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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과학기술대학교 안경광학과, 2023년 국가고시 100% 합격동원과학기술대학교(총장 손영우) 안경광학과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주관한 제36회 안경사 국가시험에서 졸업예정자 전원이 합격했다고 4일 밝혔다. 올해 안경사 국가시험은 전체 1451명의 응시자 중 977명이 합격해 전국 평균 합격률은 67.3%였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안경광학과는 2014~2018년 5년 연속 유일 국가고시에 100% 합격한 데 이어, 2020~2023년 4년 연속 또다시 전원 합격자를 배출하며 전문 안경사 인재 배출의 요람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안경광학과에서는 높은 국시 합격률 비결로 Flipped Learning 등 다양하고 차별화된 혁신교수법 적용, 최첨단 실습실 구축, 평생 지도교수제를 통한 체계적인 학생 관리, DIST-MOOK 메타버스 온라인 수업 활용, 특화된 국시 프로그램 운영 및 성적 하위자를 위한 특강과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등을 꼽았다. FTP(Field Training Program) 프로그램 시행, 채용연계(우대형) 주문식 교육과정 운영 등으로 졸업생들은 안과병원, 안경원, 안경 관련 기업 취업 등 졸업 후 높은 전공 선택률과 매년 안정적인 최상위권 취업률을 달성하고 있으며, 2023년 교육부 고등교육기관 취업률 발표에서도 93.8% 달성이라는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박세영 안경광학과 학과장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산학연계 교육을 제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유능한 안경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경광학과는 정밀하고 과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시력보호 관리에 도움을 주는 유능한 안경사를 양성하는 학과이다. 안경광학을 기초로 안과학과 안경학 등에 관한 전문화된 이론과 임상 능력을 갖춘 전문의료인을 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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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장, 취임 후 경로당 순회방문- 관내 20개 경로당 순회하며 어르신 의견 청취 - 양산시 중앙동행정복지센터(동장 김창준)는 지난 3일과 4일 이틀 동안 지역 내 경로당 20개소를 순회 방문했다. 올해 1월 1일자로 새롭게 부임한 김창준 동장은 경로당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어르신들에게 새해 인사와 함께 덕담을 나누며 훈훈한 정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또 겨울철 대비 경로당 수도 및 난방상태 등 경로당 시설을 점검하며 어르신들의 건의사항 등 의견을 청취했다. 김창준 중앙동장은 “겨울철 건강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잘 지내시는지, 경로당은 따뜻하고 쾌적한지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며 점검 차 방문을 하게 됐다”며 “지속되는 추위와 독감 등 유행으로 겨울철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지만 건강하게 보내실 수 있기를 바라고,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행정복지센터로 연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어르신들은 “바쁜 일정에도 경로당을 방문해 노인들의 건강과 애로사항을 신경써 준 동장에게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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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연 양산시장, 4일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2024년 양산시 시정방향 계획발표나동연 양산시장은 4일 양산비즈니스센터 1층 전시실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2024년 양산시 시정방향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언론인을 비롯해 시민통합위원, 지역 소상공인, 청년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양산시 공식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됐다. 나 시장은 “양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부와 서부, 신도시와 원도심,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것”이라며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시민 누구나 소외받지 않고 양질의 생활·복지·교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겠다”고 강조하며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어진 브리핑에서는 △동서균형 △신구균형 △도농균형 △생활균형 △교육균형 △복지균형 6개 분야를 중심으로 지역 균형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골목상권 활성화 정책, 청년 도약 원스톱 체계 구축, 가든스페이스 등의 핵심과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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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발전 역점 둔 ‘밸런스 양산’ 만든다” 나동연 양산시장, 4일 신년 기자회견 열고 균형발전 계획 발표“균형발전 역점 둔 ‘밸런스 양산’ 만든다” - 나동연 양산시장, 4일 신년 기자회견 열고 균형발전 계획 발표 - - 동서·신구·도농·생활·교육·복지 6개 분야 30개 과제 제시 - - 핵심과제 ‘골목상권 활성화·청년도약 원스톱 체계·가든스페이스’ - “양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부와 서부, 신도시와 원도심,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시민 누구나 소외받지 않고 양질의 생활·복지·교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겠습니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4일 양산비즈니스센터 1층 전시실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2024년 양산시 시정방향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언론인을 비롯해 시민통합위원, 지역 소상공인, 청년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양산시 공식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됐다. 나 시장은 “양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부와 서부, 신도시와 원도심,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것”이라며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시민 누구나 소외받지 않고 양질의 생활·복지·교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겠다”고 강조하며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어진 브리핑에서는 △동서균형 △신구균형 △도농균형 △생활균형 △교육균형 △복지균형 6개 분야를 중심으로 지역 균형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골목상권 활성화 정책, 청년 도약 원스톱 체계 구축, 가든스페이스 등의 핵심과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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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군위군 김유신·소정방·이무 장군을 모신 효령사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효령사 김유신이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이끌고 오는 군사를 마중 나가 기다린 장소가 지금의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라고 한다. 장군리에 진을 친 장수들인 김유신, 이무, 소정방은 모여 앉아 어떻게 하면 백제를 쳐 신라의 승리로 이끌 것인가를 의논했다고 한다. 장군리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었던 의미 있는 장소였다.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 효령사(孝靈祠)는 신라 명장 개국공 태대각간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 신구도대총관 소정방(神丘道大摠管 蘇定方), 대사마 좌위 중랑장 신라연안후 이무(大司馬左衛中郞將 新羅延安侯 李茂) 삼공(三公)을 모신 사당이다. 효령사 제단에는 김유신·소열(정방)·이무 장군 세 사람의 신장(神將)을 적은 위패가 있다. 신라장수 김유신, 당나라장수 소열(정방), 그리고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이무 장군이다. 효령사는 장군당(將軍堂)이라고도 한다. 현지에서는 ‘장군댕’이라고도 불린다. 고려 말엽 이곳 주민들이 옛일을 추모하기 위하여 효령사에 매년 3월 3일에 향사를 지내다가 요즘은 김해 김씨와 연안 이씨 양 문중에서 단오에 향사를 지낸다고 한다. 1881년 이곳 군위현감이 쓴 효령사 중수상량문에는 ‘백제통합 삼한일광(百濟統合 三韓一匡)’이라는 글이 들어 있다. ‘백제를 통합하는 것이 삼한을 바로잡는 시작이 된다.’는 뜻이다. 군위는 지리적으로 삼국시대 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전초기지이자 그 길목에 위치했다. 김유신 장군이 경주에서 출발하여 영천, 신령을 거쳐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 마을에 주둔했다.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 소정방과 합세하여 백제를 치기 위한 작전 계획을 숙의하였다. 금강으로 해서 광주 공주로 진군하는 나당 연합 작전 계획을 장군리에서 하룻밤 유숙하면서 수립하였다. 장군리라는 마을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 제동서원 왼쪽에 효령사로 올라가는 시멘트로 만든 계단이 있다. 계단이 무려 309 계단으로 한참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기 쉽게 일직선이 아니라 방향을 꺾어 구불구불하게 만들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구릉의 정상인 장군봉에 이른다. 일명 장군당 (將軍堂)이라고도 하는 효령사(孝靈祠)의 편액이 걸려 있다. 사당 옆 오른쪽에 효령사 유허비(遺墟碑)가 있다. 효령사 사당의 정문은 잠겨있으며, 현판은 일통문(一統門)이라고 적혀 있다. 일통문은 삼국통일의 주인공인 김유신 장군, 신라를 도와서 삼국통일에 기여한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과 이무 장군을 모신 효령사의 출입문에 어울리는 문구이다. 정문에서 왼쪽 담장으로 돌아가 보니 출입문 나무 사이의 흙벽이 떨어져 있어 수리가 시급하다. 효령사에서 아래 들판을 내려다보니 나뭇가지가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을, 논밭, 농협 하나로마트 등이 보였다. 1363년 전 신라시대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 정벌을 위해 장군리 들판에 진을 친 모습을 상상하며 들판을 내려다보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백제처럼 지도층이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부패하면 나라가 망하고, 신라처럼 왕과 신하, 백성들이 일치단결하면 나라가 부흥한다는 사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실이다. 2. 장군당의 단오 행사 지난 6월 22일 단오에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에서 ‘제5회 군위 삼장군 단오축제’를 개최하였다. 군위삼장군단오축제는 군위문화원이 주관하여 열렸다. 효령면 장군리에 위치한 효령사에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하는 데 협력한 김유신, 소정방, 이무 세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5월 5일에 관민이 모여서 단오제를 올리고 단오놀이를 한 것에 유래한 전통 행사이다. 고려말부터 시작되었는데, 오랜 기간 중단되었다가 근래 다시 부활하였다. 군위군이 대구직할시로 편입되지만 군위 삼장군 단오축제는 전통문화를 살리는 의미에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강릉 단오제에서 김유신 장군이 대관령 산신으로 모셔지는 행사는 수백 년간 이어져 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유신 장군과 인연이 되어 단오제 행사가 열리는 군위군과 강릉시는 상호 자매결연을 맺어 교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단오제는 삼장군 통일로드 행렬을 시작으로 투호 던지기, 제기차기, 창포비누만들기, 목판체험, 장군단오 놀음, 단오 팔씨름대회, 단오가요제 등 다양한 단오놀이와 지역 예술동아리·전문공연팀 공연, 각종 전시행사를 비롯해 단오날 마을에서 신에게 올렸던 공동체 제의를 재현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당나라에 청병(請兵)하고, 당은 원군(援軍)을 파견하였는데, 원군의 대장은 소정방, 부장은 이무였다. 이들이 신라로 오고 있을 무렵, 신라에서는 김유신 장군과 많은 군사를 보내어 마중하게 했다. 김유신 장군은 장군리 넓은 들에서 당군(唐軍)과 만나게 되었다. 나당연합군은 잠시 효령에 군사를 머물게 했으며, 삼장군은 장군봉에 지휘소를 마련하고 백제를 공략할 작전을 수립했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후 삼장군은 다시 효령에 들러 장군봉에 올라 큰 소리로 “삼국통일이 되었으니, 안심하고 살아라.”라고 말한 뒤에 떠났다(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이런 일이 있은 후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삼장군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고려 후기 어느 때부터인지 장군봉 인근에서는 말을 타고 그냥 지나가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장군봉 밑에 하마비(下馬碑)를 세우고, 말을 탄 사람은 반드시 내리게 하였다. 또 장군봉 정상 부근에 접근하는 사람이나 가축이 변을 당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그 까닭을 캐어 보니 삼장군이 삼국을 통일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해주었는데도 백성들이 고마움을 모르고 제사도 올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던 사공씨(司空氏)가 나라에 상소하여 마침내 나라의 명으로 삼장군당을 짓고, 매년 오월 단오에 관민이 합심하여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 삼장군제는 19세기 후반까지 전승되어 왔다. 단옷날이 되면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영신(迎神) 행진을 한다. 현의 우두머리 아전이 말을 탄 채 앞장서고, 울긋불긋한 여러 깃발을 들고 말에 실은 큰 북을 둥둥 치면서 거리거리를 누빈다. 이렇게 영신 행진이 끝나면 장군당에 다같이 올라가서 삼장군께 경건한 제사를 올린다. 제사가 끝나면 꽹과리, 징, 북, 소고를 울리며 뒤풀이를 한다. 이때는 삼신(三神)을 모시고 신유(神遊) 행진을 계속한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음력 정월 보름 제사가 추가되어 일반 동제와 같은 성격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당제에 대한 관의 지원이 끊어지고, 18세기 후반에 불로리에 입촌한 김해 김씨들이 제사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제례는 김유신 장군의 후손으로서 제사권을 주장하는 김해 김씨가 맡고 풍물, 영신 등 오신행위(娛神行爲)는 인근 마을의 사공씨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이 맡았다. 이 무렵 제례에 향사적 성격의 홀기(笏記)가 등장하여 민속신앙적 의례행사가 점차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대 들어 일제의 간섭이 심해져 제의 규모가 극도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제의 주체가 주민에서 김해 김씨에게로 넘어가면서, 마침내 제례가 향사(享祠)로 변하게 된다. 1953년 김해 김씨들이 장군봉 아래에 세운 제동서원(濟東書院)이 자리를 잡자, 삼장군의 신좌를 서원의 숭무전으로 옮기게 된다. 제일(祭日)도 단오에서 삼월 초정일(初丁日)로 바뀌었다가 1981년부터 삼월 삼짇날에 지낸다. 1995년 원래의 장군당 초석 위에 효령사(孝靈祠)라는 삼칸 와가(瓦家)로 복원하고, 세 장군의 위패 또한 바꾸었다. 현재 삼장군제는 단옷날 오전 10시를 기하여 행해진다. 제관들은 미리 선정하는데, 군수가 초헌관을 담당한다. 제물은 조, 쌀, 돼지머리, 녹포, 대구포, 육포, 어포, 미나리, 무, 대추, 잣, 밤, 은행, 호도 같이 날 것을 사용하고 제상(祭床)에는 수저가 없다. 옛날 장군들은 날짐승을 칼로 베어 먹었기 때문이다. 3. 신라로 귀화한 이무 장군 장군당의 삼장군 중의 한 분인 이무 장군(李茂)은 당나라 장수로 참전하였다. 총사령관 소정방 장군의 부장으로 신라에 왔는데, 후일 신라 여인(백제 출신)과 결혼하였으며 당나라로 귀국하지 않고 신라에 귀화하여 연안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소정방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도와주러 왔으나 내심으로는 신라까지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품고 있었다. 부장인 이무 장군은 소정방의 오만한 의도를 말리며 신라의 입장을 존중해준 장군이었다. 이무 장군과 비슷한 사례는 주한 미군에도 있었다. 미국의 장군으로 한국에 근무하면서 진정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도와준 고마운 장군의 사례를 소개한다. 주한미군의 장성 중에도 1977년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반대하였다가 예편당한 존 싱글러브 육군 소장은 진정한 군인이었다. 주한미군 덕분에 북한의 남침을 억제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하여 빈곤 국가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였다. 1977년 5월 29일 자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 때문에 군복을 벗게 되었다. 이 인터뷰에서 존 사르 기자는 싱글러브 장군에게 “귀하는 카터 대통령의 철군 계획이 전쟁을 부를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싱글러브 장군은 “만약 (카터의) 철군 계획대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일개 육군 소장이 대통령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反旗)를 든 것이다(월간조선, 2022년 3월호). 이무 장군은 백제를 평정(平定)하는 데 공을 세워 연안백 (延安伯)과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졌고, 그 후 신라에 귀화하여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황해도 연안(延安) 땅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조선조 연안 이씨는 총 250여 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명문이 되었다. 연안 이씨 시조 이무 장군은 당나라 장군이었다. 660년 당나라 소정방이 대총관이 되고 이무는 부총관겸 독군(군사 감독관)이 되어 13만 당나라 대군을 인솔해 지금의 덕적도와 기벌포로 들어와 신라의 김유신 장군,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같이 백제의 수도 부소성(부여)를 공격하였다. 이무 장군은 소정방과 김유신 장군과의 주도권 분쟁이 있을 때 조정, 화해시켰다. 당군이 백제를 점령한 후 독단으로 백제를 식민통치하면서 동맹국인 신라마저 공격할 때는 소정방을 사전 저지시키고 나당 관계를 원만이 이끌어 준 공로로 660년 8월 25일 신라국에서 연안백 작위와 귀빈 대우를 받았다. 668년 9월 15일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 평양성 함락시키고 삼국통일 때는 신라국 대장군 김유신 장군의 추천으로 연안백(延安伯)에서 한 등급 올려서 직위가 높은 연안후(延安侯) 작위와 연안 지방 1000호 식읍을 받았다. 당시 당나라는 측천무후의 섭정으로 국정이 어수선했던 때라 이무 장군은 본국인 당나라로 귀국하지 않았다. 1300여 년 전 신라가 세계적인 대제국인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승만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세계 최강국이자 민주국가인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급속하게 경제가 발전하였다. 반대로 북한은 공산주의로서 공산국가인 소련, 중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세계 최빈곤국이 되고 말았다. 국가는 생존을 위해 동맹이 필요하며, 자유 민주 체제가 우월함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무 장군은 신라를 돕기 위해 당나라 장군으로 왔지만 신라 정복의 야욕을 품은 소정방을 설득하여 신라에 큰 도움을 주었다. 삼국통일 후 귀국하지 않고 연안 이씨의 시조가 되어 명문가를 이루었다. 개인에게는 친구가 중요하고 국가는 동맹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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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연 양산시장, 2024년 시정 첫 시작일 직원 격려- 구내식당에서 본청 직원 700여명에게 점심 배식봉사 - 나동연 양산시장이 2일 2024년 갑진년 새해 시정의 첫 시작일을 맞이하여 시청 구내식당을 찾은 700여명의 공직자들에게 배식봉사를 하며 미소와 새해 인사를 나누는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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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평화의 상징 ‘천성산 일출’ 시민 발길 - 양산시, 1일 천성산에서 ‘2024년 갑진년 해맞이 행사’ 개최 -- 나동연 시장 “시민 모두 대운이 용솟음치는 한해 되길 소망” - 양산시는 1월 1일 아침 일출 명소인 천성산에서 시민 안녕과 지역 발전을 염원하는 ‘2024년 갑진년 해맞이 행사 및 시민안녕기원제’를 개최했다. 시민 1,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2024년 갑진년 해맞이 행사는 양산시가 일출의 천성산과 일몰의 포르투갈 호카곶을 연계한 신트라시와의 국제 자매도시 결연 후 처음이자 지난해 연말 완공된 일출조망대 ‘천성대’에서 갖는 첫 해맞이 행사다. 행사 주관은 통도라이온스클럽이 맡았다. 이날 행사는 오전 6시 40분 새해 시작을 알리는 대북 3타를 시작으로 대북공연, 나동연 양산시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신년 희망메시지, 용띠 시민이 함께 줄을 잡아당기는 새해 행운 기원 대박 터뜨리기, 양산음악협회의 1000명 합창 챌린지도 이어졌다. 천성대에서 봉행된 시민안녕기원제에서는 나동연 양산시장이 초헌관으로 시민의 안녕과 지역 발전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으며, 기원제에 참석한 시민들도 한마음으로 각자의 새해 소망을 빌었다. 아울러 부대행사 부스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각자 소망을 적어 소원통에 담는 소원지 쓰기 행사가 진행됐으며, 작성된 소원지는 새해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에 활용할 계획이다. 또 소망떡, 라면, 차, 핫팩을 나누며 추위를 녹였다. 시는 천성산 일출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새해 첫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해맞이객들이 많을 것으로 보고 안전사고와 산불예방 등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개인 차량을 이용한 참여를 금지하고 상북 소토초~원효암 주차장을 왕복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임시 운행했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천성산의 지명유래처럼 천명의 성인이 해를 바라보던 너른 자리’라는 의미를 담아 조성된 일출조망대 ‘천성대’에서의 2024년 해맞이는 뜻깊었다”며 “이곳 천성산에서 화합의 화쟁사상을 설파하신 원효대사의 큰 가르침을 다시 새기면서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안녕을 염원하고 시민들에게도 대운이 용솟음치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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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오늘의뉴스 양산숲길보전회 연지공원, 김해박물관 답사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연지공원 양산숲길보전회에서는 12월 24일 김해 연지공원과 국립김해박물관을 답사하였다. 오전 8시 30분 양산종합운동장에 모여 김해로 출발하였다. 국립김해박물관 2주차장에 도착하여 심상도 회장이 답사 일정을 안내하였다. 조상현 사무국장이 주도하여 준비운동을 마치고, 연지공원부터 먼저 답사를 시작하였다. 필자가 12월 4일 사전 답사할 때는 해반천과 가야의 거리를 코스로 선정하였다. 답사해 보니 ‘화정글샘도서관’ 주차장이 협소하고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차량은 주차하기가 어려웠다. 이 길은 김해지역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생태하천길 중 한 곳이자 가야왕도 김해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과 경남의 걷고 싶은 길 25선에 뽑히기도 했다. 이곳 역시 북·중부생활권 주민들의 산책과 휴식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화정글샘도서관을 시점으로 걷다가 연지공원을 반바퀴 돌아 다시 국립김해박물관, 김해시민의 종,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잠시 해반천길을 벗어나 수릉원, 수로왕릉, 한옥체험관, 봉황동 유적지를 둘러보고 다시 해반천길을 따라 전하교에 도착하는 5㎞ 코스로 2시간이 소요된다. 12월 5일 다시 두 번째 답사에서 연지공원을 둘러보았다. 저렴한 유료 주차장이 있고, 외부 무료주차장은 거의 만차 상태였다. 최종 목적지는 연지공원과 김해박물관으로 정했다. 김해 내동에 자리한 도심 공원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과 인접해 있어 김해의 역사 유적을 살펴보다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하기 좋다. 호수 곳곳에 시원한 분수가 있어 감상하기 좋고, 호수 위를 지나는 데크 로드를 걸으며 주변 경치를 둘러보기 좋다. 김해 중심에 위치하며 시민들의 휴식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호수에는 연꽃, 어리연 등이 있다. 꽃 상자를 띄워 계절에 따라 공원 방문객들이 다양한 꽃을 구경할 수 있다. 남녀노소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전 답사 때는 메타세콰이어 나무 단풍이 매우 아름다웠다. 호수에 비친 단풍 반영도 보기 좋았고, 멀리 산 위의 김해천문대, 분산성도 보여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본 답사에서 단풍은 낙엽으로 떨어지고 없어 아쉬웠다. 연지공원의 풍광은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낮도 좋지만 하이라이트는 밤에 펼쳐진다. 레이저와 조명, 음악과 분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분수 쇼를 진행한다. 길이 50m, 너비 30m의 부력체에 태양 분수, 안개 분수, 공작 분수, 물결 분수 등 다양한 모양의 분수와 화려한 조명, 음악이 어우러져 밤하늘에 피어나는 황홀한 무대를 연출한다. 구지봉의 거북이가 연지의 물을 찾는 형상으로 풍수지리적으로 길지라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연지공원에서 남녀가 데이트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다. 답사한 12월 24에는 호수가 얼어붙어 있어 겨울철 분수 가동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호수에 날아온 오리들도 차가운 얼음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연지공원에서 인상적인 곳은 조각공원, 김해독립기념광장이었다. 김해독립기념광장은 당초 야외공연장으로 활용되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김해시가 지난 2017년 김해지역 유림의 독립운동을 기념한 ‘파리장서기념비’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거리의독립기념관’을 설치했다. 2020년 말에는 김해독립운동사를 기록한 ‘김해 3.1독립운동 기념벽’을 설치하고 ‘기미독립의거 기적비’, ‘배치문 의사 기적비’, ‘김승태 의사 기적비’를 이전해 3.1독립운동 역사공간으로 완성하였다. 김해시는 연지공원 내에 3.1독립 운동 관련 기념비와 조형물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가 녹아 있는 공간의 명칭을 2021년 4월 27일 김해독립기념광장으로 확정했다. 2. 철의 바다 김해 김해는 전기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가야의 도읍지였으며, 가야의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대성동고분과 김해 일대에서는 철 갑옷, 철로 만든 말의 투구, 당시 돈의 역할을 했던 철정(덩이쇠) 등 철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발굴됐다. 당시 가야는 김해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철을 이용해 수준 높은 철기 문명을 꽃피운 동북아의 선진국이었다. 풍부한 철 생산을 상징하듯 지명 자체가 쇠 김, 바다 해, ‘철의 바다’를 뜻하는 김해(金海)다. 김해는 또한 전기 가야 시대를 대표하며 철기문화를 꽃피운 금관가야의 고도이기도 하다. 금관 역시 ‘철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김해라는 이름의 바다 해 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고대 해수면은 현재보다 5~6m 가량 높았고 당시 김해 주변은 바다였다. 이 시기에는 지금의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수가동 일부에 해당하는 김해평야는 ‘김해만’이라 불리는 바다였고 김해 북쪽인 밀양벌판과 밀양 삼랑진에서 김해 대동을 가로지르는 낙동강 역시 바다였다. 금관가야는 농업국이 아닌 국제 허브항을 보유한 해양왕 국이었다. 기원 전후 시기 철은 최고의 상품이었다. 철은 농업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농기구, 정복 전쟁에 필요한 첨단 전쟁 무기, 최고의 교환가치로 쓰이는 첨단 상품이었다. 무게가 무거운 철의 교역은 주로 바닷길을 통해 이뤄졌으므로 ‘철의 바다’란 지명의 김해는 오늘날로 치면 첨단산업단지이자 무역항을 갖춘 선진 도시였다. 철기로 인하여 가야는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고, 한때는 신라를 압박하는 수준까지 국력을 신장시켰다. 금관가야 시대 김해는 철의 바다이자 철의 왕국이었다. 가야의 철정(鐵鋌)은 고대의 ‘반도체’이며, 동아시아의 화폐로 통용됐다. 금관가야는 철기문화의 중심지였다. 이런 사실은 대성동고분군, 창원시 ‘의창 다호리 유적’ 등에서 출토된 철기 부장품을 통해서 확인된다. 제철은 대체로 철광석과 같은 원료에서 철을 추출하는 제련(製鍊)으로부터 정련(精練), 용해(溶解), 단야(鍛冶) 등 철기 생산과 관련된 모든 공정을 아우르는 의미이다. 채광(採鑛)은 철광석을 캐내는 작업으로서 주변에 있는 우수한 철산지가 있어야 가능한데, 가야지역은 김해 상동, 양산 등 철산지가 풍부하였다. 다음은 제련(製鍊)으로서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공정이다. 제철로에 철을 넣고 숯으로 불을 지피는데, 철은 일반적으로 1500℃ 이상의 온도에서 녹지만, 숯과 함께 넣으면 1300℃ 정도에서 녹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 철과 철 찌꺼기(Slag)가 분리된다. 최근 한국문물연구원에 의해 창원 봉림동 유적에서 4~5세기경의 제철 유적이 발견된 바가 있는데, 이곳을 가야시대의 제철유적으로 보고 있다. 용해(鎔解)는 주조(鑄造)라고도 하는데, 제련공정에서 얻어진 환원철 중 탄소량이 높은 선철을 녹여 주조제품을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이때 쓰이는 것이 도가니와 거푸집인데, 거푸집에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모양을 만들고 그 속에 쇳물을 부어 철기를 만든다. 정련(精鍊)은 단야(鍛冶)라고도 하며 환원철 중 탄소량이 낮은 철괴를 조정하여 단조용 소재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때 쓰이는 것이 집게, 망치, 받침모루, 끌, 숫돌 등으로서 가야지역에서는 양산 북정리, 합천 옥전 등에서 이와 같은 유물들이 출토된 바 있다. 다음 단계는 단련(鍛鍊)으로서 철소재를 불에 달궈 두드려서 단조 철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를 통하여 주로 무기나 농기구 등이 만들어지며, 이 경우 주조를 한 것 보다 내구성이 강하다고 한다. 철정(鐵鋌) 또는 덩이쇠는 변한, 진한과 삼국시대 가야, 마한에서 사용했던 화폐이자 강철을 만들 때 쓰던 재료로서 일정한 크기로 주조한 판형 철괴이다. 양 끝으로 갈수록 철판이 넓어지는 장방형의 뼈다귀 형태를 하고 있다. 고령, 부산, 김해 등 동남부 지역에서 출토된다. 유적에 따라 덩이쇠의 규격이 조금씩 다른데, 소형 덩이쇠의 경우 구멍을 뚫고 노끈을 메어 사용했다. 대형의 덩이쇠는 개인이 휴대하기에는 무거우므로 상자, 말 등에 적재하여 운반했으며 다른 옷감이나 식량과 물물교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덩이쇠는 고조선 유적에서 발견되는 반량전이나 명도전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화폐 경제 유물로, 당시 경상남도 지역에서 우수한 제철 기술이 발전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덩이쇠가 활발히 유통되었던 것은 한사군과 왜, 만주 일대에서도 철을 사 갔기 때문이다. 덩이쇠도 중국 화폐와 비슷하게 국제적인 신용보증이 이루어졌다. 가야의 주요 수출품은 덩이쇠였다. 한반도 내 철산(鐵山)은 여러 곳이 알려져 있다. 신라 권역인 경북 울진 철산은 노천채굴(露天採掘)의 자철광(磁鐵鑛)으로 약간의 적철광(赤鐵鑛)이 섞여 있고, 철분 57%의 양질이다. 백제 권역인 충남 서산 철산은 자철광으로 철분 30∼50%이다. 충주 창동과 금곡 · 연수동 등의 지역에도 철산이 있다. 가야 권역 김해 상동면 철산도 고대부터 개발된 곳으로 자철광과 적철광의 광석이 녹니암계(綠泥岩系)로 잘 부서져서 원시적 제련로에서도 활용도가 높아 고대(古代)에 많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 양산 물금 철산, 마산 해동 · 양리 · 삼우리 지역의 철산도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김제 일대, 고창 옥산리, 제주 서귀포 · 남원 일대, 삼척 삼화리, 울진 온정리 등의 지역에서 양질의 사철(砂鐵)이 많이 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철광석을 채굴하는 철산 중에서 발굴 조사를 통해 고대에 활용되었음이 알려진 유적은 울산 달천광산이 유일하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야시대 철광산으로 추정되는 임경대 옆의 물금 철광산은 1980년대까지 채굴하였다. 현재 물금레미콘 공장이 있는데, 양산시에서 매입하여 관광지로 개발해야 한다. 울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철을 채굴하던 달천철장은 유적공원을 조성하고 전시관도 만들어놓았다. 매년 5월에는 울산 북구청 주최로 쇠부리축제도 개최하고 있다. 3. 가야의 상징 쌍어(雙魚) 수로왕릉 입구 문 위에 그려진 ‘쌍어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이 있다. 쌍어문은 두 마리 물고기 무늬로 이국적인 탑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다. 이곳의 쌍어문은 1792년 조선 정조 때 제작된 것으로 화공이 임의로 창작한 것이 아니라 전대의 그림을 모사하였을 것이다. 쌍어문 등장의 배경이 된 인도공주 수로왕비는 왕릉과 떨어진 곳에 묻혀있다. ‘아들 중 두 명을 나의 성씨 허씨를 따르게 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 고향을 떠나온 그리움과 후손을 남기려는 소원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로왕에게서 시작된 김해 김씨와 왕비에게서 시작된 김해 허씨는 한 집안이라 서로 혼인하지 않는다. 쌍어문은 은하사 대웅전 신중 불단에도 있는데 가야불교 또는 가야와 인도 아요디아의 교류를 알게 해 주는 중요한 문화 코드 중 하나이다. 허왕후의 고향인 인도 아요디아에서는 지금도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 쌍어문이며 관공서나 행정 서류 또는 오래된 건물 등 시내 곳곳에서 쌍어문을 볼 수 있다. 김해 시내의 가로등, 다리, 동김해IC 등에서 쌍어 문양의 조형물을 볼 수 있다. 금관가야 때부터 김해에 내려오던 상징적인 문양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아요디아와의 교류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연지공원으로 가는 해반천 위의 다리에도 쌍어 조형물이 있다.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은 쌍어 조형물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김해시 4대 관문 중 한 곳인 동김해IC에 가야시대 대표 문양인 쌍어(雙魚) 조형물이 설치됐다. 김해시는 지난 2018년부터 삼정동 동김해IC 진입관문 경관개선사업으로 추진해 온 쌍어 문양 조형물을 2021년 3월 말 준공했다. 이 조형물은 예산 10억 원을 투입하여 철제, 강관, 알루미늄 재질로 높이는 아파트 7층에 달하는 20m와 17m로 세워졌다. 야간에는 하늘, 남색, 초록, 자주, 보라, 노랑의 6가지 빛을 발산하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김병모 교수는 허왕후 일족이 정치적인 변란으로 인하여 인도 아요디아에서 중국의 안악현(安岳縣) 보주(普州)로 이동하여 정착하였다고 보았으며 쌍어는 국가의 문장(紋章)으로 함께 이동한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보주 지방 허씨 사당이나 허황옥의 전설이 있는 신정(神井)이란 우물에서도 쌍어문을 찾아내어 ‘허왕후 보주 도래설’의 주요한 근거 중 하나로 삼기도 하였다. 김 교수는 수메르 제국에서 기원한 쌍어문이 아요디아로 전해졌고, 중국 보주를 거쳐서 허왕후가 올 때 가야에까지 온 것으로 보았다. 4. 가야의 역사를 보여주는 국립김해박물관 1998년 7월에 개관한 국립김해박물관은 고대국가의 하나인 가야(加耶)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대지 1만 5천여 평, 연건평 2,800평(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졌다. 건물 외벽 윗부분을 강판으로 처리해 '철의 왕국-가야'의 이미지를 한껏 강조한 게 특징이다. 1998년 개관한 본관은 철광석과 숯을 이미지화 한 검은색 벽돌을 사용하여 철의 왕국 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건축가 장세양(1947년~1996년)의 유작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12월 15일 개관한 ‘가야누리’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비례를 사용하여 박물관 본관과의 이질감을 줄이고 하나의 배경같은 요소로서 건물을 설계하였으며, 건축가 공순구(1960년 ~ )의 작품이다. 가야의 역사는 다른 고대 국가들에 비해 역사 기록으로 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가야의 실체는 대부분 발굴조사 등의 고고학적 방법으로 찾아진 것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김해박물관은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달리 고고학 중심의 전문 박물관으로 특성화되어 있다. 역사학계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서 가야까지 포함한 사국시대로 기술해야 한다. 건물 내부는 2개의 기획전시실과 1·2층으로 연결된 상설전시실 등 3개의 전시실에 가야유물 1,300여 점을 전시한다. 박물관 소장유물은 모두 5,000여 점으로 가야유물을 관리했던 진주박물관에서 1,000여 점을 인수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전국 대학박물관에서 대여·인수받았다. 전시실은 1,2층으로 되어 있으며 ‘가야로 가는 길’을 주제로 한 1층엔 낙동강 하류역의 선사문화와 가야의 여명기, 가야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가야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한 2층은 수리 중이라 관람하지 못했다. 주요 시설로는 본관과 교육관인 가야누리가 있다 부대 시설에는 강당과 세미나실과 도서 자료실, 기념품 판매대가 있다. 가족 단위 관람을 위해 유아놀이방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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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설파(雪波) 안창수화백, 대한민국 위대한한국인100인 국민대상’ 수상동양화가 설파(雪波) 안창수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생 2모작에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은행에서 전문금융인으로 정년퇴직한 뒤에 그림을 배워 화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고 즐겁다는 그는 양산신도시에 있는 화실에서 먹물과 물감 냄새 가득 배인 늦깎이 화백으로 제2인생을 살고 있으며,대한민국을 이끄는 혁신리더에 수차례 선정되기도 한그가 이번에는대한민국혁신리더100인대상을 수상 하기도 했다. 또한 2023대한민국 최우수동양화대상을 수상했다. *2023 대한민국 최우수 동양화 대상 양산의 명인이자 대한민국의 명인인설파 안창수화백은 이번100인대상에서2023 대한민국 최우수 동양화 대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신문기자협회,언론인연합협의회, 국제문화교류재단, 선데이타임즈,스포츠코리아신스포츠코리아신문등 19개단체가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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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2024년 상반기 정기인사 단행- 미래 신산업 육성과 민생안정 위한 조직개편 … 승진 81명 등 총 465명 - 양산시는 ‘양산의 미래와 민생’을 중심으로 추진된 민선 8기 2차 조직개편을 반영한 2024년 1월 1일자 상반기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정기인사 규모는 승진 81명, 신규 임용 44명, 전보 198명, 직제개편에 따른 부서 이동 등 142명을 포함한 총 465명이다. 이번 정기인사는 민선 8기 3년 차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그간의 운영성과를 바탕으로 조직의 역동성과 시정성과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조직개편에 발맞추기 위해 성과 중심이라는 기본 원칙 하에 주력산업 육성 및 추진동력 확보, 전문성 제고 및 조직 쇄신을 위한 직무역량 등을 고려한 승진인사와 적재적소 인력 배치에 중점을 뒀다. 특히 하위직 공무원 승진의 경우 장기 근무한 소수 직렬을 골고루 포함시키는 등 승진적체 해소로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도모했고, 격무부서 우선 결원 보충으로 가중된 업무 부담을 덜어 주고 일하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이번 인사로 행정조직 체계가 강화된 만큼 앞으로 주요 역점시책과 미래 신산업 육성 추진 등 각종 현안사업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며 “지역경제활력 회복 및 민생안정 제고 등 시민이 중심인 시정에 성과로 답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5급 이상 인사발령 사항 (총 27명 : 승진 13, 전보 14) 발령일자 : 2024. 1. 1. 2024년 상반기 정기인사 승진내정자 명단 ❍ 지방서기관 (2명) 시민안전과 지방행정사무관 최 단 오 주민생활지원과 지방사회복지사무관 박 정 희 ❍ 지방기술서기관 (1명) 기후환경과 지방환경사무관 심 주 석 ❍ 지방행정사무관 (5명) 소통담당관 지방행정주사 김 창 준 행정과 지방행정주사 이 성 미 교통과 지방행정주사 김 재 연 세무과 지방세무주사 남 신 우 징수과 지방세무주사 이 상 진 ❍ 지방사서사무관 (1명) 시립도서관 지방사서주사 서 민 수 ❍ 지방농업사무관(일반농업) (1명) 농정과 지방농업주사 유 인 환 ❍ 지방녹지사무관(산림자원) (1명) 산림과 지방녹지주사 김 철 환 ❍ 지방시설사무관(일반토목) (1명) 시민안전과 지방시설주사 김 지 욱 ❍ 지방시설사무관(건축) (1명) 건축과 지방시설주사 변 기 호 ❍ 지방행정주사 (4명) 문화관광과 지방행정주사보 김 선 영 균형개발과 지방행정주사보 이 준 호 (출)총무과 지방행정주사보 정 희 경 보건행정과 지방행정주사보 배 지 현 ❍ 지방세무주사 (1명) 징수과 지방세무주사보 김 유 진 ❍ 지방사회복지주사 (1명) 주민생활지원과 지방사회복지주사보 박 은 경 ❍ 지방녹지주사(산림자원) (1명) 원스톱허가과 지방녹지주사보 강 연 호 ❍ 지방의료기술주사 (1명) 웅상보건지소 지방의료기술주사보 이 성 혜 ❍ 지방환경주사 (1명) 자원순환과 지방환경주사보 김 수 연 ❍ 지방시설주사(일반토목) (1명) 수도과 지방시설주사보 강 동 호 ❍ 지방시설주사(건축) (1명) 공동주택과 지방시설주사보 김 세 형 ❍ 지방운전주사 (1명) 물금읍 지방운전주사보 문 태 균 ❍ 지방기계운영주사 (1명) 정수과 지방기계운영주사보 박 영 출 ❍ 지방행정주사보 (8명) 역점사업추진단 지방행정서기 김 연 선 투자창업단 지방행정서기 서 금 미 일자리경제과 지방행정서기 김 연 희 문화관광과 지방행정서기 김 현 영 교육체육과 지방행정서기 김 신 구 회계과 지방행정서기 석 소 영 교통과 지방행정서기 정 현 수 공동주택과 지방행정서기 정 현 정 ❍ 지방세무주사보 (2명) 세무과 지방세무서기 김 상 연 물금읍 지방세무서기 유 병 욱 ❍ 지방전산주사보 (1명) 세무과 지방전산서기 이 상 훈 ❍ 지방사회복지주사보 (2명) 주민생활지원과 지방사회복지서기 주 영 진 노인장애인과 지방사회복지서기 김 민 경 ❍ 지방공업주사보(일반전기) (1명) 원스톱허가과 지방공업서기 김 동 현 ❍ 지방공업주사보(일반화공) (1명) 수질관리과 지방공업서기 심 건 우 ❍ 지방농업주사보(일반농업) (1명) 농정과 지방농업서기 노 은 희 ❍ 지방녹지주사보(산림자원) (1명) 공원과 지방녹지서기 박 소 정 ❍ 지방보건주사보 (1명) 웅상보건지소 지방보건서기 이 재 선 ❍ 지방간호주사보 (1명) 건강증진과 지방간호서기 박 소 연 ❍ 지방환경주사보 (1명) 기후환경과 지방환경서기 이 지 원 ❍ 지방시설주사보(일반토목) (3명) 미래산업과 지방시설서기 장 진 혁 자원순환과 지방시설서기 정 준 영 하천과 지방시설서기 이 순 호 ❍ 지방시설주사보(건축) (1명) 공동주택과 지방시설서기 이 승 재 ❍ 지방방재안전주사보 (1명) 시민안전과 지방방재안전서기 오 은 혜 ❍ 지방행정서기 (13명) 문화관광과 지방행정서기보 임 은 빈 교육체육과 지방행정서기보 이 현 경 종합민원과 지방행정서기보 진 희 경 도로과 지방행정서기보 김 현 국 교통과 지방행정서기보 이 주 엽 (출)총무과 지방행정서기보 윤 휘 경 (출)문화복지과 지방행정서기보 강 태 준 하수과 지방행정서기보 박 주 영 물금읍 지방행정서기보 유 정 욱 동면 지방행정서기보 김 동 현 원동면 지방행정서기보 엄 성 문 중앙동 지방행정서기보 정 인 범 덕계동 지방행정서기보 김 경 우 ❍ 지방사회복지서기 (1명) 주민생활지원과 지방사회복지서기보 김 예 린 ❍ 지방공업서기(일반기계) (1명) 균형개발과 지방공업서기보 이 주 헌 ❍ 지방공업서기(일반전기) (2명) 미래산업과 지방공업서기보 팽 윤 정 시립박물관 지방공업서기보 김 두 인 ❍ 지방공업서기(일반화공) (1명) 정수과 지방공업서기보 전 성 림 ❍ 지방녹지서기(산림자원) (1명) 산림과 지방녹지서기보 하 정 호 ❍ 지방녹지서기(조경) (1명) 공원과 지방녹지서기보 하 유 림 ❍ 지방보건서기 (2명) 위생과 지방보건서기보 진 희 랑 건강증진과 지방보건서기보 고 하 니 ❍ 지방의료기술서기 (1명) 보건행정과 지방의료기술서기보 배 상 희 ❍ 지방환경서기 (2명) (출)허가과 지방환경서기보 변 다 애 (출)허가과 지방환경서기보 전 지 영 ❍ 지방시설서기(일반토목) (2명) 도로과 지방시설서기보 박 슬 우 균헝개발과 지방시설서기보 우 동 규 ❍ 지방시설서기(건축) (1명) 공공시설과 지방시설서기보 류 홍 기 ❍ 지방시설서기(지적) (1명) 토지정보과 지방시설서기보 김 정 욱 ❍ 지방방송통신서기(통신기술) (1명) 정보통계과 지방방송통신서기보 홍 다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