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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장, 국토부에 지역 현안사업 지원 공식 건의

양산시장, 국토부에 지역 현안사업 지원 공식 건의

- 28일 국토부 제2차관 만나 1028지방도 국도승격 주민서명부 전달 - - 지방도 1028호 국도 승격·국도 35호 대체우회도로 공식 건의 - - 사송 하이패스IC 양방향 설치 추진 지원 요청도 구두 건의 - 나동연 양산시장이 지난 28일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해 국토교통부 백원국 제2차관을 만나 지역 현안사업에 대한 지원을 공식 건의했다. 나 시장이 이날 백 차관에게 직접 설명하고 건의서를 제출한 사업은 지방도 1028호선 국도(지선국도) 승격과 국도 35호선 대체우회도로 개설 등 2건. 여기에 이달 타당성조사 등의 용역에 들어간 동면 사송하이패스IC(양방향) 설치 추진에 대한 지원도 구두로 요청했다. 나 시장이 이들 현안사업과 관련해 정책 건의를 한 것은 취임 후 6번째(국토부 3회, 대통령실·국회 2회)다. 지방도 1028호선은 양산의 동부인 주진동에서 서부인 상북면 대석리를 연결하는 도로(길이 8.6㎞, 너비 9.5m, 터널 길이 4.7㎞)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업. 나 시장은 총 사업비(2926억원) 부족 및 사업기간 장기화 우려를 설명하며 국도 승격(국도 7호와 35호 연결)을 통해 국비 재원으로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2026년도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반영해 줄 것을 건의했다. 특히 지난해 지역 이통장협의회 주관으로 펼쳐진 국도 승격 서명운동을 통해 취합된 주민 서명부도 전달했다. 서명에는 3만 1000여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국도 35호선 대체우회도로 개설과 관련해선 전체 구간(하북~동면 19.42㎞) 중 1단계인 상북 대석리~동면 가산리 간 13.7㎞ 개설을 위해 이 역시 2026년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반영해 줄 것을 공식 건의했다. 나 시장은 상북지역 택지 개발, 국지도 60호선 개통, 1028 지방도 건설 등 지역 여건의 변화에 따른 사업 추진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국가 계획 반영의 적극적인 검토를 건의했다. 구두 건의한 사송 하이패스IC 설치 건에 대해서는 주민의 요구대로 양방향으로 추진토록 사송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 승인권자인 국토부와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검토 및 추진할 수 있도록, 사업비용은 사업시행자가 적극 부담할 수 있도록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백원국 차관은 “건의된 양산의 현안사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나동연 시장은 “이번 정책 건의 사업은 양산의 지속적 발전과 시민 민원 해소를 위한 현안사업들로 조기에 추진되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 수련장 호국사찰 울산 신흥사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 수련장 호국사찰 울산 신흥사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의병 활동의 본거지 울산 신흥사 신흥사는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4길280(대안동)동대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이다.명랑대사가 신라635년(선덕여왕4)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창건 당시의 이름은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위한다는 뜻인 건흥사(建興寺)였다고 한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흥사 위쪽 기박산성을 중심으로 울산의병이 일어났는데,당시에 신흥사 주지였던 지운 스님이 왜군의 침략에 맞서 승병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던 호국사찰이다.이후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1646년(인조24)에 나라의 지원을 받아 경상좌병영 병마절도사 이급(李伋)에 의해 재건되었으며,그로부터3년 뒤인1649년에는 현재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이 조성되었다. 뒤이어1686년(숙종12)과1752년(영조28)에 각각 도량을 중창하였는데,대웅전 맞은편 신성(神成樓)에 병마절도사 이상국(李相國)이1757년에 쓴 현판 글씨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뒤에도 사찰 재건이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72년에 그려진 신흥산성도(新興山城圖)에서는 신흥사와 더불어 부속 암자인 낙서암(樂西庵),염불암(念佛庵),내원암(內院庵)을 함께 볼 수 있는데 이로써 국가 호국사찰로서의 규모와 군사지정학적 중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98년에는 현재의 대웅전을 새로 지으면서 원래 대웅전으로 쓰이던 건물은 왼쪽으로 옮기고 이름을 응진전으로 바꾸었으며,신성루,삼성각,적묵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신흥사의 규모는16만5,289㎡에 이를 정도로 매우 넓었으며,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사찰 주변 약39㎢를 소유하였다. 1998년 신축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응진전,삼성각,만세루,적묵당 등의 당우(절의 건물)가 있다(울산디지털 문화대전). 2.보물 석조아미타여래좌상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신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대세지-관음보살좌상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상 중 본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재질은 불석(拂石,규산염의 일종으로 흰색의 광물)이다.문화재청에서2021년12월22일 보물로 지정하였다. 이 불상은 발원문에1649년 불석의 산지였던 어천(현재 포항 오천읍)에서 돌을 채석해 조성하고 배를 이용해 신흥사까지 옮겨온 사실이 밝혀져 있어 당시 불석 불상의 제작지와 이동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힌 첫 번째 사례이다.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17세기 전반기 전국에 걸쳐 활동한 조각승 영색(英賾;英頤)이 경상도 지역에서 불석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만든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기년명 불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조각승 영색은‘英賾’(영색)또는‘英頤’(영이)라고도 쓰며,신흥사 불상은 양주 회암사 불상 다음으로 그가 수조각승이 되어 두 번째로 제작한 불상이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은 짧은 목에 머리를 약간 숙인 결가부좌의 자세를 하고 있으며,짧은 상반신에 비해 다리 간격이 넓고 무릎이 높은 편이어서 하체의 무게감이 느껴진다.비교적 넓적한 얼굴과 긴 눈썹,작고 오뚝한 코,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깊게 팬 입술 가장자리와 볼록하게 올라온 턱에서 온화하면서도 개성 있는 인상이 느껴진다.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1649년이라는 명확한 제작 시기,영색이라는 수조각승,아미타불상이라는 존명 등을 바탕으로17세기 중엽경 불상 조성의 기준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뿐만 아니라 재료의 산지(山地)와 이운 과정을 발원문을 통해 알 수 있다. 불상 자체와 복장 유물인 발원문1점,후령통1점,직물7점,보석류1점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다.후령통(候鈴筒)은 불상이나 불화 등을 조성할 때,금,은,칠보 등을 담는 복장(腹藏)을 넣는 통이다(문화재청). 3.화랑도 전통무예의 성지 울산,신흥사 울산지역에서 화랑도의 전통무예를 되살리기 위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신라 화랑무예 등 전통무예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간담회가30일 울산광역시 울주군의회 김상용 의원(행정복지위원장)주관으로 의사당1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울산종합일보, 2023. 3.30). 간담회는 정우식 의원(경제건설위원장)과 이상우 의원,진병석 울주군 문화체육과장,전통무예 화랑도 진흥원 김부기 원장과 윤돈규 회장,최영길 전 태권도 협회 고문,김민호 영산대 동양무예학과 교수,울산학춤보존회 김성수 고문 등 지역 전통무예 및 문화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화랑도 진흥원장의 상 무예의 고장 울산,화랑도 수련장 울주 등 신라 화랑무예와 지역의 연관성 설명으로 시작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울주군 전통무예 지정 및 관련 조례 제정 등 활성화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울산광역시 전통무예 지정을 위한 화랑 무예 예술단 오디션 행사가 열렸다(시사우리신문, 2023.3.1).화랑도 예술단은3월1일 시청 옆JIB엔터테이먼트에서 오디션 행사를 개최하였다.전통무예의 고장 울산은 옛날부터 신라의 수도 경주를 방어하는 수도방위 사령부 역할을 담당하였다.울산은 상무예 고장으로 무예를 숭상하는 지역이다.울산지역의 울주군 언양읍 천전리,울산광역시 북구 신흥사 등은 화랑도의 수련지로 알려졌다. 필자는 지난3월22일 울산 신흥사를 답사하면서 기박산성,전시관 등을 둘러보았다.기박령은 도로 오르막 경사가 심하였으며,기박령에서 신흥사로 내려가는 길은 니리막이 심하였다.신흥사에 울산 정자해변은 가까웠으며,신라시대 이래로 왜구가 경주로 침범할 때 자주 이용하던 침투로였다. 이 길목에 있는 신흥사는 자연스럽게 호국사찰의 역할을 담당하였다.임진왜란 당시에는 신흥사 스님들이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군량미도 조달하였다.필자는 신라시대 화랑도의 수련지로 알려진 천전리 각석은3월20일과21일 답사하였다.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김유신 장군을 모신 숭무전과 흥무공원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김유신 장군을 모신 숭무전과 흥무공원

1.숭무전(崇武殿) 숭무전(崇武殿)은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314번지에 있다.숭무전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흥무대왕(興武大王)김유신(金庾信, 595~673)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드리는 제전(祭殿)이다.김유신은 가야국(伽倻國)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13세손으로 신라 진평왕(眞平王17년, 595년)때 만노군(萬弩郡,지금의 충청북도 진천)태수 김서현(金舒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화랑이 되어 진평왕51년(629)낭비성(娘臂城)에서 고구려군에게 처음 승리한 이후 백제,고구려군과 여러 차례 싸워 큰 공을 세웠다.안으로는 상대등 비담(毗曇)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며,진덕여왕8년(654)에는 김춘추(金春秋)를 태종무열왕으로 옹립하였다.태종무열왕7년(660)에는 백제를 병합하고 문무왕8년(668)에는 고구려를 통합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신라 최고의 관직인 태대각간(太大角干)을 제수하였고,문무왕13년(673) 79세로 세상을 떠나자 금산원에 장사지냈으며 그 뒤 흥덕왕10년(835)에 흥무대왕으로 추봉하였다. 1992년에 전각을, 1993년에는 부속건물을 세워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었다.편액의 글씨는 김대중(金大中)(1924~2009)전 대통령이 썼다. 2.흥무공원 경주시는 충효동 산7-1번지 일원의7,500여 평의 부지에 주민편의시설을 갖춘 근린공원을 조성하고2005년10월19일 지역주민 등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거행했다.흥무근린공원은2004년11월16일 공사에 착공하여 국비20억 원,경주시비1억 원 등21억 원을 투입하였다. 기반시설,화장실1동,주차장,가로등을 설치하고,수목 및 초화류2만4천 본을 심었다.공원 이름을 흥무공원으로 명명하였다.흥무근린공원은 경주시청 산림과 주관으로 다인산업개발(주),㈜태호,강산조경(주),㈜이주산업개발,미광계전 등의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였다. 넓은 잔디밭이 있고,시원한 나무 그늘이 많은 공원으로,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피크닉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봄에는 공원 앞 도로‘흥무로 벚꽃길’에서 아름다운 벚꽃을 감상할 수 있고,가을에는 은빛 물결로 살랑거리는 억새밭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기 좋아 여행객들이 많이 방문한다.공원 옆길을 따라 걷다 보면‘센과 치히로 통로’라 불리는 작은 굴다리를 통해 맛집‘금산재 칼국수 집으로 갈 수 있다. 흥무공원 바로 위에는 또 김유신 장군 영정,위패가 모셔진 숭무전,재실인 금산재가 있다.흥무공원에서 철길 지하통로를 지나면 더 넓은 잔디밭이 전개된다.이곳 나무 그늘도 피크닉하기 좋다.피크닉과 함께 등산을 즐기고 싶다면 인근에 야산과 같은 송화산 쉼터도 있다.짧은 거리의 산행도 가능한 곳이 흥무공원이다. 3.흥무대왕(興武大王)어록비(語錄碑) 知成功之不易念守成之亦難(지성공지불이념수성지역난)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수성 또한 어렵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어록비음기(語錄碑陰記) 송화산(松花山)금산원(金山原)에 흥무대왕(興武大王)김유신(金庾信)장군의 천년 유택이 자리하고 있으며 신라에서는 능하의 송화방(松花坊)에 원찰인 금산사(金山寺)를 국가에서 세워 해마다 나라에서 향사를 주관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조선조 이곳에 금산재(金山齋)ᅩ를 세워 향화를 이어오다가 근년에 숭무전(崇武殿)으로 높여 유림(儒林)과 전국에서 모여든 후손으로 춘추향사를 봉향하고 있다. 숭무전 아래 공원 조성이 논의되어 오던 중 가락중앙종친회 김봉호(金琫鎬)회장의 노력으로 예산21억 원이 확보됨으로써 경주시장 백상승(白相承)의 주관하에9,000여평의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고2005년10월19일 준공식과 함께 흥무공원(興武公園)으로 명명하였다.유서 깊은 이곳 산록에는 대왕의 화랑정신(花郎精神)이 스며있는 곳,만인들이 찾아와 대왕의 위훈을 숭모하고 산책하며 심신을 단련하는 공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智•德•勇을 겸비한 대왕은 나가서는 양장(良將)이요,들어와서는 현상(賢相)으로 많은 유훈을 남겼는데 그 중“창업에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경영 또한 어렵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는1300여년 전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로 오늘날 국가나 기업을 경영하는 지도자들은 명심해야할 교훈이기에語録碑에 새겨 귀감으로 삼고저 한다. 이 어록비는 가락중앙종무위원회에서 세우다. 가락기원1965년 서기2006년4월 일 세움 4.송화방지(松花坊址),연리지(連理枝) 송화방지(松花坊址)는김유신 장군 가문 원찰 터 자리라고 전해져오는 곳에 세운 비석이다.김유신 장군이 돌아가신 후 재매부인이 여기에 절을 짓고 출가하여 송화방이라고 이름 지어 김씨 가문의 원찰로 삼아 장군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송화방지 비석 옆에 수령이100년쯤 되는 팽나무 연리지 한 그루가 있다.이곳은 한반도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김유신 장군의 정기가 서려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여기에 있는100여 년 팽나무 연리지는 더욱 뜻이 깊다.나라의 경사,부모에 대한 효심,친구간의 우정,부부간의 애정 등을 상징한다고 여겨 옛 문헌에도 귀하고 경사스러운 일이라 전해온다. 이 나무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왼쪽으로 돌면 아들을 낳게 해주고,오른쪽으로 돌면 딸을 낳게 해준다고 한다.그리고 남녀가 손을 잡고 같이 돌면 사랑의 묘약이 되어 백년해로하게 된다고 한다. 5.금산재 칼국수 금산재(金山齋)는 김유신 장군의 제사를 모시는 재실이다.금산재를 관리하는 관리사가 옆에 있다.숭무전,금산재를 관리하는 후손이 칼국수 집을 운영하고 있다.이 식당은 맛집으로 소문나 있어 김유신 장군 묘소,흥무공원,숭무전,금산재를 답사하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식사하고 있다. 금산재 관리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가는 길은 흥무공원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면 된다.두 번째 길은 김유신 장군 묘소에 주차를 하고,숭무전으로 연결되는 산책로를 따라 금산재로 걸어가면 된다.흥무공원은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승용차로5분여 거리에 있는 근린공원이다.흥무공원은 나들이하기 좋은 경주의 여행지로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금산재 칼국수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흥무공원 넓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철책을 따라 일직선으로 쭉 가다 보면 작고 좁은 지하통로가 보인다.철로 밑으로 난 지하통로이다.얼핏 보면 어두컴컴하다.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처음 지나가는 사람들은 섬뜩함도 느낀다. ‘공포의 터널’로 알려져 있다.지하 통로 위로는 동해남부선 철로가 지나간다.오후 늦게 지하 통로를 지나다 보면 산속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까지 더해 으스스한 느낌마저 드는 곳이다.저녁에는 조명이 켜지지만 지나가기가 껄끄러운 곳이다. 그러나 요즘MZ세대들에게는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소문나 인기 포토존이다.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지하 통로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2002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영화를 봐야 한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극장 애니메이션 영화이다.일본에서2001년에 개봉하고,국내에는2002년에 개봉했다.영화에 나오는 낯선 터널 같은 수상한 공간이 바로 여기 지하 통로의 모습과 비슷하다. 영화에는 수상한 터널을 통과하면 금지된 신들의 세계가 펼쳐지는데,흥무공원 지하 통로를 지나면 초록의 잔디가 깔린 아름다운 모습의 풍광이 펼쳐진다.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배향을 하는 사당인 숭무전과 부속 건물인 금산교육관,금산재가 눈 앞에 펼쳐진다.영화의 한 장면과 비슷하다.영화를 즐겨 보던MZ세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치히로의 부모는 수상한 터널을 지나 신들의 음식을 먹은 뒤 돼지로 변한다.그러나 흥무공원 지하 통로를 지나면 맛있는 금산재 칼국수 집이 나온다. 고택의 정취가 느껴지는 금산재 칼국숫집은 금산재를 관리하는 건물이다.식당 메뉴는 칼국수,들깨 칼국수,부추전,수육이 있다.손님들이 적을 때는 한옥 고택 대청마루에 앉아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칼국수의 맛을 볼 수 있다.손님들이 많을 때는 야외 천막에서 식사할 수 있다. 식당이 잠시 쉬는 시간은 오후3시부터4시까지1시간이다.이 시간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리사 바로 옆 잔디가 깔린 금산재 대청마루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요즘 핫한 곳인 지하 터널도 구경하고,연리지 나무 한바퀴 돌고,흥무공원 산책 후 칼국수로 식사하면 좋다. 필자는2월15일에 김유신 장군 묘소를 참배하고,임신서기석을 최초로 발견한 석당 최남주 선생을 기리는 석당공원을 답사하고,흥무공원을 구경한 후 금산재,숭무전을 둘러보았다.숭무전은 출입할 수 없어 담장 바깥에서 사진을 찍었다.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미추왕릉 죽엽군과 김유신 장군 혼령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미추왕릉 죽엽군과 김유신 장군 혼령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미추이사금(미추왕)즉위 미추이사금(262년~284년)이 즉위하다(262년01월).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 미추 이사금(味鄒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또는 미조(味照)라고도 하였다.].성은 김씨이다.어머니는 박씨로 갈문왕 이칠(伊柒)의 딸이다.왕비는 석씨 광명부인(光明夫人)으로 조분왕(助賁王)의 딸이다. 그의 선조 알지(閼智)는 계림에서 태어났는데 탈해왕(脫解王)이 데려다가 궁중에서 길러 후에 대보(大輔)로 삼았다.알지는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은 아도(阿道)를 낳았으며,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보(郁甫)를 낳았다.그리고 욱보는 구도(仇道)를 낳았는데 구도가 곧 미추왕의 아버지이다.첨해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임금으로 세웠다.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초가 된다. 23년(서기284)봄2월,나라 서쪽의 여러 성을 두루 돌며 위로하였다.겨울10월,임금이 돌아가셨다.대릉(大陵)[또는 죽장릉(竹長陵)이라고도 한다.]에 장사 지냈다. 2.미추왕릉과 죽엽군(竹葉軍) 유리왕대 이서국 사람들이 침략하자 미추왕릉에서 죽엽군이 나와 물리치다.제14대 유리왕(儒理王)대에 이서국(伊西國)사람들이 와서 금성(金城)을 공격하였다.현재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있던 소국으로,『삼국유사』권1기이1노례왕조의 기록에 따르면,유리왕19년(서기42)에 신라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한다.금성은 신라 초기의 궁으로서,혁거세거서간21년(서기전37)에 축조되었으며,그에 관한 기록이 소지마립간22년(500)까지 나온다. 우리가 크게 막으려 했으나 오랫동안 견딜 수 없었다.홀연히 이상한 병사가 있어 와서 도와주었는데 모두 댓잎[竹葉]을 귀에 꽂고 있었다.우리 병사와 힘을 합쳐 적병을 공격해 격파했다.적군이 물러간 후에[이상한 병사들이]돌아간 곳을 알 수 없었다.다만 대나무의 잎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있음을 보고 그때서야 선왕에 의한 음덕의 공이 있었음을 알았는데,이로 인하여 죽현릉(竹現陵)이라 하였다. 3.김유신 장군과 미추왕 혼령의 대화 삼국유사 권 제1기이(紀異第一)혜공왕대 유신공이 원통함을 미추왕에게 호소하다.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 오래 지나 제36대 혜공왕(惠恭王)대인 대력(大曆) 14년 기미(己未) 4월에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유신공(庾信公)의 무덤에서 일어났다.그 속에 한 사람이 준마를 타고 있었는데 모습이 장군과 같았다.또한 갑주를 입고 무기를 든40여 명의 군사가 뒤를 따라와서 죽현릉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능 속에서 우는 소리 혹은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크게 들렸다.그 호소하는 말에, “신은 평생에 난국을 구제하고 삼국을 통일한 공이 있었습니다.지금은 혼백이 되어 나라를 진호하여 재앙을 없애고,환란을 구제하는 마음을 잠시도 가벼이 하거나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지난 경술년(770)에 신의 자손이 죄도 없이 죽음을 당하였으니 군신들이 저의 공훈을 생각지 않습니다.신은 다른 곳으로 멀리 가서 다시는 힘쓰지 않으려니 왕께서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왕이 대답하여 이르기를“오직 나와 공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이오.공은 전과 같이 노력해 주시오.”하였다. [유신공이]세 번 청하였으나[미추왕은]세 번 모두 허락하지 않았고,회오리바람은 이내 돌아갔다. 혜공왕이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바로 상신 김경신(金敬信)을 보내어 김공의 능에 가서 사죄하고 공을 위하여 공덕보전(功德寶田) 30결을 취선사(鷲仙寺)에 내리어 명복을 빌게 하였다.이 절은 김공이 평양을 토벌한 후 복을 빌기 위해 세운 곳이기 때문이다. 미추왕의 혼령이 아니었더라면 김유신 공의 노여움을 막지 못했을 것인즉,왕이 국가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크지 않다고 할 수 없다.그러므로 나라의 사람들이 그 덕을 기리며 삼산(三山)과 함께 제사 지내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서열을 오릉(五陵)위에 두어 대묘(大廟)라고 불렀다. 필자는 경주에 있는 미추왕릉을2월7일에 방문하였다.날씨가 영하로 떨어져 쌀쌀하여 사진 찍을 때 손이 시렸다.경주 대릉원 내에 있는 미추왕릉을 답사하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죽엽군(竹葉軍)을 연상하면서 왕릉 옆의 대나무도 사진 찍었다.넓은 대릉원을 구경하고 천마총 앞에까지 갔지만 오후 늦은 시간이라 관람은 하지 않았다.대신 대릉원 영상관을 둘러보았다. 미추왕릉의 남쪽에 숭혜전이 있어 해마다 제향을 받들고 있다.외형은 둥근 봉토분이며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다른 무덤과 마찬가지로 돌무지덧널무덤일 가능성이 있다.청도의 이서국이 금성을 공격해오자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병사들이 홀연히 나타나 나라를 구하고 왕릉 속으로 사라졌다고 하여 죽장릉(竹長陵)혹은 죽현릉(竹現陵)으로 불렀다고 한다.

양산시, 내년 신규 국비사업 추진 현황 점검 - 3월 관리자회의 개최 …

양산시, 내년 신규 국비사업 추진 현황 점검  - 3월 관리자회의 개최 -

양산시는 5일 2025년도 신규 국비사업 추진 현황 점검 및 국비 확보 총력을 위해 신규 국비사업 현황 보고를 주제로 2024년 3월 관리자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신규 발굴사업은 30개 부서에서 61건을 제출했으며, 이중 가능사업은 29건, 장기검토 및 전환사업은 10건, 불가사업은 22건으로 총 사업비는 6,619억원이다. 부서별 검토를 거쳐 추진가능 하다고 판단한 사업은△덕계초등학교 일원 지중화 사업 △친환경 표면제어 솔루션 허브 구축사업 △통도사 경학원 건립 △낙동선셋 바이크파크 사업 △대운산 생태숲 무장애나눔길 조성사업 △자녀안심 그린숲 조성 △신평지구 도시재생사업 △식량 자급률 향상을 위한 나물콩 이모작 작부체계 시범사업 △화제처리분구 외 2개소 하수관로 정비사업 등 29건이 제출됐다. ​ 양산시는 각 부서에 국비 신청 기한 내에 시에 필요한 사업이 신청될 수 있도록 조치 및 투자심사, 중기지방재정계획, 공유재산관리계획 반영 등 사전 행정절차 이행 등을 안내했으며, 3월 말 경상남도에 사업 신청을 할 계획이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가능사업이 11건 늘어난 것은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재정분권에 따라 지특회계 80개 세부사업이 지방전환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신규 국비 발굴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하지만 정부에서도 각종 공모사업을통해 국비를 지원하고 있으므로 공모사업 신청 및 사업이 선정될 수 있도록업무 추진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경상남도에서도 2025년 국비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신규 국비사업 뿐만 아니라 계속사업에 대해서도 중앙부처및 경상남도 사업부서 방문 설명 등 국비 확보에 총력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의 수련지 경주 금장대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의 수련지 경주 금장대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화랑도의 기원 삼국사기 제4권 신라본기 제4진흥왕 조에 보면 화랑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진흥왕은 처음에는 미녀를 뽑아 원화 제도를 도입하였다.두 여성의 질투로 제도를 폐지하게 되었고,나중에 잘 생긴 남자를 선정하여 곱게 꾸며 화랑이라고 하였다. 37년(서기576)봄,처음으로 원화(源花,화랑의 전신)를 받들었다.일찍이 임금과 신하들이 인재를 알아볼 방법이 없어 걱정하다가,사람들 여럿을 모아 함께 놀게 하고 그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본 후 천거하여 쓰고자 하였다.마침내 두 미녀를 뽑았으니 하나는 남모(南毛),하나는 준정(俊貞)이었다. 3백여 명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런데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서로 질투하다가,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에 유인하여 억지로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하고는 끌고 가서 강물에 던져 죽였다.준정은 사형에 처해졌으며,무리들은 화목을 잃어 흩어지고 말았다. 그 후에 다시 잘생긴 남자를 택하여 곱게 꾸며‘화랑(花郞)’이라 이름 짓고 그들을 받드니,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도의를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는데,산과 물을 찾아 노닐고 즐김에 멀더라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이로 인하여 그 사람됨의 악함과 바름을 알게 되어,선량한 이를 택하여 조정에 천거하였다. 김대문(金大問)은『화랑세기(花郞世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이로부터 나왔고,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부터 생겼다.” 최치원은「난랑비(鸞郞碑)」서문(序文)에서 말하였다. “우리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으니‘풍류(風流)’라 한다.가르침의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거니와,실로 이는 유불선 삼교(三敎)를 포괄하여 뭇 백성들을 교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에 들어와서는 효를 행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함은 노나라 사구(司寇,공자)의 가르침이고,억지로 하는 일을 하지 않고 말없는 가르침을 실천함은 주나라 주사(柱史,노자)의 뜻이며,모든 악행을 하지 않고 모든 선행을 하라 함은 축건태자(竺乾太子,석가모니)의 교화이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은『신라국기(新羅國記)』에서 말하였다. “귀족의 자제 중 아름다운 이를 택하여 화장을 시키고 곱게 꾸며서 이름을 화랑(花郞)이라 하였는데,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높이 받들어 섬겼다.” 2.금장대 (1)금장대는 신라팔괴의 하나 금장대는 형산강과 경주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곳은 경치가 빼어나 경주의 하늘을 지나가는 모든 기러기들이 반드시 쉬어간다[金藏(丈)落雁]는 경주 삼기팔괴(三奇八怪)의 장소 중 한 곳이다.금장대 아래 형산강의 본류인 서천과 북천이 만들어낸 예기청소(藝妓淸沼)는 경주가 고향인 소설가 김동리의 소설‘무녀도(巫女圖)’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자비왕 때 한 여인이 왕과 연회를 즐기는 도중에 실수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며,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자연의 아름답고 영원함과 유한한 인간의 삶,과거를 통해 오늘을 경계하며 시를 읊조리던 공간이었다. 또 임진왜란 때 경주성(慶州城)수복 정찰기지 역할을 하였고,왜군들이 물러났을 때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던 곳이기도 하다.선사시대 경주인들의 주술적 기원을 담고 있는 얼굴,동물 등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암각화(岩刻畵)도 발견되었다.맑고 탁 트이고 우뚝한 금장대[금장청광(金藏淸曠)]는 형산강의 대표적인 절경(絶景)으로 형산강팔경(2016)에 선정되었고,석장동 암각화는 경상북도 기념물(1994)로 지정 보전되고 있다. 금장대는 신라 팔괴의 하나이다.금장대는 화랑도의 수련지였으며,화랑이 하늘에 맹세한 곳이었다.임신서기석이 금장대 인근에 있는 석장사지 근처 천수답 논에서 발견되었다.임신서기석의 임신년은550년, 612년이라는 주장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용현 씨는‘임신서기석의 문체와 연대의 재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임신서기석 연대가 문체 분석을 통해552년임을 입증했다.그동안 임신서기의 연대는612년설이 주류로 인식돼왔다. 국립경주박물관은“임신서기석은 신라시대 젊은이 두 사람이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충성을 다바칠 것과,유교경전을3년 안에 습득할 것을 맹서한 것으로,임신년 연대에 대해서는 그간 정해진 의견이 없었다.”며“간지(干支)연대가60년마다 반복되는 데다가 결정적인 자료가 결여됐던 탓에 유교 경전이 신라 사회에서 학습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을 기준으로732년, 612년, 552년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용현 학예연구사는 논고에서는‘맹서하기를…라고 맹서한다’라는 서술어 반복 문체가6세기대 신라 금석문에 보이는 것을 근거로 임신년의 연대를552년으로 특정했다.”며“이번 연구를 계기로 임신서기석이 국어학에서 이두 발전 연구의 기준 연대를 새롭게 제시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뉴스1, 2017, 1.24). 김유신은 화랑3년째인612년 열박산(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에 들어가 하늘에 빌었다. 15살 때부터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렸으며, 17세 때에는 외적을 물리치기 위에 홀로 중악(中嶽)석굴에 들어가 빌었더니 산신이 나타나 방술(方術)을 전해 주고는 오색찬란한 빛을 남긴 뒤 모습을 감쳤다. 18살에는 열박산(咽薄山)골짜기에 들어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자 빛이 내려와 보검에 실리고 칼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했다. (2)형산강팔경(兄山江八景),경주8색 형산강(江)은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忍耐山)에서 발원(최장63.9km)하여 천년 신라의 역사,문화와 근대 산업 정신을 품고 있다.형산강 유역의 경주시와 포항시,그리고 경상북도는 상생 발전 협력을 위하여 형산강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그 사업의 일환으로2016년2월 형산강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경관지8경을 선정하였다. 영일대(迎日臺),포항운하(浦項運河),부조정(扶助亭),양동마을(良洞마을),보문 물너울교(普門물너울橋),금장대(金藏臺),월정교(月精橋),삼릉솔숲(三陵솔숲). ‘경주8색’으로 꾸미는 야간경관 개선사업,경주8색은 화랑 적색,불국 홍색,서라벌 황색,남산 녹색,동해 청색,첨성 자색,금관 금색,삼국흑색. (3)제78차 국제펜대회 금장대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곳에서 함께 나눈 시낭송회가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면서 2012. 9. 12 제78차 국제펜대회 금장대 시낭송회 개최 기념 금장대藏에서 권위Gwon Wi(權暲, 1552-1630) 동도의 전한 자취 찾아 두루 돌아왔지만 고요한 하늘에 새도 지나지 않는구나 오직 금장대 아래로 흐르는 물이 있어 봄바람에 오히려 옛 연기 물결 띠 되어 흐르네 3.신라 삼보,삼기 팔괴 삼보(三寶)는 신라를 지킨 보물이다. ‘황룡사 장육존상’과 하늘이 내렸다는‘천사옥대’, ‘황룡사 구층목탑’을 지칭한다.모두 현존하지 않는다.몽고 침략으로 소실된 장육존상은 현재는 황룡사지에 석조대좌만 남아있다.『삼국유사』에는‘고려 왕이 신라를 치려고 하다가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삼기팔괴(三奇八怪)는 경주의 예로부터 세 가지 진기한 보물과 여덟 가지 괴상한 풍경을 말한다.삼기(三奇)는 금척(金尺),옥적(玉笛),화주(火珠)이다.금척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받았다는 금으로 만든 자다.묻힌 곳이 금척리고분군이라 전해진다.옥적은 옥으로 만든 피리로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의 혼령이 합해져 신문왕에게 내려 준 만파식적이라는 설이 있다. 화주는 선덕여왕이 지녔던 수정 돋보기로 햇볕을 비추면 솜에 불이 붙어 화주라고 불렀다.신라 옥피리2점과 분황사 탑에서 나온 돋보기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삼기에는 성덕대왕신종이 들어가기도 한다. 팔괴는 금장낙안(金丈落雁),남산부석(南山浮石),문천도사(蚊川倒沙),계림황엽(鷄林黃葉),압지부평(鴨池浮萍),백률송순(栢栗松筍),불국영지(佛國影池),나원백탑(羅原白塔),서산모연(西山慕煙),금오만하(金鰲晩霞)이다. 금장낙안(金丈落雁)의 금장은 서천과 북천(알내)이 합치는 곳으로 임금이 노닐던 금장대를 말한다.높은 바위에 올라서 바라보면 서라벌이 한눈에 굽어 보이는데,예기청소 푸른 물에 비치는 전망이 아름다워 날아가던 기러기도 잠시 내려서 쉬어 갔다고 한다. 남산부석(南山浮石)은 버선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버선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며,남산의 국사골에 있다.큰 바위 위에 또 한 개의 바위가 얹혀 있는데,실을 넣어 당겨보면 바위가 공중에 뜬 채로 있기 때문에 실이 빠져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문천도사(蚊川倒沙)는 문천(남천)의 모래가 너무나 부드러워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모래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문천은 예로부터 모기내 또는 물개(모래)내라고 불렸다. 계림황엽(鷄林黃葉)은 계림의 나뭇잎이 움이 트면서 붉은색을 띄는 것이다.압지부평(鴨池浮萍)은 안압지에 부평초가 무더기로 떠다니는데,뿌리가 땅에 닿지 않은 채 바람에 밀려 다니는 모양이 또한 장관이다. 백률송순(栢栗松筍)은 소나무에는 순이 돋아나지 않는데 백률사에 있는 소나무는 가지를 치면 거기서 새순이 난다.불국영지(佛國影池)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얽혀있는 영지에는 날이 밝으면 불국사의 전경이 물에 비치는데,다보탑만이 보이고 석가탑은 비치지 않으므로,사람들은 석가탑을 무영탑이라 부른다. 나원백탑(羅原白塔)은 현곡면 나원리에 있는 나원리 오층석탑이 백색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오래도록 흰 빛깔을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다.서산모연(西山慕煙)의 서산은 선도산인데,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성산으로 선도성모가 계신 곳으로 크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석양이 비친 노을이 빼어나 서산모연이라고 한다. 금오만하(金鰲晩霞) :금오산(남산)은 언제나 아지랑이가 끼어 있다.아지랑이가 저녁놀에 반사되어 연분홍 빛으로 피어오르는 광경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아름다움이다. 필자는 금장대를2월4일, 2월7일2회에 걸쳐 답사하였다.첫 번째 방문 때는 저녁 시간대이고 흐린 날씨여서 암각화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 맑은 날인2월7일에 다시 방문하였다.맑은 날이어서 암각화가 잘 보여 사진 찍기 좋았다.재방문한 보람이 있었다.

웅상 회야강 르네상스’ 회야강 산책로 조성 속도

웅상 회야강 르네상스’ 회야강 산책로 조성 속도

- 나동연 양산시장, 회야강 산책로1·2단계 구간 준공 현장 점검 - 나동연 양산시장은 26일 ‘웅상 회야강 르네상스’ 비전에 포함된 회야강의 특색있는 산책로 조성 3단계 사업 중 최근 준공한 ‘회야강 산책로(백동교~주남교) 정비공사’ 현장을 점검하고 향후 차질 없는 사업 추진을 당부했다. 양산시는 회야강 특색있는 산책로 조성 1~3단계 사업 중 백동교~주남교에 이르는 1·2단계 구간 산책로 1.2km 사업구간 내 회야강(백동교~주남교 구간)산책로 정비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시는 소남교~주남교 구간 국공유지 약 3,000㎡에기존에 무분별하게 설치된 불법 적치물 등을 철거하고, 국공유지 자투리 땅 활용 및 일부 사유지를매입해 사업구간 토지를 확보했고, 곧바로 공사에 착수해 지난달 준공했다. 이번에 조성된 산책로는 시민 편의를 위해 티하우스와 그늘쉼터, 친환경 화장실, 적재적소 의자 설치, 산책로 입구 3개소 야간경관을 가미한 조형물 등을 설치해 ‘웅상 회야강 르네상스’에 걸맞는 특색있는 산책로로탄생하게 됐다. 또 오리소공원 건너편(주남교방향)에는 주차장을 조성해 그동안 공원 이용에 차량접근이 어려웠던 부분을 이번 산책로 사업을 통해해소하게 됐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어로 ‘부활’을 의미하는데,이번에 준공된 산책로는 회야강, 나아가 웅상의 부활과 부흥을 알리는 신호탄이될 것”이라며 “웅상 회야강 르네상스 대단원의 막이 성공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사업추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양산시, ‘양산시청렴주니어보드’ 발대식 개최

양산시, ‘양산시청렴주니어보드’ 발대식 개최

- MZ세대 젊은 공직자의 새로운 시각으로 청렴한 양산 구현 기대- 양산시는 29일 비즈니스센터 세미나 제1실에서양산시 청렴의 새로운 소통창구 역할을 위한 ‘양산시 청렴주니어보드’ 발대식을 개최했다. 내부청렴도 향상을 위한 특별 대책의 일환으로 결성한 MZ세대 젊은 공직자의 새로운 시각으로 조직문화 개선과 청렴 관련 정책 마련을 위한 회의체인 「양산시 청렴주니어보드」는 8급 이하 근무 경력 7년 이내의 20~30대 직원 중 희망자신청을 받아총 30명의 주니어보드 위원을 모집해 구성됐다. 특히 이번 모집된 주니어보드 위원은 3개의 분과(청렴시책발굴 분과, 청렴도 향상 분과, 청렴문화확산 분과)로 나누어 젊은 실무자들의 창의적인 청렴 정책 아이디어 의견을수렴하고 다양한 소통 활동을 통해 직렬·직급 간 세대 차이를 극복하여 조직 전체의화합을 도모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양산시는 이번 발대식과 함께 브라운백 미팅을 실시해 기관장과 청렴 주니어보드 위원이 함께 청렴도 제고 방안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나누는 소통의 시간을 가져 다시 한번 청렴의지를 강화하고 공감하는 청렴문화를 확고히 했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젊은 실무자들로 구성된 청렴주니어보드가 우리시의 청렴 문화조성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청렴주니어보드에서 도출된 의견들을면밀히 살펴 소통하는 청렴시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석장사지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석장사지

1.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석장사지 임신서기석의 최초 발견자인 석당 최남주 선생 자제인 최정간(매월다암 원장,차문화연구가)씨가 밝히는 발견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35년 봄 경주군 현곡면 석장사지부근에서 농수로공사로 인해 신라시대 와당들이 출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황급히 달려갔다.천수답 경사 언덕 맨 아래쪽에서‘남산신성비’처럼 생긴 작은 강돌(川石)이 최남주의 눈에 들어왔다.자세히 보니 앞면이 치석되어 첫머리에 임신년(壬申年)이란 글자체가 음각되어 있었다. 석당 최남주는 분명히1934년 발견한‘남산신성비’의 자체(字體)와‘임신서기석’이 같다고 밝히고 있어 발견 시기도 일본인 오사카 긴타로의1934년과는 차이가 난다.석당 최남주는 소년시절 경주의 대유학자 김계사(김범부 스승)선생으로부터‘사서삼경’을 배웠고 보성고보 시절 은사 황의돈 선생(민족사학자)으로부터 고대 금석문 강독법을 배웠다.오히려 오사카보다 금석문 해독실력이 뛰어났다. 임신서기석은 향가 연구자인 김영회 씨의 해석에 의하면 화랑도가 하늘에 맹세한 내용이므로 화랑 서기석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그의 주장에 의하면 두 명의 화랑은 김유신 장군의3년 후배 정도 된다고 하였다.임신서기석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기 전에 조국영 도예가가 탁본을 한 것이 있다.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장소는 석장사지 인근이라고 한다.석장사는 신라시대 양지 스님이 주석한 사찰이다. 삼국유사 제4권 의해 제5(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양지사석(良志使錫:양지 스님이 지팡이를 부리다)조에 양지 스님 기록이 나온다. 승려 양지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다만 신라 선덕왕(善德王)때의 행적이 드러났을 뿐이다.지팡이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두면 지팡이가 저절로 시주의 집으로 날아가서 흔들면서 소리를 내었다.그 집에서도 이를 알고 재에 쓸 비용을 담아주었다.포대가 차면 다시 날아서 돌아왔다.그렇기 때문에 양지가 머무른 곳을 석장사(錫杖寺)라고 하였다. 양지의 신기하고 기이한 행적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이 외에도 여러 잡다한 기예에도 두루 통달하여 그 신묘함을 비길 곳이 없었다.또 글씨와 그림 실력도 뛰어났으니,영묘사(靈廟寺)의 장륙삼존상과 천왕상,전각과 탑의 기와,천왕사(天王寺)탑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과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이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이 외에도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을 썼다. 또 일찍이 벽돌을 조각하여 작은 탑 하나를 만들었고,아울러 삼천불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시고 예를 드렸다.양지 스님이 영묘사의 장륙상을 만들 때 선정에 들어가 삼매경에서 뵌 부처를 모형으로 삼았는데,온 성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하였다.그 당시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이 세상은 서럽더라. 서럽더라 무리여, 공덕 닦으러 절에 오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이 방아를 찧거나 다른 일을 할 때면 모두 이 노래를 부르는데,아마도 이때에 시작되었을 것이다.불상을 만들 때 든 비용은 곡식23,700석이었다.[혹은 금색을 칠할 때 쓴 비용이라고 한다.] 논평하여 말한다. “양지스님은 재주가 완전하고 덕이 충분하였지만 하찮은 재주에 자신의 능력을 숨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재 마치니 법당 앞에 지팡이는 한가로운데 고요히 향로에 향불 피운다네. 남은 불경 다 읽자 할 일이 없어 불상 빚어 놓고 합장하며 뵌다네. 2.동국대학교에서 발굴한 석장사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2006~2012년 신라 호국사찰 사천왕사 터를 발굴하였다.그리고 양지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진 녹유벽전의 여러 조각을 수습하였으며, 3종류의 벽전을 모두 복원하여2015년 이를 기념하는 양지사석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신라의 대표적 예술가를 꼽자면 서예가 김생,화가 솔거,음악가 백결,그리고 조각가 양지 스님이 있다(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세계일보, 2017, 2.18).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에서는1986년과1992년 두 차례에 걸쳐 학교 인근의 석장사로 추정되는 절터를 발굴하였다.그 결과‘錫杖(석장)’이라는 묵서가 적힌 자기가 발견되어 이곳이 바로『삼국유사』에 기록된 석장사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양지 스님이 만들었다는 삼천불탑과 관련된 많은 유물들을 발굴하는 성과가 있었다(한정호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 전임연구원,동대신문, 2010, 10.4). 석장사지에서 확인된 다수의 탑상문전은 울산 농소사지 전과 청도 불령사진 전과는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불상의 도상과 탑들이 표현되어 있어 고대 조각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작례로 평가되고 있다.또한 탑상문전 상부에 남아있는 위치 표시 부호 등을 통해 당시 전탑 조성이 치밀한 구성과 계획을 바탕으로 수립된 건축물임을 증명해주고 있다(동국대WISE캠퍼스 박물관 안내문). 석장사지에서 확인된 유물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물은 연기법송명문전이다.고대 인도부터 전해지고 있는 불탑 속에 다라니를 봉안하는 신앙이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적어도7세기 때부터는 유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석장사지 연기법송 탑상문전은 탑상문과 마찬가지로 불상과 탑이 번갈아가며 표현되고 있지만 배열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불상과 탑을 각각10구와10기씩 상하로 배치하고,탑과 탑 사이4행으로“모든 것은 원인에서 비롯된다(諸法從緣起).부처님은 그 원인을 말씀하셨다(如來說是因).모든 것은 원인에 따라서(羅彼法因緣盡),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是大沙門說).”라는 게송이 좌우가 뒤집힌 상태로 음각되어 있다. 3.석장사지 답사 석장사지는 경주시 석장동 옥녀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의 천재 조각가인 양지 스님이 주석했던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여 그 사역,규모,사명,그리고 출토 유물과 양지 스님과의 관계 등이 대부분 확인되었다. 1, 2차 발굴을 통해서 탑상문전,소조상편,연기법송명문전,금동불,각종 자기편 등 약450여 점의 유물이 확인되었다.이 중 주목되는 유물은‘석장’이라 쓰여진 자기편으로,『삼국유사』양지사석(良志使錫)조의 양지 스님이 주석했던 사찰인 석장사지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필자는2월4일 경주 석장사지를 답사하였으며,동국대WISE(경주)캠퍼스 박물관을2월7일 관람하면서 석장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사진 찍었다.박물관에 전시된 임신서기석 모형을 살펴보았으며,학생복지관 앞에 세운 커다란 임신서기석 조형물도 구경하였다. 경주 석장사지는 동국대WISE캠퍼스를 지나 경주 화랑마을 정문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있는 경주선교교회 옆의 등산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안내 표지판이 없어 오솔길 등산로로 올라가면서 석장사지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마침내 등산객들이 많이 다닌 주 등산로를 만나서 석장사지는 신우대가 있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우측으로 내려갔다.유심히 보니 신우대가 보여 올라갔다. 석장사지는 경사진 산자락에 남향으로 절터를 잡았으며,정면에서 오른쪽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메인 등산로에서 석장사지를 가기 위해서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도랑을 건너야 한다.도랑 위에는 나무를 잘라 만든 임시 다리가 있었는데,습기가 많아 파란 이기가 끼어 있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1, 2차 발굴 조사를 마친 후 사진으로 보니 석장사지는 신우대도 제거하고 주변이 정비되어 있었다.그러나1, 2차 발굴 후38년~32년이 경과하다 보니 신우대가 우거져 최초 모습과는 달라지고 잡풀이 우거졌다.앞으로 동국대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 매년 석장사지 주변의 신우대와 잡덩굴을 제거하여 유적지를 잘 보존했으면 좋겠다. 필자가 양산의 다방동 야생 차나무 군락지 환경보호를 하면서 신우대,칡덩굴을 제거하고 있기 때문에 신우대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신우대는 땅위에 있는 부분을 잘라도 땅속에 뿌리가 남아있어 쉽게 죽지 않는다.신우대를 제거하기 위해서 자른 후 뿌리 부분에 농약을 주입하면 된다.필자는 차나무 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농약을 주입하지 않고 일일이 뿌리를 힘들게 캐내고 있다.칡덩굴 역시 땅위의 줄기만 자르면 안 죽고 땅속의 뿌리를 캐내야 한다. 발굴조사 때 나온 기단석을 밑에 모아 놓고 그 위에는 기와 조각을 쌓아놓았다.사찰 건물의 주춧돌,축대의 돌도 보였다.신우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니 이따금 기와 조각이 보였다.필자는 기왓장 조각 중 큰 것은 기와 조각 쌓아놓은 곳에 가져가 올려놓았다.석장사지 답사 후에 내려 올 때는 올라갔던 등산로로 원점 회귀하지 않고‘휴앤락 오토캠핑장’으로 내려왔다. 4.화랑도 조직 구성에 승려 포함 석장사지는 주변에서 임신서기석이라는 중요한 유물이 나온 곳으로 주목을 받았다.임신서기석은 일제 시대 때 일본인이 이름을 붙였는데,내용은 화랑도가 나라에 충성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것을 하늘에 맹세하는 다짐의 글이었다.향가 연구자인 김영회 씨가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여 화랑도의 맹세,정신 등을 밝혔다. 화랑도를 닦는 자를 풍월도(風月徒),풍류도(風流徒),국선(國仙)이라고 불렀다.화랑 집단은 각기 화랑 한 명과 승려 한 명 그리고 화랑을 따르는 다수의 낭도(郎徒)로 구성되었다.낭도는 집에서 매일 노동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평민 이상의 계급이지만,중심 구성원은 진골(眞骨)과6·5·4두품이었을 것이다. 화랑도는 낭도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합하였으며 조국 수호,나아가서는 이상 세계 건설이라는 원대한 공동 목표를 위해 일정 기간 수련하는 단체였던 만큼 구성원 사이의 인적 결합은 매우 긴밀하였다.낭도는 대체로15∼18세로 구성되었으며,한 화랑이 이끄는 인원은200∼300명에서1,000명 안팎의 집단이었다.진평왕 때는 많으면7개 이상의 화랑 집단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였다. 화랑도 조직에 승려 한 명이 포함되는데,화랑 서기석이 석장사지 인근에서 발견된 것은 화랑도가 하늘에 맹세하면서 돌에다 내용을 새겨서 석장사에 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화랑 서기석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석장사가 폐사되어 절 바깥으로 떠내려가 흙 속에 묻혔을 것이다.

현장으로 복귀해 고통받는 환자들을 지켜달라

현장으로 복귀해 고통받는 환자들을 지켜달라

- 나동연 양산시장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양산시 호소문’ 발표 - - 시민불편 최소화 및 조속한 비상진료체계 가동 현장모니터링 강화 - 나동연 양산시장이 최근 의료계 집단행동과 관련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등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의료현장으로 전공의들의 조속한 복귀를 호소하고 나섰다. 양산시는 보건의료 재난위기 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 발령됨에 따라 26일 오후 비상진료대책 수립 일환으로 양산시재해대책본부장(본부장 나동연)의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양산시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번 호소문 발표는 보건의료재난 위기상황 극복 및 시민혼란 등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별도의 영상을 제작해 양산시 공식 유튜브에도 게시할 예정이다. 나동연 시장은 “최근 전공의 여러분들의 집단사직으로 촌각을 다투는 중증질환자들의 위급상황이 지속되거나 방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와 주실 것을 간곡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또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여러분들의 집단사직으로 환자들의 희생이 생기지 않을까 시민들은 우려하고 있다”며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 여러분들께서는 조속히 복귀하시어 질병과 사고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지켜달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나 시장은 “이번 진통이 우리 모두가 의료계 현실을 직시하고 화합과 상생의 기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나동연 양산시장은 지난 21일 박완수 경상남도지사와 함께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을 방문해 전공의 공백에 따른 운영현황 및 응급의료 상황, 의료공백에 따른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조속한 비상진료체계 가동을 위해 현장을 점검했다. 호 소 문 양산시장 나동연입니다. 전공의 여러분의 조속한 복귀를 호소 드리고자 이렇게 섰습니다. 먼저, 평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료인 여러분의 노고에 양산시를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노력과 헌신은 우리나라 의료 발전의 큰 원동력입니다. 특히 진료 일선의 전공의 여러분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증환자와 그 보호자들에겐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이 양산시의 큰 자랑이자 큰 자부심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전공의 여러분들의 집단사직으로 촌각을 다투는 중증질환자들의 위급상황이 지속되거나 방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에 양산시는 전공의 여러분들께서 하루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와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집단사직으로 환자들의 희생이 생기지 않을까 시민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 여러분들께서는 조속히 복귀하시어 질병과 사고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지켜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번 진통이 우리 모두가 의료계 현실을 직시하고 화합과 상생의 기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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