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1. 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석장사지
임신서기석의 최초 발견자인 석당 최남주 선생 자제인 최정간(매월다암 원장, 차문화연구가) 씨가 밝히는 발견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35년 봄 경주군 현곡면 석장사지부근에서 농수로공사로 인해 신라시대 와당들이 출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천수답 경사 언덕 맨 아래쪽에서 ‘남산신성비’처럼 생긴 작은 강돌(川石)이 최남주의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앞면이 치석되어 첫머리에 임신년(壬申年)이란 글자체가 음각되어 있었다.
석당 최남주는 분명히 1934년 발견한 ‘남산신성비’의 자체(字體)와 ‘임신서기석’이 같다고 밝히고 있어 발견 시기도 일본인 오사카 긴타로의 1934년과는 차이가 난다. 석당 최남주는 소년시절 경주의 대유학자 김계사(김범부 스승) 선생으로부터 ‘사서삼경’을 배웠고 보성고보 시절 은사 황의돈 선생(민족사학자)으로부터 고대 금석문 강독법을 배웠다. 오히려 오사카보다 금석문 해독실력이 뛰어났다.
임신서기석은 향가 연구자인 김영회 씨의 해석에 의하면 화랑도가 하늘에 맹세한 내용이므로 화랑 서기석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두 명의 화랑은 김유신 장군의 3년 후배 정도 된다고 하였다. 임신서기석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기 전에 조국영 도예가가 탁본을 한 것이 있다. 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장소는 석장사지 인근이라고 한다. 석장사는 신라시대 양지 스님이 주석한 사찰이다.
삼국유사 제4권 의해 제5(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양지사석(良志使錫 : 양지 스님이 지팡이를 부리다) 조에 양지 스님 기록이 나온다.
승려 양지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선덕왕(善德王) 때의 행적이 드러났을 뿐이다. 지팡이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두면 지팡이가 저절로 시주의 집으로 날아가서 흔들면서 소리를 내었다. 그 집에서도 이를 알고 재에 쓸 비용을 담아주었다. 포대가 차면 다시 날아서 돌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양지가 머무른 곳을 석장사(錫杖寺)라고 하였다.
양지의 신기하고 기이한 행적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이 외에도 여러 잡다한 기예에도 두루 통달하여 그 신묘함을 비길 곳이 없었다. 또 글씨와 그림 실력도 뛰어났으니, 영묘사(靈廟寺)의 장륙삼존상과 천왕상, 전각과 탑의 기와, 천왕사(天王寺) 탑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과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이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이 외에도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을 썼다.
또 일찍이 벽돌을 조각하여 작은 탑 하나를 만들었고, 아울러 삼천불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시고 예를 드렸다. 양지 스님이 영묘사의 장륙상을 만들 때 선정에 들어가 삼매경에서 뵌 부처를 모형으로 삼았는데, 온 성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하였다. 그 당시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이 세상은 서럽더라.
서럽더라 무리여,
공덕 닦으러 절에 오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이 방아를 찧거나 다른 일을 할 때면 모두 이 노래를 부르는데, 아마도 이때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불상을 만들 때 든 비용은 곡식 23,700석이었다.[혹은 금색을 칠할 때 쓴 비용이라고 한다.]
논평하여 말한다.
“양지스님은 재주가 완전하고 덕이 충분하였지만 하찮은 재주에 자신의 능력을 숨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재 마치니 법당 앞에 지팡이는 한가로운데
고요히 향로에 향불 피운다네.
남은 불경 다 읽자 할 일이 없어
불상 빚어 놓고 합장하며 뵌다네.
2. 동국대학교에서 발굴한 석장사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6~2012년 신라 호국사찰 사천왕사 터를 발굴하였다. 그리고 양지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진 녹유벽전의 여러 조각을 수습하였으며, 3종류의 벽전을 모두 복원하여 2015년 이를 기념하는 양지사석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신라의 대표적 예술가를 꼽자면 서예가 김생, 화가 솔거, 음악가 백결, 그리고 조각가 양지 스님이 있다(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세계일보, 2017, 2.18).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에서는 1986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학교 인근의 석장사로 추정되는 절터를 발굴하였다. 그 결과 ‘錫杖(석장)’이라는 묵서가 적힌 자기가 발견되어 이곳이 바로『삼국유사』에 기록된 석장사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양지 스님이 만들었다는 삼천불탑과 관련된 많은 유물들을 발굴하는 성과가 있었다(한정호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 전임연구원, 동대신문, 2010, 10.4).
석장사지에서 확인된 다수의 탑상문전은 울산 농소사지 전과 청도 불령사진 전과는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불상의 도상과 탑들이 표현되어 있어 고대 조각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작례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탑상문전 상부에 남아있는 위치 표시 부호 등을 통해 당시 전탑 조성이 치밀한 구성과 계획을 바탕으로 수립된 건축물임을 증명해주고 있다(동국대 WISE캠퍼스 박물관 안내문).
석장사지에서 확인된 유물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물은 연기법송명문전이다. 고대 인도부터 전해지고 있는 불탑 속에 다라니를 봉안하는 신앙이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적어도 7세기 때부터는 유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석장사지 연기법송 탑상문전은 탑상문과 마찬가지로 불상과 탑이 번갈아가며 표현되고 있지만 배열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불상과 탑을 각각 10구와 10기씩 상하로 배치하고, 탑과 탑 사이 4행으로 “모든 것은 원인에서 비롯된다(諸法從緣起). 부처님은 그 원인을 말씀하셨다(如來說是因). 모든 것은 원인에 따라서(羅彼法因緣盡),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是大沙門說).”라는 게송이 좌우가 뒤집힌 상태로 음각되어 있다.
3. 석장사지 답사
석장사지는 경주시 석장동 옥녀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의 천재 조각가인 양지 스님이 주석했던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여 그 사역, 규모, 사명, 그리고 출토 유물과 양지 스님과의 관계 등이 대부분 확인되었다.
1, 2차 발굴을 통해서 탑상문전, 소조상편, 연기법송명문전, 금동불, 각종 자기편 등 약 450여 점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 중 주목되는 유물은 ‘석장’이라 쓰여진 자기편으로, 『삼국유사』 양지사석(良志使錫) 조의 양지 스님이 주석했던 사찰인 석장사지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필자는 2월 4일 경주 석장사지를 답사하였으며, 동국대 WISE(경주)캠퍼스 박물관을 2월 7일 관람하면서 석장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사진 찍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임신서기석 모형을 살펴보았으며, 학생복지관 앞에 세운 커다란 임신서기석 조형물도 구경하였다.
경주 석장사지는 동국대 WISE캠퍼스를 지나 경주 화랑마을 정문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있는 경주선교교회 옆의 등산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안내 표지판이 없어 오솔길 등산로로 올라가면서 석장사지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마침내 등산객들이 많이 다닌 주 등산로를 만나서 석장사지는 신우대가 있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우측으로 내려갔다. 유심히 보니 신우대가 보여 올라갔다.
석장사지는 경사진 산자락에 남향으로 절터를 잡았으며, 정면에서 오른쪽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메인 등산로에서 석장사지를 가기 위해서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도랑을 건너야 한다. 도랑 위에는 나무를 잘라 만든 임시 다리가 있었는데, 습기가 많아 파란 이기가 끼어 있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 1, 2차 발굴 조사를 마친 후 사진으로 보니 석장사지는 신우대도 제거하고 주변이 정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1, 2차 발굴 후 38년~32년이 경과하다 보니 신우대가 우거져 최초 모습과는 달라지고 잡풀이 우거졌다. 앞으로 동국대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 매년 석장사지 주변의 신우대와 잡덩굴을 제거하여 유적지를 잘 보존했으면 좋겠다.
필자가 양산의 다방동 야생 차나무 군락지 환경보호를 하면서 신우대, 칡덩굴을 제거하고 있기 때문에 신우대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신우대는 땅위에 있는 부분을 잘라도 땅속에 뿌리가 남아있어 쉽게 죽지 않는다. 신우대를 제거하기 위해서 자른 후 뿌리 부분에 농약을 주입하면 된다. 필자는 차나무 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농약을 주입하지 않고 일일이 뿌리를 힘들게 캐내고 있다. 칡덩굴 역시 땅위의 줄기만 자르면 안 죽고 땅속의 뿌리를 캐내야 한다.
발굴조사 때 나온 기단석을 밑에 모아 놓고 그 위에는 기와 조각을 쌓아놓았다. 사찰 건물의 주춧돌, 축대의 돌도 보였다. 신우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니 이따금 기와 조각이 보였다. 필자는 기왓장 조각 중 큰 것은 기와 조각 쌓아놓은 곳에 가져가 올려놓았다. 석장사지 답사 후에 내려 올 때는 올라갔던 등산로로 원점 회귀하지 않고 ‘휴앤락 오토캠핑장’으로 내려왔다.
4. 화랑도 조직 구성에 승려 포함
석장사지는 주변에서 임신서기석이라는 중요한 유물이 나온 곳으로 주목을 받았다. 임신서기석은 일제 시대 때 일본인이 이름을 붙였는데, 내용은 화랑도가 나라에 충성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것을 하늘에 맹세하는 다짐의 글이었다. 향가 연구자인 김영회 씨가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여 화랑도의 맹세, 정신 등을 밝혔다.
화랑도를 닦는 자를 풍월도(風月徒), 풍류도(風流徒), 국선(國仙)이라고 불렀다. 화랑 집단은 각기 화랑 한 명과 승려 한 명 그리고 화랑을 따르는 다수의 낭도(郎徒)로 구성되었다. 낭도는 집에서 매일 노동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평민 이상의 계급이지만, 중심 구성원은 진골(眞骨)과 6·5·4두품이었을 것이다.
화랑도는 낭도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합하였으며 조국 수호, 나아가서는 이상 세계 건설이라는 원대한 공동 목표를 위해 일정 기간 수련하는 단체였던 만큼 구성원 사이의 인적 결합은 매우 긴밀하였다. 낭도는 대체로 15∼18세로 구성되었으며, 한 화랑이 이끄는 인원은 200∼300명에서 1,000명 안팎의 집단이었다. 진평왕 때는 많으면 7개 이상의 화랑 집단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였다.
화랑도 조직에 승려 한 명이 포함되는데, 화랑 서기석이 석장사지 인근에서 발견된 것은 화랑도가 하늘에 맹세하면서 돌에다 내용을 새겨서 석장사에 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랑 서기석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석장사가 폐사되어 절 바깥으로 떠내려가 흙 속에 묻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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