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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지방세 유공납세자 표창패 수여- 제58회 납세자의 날 맞아 6개 기업 표창 - 양산시는 제58회 납세자의 날(3월 3일)을 맞이하여 지방세를 성실히 납부하여 건전한 납세문화를 조성하고, 지방재정 확충에 기여한 6개 기업을 올해의 양산시 지방세 유공납세자로 선정해 표창패를 수여했다. 지방세 유공납세자 선정기준은 연간 지방세 납부액이 법인은 1억원, 개인은 3천만원 이상을 체납 없이 성실하게 납부한 자로 시 재정기여도, 지역사회 참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선정됐다. 올해 유공납세자는 디씨엠㈜(대표 정연택), ㈜희창유업(대표 박창현), 진양산업㈜(대표 조영태), ㈜블루인더스(대표 정천식), ㈜콜핑(대표 박만영), 아이씨이아이우방㈜(대표 이찬우) 총 6개 기업이다. 유공납세자 표창을 받은 업체들은 관련 조례에 따라 중소기업 육성자금 우선 배정 및 이자 특례 지원을 받으며 세무조사도 3년간 유예되는 혜택을 받는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지방세를 성실히 납부하고 지역 일자리창출에 기여한 수상자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납세자가 우대받고 존경받는 건전한 납세문화가 조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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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석장사지1. 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석장사지 임신서기석의 최초 발견자인 석당 최남주 선생 자제인 최정간(매월다암 원장, 차문화연구가) 씨가 밝히는 발견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35년 봄 경주군 현곡면 석장사지부근에서 농수로공사로 인해 신라시대 와당들이 출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천수답 경사 언덕 맨 아래쪽에서 ‘남산신성비’처럼 생긴 작은 강돌(川石)이 최남주의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앞면이 치석되어 첫머리에 임신년(壬申年)이란 글자체가 음각되어 있었다. 석당 최남주는 분명히 1934년 발견한 ‘남산신성비’의 자체(字體)와 ‘임신서기석’이 같다고 밝히고 있어 발견 시기도 일본인 오사카 긴타로의 1934년과는 차이가 난다. 석당 최남주는 소년시절 경주의 대유학자 김계사(김범부 스승) 선생으로부터 ‘사서삼경’을 배웠고 보성고보 시절 은사 황의돈 선생(민족사학자)으로부터 고대 금석문 강독법을 배웠다. 오히려 오사카보다 금석문 해독실력이 뛰어났다. 임신서기석은 향가 연구자인 김영회 씨의 해석에 의하면 화랑도가 하늘에 맹세한 내용이므로 화랑 서기석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두 명의 화랑은 김유신 장군의 3년 후배 정도 된다고 하였다. 임신서기석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기 전에 조국영 도예가가 탁본을 한 것이 있다. 임신서기석이 발견된 장소는 석장사지 인근이라고 한다. 석장사는 신라시대 양지 스님이 주석한 사찰이다. 삼국유사 제4권 의해 제5(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양지사석(良志使錫 : 양지 스님이 지팡이를 부리다) 조에 양지 스님 기록이 나온다. 승려 양지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선덕왕(善德王) 때의 행적이 드러났을 뿐이다. 지팡이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두면 지팡이가 저절로 시주의 집으로 날아가서 흔들면서 소리를 내었다. 그 집에서도 이를 알고 재에 쓸 비용을 담아주었다. 포대가 차면 다시 날아서 돌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양지가 머무른 곳을 석장사(錫杖寺)라고 하였다. 양지의 신기하고 기이한 행적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이 외에도 여러 잡다한 기예에도 두루 통달하여 그 신묘함을 비길 곳이 없었다. 또 글씨와 그림 실력도 뛰어났으니, 영묘사(靈廟寺)의 장륙삼존상과 천왕상, 전각과 탑의 기와, 천왕사(天王寺) 탑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과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이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이 외에도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을 썼다. 또 일찍이 벽돌을 조각하여 작은 탑 하나를 만들었고, 아울러 삼천불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시고 예를 드렸다. 양지 스님이 영묘사의 장륙상을 만들 때 선정에 들어가 삼매경에서 뵌 부처를 모형으로 삼았는데, 온 성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하였다. 그 당시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이 세상은 서럽더라. 서럽더라 무리여, 공덕 닦으러 절에 오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이 방아를 찧거나 다른 일을 할 때면 모두 이 노래를 부르는데, 아마도 이때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불상을 만들 때 든 비용은 곡식 23,700석이었다.[혹은 금색을 칠할 때 쓴 비용이라고 한다.] 논평하여 말한다. “양지스님은 재주가 완전하고 덕이 충분하였지만 하찮은 재주에 자신의 능력을 숨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재 마치니 법당 앞에 지팡이는 한가로운데 고요히 향로에 향불 피운다네. 남은 불경 다 읽자 할 일이 없어 불상 빚어 놓고 합장하며 뵌다네. 2. 동국대학교에서 발굴한 석장사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6~2012년 신라 호국사찰 사천왕사 터를 발굴하였다. 그리고 양지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진 녹유벽전의 여러 조각을 수습하였으며, 3종류의 벽전을 모두 복원하여 2015년 이를 기념하는 양지사석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신라의 대표적 예술가를 꼽자면 서예가 김생, 화가 솔거, 음악가 백결, 그리고 조각가 양지 스님이 있다(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세계일보, 2017, 2.18).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에서는 1986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학교 인근의 석장사로 추정되는 절터를 발굴하였다. 그 결과 ‘錫杖(석장)’이라는 묵서가 적힌 자기가 발견되어 이곳이 바로『삼국유사』에 기록된 석장사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양지 스님이 만들었다는 삼천불탑과 관련된 많은 유물들을 발굴하는 성과가 있었다(한정호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 전임연구원, 동대신문, 2010, 10.4). 석장사지에서 확인된 다수의 탑상문전은 울산 농소사지 전과 청도 불령사진 전과는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불상의 도상과 탑들이 표현되어 있어 고대 조각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작례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탑상문전 상부에 남아있는 위치 표시 부호 등을 통해 당시 전탑 조성이 치밀한 구성과 계획을 바탕으로 수립된 건축물임을 증명해주고 있다(동국대 WISE캠퍼스 박물관 안내문). 석장사지에서 확인된 유물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물은 연기법송명문전이다. 고대 인도부터 전해지고 있는 불탑 속에 다라니를 봉안하는 신앙이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적어도 7세기 때부터는 유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석장사지 연기법송 탑상문전은 탑상문과 마찬가지로 불상과 탑이 번갈아가며 표현되고 있지만 배열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불상과 탑을 각각 10구와 10기씩 상하로 배치하고, 탑과 탑 사이 4행으로 “모든 것은 원인에서 비롯된다(諸法從緣起). 부처님은 그 원인을 말씀하셨다(如來說是因). 모든 것은 원인에 따라서(羅彼法因緣盡),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是大沙門說).”라는 게송이 좌우가 뒤집힌 상태로 음각되어 있다. 3. 석장사지 답사 석장사지는 경주시 석장동 옥녀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의 천재 조각가인 양지 스님이 주석했던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여 그 사역, 규모, 사명, 그리고 출토 유물과 양지 스님과의 관계 등이 대부분 확인되었다. 1, 2차 발굴을 통해서 탑상문전, 소조상편, 연기법송명문전, 금동불, 각종 자기편 등 약 450여 점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 중 주목되는 유물은 ‘석장’이라 쓰여진 자기편으로, 『삼국유사』 양지사석(良志使錫) 조의 양지 스님이 주석했던 사찰인 석장사지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필자는 2월 4일 경주 석장사지를 답사하였으며, 동국대 WISE(경주)캠퍼스 박물관을 2월 7일 관람하면서 석장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사진 찍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임신서기석 모형을 살펴보았으며, 학생복지관 앞에 세운 커다란 임신서기석 조형물도 구경하였다. 경주 석장사지는 동국대 WISE캠퍼스를 지나 경주 화랑마을 정문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있는 경주선교교회 옆의 등산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안내 표지판이 없어 오솔길 등산로로 올라가면서 석장사지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마침내 등산객들이 많이 다닌 주 등산로를 만나서 석장사지는 신우대가 있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우측으로 내려갔다. 유심히 보니 신우대가 보여 올라갔다. 석장사지는 경사진 산자락에 남향으로 절터를 잡았으며, 정면에서 오른쪽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메인 등산로에서 석장사지를 가기 위해서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도랑을 건너야 한다. 도랑 위에는 나무를 잘라 만든 임시 다리가 있었는데, 습기가 많아 파란 이기가 끼어 있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 1, 2차 발굴 조사를 마친 후 사진으로 보니 석장사지는 신우대도 제거하고 주변이 정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1, 2차 발굴 후 38년~32년이 경과하다 보니 신우대가 우거져 최초 모습과는 달라지고 잡풀이 우거졌다. 앞으로 동국대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 매년 석장사지 주변의 신우대와 잡덩굴을 제거하여 유적지를 잘 보존했으면 좋겠다. 필자가 양산의 다방동 야생 차나무 군락지 환경보호를 하면서 신우대, 칡덩굴을 제거하고 있기 때문에 신우대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신우대는 땅위에 있는 부분을 잘라도 땅속에 뿌리가 남아있어 쉽게 죽지 않는다. 신우대를 제거하기 위해서 자른 후 뿌리 부분에 농약을 주입하면 된다. 필자는 차나무 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농약을 주입하지 않고 일일이 뿌리를 힘들게 캐내고 있다. 칡덩굴 역시 땅위의 줄기만 자르면 안 죽고 땅속의 뿌리를 캐내야 한다. 발굴조사 때 나온 기단석을 밑에 모아 놓고 그 위에는 기와 조각을 쌓아놓았다. 사찰 건물의 주춧돌, 축대의 돌도 보였다. 신우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니 이따금 기와 조각이 보였다. 필자는 기왓장 조각 중 큰 것은 기와 조각 쌓아놓은 곳에 가져가 올려놓았다. 석장사지 답사 후에 내려 올 때는 올라갔던 등산로로 원점 회귀하지 않고 ‘휴앤락 오토캠핑장’으로 내려왔다. 4. 화랑도 조직 구성에 승려 포함 석장사지는 주변에서 임신서기석이라는 중요한 유물이 나온 곳으로 주목을 받았다. 임신서기석은 일제 시대 때 일본인이 이름을 붙였는데, 내용은 화랑도가 나라에 충성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것을 하늘에 맹세하는 다짐의 글이었다. 향가 연구자인 김영회 씨가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여 화랑도의 맹세, 정신 등을 밝혔다. 화랑도를 닦는 자를 풍월도(風月徒), 풍류도(風流徒), 국선(國仙)이라고 불렀다. 화랑 집단은 각기 화랑 한 명과 승려 한 명 그리고 화랑을 따르는 다수의 낭도(郎徒)로 구성되었다. 낭도는 집에서 매일 노동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평민 이상의 계급이지만, 중심 구성원은 진골(眞骨)과 6·5·4두품이었을 것이다. 화랑도는 낭도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합하였으며 조국 수호, 나아가서는 이상 세계 건설이라는 원대한 공동 목표를 위해 일정 기간 수련하는 단체였던 만큼 구성원 사이의 인적 결합은 매우 긴밀하였다. 낭도는 대체로 15∼18세로 구성되었으며, 한 화랑이 이끄는 인원은 200∼300명에서 1,000명 안팎의 집단이었다. 진평왕 때는 많으면 7개 이상의 화랑 집단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였다. 화랑도 조직에 승려 한 명이 포함되는데, 화랑 서기석이 석장사지 인근에서 발견된 것은 화랑도가 하늘에 맹세하면서 돌에다 내용을 새겨서 석장사에 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랑 서기석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석장사가 폐사되어 절 바깥으로 떠내려가 흙 속에 묻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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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으로 복귀해 고통받는 환자들을 지켜달라- 나동연 양산시장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양산시 호소문’ 발표 - - 시민불편 최소화 및 조속한 비상진료체계 가동 현장모니터링 강화 - 나동연 양산시장이 최근 의료계 집단행동과 관련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등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의료현장으로 전공의들의 조속한 복귀를 호소하고 나섰다. 양산시는 보건의료 재난위기 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 발령됨에 따라 26일 오후 비상진료대책 수립 일환으로 양산시재해대책본부장(본부장 나동연)의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양산시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번 호소문 발표는 보건의료재난 위기상황 극복 및 시민혼란 등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별도의 영상을 제작해 양산시 공식 유튜브에도 게시할 예정이다. 나동연 시장은 “최근 전공의 여러분들의 집단사직으로 촌각을 다투는 중증질환자들의 위급상황이 지속되거나 방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와 주실 것을 간곡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또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여러분들의 집단사직으로 환자들의 희생이 생기지 않을까 시민들은 우려하고 있다”며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 여러분들께서는 조속히 복귀하시어 질병과 사고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지켜달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나 시장은 “이번 진통이 우리 모두가 의료계 현실을 직시하고 화합과 상생의 기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나동연 양산시장은 지난 21일 박완수 경상남도지사와 함께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을 방문해 전공의 공백에 따른 운영현황 및 응급의료 상황, 의료공백에 따른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조속한 비상진료체계 가동을 위해 현장을 점검했다. 호 소 문 양산시장 나동연입니다. 전공의 여러분의 조속한 복귀를 호소 드리고자 이렇게 섰습니다. 먼저, 평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료인 여러분의 노고에 양산시를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노력과 헌신은 우리나라 의료 발전의 큰 원동력입니다. 특히 진료 일선의 전공의 여러분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증환자와 그 보호자들에겐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이 양산시의 큰 자랑이자 큰 자부심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전공의 여러분들의 집단사직으로 촌각을 다투는 중증질환자들의 위급상황이 지속되거나 방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에 양산시는 전공의 여러분들께서 하루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와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집단사직으로 환자들의 희생이 생기지 않을까 시민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 여러분들께서는 조속히 복귀하시어 질병과 사고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지켜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번 진통이 우리 모두가 의료계 현실을 직시하고 화합과 상생의 기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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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문화예술회관, 지브리 & 디즈니 OST 페스타 개최- 오는 3월 23일(토) 오후 5시,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박성관) 양산문화예술회관은 오는 3월 23일(토) 오후 5시 지브리&디즈니 OST FESTA를 대공연장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영화음악의 세계적인 거장 ‘히사이시 조’의 대표 애니메이션 음악과 디즈니의 OST 곡들을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악기로 구성된 풀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기다른 취향을 가진 관객을 위한 프로그램 선정과 효과적 연출을 연구하며, 클래식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 뮤지컬, 영화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어린이부터 장년층까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오랫동안 마음의 축제로 남을 무대를 선사할 것이다. 예매일정은 2월 27일(화) 오전 10시부터 유료회원, 28일(수) 오전 10시부터 양산시민, 29일(목) 오전10시부터 일반회원을 대상으로 시작한다. 예매방법은 양산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www.yangsanart.net)에서 PC 및 모바일로 가능하며 입장료는 전석 30,000원이다. 그 외 자세한 사항은 양산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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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신입생 환영사,손영우총장- 자랑스러운 신입생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학부모님, 오늘 우리 대학의 가족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울러 존경하는 동원교육재단 장복만 이사장님, 장호익 부이사장님, 설동근 고문님, 조현일 감사님의 축하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요 며칠 바람이 거칠었습니다. 제법 많은 비가 왔고, 변덕스런 날씨에 불편도 했습니다. 겨울이 녹는 게 쉽지 않은 가 봅니다. 봄이 오는 것 또한 자리를 양보하듯 그저 비켜주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해봅니다. 해마다 그랬습니다. 선인들은 바람이 많은 이 시기를 영등철이라 했습니다. 영등철의 바람은 변덕스럽고 매섭지만 봄날의 찬연함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이 시기에 마음을 다잡으며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인생의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의 순간에 칭찬만 있을 수 없듯 야무지게 준비해야 때가 있습니다. 대학은 사회로 나아가는 영등철이고, 이제 스물이 된 여러분에게 입학은 껍질을 깰 준비의 영등철이며, 만학의 기회를 가진 여러분은 새로운 꿈의 개간자로서 맞이 해야할 영등철입니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말이 유래한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급변하고 있는 기술은 인공지능의 발전을 통해 가시적으로 확인 되고 있으며, 이것이 그저 더 나은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보다 이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대학생활이 변화의 시기에 불어오는 바람을 잘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그 바람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시킬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동원과학기술대학교는 "인성과 기술, 취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대표 "평생 고등직업교육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저를 비롯한 우리 대학의 모든 교직원은 여러분이 우리 대학에 들어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고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곳과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키다리아저씨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어디든 필요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밑 거름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영등바람이 할퀸 자국은 상처가 아니라 꽃이 필 것이라는 표시입니다. 기술과 사회의 급변은 여러분이 꽃이 되도록 독려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우리 대학과 함께 여러분의 인생에 꽃이 피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입학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 2. 22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총장 손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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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과학기술대학교 2024학년도 입학식 개최동원과학기술대학교(총장 손영우)는 22일(목) 종합대체육관에서 「2024학년도 입학식」을 개최했다. 이날 입학식에서 박유정(호텔식품제과제빵과) 학생이 739명의 전문학사, 전공심화과정, 전문기술석사과정 신입생을 대표하여 학칙을 준수하고 학생으로서 본분을 지켜 성실히 배워 지역사회의 발전과 나라의 일꾼으로 성장할 것을 선서했다. 손영우 총장은 입학식사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에게 입학은 껍질을 깰 준비의 시간이며, 만학의 기회를 가진 이에게는 새로운 꿈의 개간자가 될 기회”라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에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대학생활이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장호익 동원교육재단 부이사장도 격려사에서 “우리대학 모든 교직원들이 여러분을 도울 것”이라며 “대학에서의 경험이 여러분들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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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 서기석 최초 발견자 최남주 선생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임신서기석 발견 1959년 9월 21일 중앙대학보에 당시 문리과대학 사학과에 재학 중인 허웅(許熊)이란 사학도가 ‘화랑도 유물 임신서기석에 대하여’란 기고문을 통해 임신서기석의 최초 발견자는 최남주라고 발견 경위를 기고하였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경주 사학자 석당 최남주 댁에 머무르면서 여러 가지 화랑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중 특히 ‘화랑서기석(임신서기석)’ 이야기를 감명 깊게 새겼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대한경제, 2023, 9.25). “이 돌(임신서기석)은 지금부터 24년 전 단기 4268년(1935년) 경주 금장리 석장사 한 부근에서 공사 중 출토되어 바로 최남주(崔南柱)씨의 손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1935년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는 최남주의 증언이다. 이 부분이 오사카의 석장사 답사 중 발견하였다는 증언과는 틀리는 부분이다. 또한 석당 최남주는 분명히 1년 전에(1934년) 발견한 ‘남산신성비’의 자체(字體)와 ‘임신서기석’이 같다고 밝히고 있어 발견 시기도 오사카 긴타로의 발견인 1934년과는 차이가 난다.” 석당 최남주의 자제인 현암 최정간(매월다암 원장, 차문화연구가) 씨의 증언에 의하면 선친의 화랑 서기석(임신서기석) 발견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35년 봄 경주군 현곡면 석장사지부근에서 농수로공사로 인해 신라시대 와당들이 출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천수답 경사 언덕 맨 아래쪽에서 ‘남산신성비’처럼 생긴 작은 강돌(川石)이 최남주의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앞면이 치석되어 첫머리에 임신년(壬申年)이란 글자체가 음각되어 있었다. 또한 중간에 3년이란 맹세문장이 쓰여있어 직감적으로 작년에 발견한 ‘남산신성비’ 문장체제와 같다고 확신했다. 이튿날 이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경주박물관으로 옮겨가니 관장인 오사카가 첫눈에 가짜라고 단정하고 유물 수장고에 방치해버렸다. 망국의 한이었다.” 일제 총독부는 조선인을 중요 유물 발견자나 논문 발표에서 철저히 배제시켰다. 1935년 12월 18일 스에마츠 야스카츠가 경주박물관 방문 시 이 비석의 가치를 어느 학자보다 먼저 알아보고 1936년 『경성제대 사학지 제10』에 ‘경주 출토 임신서기석에 대해서’란 논문을 통해 발견자가 오사카 긴타로라고 소개하였다. 그 후 오사카는 ‘임신서기석’을 자기 개인 소장품으로 둔갑시켜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박물관장실에 보물처럼 보관하였다. 1960년대 이후 오사카는 석당에게 편지로 ‘임신서기석’의 안부를 물어왔다. 석당은 정부 수립 후 오사카의 이러한 파렴치한 만행을 밝힐 수 있었으나 신라 화랑의 보물인 임신서기석이 일본으로 유출되지 않고 경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어있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꼈다. 2. 석당 최남주 선생을 추모하는 석당공원 (1) 석당 최남주 선생 石堂 崔南柱 先生(1905-1980) IN MEMORY OF MR. CHOE NAM-JU(1905-1980) 평생을 문화재 발굴과 보존을 위해 헌신한 최남주 선생은 민간문화재 보호단체의 효시인 경주 고적보존회 활동을 시작으로 현 국립경주박물관 창설에 참여하였고, 고고학자인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와 서봉총 발굴에 동참했다. 그가 발견한 주요 유물은 경주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 경주 남산 철와곡 석불두(鐵瓦谷 石佛頭), 흥덕왕릉 비편 등이 있다. 또한, 사재(私財)를 들여 무열왕릉 비각을 건립하기도 했다. 선생은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스웨덴 왕실로부터 동양인 최초로 바자훈장 기사장을 수훈受勳했다. 이후, 칼 구스타프 현 국왕의 초청으로 스웨덴 왕실을 방문하여 국위를 선양하였다. 경주시민들은 문화유산 보전에 대한 그의 공로를 기념하여 2001년 추송비를 세웠다. (2) 추송비(追頌妃) 영리와 이재를 모르고 가정을 돌보지 않은 채 신라인들이 걸어온 아득히 먼길을 이름 없는 돌처럼 따라갔고 무너진 신라탑(新羅塔) 다시 일으키며 흙밑 뒤져 청태(靑苔) 낀 기왓장과 토기편(土器片), 비편(碑片)들을 수없이 발굴하여, 이 민족 역사를 증언했고 신라의 얼을 찾아 평생(平生)을 경주(慶州)의 산야(山野)를 헤맨 나그네 어느 왕조(王朝)의 상신(相臣)이 이처럼 천년왕조(千年王朝)를 섬기고 사랑하였던가. 귀천(歸天)하시어 신라문화(新羅文化)를 쌓아 올렸던 자랑스런 선인(先人)들을 만나 후예(後裔)로서 부끄럽지 않게 그들에게 아름다운 신라(新羅)의 향기(香氣)를 온누리에 풍긴 진정한 역사(歷史)의 장부(丈夫)였네. 2001년 5월 19일 서울대학교(大學校) 고고미술사학과(考古美術史學科) 교수(敎授) 임효재(任孝宰)가 비문(碑文)을 짓고 대한민국 학술원 위원 무의자(無衣子) 권옥연(權玉淵)이 제자(題字)를 쓰고 석장(石匠) 윤만걸(尹晩杰)이 새기다. (3) 석당(石堂) 최남주(崔南柱) 선생 약력 - 1905년 4월 1일 경주시 성건동에서 출생 - 1924년 보성고등보통학교 졸업 - 1926년 경주박물관 창설에 참여 - 1926년 스웨덴 구스타프 6세 아돌프 황태자와 함께 서봉총(瑞鳳塚) 금관 발굴에 참여 - 1926년-1939년 한국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南山) 불적(佛蹟) 조사에 한국인 최초로 참여하여 수많은 불교 문화재를 발굴, 경주박물관에 전시 - 1934년 신라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인 남산(南山) 신성비(新城碑) 발견 - 1938년 한국 미술사학계 개척자이신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선생과 문무대왕의 해중릉(海中陵)이 있는 동해구(東海口) 유적 학술답사 - 1945년 광복 후 경주문화재 보존 연구에 전념, 수많은 문화재를 찾아서 신라사 연구 및 고고학계에 공헌 - 1970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 서훈 - 1971년 스웨덴 왕실 최고훈장 바자 훈장 기사작(騎士爵) 서훈 - 1975년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의 초청으로 스웨덴 왕실 방문, 스웨덴 고고학계 시찰 - 1980년 2월 향년 75세로 성건동 자택에서 환원(還元 : 천도교에서 사망을 의미) (4) 한국박물관협회에서 건립한 석당공원 추모비 경주 문화재 발굴 보존의 선구자 석당 최남주(石堂 崔南柱) 우리나라 고고학계와 박물관학계의 여명기였던 1926년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경주박물관 창설에 참여하여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의 개척과 신라문화재 보존을 위해 평생을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셨던 석당 최남주선생 탄생 101주년을 맞이하여 한국박물관인들의 이름으로 석당 선생님의 박물관과 신라문화 사랑의 아름다운 정신을 이 패에 새겨 드립니다. 2006년 9월 24일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김종규 (5) 한국일보 추송비 건립 경위 평생을 신라문화재 발굴 및 보존에 헌신 한 우리나라 고고학계의 선구자인 고(故) 석당(石堂) 최남주(崔南柱·1905~1980·사진) 선생의 추송비가 후학 및 스웨덴 왕실에 의해 세워진다. 김태중(金泰中) 경주문화원장은 19일 오후 3시 경북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 장군 묘 앞에서 석당 최남주 선생 추송비(사진)에 대한 제막식을 갖는다고 18일 밝혔다. 일제 강점기에 경주박물관 창설 및 신라 문화재 발굴 등에 참여했던 최선생은 특히 1925년 스웨덴의 아돌프 구스타프 6세 왕세자와 함께 경주시 노서동 서봉총(瑞鳳塚)을 발굴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봉총이라는 명칭은 스웨덴의 한자명 서전(瑞전)에서 '서'를, 이곳에서 발굴된 금관의 봉황 장식에서 '봉'자를 각각 따서 붙인 것. 당시 왕세자는 “이제 국왕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을 정도로 발굴에 흥분했고 이 과정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최선생과 깊은 교류를 나눴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우정을 지켰고 왕이 된 구스타프 6세는 73년 왕실 최고훈장을 서훈키도 했다. 이날 제막식엔 스웨덴 왕실 특사인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웨덴 대표 페테 하마스드럼 소장을 비롯, 임효재(任孝宰) 서울대 교수, 한국박물관협회 김종규(金宗圭) 회장, 최무장 건국대 교수,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3.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최남주 무너진 신라의 탑 다시 일으켜 세우고 흙 밑 뒤져 청태 낀 기왓장과 비석조각을 주워 신라의 향기를 온누리에 배달한 역사 배달부 최남주옹의 추송비가 작고한 지 20년 만인 엊그제 경주 김유신 장군묘 입구에서 제막되었다(조선일보, 2001년 5월 21일). 이 제막식에서 눈길을 끄는 손님이 있었으니 바로 스웨덴 왕실이 보낸 벽안의 특사다. 웬 인연으로 이 자리에 왕실 특사가 왔을까. 후에 스웨덴 구스타프 6세가 되는 44세의 황태자가 고고학자로 1926년 경주 서봉총에서 최남주옹과 더불어 금관을 발굴해 낸 묵은 인연 때문이다. 서봉총을 발굴할 때 연이틀 흙비가 내려 왕릉을 파헤친 빌미라는 원성이 있었음이며 발굴책임자인 고이즈미라는 일본사람이 출토한 금관을 차능파라는 기생에게 씌워준 것이 탄로나 견책을 당하기도 했다는 등의 금관발굴 전후의 이야기들을 최옹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최옹의 공적으로 남산 신성비의 발견을 들 수 있다. 어느 날 헌강왕릉의 묘지기가 자기 집 앞 돌다리에 글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고 한 말을 듣고 추적하여 20자씩 9행으로 된 이두비문이 새겨진 자연석을 발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합치함을 고증해낸 것이다. 그 비문에는 완공한 후 자기가 맡은 공구가「3년 내로 무너지면 죄를 달게 받겠다」고 맹서하고 있어 이 비를 세웠던 신라인들의 아름다운 책임감이 표출되어 감명을 주었던 신성비다. 석굴암의 감실 앞에 놓였던 유마거사상과 11면 관음보살상 앞에 놓였던 아담한 5층 석탑을 당시 조선 총독이던 데라우치가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확인 추적하기도 했던 최옹이다. 그 밖의 흥덕왕릉비 조각을 발굴하는 등 경주 유적으로 최옹의 손을 거쳐가지 않음이 드물다 할 정도로 신라의 역사배달부 노릇으로 75년 인생을 쇠진시켰다. 깨끗하지만 어려웠던 만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또 얼마나 먼 여로를 가야할지 모르며 꿈만 먹고 사는 맥처럼 살 수 없는 노릇일지라도 이미 정해진 이 길을 가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그러다가 저승에 가서 신라문화를 쌓아올렸던 선인을 만나면 부끄럽지 않음을 자부하고 신라의 향기를 온누리에 배달한 역사의 배달부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대답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던 최옹이다. 석당공원을 지난 2월 15일에 답사하였다. 김유신 장군 묘소에서 가까운 곳이라고 하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에게 석당공원 위치를 물어보았다. 대부분 모르고 있어 흥무공원 앞에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하니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었다. 김유신 장군 묘소를 들어가고 나오는 길은 일방통행로인데, 나오는 길 끝 부분에 석당공원이 있었다. 대로변에서 차로는 역주행이라 들어갈 수 없고, 주차하고 조금 걸어서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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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과학기술대학교 2023년도 해외취업 K-MOVE 스쿨 호주 국외연수 및 취업을 위한 출국동원과학기술대학교(총장 손영우)는 2023년도 해외취업 K-MOVE 스쿨 <호주 조리&Hospitality 자격증취득 및 취업연수과정> 연수생들이 2월15일 해외취업을 위해 출국하였다고 밝혔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는 2016년부터 호주뿐 아니라 일본, 미국, 싱가포르 등 해외 취업과 해외 현장 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강화에 힘쓰고 있으며, 호텔외식조리과, 호텔관광경영과는 ‘K-Move 스쿨’에 참여하기 위한 별도반을 1학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는 글로벌시대에 부응하는 톱클래스 인재 양성을 위해 체계적인 지원 인프라를 제공하고 해외 취업에 도전하는 학생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온 결과, 2016년에 이어 2017년, 2018년 3년 연속, 2021년, 2022년 연수과정 및 운영기관 평가에서 ‘최우수 A등급’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뤄냈으며,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16~2023년(2020년 제외) 연속 ‘K-Move 스쿨’ 운영대학에 선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이번에 출국한 연수생들은 2개월 간 ECA의 어학연수를 거쳐 현지 취업 예정에 있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K-Move스쿨로 해외에 진출하여 체류 중인 졸업생은 40여명으로 매년 후배들이 입국할 때 마다 현지 동문회를 개최하여 후배들의 호주 정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김태균(호텔외식조리과, 2024년 2월 졸업) 연수생은 “우리 대학의 해외 취업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대기업에 취업한 동기를 보면서 꼭 K-Move 스쿨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고 결심했으며, 해외 취업이라는 것이 혼자 준비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우리 대학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영어 교육부터 직무 교육, 출국 전 매일 실시된 출국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해외 취업과 해외 출국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하였으며, 힘들때마다 끝까지 믿고 이끌어주신 학교와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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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의 충성 맹세 임신서기석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임신서기석의 중요성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사람들은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을 필두로 한 화랑도들이었다. 원광법사가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에게 전수해준 화랑도의 세속오계는 신라시대 화랑이 지켜야 했던 다섯 가지 계율이다.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사량부(沙梁部)에 사는 화랑 귀산과 추항이 가르침을 청하자 내려준 계율이다. 세속오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충심으로 왕을 섬긴다[事君以忠(사군이충)]. 둘째, 효로써 부모를 섬긴다[事親以孝(사친이효)]. 셋째, 신의로써 친구를 사귄다[交友以信(교우이신)]. 넷째, 전쟁에 나가서 물러서지 않는다[臨戰無退(임전무퇴)]. 다섯째, 살아 있는 것을 죽일 때는 가려서 한다[殺生有擇(살생유택)]. 유교·불교·도교 등 세 가지 사상이 전래되기 전부터 신라에 존재하던 풍류·화랑도 등의 고유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공동체의식과 철저한 의리 정신, 숭고한 희생 정신, 그리고 선량한 인간의 정신을 담은 세속오계가 나온 것이다. 그 당시 신라인들이 가지고 있던 시대정신이 당대의 석학인 원광의 탁월한 식견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정리·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임신서기석은 신라 화랑도 두 청년이 우정과 면학에 대한 목표를 맹세하면서 서로 간에 다짐의 증표로써 작은 비석을 만들어 언약을 새겨놓은 것이다. 친구 두 사람이 하늘에 명세하는 것은 화랑도의 관행과 동일하다. 청도 가슬갑사의 원광법사를 방문한 신라의 화랑 청소년 귀산과 추항이 원광법사로부터 화랑정신의 기본이념인 세속오계를 설법 받는 시점과 임신서기석 제작의 인물 정황과 사상적 배경 시점이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 한자·한문을 받아들여 우리의 표기수단으로 삼을 때 향찰식(鄕札式) 표기, 한문식(漢文式) 표기 외에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유일한 금석문 유물로 세속 5계 중의 ‘교우이신(交友以信)’, 즉 신라 젊은이들의 신서(信誓) 관념의 표상물(表象物)이고, 우리 민족의 고대 신앙 중 ‘천(天)’의 성격의 일단을 시사해 주는 자료이다. 서기석의 규모는 높이 32cm, 너비 12.4cm, 두께 4.6cm이며, 반질하고 편평한 면을 가진 개울가 냇돌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5행에 총 74자를 새겼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길쭉한 형태의 점판암(粘板巖)으로 만들었다. 임신서기석은 비문의 균형미, 고졸미(古拙美), 모양, 색감까지 고려하여 2004년 6월 26일 보물 제1,411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임신서기석 해석 다음은 국립경주박물관 안내문에 나와 있는 임신서기석의 한자 원문과 해석 내용이다. 비석의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干支)와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1934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에서 발견되었다. 임신년이라는 간지가 어느 해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비문 내용에 중에는 신라 국학(國學)의 주요한 교과목이 등장하는 점이나 화랑도의 근본 정신을 강조한 점 등을 들어 화랑도가 융성하였던 시기의 임신년인 552년 또는 612년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신라 융성기에 신라 청소년들의 강렬한 유교도덕 실천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지료이다.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幷誓記天前誓今自 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若此事失 天大罪淂誓若國不安大舐世可容 行誓之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 詩尙書礼傳倫淂誓三年 임신년 6월 16일에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하기를,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실한 도(道)를 지키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맹세를 잃으면 하늘에게 큰 죄를 얻을 것을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가히 행하는 것을 용납함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이전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시<경>(詩<經>)』, 『상서(尙書)』, 『예<기>(禮<記>), 『춘추<전>(春秋<傳>)』 등을 차례로 3년 동안 습득하기를 맹세하였다. 3.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가 붙인 이름 임신서기석의 길이는 약 34cm이며, 상단의 너비는 12.5cm, 하단의 너비는 9cm로 아래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모양이다. 두께는 2cm이며, 냇돌의 자연석(自然川石)으로 비교적 반질반질한 면을 이용하여, 1행 18자, 2행 16자, 3행 14자, 4행에 16자, 5행에 10자, 도합(都合) 5행 74자의 한자(漢字)를 새겼다.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 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오사카 긴타로(大阪金次郞)가 1934년 5월 4일 발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선덕여왕 대의 유명한 양지 스님과 관련된 석장사(錫杖寺) 터를 조사하고 돌아오던 길에 경주 금장대 부근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최초 발견자는 한국인 최남주였다. 오사카 긴타로는 이 돌의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이듬해인 1935년 12월 18일. 당시 일본 역사학의 대가 경성제대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교수가 경주분관을 둘러보았다. 수집해둔 몇 편의 비석 편 가운데 그의 눈길을 끈 것이 바로 이 돌이었다. 바로 ‘임신년에 서로 서약하는 내용을 기록한 돌’이란 의미에서 그 자리에서 이 돌의 이름을 임시로 부르기로 했다. 그는 바로 이 돌에 새겨진 글자를 판독해서 이듬해인 1936년 경성제대 사학회지 제10호에 ‘경주출토 임신서기석에 대해서’라는 제목으로 탁본과 함께 논문으로 발표했다.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이름붙인 임신서기석이란 용어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 돌은 오사카 긴타로의 개인소유였다. 그는 해방 후 수집한 유물을 급하게 챙겨 일본으로 밀항하면서 임신서기석은 미처 가져가지 못하고 남겨두었기 때문에 경주박물관에 남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귀중한 문화재가 일본으로 약탈당할 뻔하였다. 4. 동국대 향가 만엽집 연구실장 김영회의 해석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임신서기석’이라 하였지만 최초 발견자인 최남주는 화랑의 맹세를 기록한 돌이라는 의미에서 ‘화랑 서기석’이라고 하였다. 동국대 향가 만엽집 연구실장 김영회도 명칭을 ‘화랑 서기석’을 추천하고 있다(유튜브 김영회 TV, 임신서기석의 충격 1부~6부). 돌의 한 면을 글자 74자로 꽉 채워놓았다. 넓은 곳은 넓은 대로 좁은 곳은 좁은 곳대로 글씨 크기와 줄 사이 공간이 고려되어 있다. 글자의 공간 배치와 균형미가 놀랍다. 글자의 고졸미(古拙美)도 일품이다. 명필가, 석공의 기량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멋진 예술품이다. 돌도 아무 돌이나 주워와서 만든 것이 아니고, 완성된 후의 모양과 색감까지 고려하여 애써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석공이 강에 나가 직접 찾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필로부터 글자를 받아 숙련된 석공이 새긴 것이다.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풀이한 임신서기석의 내용도 정확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구절이 있으며, 발견자도 최남주가 아닌 오사카 긴타로로 날조하였다. 만든 목적도 나오지 않고 맹세한 두 사람이 화랑인지 아닌지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학자들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100여 년이 흘렀다. 신라 화랑의 단아한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명품이다. 이런 예술품에 임신서기석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일본인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우리 민족의 문화에 대한 애정이 없어 이런 만행에 가까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임신서기석은 화랑 서기석이라고 개명이 필요하다. 이 비석은 천년 신라를 빛내주고, 세계 10대 강국인 대한민국의 품격을 빛내주는 돌이다. 김영회 실장은 향가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여 완벽하게 풀이하였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획기적인 향가 풀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이 묵살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신서기석을 해석하면서 향가 작법을 사용하여 풀어내었다. 김영회 실장은 향가의 특징으로 고대 표기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향가의 문자는 뜻글자 또는 일타쌍피 글자이며, 노랫말은 우리말 어순이고, 문장은 노랫말 + 청언 + 보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타쌍피 글자는 하나의 글자가 뜻글자와 소리글자로 동시에 기능하는 말한다. 김영회 실장은 향가 작법을 임신서기석의 미해결 구절에 적용해 보았다. 그는 임신서기석이 향가 표기법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임신서기석이 노래도 아닌 일반적인 글인 데, 향가 작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김영회 실장 해석 임신년 6월 16일 두 사람이 나란히 맹세한 것을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부터 3년 후까지 충성의 길을 걷고 (낭도들을) 맡아 다스리고 (그들을) 돕는 데 있어 허물이 없을 것을 맹세한다 忠道執持 執 맡아다스리다 집 持 돕다 지 화랑도는 우두머리인 화랑과 수백 명의 낭도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화랑이 낭도들을 맡아 다스린다는 것은 화랑의 임무 중 하나였다. 持는 돕다 지로 풀이하였다. 네이버 한자 사전을 찾아보면 지(持)는 16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돕다 지로 풀이하는 것은 향가 찬기파랑가 안에 있었다. 화랑 기파가 기강이 해이해진 낭도들을 아주 엄격히 다스렸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기파가 낭도들을 다스릴 줄은 알았지만 돕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화랑 기파를 처형하였다. 강가에서 징소리가 울렸고 기파의 목은 띵에 떨어졌다. 화랑의 임무 세 가지는 ① 충성의 길을 간다. ② 낭도들을 맡아 다스린다. ③ 낭도들을 도와주다. 임신서기석은 화랑도를 알게 하는 역사적 유물이었다. 若 此事失 天大罪淂誓 만약, 이 일을 함에 있어 허물이 있게 되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받을 것을 맹세한다 國不安大舐世可容行誓之 나라가 불안하고 크게 어지러운 세상이 되면 용모를 꾸미고 나가 임무룰 수행할 것을 맹세한다 容 몸을 꾸미다 용, 치장하다 용 삼국사기 진흥왕 37년 → 미모의 남자를 택하여 곱게 장식하여 화랑이라 이름하였다 서기석의 젊은이들은 치장하는 젊은이들이었다 두 젊은이는 바로 화랑이었다 화랑도 뿐만 아니라 옛날 멕시코나 아프리카 전사들도 전쟁에 나갈 때 얼굴 분장을 하고 꾸몄다 별도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도 크게 맹세하였다 시 상서 예기 전 륜을 습득할 것을 맹세하였다 3년 안에 끝마치기로 하였다 두 명의 화랑이 하늘에 서하는 맹세였다. 천지신명에게 화랑의 임무를 수행하되 임무에 있어 일을 그르치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서(誓)하는 맹세였다 두 젊은이는 화랑이었다 화랑의 두 가지 임무(다스리다 + 돕다) 화랑은 문무를 겸비 화랑에 임명되며 맹세식을 가졌다 향가 표기법으로 풀이한 내용에서는 아주 새로운 내용이 밝혀진다 우선 두 젊은이의 신분이 화랑이라는 게 확실히 밝혀진다 어디에서도 없었던 화랑의 임무 세 가지가 정확하게 밝혀진다 화랑은 전쟁에 나가면서 치장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화랑 서기석은 두 젊은이가 화랑에 임명되면서 서식을 가졌고 맹세의 내용을 기록한 돌이었다. 우리는 화랑이 어떠한 꿈을 꾸었고 무엇에 목숨을 걸게 되었는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 어느 민족의 젊은이들 영혼이 이토록 아름다운 꽃과 같을까? 서기석은 향가를 알게 한다. 향가 제작법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향가는 우리 민족의 역사, 문화 더 나아가 인류의 고대 역사까지 풀어내 주는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인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풀이하거나 해방 이후 우리나라 학자들이 풀이한 내용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임신서기석 내용에서 잘 나타난다. 일부 내용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임신서기석은 최초 발견자를 일본인 오사카 긴타로로 조작하였다. 최남주로 바로잡고 임신서기석도 화랑 서기석으로 개명해야 한다. 김영회 실장의 새로운 접근법인 향가 제작법으로 풀이한 내용은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맹세의 주인공을 기존의 풀이는 막연하게 신라의 두 젊은이로 보았으나 김영회 실장은 명확하게 화랑도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화랑도의 임무 세 가지를 밝혀내고, 화랑도가 전쟁에 출전할 때 용모를 꾸민다는 사실도 밝혀내었다. 기존의 역사학계는 김영회 실장의 새로운 풀이와 향가적 접근법에 대해 외면하고 묵살할 것이 아니라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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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벽루아트홀,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해설이 있는 클래식」 개최- 오는 3월 9일(토) 오후 5시, ‘겨울연가, 건축한개론을 만나다’-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박성관) 쌍벽루아트홀은 오는 3월 9일(토) 오후 5시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해설이 있는 클래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송영민이 음악감독으로 해설과 진행을 맡아 구성한 공연으로 예술의 전당 ‘마티네 콘서트’, KBS ‘생생클래식’, 하남문화예술회관 ‘마티네콘서트’, 대전예술의 전당 ‘아침을 여는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감독 경험을 바탕으로 총 6회에 걸쳐 시리즈로 공연한다. 올해 첫 공연은 ‘겨울연가, 건축학개론을 만나다’ 라는 프로그램으로 겨울연가, 올드보이, 봄의 왈츠, 건축학개론, 실미도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drama, K-movie 음악의 중심 이지수 교수(서울대)가 작곡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온라인 예매는 유료회원 2월 20일(화) 오전 10시부터, 양산시민 21일(수) 오전 10시부터, 일반회원 22일(목) 오전10시부터 시작하며, 양산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www.yangsanart.net)에서 PC 및 모바일로 가능하다. 입장료는 전석 10,000원이다. (문의 : 양산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또는 ☎055-379-8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