 현재처럼 만들어 교통체증이 발생한 것이다. 이 구간의 고가도로를 북정공단 쪽으로 좀 더 길게 연장하였으면 소통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고가다리를 통과하여 양산시내 방향으로 직진하는 차량과 양산IC에서 나와서 북정공단으로 좌회전하는 차량이 만나서 X자로 교행하는 구간으로 교통사고 위험도 높고 교통체증도 심화된다. 종합적인 개선책이 시급한 구간이다.넥센타이어 대리점 앞에서 35번국도로 진입하게 된다. 35번국도 차량과 양산IC에서 나온 차량이 합류하면서 엇갈리는 구간 어곡공단 방향으로 좌측으로 가야하는 차량과 35번국도 직진차량이 서로 엇갈리어 엉키는 구간 통도사 방향 또는 산막일반산업단지로 작진하는 차량은 문제없이 그대로 가면 된다. 양산IC에서 나와 어곡공단 방향으로 가기위해 1차선으로 이동해야 하는 차량과 35번국도의 직진 차량이 X자로 엉키는 구간인 양산가구 아울렛 앞이 교차로는 어곡공단으로 오가는 차량, 산막일반산업단지 진출입 차량이 만나는 구간으로 교통량이 많아 출퇴근 시간대 정체가 심한 구간이다. 양산IC에서 나와서 어곡공단으로 좌회전하는 차량과 35번국도로 직진하여 통도사 방향으로 가는 차량이 교차로 앞에서 X자로 엇갈리게 된 불합리한 도로 구조로 인해 교통체증이 발생한 것이다. 앞으로 어곡동의 용선일반산업단지, 토정일반산업단지 등이 대규모로 개발되고 있어 교통량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곡터널의 4차선 확장도 시급하다..한편 어곡동으로 가는 도중 오른쪽에 있는 코카콜라 공장 앞의 양산천을 횡단하여 북정으로 연결되는 교량 건설 계획이 있는데, 완공되기 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북정에서 유산일반산업단지로 가는 양산대교 역시 노후화로 개축이 예정되어 있는데, 8차선 정도로 확장하면 소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출퇴근 시간에 이 다리를 통과하는데 체증이 매우 심하다.양산IC에서 나온 차량 양산IC에서 진출하여 우회전하는 차량 오후 5시 개통에 맞추기 위하여 공사 마무리를 하고 있는 공사 관계자들 출퇴근 시간에 유산동, 어곡동으로 이동하는 차량들 때문에 연쇄적으로 양산의 메인도로인 35번 국도와 충렬로는 극심한 체증에 시달리게 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35번 국도 우회도로 신설에 있다.양산숲길보전회 회장,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양산스마트뉴스 총괄운영위원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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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따라 삼천리 맛집 민초 / 여름 보양식 낙지전복한방삼계탕 특선민초 주소 양산시 상북면 충렬로 711, 양산CC에서 양산천 옆의 양산시도를 따라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양산천 건너편은 국도 35호선으로 통도사로 가는 메인도로이다. 식당 앞 도로 건너편은 양산천, 바로 옆에는 소석천으로 명당자리다. 시원한 산바람, 골바람, 강바람이 불어온다. 식당 입구에 멋진 조형물이 있다. 공손하게 손님을 환영하고 있다. 민초 식당 앞으로 소석천이 흘러 양산천으로 들어간다. 현재는 가뭄이 연속되어 하천이 말라 버렸는데, 내일 비 소식이 있어 소석천을 적셔줄 것으로 보인다. 소석천 옆으로 난 도로 확장 정비 공사가 한창이다. 다이아몬드CC 쪽으로 가는 도로로 현재 통행이 가능하다.소석리는 벼농사를 주로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소석, 늑동(늑골,고려장골,구룻골), 제리골(제루골,계리곡,적임곡) 등이 있다. 소석은 대석리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식당 앞을 쳐다보면 해발 922m의 천성산이 보이고 통도사 방향으로는 해발 1,081m의 영축산이 보이는 농촌마을이다. 제리골은 소석 서남쪽에, 늑동은 제리골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양산천에 있는 "자래방우"는 자라가 기어가는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방우는 바위의 경상도 사투리다. 흡사 거북처럼 생겼다.이런 곳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대석리 모래불에 살던 어느 부자가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것을 막기 위해 이 바위의 목을 잘랐더니 살림이 줄어 망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과욕은 금물이다. 자래방우 흡사 거북처럼 생겼다. 양산천을 기고 있는 자라(거북)가 어느 집으로 들어갈까? 그 집은 대박 날 것이다. 아마 민초식당으로 갈 것 같다. 민초 앞의 양산시도는 이팝나무꽃이 필 때 드라이브하기 좋은 코스다. 내년 5월 초에 민초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이 길을 따라 상북면 신전리로 올라가면 신전리 천연기념물 234호 이팝나무를 만날 수 있다. 괴목을 화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작은 물레방아가 돌아가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낸다. 작년에 식당 앞은 커다란 고무튜브에 물을 가득담아 물놀이장으로 활용하여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었다. 올해도 본격 무더위가 오면 설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초 식당은 실내도 좌석이 있지만 시원한 야외에서 식사해도 좋다. 방갈로도 있다. 민초 메뉴판점심 특선- 민초 갈비찜 정식 2인상 3만 원- 조방 낙곱새 1만 원, 조방 낙새 9천 원- 추억의 동태탕 2인 이상(공기 밥 별도) 1인당 8천 원닭갈비 볶음 1kg 3만 5천 원- 우동, 라면 사리, 명태 곤지 2천 원삼겹전새(전복, 새우, 삼겹살) 1인분 1만 4천 원삼겹 초벌구이 3인분 이상 1인분 9천 원 이다. 여름 특선 메뉴인 한방 삼계탕, 더위를 한 방에 보내주는 보양식으로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다. 가격은 1만 5천 원이다. 삼계탕에 인삼, 전복, 낙지 한마리가 통으로 들어간다. 각종 한약재가 들어가고, 인삼도 있다. 단체일 때는 미리 연락하면 차량 서비스도 해준다. 김정희 전 시의원은 식당 주방장, 홀 서비스맨, 운전 기사로 1인 다역을 하고 있다. 소탈한 성격의 주인장은 방문객을 성심성의껏 모시고 있다. 양산숲길보전회 회장,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양산스마트뉴스 총괄운영위원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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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넉넉한 천년고찰 통도사 품안에 있는 평산마을로 귀향1.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거주지로 선택된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 심상도 박사 현장 스토리텔링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귀향한다는 6월 5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현재 문대통령의 거주지는 양산시 매곡동에 있으며, 퇴임 후 기존 사저인 양산 매곡동 사저로 돌아갈 뜻을 수차 밝혀왔다. 매곡동 사저는 매우 외진 곳에 위치한 데다가 진입로가 구불구불한 1차선이고 경호시설 등 주변 시설이 들어설 여유 공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문대통령이 귀향할 지산리 평산마을 회관 따라서 경호처는 퇴임 후 거주, 경호에는 힘들다고 보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부득이 경호에도 용이하고 퇴임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다가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로 최종 결정하여 이를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알리게 된 것이다. 언론 기사의 댓글을 읽어보니 문대통령이 촌구석으로 온다는 식으로 이해가 부족한 글이 보였다.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은 절대 촌구석이 아니다. 해발 천미터가 넘는 영축산 아래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 통도사의 넉넉한 품에 안겨 있고 교통이 편리한 전국 최고의 전원주택지라 할 수 있다. 땅값도 비싸고 아무 데나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희소성이 높고, 거주하기에는 최적의 안락한 농촌마을이다.하북면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하는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인 하북면소재지 종합정비사업에 선정되어 5년간 100억 원이 투입되어 면소재지 중심부에 통도아트센터가 조성되었다. 김상걸 추진위원장(전 양산시의회의장 역임)의 열정과 탁월한 리더십 발휘로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전국의 타권역에서 선진지 견학단이 쇄도하고 있다. 통도아트센터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가 선정한 2019년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사례집인 전국 방방곡곡 굿스토리 부문에 선정되었다. 추가로 하북면은 농림부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중 '하북면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하북면 순지리 일원과 배후마을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양산시 마을만들기지원협의회 공동위원장(양산시 부시장과 함께)으로서 사업에 자문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심의를 거쳐 기획재정부 승인으로 국비 지원이 확정됐다.국회 기획재정위 간사를 지낸 윤영석 국회의원이 농촌지역인 하북면이 선정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성원을 보냈다. 100억 원과 150억 원 사업에 연속으로 선정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하북면은 이를 해냈다. 양산시 건설과 농촌개발팀에 속한 공무원들의 노력과 헌신, 한국농어촌공사 김해양산지사의 직원들의 컨설팅과 지도로 쾌거를 이뤘다. 2023년까지 국비 105억 원·도비 13억 원·시비 32억 원 등 모두 150억 원을 투입하여 사업을 추진한다. 농림부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은 전국의 지자체간에 매우 인기가 많아 선정과정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양산시 선정을 거쳐 경남도에서 선정되어야 하고 최종적으로 농림부의 중앙 심사과정을 거쳐 뽑히게 된다. 중앙의 평가단(교수, 전문가로 구성)이 현장에 내려와 예비계획을 꼼꼼하게 비교하여 공정한 평가를 한다.필자는 의령군 의령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밀양시 삼랑진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의 PM단장(Project Manager : 자문단장)을 맡아서 자문을 하였다. 용역업체가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문을 하고 주민대표, 관계공무원과 함께 농림부에 여러번 가서 중계단의 심사를 받고 토론을 하며 계획을 수정하였다. 하북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주요 내용은 통도문화예술 테마거리 조성(600m), 청소년문화관, 예술인 창작지원센터 등을 조성한다. 또한, 지역주민 역량을 키울 컨설팅과 교육도 이뤄진다. 시는 기본계획 수립에 들어가 2020년 3월까지 마무리하고 2020년 12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2023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북면에 100억 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 성공적으로 완수하였고, 앞으로 새롭게 150억 원이 투입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거주하게 될 예정인 하북면은 살기좋은 농촌마을로 거듭나게 된다.소규모 사업으로 하북면 지산마을은 양산시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의 일환인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에 선정되어 5억 원을 지원받게 되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양산시비가 투입된다. 지산 문화 공간 조성, 지산마을 연결로 정비, 황토숲길을 정비한다. 문화 공간 조성은 마을광장에 야외무대, 조명시설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천년고찰 통도사의 자비정신, 의식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제사실학교를 적절히 융합하여 지산마을을 힐링의 명소로 가꾸어 나가는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2. 문화예술인과 맛집이 많은 마을문재인 대통령이 살게 될 마을인 지산리(芝山里)는 중국 진시황제의 명령에 따라 신하 서복(徐福)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우리나라로 건너와 남해군, 제주도, 하북면에 왔다가 간 기록이 남아있다. 서복은 하북면 지산리에서 몸에 좋은 영지(靈芝) 버섯을 구해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마을이름을 지산리라 하였다.신정희 길 왼쪽 평산마을로 가는 길 삼거리 문화 유적으로는 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 김무력 장군의 묘소가 있다. 김무력 장군은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함으로써 신라의 삼국통일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김해 김씨 문중의 재실인 취서사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고 완수한 김무력 장군, 아들인 김서현 장군과 만명부인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다. 지산마을에는 ‘팔도승지금지석(八道僧之禁地石)’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다.맛집 안내판 문화예술인 중 유명 인사는 장차 문재인 대통령의 이웃이 될 신정희요의 신한균 사기장, 통도요의 김진량 도예작가가 있다. 사저 바로 앞에는 불곡도예의 박진혁 작가가 있다.신한균 사기장은 선친에 이어 도자기 가업을 잇고 있는 유명작가다. 전통의 맥이 끊긴 조선의 사발을 재현해낸 최초의 사기장(沙器匠) 고 신정희 선생의 유업을 이어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신한균 사기장은 '우리 사발 이야기', '고려다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이야기를 그린 역사소설 '신의 그릇' 등 베스트셀러 글을 써서 집필활동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고,신정희 선생1930~2007)신정희 요 가마 거주지와 전시장 소설 ‘신의 그릇’을 토대로 한 뮤지컬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도 보조금 3500만원은 이미 확보했으며, 양산시 지역문화진흥기금의 도움도 받을 예정이다. 뮤지컬은 보광고 박우진 교사가 총연출을 맡는다. NPO법기도자 이사장을 맡은 신한균 사기장은 '2019년도 법기리요지 국제학술심포지엄'을 2019년 11월 4일에 개최한 바 있다. ‘묻혀있는 법기도자의 美’라는 주제로 양산비즈니스센터 5층 컨벤션홀에서 심포지엄을 주관하였다. 법기리요지 발굴과 전시관 건립에 힘쓰고 있다.통도요 김진량 도예작가는 2015년 9월 7일부터 일주일간 아랍에미리트(UAE) 만수르 왕세자 초청으로 아부다비를 방문하였다.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국왕(대통령 겸임)을 만났다. 양산 도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중동의 왕족접견과 교류 등을 통해 양산 도자기와 한국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김진량 도예작가의 통도요 전통 오름가마 방문객 아랍에미리트(UAE)의 왕족이자 세계적 부호 만수르가 주관한 '세계 아라비아말 평지 경주축제(Global Arabian Horse Flat Racing Festival)' 에 초청돼 두바이 현지에서 전통 찻사발을 전달했다.김작가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은 국왕의 동생인 세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나얀(44) 왕세자와 인연으로 이뤄졌다. 국내에서 만수르로 잘 알려진 아랍에미리트 왕세자는 양산의 흙으로 빚은 김 대표의 찻사발에 반해 김 대표를 초청하였다. 만수르 왕세자는 김 대표의 찻사발 문양이 아랍 전통문양과 닮아 있는 데 깊을 감명을 받고 급기야 작가를 초청하게 되었다. 만수르 왕세자에게 전달된 두 벌의 양산 찻사발은 녹차를 마시는 사발형태로 빗금 문양이 그려져 있다.1주일간 아부다비를 방문할 때 항공료, 만수르 소유 호텔 투숙 등 모든 비용과 의전은 초청자인 만수르 왕세자가 부담해 김작가는 실질적으로 귀빈 대우를 받았다. 그당시 김작가는 세계적 언론의 관심을 받아 현지 신문,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2014년 12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14 대한민국 신지식인 인증 및 시상식’에서 통도요 김진량 도예작가는 문화예술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신지식인연합회는 김작가가 창의적인 사고로 통도사 근처의 흙을 도예와 접목해 양산의 대표 그릇을 만들고, 도자 그림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성과를 인정해 신지식인으로 선정했다.김진량 도예가의 분청도화(粉靑陶畵) 작품이 ‘제8회 나만의 대한민국 기념 우표대전’에 선정돼 우표로 제작된 바 있다. (사)대한민국 한가족 미술협회와 LA예총이 주최하고, 문화관광부와 교육부, 여성부, 한국우편사업진흥원 등이 후원하는 이 대회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60명의 작가가 참여해 시작한 우표대전이다. 분청도화는 일반 도자기와 달리 나무틀에 도자 그림을 끼워 회화 작품처럼 벽에 걸 수 있는 작품이다.한국 이탈리아 수교 130주년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기념기념 로마 특별초대전, 영국 굿모닝 런던 선정 한국 초대작가전 (런던 랜드마크 아트센터), 다양한 국내전시회 경력을 갖고 있다.김진량 도예작가는 통도요에서 양산 사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양산과 전국의 도요지에서 출토된 도자기 파편을 수집하여 재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부인은 천연염색 작품활동을 하면서 대우당 승오(僧烏) 전통 자연염색 복원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김진량 작가는 BBS 불교방송에서 몸에 좋은 조선사발과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김작가는 2019년에 중국 하얼빈국립대학교에서 한학기 동안 도자기 관련 강의를 하였으며, 북경대학의 강의 초청도 받았으나 작품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귀국하였다.박진혁 작가는 1988년 선친인 1대 불곡 故 박복재 선생의 제자로 입문 후 대를 이어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1994년 한중일 미술대전 도예부분 특별상, 1995년 한중일 미술대전 도예부분 특선, 1995년 경남 도지사 문화예술부분 표창, 1998년 한중일 미술대전 도예부분 금상, 2007년 일본 교토통신 주체 국제미술대전 도예부분 금상, 2010년 첫 개인전 와 단체전을 다수 개최한 바 있다.문대통령 사저 입구에 있는 불곡요 3. 천년고찰 통도사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으뜸 사찰로 불지종가 ,국지대찰로 불리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15년인 64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통도사 자리는 원래 큰 저수지였는데, 아홉마리의 용이 살면서 통도사 창건을 방해하였다. 자장율사와 도술경쟁을 벌여 항복한 독룡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다섯 마리는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三洞谷)으로 갔으나 오직 한 마리의 눈먼 용만은 굳이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스님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의 구룡지는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구룡지 통도사 창건의 기본정신은 부처님 사리(舍利)를 봉안한 금강계단(金剛戒壇)에 있다.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세기 중반에 처음 축조되었고, 그 뒤 일곱 번에 걸친 수리가 있어서 지금은 원래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현재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석종형의 부도, 각 상들의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17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모습은 바뀌었지만 문헌 기록상 가장 오래된 계단이다.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은 국보 제260호다.통도사 대웅전 통도사 진신사리탑 통도사는 해발 1,081m 높이의 영축산 자락의 수백만 평의 광대한 땅에 자리잡고 있다. 통도사 경내는 물론이고 바깥에도 통도사 땅이 많이 있다. 지산리는 통도사 사하촌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구입한 사저 앞의 논밭이 통도사 소유다.현재 남아 있는 통도사 석장생표에 의하면 통도사 영역은 양산에서 언양, 밀양 표충사까지 포함된다. 장생표는 신라시대, 고려시대에 사령(寺領)을 표시하기 위해 사찰 주변에 세웠던 표지물이다. 하북면 답곡리 솔래천에 세워졌던 석장생표가 남아 있어 보물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밀양군 하서면 무안리와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에서 장생표가 발견되었는데, 밀양에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상천리 장생표는 남아 있다.불지종가 국지대찰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퇴임 후 지산리 평산마을에 거주하게 되면 통도사 땅을 밟지 않고는 산책을 하기 힘들 정도다. 통도사는 자장암, 극락암, 옥련암, 서운암, 백련암, 사명암, 서축암, 반야암 등 17개의 부속암자가 있어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며 힐링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 극락암은 우리나라 3대 명당에 속한다. 문 대통령이 입주하게 될 지산리 평산마을은 하북면 주민들이 즐겨 산책하는 코스다. 통도사 탑비 부도전 4. 하북면과 지산리 주민들의 대통령 거주에 대한 반응필자가 취재를 위해 양산 특산품인 통도참송엽주 공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사진을 찍다가 산책하는 주민에게 물어보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퇴임 후 이곳으로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니 좋다고 대답하였다. 누구나 이사올 자유가 있으므로 큰 문제는 없다고 하였다. 이 분은 은퇴 후 통도사 산문 근처 마을로 6년 전에 이사를 왔다고 했다. 필자가 대통령이 이사올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지산리를 한바퀴 돌아서 오고 있어 또 만났다.통도요 김진량 도예작가가 마당에서 도자기 작업을 하고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대통령 이주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하였다. 뉴스에 나온 5일 아침부터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오고가 동네길이 매우 분주하였다고 한다. 김작가는 퇴임한 대통령 대문에 조용했던 마을이 수많은 방문객들로 인하여 소란스러워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였다.김진량 작가는 필자와 친분이 두터워 전통가마에 불을 땔 때는 꼭 연락을 하여 구경하러 오라고 알려준다. 금년 1월에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양산숲길보전회 정기 총회할 때 우수 활동 회원에게 주라고 귀한 작품도 증정해주어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김진량 도예작가 대통령이 이사온다는 마을에 도착해보니 근처에 사는 할머니 세분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뉴스 보도를 잘 보고 있어 소식에 정통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 규모를 작게 하라는 얘기를 했다는 뉴스도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퇴임 후 오게 되면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였다. 혹시 집을 팔라는 제의를 받았는지 물어보니 전혀 없었다고 하였다.뉴스가 나온 6월 5일의 상황에 대해 질문하였다. 기자들이 하루 전날인 6월 4일에 이미 다녀갔다고 한다. 한국일보 기자가 제일 먼저 왔고, 그 다음에 조선일보 기자가 방문하였다고 대답하였다. 6월 5일에 뉴스에 보도된 후 방송국 기자를 비롯해 많은 언론인들이 들이닥쳤다고 하였다. 기자들이 드론 두 대를 띄워 공중에서 왱왱거리는 소리가 났다고 하였다. 뉴스를 들은 일반 외지인들도 호기심 차원에서 방문하였다고 한다. 필자가 저녁 무렵에 갔을 때도 일반인이 와서 마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평산마을, 밭에 파가 있다. 해발 1,081m의 독수리 형상의 영축산, 평산마을에 거주하면 가까운 영축산의 좋은 기를 받을 수 있다. 문대통령 부부가 매입한 땅 입구 필자는 주변의 한 집으로 들어가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주민은 비교적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며 친절하게 대해주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집을 팔라는 제의는 없었다고 한다. 아마 대통령 부부가 거주할 집, 경호원이 거주할 경호동 등 필요한 땅만 구입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구입한 땅 앞에 출입금지 팻말도 붙여놓았다고 알려주었다.불곡요 앞 마을 전경 문대통령 부부가 매입한 사저 부지 입구 사저 부지 입구 출입금지 동네 주민들의 반응으로 볼때 특별히 대통령 부부의 이주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동네 사람들은 대통령이 와도 아무 상관이 없고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필자 역시 통도사를 자주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부속암자를 거닐며 힐링하기를 좋아하는데, 향후 통도사와 부속암자에서 우연히 문대통령 부부를 조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평산마을 연못 필자는 밴드와 페이스북, 양산스마트뉴스 등을 통하여 양산의 역사, 문화, 관광에 대하여 생생한 사진과 스토리텔링 글을 통하여 국내와 세계에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필자의 글과 사진을 보고 양산을 방문한 관광객이 많다. 개인적으로 연락해오면 기꺼이 관광 가이드가 되어 양산의 관광명소를 안내해주고 점심도 사주고 양산의 특산품을 선물하기도 하였다.필자는 문화관광해설사 양성과정에서 해설 안내기법을 특강하고 있다. 경남도, 울산광역시 등의 문화관광해설사 양상과정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과거에 양산대학 호텔관광과 교수로 있을 때 경남도 문화관광해설사 양성과정을 직접 총괄 진행한 바 있다. 요즘에는 울산관역시 문화관광해설사, 울산 중구청 울산큰애기 관광해설사, 북구청 박상진 의사 관광해설사, 울산 조류 해설사, 남구청 고래마을 해설사 양성과정에서 특강을 하였다. 장차 통도사와 부속암자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부에게 해설 안내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문재인 대통령이 현재 살고 있는 양산시 매곡동의 사저를 매각하고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퇴임 후 이주하기로 한 결정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매곡동 사저는 진입로도 일방통행이고, 주변에 역사, 문화, 관광 명소나 문화인, 맛집이 많지 않은데 통도사 근처인 평산마을은 정반대로 여건이 양호하다.통도사와 17개 부속암자에서 산책하기도 좋고 때로는 독수리 모양으로 생긴 영축산을 등산하기도 가깝고 편하다. 지산리에는 아침 저녁으로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울창한 금강송 소나무 숲길이 있다. 지산리 황토숲길은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이 답사한 바 있다. 이번 6월 28일에는 지산리의 국사당과 금강송 소나무 숲인 황토길을 걸을 예정이다.5. 향후 문제점과 하북면의 발전평산마을 앞에는 커다란 연못과 작은 소류지, 밭들이 있는데, 모두 통도사 소유라고 하였다. 평산마을 회관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좁아서 확장은 하였는데 2차선 도로의 중앙선을 확장할 정도로 넓지는 않았다. 중앙선은 없어도 차량이 교행은 가능하였다. 김진량 도예작가의 말에 의하면 통도사 측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땅을 2m 정도 양보하여 길을 내는데 협조해 주었다고 한다.통도문화예술거리에 있는 마진식 작가 갤러리, 양산시화 목련 작품 마진식 작가의 꽃길 갤러리 앞으로 2년 후에 문대통령 부부가 퇴임하여 이사오게 되면 좁은 마을 진입도로와 주차장이 큰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도로와 주차장 부지는 모두 통도사 소유 땅이어서 사용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문제인 대통령이 불자가 아니고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사업 추진에 장애 요소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 퇴임 후 거주하게 되면 하북면은 획기적인 발전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농림부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인 150억 원의 정부예산을 투자하는 하북면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도 추진하고 있어 하북면 주민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고, 대통령 부부도 당연히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퇴임한 대통령이 평화롭게 주민들과 어울려 동네 길을 산책하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영축산 자락에 있는 지산리는 노후를 보내기 좋은 전원주택 명소다. 땅값이 비싸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양산숲길보전회 회장, 양산스마트뉴스 총괄운영위원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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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숲길보전회, 5월 24일 정기답사 천성산 2봉으로 정해양산숲길보전회 심상도 회장(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 YNEWS총괄운영위원장)은 5월 24일 정기답사를 천성산 2봉으로 정했다. 비상 재난 시국이라 그동안 답사를 중단했는데, 이번 5월 24일에는 모처럼 천성산 제2봉을 답사하고자 한다. 양산종합운동장에서 아침 8시 30분에 집결하여 출발하여 영산대학을 거쳐 주남고개에서 집결할 예정이다. 영산대 안에 주남고개 방향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표지판 따라 건물 뒤로 외길이 있다. 건물과 축대 사이로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웅상에 있는 영산대학교에 도착하여 올라가면 와이즈유라 쓰인 건물이 보인다. 파란색 표지판에 주남고개 240m로 적혀있다. 조금 왼쪽으로 가면 천성학관, 대성암, 조계암, 안적암, 가사암, 백련암 표지판이 있다. 이 길로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암자 방향 표지판 여기서 노란 사선있는 곳으로 올라가지 말고 우회전 한다. 축대와 건물 사이 도로로 진입,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위로 올라간다. 이 길로 직진하여, 올라가는 곳곳에 차량이 교행할 수 있는 도로 포켓이 있어 내려오는 차를 피할 수 있다. 한참 올라가면 주남고개 현장의 안내판이 나온다. 다른 차량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곳에 주차하면 된다. 지뢰제거 작업으로 천성산 정상은 등산로 폐쇄되어 있다. 주남고개에 큰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 출발 준비하여 간식을 먹는다. 등산로는 평산임도로 평탄하며, 완만한 오르막길이어서 등산하기 편하다. 주남고개애서 천성산 2봉까지는 약 3.9km이다. 왕복하면 7.8km이다.좀 더 짧은 거리로 등산하려면 영산대학애서 걸어가면 된다. 그러나 올라가는 길이 오르막이서 편한 주남고개에서 걷기로 하였다. 차량 차단기가 설치돼 있다. 통신사 안테나가 설치돼 있다. 영산대 방향, 경사가 심해서 선택하지 않았다. 영산홍꽃이 무르익었다. 1층, 2층, 3층 충층나무가 반겨준다. 산괴불주머니꽃이 한 무덤 피었다. 층층나무꽃이 도처에 만발하고 있다. 철쭉, 전통 철쭉으로 연한 색이어서 연달래라고 한다. 고산슾지 밀밭늪에 다다른다.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것이다. 철쭉꽃이다. 정상은 언제나 만원 사례로 쾌감을 맛본다. 정상에서 영산대학 3.1km, 짚북재 2km, 내원사 2.5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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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회 표병호 교육위원장, 사립학교 공공성 강화 촉구[심상도YNEWS총괄운영위원장] 경상남도의회 교육위원회 표병호 위원장(양산3, 더불어민주당)은 12일 열린 제373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사립학교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표병호 위원장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사립학교의 설립 특성상 관련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한 최대한 사립학교의 자율성은 존중해 주어야 하지만, 일부 비리 사학재단의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립학교 학생들이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사립학교법에서는 ▷사립학교 교원에 대해서도 교원이 의원면직을 신청한 경우 모든 징계사유에 대해 수사기관 등의 확인을 거치도록 하고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이나 재산을 목적 외로 부정하게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고 ▷이사회 구성에 있어서도 이사 중 적어도 3분의 1 이상은 교육경험 또는 합산한 교육경험이 3년 이상인 사람이어야 하도록 강화되었다. 표위원장은 사립학교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사립학교의 공공성 확보가 사립학교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주장하고 “이번 사립학교법의 개정 취지대로 일선 학교 현장에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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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에 백성의 목숨을 구한 동래부사 민영훈 공 거사비/심상도 박사 화요 칼럼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학 박사 심 상 도 1. 동래부사 민영훈 거사비 동래부사를 지낸 민영훈은 1775년(영조 51년)에 출생하여 36세 때인 1810년(순조 10) 식년시에 진사 2등 7위로 합격하였다. 1814년(순조 14) 인정전(仁政殿)에서 유생을 대상으로 치른 시험에 제술(製述) 수석을 차지하여 초시를 면제받고 전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같은 해 식년시에 응시하여 갑과 2위로 40세에 문과 급제하였다. 자(字)는 성여(聲汝), 호(號)는 단고(檀皐),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증조부는 민사윤(閔師尹)이고, 조부는 민이세(閔頤世)이며, 부친은 진사(進士) 민종길(閔鍾吉)이다. 외조부는 최일제(崔一濟)이고, 처부는 이효상(李孝相)이다. 4형제 중 장남으로, 동생은 민병훈(閔秉勳)‧민정훈(閔定勳)‧민응훈(閔應勳)이다. 1835년(헌종 1년) 9월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1년 6개월만인 1837년(헌종 3년) 3월 이임하였다. 벼슬은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양주목사(楊州牧使) 등을 역임하였으며, 1828년(순조 28년)에 홍문관(弘文館)의 관원 후보자를 선발하는 도당록(都堂錄)을 시행할 때, 부제학(副提學) 김난순(金闌淳), 응교(應敎) 이경재(李景在) 등이 참여한 자리에서 4점(四點)을 얻었다. 1853년(철종 4년)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동래부사 민영훈 공 거사비(東萊府使 閔永勳 公 去思碑)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2동 255번지 공수물공원에 있으며, 금정구 향토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석은 조선 헌종 4년(1838년)에 동래부사 민영훈이 동래, 양산 지방의 극심한 기근 때 진휼(賑恤)하여 많은 백성의 목숨을 구한 은공을 칭송하고자 부산시 금정구 노포동과 양산시 사송마을 경계인 지경고개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웠다. 민영훈 공은 1835년에 동래부사로 부임해 1년 6개월간 재임 중 만민구명(萬民救命)의 선정을 베풀어 그가 떠난 뒤 마을 주민들이 그 은공을 기려 거사비(去思碑)와 함께 사단(祠壇)을 세워 해마다 제사를 지내왔다. 양산 사송마을의 바위에 만인구명(萬人救命)의 각자를 새겼다. 1970년대 도로공사로 만인구명 바위는 파손되고, 방치되어 있던 거사비 비석을 노포동 작장마을 주민이 모셔와 보존해 왔다고 한다. 거사비를 1993년 7월에 공수물공원에 옮겨와 새로운 커다란 비석을 세우고, 그 옆에 원래의 거사비를 모셨다. 거사비는 높이 73cm, 너비 43cm 크기로 비석의 좌측에는 “내진내견(迺賑迺蠲) - 심한 흉년으로 부민이 굶어죽어 가는데 곡식을 풀어 진휼하고/ 비석의 우측에는 설둔거막(設屯祛瘼) - 세금을 탕감하여 병폐를 제거하고,/ 활만인명(活萬人命)- 만인의 생명을 살린/ 백세가영(百世歌詠) - 그 은혜를 칭송한다.“ 라고 쓰여 있다. 심한 흉한 흉년으로 백성이 굶어 죽어가는데 동래부사 민영훈 공이 곡식을 풀어 백성을 진휼하고, 세금을 탕감하며, 병폐를 제거하여 만인의 생명을 살린 은혜를 칭송하였다. 뒷면의 비문은 두구, 작장, 남산의 삼동민을 구제한 사실을 다소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삼동민이 힘을 합하여 공로상(公路上)에 이 비석을 세운 사연을 말하였다. 8.15해방 후 도로확장 공사 후 파손되어 버려진 것을 뜻있는 사람들(박용진 씨)이 노포동사(老圃洞舍) 앞에 보관하였던 것이다. 이 조그만 비석으로 인하여 동래부 관내에 거사단(去思壇)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거사단비는 본래 남문 밖의 휴산(休山) 또는 농주산(弄珠山)에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동래 학소대(鶴巢臺) 앞의 유치원 경내에 옮겨 세워져 있다. 민부사의 비에는 생사(生祠)란 말을 쓰고 있는데. 여기에 배향된 분으로는 이항(李沆) 부사, 한배하(韓配夏) 부사, 강필리(姜弼履) 부사, 윤필병(尹弼秉) 부사, 민영훈(閔永勳) 부사 등 오공(五公)이다. 2. 양산과 민영훈 부사의 인연 1835년 민영훈은 동래부사로 재임할 때 대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살기가 힘들었다. 지경고개 넘어 양산 동면 사송․여락마을 주민들은 고을이 달라 식량 보급이 없게 되자 야밤을 틈타 동래로 넘어와서 지어 놓은 밥을 통째로 훔쳐갔다. 그러자 당시 좌수 백달경이 동래부사에게 간곡한 소지를 올려 벼 수십 석을 얻어 사송․여락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줘 아사를 면하게 했다. 그 뒤 사송․여락마을 주민들은 민부사의 은혜를 잊지 못해 사송마을 앞 큰 바위에 만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만인구명(萬人救命) 각자를 새겼다. 이 바위는 도로확장 공사시 파괴되었다. 양산과 부산의 경계인 지경고개 마루에는 3기의 비석이 있어 조선시대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다. 비석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비석들이 손상되었다. 도로 확장 공사할 때 동래부사 민영훈거사비는 공수물소공원으로 옮겼다. 동래부사 강로선정비는 사라졌다. 지금 가선대부 양유하 이혜불망비만 지경고개에 남아 있다. 이 불망비는 양유하 공이 1731년부터 3년간 대흉년 때 동래, 양산 주민을 진휼한 공을 기려 주민들이 양산과 동래 경계지점의 언덕에 세웠던 송덕비다. 민영훈 동래부사가 대흉년에 식량을 베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임할 때 부사가 가는 길인 동래의 대낫들이 길에 백성들이 적삼을 벗어 길에 깔아 민부사는 그들의 적삼을 밟고 걸어갔다고 한다. 최고의 예우로 이른바 레드 카펫이 갈린 것이다. 당시 주민들이 민부사의 진휼 정책에 얼마나 감복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3. 동래부사의 역할 동래부 동헌 앞에는 ‘동래독진아문(東萊獨鎭大衙門)’이라고 쓰여진 문이 있다. 동래부는 임진왜란 첫 격전지였다. 전쟁 후 동래는 왜구의 침략을 대비하는 방어 진지로 구축되었다. 원래 동래부의 군사권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경상좌병) 관하의 경주진관에 속하였다. 동래가 요충지임을 고려하여 1655년 경주진관에서 분리되어 동래에 독진(獨鎭)을 형성하고, 그 관련 유물이 동래독진아문이다. 왜적이 침범하면 진관의 통제를 받기 위해 병력을 이동하지 않고, 독자적인 병력 운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래부 뒤쪽에는 금정산성을 쌓아 이중의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동남 해안에도 많은 수군 진지가 구축되었다. 경상좌수영, 부산진, 다대진 등 10개의 수군 주둔군이 있었다. 양쪽 기둥에는 진변병마절제(鎭邊兵馬節制營), 교린연향선위사 (交隣宴餉宣慰司)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은 조선후기 동래부가 ‘방어와 교류의 도시’라는 위상과 동래부사의 지위를 알려준다. 진변병마절제은 동래가 변방을 지키는 군이란 뜻이다. 교린연향선위사는 교린 국가에서 외교사절이 왔을 때 이들을 맞이하는 관청이라는 뜻이다. 전쟁 이후에는 일본 사절이 서울로 가지 못하고 부산 왜관에서 머물며 동래부사와 부산첨사의 접대를 받고, 외교 업무를 받았으므로 동래부의 외교적 위상이 높았다. 조선의 수령은 고을의 규모에 따라 그 직책이 결정되었다. 고을의 규모는 주, 부, 군, 현으로 나뉘고, 수령도 종2품에서 종6품에 이르는 부윤, 도호부사, 목사, 도호부사, 군수, 현령, 현감으로 구분되었다. 수령은 부임하면 반드시 해야 하는 7가지 임무인 수령칠사가 있었다. 농업을 일으키는 것, 학교를 세워 교육을 장려하는 것, 백성의 억울함을 해소시켜 소송․재판을 줄이는 것, 아전의 비리를 척결하여 간사하고 교활한 것들을 없애는 것, 군역을 바로 세우는 것, 인구를 늘이는 것, 부역을 균등히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공직자 의무와 유사하다. 수령칠사는 수령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관찰사(감사)가 수령을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하였다. 수령칠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평가를 낮게 받아서 교체되거나 파직당하였다. 조선 후기 동래부의 중요성이 높아가면서 종3품의 아문이 되었으며, 1601년(선조 34) 일본과의 강화교섭을 고려하여 부사는 정3품 당상관 문관이 임명되었다. 동래부사는 대상자를 이조(吏曹)에서 추천하여 임금이 임명을 최종 결정하였다. 동래부의 위상이 높아지자 이조에서는 비변사에서 동래부사를 추천하도록 하였다. 조선후기에 들어 비변사는 군사 업무뿐 아니라 의정부의 업무까지도 수행하는 중요 정책기구의 역할을 했다. 4. 코로나 19로 초래된 비상시국의 공직자 역할 민영훈 부사가 근무할 당시의 상황을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살펴보면 극심한 흉년, 전염병의 확산으로 기근이 심함을 알 수 있다. 왕실에서는 백성들을 진휼하기 위하여 각종 세금을 탕감해주고, 왕실에 공납하는 물품도 대폭 줄이는 각종 대책을 시행하였다. 헌종 3년 3월 10일 우의정(右議政) 박종훈(朴宗薰)이 임금에게 "영남좌도(嶺南左道)의 백성들의 형세가 진실로 제도(諸道)에서 가장 황급합니다. 이는 대개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고 목화(木花)도 흉년이 들어서 입을 것이 없는데, 진구(賑救)하는 일을 바야흐로 거행하고 있으나 창고가 이미 텅 빈 데다가, 여역(癘疫 : 전염병)이 더욱 치성(熾盛)하여 죽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고 아뢰었다. 헌종 3년 7월 1일 경상 감사 윤성대가 진휼을 마치고 장계(狀啓)하였다. "공사(公私) 간에 진구(賑救)한 위급한 기민(飢民)이 1백 11만 4천 9백 71구(口)이고, 각종 곡식이 13만 9천 6백 18석(石)이었습니다." 하였다. 요즘의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비슷한 진휼책이다. 민영훈 동래부사가 재임할 무렵의 동래와 양산, 경상도, 조선 백성들의 삶은 연속되는 자연재해와 전염병으로 인하여 곤궁하였다. 민부사가 흉년을 대비하여 전라도에서 입도선매한 식량 천 포대를 동래, 양산 백성들에게 베풀어 구휼하였다.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국가들이 위기에 빠진 현재 정치인들이 세금 감면, 세금 납부 연기, 재난 지원금 지원, 취업 대책 등 적극적인 정책을 시행하여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하겠다. 양산시 동면 사송신도시 개발이 한창인데,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일부인 황산도 길을 연결하여 안내 표지판을 세우고 1077번 도로변에 인도를 만들어 걸어갈 수 있도록 하면 역사유적 답사와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송신도시에 일정한 공원을 조성하여 부산과 같이 동래부사 민영훈 공 만인구명바위와 거사비, 양유하 공 이혜불망비, 동래부사 강로선정비 등을 복원하여 국가적 재난과 위기를 극복한 역사적 사례를 시민들에게 알려 애국심, 애향심을 북돋워야 할 것이다. 정치인, 공직자들은 위기 극복에 재산 기부, 봉사활동을 통해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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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축제의 인기와 유채꽃을 연구한 세계적 학자 우장춘 박사/심상도 박사 화요 칼럼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학 박사 심 상 도 1. 양산시의 유채꽃축제 취소와 유채꽃 단지 유지 전국의 유채꽃 명소는 코로나 19 확산을 염려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호응한 지자체가 유채꽃밭을 갈아엎는 바람에 사상 최초로 축제도 취소되고 관광객이 마음 붙일 곳이 없어졌다. 각 지역마다 계절별로 매화꽃, 벚꽃, 유채꽃, 꽃무릇, 국화, 코스모스 등 꽃을 주제로 한 축제를 개최하면서 관광객을 유치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전염병 때문에 양산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원동매화축제, 양산천 유채꽃축제를 취소하였고, 창원시는 전국 최대규모의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를 취소하였다. 삼척시는 근덕면 상맹방리 국도변 일원에 조성된 5.5㏊ 규모의 유채꽃밭을 4월 3일 오후 2시부터 트랙터 3대를 투입해 밀어버렸다. 매년 봄 ‘삼척 맹방 유채꽃 축제’가 열려왔다. 이 기간 20~30만 명의 관광객이 상맹방리를 방문하였다. 19회째인 올해는 3월 23일부터 4월 28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로 취소되었다. 주민들이 외지 관광객 유입으로 코로나 청정 지역인 삼척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안 된다는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씨를 수확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갈아엎었다. 제주 서귀포시 녹산로 10km 도로변 유채꽃, 가시리 일대 유채꽃 광장 9.5㏊(95000㎡)의 유채꽃밭을 4월 8일 갈아엎는 초강수를 두었다.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은 코로나 19 감염병 확산에 지난 3월 13일 부산시에서 대저생태공원을 전면 폐쇄하고, 유채꽃 축제도 취소했다. 폐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계속 몰리자 결국 부산시는 4월 10일 76만㎡에 달하는 유채꽃 경관 단지를 갈아엎고 말았다. 양산시에서도 매년 유채꽃을 심어서 유채꽃축제도 하고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해 왔다. 올해 역시 양산천변 우방아이유쉘 아파트 앞에 유채꽃 단지가 조성되었고, 낙동강변 황산공원의 마음정원 옆, 물금역 횡단육교 앞의 전망대 근처, 국민여가 캠핑장의 주차장 근처 등에도 유채꽃밭을 다양하게 조성하여 인기를 끌었다. 양산시는 다행스럽게 타지역처럼 유채꽃밭을 갈아엎지 않아서 시민들이 유채꽃을 즐길 수 있었다. 필자가 유채꽃이 절정일 때 양산천, 황산공원을 주중과 주말에 걸쳐 방문해보니 전염병 확산을 우려할 만큼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양산천 유채꽃단지는 길게 조성되어 있고 제방둑이나, 자전거도로를 따라 유채꽃을 감상할 수 있게 접근로가 분산되어 안심할 수 있었다. 황산공원의 유채꽃밭은 여러 군데에 분산되어 있고 면적이 광대하고, 산책로가 다양하여 많은 인파가 일시에 집중될 우려가 없었다. 자전거 이용자와 도보 이용자가 혼재되어 있었지만 별다른 혼란은 유발되지 않았다. 모든 방문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안심하고 꽃구경을 할 수 있었다. 양산시에서 유채꽃밭을 갈아엎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2. 유채꽃 축제와 유채꽃 효용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최근 전국적으로 봄꽃 축제를 목적으로 한 경관용 유채의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신품종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안정적인 재배가 가능한 유채의 봄 파종 재배법, 거름 관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관용 유채가 3천ha 이상 재배되고 있으며, 갈수록 면적이 급증하고 있다. 유채는 팜, 대두와 함께 세계 3대 기름작물로서 그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유채의 용도는 경관용뿐만 아니라 식용, 에너지 등 산업적으로 다양하게 활용이 된다. 따라서 유채를 활용한 자원순환체계가 정착이 되면 농촌경제 활성화, 농가 소득 증대에도 기여하게 된다. 대규모 경관용 유채를 식품 소재로 활용하는 등 유채의 고부가 가치를 높이는 '유채 자원순환 모델'을 농촌진흥청에서 실제 전남, 경남지역에 현장 적용한 결과, 3배 이상의 농가소득 향상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진도군, 해남군, 50ha)과 경남(창녕군, 합천군, 100ha) 현장 거점 단지를 육성해 유채 기름을 생산하고 착유 부산물인 유채박을 재활용한 결과, 농가 소득이 3배 증가되었다. 경관용 유채(170만 원/ha) → 자원순환(510만 원/ha)으로 국내 경관용 유채 총 재배 면적인 3,370ha에 유채 자원순환모델을 적용했을 경우, 경제적 가치는 약 17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유채 자원 순환 모델은 봄철 유채꽃(경관, 지역축제) → 유채 씨앗 수확 후 다양하게 재활용 → 유채기름 생산(압착유+정제유) → 유채박 활용(유기질 비료, 가축사료)으로 연결된다. 유채박(油菜粕)은 유채에서 기름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를 말한다. 유채박은 인공적 처리를 하지 않은 천연 단백질 덩어리다. 일반적으로 단백질 함량은 36~39% 수준이다. 대두박보다 메티오닌 함량이 높으나 라이신 함량은 낮다. 조섬유 함량은 11~13%로 높아 가소화 에너지가 낮으며 가축의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 바이오에너지작물연구소 이영화 박사에 의하면 눈으로만 즐기고 버려지던 경관용 유채를 씨앗 수확을 통해 유채 기름을 생산하면 유채 자원의 고부가 가치 창출, 농가 소득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수입산 식용유를 대체할 기능성 성분이 풍부하고 친환경적인 국산 유채기름 공급을 통해 국민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유채는 농진청에서 개발한 품종인 '탐미유채', '탐라유채' 등으로 기름함량은 45%, 올레인산 함량은 65%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또한 인체에 해로운 에루신산이 1% 이내로 식용에 적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 부안군 농업기술센터는 4월 14일 계화 유채경관단지 회원 17명을 대상으로 다용도 유채신품종 지역적응연구 및 신품종 이용촉진사업 현장 중간평가를 했다.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에 위치한 농업기술센터 새기술 실증 시범포장에서 진행된 평가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신품종 채종포 74% 올레산 고함유 품종인 '유려', 흰꽃을 가진 경관용 품종인 '중모 7003', 단교 80~83호, 목포 127~132호 등 계통 선발된 신품종 지역적응 연구포가 처음 소개됐다. 카놀라유는 유채기름의 일종이다. 카놀라(canola)는 Canadian oil, low acid에서 따온 말로, 이 기름에 쓰이는 유채의 재배품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원래 유채기름은 불쾌한 쓴맛이 강하고 심장병과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에루신산이 포함되어 있어 식용이 불가능하며, 호롱불을 켜거나 윤활유로 쓰던 기름이었다. 캐나다에서 에루신산이 적게 포함된 신품종인 카놀라를 개발한 이후에 유채유는 식품 및 공업용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농약에 저항을 가지도록 개발된 GMO(유전자변형 농산물) 품종이 이용되는 경우도 많으며, 국내에도 허가되어 시판되고 있다. 카놀라유 부작용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해로울 가능성'이 제기되어 일부 소비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 GMO 카놀라유에 맞서 국민건강을 책임질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고품질 유채유 생산 품종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다. 카놀라유는 올리브유, 포도씨유처럼 '프리미엄 식용유'로 분류되지만 가격은 절반가량으로 설날, 추석 등 명절 연휴 때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식용유다. 발연점이 높아 전반적으로 활용도가 높다. 2017년 전체 판매액 약 3천 2백억 원 가운데 카놀라유가 37.6%로 1위였다. 3.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도록 한 우장춘 박사의 유채꽃 연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학자이자 식물학자인 우장춘(1898~1959) 박사가 유채에 관한 연구를 하여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우 박사는 1935년 십자화과 배추속 식물들을 이용한 실험으로 종의 합성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유채(油菜)의 유전과 육종 연구를 하면서 1931년 「유채품종의 특성조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논문을 발표하였다. 1935년 도쿄제국대학에서 십자화과속의 식물에 관한 게놈분석을 시도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하여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의 중요성은 현재 존재하는 식물 종(種)을 재료로 하여 또 다른 종을 실험적으로 합성해 냈다는 데 있다. 이것을 ‘종의 합성’이라고 하며, 세계적으로 이 방면의 연구를 새롭게 개척한 것이다. 즉, 염색체 수 10개의 일본 재래종 유채와 염색체 9개의 양배추를 교배해서 염색체 19개의 고유 유채를 만들어 우리의 주위에 이러한 종간잡종(種間雜種)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종은 기존의 종간 교잡으로 새로운 종을 낳고 이것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세포 내 염색체의 배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다윈이 1859년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하여 밝힌 진화론은 종내에 존재하는 변이가 자연 선택에 의해 새로운 종으로 발전한다고 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이종교배로는 생식능력을 갖춘 새로운 종이 만들어질 수 없고, 동종교배를 통해 생겨난 자손들이 자연선택을 거치며 분화되는 방식으로만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우장춘은 서로 다른 종을 교배하여 이미 알고 있는 또 다른 종을 합성해 냄으로써 다윈이 생각하지 못했던 진화의 원리를 보완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다윈의 진화론에 나오는 “종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성립된다.”는 설에 수정과 보충을 가한 것이다. 『종의 합성』은 복합적인 사유가 가능한 현대진화론 시대를 열어주는 과학적 발견이었다. 또한 1945년에 발표된 「채소의 육종기술」은 그의 오랜 연구와 경험을 체계적으로 확립한 결론이며, 이 논문에서 말한 예언이 현재 성공적으로 대부분 실용화되고 있다. 우 박사는 다른 종끼리 교배하는 과정에서도 유채처럼 완전히 새로운 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우박사는 시대를 잘못 타고나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이후 배추속의 또 다른 식물인 흑겨자(염색체 8개)를 양배추와 교배해 에티오피아겨자(염색체 17개)를 만들어내고, 배추와 교배해 갓(염색체 18개)을 만드는 실험도 성공하면서 총 6종의 배추속 식물 간의 관계를 도식화한 '우장춘의 삼각형'을 완성하였다. 이런 연구 업적은 현대 육종 기술이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전 세계 농업학교의 모든 육종 관련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1960년대에 전라도, 경남, 제주도 지역에서 유채재배가 일반화된 것은 일본에서 귀국한 우장춘 박사가 동래원예시험장에서 일본의 적종 유채 품종을 도입하여 종자를 생산 보급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우장춘기념관은 부산시 동래구 우장춘로62번길 7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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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성품을 지닌 대수장군 이수생 공/심상도 박사의 화요 칼럼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학 박사 심상도 1. 대수장군으로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 이수생 공 이수생 공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수생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경주 이견대(利見臺)와 언양 경계에서 왜군과 접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경북 영천에서도 왜적을 추적하였다. 1596년에는 팔공산에서 각 지방의 의병대장들과 회맹하여 공동전선을 펼쳐 왜군을 격퇴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화왕산성 전투에서 곽재우 장군의 진영에 합세하여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수생 공은 안시명, 이몽란, 최흥국과 교류를 하였다. 이몽란(李夢鸞)은 임란전 미리 왜구의 침입을 탐지하고 밀양, 청도의 선비들과 충성을 맹약하였다. 실제 왜구가 침입하자 안근, 이수생과 양산, 울산 경주 등지에서 싸우고 화왕산 전투에도 참가하였다. 후에 선무원종 3등공신으로 훈록되었다. 최기(崔沂)는 경주인으로 임란을 당하여 장질 최흥국과 더불어 창의하여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 3등공신으로 훈록되었다. 최흥국(崔興國)은 후에 공신 책봉을 사양하고 양산 어곡리 두연대에서 양산의 사호(四豪)인 이수생, 이몽란과 함께 후학 양성에 힘썼다. 공을 논할 때 이수생 공은 숨고 나타나지 않아 사람들이 그를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대수장군은 장군(將軍)의 별칭(別稱)으로 매사에 겸손하고 말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中國) 후한(後漢) 때의 풍이(馮異)장군은 겸손하여 여러 장수(將帥)들이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고 있을 때도 항상 슬쩍 큰 나무 밑으로 물러가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수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풍이는 사람됨이 겸손하여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행군을 하다가 장수를 만나면 수레를 이끌고 길을 피해 주었다. 나아가고 멈출 때마다 모두 절도가 있었으며, 군중(軍中)에서도 정돈이 잘 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행군을 멈추고 쉴 때마다 장수들은 함께 앉아서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였으나, 풍이는 거기에 참여하지 않고 홀로 나무 아래로 물러나 있었다. 그래서 군중(軍中)에서는 그를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불렀다. 한단을 격파하고 나서 유수는 예하 부대의 장수를 새로 바꾸고 각기 병사를 새로 배속하게 하였는데, 군사들은 모두 대수장군에게 소속되기를 원했다. 유수는 이러한 점들 때문에 풍이를 중시하였다. 풍이는 별동대를 이끌고 북평현(北平縣)으로 가서 철경(鐵脛)을 격파하였고, 또 흉노의 우림탑대왕(于林闟頓王)을 항복시켰다. 대수장군은 겸손에 관한 한자성어이다. 이수생 공은 임진왜란 때 세운 전공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에 제수되었고, 선무원종공신 3등이 되었으며, 1612년(광해 4년)에 사망하였다. 이수생의 묘소는 향사를 올리는 금호사 바로 뒤에 있는데, 호석과 상석이 있다. 배(配) 숙부인(淑夫人) 남양 김씨와 합장하였다. 묘소는 동면 호포마을에 있으며, 금정산 등산로 초입에 자리잡고 있다. 봄철에는 벚꽃이 아름다우며, 금호사 바로 옆에도 큰 벚나무가 있다. 묘소의 양 옆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임진왜란 당시 이수생 공의 활동과 그 전공을 기리는 내용으로 1874년(고종 11년)에 양산군수와 전라도암행어사를 지낸 어윤중(魚允中)이 지었다. “내가 이 땅에 부임하니 공은 이곳의 선대 백성인지라 나는 공의 의로움을 사모하며 나는 그 사람을 공경하노라 울창한 가산 기슭은 공을 묻은 곳이라 이 명을 새겨서 무궁토록 뚜렷이 보이노라” 라는 내용을 적어놓았다. 2. 이수생 공이 참가한 팔공산 회맹 회맹이란 각지의 장수들이 모여 피를 나누어 마시며 적을 물리치기 위한 결의를 다지며 회의하는 것을 말한다. 이수생 공이 참석한 팔공산 회맹은 임진왜란 때 대구 팔공산에서 의병장들이 모여서 의식을 거행했다. 팔공산은 대구 지역은 물론 경상도 일원의 의병들이 모여 전체 전략을 논의한 곳이었다. 전쟁 중 세 차례 의병장 모임이 있었는데 이를 ‘팔공산 회맹’이라 한다. 대구 의병들은 팔공산 부인사에 의병본부인 의병소를 설치하여 산으로 피란 온 백성들을 보호하였다. 전쟁이 벌어진 지 불과 일주일만인 1592년 4월 21일 대구읍성은 일본군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내내 왜군은 팔공산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이눌은 경주 의병장이지만 팔공산 아래 전투에 참전했고, 그때 부상을 입어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진왜란 동안 대구의 관군과 의병들이 머문 곳은 대구읍성이 아니라 팔공산이었다. 관군은 동화사에, 의병은 부인사에 주둔했다. 경상도 지역 통치를 담당한 일본군 7군 사령관 모리휘원(毛利輝元, 모리 데루모토)은 명석즉실(明石則實, 아카시 노리자네)과 제촌정광(齊村政廣, 사이무라 마사히로)을 수장으로 하는 1,600명의 군대를 대구에 주둔시켰다. 대구지역은 왜적의 주요 침입로로 임진란 초기에 이미 점령을 당하였다. 점령 후 대규모 부대가 주둔하였기 때문에 의병진(義兵陣)을 구성하는데 많은 시일이 소요되었다. 왜적이 침입한 3개월 후인 7월 6일에 팔공산 부인사에서 대구지역의 의병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몇몇 의병장들은 자신의 의병을 이끌고 왜적과 전투를 하였으며 경주, 함창 등지로 나아가 다른 지역의 의병장들과 연합하여 전투를 하기도 하였다. 공산의진군은 부인사에 의병소를 두고 동화사의 관군과 유기적인 연락을 취하면서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정유년(1597) 이전에는 왜적들이 팔공산으로는 침입하지 못하였다. 공산의진군은 임진란 초기에 크게 활약을 하였는데 그 이후에는 왜적과 전투를 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곽재겸과 류요신이 갑오년(1594, 선조 27)에 공산의병소에서 군무를 보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의병소는 임진란이 종결될 때까지 유지되었으며 대구지역 의병의 구심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3. 이수생 공의 일생 이수생 공은 양산의 입향조로서 본관은 연안, 자는 응생(應生), 시호는 금호(琴湖)이다. 조선 선조 때 훈련원첨정 군자감 판관을 역임하였다. 부친은 봉상시봉사진위장군(奉常寺奉事振威將軍) 팽령공(彭齡公)이다. 명종 7년 신해년 7월 7일에 양산군 동면 금산리에서 출생하여 광해 4년 임자년 8월 10일 62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슬하에 후강(後降), 후면(後勉), 후필(後必) 3남을 두어 자손이 번창하였다. 공(公)은 타고난 성품이 영리하고 비범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이웃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19세 이후 양산의 선비로서 문무겸비하고, 용기가 뛰어나며 지혜를 갖춘 인물로 인근에 명성을 떨쳤다. 당시 이몽란, 안시명, 최흥국과 더불어 양주 4호걸로 소문났다. 공이 42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재산을 털어 청년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양산을 침범한 왜적 수백명을 동면 내송계곡에서 무찔렀다. 천사장(天使將) 이눌(李訥)과 합세하여 경주, 언양 문덕천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유백춘(柳百春) 군(軍)을 구원하였다. 팔공산에서 적진을 기습하여 대승하였다. 곽제우 장군과 합세하여 화왕산성을 굳게 지켰다. 밀양 면암교(免岩郊)에서 왜적 30여 명을 참수하고, 조총 406정, 왜검 236자루 등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였다. 공은 관군과 합세하여 울산성에 주둔한 가토키요마사군을 40여 일간 포위 후 고립시켜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임진왜란 종식 후 조정에서 창의공신으로 훈련원첨정 군자감 판관을 제수하였다. 그후 50세 때 귀향하여 의검(義劍)을 씻은 곳이 동면 금산리 세검탄(洗劍灘)이다. 금호정을 세워 유명한 유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세속을 초월한 삶을 살았다. 계자시 금호팔영, 태화강 유진작 등 문헌을 집필하고 후세 양성에 진력하며 여생을 즐긴 곳이 금산리 서당골이다. 공의 고결한 우국충정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위패를 금호사에 봉안하였다. 후손들은 공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 11년에 건립한 원비문이 일부 글자가 마모되어 알아보기 힘들어 1982년에 비석을 다시 세웠다. 비문은 당시 양산군수 통훈대부, 전 홍문관 부교리 겸 지제교 경연시독관 춘추관 기주관 서학교수 어윤중(魚允中)이 지었다. 이수생 공은 임진왜란 때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으며, 양산에 침투한 왜군을 무찌르고, 경주, 언양, 울산, 화왕산성 등지에서 왜군을 쳐부수고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성품이 겸손하여 자신의 전공을 내세우지 않아 사람들은 대수장군이라고 칭찬하였다. 요즘 공직자들은 자신의 작은 공을 내세워 승진하려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당시 공은 양산의 4호걸로 불리며 후학양성에 힘써 귀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