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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파, 안창수화백을 재조명,뉴스메이커/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에 등재

기사입력 2022.08.0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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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8월호에서는설파, 안창수화백을 다음과 같이 재조명했다.

뉴스메이커 2022.8월호에실린 안창수 화백

예술혼불태우며 인생 2막을 도전으로 채워나가다
설파 안창수 화백
예술은 보편적이다. 인간세계에 예술보다 보편적인 단어가 있을까. 예술은 인간 삶의 한 부분이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태어나고 숨 쉬며 교육하고 받는 모든 여정들 속에 예술은 내재한다.
안창수 화백은 "나에게 그림은 뒤늦게 만난 죽마고우다.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고 뉴스메이커 8월호에서 밝혔다.
인생 2막에 재능을 발견한 덕"이라며 "친구 따라 서예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했을 삶이다"고 말한다.
인간은 모두 부족하게 산다. 부족함을 좀 더 충만하게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예술이다. 나라가빈곤하고 고통이 심해지고 대화가 안 되고 등을 돌릴때일수록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은 오늘의 고통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한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뒤늦게 예술적 재능꽃피워설파 안창수 화백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안창수화백은 30여 년간 몸담았던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정년퇴직 후 뒤늦게 그림에 입문, 무서운 속도로 예술적재능을 꽃피우고 있는 중이다. 안창수 화백은 “나에게 그림은 뒤늦게 만난 죽마고우다. 이보다 행복할 순없다. 인생 2막에 재능을 발견한 덕"이라며 "친구 따라 서예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 했을 삶이다"고말한다. 은퇴 후 서예를 배우던 중 재미삼아 그린 그림 한 점으로 주위에서 먼저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권유로 만 60세의 나이에 본격적으로그림을 배우고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중국 유학길에올랐던 안 화백, 이후 항저우미술대에 적을 두었던 그는 당시 최고령 유학생이 되었다.
유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좁은 기숙사에서 지내며삼시세끼를 학교식당에서 때우면서 그림과 씨름했던그는 아침 8시에 등교해 낮 12시까지 수업을 듣고 밤늦게까지 그림에 매달렸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수업을 듣고 오후부터 밤 12시까지 그림만 그리느라붓을 쥔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뒤로 젖혀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유학길에오른지 반년 만에 호모 배 전국서화대전에서 닭 그림으로 입선한 그는 이듬해엔 임백년 배 전국서화대전
에서 호랑이 그림으로 1등 상을, 독수리를 그려 중화배 전국서화예술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지 한달 만에 그림에 대한 공부를 좀더 심도 있게 해보고자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으로두 번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도 안 화백은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소화미술대전 입선, 전일전에서 예술상, 장출판상 준대상 수상, 전일본수묵화수작전 갤러리수작상, 남일본신문사상, 일본전국수묵화미술협회가 학습용 교재로 발간한 화집인(신용)을 그리다'의 작가 선정, 제46회 일본수묵화수작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외무대신상'에 이어제49회 전일본수묵화수작전'에서 <투계도>를 출품해, 우승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고 오늘날에도 예술의 혼을 불태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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