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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벽루아트홀, 가을 클래식 콘서트 개최- 오는 10월 21일(토) 오후 5시, 10월 25일(수) 오전 11시 -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박성관) 쌍벽루아트홀은 ‘더 하우스 콘서트’와 ‘양산의 아침을 여는 브런치 콘서트’를 각각 21일(토) 오후5시, 25일(수) 오전 11시에 개최한다. 21일(토) 오후 5시에 개최되는 ‘더 하우스 콘서트’는 대한민국 최고의 실내악 공연 프로그램으로 관람객과 일상적 공간에서 가깝게 만나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으며, 네덜란드에서 수학한 더블베이시스트이자 리더인 송인섭과 드러머 송준영, 피아니스트 김지훈을 멤버로 음표보다 쉼표에 더 많은 집중과 노력을 기울여 청중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할 예정이다. 25일(수) 오전 11시에 개최되는 ‘브런치 콘서트’는 2023년 문화융성을 위한 정부 정책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공모사업으로 전체 6회차 공연 중 5회차 공연 ‘String Duo 음악회’가 예정되어 있으며, 아벨콰르텟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과 첼리스트 종현준의 듀오 무대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러장르의 곡으로 꾸며질 예정으로 깊어가는 가을, 수준 높은 클래식 시리즈를 통하여 양산 시민들과 함께 쌍벽루아트홀에서 문화예술의 깊은 감동을 향유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쌍벽루아트홀은 입장객의 편의와 코로나19 예방을 위하여 모바일티켓 발권을 시행하고 있으며, 공연예매는 양산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www.yangsanart.net)에서 PC 및 모바일로 가능하며, 입장료는 전석 10,000원, 공연시간 70분(8세 취학아동 이상 관람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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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삼국통일 위해 태종과 김유신 장군 남천정 출정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백제 정벌하기 위해 신라 태종대왕과 김유신 장군 출정 필자는 남천정이 있었던 경기도 이천시의 설봉산성을 2020년 12월 28에 답사하였다. 3년 전부터 현재까지 삼국통일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혁혁한 공을 세운 김유신 장군의 역사 유적지를 틈틈이 둘러보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양산, 김해, 산청, 경주, 청도, 경산, 영천, 상주, 충북 진천, 강원도 강릉, 북쪽의 경기도 파주, 연천 등의 지역을 계속 답사하고 있다. 김유신 장군(595~673년)이 태종대왕을 수행하여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경기도 이천에 있는 남천정으로 출정했을 때는 나이가 65세였다. 그 당시에는 현재보다 평균 수명이 훨씬 짧았으므로 60대는 노인으로 전쟁터 일선에 나서기보다는 안전한 서라벌에서 벼슬을 하거나 은퇴를 하여 노후를 보낼 시기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은 노익장으로서 전쟁의 최일선에 서서 야전 사령관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애국심도 강했지만 건강 관리도 잘했던 것으로 보인다. 660년 신라의 백제 원정시 신라 태종대왕이 직접 출전하였다. 태자 법민과 김유신 등이 이끄는 정예병은 5만 명이었으며, 국왕을 호위하고 전투지원을 하던 병력도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확인 가능한 병력이 최소 5만 명 이상이므로 군수 지원부대를 포함하면 약 6만~7만 명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 제5(第五) 태종 무열왕(太宗 武烈王) 태종무열왕이 남천정에 이르다. 〔7년(660)〕 6월 18일에 〔왕이〕 남천정(南川停)에 이르렀다. 『삼국사기』 권제5 태종무열왕 7년 5월조에는 태종무열왕이 5월 26일에 경주를 출발하였다고 전한다. 또 본서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7년 6월조에는 태종무열왕이 남천정에 도착한 시기는 6월 18일이라 전한다. 경주에서 경기도 이천까지 대부대가 행군하는데 23일 정도가 걸렸다. 남천정(南川停)은 지금의 경기도 이천시 지역에 있던 군단이다. 『삼국사기』 권제40 잡지(雜志) 제9 직관 하(下) 무관(武官)조에 남천정의 군관직(軍官職)으로 기병(騎兵)을 거느린 대대감(隊大監) 1명, 소감(少監) 2명, 대척(大尺) 2명과 삼천당주(三千幢主) 6명, 삼천감(三千監) 6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 권제40 잡지 제9 직관하(下) 무관조에 따르면, 진흥왕(眞興王) 29년(568)에 신주정(新州停)을 파하고 남천정을 설치했으며, 다시 진평왕(眞平王) 26년(604)에 남천정을 없애고 한산정(漢山停)을 두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삼국사기』 권제47 열전제7 해론(奚論)조에 건복(建福) 28년(진평왕 33 ; 611년)에 신주(정)가 존재하였다고 전하고, 본 기록에는 남천정이 기록이 되어 있어 무관조의 연혁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李文基, 1997,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80쪽). 2. 백제 정벌하기 위해 당나라 군사 출정 태종대왕 7년 경신(660) 여름 6월에 대왕과 태자 법민(法民)이 장차 백제를 정벌하고자 크게 군사를 일으켜, 남천(南川)에 이르러 진영을 설치하였다. 그때 당나라에 들어가 군사를 요청하였던 파진찬 김인문(金仁問)이 당나라 대장군 소정방(蘇定方), 유백영(劉伯英)과 함께 군사 130,000명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덕물도(德物島)에 이르렀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군사 130,000명은 『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7년(660) 3월에 당나라 고종(高宗)이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김인문(金仁問)을 부대총관(副大摠管)으로 삼아,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백영(劉伯英) 등 수군과 육군 130,000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1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조의 세주(細注)에는 향기(鄕記)를 인용하여 “군사가 122,711명, 선박이 1,900척”이라고 전한다. 『삼국사기』 권제41 열전제1 김유신(상)조에 당나라 태종이 소정방에게 2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였다고 전하나, 실제 백제 정벌에 동원된 군사는 122,711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수행하던 부하[從者] 문천(文泉)을 보내와 〔그 사실을〕 고하였다. 문천(文泉)은 신라 태종무열왕대의 인물로 대감의 벼슬에 있었다. 당에 가 있다가 소정방을 따라 고구려 원정에 참여하여 소정방의 서신을 왕에게 전하고, 문무왕의 서신도 다시 소정방에게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소정방(蘇定方)은 내주(萊州)에서 출발하여, 많은 배들이 꼬리를 물고 1,000리를 이어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왔다. 내주(萊州)는 지금의 중국 산둥성(山東省) 라이저우시(莱州市)에 치소를 두고 있었는데, 본래는 동래군(東萊郡)이었던 것을 당나라 초기에 내주(萊州)로 고치고 하남도(河南道)에 소속시켰다. 많은 배들이 … 동쪽으로 내려왔다. 우리나라의 삼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해상 교통로는 연안항로이다. 당시 소정방(蘇定方)은 내주(萊州)에서 출발하여 등주(登州)를 잇는 도서(島嶼) 지역을 통과한 후 연안을 따라 내려와 덕물도(德物島)에 도착하였다. 『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7년 6월조에 따르면, 소정방이 내주에서부터 덕물도에 이르기까지 3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덕물도(德物島)는 지금의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의 덕적도(德積島)이다. 덕물도만으로는 1,900척에 달하는 당나라 선박이 모두 머물기는 어렵기 때문에 덕물도를 비롯하여 소야도, 문갑도, 굴업도 등으로 이루어진 덕적군도에 분산하여 기항한 것으로 추정된다. 식수나 땔감 등을 고려하면, 덕적군도뿐만 아니라 태안반도를 비롯한 서해안 연안지대에도 일부 정박하거나 상륙했을 가능성이 크다. 3. 경기도 이천 설봉산성에 있는 남천정 남천정(南川停)은 통일신라시대의 지방 주둔 군부대이다. 각 주(州)에 설치된 십정(十停) 군단의 하나이다. 십정은 통일신라의 9주를 기준으로 하여 각 주에 하나씩의 정(停)을 배치하였으나, 한주(漢州)만은 그 지역이 넓을 뿐만 아니라 국방상의 요지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두 개의 정이 설치되었다. 즉, 지금의 경기도 이천시에는 남천정이 설치되고, 여주시 일대에는 골내근정(骨內斤停)이 설치되었다. 소속군관으로는 대대감(隊大監) 1인, 소감(少監) 2인, 대척(大尺) 2인, 삼천당주(三千幢主) 6인, 삼천감(三千監) 6인이 있었으며, 금색(衿色)은 황색이었다. 설봉산의 최고봉인 희망봉은 해발 394m이다. 설봉산 정상 부근에서 팔각제단지(八角祭壇址)가 발굴 조사되었다. 제단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것은 이 성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제단은 설봉산성 칼바위의 서쪽 20m 지점에 복원되어 있다. 설봉산 정상에는 봉화대도 설치되었다. 팔각제단은 사직단(社稷壇)으로 보인다. 사직(社稷)은 원래 主神인 사신(社神)과 오곡(五穀)의 어른이 되는 직(稷)을 말하는 것으로서 제사를 모시는 법을 만들어 사직단(祉稷壇)이라 하였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천지인(天地人)의 삼위일체 사상이 점점 발달되면서 사(社)와 직(稷)을 하나로 합하여 토지와 곡물을 관리하는 神으로 받들어 이때부터 천자(天子)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사직(社稷)에 제사를 올리는 중요한 국가행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에 전국의 명산에서 국가적으로 제(祭)를 받드는 관습이 있었으며 이러한 제사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서 시행되었고 주로 국가 또는 지방에서 주관하였다. 이곳 팔각제단은 그간의 발굴 출토된 각종 유물로 보아 4세기 백제를 비롯하여 삼국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천시는 통일신라가 남천정[南川停 : 삼국 통일 후 서기 568년인 진흥왕 29년에 설치되었던 군관(軍管)]을 설치한 군사적 요충지인 것으로 보아 이곳 설봉산성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적(事蹟)임을 나타내는 시설이다. 이천시에서는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설봉문화제 행사 기간 중 이곳에서 사직제(社稷祭)를 거행함으로써 이천시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있다. 4. 설봉산성 『동국여지승람』에 ‘설봉산(雪峯山)은 부(府)의 서쪽 5리 되는 곳에 있는데 진산(鎭山)이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일명 부아악산(負兒岳山)이라 부르기도 하는 영산(靈山)이다. 산중에는 영월암과 삼국시대에 백제, 고구려, 신라가 각축전을 벌이던 축성(築城) 등 문화유적이 많다. 앞으로도 이곳은 우리나라 한복판 노른자위로 통일과 번영의 심장부가 될 것으로 이천시는 내다보고 있다. 설봉산성은 사적 제423호이며, 소재지는 경기도 이천시 사음동 산24 일원이다. 설봉산성은 관고리성지(官庫里城地) 또는 무안산성이라고도 불리며, 설봉산의 정상부에 쌓은 테뫼식의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설봉산성은 관고동의 일명 기치미 고개에서 증일리에 이르는 산줄기의 연봉에 위치하고 있어 북쪽과 남쪽은 물론 주변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079m 이고 삼국 시대의 성중에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는 산성으로 전면을 다듬은 화강암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쐐기돌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성문은 어긋문 형태로 된 서문과 북문, 동문이 있으며,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돌출시킨 치성은 4개가 확인되고 있다. 장대는 성내의 가장 높고 지휘 관측이 용이한 칼바위 부근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노출된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 정도이다. 우물은 동문지 뒤편 평탄한 곳에 1개소가 있으며, 물 통로는 북쪽과 동쪽에 각각 1개씩 설치하였다. 단국대학교에 의한 발굴조사결과 칼바위 부근의 토광과 서문지 하부에서 백제 토기가 다수 출토되어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백제 석성일 가능성 에 대한 견해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반면 동문지 상단 및 성내 전역에서는 단각고배류와 인화문토기 등 이 출토되었으며, 함통(咸通)6년(865)명의 벼루가 출토되어 이 산성이 삼국시대에 축성되어 9세기 중엽까지도 사용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부성은 규모가 각각 532m와 362m인 석축성으로서 성내에 건물지와 치성, 문 지 등의 유규가 확인되었으며, 삼국∼통일신라기의 기와, 토기,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설봉산 정상 부근에 있는 남장대지(南將臺址)의 장대는 장수의 지휘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장대는 전투시 군사 지휘가 편리하고 산성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를 골라서 세웠다. 남장대지는 설봉산성에서 가장 높고 산성 전체가 내려다보여서 전투시 군사의 지휘가 편리한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초석 15기가 노출되어 있다. 초석의 형태는 일정하지 않으며 윗면과 옆면만 약간 다듬었다. 초석의 아래쪽에는 다듬지 않고 고인돌을 놓아서 수평을 맞추었으며, 초석의 배치 상태로 보아 남장대의 규모는 정면 5간, 측면 2간으로 동서 14.3m, 남북 5.7m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시 기간, 담장, 온돌 등의 시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은 누각 형태로 사방이 트여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축조 연대는 통일신라 말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5. 영월암(映月庵) 영월암은 향토유적 제14호이며, 소재지는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438이다. 설봉산(雪山) 주봉 기슭에 자리 잡은 영월암(月庵)은 이 고장의 대표적인 유서 깊은 고찰이다. 문헌상으로는 조선 영조(英祖) 36년(1760) 이후에 편찬된 『여지도서(與地圖書)』 이천지(利川誌)와 광무(光武) 3년(1899)에 나온 『이천군읍지(利川鄭邑誌)』에는 모두 북악사(北岳寺)란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그 이후로 영월암이라 불러오고 있으며, 현재는 조계종(溪宗)에 소속되어 있다. 영월암 중건기(重建記)에 의하면, 지금부터 1천 300여 년 전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 때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개조(開祖)인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나 금석문(金石文) 등 신빙(信憑) 자료가 없어서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내에는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 보물 제882호)과 통일신라 말~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광배(石造光背) 및 연화좌대(蓮花座臺), 그리고 석조 3층석탑(石造 三層石塔) 등의 유물, 유적이 남아 있어서 이 절이 유서 깊은 고찰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러한 유적 유물 등의 조성연대로 미루어 영월암의 창건연대는 대략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조선 후기인 영조(英祖) 50년(1774)에 이르러서야 영월(映月) 낭규 대사(郞奎 大師)가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여 큰 불사를 일으켜 중창하였다. 그 뒤 1911년 보은(普恩) 스님이 다시 중건하고, 1920년에는 당시 주지인 유신암(劉信庵) 스님이 산신각(山神)과 극락전을 옮겨 세웠으며, 1937년에는 조언우(曺彦佑) 스님이 누각인 단하라(丹霞閣)을 중건하였다. 지금의 대웅전(大雄殿)건물을 1949년 청암(淸庵) 김명칠(金明七) 스님이 이천 향교(利川 鄕校) 명륜당(明倫堂) 앞에 있었든 퇴락된 풍영루(風詠樓) 체목(體木 : 집을 지을 때 기둥, 도리 따위에 쓰는 재목)으로 옮겨 짓다가 6.25동란의 발발로 중단된 것을 1953년 11월 당시의 주지인 김해옹(金海翁) 스님이 준공하였다. 현재의 영월암은 대웅전과 부속건물(附屬建物) 3동(棟)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 석탑, 석조광배 및 팔각연화좌대 등의 유물들은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오다가, 1981년 주지 송정해(宋正海) 스님이 사계(斯界)의 고증을 받아 수습 복원해 놓은 것이다. 1989년 8월 14일 소실된 서편 요사채를 1991년 여름에 법정(法淨) 강종래(姜鐘萊) 스님이 전통한옥으로 복원하여 명실공히 전통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절 앞에 일근(一根) 이주(二株)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640여 년, 수고 37m, 나무 둘레 5m이다. 이는 고려말의 고승 나옹 대사(懶翁 大師))가 이 절에 머물 때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신비한 전설(傳說)을 가지고 있다. 6. 설봉산 삼형제바위 전설 아주 오랜 옛날 가난한 집에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나무를 해다가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삼형제는 우애와 어머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인근 지방에 효자 아들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설봉산으로 나무하러 갔던 삼형제가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아 속태우던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산으로 가게 되었고 그런 줄도 모르는 아들은 나무를 한 짐씩 잔뜩하여 집으로 돌 아와 보니 어머니가 안 계셨다. 어머니를 찾아 온산을 헤매고 있을 때 어디선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삼형제가 쏜살같이 달려가 보니 수십 길이 넘는 낭떠러지 밑에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삼형제 아들이 똑같이 뛰어내렸는데 그 순간 세 덩어리의 바위가 되었다고 하는 傳說이 있다. 또한 오랜 옛날 홀어머니 밑에 삼형제가 있었는데 3년 기한인 병졸(兵卒)로 모두 뽑혀가게 되었다. 아들 셋을 의지하며 살던 어머니는 아들의 무사함을 빌었으나 약속한 3년이 지나도 이들이 돌아오지를 않았다. 혼자서 생계를 이어 가던 홀어머니는 그리던 아들을 보지못한 채 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병졸의 의무를 다한 삼형제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여 어머니의 무덤에 엎드려 명복(冥福)을 빌며 일어날 줄 몰랐고 그대로 세 덩어리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천구경(利川九景)은 제1경은 도드람산봉. 이천시 마장면 목리, 제2경은 설봉호(雪峰湖). 이천시 관고동 설봉산내, 제3경은 설봉산 삼형제바위. 설봉산내, 제4경은 설봉산성(雪峰山城). 설봉산내, 제5경=산수유마을, 제6경은 반룡성(蟠龍松) 천연기념물 제381호.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201-1, 제7경은 애련정(愛蓮亭). 이천시 안흥동, 제8경은 노성산 말머리바위.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 제9경은 이천도예촌. 이천시 사음동 신둔면 수광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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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오늘의뉴스, 양산문화원 주최 다문화 가정 전통 혼례삽량문화축전에서 거행된 전통 혼례식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도 양산시의 최대 규모의 축제인 삽량문화축전이 10월 7~8일에 이틀간 열렸다. 7일 12시에 양산천 둔치 특설 무대에서 양산문화원(박인주 원장) 주최, 문화원 부설 예술문화연구소(전정애 소장) 주관으로 다문화 가정이 탄생하는 성대한 전통 혼례식이 거행되어 하객들과 축제를 구경하러 온 양산시민과 관광객들의 축하를 받았다. 주인공인 신부 캄보디아 출신 켐 쇼파 양, 신랑 이동양 군의 전통 혼례식은 양산문화원 박인주 원장의 주례, 최양두 양산문화원 부원장, 전정애 예술문화연구소장의 사회로 혼례식이 진행되었다. 요즘의 결혼은 거의 대부분 웨딩홀에서 현대식으로 혼례를 치르고 있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인 전통 혼례식은 전국의 문화원, 향교 등에서 특별한 이벤트로 열리고 있어 일반 국민은 볼 기회가 거의 없다. 현대 결혼식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절차와 의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축가, 신랑 신부 애정 표현, 주례 없는 결혼식 등이 새로 생겨 자꾸 번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혼례식에 포함된 진정한 의미를 파악해보면 조상들의 혼인, 사랑에 대한 의식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출생률도 전세계에서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데 다 이혼율도 매우 높아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취학아동 감소로 농촌 학교의 폐교 현상,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지방 도시 소멸, 대학교 입학생 감소로 인한 대학교 폐교, 징집 대상 청년의 감소로 군 병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장과 농촌에서 외국인 유입에 의해 겨우 인력을 충당하고 있다. 대학교에 외국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농촌 거주 총각들은 결혼하기가 힘들어 외국인과 결혼이 증가함에 따라 다문화 가정도 보편화되고 있다. 이번 결혼식을 통해 또 하나의 다문화 가정이 탄생하였다. 주례를 맡은 박인주 양산문화원장은 주례사에서 신랑 신부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축원하였다. 2. 전통 혼례식 절차 홀기 1) 행 영서례(行 迎婿禮) 신랑을 맞이하는 예를 올리겠습니다. - 서지. 문외(婿至. 門外) 신랑이 대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 주인. 출영(主人. 出迎) 신부 측 혼주님 신랑을 맞이하십시오. - 서읍양. 이입(婿揖讓. 以入) 신랑은 신부 측 혼주님께 읍하고 들어오시오. 2) 행 전안례(行 奠鴈禮) 기러기를 드리는 예를 올리겠습니다. - 서자. 집안이종(婿者. 執鴈以從) 신랑은 기러기를 시자에게 안겨 들어오시오. - 지우. 청사(至于. 廳事) 예청에 들어서시오. - 주인. 시자수지(主人. 侍者受之) 신부 댁 시자는 읍하고 기러기를 받으시오. - 치안우지(置鴈于地) 기러기를 신랑 맞은편 상 위에 놓으시오. - 서북향. 궤(婿北向. 跪) 신랑은 북쪽을 향해 꿇어앉으시오. - 서면복. 흥(婿俛伏. 興) 신랑은 조금 구부렸다 일어나시오. - 소퇴. 재배(小退. 再拜) 신랑은 조금 물러서서 두 번 절하시오. 신부 댁 시자는 기러기를 신부 방에 가지고 가서 신부에게 안겨주시오. 3) 행 친영례(行 親迎禮)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예를 행하겠습니다. - 모도. 부출(娒導. 婦出) 신부 댁 시자가 신부를 인도하여 예석에 들어오십시오. - 모동. 부서(婿東. 婦西) 신랑은 동쪽, 신부는 서쪽에 서시오. - 서읍부. 취석(婿揖婦. 就席) 신랑은 신부를 향해 읍하고 자리로 들어서시오. 신부도 자리로 들어서시오. 4) 행 관세례(行 盥洗禮) 신랑 신부가 손을 씻는 예를 행하겠습니다. 이하 생략 3. 양산의 전통 혼례 절차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남자는 16세부터 30세 사이에 장가가고 여자는 14세부터 20세 사이에 시집간다 하였다. 또한 동성동본, 즉 동성의 혈족 간에는 혼인할 수 없었으며 1년 이상의 상복을 입는 기간에는 혼인이 불가하여 부모, 조부모, 백숙부모, 형제자매 등 3촌 이내의 상중에는 혼인이 금지되었다(양산문화디지털대전). 한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양산에서도 수십 년 전까지만 하여도 옛 혼속(婚俗)이 존재하였다. 전통 혼례는 본래 육례(六禮)로 행해졌다고 하나 시간이 흐르면서 4가지로 줄여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사례로 행하게 되었다. 의혼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혼인을 상의하는 일로 주로 중매인이 양가를 왕래하면서 의사를 전달하고 권유하여 성혼이 되게 하는 의식으로서 혼례의 첫 단계이다. 납채(納采)는 성혼이 합의되면 신랑집에서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사주단자를 신부가에 보내 혼인을 구하는 의식이며, 이것이 이루어지면 다시 신부가에서 신랑가로 택일 단자를 보내게 되는데 이를 연길(涓吉)이라 한다. 납폐는 사주단자의 교환이 끝난 후 정혼이 이루어진 증거로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예물을 보내는 의식으로 함보내기라고도 한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신부가로 장가를 가는 절차를 말한다. 대개 3일쯤 신랑이 신부가에 묵고 난 후에 신부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신부가 신랑가로 오는 것을 신행(新行)이라고 한다. 1) 전안례(奠雁禮) : 신랑이 기러기를 신부 댁에 전달하면서 혼인에 대한 승낙을 구하는 절차 2) 교배례(交拜禮) : 부부 간에 서로 맞절로서 백년가약을 약속하고 서약을 하는 의식이다. 우리 전통 혼례에서는 혼인을 인륜지대사라 하였다. 3) 합근례(合卺禮) : 합근례란 신랑과 신부가 표주박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의례로서 하나의 박이 두 개의 바가지로 나뉘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와 하나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의식으로 비로소 신랑 신부가 하나가 됨을 상징하고 부부의 인연을 맺어 부부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4. 전통 혼례의 신부 혼주 머나먼 이역만리 캄보디아에서 온 신부 켐 쇼파 양의 전통 혼례식을 위해 부모 역할을 맡은 유기석 회장과 황신선 여성 회장은 (사)남북통일운동 국민연합 양산시회에서 봉사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사)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양산시지회 유기석 회장은 매년 연초 회원 신년인사회에서 양산시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 북한이탈주민의 초중등 재학 자녀 10명에게 1인당 3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전통 혼례식의 신부 혼주를 맡은 유기석 회장과 황신선 여성회장은 그야말로 적임자라 할 수 있다. 평소에 다문화 가정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헌신, 봉사해왔기 때문이다. 신부 혼주 역할은 40분 가량 진행되는 전통 혼례식에서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혼례식 후 나중에 황신선 여성 회장에게 연락해 보니 신부의 친정 엄마 역할을 너무 충실히 하느라고 혼례식 후 몸살까지 났다고 하였다. 신랑측 가족은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현지에서 캄보디아 문화에 맞춰 1차로 예식을 올렸다고 한다. 외국 며느리를 맞이하는 신랑 부모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오래전 양산문화원에 전통 혼례식을 신청하여 승낙을 받았다고 한다. 황신선 여성 회장은 신부 켐 쇼파 양을 위해 혼례식 당일에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소극적인 역할이 아니라 결혼식 전부터 신부의 한국 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고 한다. 혼례식 날 신부 화장을 위해 미용실에도 데리고 다니고, 신부 한복을 맞추는데도 도아주느라 신경을 쓰다 보니 무리하여 결국 몸살까지 났다고 하였다. 신부가 낯선 이국땅에 와서 말도 안 통하고 모든 것이 생소한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친정 엄마 역할과 문화 도우미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 나무로 만든 기러기와 전안례의 의미 전안례(奠雁禮)란 신랑이 기러기를 신부 댁에 전달하면서 혼인에 대한 승낙을 구하는 절차이다. 기러기는 안정(雁情), 안서(雁序), 안적(雁跡)의 세 가지 덕목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혼인하는 신랑 신부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기러기와 같은 덕목, 사랑의 정신을 간직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목기러기는 기러기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덕목을 사람들이 본받자는 뜻이다. 첫째는 기러기가 가진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키는 덕목이다. 기러기의 보통 수명은 15~20년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고 한다. 둘째는 ‘상하 질서’를 잘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어 앞서가는 기러기가 울면 뒤따라가는 기러기도 화답하며 예(禮)를 지키는 덕목이다. 세 번째는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의 덕목이다. 먹이와 따뜻한 땅을 찾아 이동하는 철새인데,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간다고 한다. 전체 이동 여정은 4만 킬로미터 가까이 된다. 기러기는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隊形)을 유지하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다. 대형의 선두와 후미에는 어른 기러기, 중간에는 새끼 기러기를 배치하여 보호한다. 가장 앞에서 날아가는 리더의 날갯짓은 기류(氣流)의 양력을 만들어주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대장 기러기는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들이 혼자 날 때보다 70% 정도의 힘만 쓰면 날 수 있도록 맨 앞에서 온몸으로 바람과 마주하며 힘을 써야 한다. 머나먼 여정을 옆에서 함께 날갯짓을 하는 동료와 서로 의지하며 날아간다. 선두의 리더가 지치면 뒤에서 날고 있는 기러기와 교대를 한다. 이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낸다. 우리가 듣는 그 울음소리는 실제 우는 소리가 아니라,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겹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이다. 만약 이동 중 동료 기러기가 총에 맞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다른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서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료의 마지막을 함께 지키다 나중에 다시 무리로 다시 돌아온다. 민감한 계절의 변화를 파악하여 머물 때와 떠날 때를 아는 기러기의 예지,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혜안은 여간 신비롭지 않다. 기러기의 지혜를 상징하는 비안함노(飛雁含蘆)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나르는 기러기가 갈대를 입에 물었다는 뜻으로 지혜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날아 오르거나 내리면서 혹여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목이 걸리지 않도록 미리 대비한다는 의미이다. 먹이 하나를 구할지라도 반드시 보초를 세우고, 무리가 고루 나누어 먹는지를 살핀다. 사람들은 기러기를 예사로이 여기지 않고 사랑을 지키는 정신, 위험을 회피하는 생존의 지혜, 동료를 배려하며 공생하는 협동심을 배우고자 전통 혼례식에는 전안례(奠雁禮)라고 해서 신랑이 안고 온 목기러기를 초례청에 올려놓고 예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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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문화체육센터, 2023 K-ARTS 찾아가는 문화행사 무료 공연 개최- 오는 10월 9일 오후 4시, 1층 공연장서 농악콘서트 열어-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박성관) 웅상문화체육센터는 오는 10월 9일 월요일 오후 4시, 센터 1층 공연장에서 ‘2023 K-ARTS 찾아가는 문화행사, 농악콘서트 영인전’을 개최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와의 협업으로 개최되는 ‘농악콘서트영(YOUNG)인전’공연은 ‘농악공연을 콘서트처럼 감상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으로 시작된 한예종 공모전 우수작 선정작품으로 ‘농악천하지대본팀’이 5개 지역 농악을 바탕으로 젊은 영(YOUNG)인들이 선보이는 지역별 농악콘서트이다. ‘농악천하지대본(農樂天下之大本)’은 농악만이 가진 종합예술의 다양한 레퍼토리 창출을 목표로 한예종 전통예술원 연희과 출신으로 구성된 단체로, 지역별 농악을 전승하는 젊은 예인들이 각 지역의 고유한 멋과 특징을 살려 융합함으로써 전승과 보존 그리고 재구성과 창작을 이루어 내고자 결성되었다. 이번 공연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현장 선착순으로 입장이 진행되며, 웅상문화체육센터 직원들의 주차 및 공연장 출입 안내 등 자원봉사 지원을 통해 안전하고 즐거운 문화공연을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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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경주통일전경주 통일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통일전 건립 및 현황 통일전은 태종무열왕과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 등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세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호국의 성지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신라 삼국통일의 위엄을 기리고 조국의 평화통일 염원을 담아 1977년 9월 7일 건립되었다. 통일전은 1976년부터 1977년까지 사업비 7억 3천 9백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완성하였다. 통일전은 82,645㎡ 면적에 본전 1동, 영정 3기, 기념비 1기, 사적비 3기, 기록화 17점, 무명용사비 1기, 수련이 있는 연못가에 지어진 화랑정 정자가 있다.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인 태종 무열왕, 문무대왕, 추존 흥무대왕인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셨다. 남산 자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통일전은 소나무와 연못이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통일전 바로 옆에는 청소년 정신 교육과 심신 수련장인 화랑교육원이 있어 상호 보완하여 현대의 신화랑을 배출하는 요람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야간 개방한 화랑정과 주변 연지의 야경은 경주시민과 관광객의 힐링 코스로 각광받고 있으며, 통일전 앞 직선으로 뻗은 은행나무 단풍길은 대한민국의 100대 아름다운 길로 선정될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신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제44회 통일서원제’가 2022년 10월 13일 경주 통일전에서 열렸다. 통일서원제는 신라가 매초성 전투에서 당나라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날인 10월 7일에 즈음하여 매년 개최하고 있다. 한반도 최초 신라가 이룩한 삼국통일의 위업을 토대로 평화번영의 염원을 기원하며 1979년 첫 서원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주낙영 경주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경북도의원과 경주시의원, 각 기관단체장 및 사회단체, 학생과 시민 등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라고취대의 식전공연, 헌화와 분향, 통일 서원문 및 통일결의문 낭독, 도립무용단의 ‘화랑’ 갈라 공연, 초등학생들의 통일결의문 낭독,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제창, ‘통일염원 한마음 퍼포먼스’ 순으로 진행됐다. 2. 통일전 운영 경상북도가 신라 삼국통일 정신을 기리고자 건립한 경주 통일전을 직접 운영하기로 2022년 10월 3일 결정했다. 통일전 은행나무길, 경북산림환경연구소 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한 명소로 만들고 지역의 주요 호국시설로 재단장하기로 하였다. 경북도는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데다 활용도가 떨어진 통일전 운영과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2023년부터 경주시로부터 관리권을 넘겨받았다. 경북도는 통일전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2022년 9월 30일 경주시-경북독립운동기념관과 상호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2023년부터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통일전을 맡아 운영하도록 했다. 통일전은 1977년 박정희 대통령 때 신라 삼국통일 유적지 조성계획에 따라 한반도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뜻으로 짓고서 1987년부터 경주시가 도에서 관리권을 받아 36년간 운영해왔다. 초기에는 국가 차원의 관람 유도로 학생과 일반인 관람, 참배가 많았으나 현재는 예전만큼 관심이 이어지지 않고 활용도도 떨어진 상태다. 경북도는 그간 운용하던 관람 콘텐츠만으로는 통일전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장기적 발전계획 마련에 나서기로 하였다. 학술 연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속 가능한 활성화 계획을 세워 국가적 차원에서 통일 정신을 계승하는 주요 호국 시설로 혁신할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3. 통일전 기록화 17점 사천왕사 호국불사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작품 규격 100호 230cm×150cm, 1977년), 황룡사 9층 탑 조영도(작가 오원배, 인천, 작품 규격 100호, 1987), 남산 신성 축성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작품 규격 100호, 1979),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100호, 작품 규격 100호, 1977), 김유신 장군 단석산 수련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작품 규격 100호, 1977), 김유신 장군 출전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작품 규격 100호, 1977). 무열왕 남천정 출전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작품 규격 100호, 1977), 황산벌 혈전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100호, 1977). 화랑 관창 용전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100호, 1977). 평양성 함락도(작가 오원배, 인천, 100호, 1987), 원효 군사 자문도(작가 박비오, 대구, 100호, 1987), 원광법사 세속오계 교화도(작가 정창섭, 충북 청주, 200호, 330cm×190cm, 1979), 강수 외교문서 작성도(작가 박비오, 대구, 작품 규격 100호, 1987). 매초성 당군 격멸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작품 규격 100호 230cm×150cm, 1977), 기벌포 대첩도(작가 오승우, 전남 화순, 작품 규격 100호 230cm×150cm, 1979), 삼국통일 영광도(작가 김태, 경기 파주, 작품 규격 500호 630cm×200cm, 1979년). 문무왕 호국 해룡도(작가 정창섭, 충북 청주, 작품 규격 200호 330cm×190cm, 1979) 등 17점의 기록화가 전시돼 있다. 17점의 삼국통일 기록화 중 오승우 화백의 작품이 10점으로 가장 많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과 직접 관련된 작품은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도, 김유신 장군 단석산 수련도, 김유신 장군 출전도, 황산벌 혈전도, 화랑 관창 용전도 등이다. 4. 김유신 장군 출전도와 원효 군사 자문도 기록화 중 김유신 장군 출전도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3년(644년)에 김유신은 소판(蘇判)이 되었고, 그 해 9월에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 고령), 성열성(省熱城 : 의령), 동화성(同火城 : 구미) 등 일곱 성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그다음 해 정월에 돌아왔으나, 아직 왕을 배알하기도 전에 백제의 대군이 신라의 매리포성(買利浦城)을 침공한다는 급보를 받고, 왕은 또 김유신을 상장군으로 삼아 이를 막으라고 명령하였다. 김유신은 왕명을 받고 처자도 만나보지 못한 채 출정하여 백제군을 쳐 이를 패주시키고 2,000명을 베어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그해 3월에 왕의 귀환하라는 명령이 내렸으나, 김유신이 집으로 가기도 전에 또다시 백제의 군사들이 그 국경에 나와 주둔하고, 장차 군사를 일으켜 신라로 쳐들어오려 한다고 급히 알리자, 왕은 다시 김유신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공은 수고롭겠으나 빨리 나가서 적들이 전비를 갖추기 전에 이를 방비하라.” 하므로, 김유신은 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곧 군사를 훈련하고 병기구를 수선한 다음, 서쪽으로 백제를 막으러 나갔다. 이때 집사람들은 모두 문밖으로 나와서 장군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런데 김유신은 문 앞을 지나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가다가 50걸음쯤 되는 곳에 이르러서 말을 멈추고, 종자에게 집에 가서 물을 떠오라 명령하여 물을 마셔 보고 말하기를 “우리 집 물맛이 아직도 옛날 그대로구나!” 하고 그냥 길을 떠나니, 이를 보는 모든 군사들이 말하기를 “대장군도 이와 같은데, 우리들이야 어찌 골육의 가족들과 이별함을 한탄하리요.” 하며 싸움터로 나갔다고 한다. 기록화 중 ‘원효(元曉) 군사(軍事) 자문도(諮問圖)’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무왕 2년(662년) 2월에 신라의 장군 김유신 등이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평양을 포위하고 당군에게 군량을 수송하고 돌아왔다. 그 후 신라에서는 당군과 합세하기 위해 김유신은 연기(然起), 병천(兵川) 등을 보내어 화합할 기일을 물었다. 이때 당의 소정방(蘇定方)은 난새(鸞 : 난새 란)와 송아지(犢 : 송아지 독)를 그려 보냈으나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원효법사(元曉法師)에게 물었다. 원효는 “군사를 급히 돌이키라는 뜻” 이라고 그 암호를 해독했다. 이에 김유신은 모든 군사를 패강(浿江)을 건너게 한 결과 고구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이처럼 원효대사가 군사 자문에 응하는 등 신라의 삼국통일에 미친 사상적 영향은 지대했다. 5. 통일전 기록화 10점을 그린 오승우 화백 이력 - 1930 6월19일 전남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서 부친 화가 오지호와 모친 지양진의 차남으로 출생 - 1950(20세) 조선대학교 국문과 입학 - 1952-54 군복무 - 1955(25세) 제4회 국전<풍경30호> 입선, 경복궁미술관 - 1957(27세) 제6회 국전<법당 내부 120호> 특선 및 <미륵불120호> 입선, - 조선대학교 예술과 졸업, 광주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부임 - 1958년(28세) 제7회 국전<고찰80호>특선 및 <시장 풍경100호>무감사 - 1959(29세) 제8회 국전<팔상전100호> 특선 및 <마곡사 풍경> 무감사 - 1960(30세) 제9회 국전<금강계단100호> 특선 및 <마곡사 풍경> 무감사 = 1961(31세) 제1회 개인전, <박쥐란> 외 60점 전시, 광주 Y.M.C.A화랑 - 제10회 국전 추천작가로 <신관> 출품, 경복궁미술관 - 1962(32세) 제2회 개인전, <명태>외 30점 전시, 광주 양지다방 - 서울배화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여 서울로 이사 - 1965(35세) 제7회 개인전, <미륵불>외49점 전시, 서울 신문회관 화랑 - 1965-74 경희대, 서라벌예술대, 홍익대, 중앙대 미술과 출강 - 1967(37세) 민족기록화전시회 <용문산의 혈전1000호> 출품, 경복궁미술관 - 월남전기록화전시회에 <구출>외2점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 1974(44세) 제23회 국전 심사위원 역임, 민족기록화전시회(경제편), <포항종합제철 500호> 출품, - 1975 민족기록화전시회(전승편), <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 500호>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 1976(46세) 제25회 국전 심사위원 역임, <계백장군의 황산싸움 500호> 출품 - 1977년(47세) 제26회국전 심사위원 역임, 경주 통일전 벽화 제작, <매초성 당군 격퇴 100호>외 7점 - 1979(49세) 제28회 국전 심사위원 역임 - 1985(55세) 제21회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 1987(57세) 제6회 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 1988(58세) 한국미술협회 고문으로 추대 - 1990(60세) 서울시문화상<미술부문> 수상 - 6회 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 1993(63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 - 1994(64세) 제13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1995(65세)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 1997(67세) 성옥문화대상 수상 - 1998(68세)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 서울시 미술장식심의위원 역임 - 국립현대미술관 운영 자문위원 - 2000(70세)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원광대학교) - 2001(71세) 대한민국예술원 분과위원장 - 2002(72세)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 - 2003(73세) 단원미술대전 심사위원장 - 2011 오승우 화백이 기증한 178점을 바탕으로 ‘무안군 오승우미술관’ 개관 -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사단법인 목우회 고문, 한국미술협회 고문, 환경운동연합중앙회 지도위원, 한중문화협회 상임 고문 - 2023.4.3. 93세로 별세 6. 통일전 주변 명소 통일전 주변에는 경북산림환경연구소와 조성이 끝나가는 지방 정원, 화랑교육원. 은행나무길, 남산, 정강왕릉, 헌강왕릉, 서출지 등 관광 명소가 가까이 있다. 통일전 바로 옆에 신라 정강왕릉이 있으며, 약간 떨어진 곳에 헌강왕릉이 있다. 정강왕은 통일신라의 제50대(재위 886~887년) 왕이다. 성은 김(金), 이름은 황(晃)이다. 할아버지는 희강왕의 아들로서 의공대왕(懿恭大王)으로 추봉된 계명(啓明)이고, 할머니는 광의왕태후(光懿王太后)로 추봉된 광화부인(光和夫人)이다. 아버지는 경문왕이고, 어머니는 헌안왕의 맏딸로 문의왕후(文懿王后)에 봉하여진 영화부인(寧花夫人)이다. 정(晸 : 헌강왕)·만(曼 : 진성여왕)·윤(胤)과 형제간이다. 재위기간이 짧았지만, 재위 동안에 887년(정강왕 2) 정월황룡사(皇龍寺)에서 백좌강경(百座講經)을 설치하였고, 이찬(伊飡) 김요(金蕘)가 한주(漢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보내어 토벌하였다. 5월에 병이 들어 시중 준흥(俊興)에게 병이 위급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아들이 없으므로 누이 만(曼)으로 왕위를 잇게 하라고 부탁하고, 7월 5일에 죽었다. 보리사(菩提寺) 동남에 묻혔다. 헌강왕은 통일신라 제49대(재위 875∼886) 왕이다. 헌강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 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사기』권 11, 「신라본기」 11 헌강왕 6년 9월 9일(880년) 조에 의하면 왕이 좌우의 신하들과 함께 월상루(月上樓)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서울 백성의 집들이 서로 이어져 있고 노래와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왕이 시중(侍中) 민공(敏恭)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지금 민간에서는 기와로 덮고 짚으로 잇지 않으며, 숯으로 밥을 짓고 나무를 쓰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인가?”라고 물었다. 민공이 “신(臣)도 역시 일찍이 그와 같이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아뢰기를, “임금께서 즉위하신 이래 음양(陰陽)이 조화롭고 비와 바람이 순조로워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고 변경(邊境)은 평온하여 민간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덕(聖德)의 소치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경(卿)들이 도와준 결과이지 짐이 무슨 덕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헌강왕릉은 높이 4.2m, 지름 15.3m의 둥근형태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밑둘레에 돌을 4단으로 쌓았다. 일찍이 도굴되었으며 비에 의한 피해로 긴급조사를 하였다. 관이 놓여 있는 방은 네모 형태로 천장은 둥글게 모아져 있는 활천장(궁륭상천장)이고, 이 방과 연결된 통로인 널길(연도)은 동쪽에 있어 전체적으로 ‘ㄱ’자형이다. 여기서 꽃무늬 토기도 나왔다. 경주 남산 기슭에 위치한 통일전 가까운 곳에 서출지라는 신라시대 연못이 있다. 남산 마을 한가운데에 삼층석탑 두 기가 있고 동쪽에 아담한 연못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하니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궁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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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태작곡가의 당신이수태작곡가의 당신 작사, 작곡 노래= 이수태 작곡가 가이드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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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오늘의뉴스 양산숲길보전회 경주 황성공원 황토 흙길 답사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답사 진행 양산숲길보전회에서 경주 황성공원에 있는 황토 흙길을 맨발로 걷기 위해 지난 9월 24일에 답사하였다. 양산종합운동장에 8시 30분에 집결하여 경주로 출발하였다. 김광민 부회장에 의하면 양산시 국민의힘 을지구 한옥문 위원장이 회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운동장에 오려고 했는데, 출발시간을 9시로 잘못 알아서 만나지 못했다. 참석자는 심상도 회장, 김상근 부회장, 김광민 부회장 외 1명, 조상현 사무국장, 이기천 이사, 이은정 이사, 김동철, 유현숙, 김미향, 변종길, 양은자, 서정희, 신국환, 박태규 총 15명, 차량 지원은 심상도, 김광민, 김동철, 찬조는 김상근 부회장 5만 원, 김광민 부회장 10만 원, 감사드린다. 답사를 마치고 귀가길에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에 있는 카페 무타블랑에 들렀다. 카페는 소나무 숲, 억새, 핑크뮬리, 분수대, 산책로, 야외 테이블, 포토존으로 잘 꾸며져 있어 산책하면서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하고 기념 사진 찍기 좋은 곳이었다. 커피 15잔 96,000원, 빵 36,300원 지출하여 잔액 17,700원은 양산숲길보전회 통장에 입금 처리하였다. 이번 답사에 회비는 걷지 않고 조상현 사무국장이 갈비찜, 김밥, 김치, 포도주, 제로 콜라를 협찬하는 대단한 정성으로 회원들이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노고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심상도 회장 막걸리 두 병, 이기천 이사 생수와 과일, 김미향 회원 부침개. 양은자 회원 커피와 과일, 서정희 회원 과일과 커피 등을 협찬하여 황성공원에서 가을 소풍 분위기로 답사를 진행하여 회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협찬해준 모든 회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 황성공원 천년 맨발길 황성공원(皇城公園)은 경북 경주시에 있는 공원 및 스포츠 시설 단지이다. 경주시민운동장, 경주축구공원, 경주실내체육관 등의 스포츠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숲으로 조성된 공원이 갖춰져 있다. 경주시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린다. 소나무 숲 사이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 산책로, 황토흙길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30여 종류의 운동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황성공원 주소는 경주시 황성동 산1-1번지, 공원 최초 지정 1967년 6월 15일, 면적 895,373㎡, 황성숲 현황은 면저 335,513㎡, 수목 59종 13,705본, 관리청은 경주시 도시공원과이다. 박혁거세 동상, 6.25참 전, 월남전 참전 명예선양비, 충혼탑,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최시형 선생 동상, 임란의사 추모비, 박무의(朴武毅) 공(公) 비(碑), 아이사랑 책놀이터, 어린이 교통 안전교육장, 문화예술회관 등이 있다. 주변에 있는 서천과 북천 둔치에 조깅코스와,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약 10km의 산책로가 있다. 씨름장, 게이트볼장, 축구장, 축구공원, 농구장이 있다. 대표적인 시설물로 경주시민운동장, 경주실내체육관, 경주시립도서관, 국궁의 궁도장 호림정이 있다. 경주시립도서관 앞에는 마을문고 창시자이자 초대 경주시립도서관장을 지낸 간송 엄대섭 선생의 기념비가 있다. 경주 출신인 시인 박목월의 얼룩 송아지 시비(詩碑), 서영수 시인의 낮달 시비, 동리 김시종 선생 문학동산, 복양 오세재 선생의 문학비, 이경록 시비, 이임수 시인의 풍경소리 시비, 신라천년 향가비문, 나지막한 높이의 동산 위에 높이 16m의 김유신 장군 동상도 있다. 회원들은 평지의 숲길에서 계단으로 올라가 동상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경주시내도 내려다 보며 구경하였다. 소나무 밑의 산책로에는 맥문동이 있어 8월에 가면 아름다운 보라색 맥문동 꽃을 볼 수 있다. 이번 답사에서는 꽃이 다 져서 볼 수 없었다. 지난 8월 23일 사전 답사했을 때 맥문동 꽃을 찍은 것이 있어 이번 사진에 소개하였다. 소나무 숲속에 도토리나무도 섞여 있어 굵은 도토리가 떨어져 있어 줍는 사람들이 보였다. 공원 안에는 도토리 무단 채취시 5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이 보였다. 황성공원의 황토흙길의 정식 명칭은 ‘황성공원 천년 맨발길’이었다. 경주시는 사업비 1억 4천만 원을 들여 황성공원 내에 폭 1.5m, 길이 445m의 황토길을 추가로 조성했다. 천년고도 경북 경주의 도심숲이자 시민들이 즐겨 찾는 황성공원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맨발 걷기 공간으로 거듭났다. 황성공원 내 황토길 조성사업은 최근 건강걷기에 대한 관심과 맨발길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추진한 사업이다. 경주시는 지난 2021년 폭 1.5m, 길이 320m의 맨발 걷기 길을 만들어, 공원 내 맨발 걷기 길은 모두 765m로 늘어났다. 두 배 이상 길어진 맨발 황토길 소식에 황성공원에는 많은 시민들이 찾아 맨발로 걸으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황토길 인근에 심어진 맥문동 꽃은 시민들의 만족도를 더욱 높여주고 있으며, 전국의 사진 동호인들도 사진 찍으러 많이 몰려온다. 경주시는 연말까지 맨발 걷기 길을 밝혀줄 야간조명도 추가로 설치해 일몰 후에도 이용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3. 황성공원 신라 천년 향가 안내문 한국문학의 뿌리인 신라 천년 향가 15수 안내문이 있다. 도솔가, 도천수대비가, 모죽지랑가, 서동요, 안민가, 우적가, 원가, 원왕생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처용가, 풍랑가, 풍요, 헌화가, 혜성가. 과거 고등학교 시절에 누구나 국어과목 고전 시간에 향가 해석에 관해 공부한 적이 있을 것이다. 향가 해석은 매우 난해하여 국문학자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속 시원하게 해석하지 못하여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양주동 박사가 향가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고귀한 조상의 시가를 해독조차 못하는 아주 못난 후손이 되었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권위자인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澤庄三郞, 1918. 4) 박사,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923. 9) 박사, 소창진평(小倉進平, 오구라 신페이, 1929. 9) 박사 등을 뛰어넘는 한 차원 높은 학문 세계를 열어 우리의 학문 발전은 물론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신라 향가(鄕歌) 해독(解讀)·주석서(註釋書)인 『조선 고가연구』 이 책은 한국 학자에 의해 이루어진 최초의 방대한 향가연구 저서로, 향가 연구의 집대성이다. 1929년 일인(日人) 학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경성제국대학 간행)를 낸 지 12년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최초의 해독가인 오쿠라 교수의 연구보다 훨씬 보정(補整)의 진경(進境)을 보인 명저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유사』에 실린 14편과 『균여전』에 실린 11편 등 현존하는 25편의 신라 향가를 해독·주석하고 있는 이 책의 특징은, 15세기까지의 한국어의 문헌조사를 철저히 한 점, 또 인명·지명·관직명의 풀이를 새롭게 한 점, 시가(詩歌)를 시가답게 풀이한 점에 있다. 이 저서의 출간에 의해 향가의 시가로서의 면모가 어느 정도 명료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뒤 향가의 어학적 연구의 진전은 물론, 이 책을 토대로 하거나 선행조건으로 하여 점차적으로 향가의 문학적인 해석과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학계에 대한 기여는 실로 큰 것이다. 어렸을 적 한학을 공부하고 향가를 수십 년간 연구해온 김영회 씨는 2019년 1월 31일 출간한 향가 이론서 『천년 향가의 비밀』을 통해 새로운 향가 해석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소리’로 풀던 향가 속 한자를 ‘의미’로 풀어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고 하며, 자신의 이론이 맞다면 지난 100년간 해독한 신라 향가는 전량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찾은 해독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100년 동안 향가는 두 가지 열쇠로 해석되어왔다. 전체적으로는 ‘소리’로 풀고 나머지는 보조적으로 한자의 ‘의미’로 푸는 방식이다. 저자는 2년 전 향가 ‘원왕생가’의 의미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향가 해독법 여덟 가지를 찾아냈다고 한다. 신라 문무왕 당시 원효스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기록해놓은 향가 해독법 17자를 기초로 한 해독법이다. 오쿠라 교수 이래 학계 주장과 달리 신라인 해석법은 기본적으로 한자의 ‘의미’를 우리말 어순으로 기록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꾸짖을 질(叱)’자는 그동안 신라시대 ‘옛날 사람들의 소리’로 표기했지만 저자는 ‘향가 작자가 자신의 감정을 초자연적 현상에 알려 원하는 것을 이뤄지게 해달라는 기능적 의미’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향가 해독 역사가 100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향가 25수, 170여 개 어구 중 102구는 아직껏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향가 연구 권위자인 김완진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도 “앞으로 향가가 완독되려면 적어도 5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나의 향가해독법으로 책 2장 중 두 번째인 ‘안민가’ 등을 비롯해 난독구라 불리는 미해독구 102구를 모두 해독했다”며 “막히지도 않았고 직역으로 정확히 해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해독법을 계기로 학계가 향가 해석에 대한 검증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4. 황토흙길 원조 계족산 황토길 조웅래 회장이 대전·충남 지역의 소주 회사 선양을 인수해 경영한 지 1년 반쯤 지난 2006년 4월 일이다. 동창생들이 대전으로 찾아와 근처 계족산(鷄足山)으로 나들이를 갔다. 그런데 일행 중 여성 한 명이 하이힐을 신고 있어 산행이 힘겨웠다. 기사도(騎士道)를 발휘해 내 운동화를 벗어주고, 나는 양말만 신고 산에 올랐다(조선일보). 산 중턱 임도(林道)가 돌길이었는데, 발이 좀 아팠지만 걸을 만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발끝은 물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묘한 느낌이 들었고, 오랜만에 푹 잤다. 돌길을 맨발로 걸었더니 발바닥 지압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그날 이후 매일 계족산을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맨발 산행 효과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돌밭 위를 걷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생각에 길에 황토를 깔기로 했다. 2006년 가을부터 작업을 시작해 계족산에 14.5㎞ 길이 황톳길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말랑말랑하고 푹신한 느낌이 드는 황토를 공수해 깔았다. 처음에 덤프트럭 100대 분량 황토를 쏟아부었고, 비가 오면 휩쓸려 나가는 황토를 수시로 보충하고 관리했다. 난 계족산에 손바닥만큼도 땅이 없지만, 지금까지 황톳길에 60억 원 정도를 쏟아부었다. 처음엔 회사 안팎의 반대가 심했다. '회사 홍보라도 되게 공짜 술을 돌리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맨발 걷기로 건강과 치유의 기쁨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이 당장 시장점유율 1%포인트 올리는 것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 고집을 꺾지 않았다. 2006년부터 계족산에서 맨발 마라톤 대회와 맨발 걷기 대회를 열었고, 2007년부터 주말이면 황톳길 숲 속에서 ‘뻔뻔(fun fun)’한 클래식 공연을 열고 있다. 이제 계족산 황톳길은 매주 전국에서 4만~5만명이 방문하는 맨발로 걷기 명소(名所)가 됐다. 황톳길을 매개로 한 꾸준한 사회 공헌 활동 덕분에 2013년 더맥키스컴퍼니로 이름을 바꾼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크게 늘었다. 5. 인기 황토 흙길 영광군 ‘물무산 행복숲 맨발 황톳길’ 전남 영광군 묘량면 덕흥리 615 ‘물무산 행복숲 맨발 황톳길’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10분 이내 거리인 이 길은 물무산 동쪽 묘량면에서 시작해 2Km 정도 이어진다. 처음 600m는 질퍽질퍽한 황톳길로, 나머지 1.4Km는 마른 황톳길로 조성하여 왕복 4Km 10리 길이다. 여유있게 걸어도 1시간 반이면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이다. 지난 2018년 영광군이 군민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 지금도 직접 관리하고 있다. 평일에는 400~500여 명이 방문하고 주말에는 1,800~2,000여 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타지역의 대부분 산속 걷기 길이 마사토, 부엽토, 모레, 자갈이 섞여 있는 것과는 달리 물무산 황톳길은 전구간에 고운 황토를 다져놓아 그 촉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전라남도가 전남을 돌아보는 여행프로그램으로 기획한 ‘남도한바퀴’의 영광군 첫 번째 방문지로 선택할 만큼 유명해진 이곳은 매일 전국의 등산객과 맨발족이 찾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6. 울산지역 황토 흙길 조성 울산 시민들에게 '맨발걷기'가 인기를 얻으면서 울산시가 태화강국가정원에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을 조성한다. 울산시는 2023년 9월 6일 태화강 국가정원 내 맨발 걷기 인구 증가에 따른 수요에 부응하고 방문객들에게 다향한 체험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황톳길을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울산신문). 태화지구(중구) 내에는 태화강국가정원 안내센터에서 나비정원까지 연장 1km, 폭 2m로 십리대숲과 연계한 황톳길을 조성하며 양쪽 끝에는 세족장 등 편의시설을 설치한다. 삼호지구(남구)는 보라정원, 숲속정원을 연결해 기존 운영중인 맨발걷기 좋은 길을 추가로 조성하고 세족장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황톳길은 총사업비 3억 8천만 원을 투입하여 연내 조성 완료할 예정으로 현재 실시설계 중이다. 울산시에서 황톳길 맨발걷기 열풍은 중구 황방산에서 시작됐다. 황방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황톳길인데 등산객들이 맨발로 걸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중구에서는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입구에 신발장, 주차장을 설치하고 맨발 등산로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최근 ‘황방산 맨발 등산로 활성화 방안 용역’을 발주해 황톳길의 훼손을 막고 편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황방산에 이어 입화산에도 맨발 등산로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울산광역시의 다른 구와 울주군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울산시 남구는 지난달 태화강 둔치 그라스 정원 입구에서 번영교 하부까지 약 1km 구간을 '태화강 황토 맨발길'로 만들었다. 이용객이 증가하자 폭이 좁다는 여론도 있다. 남구는 태화강 황토 맨발 길의 길이를 100m 늘리고 폭도 기존 1~1.5m에서 2~2.5m로 확장하고자 한다. 울산시 동구도 남목 옥류천 일대에 맨발 등산로 조성을 추진하면서 예산을 확보하고 설계를 마쳤는데 일부 구간에 사유지가 있어 지주들의 사전 동의를 구하고 있다. ‘전하동 늘푸른아파트~염포산 철탑삼거리’ 구간 맨발 산책로 연장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관련 예산을 2회 추경에 반영했다. 7. 경기도 성남시 맨발 황토길 조성 경기도 성남시는 최근 공원에 ‘100세 건강 맨발 황톳길’ 6곳을 조성해 2023년 9월 말까지 차례로 개장. 수진, 대원, 위례, 중앙, 율동공원과 구미동 공공공지에 조성하는데 총사업비가 34억 5천 백만 원. - 2023년 7월 개장 ① 대원공원(하대원동) : 길이 400m, 폭 1.5m, 기존 산책로 나무숲 그늘 밑에 황토를 20cm 두께로 깔았음 ② 수진공원(수진동) : 길이 525m, 폭 1.5m - 2023년 8월 개장 ③ 위례공원(창곡동) : 길이 500m, 폭 1.5m ④ 중앙공원(수내동) : 일부 구간 길이 500m - 2023년 9월 개장 ⑤ 중앙공원(수내동) : 전구간 길이 1,200m, 폭 1.2m ⑥ 율동공원(율동) : 길이 1,000m, 폭 1.5m ⑦ 구미동 공공녹지(탄천변 녹지대, 구미동 79) : 길이 450m, 폭 1.5m 8. 전국의 맨발 황토길 조성 붐과 맨발걷기 효과 맨발 걷기 열풍의 시작은 어씽(earthing)이다. 창시자는 미국인 클린턴 오버(Clinton Ober)다. 맨발로 땅을 밟고 걷는 것에 인체를 회복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여겼다. 의사도 가망 없다던 병을 오직 땅과의 접촉만으로 치유했다. 10여 년의 체험을 통해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미국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만들어 맨발걷기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전북 전주시의회는 2월 ‘전주시 도시공원 맨발걷기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서울시, 인천시, 경기 화성시 용인시, 전북 남원시 장수군, 광주시 서구 등도 비슷한 조례를 발의해 통과시켰거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국회에서도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맨발걷기 활성화를 위해 대표 발의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심사를 받고 있다. - 맨발걷기 효과 ① 접지 효과(Earthing) : 항산화 효과, 혈액 희석 효과, ATP(에너지대사의 핵심물질인 아데노신삼인산)생성 촉진 효과, 천연의 신경안정 효과, 염증과 통증의 완화, 면역게의 정상작동 효과 ② 지압 효과 : 혈액순환 촉진, 면역체계 강화 ③ 혈액 펌핑 효과 : 혈류촉진 ④ 스프링 효과 : 근골격계 통증해소 ⑤ 발바닥 아치와 발가락 꺾쇠 효과 ⑥ 발가락 부챗살 효과 ⑦ 근골격계 질환 해소 9. 양산시 맨발 길 조성 양산시는 최근 사업 부서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대상으로 ‘맨발 길 사업 대상지’ 신청을 받은 결과 모두 18곳이 신청했다. 시는 개인 소유지 3곳 등 6곳을 제외한 12곳을 4단계로 나눠 맨발 길 조성에 들어간다(부산일보, 2023.9.24). 양산시는 2024년 상반기 중에 낙동강 수변공원인 황산공원과 디자인공원, 웅상체육공원, 양주누리길 등 4곳에 맨발 길을 만들기로 하고 내년도 당초 예산에 관련 사업을 반영하기로 했다. 시는 2024년에 실시설계를 거쳐 공사에 들어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완공할 예정이다. 황산공원에는 강변 산책로를 따라 너비 6m 총연장 3.2km 규모의 맨발 길이 만들어진다. 맨발 길에는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은 물론 각종 휴게·편의시설이 설치된다. 사업비는 5억 원. 디자인공원에는 너비 3m 길이 500m의 맨발 길이 조성된다. 이곳에도 세족장과 휴게·편의시설이 들어선다. 사업비는 3억 원. 양주누리길은 기존에 조성된 너비 1.5m 길이 275m 규모의 맨발 길을 너비 3m 길이 300m로 확장하고 세족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설치된다. 시는 또 기존에 조성한 양산천 맨발 길에 마사와 황토를 보충하는 등 재정비도 추진한다. 2024년 하반기 2단계로 북정동 새롬성원아파트 뒤편(길이 300m)과 회야강 산책로 백동 1교~회야강 자전거교(너비 1.5m 길이 400m), 거북산 일대 (너비 1.2m 길이 1.7km), 덕계동 회야강변 산책로(너비 1.8m 길이 200m)에 각각 맨발 길 조성에 나선다. 양산시는 3·4단계로 양산워터파크 내 잔디밭(너비 1.5m 길이 100m)과 상북정 도시숲공원(길이 200m), 상북면 소토리 양산천변(너비 1.8m 길이 400m), 원동면 천태로 주변 (너비 2~3m 길이 2.2km)에도 맨발 길을 만들 예정이다. 황토길 조성할 때 유의할 점은 비가 올 때 황토 흙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경주 황성공원처럼 나무가 많은 평지 숲길에 조성하는 것이 관리하기에 좋다. 야간 이용을 고려하여 조명도 설치해야 한다. 일부 구간에는 습기가 있는 질퍽한 황토 길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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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과학기술대학교,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사업 “노인간병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 수료식동원과학기술대학교(총장 손영우)는 23일 동원관 플립러닝실에서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사업 23학년도 평생직업교육 프로그램 “노인돌봄생활지원사 자격과정”과 “노인치매관리사 기본과정”의 수료식을 진행하였다. 이번 교육과정은 양산시민 40명을 대상으로 노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노인돌봄의 제공방법, 노인복지 및 건강증진, 인지활동을 통한 트레이닝법, 노인의 스트레스 해소 및 사회참여 소통법, 치매의 조기진단 관리 뿐 아니라 예방교육 등을 진행하였다. 다수의 교육생이 노인돌봄생활지원사, 뇌인지활용지도사 민간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장인성 부총장은 우리나라가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프로그램 지도사 활동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교육생 대표는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사업의 지원에 감사드리며 교육을 통해서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원동력이 생겼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동원과학기술대학교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사업 평생직업교육과정은 지역 특화분야 프로그램, 일반분야 프로그램, 지역사회 공헌 자율과제 프로그램 등이 진행 중에 있으며, 24학년도에는 지역 특화분야 학과인 스마트기계전자과, 산업안전관리과, 보건복지과, 에이블자립과가 신설되어 운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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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시설관리공단, 제1회 김천 전국 마스터스 수영대회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 획득- 수영지도사등으로 구성된 동호회 Boost, 전국대회 출전하여 실력 뽐내 -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박성관) 체육센터 수영지도자들이 주축으로 운영하는 수영 동호회팀 ‘Boost’가(이하 ‘부스트’) 지난 23~24일 양일간 개최된 경상북도 수영연맹이 주관하고 (사)대한수영연맹에서 주최하는 ‘제1회 김천 전국 마스터즈 수영대회’에 출전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번 대회 경영부분에 ‘부스트’ 7명의 선수(최두호, 정재룡, 김형관, 강설아, 박이룸, 조진호, 이여진)가 출전하여 금메달 3개(여자 자유형 50m, 100m, 여자 배영 50m), 동메달 1개(남자 개인혼영 200m)를 수확하였으며, 특히 양산시국민체육센터 수영지도사로 근무하고 있는 강설아 선수는 대회 2관왕에 올라 기쁨을 더했다. ‘부스트’감독 겸 선수인 정재룡 지도사는 “앞으로도 양산시민의 건강한 신체활동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적극적인 대회참여를 통해 전문역량 강화에 앞장서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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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경주 화랑교육원 1. 화랑교육원 현황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 장군의 업적을 연구하기 위하여 경주 화랑교육원을 답사하였다. 화랑교육원은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던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길렀던 수련의 도장인 경주의 남산 동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경상북도교육청 직속 기관이며, 1973년 5월 전국 최초의 학생 교육원으로 개원하였다. 신라 시대 화랑의 얼을 계승하여 투철한 국가관을 확립하고 바른 품성과 인격을 함양하기 위하여 중고생 수련 교육, 재외교포 학생 교육, 사관생도 교육, 일반 대학생 교육, 교원 연수교육, 공무원 교육 등을 담당해 왔다. 화랑의 얼을 가슴에 담아 조국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과 협동하는 새 화랑 정신을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교육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남산자락에서 1973년 전국 최초의 학생 교육원으로 개원한 이래 2022년 12월 말까지 411,920명의 수련생을 배출한 인성교육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화랑교육원은 자아 존중, 이웃사랑, 충효 실천의 원훈(院訓) 아래 참다운 미래 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의 화랑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양질의 수련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주요시설은 화랑관, 남산정사, 국선당, 생활실, 강당, 식당, 금오정사, 화백당(안전체험관 : 안전체험실, 생명존중실, 탈출체험장), 화랑정, 육덕정(씨름장), 운동장(잔디구장, 그네뛰기장, 널뛰기장), 청심지(수련 연못) 등이 있다. 화랑도 세속오계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는 뜻의 ‘사군이충(事君以忠)’,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긴다는 뜻의 ‘사친이효(事親以孝)’, 믿음으로써 벗을 사귄다는 뜻의 ‘교우이신(交友以信)’, 싸움에 임할 때에는 물러남이 없다는 뜻의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아 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다는 뜻의 ‘살생유택(殺生有擇) 화랑교육원의 신화랑 정신 - 충(忠) 나라 사랑, 효(孝) 부모 공경, 신(信) 믿음과 나눔, 용(勇) 무한도전, 인(仁) 생명 존중, - 공동체가 되어 노래와 춤으로 남산을 다니며 심신을 수련한다. 2. 화랑교육원 수련활동의 교육 기본방향 ① 교육 시책 미래지도자 역량교육, 꿈과 끼를 키우는 감성교육, 교육 수요자 중심 맞춤형 교육, 협력과 상생의 교육공동체 구축 ② 교육과정 새화랑 정신 Ⅰ, 새화랑 정신 Ⅱ, 화랑 호연지기 체험(1일형), 화랑 호연지기 체험(2일형), 화랑 호연지기 체험(3일형), 교육가족 화랑 풍류체험, 화랑 심성 교육과정, 화랑 안전 체험과정, 화랑 국궁체험 ③ 특색사업 가족 힐링, 따뜻한 가족 캠프 경주 화랑교육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주 발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설되었다. 개원 초기에는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 간부를 뽑아 교육 수련 과정을 운영하였다. 이후 전국 다른 지역의 시도 교육청에서 학생 교육원을 설립하면서 현재는 경상북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미래 지도자 리더십 집중 과정인 ‘새 화랑 과정’과 인성 함양과 공동체 의식에 집중하는 ‘화랑 호연지기 과정’, 안전사고 대처 능력 배양을 위한 ‘화랑 안전 체험 과정’,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가족 화랑 풍류 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다. 화랑교육원은 화랑의 얼을 계승해 따뜻한 품성과 꿈을 지닌 미래 지도자 새 화랑을 육성한다는 교육지표 아래 그동안 코로나19로 하지 못했던 다양한 교육 수련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새화랑과정은 경북도내 고등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화랑의 얼과 기상을 계승한 호연지기 함양,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쾌적한 자연 환경에서 심미적 감성역량 강화, 단체 활동을 통한 협동심과 공동체의식 및 민주적 시민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수련 희망 학교의 신청을 받아서 진행하는 과정이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2박 3일 동안 레크댄스, 국궁, 윷놀이 등 새화랑 공동체 놀이와 화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경주 남산 현장학습, 어울마당, 다짐 의식, 충·효 실천 십계명 작성, 소통과 힐링 타임, 안전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화랑의 얼이 서려 있는 화랑교육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함으로써 화랑정신을 계승한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하고 교우와 사제간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 바람직한 학교생활을 영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3. 화랑교육원 프로그램 예시 화랑교육원에서 지난 6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 3일간 경북도내 각 중학교 학생회 임원(여학생)을 대상으로 ‘새화랑과정 2기’ 수련활동을 진행했는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새화랑과정 2기 수련은 여학생의 감성적이고 섬세한 강점을 살려 케이팝을 담은 한국무용,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클래식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와 화랑의 얼을 담은 수련 프로그램으로 수련생과 지역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첫째 날 ‘만남의 날’에는 ‘화랑의 풍류와 마주하다’ 슬로건 아래 각기 다른 학교에서 모인 학생대표들이 하나가 돼 ‘모둠북 연주’와 ‘국궁 체험’을 실시했다. 또 경주지역에서 수준 높은 공연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는 리틀예인무용단의 고선옥 단장을 초빙 ‘케이팝을 담은 한국무용’을 진행했으며, 저녁 시간에는 월정교, 계림숲, 첨성대에서 ‘화랑 퍼레이드’를 진행하며 신라의 역사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 ‘화합의 날’에는 신라시대의 문인이 된 듯 각자의 생활실에 앉아 신라 역사를 소재로 한 시를 친구들과 함께 쓰는 시간을 가졌다. 비발디 연구소 이창현 소장의 리더십 강의와 경주국립박물관, 동궁과 월지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저녁 시간에는 화랑교육원 야외 특설무대에서 ‘아리랑 랩소디’ 연주를 시작으로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과 바리톤 김형준, 소프라노 강은구를 초대해 수련생과 지역주민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 큰 호응을 얻었다. 수련 마지막 ‘결실의 날’에는 수련 기간 동안 배운 한국무용을 바탕으로 ‘케이팝을 담은 한국무용 발표회’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사명 서약서’ 작성을 끝으로 수련 활동을 마무리했다. 경주 화랑교육원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실천하고 기후 위기, 환경 재난에 대응하는 힘을 지닌 새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연계한 ‘함께하는 삶’을 실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성장하는 나’, ‘조화로운 우리’, ‘함께 여는 미래’ 경북교육청 지표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연계한 수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탄소중립 생활 실천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화랑교육원은 화랑 공동체, 도전카프라, 사제동행 유적답사, 친구와 함께하는 믿음과 신뢰 프로그램을 현재 운영하고 있다. 체험하고 실천하는 환경교육 강화를 위해 수련 학생 개인 텀블러 사용, 난타 오케스트라(폐품 활용 악기연주), 쓰담 화랑길 걷기(쓰레기를 담으며 유적지 탐방), 탄소중립 실천 다짐 의식, 자원순환 교육(경주 바다 씨 글라스 유리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필자는 김유신 장군의 통일 위업을 되새겨보기 위해 지난 8월 23일 경주 화랑교육원을 답사하면서 둘러보았다. 경주시에 화랑도와 관련된 교육 시설은 화랑교육원과 경주시 석장동에 있는 경주 화랑마을이 있다. 화랑교육원은 현재 경북도교육청 소속으로 경북 도내 학생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경주 화랑마을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글로벌 교육, 관광, 휴양단지로서 경주시에서 운영하는 종합 청소년수련 시설이다. 전시·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화랑전시관, 화백관(교육관), 신라관(생활관) 등 메인 시설과 풍월도전대(짚코스터, 에코어드벤처), 흥무국궁장, 문무야외수영장 등의 체험시설 및 공원시설(수의지폭포, 풍월정), 호국야영장, 관창무예수련장, 사다함공연장, 화랑의 길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두 시설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보면 화랑교육원은 경북도교육청 소속이고, 화랑마을은 경주시 소속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용 주체는 화랑교육원은 경북도내 학생, 화랑마을은 전국의 청소년은 물론 가족, 단체, 기업, 일반인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시설의 규모와 다양성은 화랑마을이 훨씬 뛰어나다. 화랑도에 대한 상세한 예시와 교육은 화랑마을이 잘 되어 있다. 숙박시설 측면에서 볼 때 보문단지에 숙박시설이 많은데, 중복 투자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