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양산시장, 국토부에 지역 현안사업 지원 공식 건의- 28일 국토부 제2차관 만나 1028지방도 국도승격 주민서명부 전달 - - 지방도 1028호 국도 승격·국도 35호 대체우회도로 공식 건의 - - 사송 하이패스IC 양방향 설치 추진 지원 요청도 구두 건의 - 나동연 양산시장이 지난 28일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해 국토교통부 백원국 제2차관을 만나 지역 현안사업에 대한 지원을 공식 건의했다. 나 시장이 이날 백 차관에게 직접 설명하고 건의서를 제출한 사업은 지방도 1028호선 국도(지선국도) 승격과 국도 35호선 대체우회도로 개설 등 2건. 여기에 이달 타당성조사 등의 용역에 들어간 동면 사송하이패스IC(양방향) 설치 추진에 대한 지원도 구두로 요청했다. 나 시장이 이들 현안사업과 관련해 정책 건의를 한 것은 취임 후 6번째(국토부 3회, 대통령실·국회 2회)다. 지방도 1028호선은 양산의 동부인 주진동에서 서부인 상북면 대석리를 연결하는 도로(길이 8.6㎞, 너비 9.5m, 터널 길이 4.7㎞)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업. 나 시장은 총 사업비(2926억원) 부족 및 사업기간 장기화 우려를 설명하며 국도 승격(국도 7호와 35호 연결)을 통해 국비 재원으로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2026년도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반영해 줄 것을 건의했다. 특히 지난해 지역 이통장협의회 주관으로 펼쳐진 국도 승격 서명운동을 통해 취합된 주민 서명부도 전달했다. 서명에는 3만 1000여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국도 35호선 대체우회도로 개설과 관련해선 전체 구간(하북~동면 19.42㎞) 중 1단계인 상북 대석리~동면 가산리 간 13.7㎞ 개설을 위해 이 역시 2026년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반영해 줄 것을 공식 건의했다. 나 시장은 상북지역 택지 개발, 국지도 60호선 개통, 1028 지방도 건설 등 지역 여건의 변화에 따른 사업 추진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국가 계획 반영의 적극적인 검토를 건의했다. 구두 건의한 사송 하이패스IC 설치 건에 대해서는 주민의 요구대로 양방향으로 추진토록 사송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 승인권자인 국토부와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검토 및 추진할 수 있도록, 사업비용은 사업시행자가 적극 부담할 수 있도록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백원국 차관은 “건의된 양산의 현안사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나동연 시장은 “이번 정책 건의 사업은 양산의 지속적 발전과 시민 민원 해소를 위한 현안사업들로 조기에 추진되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 수련장 호국사찰 울산 신흥사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의병 활동의 본거지 울산 신흥사 신흥사는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4길 280(대안동) 동대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이다. 명랑대사가 신라 635년(선덕여왕 4)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위한다는 뜻인 건흥사(建興寺)였다고 한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흥사 위쪽 기박산성을 중심으로 울산의병이 일어났는데, 당시에 신흥사 주지였던 지운 스님이 왜군의 침략에 맞서 승병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던 호국사찰이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1646년(인조 24)에 나라의 지원을 받아 경상좌병영 병마절도사 이급(李伋)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그로부터 3년 뒤인 1649년에는 현재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이 조성되었다. 뒤이어 1686년(숙종 12)과 1752년(영조 28)에 각각 도량을 중창하였는데, 대웅전 맞은편 신성(神成樓)에 병마절도사 이상국(李相國)이 1757년에 쓴 현판 글씨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뒤에도 사찰 재건이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72년에 그려진 신흥산성도(新興山城圖)에서는 신흥사와 더불어 부속 암자인 낙서암(樂西庵), 염불암 (念佛庵), 내원암(內院庵)을 함께 볼 수 있는데 이로써 국가 호국사찰로서의 규모와 군사지정학적 중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98년에는 현재의 대웅전을 새로 지으면서 원래 대웅전으로 쓰이던 건물은 왼쪽으로 옮기고 이름을 응진전으로 바꾸었으며, 신성루, 삼성각, 적묵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신흥사의 규모는 16만 5,289㎡에 이를 정도로 매우 넓었으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사찰 주변 약 39㎢를 소유하였다. 1998년 신축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응진전, 삼성각, 만세루, 적묵당 등의 당우(절의 건물)가 있다(울산디지털 문화대전). 2. 보물 석조아미타여래좌상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신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대세지-관음보살좌상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상 중 본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재질은 불석(拂石, 규산염의 일종으로 흰색의 광물)이다. 문화재청에서 2021년 12월 22일 보물로 지정하였다. 이 불상은 발원문에 1649년 불석의 산지였던 어천(현재 포항 오천읍)에서 돌을 채석해 조성하고 배를 이용해 신흥사까지 옮겨온 사실이 밝혀져 있어 당시 불석 불상의 제작지와 이동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힌 첫 번째 사례이다.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기 전국에 걸쳐 활동한 조각승 영색(英賾; 英頤)이 경상도 지역에서 불석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만든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기년명 불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각승 영색은 ‘英賾’(영색) 또는 ‘英頤’(영이)라고도 쓰며, 신흥사 불상은 양주 회암사 불상 다음으로 그가 수조각승이 되어 두 번째로 제작한 불상이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은 짧은 목에 머리를 약간 숙인 결가부좌의 자세를 하고 있으며, 짧은 상반신에 비해 다리 간격이 넓고 무릎이 높은 편이어서 하체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비교적 넓적한 얼굴과 긴 눈썹, 작고 오뚝한 코,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깊게 팬 입술 가장자리와 볼록하게 올라온 턱에서 온화하면서도 개성 있는 인상이 느껴진다.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49년이라는 명확한 제작 시기, 영색이라는 수조각승, 아미타불상이라는 존명 등을 바탕으로 17세기 중엽경 불상 조성의 기준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재료의 산지(山地)와 이운 과정을 발원문을 통해 알 수 있다. 불상 자체와 복장 유물인 발원문 1점, 후령통 1점, 직물 7점, 보석류 1점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다. 후령통(候鈴筒)은 불상이나 불화 등을 조성할 때, 금, 은, 칠보 등을 담는 복장(腹藏)을 넣는 통이다(문화재청). 3. 화랑도 전통무예의 성지 울산, 신흥사 울산지역에서 화랑도의 전통무예를 되살리기 위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신라 화랑무예 등 전통무예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간담회가 30일 울산광역시 울주군의회 김상용 의원(행정복지위원장) 주관으로 의사당 1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울산종합일보, 2023. 3.30). 간담회는 정우식 의원(경제건설위원장)과 이상우 의원, 진병석 울주군 문화체육과장, 전통무예 화랑도 진흥원 김부기 원장과 윤돈규 회장, 최영길 전 태권도 협회 고문, 김민호 영산대 동양무예학과 교수, 울산학춤보존회 김성수 고문 등 지역 전통무예 및 문화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화랑도 진흥원장의 상 무예의 고장 울산, 화랑도 수련장 울주 등 신라 화랑무예와 지역의 연관성 설명으로 시작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울주군 전통무예 지정 및 관련 조례 제정 등 활성화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울산광역시 전통무예 지정을 위한 화랑 무예 예술단 오디션 행사가 열렸다(시사우리신문, 2023.3.1). 화랑도 예술단은 3월 1일 시청 옆 JIB엔터테이먼트에서 오디션 행사를 개최하였다. 전통무예의 고장 울산은 옛날부터 신라의 수도 경주를 방어하는 수도방위 사령부 역할을 담당하였다. 울산은 상무예 고장으로 무예를 숭상하는 지역이다. 울산지역의 울주군 언양읍 천전리, 울산광역시 북구 신흥사 등은 화랑도의 수련지로 알려졌다. 필자는 지난 3월 22일 울산 신흥사를 답사하면서 기박산성, 전시관 등을 둘러보았다. 기박령은 도로 오르막 경사가 심하였으며, 기박령에서 신흥사로 내려가는 길은 니리막이 심하였다. 신흥사에 울산 정자해변은 가까웠으며, 신라시대 이래로 왜구가 경주로 침범할 때 자주 이용하던 침투로였다. 이 길목에 있는 신흥사는 자연스럽게 호국사찰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신흥사 스님들이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군량미도 조달하였다. 필자는 신라시대 화랑도의 수련지로 알려진 천전리 각석은 3월 20일과 21일 답사하였다.
-
웅상문화체육센터, 1기 어르신 운동 교실 모집 안내- 오는 4월 9일 개강, 관내 65세 이상 성인 누구나 참여 가능 -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박성관) 웅상문화체육센터는 오는 4월 9일에서 6월 27일까지 매주 화·목 관내 6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1기 어르신 운동교실’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어르신 운동교실은 양산시보건소(동부생활건강지원센터)와 양산시체육회가 함께 협업하여 어르신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양산시보건소는 △개인별 체성분 및 혈당검사, △건강생활실천 이론교육등을 실시하고, 양산시 체육회는 △어르신들 신체활동 전문 운동프로그램을 지원할 계획이다. 신청은 3. 25.(월) 오전 10시부터 웅상문화체육센터 2층 키즈스포츠클럽 사무실에서 선착순 20명에 대해 접수를 시작하며 기간은 4월 9일부터 6월 27일까지 오전 10시부터 10시 50분까지 운영한다. (문의 ☎055-379-8576) 박성관 이사장은 “지역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체육센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김유신 장군을 모신 숭무전과 흥무공원1. 숭무전(崇武殿) 숭무전(崇武殿)은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 314번지에 있다. 숭무전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 595~673)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드리는 제전(祭殿)이다. 김유신은 가야국(伽倻國)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3세손으로 신라 진평왕(眞平王 17년, 595년) 때 만노군(萬弩郡,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 태수 김서현(金舒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화랑이 되어 진평왕 51년(629) 낭비성(娘臂城)에서 고구려군에게 처음 승리한 이후 백제, 고구려군과 여러 차례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안으로는 상대등 비담(毗曇)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진덕여왕 8년(654)에는 김춘추(金春秋)를 태종무열왕으로 옹립하였다. 태종무열왕 7년(660)에는 백제를 병합하고 문무왕 8년(668)에는 고구려를 통합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신라 최고의 관직인 태대각간(太大角干)을 제수하였고, 문무왕 13년(673) 79세로 세상을 떠나자 금산원에 장사지냈으며 그 뒤 흥덕왕 10년(835)에 흥무대왕으로 추봉하였다. 1992년에 전각을, 1993년에는 부속건물을 세워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편액의 글씨는 김대중(金大中)(1924~2009) 전 대통령이 썼다. 2. 흥무공원 경주시는 충효동 산 7-1번지 일원의 7,500여 평의 부지에 주민편의시설을 갖춘 근린공원을 조성하고 2005년 10월 19일 지역주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거행했다. 흥무근린공원은 2004년 11월 16일 공사에 착공하여 국비 20억 원, 경주시비 1억 원 등 21억 원을 투입하였다. 기반시설, 화장실 1동, 주차장, 가로등을 설치하고, 수목 및 초화류 2만 4천 본을 심었다. 공원 이름을 흥무공원으로 명명하였다. 흥무근린공원은 경주시청 산림과 주관으로 다인산업개발(주), ㈜태호, 강산조경(주), ㈜이주산업개발, 미광계전 등의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였다. 넓은 잔디밭이 있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많은 공원으로,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피크닉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봄에는 공원 앞 도로 ‘흥무로 벚꽃길’에서 아름다운 벚꽃을 감상할 수 있고, 가을에는 은빛 물결로 살랑거리는 억새밭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기 좋아 여행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공원 옆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센과 치히로 통로’라 불리는 작은 굴다리를 통해 맛집 ‘금산재 칼국수 집으로 갈 수 있다. 흥무공원 바로 위에는 또 김유신 장군 영정, 위패가 모셔진 숭무전, 재실인 금산재가 있다. 흥무공원에서 철길 지하통로를 지나면 더 넓은 잔디밭이 전개된다. 이곳 나무 그늘도 피크닉하기 좋다. 피크닉과 함께 등산을 즐기고 싶다면 인근에 야산과 같은 송화산 쉼터도 있다. 짧은 거리의 산행도 가능한 곳이 흥무공원이다. 3. 흥무대왕(興武大王) 어록비(語錄碑) 知成功之不易念守成之亦難(지성공지불이념수성지역난)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수성 또한 어렵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어록비음기(語錄碑陰記) 송화산(松花山) 금산원(金山原)에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천년 유택이 자리하고 있으며 신라에서는 능하의 송화방(松花坊)에 원찰인 금산사(金山寺)를 국가에서 세워 해마다 나라에서 향사를 주관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조선조 이곳에 금산재(金山齋)ᅩ를 세워 향화를 이어오다가 근년에 숭무전(崇武殿)으로 높여 유림(儒林)과 전국에서 모여든 후손으로 춘추향사를 봉향하고 있다. 숭무전 아래 공원 조성이 논의되어 오던 중 가락중앙종친회 김봉호(金琫鎬) 회장의 노력으로 예산 21억 원이 확보됨으로써 경주시장 백상승(白相承)의 주관하에 9,000여평의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고 2005년 10월 19일 준공식과 함께 흥무공원(興武公園)으로 명명하였다. 유서 깊은 이곳 산록에는 대왕의 화랑정신(花郎精神)이 스며있는 곳, 만인들이 찾아와 대왕의 위훈을 숭모하고 산책하며 심신을 단련하는 공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智•德•勇을 겸비한 대왕은 나가서는 양장(良將)이요, 들어와서는 현상(賢相)으로 많은 유훈을 남겼는데 그 중 “창업에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경영 또한 어렵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는 1300여년 전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로 오늘날 국가나 기업을 경영하는 지도자들은 명심해야할 교훈이기에 語録碑에 새겨 귀감으로 삼고저 한다. 이 어록비는 가락중앙종무위원회에서 세우다. 가락기원 1965년 서기 2006년 4월 일 세움 4. 송화방지(松花坊址), 연리지(連理枝) 송화방지(松花坊址)는 김유신 장군 가문 원찰 터 자리라고 전해져오는 곳에 세운 비석이다. 김유신 장군이 돌아가신 후 재매부인이 여기에 절을 짓고 출가하여 송화방이라고 이름 지어 김씨 가문의 원찰로 삼아 장군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송화방지 비석 옆에 수령이 100년쯤 되는 팽나무 연리지 한 그루가 있다. 이곳은 한반도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김유신 장군의 정기가 서려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여기에 있는 100여 년 팽나무 연리지는 더욱 뜻이 깊다. 나라의 경사, 부모에 대한 효심, 친구간의 우정, 부부간의 애정 등을 상징한다고 여겨 옛 문헌에도 귀하고 경사스러운 일이라 전해온다. 이 나무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왼쪽으로 돌면 아들을 낳게 해주고, 오른쪽으로 돌면 딸을 낳게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남녀가 손을 잡고 같이 돌면 사랑의 묘약이 되어 백년해로하게 된다고 한다. 5. 금산재 칼국수 금산재(金山齋)는 김유신 장군의 제사를 모시는 재실이다. 금산재를 관리하는 관리사가 옆에 있다. 숭무전, 금산재를 관리하는 후손이 칼국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식당은 맛집으로 소문나 있어 김유신 장군 묘소, 흥무공원, 숭무전, 금산재를 답사하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식사하고 있다. 금산재 관리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가는 길은 흥무공원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면 된다. 두 번째 길은 김유신 장군 묘소에 주차를 하고, 숭무전으로 연결되는 산책로를 따라 금산재로 걸어가면 된다. 흥무공원은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승용차로 5분여 거리에 있는 근린공원이다. 흥무공원은 나들이하기 좋은 경주의 여행지로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금산재 칼국수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흥무공원 넓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철책을 따라 일직선으로 쭉 가다 보면 작고 좁은 지하통로가 보인다. 철로 밑으로 난 지하통로이다. 얼핏 보면 어두컴컴하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처음 지나가는 사람들은 섬뜩함도 느낀다. ‘공포의 터널’로 알려져 있다. 지하 통로 위로는 동해남부선 철로가 지나간다. 오후 늦게 지하 통로를 지나다 보면 산속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까지 더해 으스스한 느낌마저 드는 곳이다. 저녁에는 조명이 켜지지만 지나가기가 껄끄러운 곳이다. 그러나 요즘 MZ 세대들에게는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소문나 인기 포토존이다.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지하 통로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2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를 봐야 한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극장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일본에서 2001년에 개봉하고, 국내에는 2002년에 개봉했다. 영화에 나오는 낯선 터널 같은 수상한 공간이 바로 여기 지하 통로의 모습과 비슷하다. 영화에는 수상한 터널을 통과하면 금지된 신들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흥무공원 지하 통로를 지나면 초록의 잔디가 깔린 아름다운 모습의 풍광이 펼쳐진다.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을 하는 사당인 숭무전과 부속 건물인 금산교육관, 금산재가 눈 앞에 펼쳐진다. 영화의 한 장면과 비슷하다. 영화를 즐겨 보던 MZ 세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치히로의 부모는 수상한 터널을 지나 신들의 음식을 먹은 뒤 돼지로 변한다. 그러나 흥무공원 지하 통로를 지나면 맛있는 금산재 칼국수 집이 나온다. 고택의 정취가 느껴지는 금산재 칼국숫집은 금산재를 관리하는 건물이다. 식당 메뉴는 칼국수, 들깨 칼국수, 부추전, 수육이 있다. 손님들이 적을 때는 한옥 고택 대청마루에 앉아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칼국수의 맛을 볼 수 있다. 손님들이 많을 때는 야외 천막에서 식사할 수 있다. 식당이 잠시 쉬는 시간은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이다. 이 시간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리사 바로 옆 잔디가 깔린 금산재 대청마루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 요즘 핫한 곳인 지하 터널도 구경하고, 연리지 나무 한바퀴 돌고, 흥무공원 산책 후 칼국수로 식사하면 좋다. 필자는 2월 15일에 김유신 장군 묘소를 참배하고, 임신서기석을 최초로 발견한 석당 최남주 선생을 기리는 석당공원을 답사하고, 흥무공원을 구경한 후 금산재, 숭무전을 둘러보았다. 숭무전은 출입할 수 없어 담장 바깥에서 사진을 찍었다.
-
양산시, ‘양산시립미술관’ 건립 본격 착수- 타당성 조사 및 기본·세부계획수립 용역 착수보고회 개최 - 양산시는 19일 오후 양산시립미술관 건립 추진을 위한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수립 용역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 시립미술관은 문화예술의 전당 내 복합시설로 계획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전시와 수준 높은 공연문화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용역에는 △타당성 분석 △기본 구상안 및 계획 수립 △전시 프로그램 및 콘텐츠 개발 △미술관 운영 및 관리방안 △문체부 공립미술관 사전평가 평가항목 연구 등을 담았다. 양산시는 이번 용역을 통해 공립미술관 건립 사전평가 준비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이번 용역은 6개월간 진행 예정이며 본 용역 기간 중 설문조사, 공청회, 전문가 세미나를 진행해 시민과 문화예술인의 의견을 미술관 건립 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시립미술관 건립 용역을 통해 양산시의 차별화된 콘텐츠 확보, 문화예술인 지원 및 문화자원 활성화 등 구체적인 사업방향을 설정하여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양산문화예술회관, 양산시가족센터와 업무협약 체결- 청소년 진로체험등 사회공헌 및 공연문화 정착 위한 홍보활동에 협력 -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박성관) 문화예술회관과 양산시가족센터(센터장 김덕한)가 지난 12일 양산시가족센터 2층 상담실에서 건강한 가족의 성장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해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협약을 통해 문화예술회관은 ‘청소년 진로체험’, ‘배추 나눔행사’ 등 지원이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협조하고, 양산시가족센터는 공연문화 정착을 위한 사회공헌과 다양한 홍보활동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문화예술회관 김혜연 팀장은 “양산시가족센터와의 협약을 통해 건강한 가정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과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할 것이며, 추후에도 도움이 필요한 계층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양산문화예술회관과 쌍벽루아트홀에서는 양산시민의 문화복지를 위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공연예매와 대관 등 자세한 문의 사항은 양산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www.yangsanart.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이수태 작곡가 반쪽주전자 총판대모집이수태작곡가 반쪽주전자 총판 및 대리점대모집
-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미추왕릉 죽엽군과 김유신 장군 혼령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미추이사금(미추왕) 즉위 미추이사금(262년~284년)이 즉위하다(262년 01월).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미추 이사금(味鄒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또는 미조(味照)라고도 하였다.].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로 갈문왕 이칠(伊柒)의 딸이다.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光明夫人)으로 조분왕(助賁王)의 딸이다. 그의 선조 알지(閼智)는 계림에서 태어났는데 탈해왕(脫解王)이 데려다가 궁중에서 길러 후에 대보(大輔)로 삼았다. 알지는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은 아도(阿道)를 낳았으며,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보(郁甫)를 낳았다. 그리고 욱보는 구도(仇道)를 낳았는데 구도가 곧 미추왕의 아버지이다. 첨해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임금으로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초가 된다. 23년(서기 284) 봄 2월, 나라 서쪽의 여러 성을 두루 돌며 위로하였다. 겨울 10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대릉(大陵)[또는 죽장릉(竹長陵)이라고도 한다.]에 장사 지냈다. 2. 미추왕릉과 죽엽군(竹葉軍) 유리왕대 이서국 사람들이 침략하자 미추왕릉에서 죽엽군이 나와 물리치다. 제14대 유리왕(儒理王) 대에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와서 금성(金城)을 공격하였다. 현재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있던 소국으로, 『삼국유사』 권1 기이1 노례왕조의 기록에 따르면, 유리왕 19년(서기 42)에 신라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한다. 금성은 신라 초기의 궁으로서, 혁거세거서간 21년(서기전 37)에 축조되었으며, 그에 관한 기록이 소지마립간 22년(500)까지 나온다. 우리가 크게 막으려 했으나 오랫동안 견딜 수 없었다. 홀연히 이상한 병사가 있어 와서 도와주었는데 모두 댓잎[竹葉]을 귀에 꽂고 있었다. 우리 병사와 힘을 합쳐 적병을 공격해 격파했다. 적군이 물러간 후에 [이상한 병사들이] 돌아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다만 대나무의 잎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있음을 보고 그때서야 선왕에 의한 음덕의 공이 있었음을 알았는데, 이로 인하여 죽현릉(竹現陵)이라 하였다. 3. 김유신 장군과 미추왕 혼령의 대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第一) 혜공왕대 유신공이 원통함을 미추왕에게 호소하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오래 지나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대인 대력(大曆) 14년 기미(己未) 4월에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유신공(庾信公)의 무덤에서 일어났다. 그 속에 한 사람이 준마를 타고 있었는데 모습이 장군과 같았다. 또한 갑주를 입고 무기를 든 40여 명의 군사가 뒤를 따라와서 죽현릉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능 속에서 우는 소리 혹은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호소하는 말에, “신은 평생에 난국을 구제하고 삼국을 통일한 공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혼백이 되어 나라를 진호하여 재앙을 없애고, 환란을 구제하는 마음을 잠시도 가벼이 하거나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경술년(770)에 신의 자손이 죄도 없이 죽음을 당하였으니 군신들이 저의 공훈을 생각지 않습니다. 신은 다른 곳으로 멀리 가서 다시는 힘쓰지 않으려니 왕께서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대답하여 이르기를 “오직 나와 공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이오. 공은 전과 같이 노력해 주시오.” 하였다. [유신공이] 세 번 청하였으나 [미추왕은] 세 번 모두 허락하지 않았고, 회오리바람은 이내 돌아갔다. 혜공왕이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바로 상신 김경신(金敬信)을 보내어 김공의 능에 가서 사죄하고 공을 위하여 공덕보전(功德寶田) 30결을 취선사(鷲仙寺)에 내리어 명복을 빌게 하였다. 이 절은 김공이 평양을 토벌한 후 복을 빌기 위해 세운 곳이기 때문이다. 미추왕의 혼령이 아니었더라면 김유신 공의 노여움을 막지 못했을 것인즉, 왕이 국가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크지 않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라의 사람들이 그 덕을 기리며 삼산(三山)과 함께 제사 지내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서열을 오릉(五陵) 위에 두어 대묘(大廟)라고 불렀다. 필자는 경주에 있는 미추왕릉을 2월 7일에 방문하였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져 쌀쌀하여 사진 찍을 때 손이 시렸다. 경주 대릉원 내에 있는 미추왕릉을 답사하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죽엽군(竹葉軍)을 연상하면서 왕릉 옆의 대나무도 사진 찍었다. 넓은 대릉원을 구경하고 천마총 앞에까지 갔지만 오후 늦은 시간이라 관람은 하지 않았다. 대신 대릉원 영상관을 둘러보았다. 미추왕릉의 남쪽에 숭혜전이 있어 해마다 제향을 받들고 있다. 외형은 둥근 봉토분이며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다른 무덤과 마찬가지로 돌무지덧널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청도의 이서국이 금성을 공격해오자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병사들이 홀연히 나타나 나라를 구하고 왕릉 속으로 사라졌다고 하여 죽장릉(竹長陵) 혹은 죽현릉(竹現陵)으로 불렀다고 한다.
-
양산시, 내년 신규 국비사업 추진 현황 점검 - 3월 관리자회의 개최 -양산시는 5일 2025년도 신규 국비사업 추진 현황 점검 및 국비 확보 총력을 위해 신규 국비사업 현황 보고를 주제로 2024년 3월 관리자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신규 발굴사업은 30개 부서에서 61건을 제출했으며, 이중 가능사업은 29건, 장기검토 및 전환사업은 10건, 불가사업은 22건으로 총 사업비는 6,619억원이다. 부서별 검토를 거쳐 추진가능 하다고 판단한 사업은 △덕계초등학교 일원 지중화 사업 △친환경 표면제어 솔루션 허브 구축사업 △통도사 경학원 건립 △낙동선셋 바이크파크 사업 △대운산 생태숲 무장애나눔길 조성사업 △자녀안심 그린숲 조성 △신평지구 도시재생사업 △식량 자급률 향상을 위한 나물콩 이모작 작부체계 시범사업 △화제처리분구 외 2개소 하수관로 정비사업 등 29건이 제출됐다. 양산시는 각 부서에 국비 신청 기한 내에 시에 필요한 사업이 신청될 수 있도록 조치 및 투자심사, 중기지방재정계획, 공유재산관리계획 반영 등 사전 행정절차 이행 등을 안내했으며, 3월 말 경상남도에 사업 신청을 할 계획이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가능사업이 11건 늘어난 것은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재정분권에 따라 지특회계 80개 세부사업이 지방전환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신규 국비 발굴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하지만 정부에서도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국비를 지원하고 있으므로 공모사업 신청 및 사업이 선정될 수 있도록 업무 추진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경상남도에서도 2025년 국비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신규 국비사업 뿐만 아니라 계속사업에 대해서도 중앙부처 및 경상남도 사업부서 방문 설명 등 국비 확보에 총력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의 수련지 경주 금장대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화랑도의 기원 삼국사기 제4권 신라본기 제4 진흥왕 조에 보면 화랑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진흥왕은 처음에는 미녀를 뽑아 원화 제도를 도입하였다. 두 여성의 질투로 제도를 폐지하게 되었고, 나중에 잘 생긴 남자를 선정하여 곱게 꾸며 화랑이라고 하였다. 37년(서기 576) 봄, 처음으로 원화(源花, 화랑의 전신)를 받들었다. 일찍이 임금과 신하들이 인재를 알아볼 방법이 없어 걱정하다가, 사람들 여럿을 모아 함께 놀게 하고 그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본 후 천거하여 쓰고자 하였다. 마침내 두 미녀를 뽑았으니 하나는 남모(南毛), 하나는 준정(俊貞)이었다. 3백여 명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런데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서로 질투하다가,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에 유인하여 억지로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하고는 끌고 가서 강물에 던져 죽였다. 준정은 사형에 처해졌으며, 무리들은 화목을 잃어 흩어지고 말았다. 그 후에 다시 잘생긴 남자를 택하여 곱게 꾸며 ‘화랑(花郞)’이라 이름 짓고 그들을 받드니,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도의를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는데, 산과 물을 찾아 노닐고 즐김에 멀더라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로 인하여 그 사람됨의 악함과 바름을 알게 되어, 선량한 이를 택하여 조정에 천거하였다. 김대문(金大問)은 『화랑세기(花郞世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이로부터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부터 생겼다.” 최치원은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에서 말하였다. “우리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가르침의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거니와, 실로 이는 유불선 삼교(三敎)를 포괄하여 뭇 백성들을 교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에 들어와서는 효를 행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함은 노나라 사구(司寇, 공자)의 가르침이고, 억지로 하는 일을 하지 않고 말없는 가르침을 실천함은 주나라 주사(柱史, 노자)의 뜻이며, 모든 악행을 하지 않고 모든 선행을 하라 함은 축건태자(竺乾太子, 석가모니)의 교화이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은 『신라국기(新羅國記)』에서 말하였다. “귀족의 자제 중 아름다운 이를 택하여 화장을 시키고 곱게 꾸며서 이름을 화랑(花郞)이라 하였는데,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높이 받들어 섬겼다.” 2. 금장대 (1) 금장대는 신라팔괴의 하나 금장대는 형산강과 경주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 경주의 하늘을 지나가는 모든 기러기들이 반드시 쉬어간다[金藏(丈)落雁]는 경주 삼기팔괴(三奇八怪)의 장소 중 한 곳이다. 금장대 아래 형산강의 본류인 서천과 북천이 만들어낸 예기청소(藝妓淸沼)는 경주가 고향인 소설가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巫女圖)’ 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자비왕 때 한 여인이 왕과 연회를 즐기는 도중에 실수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며,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자연의 아름답고 영원함과 유한한 인간의 삶, 과거를 통해 오늘을 경계하며 시를 읊조리던 공간이었다. 또 임진왜란 때 경주성(慶州城) 수복 정찰기지 역할을 하였고, 왜군들이 물러났을 때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던 곳이기도 하다. 선사시대 경주인들의 주술적 기원을 담고 있는 얼굴, 동물 등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암각화(岩刻畵)도 발견되었다. 맑고 탁 트이고 우뚝한 금장대[금장청광(金藏淸曠)]는 형산강의 대표적인 절경(絶景)으로 형산강팔경(2016)에 선정되었고, 석장동 암각화는 경상북도 기념물 (1994)로 지정 보전되고 있다. 금장대는 신라 팔괴의 하나이다. 금장대는 화랑도의 수련지였으며, 화랑이 하늘에 맹세한 곳이었다. 임신서기석이 금장대 인근에 있는 석장사지 근처 천수답 논에서 발견되었다. 임신서기석의 임신년은 550년, 612년이라는 주장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용현 씨는 ‘임신서기석의 문체와 연대의 재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임신서기석 연대가 문체 분석을 통해 552년임을 입증했다. 그동안 임신서기의 연대는 612년설이 주류로 인식돼왔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임신서기석은 신라시대 젊은이 두 사람이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충성을 다바칠 것과, 유교경전을 3년 안에 습득할 것을 맹서한 것으로, 임신년 연대에 대해서는 그간 정해진 의견이 없었다.”며 “간지(干支) 연대가 60년마다 반복되는 데다가 결정적인 자료가 결여됐던 탓에 유교 경전이 신라 사회에서 학습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을 기준으로 732년, 612년, 552년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용현 학예연구사는 논고에서는 ‘맹서하기를 … 라고 맹서한다’라는 서술어 반복 문체가 6세기대 신라 금석문에 보이는 것을 근거로 임신년의 연대를 552년으로 특정했다.”며 “이번 연구를 계기로 임신서기석이 국어학에서 이두 발전 연구의 기준 연대를 새롭게 제시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뉴스1, 2017, 1.24). 김유신은 화랑 3년째인 612년 열박산(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에 들어가 하늘에 빌었다. 15살 때부터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렸으며, 17세 때에는 외적을 물리치기 위에 홀로 중악(中嶽) 석굴에 들어가 빌었더니 산신이 나타나 방술(方術)을 전해 주고는 오색찬란한 빛을 남긴 뒤 모습을 감쳤다. 18살에는 열박산(咽薄山) 골짜기에 들어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자 빛이 내려와 보검에 실리고 칼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했다. (2) 형산강팔경(兄山江八景), 경주 8색 형산강(江)은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忍耐山)에서 발원(최장 63.9km)하여 천년 신라의 역사, 문화와 근대 산업 정신을 품고 있다. 형산강 유역의 경주시와 포항시, 그리고 경상북도는 상생 발전 협력을 위하여 형산강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 2월 형산강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경관지 8경을 선정하였다. 영일대(迎日臺), 포항운하(浦項運河), 부조정(扶助亭), 양동마을(良洞마을), 보문 물너울교(普門 물너울橋), 금장대(金藏臺), 월정교(月精橋), 삼릉솔숲(三陵솔숲). ‘경주 8색’으로 꾸미는 야간경관 개선사업, 경주 8색은 화랑 적색, 불국 홍색, 서라벌 황색, 남산 녹색, 동해 청색, 첨성 자색, 금관 금색, 삼국흑색. (3) 제78차 국제펜대회 금장대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곳에서 함께 나눈 시낭송회가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면서 2012. 9. 12 제78차 국제펜대회 금장대 시낭송회 개최 기념 금장대藏에서 권위 Gwon Wi(權暲, 1552-1630) 동도의 전한 자취 찾아 두루 돌아왔지만 고요한 하늘에 새도 지나지 않는구나 오직 금장대 아래로 흐르는 물이 있어 봄바람에 오히려 옛 연기 물결 띠 되어 흐르네 3. 신라 삼보, 삼기 팔괴 삼보(三寶)는 신라를 지킨 보물이다. ‘황룡사 장육존상’과 하늘이 내렸다는 ‘천사옥대’, ‘황룡사 구층목탑’을 지칭한다.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몽고 침략으로 소실된 장육존상은 현재는 황룡사지에 석조대좌만 남아있다. 『삼국유사』에는 ‘고려 왕이 신라를 치려고 하다가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삼기팔괴(三奇八怪)는 경주의 예로부터 세 가지 진기한 보물과 여덟 가지 괴상한 풍경을 말한다. 삼기(三奇)는 금척(金尺), 옥적(玉笛), 화주(火珠)이다. 금척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받았다는 금으로 만든 자다. 묻힌 곳이 금척리고분군이라 전해진다. 옥적은 옥으로 만든 피리로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의 혼령이 합해져 신문왕에게 내려 준 만파식적이라는 설이 있다. 화주는 선덕여왕이 지녔던 수정 돋보기로 햇볕을 비추면 솜에 불이 붙어 화주라고 불렀다. 신라 옥피리 2점과 분황사 탑에서 나온 돋보기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삼기에는 성덕대왕신종이 들어가기도 한다. 팔괴는 금장낙안(金丈落雁), 남산부석(南山浮石), 문천도사(蚊川倒沙), 계림황엽(鷄林黃葉), 압지부평(鴨池浮萍), 백률송순(栢栗松筍), 불국영지(佛國影池), 나원백탑(羅原白塔), 서산모연(西山慕煙), 금오만하(金鰲晩霞)이다. 금장낙안(金丈落雁)의 금장은 서천과 북천(알내)이 합치는 곳으로 임금이 노닐던 금장대를 말한다. 높은 바위에 올라서 바라보면 서라벌이 한눈에 굽어 보이는데, 예기청소 푸른 물에 비치는 전망이 아름다워 날아가던 기러기도 잠시 내려서 쉬어 갔다고 한다. 남산부석(南山浮石)은 버선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버선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며, 남산의 국사골에 있다. 큰 바위 위에 또 한 개의 바위가 얹혀 있는데, 실을 넣어 당겨보면 바위가 공중에 뜬 채로 있기 때문에 실이 빠져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문천도사(蚊川倒沙)는 문천(남천)의 모래가 너무나 부드러워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모래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문천은 예로부터 모기내 또는 물개(모래)내라고 불렸다. 계림황엽(鷄林黃葉)은 계림의 나뭇잎이 움이 트면서 붉은색을 띄는 것이다. 압지부평(鴨池浮萍)은 안압지에 부평초가 무더기로 떠다니는데, 뿌리가 땅에 닿지 않은 채 바람에 밀려 다니는 모양이 또한 장관이다. 백률송순(栢栗松筍)은 소나무에는 순이 돋아나지 않는데 백률사에 있는 소나무는 가지를 치면 거기서 새순이 난다. 불국영지(佛國影池)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얽혀있는 영지에는 날이 밝으면 불국사의 전경이 물에 비치는데, 다보탑만이 보이고 석가탑은 비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석가탑을 무영탑이라 부른다. 나원백탑(羅原白塔)은 현곡면 나원리에 있는 나원리 오층석탑이 백색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오래도록 흰 빛깔을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다. 서산모연(西山慕煙)의 서산은 선도산인데,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성산으로 선도성모가 계신 곳으로 크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석양이 비친 노을이 빼어나 서산모연이라고 한다. 금오만하(金鰲晩霞) : 금오산(남산)은 언제나 아지랑이가 끼어 있다. 아지랑이가 저녁놀에 반사되어 연분홍 빛으로 피어오르는 광경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아름다움이다. 필자는 금장대를 2월 4일, 2월 7일 2회에 걸쳐 답사하였다. 첫 번째 방문 때는 저녁 시간대이고 흐린 날씨여서 암각화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 맑은 날인 2월 7일에 다시 방문하였다. 맑은 날이어서 암각화가 잘 보여 사진 찍기 좋았다. 재방문한 보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