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심상도박사 오늘의뉴스 이수태 작곡가 작시와 작곡의 만남 출판기념회 제1탄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출판기념회 개요 2023년 11월 18일 오후 2시 양산문화원에서 ‘이수태 작곡가 작시와 작곡의 만남 출판기념회’가 나동연 양산시장, 최영호 도의원, 권혁준 도의원, 이용식 도의원, 박인 도의원, 신재향 양산시의원, 박인주 양산문화원장, 정상열 양산시체육회장 등 내빈, 양산중앙로타리클럽 윤상훈 전 회장 및 회원, 가수, 음악인, 친구, 지인, 가족 등 많은 참석자의 축하 속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출판기념회는 양산중앙로타리클럽 주최, 양산CT밴드 주관, 후원 양산시체육회, 양산시민신문, 와이뉴스(YNEWS) 등으로 쌀쌀한 날씨 속에서 음악 애호가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식전 행사로 양산청소년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플룻, 클라리넷 앙상블 공연이 있었다. 김명관 양산시민신문 대표의 사회로 북 콘서트가 열려 이수태 작곡가의 음악 인생, 작품 성과를 탐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수태 작곡가는 대중 음악인으로 작사, 작곡을 동시에 하는 다재다능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통상 작사는 시인이나 문학가들이 하고, 작곡은 전문 음악인이 하는 것으로 분업화되어 있으나 이수태 작곡가는 양쪽을 겸비한 보기 드문 재주꾼이다. 또한 직접 노래하는 가수로 자신의 기타 반주에 맞춰 열창하는 열정의 대중가수이기도 하다. 어곡동 산골짜기에 음악실을 차려놓고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조용한 자연 속에서 창작, 연주, 연습하며 실력을 연마해온 실력파 음악인이기도 하다. 양산지역의 후배 가수들에게 좋은 곡을 선사하여 유명 가수가 되도록 뒷받침해온 것도 중요한 음악적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참된 봉사인이다. 이수태 작곡가는 와이뉴스(YNEWS)의 작곡가 이사로 활동하며 작품 발표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유튜브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네이버의 노래 듣기 ‘이수태 작곡가’ 검색하면 와이뉴스(YNEWS) 김영식 대표가 올린 동영상, 이수태 작곡가가 올린 동영상 등이 다양하게 나온다. 출판기념회는 이수태 작곡가의 인사말, 꽃다발 전달, 내빈 축사 등으로 이어졌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이수태 작곡가의 음악 활동을 성원하며 지켜본 후원자이다. 이번에 출판되는 책자를 사전에 입수하여 숙독하며 면밀하게 살펴보니 인생의 진면목이 나타나 있었다고 호평하였다. 그만큼 이수태 작곡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반증이다. 이 작곡가의 음악적 재능과 성과를 높게 펑가하였다. 이 작곡가의 지금까지 살아온 음악과 예술 인생이 의미가 깊었다고 덕담하며 앞으로 힘을 더 내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투병 생활을 안타깝게 여기며 쾌유를 기원하였다. 이 순간 김명관 사회자는 재치 있게 퍼포먼스를 제안하였다. 나동연 시장이 “이수태!” 선창하면 청중들이 “힘내라!!!” 외치도록 이끌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종희 양산시의회 의장은 축사에서 이수태 작곡가가 음악 CD를 제작하여 배포함으로써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준 일을 회상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앞으로 건강도 괜찮을 것이며 나을 것이라 믿는다고 격려하였다. 이종희 의장이 “수태야!” 선창하고 청중들이 “힘내라!!!” 화답하였다. 박인주 양산문화원장도 축사에서 빨리 나아서 양산의 문화 발전을 위해 더욱 힘써달라고 덕담을 하였다. 이수태 작곡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을 두고 작곡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때로는 막힐 때가 많았다고 회고하였다. 그런 순간에도 나만의 자부심을 살리며 더욱 정진하였다고 추억을 되새겼다. 성장하여 힘든 순간 술 먹으면 다소 의지가 되기도 하였으나 술 끊으니 괴로운 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행복하세요.” 하며 인사를 하였다. 이수태 작곡가는 “호박꽃 당신”이라는 노래를 거론하며 “호박꽃은 꽃도 아닌 꽃이라고 외면하며, 이꽃 저꽃 사랑주며 향기꽃에 입맞췄지.” 회한을 표현했다. “저 멀리 열매품은 호박꽃 당신있네, 눈물돌로 쌓은 꽃탑 호박꽃 당신이네.”하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우회적으로 표출하였다.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함께 하며 자리를 지키는 아내는 고마운 존재이자 영원한 반려자이다. 이수태 작곡가의 책에 첫 번째로 나오는 ‘노래는 사랑하는 아들딸아’로 노래 작시에서 가족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가 ‘호박꽃 당신’, 이어서 ‘아버지’, ‘울엄마’가 나와 단란한 가족을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황혼의 길’, ‘꽃과 인생’으로 마치 인생역정처럼 노래 가사가 나와 깊은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리고 성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자녀도 또한 든든한 인생의 울타리가 되고 있다. 가족은 언제나 소중한 인연이고, 평생을 함께 하는 존재이다. 이수태 작곡가의 음악도 아름답지만 작사에 숨겨진 내밀한 스토리와 감동적인 이야기는 깊은 울림과 호소력이 있다. 큰 아들이 아버지의 건강한 노후를 기원하는 인사말을 하였다. 무대에 가족이 나오고 사돈도 함께 하며 청중들에게 인사하였다. 이수태 작곡가는 자신의 기타 반주에 맟춰 찔레꽃을 열창하였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래하는 이 작곡가의 얼굴엔, 비장미가 흘러 행사장 경내는 숙연해졌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고뇌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노래함으로써 청중들의 감동은 배가되었다. 베토벤 같은 악성도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이어져 불후의 명곡을 남겨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이 작곡가 역시 앞으로 제2, 제3의 음악적 성과가 나올 것으로 굳게 믿는 바이다. 2. 이수태 작곡가의 약력 이수태 작곡가는 1958년 양산 남부동에서 2남 4녀 중 막내로 출생, 양산초. 양산중. 양산고등학교를 졸업, 그동안 양산아리랑 등 50여 편의 작사 작곡을 통해 가수 김정석, 진달래, 양산의 지역 가수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양산 유일의 대중 작곡가로서 활동하였다. 새로운 창작 계통에 남다른 관심이 높아 발명 특허도 획득했다. 특히 봉사 정신이 투철하여 30여 년 전 양산 최초로 지체장애인 후원회를 결성하여 지금까지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양산중앙로타리 20대 회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다. 34년 동안 대우자동차와 쉐보레 자동차 양산대리점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30여 년간 CT 밴 드를 창단해 음악 활동을 하던 중 갑자기 건강 악화로 현재 서울대학병원을 오가며 투병 생활하고 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이수태 작곡가의 쾌유를 기원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이수태 작곡가는 CT밴드를 창단해 30여 년간 양산에서 음악 활동을 해왔다. 출판기념회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CT밴드 진두찬 악장이 트럼펫 연주를 준비하였다. 진두찬 악장은 이수태 작곡가의 오랜 음악 동지로서 함께 활동하였다. 진두찬 악장은 두 곡을 연주하였는데, 한 곡은 ‘밤하늘의 트럼펫’, 또 한 곡은 소양강 처녀였다. ‘밤하늘의 트럼펫’은 이수태 작곡가의 작품이다.
-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김유신 장군의 강릉지역 군사 훈련장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대관령산신제(大關嶺山神祭) 대관령산신제는 대관령 산신각에서 음력 4월 15일에 산신인 김유신(金庾信) 장군을 모시고 지내는 제의이다.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대관령 산신제는 대관령에 위치한 산신각에서 시작한다. 대관령 산신제는 대관령을 지키는 산신을 기리는 제사로 김유신이 명주(溟洲)에서 검술을 배워 삼국을 통일하고 강릉을 수호하는 신격이 되었다고 한다. 대관령 산신제가 강릉단오제의 시작이었다는 기록은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14, 「문부」11,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幷書)」에 자세히 나타나고 있다. 이보다 앞서 남효온[1454~1592]은 『추강선생문집(秋江先生文集)』 권5,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서 산신제에 대하여 “영동 민속에는 매년 3,4,5월 중에 날을 가려 무당과 함께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음식을 아주 잘 장만하여 산신제를 지낸다(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부자는 말 바리에 음식을 싣고 가고 가난한 사람은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가서 신의 제단에 제물을 진설한다. 피리 불고 북을 치며 비파를 뜯으며 연 3일을 즐겁게 취하고 배불리 먹은 후 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매매를 시작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조그만 물건도 얻을 수도 없고 주지도 않는다(嶺東民俗, 每於三四五月中擇日迎巫, 極辦水陸之味以祭山神, 富者駄載, 貧者負戴, 陳於鬼席, 吹笙鼓瑟, 嬉嬉連三日醉飽, 然後下家, 始與人買賣, 不祭則尺布不得與人).”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남효온이 1471년에 고성 삼일포를 지나며 산신제를 지내는 행사를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는 비록 강릉을 지칭하지 않았으나 영동 민속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루면 강릉 지방이 포함된다. 산신제를 지내고 축제를 여는 모습이 강릉단오제와 흡사하며 더구나 3월부터 축제 준비를 하여 4월과 5월 단오날을 택해서 제를 지내는 모습이 같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은 다음과 같다. 강릉시장을 비롯하여 단오제 위원장, 단오제 제례부분 기예능보유자를 삼헌관으로 선정하고 강릉단오제보존회에서 제집사를 맡아서 진행한다. 대관령 산신제는 홀기에 따라 진행되는데 신을 뵙는 행참신례(行參神禮)로부터 폐백을 드리는 행전폐레(行奠幣禮), 초헌관이 드리는 행초헌례(行初獻禮), 폐백과 축문을 소각하는 행망료례(行望燎禮), 신위를 사뢰하는 행사신례(行辭神禮)로 끝난다. 제물, 용품, 제구는 다음과 같다. 반병미백미삼승삼합(飯餠米白米三升三合), 제주일승(祭酒一升), 우육생이근(牛肉牲二斤), 육오근(肉五斤), 해물우락어(海物遇樂魚) 또는 열강어오미(悅江魚五尾), 문어일조(文魚一條), 명태어십오미(明太魚十五尾), 대구포중일미(大口脯中一尾). 계란 열개, 조일승(棗一升), 율사승(栗四升), 건시일접(乾柿一接), 배 또는 사과 열 개, 산자 또는 과자, 소채류 약간, 조미료 약간 등이다. 축문, “모년 4월(간지삭) 15일(간지) 모관 모인은 감히 밝게 대관령 산신님께 아뢰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데 존령님은 저희 대동땅[영동지방]에 있어서 종요로운 자리에 계시오며 저희들을 보살피고 도와주시옵니다. 비바람을 조절하시어 풍년이 들게 하심과 악을 제거하시고, 재앙을 물리치시는 이 모두가 존령님의 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오래도록 제사를 받들어 복을 빌기를 그치지 아니하여 삼가 마련한 제물로 공경을 다하여 정성껏 올리오니 흠향하옵소서(維歲次 某年干支 四月干支朔 十五日干支 某官 某敢召告于大關嶺山神之神 伏惟 尊靈 重鎭大東 保佑我人 出雲興雨 除惡去災 罔非神功 永言報祀 求福不回 謹以淸酌 脯醯祗薦于神 尙 饗).” 대관령 산신제는 음력 4월 15일 10시부터 제관들의 삼헌과 홀기에 의해 진행되고 제물은 규모에 따라 신축성이 있다. 음복은 시민들의 헌미(獻米)로 단오신주와 시루떡을 만들어 나누어준다. 2. 군웅(軍雄) 굿 강원도 강릉시에서 행해자는 굿으로 별칭은 놋동우굿,놋동이굿,논동우굿,장수굿,군웅장수굿 등이다. 강릉단오굿과 강원도 지방 별신굿 등에서 장군신을 모셔 행하는 굿이다. 군웅장수굿 또는 논동우굿이라고도 불리우는데 군웅의 성격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조상신, 농신, 사신이나 장수의 신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외부에서 들어와 잡귀를 물리치는 신으로도 나타나는데 강릉단오굿의 군웅은 장수신의 성격이 강하다. 별신굿에서는 김유신을 비롯한 여러 장군을 청한 뒤 무당이 놋동이를 입에 물고 장군의 위엄과 위력을 보인다. 군웅장수굿의 장단은 청보 1장~6장까지이고 각 장수들이 들어올 때는 굿거리장단으로 친다. 굿은 청배무가와 춤, 놀이굿, 장수풀이, 놋동이물기, 축원, 수부물림 등으로 진행된다. 군웅굿의 장수신은 욕심 많고 탐심이 많아 잘 모셔야 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름이 난 우리나라의 여러 장수들을 부르는 장수풀이를 한 뒤 음식을 차려 잘 대접한다. 특히 술타령이 건드러진다. 장수신의 도움으로 자손들이 복을 받기를 기원한다. 놋동이가 사용된다. 무가의 구연이 끝나면 무당이 무거운 놋동이를 입에 물어 올려 신의 위력을 보여준다. 놋동이는 상과 채를 여러 개 놓고 그 위에 놓기 때문에 상당히 무거워지고 그렇게 높아진 놋동이를 입으로 무는 무당의 힘과 신의 위력은 그만큼 크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다투어 앞으로 나와 놋동이 안에 돈을 넣고 놋동이를 만져 신과 직접 접촉하려고 한다. 무녀는 철릭 모양의 활옷을 입고 머리에는 전립을 쓴다. 단오굿 제차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다. 3. 김유신 장군이 주둔한 영채(營寨)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있는 들로서 별칭으로 하평(下坪)이라고 한다. 영채(營寨)는 이곳 넓은 들에 신라 군사들이 훈련을 하면서 머무는 진영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신라 때 강릉 지역으로 자주 침범하는 말갈족을 물리치기 위해 김유신(金庾信) 장군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군사들을 훈련을 시켰는데, 훈련을 시킨 진지, 진영이 있었다고 한다. 영채는 남대천 하구에 있는 넓은 들이어서 하평(下坪)이라고도 한다. 영채 앞에는 남대천이 흐르고, 포남동의 넓은 들, 젠주의 넓은 들, 초당 앞의 들과 이어진다. 영채에서 동쪽으로 가면 젠주가 되고, 서쪽으로 가면 포남동 들이 되고, 남쪽으로 가면 남대천이 되고, 북쪽으로 가면 억지다리([초당동과 경계 지역]가 된다. 영채에는 억지다리, 삼형제다리, 동명초등학교 등이 있다. 억지다리에서는 2월 좀생이날[묘성]에 북쪽에 있는 초당마을과 횃불싸움을 했다고 한다. 4. 말갈족(靺鞨族) 6세기~10세기경 만주 동북부 지역에 거주하였던 주민 집단. 북제(北齊) 무성제(武成帝) 하청(河淸) 2년(563년)에 조공한 것으로 처음 등장하여 요(遼) 태종(太宗) 회동(會同) 원년(938년)까지 기록이 보인다. 거주 지역과 풍속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숙신-읍루-물길의 후예이자 여진의 선조로 언급되기도 한다. 말갈의 계통에 대해서는 숙신 · 읍루 · 물길 · 말갈 · 여진으로 이어지는 퉁구스계 종족이라는 일원적 계통론과 말갈로 통칭되는 집단 속에 예맥계(濊貊系)와 숙신계(肅愼系)가 섞여 있다는 다원적 계통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일원적 계통론은 혈연적 동질성에, 다원적 계통론은 문화적 동질성에 초점을 두며, 수 · 당 시기 중국인이 동북아시아 이종족을 낮추어 불렀던 비칭(卑稱)이란 견해와 고구려의 일부 피지배 주민을 가리키는 종족명이었다는 설이 있다. 말갈의 의미로는 원음(原音)이 Moxo, 또는 Moho로서 여진어의 물[水]을 뜻하는 Muke와 연결하는 견해가 대표적이며, 이 경우 ‘말갈은 물가에 사는 사람들’의 뜻이다. 말갈에 관한 기록과 정보를 모아 별도의 열전으로 구성한 것은 『수서(隋書)』가 처음이고, 이후 『구당서(舊唐書)』에는 말갈열전이, 『신당서(新唐書)』에는 흑수말갈열전이 수록되었다. 『구오대사(舊五代史)』와 『신오대사(新五代史)』에는 흑수말갈열전이 있다. 따라서 『수서』 말갈열전에서 전하는 정보가 말갈 연구의 기초가 된다. 『수서』 말갈열전에 따르면 속말부(粟末部), 백돌부(伯咄部), 안거골부(安車骨部), 불열부(拂涅部), 호실부(號室部), 흑수부(黑水部), 백산부(白山部)의 7개 부(部)로 나뉘어 있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인용된 북번풍속기(北藩風俗記)에는 수나라 때 속말부의 거수(巨帥) 돌지계가 자신의 부인 궐계부(厥稽部)를 비롯하여 홀사래부(忽賜來部), 굴돌시부(窟突始部), 열계몽부(悦稽䝉部), 월우부(越羽部), 보호뢰부(步護賴部), 파해부(破奚部), 보보괄리부(步步括利部) 등을 이끌고 수에 귀부했다고 하였다. 5. 고구려, 발해와의 관계 『수서』 말갈열전에는 속말부가 정예로운 병사가 수천 명으로 늘 고구려를 침략한다고 하였고, 『구당서』 말갈열전에는 백산부가 본래 고구려에 부용되었다고 했으며, 실제로 수나라 말에 속말부 소속의 돌지계가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자 자신의 부와 주변 부락을 이끌고 수나라에 귀부한 사실이 있다. 고구려는 598년에 영양왕이 말갈병을 거느리고 요서 지방을 침입하였으며, 645년 당 태종의 침입 시 안시성 전투에 말갈병을 동원하였는데 3천여 명이 당군의 포로가 되어 생매장당한 일이 있다. 이로 보아 고구려는 일부 말갈에 대해 강한 영향력과 통제력을 갖고 있었으며, 그들의 자치를 허용하며 간접적으로 지배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645년 안시성 전투에는 당군으로 참전한 말갈병도 있어 고구려가 말갈 전체를 지배한 것은 아니며, 말갈 부락이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고구려와 중국 왕조를 선택하여 살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멸망 이후 말갈의 일부 세력은 고구려 유민과 함께 발해 건국에 참여하였으며, 『신당서』 말갈열전에는 발해 건국자 대조영(大祚榮)이 속말부 출신이란 기록도 있다. 일본의 『유취국사(類聚國史)』에는 학승(學僧) 영충(永忠)의 전언을 바탕으로 발해 촌리(村里)가 모두 말갈 부락이고 백성은 말갈이 많고 토인(土人)이 적다고 하였는데, 발해 전체가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말갈이 발해 주민의 주요 구성 부분의 하나였음은 인정된다. 6. 강릉 안목해수욕장과 커피거리 김유신 장군은 강릉지역에 대한 말갈족의 침략을 방어하고 백성들의 생명을 지킨 수호신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김유신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와 강릉지역에 주둔하면서 국경의 방어를 튼튼히 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던 송정동의 넓은 들판은 해변 가까이 있다. 논밭이 펼쳐진 넓은 벌판도 상전벽해로 변해 송정해수욕장, 안목 커피거리, 아파트 지구로 변모하고 있다. 옛날 신라시대 군사훈련장에는 동명초등학교도 들어서 있다. 해안가는 강한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해송, 금강송이 우거져 있고, 산책로가 조성되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강릉지역의 송림은 수령 40~80년으로 해안가 모래 위에 서식하며 바람과 염분 피해를 줄여주는 방풍림 역할과 함께 산책코스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해안가에는 김유신 장군의 후예인 군인들이 바다를 지키는 초소도 자리잡고 있다. 안목해변과 송정해변을 거쳐 강문해변, 경포해변까지 이어진 해변솔밭길은 강릉 바우길 5구간과 해파랑길 39코스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해변에서는 요즘 유행인 맨발걷기를 하는 관광객도 보였다. 해안가로 펼쳐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금강송 명품 숲길이다. 아름드리 금강송과 해송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향긋한 솔향과 피톤치드향을 맡으며 걸을 수 있다. 강릉시가 반려동물과 함께 걷는 여행길인 ‘시민과 함께하는 강릉 바우길 펫산책 구간’을 2022년 8월 23일 개통하였다. 바우길 펫산책 구간은 총 3개 코스로 첫번째 코스는 바우길 바다호숫길 중 안목 입구에서 송정 해변쉼터까지 1.1㎞ 구간으로 송정 해송 군락지 및 금빛 모래사장 산책을 즐기게 된다. 펫구간에는 올바른 반려문화 정착 및 청결한 산책 환경 조성을 위해 배변 봉투함과 안내 입간판이 설치됐다. 동반 가능 반려견은 중‧소형견 및 맹인 인도견으로 견주는 반드시 목줄을 의무착용하고 간격 2m를 유지해야 한다. 지난 4월 산불로 송림 일부가 불에 타는 피해를 본 강릉시에서 바닷가 소나무 방풍림을 지키기 위해 바닷가 곳곳에 소화전을 설치하고 있다. 강릉시는 예산 6억 8천만 원을 투입하여 올해 말까지 견소동에서 사천면에 이르는 6.3㎞ 구간 해변도로에 소화전 34개를 설치하고 있다. 강릉 커피거리는 강릉항에서 안목해맞이공원까지의 516m의 거리를 말한다. 제15회 강릉커피축제가 지난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 경포 호수광장, 안목 커피거리에서 진행되었다. 안목 커피거리는 원래 횟집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전국의 유명 바리스타들이 강릉으로 이전 하면서 이곳은 커피거리로 바뀌었다. 대표적으로 박이추 바리스타의 보헤미안, 김용덕 대표의 테라로사 등이 있다. 바다를 보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낭만적인 곳인데, 커피박물관, 커피 공장, 로스터리 카페 등이 있다. 송정 바닷가에 있는 안목 커피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주변 들판에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강릉을 수호하기 위하여 주둔하고 군사훈련을 했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릴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유신 장군은 대관령 산신령으로서 강릉단오제의 주신의 한 명으로서 여전히 강릉시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또한 전국의 많은 무속인들이 떠받드는 장군신으로 군림하고 있다.
-
심상도박사 오늘의뉴스 제1회 천성산생태숲 전국걷기축제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1. 걷기축제 행사 개요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은 11월 11일 8시 30분 웅상체육공원에서 출발하는 ‘제1회 천성산생태숲 전국걷기축제’에 참가하여 제3코스를 완주하였다. 양산도시문화연구원(원장 황윤영)과 천성산생태숲길전국걷기축제위원회(위원장 이희종)는 대한민국 대표 남녀 산악인 허영호, 최오순과 함께 걷는 제1회 천성산 생태숲길 전국걷기축제'를 개최하였다. 사전 예약 선착순으로 2,000명을 접수하여 마감하였다. 그러나 걷기축제 당일에 사전 신청없이 온 참가자들도 제한 없이 수용하여 대략 2,5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참가자들에게는 기념품으로 등산용 모자를 지급하였다. 생수, 간식도 제공하였으며, 코스 출발 전에 경품 추첨도 하였다. 행사 종료 후에도 경품추첨을 하였다. 완주자에게는 기념품을 증정하였다. 행사는 당일 오전 9시 평산동 소재의 웅상체육공원에서 개회식을 한 뒤 10시 15분부터 1코스 유라시아 일출코스(15km 6시간 소요), 2코스 유라시아 월출코스(10km 5시간 소요), 3코스 청산산둘레길 가족코스(5km 2시간 소요)로 출발해 원점 회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완주자에겐 기념품이 지급되었다. 가족단위로 참가한 회원 중에서 일가족이 10여 명 넘게 신청한 참가자는 개막식에서 기념품을 받았다.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3코스가 참가 인원이 제일 많아서 두 팀으로 나누어 출발하였다. 허영호 산악인은 제일 먼 코스인 1코스에 참가한 회원들과 함께 걸었다. 최오순 여성 산악인은 3코스인 가족회원과 함께 걸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남녀 산악인인 허영호 대장, 최오순 대장은 걷기축제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두 산악인은 팬들이 요구하는 사인을 모두 친절하게 해주며 기념사진 촬영도 기꺼이 응해주어 인기 만점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7대륙 최고봉과 남극·북극점 도보 탐험에 성공한 허영호 산악인과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최오순 산악인이 함께하며 참가자들과 즐겁게 산을 올랐다. 허영호 3극점 탐험 사진전 및 사인회, 유라시아 첫일출 천성산탐방 사진전, 법기도자차문화원 차봉사, 새오름봉사회 차봉사, 소주동 주민자치회 글로벌 청소년분과 천성산탐사대 수료식, 경품 추첨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되었다. 2. 양산숲길보전회 회원 3코스 등산 참가한 회원은 심상도 회장, 김광민 부회장, 조상현 사무국장, 이다겸 재무, 김동철, 박태규, 김민주, 권동억, 김은숙, 김주은, 지현덕, 유현숙, 이유현, 전현숙, 황수빈, 황나빈 등이었다. 회원 중 친구나 모임별로 신청한 회원은 각각 따로 걸었다. 웅상체육공원에서 코스별로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허영호 산악인의 사진 전시회, 유라시아 첫일출 천성산 사진 전시회를 둘러보고, 따뜻한 차를 제공하는 부스에서 차를 마시면서 추위를 녹였다. 아침에 기온이 많이 떨어져 걱정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온이 올라 온기가 감돌았다. 나중에 산행을 할 때는 나무가 울창한 숲속을 걸으니 땀이 날 정도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로 등산하기에 알맞았다. 조상현 사무국장은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허영호 산악인, 최오순 산악인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또한 허영호 산악인과 윤영석 국회의원이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배려하였다. 모든 수배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한 사무국장에게 감사드린다. 이다겸 재무가 생수를 가져와서 회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산행 출발은 1코스, 2코스, 3코스별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3코스는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관계로 두 팀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코스로 등잔산 정상을 향해 등산을 시작하였다. 개막식 행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산행 출발도 늦어져 10시 15분경에 웅상체육공원을 나섰다. 그동안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은 정기답사를 통해 세 번 정도 등잔산 전망대, 청산산둘레길, 회야강 발원지 은수고개 방향 등으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등산로를 잘 알기 때문에 가장 늦게 출발하였다. 웅상체육공원 테니스장 끝에 있는 정자 옆의 등산로를 이용하여 등잔산으로 향했다. 선두의 3코스 팀은 ‘평산삼한사랑채아파트’ 앞의 계단길을 올라가 좌측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를 이용하였다. 조금 올라가니 선두 팀과 만나게 되었다. 등산로가 약간 넓어서 많은 인원이 이동할 수 있었다. 한참 올라가니 코스 안내원이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난 오르막길을 선택하면 등잔산 전망대 최단거리 코스가 된다. 행사 주최측에서는 청산산둘레길 쪽으로 안내하였다. 올라가다 보니 최오순 여성 산악인이 참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상현 사무국장이 재빨리 요청하여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청산산둘레길을 따라 임도에 있는 정자에 도달하였다. 정자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한숨 돌렸다. 심상도 회장이 막걸리 두 병을 가져와 목을 축였다. 이다겸 재무는 건강에 좋은 쌍화차를 가져와 서비스하였다. 조상현 사무국장은 귤을 가져오고, 나머지 회원들도 먹거리를 가져와 맛있게 나눠먹었다. 모든 회원들에게 감사드리는 바이다. 휴식 후 등잔산 전망대로 올라가 중간 코스 점검 도장을 받았다. 등잔산 정상석 앞에서 가념사진을 찍었다. 등잔산 전망대는 참가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돌아가는 코스는 필자가 잘 알기에 내리막길로 안내하였다. 웅상체육공원 야구장 근처 화장실 쪽으로 내려왔다. 시간은 30분 남짓 걸렸는데, 계속 내리막길로 초반은 경사가 심하고, 그다음부터는 평탄한 내리막으로 걷기 편했다. 3코스 등산 시간은 1시간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참가한 회원들이 오후에 바쁜 일정이 많아 웅상체육공원의 본부석으로 가 완주 기념품을 받지 않고 바로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식당은 남도고기집(055-386-0799)으로 숨겨진 맛집이었다. 식당 주소는 양산시 내연1길 17-6이다. 인터넷으로 웅상지역의 맛집을 검색하니 나오지 않았다. 요즘 보기 드물게 가격도 저렴하고, 돼지고기는 국산 한돈이었다. 식당은 조상현 사무국장이 선정하였는데, 웅상체육공원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메뉴는 삼겹살, 돼지두루치기, 해물된장찌개 백반(7천 원), 장어탕, 오리훈제 등이었다. 한돈 두루치기 백반(7천 원)을 시켜서 상추로 쌈을 싸서 맛있게 먹었다. 라면 사리 추가는 1천 원이다. 삼겹살이나 두루치기를 시키면 된장찌개를 2천 원에 제공하였다. 어탕은 7천 원이었다. 식당 벽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 있어 감상할 수 있다. 즐겁게 산행을 마친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3.. 산악인 허영호 허영호(許永浩) 1954년 4월 16일 충청북도 제천시 출생으로 1973년 제천고등학교, 1989년 청주대학교 체육학과를 거쳐 1994년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2년 5월 히말라야 마칼루 등정을 시작으로 북극점 원정, 남극점 원정,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정 등 2007년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등정에 이르기까지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과 남북극점 정복, 북극횡단, 에베레스트 3회 등정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후 그는 드림앤어드벤처를 설립하고 초경량 비행기 조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경비행기를 이용 세계일주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2007년 1월 1일 경기도 여주에서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까지 왕복 1,100km의 단독 비행에 나섰으나 전라남도 청산도 해상에서 추락하며 지나던 어선에 구조되었다. 2008년 4월 18일 같은 기종의 항공기로 같은 코스에 재도전하여 1년 4개월 만에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실로 의지의 한국인이다. 허영호는 엄홍길 대장과 더불어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악인이다. 1974년 한국산악회 히말라야 원정대 회원으로 선정된 인연으로 그는 쉼 없이 최고의 험난한 산들을 등정했다. 1982년 5월 히말라야 산맥 마칼루(8481m), 1983년 10월에 죽음의 산으로 알려진 마나슬루(8156m)를 무산소 단독 등정으로 성공했다. 1987년 12월 22일 고(故) 고상돈 산악인에 이어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8,864m) 정상에 올랐다. 그는 정상에 서면 또 다른 정상이 보인다고 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다음의 정상을 꿈꾸고 준비한다.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의 길이 보인다. 살아 숨 쉬는 동안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 호기심은 나를 지탱해 주는 영양분이다.”라고 하였다. 허영호 산악인은 등산의 매력을 “산에 올라서면 세상이 넓게 보이고 마음까지 넓어지며 일상을 새롭게 살아갈 활력을 얻는다. 등산의 매력은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산에서는 오로지 나 자신이 주인공이다. 내가 즐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면 된다. 오롯이 산과 자연, 나 자신만 있는 것이다.” “산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산과 친구가 되고 산과 대화를 하며 교감을 나눈다. 그러면서 잃어버렸던 활력과 열정을 찾고, 심신이 정화되고 치유하는 효과까지 맛본다.”고 하였다(월간 교정, 2020, 5월호). 생사를 넘나들어야 하는 험준한 산을 등정하는 데 제일 중요한 요소는 리더의 역할이다. 아무리 훈련된 대원들이라 할지라도 리더가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하면 등정은 실패하고, 심하면 대원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기에 리더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가 말하는 리더의 조건은 아주 간명했다. “배우고, 먼저 경험하고, 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조건 ‘하면 된다’고 소리만 쳐서 될 일이 아니다. 리더는 경험이 풍부하고 박식해야 한다. 산에 대해서는 물론 기상·식량·무전기·셰르파 활용 등 많은 영역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을 많이 축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디테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공의 필요조건은 디테일에 있다”고 강조했다(시사저널, 2017.07.21.). 허영호 산악인에게는 본받을 점이 너무 많다. 해외 등반 기록 - 1982년 : 히말라야 마카루 - 1983년 : 히말라야 마나슬루 - 1987년 :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대한민국 산악인 최초 겨울철 등반 성공) - 1989년 : 히말라야 로체 - 1991년 : 북극점 원정 - 1992년 : 안데스 아콩카구아 - 남아메리카 - 1992년 : 맥킨리 - 북아메리카 - 1992년 : 킬리만자로 - 아프리카 - 1993년 : 초모랑마 - 중국 - 1993년 : 남극점 원정 - 1994년 : 칼스텐즈 - 1995년 : 북극해 횡단 (북극점 경유) - 1995년 : 코카서스 엘브르즈 - 러시아 - 1995년 : 빈슨 매시프 - 남극대륙 - 1996년 : 맥킨리 - 1996년 : 남극점 원정 - 1997년 : 초오유 - 티베트 - 1998년 : 킬리만자로, 케냐산 - 1998년 : 코카서스 엘브르즈 - 1999년 : 침보라조, 코토팍시 - 에콰도르 - 2000년 : 코지우스코 - 2001년 : 클류체프스키야 - 러시아 캄차카반도 - 2002년 : 에베레스트 뷰포인트 트래킹 - 2003년 : 몽블랑 - 2005년 : 킬리만자로 - 2007년 :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동계 등정 4. 산악인 최오순 1993년 5월 10일 오전 (현지 시각) 대한민국 산악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이 만들어졌다. 지현옥 대장을 비롯, 최오순, 김순주 등 3명의 한국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여성등반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이날 새벽 2시 해발 8,050m에 설치된 제4 캠프를 출발한 이들은 세 차례의 정상공격 끝에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3월 17일 카트만두를 출발해 등반을 시작한 지 55일 만에 이룬 감격적인 결과였다. 이 기록은 10여 년이 지난 2004년 5월 20일, 산악인 오은선 씨가 단독등반에 성공함으로써 깨졌다. “8남매 중 일곱 번째로 출생, 초등학교 때 빈혈이 워낙 심해 운동장 조회 때면 픽픽 쓰러져 영양주사를 아예 달고 다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도 허약하게 지내니까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등산을 권유하여 산악반에 들어간 이후 거의 매주 다녔다고 한다. 전북 고창군 무장면 영선종합고 졸업. 삼성전자 수원사업소에 취업한 이후에도 함께 취직한 고등학교 동창들과 어울려 2년 가까이 설악산, 지리산, 오대산, 덕유산 등 전국 명산을 찾아다녔다. 1989년 가을에 사내 산악회에 입회원서를 냈지만 정식 회원이 된 것은 정작 이듬해 봄이었다. 산악부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입회원서를 낸 다음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산행에 참가해 테스트를 받았다고 한다. 이듬해 3월 첫째 주 시산제 때 정회원으로 선정되었다. 대통령기 등산대회도 두 번이나 나가고 1990년 봄 정회원이 되자마자 정승권등산학교도 들어갔다. 그 덕에 정승권 선배를 비롯해 많은 산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해 입회한 경기도산악연맹 산악구조대에서도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선배들의 추천으로 여성 원정 훈련대에 원서를 내게 되었다. 1991년 말 에베레스트 훈련대에 지원하곤 이듬해 봄 회사를 그만두었다. 최종 대원으로 선발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에베레스트 원정을 한해 앞둔 1992년 봄 임자체로 부제 훈련등반에 참가하고 귀국하자 또 다른 원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비알산악회의 천산산맥 원정이었다. 1996년 12월 15일 가의용 씨와 결혼(2007, 4.21, 지평선과 수평선, ”여성산악인 최오순“, 월간산, 한필석 차장 글) - 현재 한국등산학교 강사 - 2008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 전문체육지도사(산악) 2급 - 생활‧유소년‧노인체육지도자(등산) - 대한적십자사 응급처치 강사 - 대한적십자사 재난안전 강사 - 1994 체육훈장 기린장 - 1992 소련 천산산맥 포베다 등반, 칸텡그리 등정 - 1993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 - 1994 북미 맥킨리 등정 - 2004 유럽 엘부르즈 등정 - 2006 남미 아콩카구아 등정 - 2007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정 - 2011 한국청소년오지탐사대 미국팀 대장 - 2023, 9.14 산악인의 날 기념식 및 제22회 대한민국 산악상 시상식에서 고상돈 특별상 수상 5. 걷기축제를 마치며 행사 주최측에서 많은 준비를 하여 걷기축제는 성황리에 끝났다. 참가자 간식, 기념품인 모자도 괜찮았다. 사전 에약한 참가자 이외에 현장에서도 누구나 참가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하여 운영의 묘를 살린 것이 좋았다. 따뜻한 차를 제공하여 참가자들이 아침 추위를 녹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자원봉사자들을 대거 배치하여 등산로 안내를 잘하여 행사가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산악인 허영호 씨, 최오순 씨를 초청하여 사인회를 개최하여 사인도 받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게 서비스했던 점이 좋았다.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두 분 산악인을 만나 참가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유명인으로서 팬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한 두 분 산악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행사 전 풍물패 공연, 준비운동을 위해 에어로빅 댄스단을 초빙하여 시범, 전시회 부스 운영 등을 하여 대회를 성공시킨 황윤영 원장을 비롯한 임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는 바이다. 양산의 정치인들도 행사에 총출동하여 참가자들에게 인사하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조금 개선할 사항은 인사말이 너무 길어 산행 출발이 예정보다 45분 정도 늦어진 점이다. 주최측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드린다.
-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중소기업지원센터&창업보육센터 “반드시 성공하는 리더십 특강동원과학기술대학교(총장 손영우) 중소기업지원센터&창업보육센터에서는 공동으로 지난 11월 9일 양산시 중소기업 및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CEO를 대상으로 ‘반드시 성공하는 리더십 특강’을 진행했다. ‘반드시 성공하는 리더십 특강’에서는 리더십의 특징과 요건, 거래적 리더십, 변혁적 리더십, 상황적 리더십, 반드시 성공하는 리더십의 필수 요소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번 특강의 목표인 효과적으로 리더십을 함양하여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사례도 소개하였다. 손영우 총장은 “CEO로부터 고급, 중견 간부는 물론 각 분임조의 조장 등에 이르기까지 동기부여와 리더십을 함양할 수 있는 다양하고 질 높은 강좌를 기획함에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전했다.
-
양산시, 자매도시 진도군 초청 친선교류 행사 개최- 10·11일 양일간 친선교류 문화·체육행사 진행 - 양산시는 자매도시 시·군 간 친선과 우의 증진을 위한「제22회 자매결연 자치단체 진도군 초청 친선교류 문화·체육행사」를 지난 11월 10일 (금) 부터 11월 11일(토) 까지 양일간 개최했다. 1998년 자매결연 이후 양산시와 진도군은 두 지역의 화합과 우호를 위해 체육·문화교류뿐만 아니라 특산물 판매지원, 고향사랑기부제 동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활발하게 지속해왔다. 올해는 진도군 축구동호회를 주축으로 한 교류단 30여명이 양산시를 방문해 양산시 종합운동장에서 축구 친선경기를 진행하고, 환영식 및 화합의 장, 통도사 방문 등 자매의 정을 나누고 상생발전의 동반자를 지속해 나가는데 뜻을 함께하였다. 이정곤 부시장 이정곤 양산시 부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5년 만에 양산시에서 개최되는 뜻깊은 교류행사인 만큼 자매결연 시군의 우정을 확인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돈독한 자매결연 도시로서 더욱 활발한 교류사업을 이어 나가면서 상생발전을 이뤄 나가자”고 말했다. 한편 양산시와 진도군은 매년 양 도시 대표축제에 방문단을 보내 축제를 축하하는 등 상호 교류를 지속해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방면의 협력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
동원과학기술대학교 항공학부, 에어프레미아(주)와 산학협력 협약 체결동원과학기술대학교(총장 손영우) 항공학부는 지난 8일(수) 본관 3층에서 에어프레미아㈜와 산학협력 협약을 체결하여 항공분야 발전에 새로운 도약을 이루었다. 이번 협약식은 양 기관 간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 에어프레미아의 정비부문에서 인적, 물적 자원 및 기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이를 통해 학문과 산업이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함으로써 항공 분야의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 나갈 예정이다. 특히, 학내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실습 및 FTP(Field Training Program)와 같은 현장 맞춤형 항공정비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실무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할 예정이며, 학부와 기업 간의 협력을 강화하여 항공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에어프레미아㈜ 김영춘 정비본부장과 김정호 정비품질팀장은 협약식 이후 학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HSC(Hybrid Service Carrier) 항공사 에어프레미아에 대한 소개'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최신 항공 기술 및 산업 동향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습득하고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손영우 총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항공 분야의 지식 전파와 실무 경험을 결합하여 학생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
양산황산캠핑장, 친환경 우수 캠핑장 선정- 지난 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주관 지자체‧공공 우수야영장 최종 선정 -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박성관) 황산캠핑장이 지난 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2023년 공공 우수야영장’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올해 처음 도입된 ‘공공 우수야영장’선정은 야영장에 대한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고 질적 향상을 돕기위한 목적으로 전국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가족(어린이) 친화 △무장애 △반려동물 친화 △친환경 등 4개 분야 47개소 지자체‧공공 야영장을 추천받아 진행하였으며, 분야별 특화 콘텐츠 운영 및 안전‧위생 기준 등 각 분야 전문가의 서류, 현장평가를 통해 최종 선정하였다. 황산캠핑장은 경남도 내 유일한 ‘친환경’분야에 선정되었으며, 이는 캠핑장 내 조성된 자원순환부스 ‘늘푸름존’을 통해 이용자에 환경문제 인식제고 및 체험 기회를 제공한 점과 관내업체 ㈜티알의 캔‧페트병 분쇄기 ‘돌리고’에 대한 지역 환경보호 친환경 사업 상생협력에서 특히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관 이사장은 “황산공원의 드넓은 자연을 느끼고 힐링하는 시민의 공간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도 ESG경영 실현 친환경 캠핑장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황산캠핑장은 오는 11월 30일까지 황산캠핑장 홈페이지 메인사진 공모전‘황산캠핑장 홈페이지를 바꿔줘’를 실시하고 있으며, 최종 선정작에 대해 캠핑이용권등을 포상할 계획이다. (문의 ☎055-379-8695)
-
김유신 장군을 모신 강릉 화부산사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 추향대제 화부산사(花浮山祠)는 강릉시 율곡로 2967번길, 임영고개 마루에 위치하고 있다. 화부산사는 김유신(金庾信)장군을 모신 사당(祠堂)으로 흥무왕사(興武王祠)라고도 한다. 강릉향교(전교 권우태)는 지난 10월 22일 오전 10시 교동 소재 ‘화부산사 고직사’에서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위업과 덕망을 추모하는 추향대제를 봉행했다. 제향은 매년 봄가을로 봉행하고 있으며, 춘향대제(春享大祭)는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가락강릉종친회 주관으로 봉행하고, 추향대제(秋享大祭)는 양력 10월 22일 강릉향교 주관으로 강릉 유림과 가락 후손이 함께 봉행하고 있다. 추향대제 제향은 전폐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망예례 순으로 진행되었다. 제향의 초헌관은 권우태 전교, 아헌관은 김남규 성균관유도회 강릉지부 부회장, 종헌관은 김장회 성균관 .
-
심상도박사 오늘의뉴스 제19회 부산국제 茶 어울림문화제 세미나 부산에서 차와 다완을 생각한다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11월 3일부터 5일까지 부산문화회관 대전시실에서 ‘제19회 부산국제 茶 어울림 문화제’가 열렸다. 주최는 부산광역시, (사)부산茶문화진흥원, 주관은 제19회 부산국제차어울림문화제 조직위원회(대회장 이미자, 집행위원장 조정미), 후원은 KNN, 부산KBS, 부산MBC, 부산일보사, 국제신문, BBS 부산불교방송, 부산관광공사가 하였다. 행사 프로그램으로는 제2전시실에서 대렴차문화원 김애숙 원장의 “한국의 차 도구 자연과 철학이 조우하다” 전시회가 열려 다양한 국내외 차 도구를 전시하여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은천 김성태 수집가의 고려와 송의 다구 유물전도 볼만했다. 10~14세기 고려와 송나라에서 사용한 다구 유물울 통해 점다법을 중심으로 전개된 연고차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1전시실에서는 대한민국 다기 명인전이 열려 김대철(도문요, 한국다기명인 20호), 이효림(상명요, 한국다기명인 22호), 김태훈(경주요, 한국다기명인 13호), 장기덕(청봉요, 한국다기명인 6호), 송춘호(청학도방, 한국다기명인 9호), 천경희(문경요, 한국다기명인 7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동양향문화연구소의 민기식 대표가 “향유당 침향(沈香) 우리의 향 : 내일을 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남영교 대표의 만병도 전시, 명천 스님의 선화의 세계 전시회, 김윤권 작가의 꿈처럼 빛나는 유리의 세계 전시회가 열려 유리공예 예술품을 선보였다. 특강 및 포럼 행사도 열렸는데, 개막식전 특강으로 11월 3일 금요일 오후 1시에 원광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11월 5일에는 (사)한국향도문화협회 이사장인 김덕기 박사의 천목(天目)과 한반도의 茶 그릇 특강이 있었다. 필자는 ‘송혜경 교수의 알기 쉬운 동다송(東茶頌)’ 책을 구입하여 저자의 사인을 받았다. 포럼은 11월 4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부산에서 차와 다완을 생각한다” 주제로 열렸다. 발표 1 : 조국영 도예작가(부산요포럼 고문)의 부산요와 어본다완, 발표 2 : 김동기 이사(부산요포럼 학술이사, 철학아카데미 상임이사)의 “부산요의 인문학적 궤적”, 발표 3 : 장기덕 교수(부산과학기술대학, 도예가)의 “부산요에서 생산된 주문사발” 주제 발표가 있었다. 포럼은 안태호 부산요 포럼 대표가 맡아 진행하였다. 조국영 와이뉴스(YNEWS) 이사의 포럼 주제 발표 내용이 방대해서 줄여서 소개하기로 한다. 조국영 도예작가는 부산요 포럼을 통해 수차의 논문 발표를 함으로써 한일 도자 교류사의 실상을 알리는 많은 연구 자료를 제시하며 독보적인 연구 역량을 선보였다. 포럼에서 발표된 논문 내용은 한국에서 최초로 발표되는 획기적인 자료(대마도 종가 문서, 일본 문헌자료, 국내 학술 자료 등)로 인정받고 있다. 조국영 도예작가는 부산요의 위치와 실체를 규명하고 도자기 파편, 차 제작 도구도 발견하여 공개한 바 있다. “어본다완(御本茶碗)과 부산다완(釜山茶碗)” 발표 조국영 : 도예가, 부산요포럼 상임고문 Ⅰ. 머리글 우리는 어본다완(御本茶碗)이 생겨나기 전에 전래되어 내려 온 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다도 계에서 고려다완(高麗茶碗)이라 불리게 된 것과 이 고려다완을 보고 다인들에 의해 주문되어 제작된 주문다완이 어본다완 이전에 조선의 고유 특성을 지닌 사발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부산요의 가마 에서 생산된 어본다완에 대해 고찰하면서, 이 어본다완에 부여된 명칭들에 관해 다각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예컨대 전래 고려다완이 있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이후 김해(金海)의 어본다완이 먼저 생겨나고 이것이 부산요가 개설되면서 어본(御本)에 의해 제작되었지만 제작자의 이름이 새겨지고, 지명(地名)이 등장하는 공예사(工藝史)의 전환점을 알려주는 특징들을 다완의 분류에 반영하여 새롭게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미술사든 공예의 역사든 기본적으로는 연대기적 역사, 문양으로서의 양식사, 형태로서의 양식사, 인물로서의 제작자의 역사.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재료의 전환으로의 역사 지리적 특성의 역사 등의 해석들이 있다. 그러면 이 다완은 이러한 공예사의 관점(觀點)에서 벗어나 장소와 우연적 상황과 감상자의 명칭 부여로 탄생된 다완명으로 분류되어 있기에 부산요와 부산 근교에서 생산된 다완들에 관하여 지리적 명칭을 모색하여 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양산 법기리에서 주로 발견되는 오기다완 등은 대덕사(大德寺) 오기와 다른 형태의 특성을 지니면서도 조선 사발의 모태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점을 감상하는 관점이 필요하고 그 특성은 존재한다. 전래고려다완의 분청기법들 역시 조삼도 다완을 통해 새롭게 변모된 분청기법을 감상하게 만드는 것도 주목할 감상 관점이라 본다. 이러한 독특한 혼재된 특성을 지리적인 부산, 양산, 김해다완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양식적인 특성의 변화 과정도 주문 과정을 거치면서 전래된 고려다완의 특성이 남아 전해오는 특성을 신고려다완 양식이라 칭한 다완들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들을 새롭게 지역성과 환경, 관리자 등의 차이점을 고려하여 부산고려다완과 양산 신고려다완으로 나누어 보았다. 본고의 연구 과정은 부산요의 지정적 위치의 이전 과정과 용어의 등장, 다양한 다완의 명칭이 일본 사료에 출현한 것, 그리고 부산요 다완의 분류 양상과 부산요에 파견된 일본 도공두(陶工頭) 이름 다완들이 20세기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분류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부산요와 양산, 김해 다완을 통틀어 조선 사기장이 다완을 대하는 관점에 의한 다완들과 일본에서 주문한 다완들을 범주에 두고, 이 새로운 지리적 명칭 구분을 통해 부산다완의 특성을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본 논고에서는 부산에서 생산하였던 어본다완의 개념과 성격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 분류가 기존의 일본 도공두(陶工)에 의한 분류, 양식에 의한 분류, 표현 기법에 의한 분류 등 혼재되어있는 난맥상을 짚어 보면서 정리되어야 할 과제와 평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Ⅱ. 부산요의 명칭과 시기의 분류 부산요의 가마 명칭에 관련한 자료로는 조선측 기록에는 사기소(沙器所)라고 하였으며 당시의 일본인들의 기록에는 다완조(茶碗竈)라고 하였으며 관리자를 다완조청부(茶碗竈請負 : 청소책임자) 다완조가수역(茶碗竈家守役 : 가마를 지키는 사람)으로 하였고、 화관요(和館窯) 또는 왜관요(倭館窯)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관의 명칭에 대하여는 일본인들은 두모포왜관 시절에는 모든 기록에 왜관이라고 하였고 화관이라는 명칭은 초량으로 옮겨온 후 새로운 각오로 모든 문서에 화관으로 사용하게 된다. 요(窯)라는 낱말은 요업을 뜻하는 근대부터 쓰였던 언어로 일본내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의 저서 『부산요와 대주요(釜山窯の 對州窯)』에서 부산요의 명칭 이 1930년에 최초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의 학계에서는 그대로 인용하여 사용하였고 특히 1980년에 출판된 이즈미 쵸이치(泉澄一)의 『부산요의 사적연구(釜山窯の史的研究)에서는 종가문서(宗家文書)를 통한 부산요 연구에 많은 발전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이즈미의 부산요 번조시기의 구분은 일본의 황력 연호(年號)로 나누어져 있어 본래의 부산요 시기적 분류 내용과 관련이 없으며 부산요는 가마의 지정적 위치와 환경에 따라 시기를 구분하여야 한다. 가마의 위치와 방향과 지형. 구조, 풍향 등 매우 예민한 사항들이 시간과 맞물려 다완번조에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장소의 이전이 시기적인 구분에 중요하다. 따라서 부산요의 시기적인 구분을 합리적으로 하였던 사례를 예시하며 그 범주에 적용할까 한다. 부산요는 1639년~1643년까지 두모포왜관 바깥에 가마를 만들어 번조(燔造)하였으므로 두모포외요(豆毛浦外窯)로 볼 수 있고, 1644년~1677년까지 두모포왜관내에 가마를 만들어 운영하였으므로 두모포요(豆毛浦窯)로 보았다. 왜관이 초량으로 옮겨가면서 1678년~1717년까지 초량왜관 내에 가마를 만들고 운영하였으므로 초량요(窯)라고 해야 한다. 1718년~1743년까지 초량왜관 내에서 대마도 사람들이 운영하였으므로 초량왜관요(草梁倭館窯)라 하겠으며 전체를 통칭 부산요(釜山窯)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요의 도자사적 의미와 가마 운영에 관하여”, 졸고 부산포럼 논고, 2022“ 참조 바람> III. 문헌(文獻)으로 본 명칭의 출현 1. 다회기(茶會記) 명물기(名物記) 어본(御本)다완의 일본 최초 출현은 다회기(茶會記)에 1668년 10월 28일 다회로 『선수종실금택다회기(仙叟宗室金澤茶會記)』에 기록되어 있으며 판사(判事)다완은 1681년 7월 8일의 다회로 『후서원다지탕기(後西院茶之湯記)』에 최초의 기록이 있다. 이후 다회기에 어본다완은 46회, 판사다완은 63회에 걸쳐 출현한 기록이 있다. 〈谷晃, 『高麗茶碗槪說』, 高麗茶碗 河原書店 2002 p.81~82>. 17세기 다회기에 어본다완에 이어 현열다완(玄悅茶碗)의 기록이 보이고 18세기 다회기에 입학다완(立鶴茶碗)이 새롭게 기록이 된다. 부산요 다완의 주문과 사용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은 센다이(仙臺)지방의 4대 영주였던 다테 츠나무라(伊達網村, 1659~1719년)로 수차례에 걸쳐 다완과 도자기를 주문하였다. 1676년에 다완 4~50 점을 주문한 바 있으며 1707년에도 다량의 향대(香臺)를 부산요에 주문한 기록이 주문서인 『어조물공(御誂物控)』에 수록되어 있고, 1713년 부산요 주문서인 『제방 어호지어소물(諸方 御好之御燒物)』 에도 다완과 다입(茶入)을 주문하였다. 당시의 다회를 기록한 『다테츠나무라다회기(伊達網村多會記)의 기록에는 어본수회고려(御本手繪高麗), 고려염부계입(高麗染付継入), 신도사수전절(新渡砂手前切), 판사오기할고태(判事吳器割高台), 장견수しみ(藏堅手しみ), 신도석첩(新渡石疊), 어본광언고(御本狂言袴) 등 많은 종류의 부산요 다완으로 추정되는 자료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부산요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다인으로 앞으로의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어본다완의 관련 문헌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으로 다탕도구에 관한 명물기(名物記)로 1660년의 『완화명물기(玩貨名物記)에는 어본다완과 판사다완에 관련한 기록이 아직 등장하지 않으나 8년 뒤인 1668년의 『선수종실금택다회(仙叟宗室金澤茶會) 이후부터는 등장함을 알 수 있다. <『玩貨名物記』 1660, 茶道古典全集12 所板本> 2. 서책 다완 종류와 도상을 그려서 설명한 서적류로는 1694년의 고금화한제도구견지초(古今和漢諸道具見知鈔 : 万宝全書)」에는 어본수(御本手)와 함께 현열어본수(玄悅御本手), 무삼어본수(茂三御本手), 무삼소(茂三燒), 희재어본수(喜齋御本手), 단반어장(端反御藏), 학다완(鶴茶碗), 어장견수(御藏堅手), 어본 소어장수(御本燒御藏手), 백수(白手) 등과 니오기(尼吳器)항에 후도(後渡)라고 기록하며 니오기와 동일하다고 하였다. 『만보전서(万宝全書)』 所板本. 어본다완의 명칭과 분류는 17세기가 끝날 무렵에 비로소 여러 명칭으로 분류한 기록이 보인다. 1789년의 『고금명물류취(古今名物類聚)』에는 기록이 없으나 1847년의 기록으로 『다도전제(茶道筌蹄)』에는 어본(御本), 어본판사(御本判事, 무산(茂山) 등의 등재 기록이 보인다. <茶道全集』, 茶道筌蹄 所板本>. 3. 배견기(拝見記) 차도구와 다완의 명품을 감상하고 기록한 배견기(拝見記)의 기록으로는 『과안록(過眼錄)』이 있으며 1810~1867년까지의 배견한 기록에 입학다완(入鶴茶碗)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고, 입학통다완(入鶴筒茶碗), 반사다완(半使茶碗)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입학통다완은 입학다완의 변형으로 통형에 가까운 형태가 아닌가 추측되며 반사다완은 판사(判事)다완의 다른 말이다. <『過眼錄』, 日本國會圖書館 所藏本 4. 차도구장류(茶道具帳類) 차도구류를 기록한 도구장류(道具帳類) 문서로는 1770년의 어수기도구장(御數寄道具帳)』의 기록에는 무산소다완(茂山燒茶碗), 신고려지다완(新高麗之茶碗), 신삼도고려지다완(新三鳥高麗之茶碗)이 수록되어 있으며 무산다완 외에 신고려다완이나 신삼도고려다완은 시기적으로 부산요에서 제작하였던 시기와 일치하나 부산요 주변의 외요(外窯)인 법기리요의 소성물인지 알 수 없다. <『御數奇道具帳』, 1770, 閏六月, 松井文庫 所藏本. 1803년의 기록으로는 『어수기도구장(御數寄道具帳)』의 기록에 의하면 신삼도고려(新三島高麗), 조선역수(朝鮮曆手), 신도어본수(新渡御本手), 신고려(高麗) 등의 기록으로 보아 1770년과 같은 성격의 기록을 하였으며 역수(曆手)는 분청사기(粉靑沙器)의 승렴문(繩簾紋)으로 책력(冊曆)의 무늬와 같다 하여 역수다완이라 부른다. <『御數寄道具帳』, 1803. 九月, 松井文庫 所藏本〉 천명(天明, 1781~1789), 관정(寬政, 1789~1801) 시대의 『어수기도구장(御數寄道具)』의 기록에는 입학어다완(入鶴御茶碗), 어본어다완통근산형(御本御茶碗筒筋山形), 어본히투미어다완(御本ひつみ御茶碗), 어본삼각어다완(御本三角御茶碗)의 기록이 보이며 입학다완은 시각의 회화적 양식과 통근산형이나 히투미다완, 삼각다완은 다완의 외형적 형태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보인다. 〈『御數寄道具帳』, 寬政期, 松井文庫 所藏本>. 5. 일기(日記) 일기(日記)류의 고려다완(高麗茶碗) 기록은 『실육공기(実陸公記)』의 1506년 윤11월 13일에 최초의 기록이 보이며 이후 많은 종류의 고려다완이 일본다도 세계에 등장한다. <『実陸公記』,統群書類從完成會本〉. 고려다완의 관련자료로 『격명기(隔蓂記)』가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부산요 다완에 관련한 자료도 일부 기록이 있다. 『격명기(隔蓂記)』는 당대 고승으로 금각사(金閣寺) 주지(住持)로 있었던 임제종(臨濟宗) 스님인 봉림승장(鳳林承章)이 1635년부터 1668년까지 쓴 일기로 봉림승장은 천황(天皇)을 비롯한 막부의 권신과 당대 유명한 다인(茶人), 학자, 예술인, 유력 상인들과 교류가 빈번하였던 승려 다인이다. 일기 내용 중 1639년 3월 28일자 내용에 차도구류의 열거에 오기다완금소(五器茶碗今燒)라는 기록이 보인다. 1639년은 부산요가 최초로 개요(開窯)하던 해이며 8월이 되어서야 번조(燔造)작업이 들어갈 수 있었으나 부산요가 열리기 전인 3월의 기록에 오기다완이 구워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양산을 비롯한 주변의 가마에서 오기다완 등이 번조되어 비공식적으로 일본으로 공급되면서 다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隔蓂記』, 鹿苑寺 刊行本〉. 이후 1646년, 1647년, 1650년 5월과 7월, 1654년에 고려금도지다완(高麗今渡之茶碗)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1650년 7월에는 12점 대량의 고려금도지다완의 기록으로 보아 부산요에서 공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659년과 1660년의 기록에는 万治二年 七月 二十五日 五時前 慈照覺雲吉東堂來訪 自對(馬)島 上洛之土産高麗茶碗1개, 高麗燒之大皿10개, 高麗胡桃一斤被惠之也 万治 三年 一月 九日 對馬燒之茶碗(似高麗茶碗) 慈照翁給予也 1659년 7월 25일 다섯시 전에 자조각운照) 길(吉) 스님이 왔으며 대마도에서 상락의 흙으 로 만든 고려다완 한 개와 조선에서 구운 큰 그릇 10점과 호두 1근을 고맙게 받았다는 내용으로 부산요에서 생산한 다완과 그릇을 선물 받은 듯하며 당시 일본에서 귀하게 여겼던 호두를 가지고 왔고 호두는 조선에서 왜관을 통한 주요 무역품이었다. 1658년 정월에 호도(胡桃) 10섬. 잣柏) 10섬 을, 9월에는 호도 50섬. 잣 50섬을 구무(求貿)하여 달라고 요구하였던 호도로 생각한다. 〈『倭人求請謄錄』 0002권, 奎12955- v.1-8, 074b-076b면> 기록 내용에 자조각운(慈照覺雲) 길(吉) 스님은 교토(京都) 상국사(相國寺) 소속의 자조원(慈照院)의 각운(覺雲) 길(吉) 장로(長老)로 대마도에 파견하였던 윤번승(輪番僧)으로 도쿠카와막부는 국서개작(國書改作) 사건 후 교토(京都)의 오산인 천용사(天龍寺), 상국사(相國寺), 건인사(建仁寺), 동복사(東福寺)에서 윤번제로 석학승을 윤임(輪任)하면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오가는 국가간의 문서를 감수하였다. IV. 종가문서(宗家) 사료에 부산에 파견된 도공두(陶頭)에 의한 분류 1. 신도소물어인판장(新渡燒物御印判帳) 어본다완 가운데 도공두의 이름으로 분류한 다완으로는 1681년에 기록된 대마도 종가문고소장 庫所藏)의 『원화원년 신도소물어인판장元和元年 新渡燒印判帳』에 기록된 두모포왜관(豆毛浦倭館) 시대의 종가에서 수장한 도자기와 다완을 비롯한 차도구류들의 재고량을 기록한 장부(帳簿)의 기록이 있는데 다완을 보관하면서 다완함(茶碗函)에 부산에 종사하였던 도공두의 이름을 적은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대표적인 다완은 무삼다완, 현열다완 미평태 다완, 의삼다완, 의춘다완, 임재다완, 도이다완 등이 있다. 2. 어인판장(御印判帳) 『신도소물어인판장(新渡燒物御印判帳)』의 재고 조사 100년 후에 종가에서 1781년에서 다시 재고 조사를 하면서 기록으로 『어인판장(禦印判帳)을 만들었다. 따라서 부산요 전기 다완의 유통과 소비량을 분석할 수 있으며 초량요의 원료공급에 따른 생산량을 비교하여 추정할 수 있겠다. (表紙) 天明元年 辛丑年 御印判帳下書 九月日 新渡方 전체 기록은 생략하고 내용에 다완의 수장 기록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古道二 다완 397개 意春燒 다완 122개 小十郎燒 다완 75개 外燒館燒 다완 126개 新道二燒 다완 54개 弥平太燒 다완 1,035개 茂三燒 다완 3075개 伝次郞燒 다완 37개 弥三右衛門所 다완 83개 林齋燒 다완 50개 意三燒 다완 600개 道庵燒 다완 273개 高原燒 다완 21개 判太夫燒 다완 22개 古御手本用 다완 8개 忠助燒 다완 7개 判使燒 다완 1,217개 玄悅燒 다완 645개 其他志賀窯朝鮮燒 소복다완 4개 총괄 다완수 7851개 V. 주문서로 본 어본다완 1. 어조물공(御誂物控) (表紙) 自元祿十四年至宝永弐年 (朱)諸記録九番 控謎物御 此賬宝永二年之所” 冊弐之内 (26x21cm) 대마번에서 부산요로 보내온 다완을 비롯한 도자기 제작 의뢰에 관련한 문서로는 1701년의 주문서로는 『어조물공(控誂物御)이 있으며 주문 당시에는 조선과 일본간의 도자기 번조서계(燔造書契) 문제로 양국 간의 갈등이 불거져 다완을 제작하지 못하다가 1704년에 들어 비로소 번조작업을 할 수 있었으며 당시 도공두였던 미평태에 의하여 진행되었으며 1709년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어조물공은 그 당시의 도자기 형태, 유약의 색깔, 소지의 선택 등과 주문자와 주문을 받은 사람과 배달의 상황 등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본고에서는 다완의 주문 관계만 발취하여 다루고자 한다. 一, 茶碗壱 青湖/文字 金地院役者玉隠和尚望元祿十六年杉村三郎左衛門方 弥平太方へ申遣ス (朱) 右茶碗五ツ丙戌二月廿四日御迎賄船便"江戸江差越内三ツ先様江者遣 之筈也 一, 금지원의 옥은화상이 1703년에 주문한 문자다완으로 주문받은 내용과 5점에 대한 배송 날짜와 경위를 적었다. 一, 茶碗形三 但余計共ニッ宛 狩野養朴望同年杉村三郎左衛門方 弥平太方申遣ス 다완의 모형 3개를 보내왔으며 모형에 따라 2점씩 6점의 주문으로 주문자는 당시 狩野派의 유명한 화가였던 狩野養朴이다. 一, 松竹梅筒茶碗 一, 熊川作こまり成くわんにう入 各余計壱ッ、相添 一, いらほ作内ニ白きはけめ 候様と申遺 一, すたれ筒茶碗ニッ 安藤筑後守様御望宝永元年平田直右衛門方 松村弥平太方ヘ申遣ス 주문 내용은 송, 죽, 매가 시문된 통다완과 웅천다완과 쇄모목이라보다완, 2개를 붉은색과 흰색으로 주문하였으며 의뢰자는 安藤後守가 주문하였다. 一. 浅黄かた手茶碗壱ッ 一. 薄柿茶碗 一. 金海茶碗 土屋相模守様御望宝永弐年六月杉村頼母便=松村弥平太方ヘ中遣ス (朱)右之茶碗十弐山来参侯付宝永三年戌正月以酊庵迎高勢宅兵衛乗)船住吉丸便江戸表江差越之 잔황빛 모양의 다완과 엷은 감색 다완과 김해다완 등의 주문으로 주문자는 土屋相模守로 1705년 6월에 주문을 받아 만들어서 익년 3월에 배송하였던 경위를 기록하였다. 覚 右御燔御注文紙形左記之 樋口佐左衛門 一. 御茶碗紙形五枚 御燔紙形都合弐十枚相渡侯来年御参動前出来可被差渡侯江戸表ヘ御持越被遊候御用侯間可被得其意候以上 丙戌七月三日 樋口佐左衛門 松村弥太殿 右者九月九日朝鮮御横目鈴木少左衛門ヘ相渡遺也 다완의 지형(紙型)이 온 사례로 1706년에 대마도번에서 20매의 많은 양의 지형을 보내왔으나 다완의 주문 수량이 기록되지 않았으며 익년 도주의 참근할 때 사용하려 한 것으로 생각한다. 一. 独眼茶碗拾五 (朱) 宝永四丁亥五月出来参五月廿八日 樋口佐 左衛門方 手紙相添為持遣之 右者以酊庵関仲和尚御誂御注文 右之模樣等之義ハ彼方へ弥太被召寄委細被仰合候 故此度ハ右之書付計差越ス右同便ニ朝鮮 弥平太方へ
-
2023년 양산시 다(多)문화 페스티벌 성공적 개최- 지역주민과 다문화인들의 소통과 화합의 한마당으로 자리매김 - 양산시 웅상출장소는 지난 5일 서창운동장(삼호동)에서 개최된 『2023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다문화 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행사를 주최한 사단법인 희망웅상은 노동자, 여성, 청소년, 노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 향상과 웅상지역 주민들의 자치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2008년도에 설립된 단체로 다문화가족을 위한 행사를 2013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매년 개최 해왔다. 이번 행사에서는 서창중학교 학생들의 난타 공연을 시작으로 하여 베트남공동체의 논라공연, 필리핀공동체의 전통춤, 네팔의 전통 악기연주와 춤, 19개국의 입장 페레이드를 선보였으며, 지역 노래패 곰마실 아이들의 공연을 비롯해 태권도 시범, 줌바댄스 등 지역주민들의 공연도 함께 마련되어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또 다양한 아시아 음식과 손마사지, 전통놀이관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부스와 아시아 전통의상, 팝아트, 어반스케치 등의 전시관도 마련해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정계영 웅상출장소장은 “다문화 페스티벌이 지역주민과 다문화가족, 그리고 재한외국인들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는데 좋은 가교역할을 하는 소통의 장이 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