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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부 양산시의회 의장, 이규홍 독립투사 손자 이경우 씨,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심상도 울산보훈지청장 사무실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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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뉴스

서진부 양산시의회 의장, 이규홍 독립투사 손자 이경우 씨,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심상도 울산보훈지청장 사무실 방문

서진부 양산시의회 의장과 함께 울산보훈지청 방문

7월 2일 오후 1시 45분에 상해임시정부 이규홍 독립투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하기 위해 서진부 의장은 바쁜 의사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울산보훈지청 방문에 동행하여 손자 이경우 씨를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지난 6월 24일에는 서진부 의장, 김효진 부의장, 그리고 양산시의회 모든 의원들이 서명하여 이규홍 선생과 40명의 양산출신 독립투사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하여 손자 이경우 씨에게 천군만마의 큰 힘이 되어 준 바 있었다.

서진부 의장님께 거듭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왼쪽 서진부 의장, 이규홍 선생의 손자 이경우 씨, 오른쪽 필자 심상도, 황후연 울산보훈지청장, 울산보훈지청 여직원
 
이경우 씨는 경기도 파주시에 거주하고 있는데, 하루 전인 7월 1일에 양산에 내려와 숙박을 하였다. 7월 2일 10시 20분경에 동남문화관광연구소에서 필자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울산보훈지청 방문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였다.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필자의 차로 울산보훈지청으로 모셨다. 울산대공원 앞에 있어 찾기 쉬웠다. 조금 기다리니 서진부 의장께서 도착하였다. 의회 회의를 마치고 바로 출발했다고 하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 황후연 울산보훈지청장 면담

1시 50분경 2층에 있는 지청장 사무실로 올라가 황후연 울산보훈지청장과 인사를 하였는데, 지청장을 보좌하는 고참 여성 직원 두 분이 배석하였다.

필자가 써서 보훈처에 제출한 증언서 복사본,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의 증언서를 지청장에게 드렸다. 양산스마트뉴스에 필자가 쓴 이규홍 독립투사에 대한 기사도 출력하여 첨부하였다. 이규홍 독립투사 증언서 제출과 보훈처 답변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였다.

마침 황지청장께서 과거 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서훈 업무를 다루는 부서의 과장으로 근무하였다고 소개를 하여 궁금한 것을 질문하였다.

황지청장에 의하면 보훈처에는 40명 가량의 대학교수, 연구원들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심사한다고 하였다. 이규홍 독립투사의 결격사유는 사업을 한 것이었다고 설명하였다. 보훈처 내부 규정이 사업을 하면 친일파로 간주한다고 하였다.

황후연 울산보훈지청장은 서진부 양산시의회 의장과 이규홍 독립투사의 손자 이경우 씨를 배웅하기 위해 2층 사무실에서 청사 바깥 주차장까지 내려오셨다. 공직자로서 매우 친절하고 겸손한 분이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보훈처에 다시 한 번 이규홍 선생 선처를 건의하겠다는 황후연 울산보훈지청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규홍 독립투사의 손자 이경우 씨도 하고싶은 말을 지청장에게 하였다. 이경우 씨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조부의 명예회복을 위해 보훈처에 증언서를 계속 제출해왔는데, 소회가 착잡할 것으로 짐작되었다.

서진부 양산시의회 의장은 차분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이규홍 독립투사의 서훈에 대해 말씀을 이어나갔다. 사업을 한 것이 보훈처 규정에 저촉되더라도 다시 한번 검토하여 꼭 서훈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였다. 또한 사업하여 번 돈을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제공했으니 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필자는 사업을 한 독립 유공자 사례로 라용균 선생을 예로 들었다. 라용균 선생은 상해에서 독립투쟁을 하다가 영국으로 망명하여 7년간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였으나 체포되지 않았고,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간척사업을 하여 쌀을 몇 천석 수확했는데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고 하였다.

간척사업은 일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규홍 선생의 명의만 빌려준 사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라용균 선생의 친일행적은 보훈처 기준으로 따진다면 문제가 된다. 기준은 언제나 공정하고 형평성에 맞아야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규홍 선생은 서훈을 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다.

● 상해임시정부 요인 이규홍 선생 독립유공자 서훈

이규홍 독립투사는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397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후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임시정부에서 내무차장, 학무차장, 재무총장(재무부장관), 외무총장(외무부장관), 의정원 의원(국회의원),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국회부의장), 국무원(장관 : 제8차 국무령제, 국무령 김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울산보훈지청 앞에서. 이규홍 독립투사의 손자 이경우 씨
경기도 파주시에 거주하고 있다.

상해에서 1935년까지 독립투쟁을 하다가 법정 전염병인 폐결핵에 감염되었다. 상해 망명 후 귀국하기까지 16년 동안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 독립자금을 바쳤다. 귀국 후 일제경찰의 감시하에 가택연금 당하면서 4년 남짓 요양을 하였으나 결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46새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젊은 청춘의 몸, 굴하지 않는 독립정신, 마지막으로 목숨까지 바쳐 독립투쟁을 했던 뼛속까지 애국자인 이규홍 선생을 대한민국 정부에서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만석꾼 재산은 아니었지만 몇 천석지기의 재산을 독립투쟁을 위해 썼다.

독립투사를 제대로 예우하지 않고 후손들에게만 증거자료를 계속 발굴하여 보훈처에 제출하라는 것은 너무 심한 처사다. 국가와 보훈처는 방대한 조직과 공무원, 자문위원, 정보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이규홍 선생의 손자 이경우 씨, 그를 돕고 있는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심상도 소장은 심히 미약한 존재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그래도 보훈처와 심사위원의 주장에 맹점이 있는 증거자료를 발굴하여 보훈처에 증언서를 제출하였다. 라용균 선생 사례, 결핵같은 법정 전염병과 관련된 일본 위생경찰 제도, 체포하지 않고 가택연금하면서 경찰이 감시한 것은 투옥하면 간수와 동료 죄수들에게 전염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이상한 서훈 규정

4년간 가택연금 당하면서 가촌토지주식회사, 환영자동차회사에 명의만 대여하고, 일본경찰의 감시로 실제 외부 기업활동울 못하였다. 국가 보훈처는 일제강점기에 사업을 하면 무조건 친일로 단정하는 서훈 기준을 갖고 있다. 이런 규정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백성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농사도 지어야 하고 사업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인간의 천부적인 기본권이다. 
 
이규홍 선생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적극 부역하며 부정하게 치부를 했다면 먼저 우리 동포의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땀흘려 번 돈을 은밀하게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제공하였다.

이규홍 독립투사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파 명단에도 올라가지 않았다. 요행으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친일 행적이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수록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명단은 한 번 수록되면 빠져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은 친일활동으로 명단에 수록되었으나 상좌 스님, 제자 스님(현재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들이 유품 정리 중 도산 안창호 선생 등 독립투사들에게 독립자금을 제공하고 받은 기록과 영수증이 있어 친일파 명단에서 벗어났다.

이규홍 독립투사의 손자인 이경우 씨는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을 통해 일본 외무성 자료까지 조회하여 친일파로 변절한 기록이 없는 것을 확인하여 보훈처에 자료를 제출하였다. 
 
외무성 자료에는 요시찰 인물로만 나와 있었다. 그러나 국가에서 독립유공자 공적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 생전에 일제의 탄압에 시달린 이규홍 선생

이규홍 독립투사는 살아 생전에는 일제의 탄압을 받으며 목숨 걸고 독립투쟁을 하였다. 그리고 사후에는 독립 유공자로 서훈받지 못해 후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명단에도 올라가지 않았고 일본 외무성 자료에도 변절내용은 없으므로 서훈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규홍 선생이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순국하였을 때 양산지역의 유지들이 조의제문을 지어 문상을 하니 일본경찰이 불러서 취조를 하고 탄압을 하였다고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이 증언해주었다.

만일에 이규홍 선생이 변절하고 친일파로서 돌아가셨다면 일본경찰이 탄압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지조를 지킨 상해임시정부의 거물 독립투사 이규홍 선생의 죽음이 양산과 조선에 마치는 영향과 파급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일본경찰이 탄압에 나섰던 것이다.

일본은 기록에 철두철미한 사람들이고 국가다. 일제강점기에 상해임시정부의 거물 이규홍 독립투사가 만약 변절하여 친일행동을 했다면 상세하게 파악하여 기록한 다음 일반 백성들에게 대대적인 친일 행동을 유도하는 홍보자료로 써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증거도 없지 않은가? 거꾸로 보훈처와 독립유공자 심사위원들이 갖고 있는 변절 관련 자료가 있다면 떳떳하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없다면 이경우 씨가 제출한 증거를 인정해주고 독립 유공자로 서훈해주길 바란다.

● 이규홍 재무총장이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난 독립자금

상해임시정부 이규홍 재무총장(현재 재무부장관 격임)이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본석해 보면 독립자금 모금은 여의치 않았고 상해임시정부의 예산도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이규홍 재무총장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관계는 나이가 15세의 차이가 났고, 서로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이였으며, 마치 스승과 제자 사이 같았다. 상해에서 두 분이 독립투쟁을 할 때는 서로가 의지하고 존경하였으며, 같은 정치 노선을 걸었다.

월간조선,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사스템 자료를 인용하기로 한다.

상해임시정부의 개조파그룹의 일련의 정책 결정은 자신들의 판단만으로 단행할 수 없었다. 안창호와 상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창호는 이승만을 임시정부에서 물러가게 한다는 기본방침만 정해 놓고 미국으로 간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동녕 내각이 사퇴하자 이유필, 이규홍, 조상섭 세 사람은 차례로 안창호의 의견을 묻는 편지를 보냈다.
  
외무총장 겸 재무총장의 막중한 책임을 맡은 이규홍이 취임 직후인 12월 21일에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는 여러 가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묻고 있다.
  
우리의 사명은 법제 개정이오며, 개정 기한은 될 수 있는 대로 단시기로 생각하고 법제는 우선 헌법에 착수하기로 하였으나, 헌법 개정할 주요점은 아직 토론치 못하였사옵니다. 이 주요점에 선생의 의견을 바라오니 혜교하옵소서.

법제개정하는 시간 내에 내정 정리와 재정 통일과 외교 진행을 누누이 작정하는 중에 구미위원부를 폐지하기로 극비밀리에 내정하고 아직 그곳 사정과 외인관계가 미상하와 발포를 주저하오니, 위원부 대신에 외교와 재정을 속히 정돈하려 하오니 고견을 혜교하옵소서.
  
이규홍은 이어 구미위원부가 하던 일을 맡길 만한 단체나 개인이 있느냐고 묻고, 임시정부의 절박한 재정형편을 설명하면서 〈다소를 불구하옵고〉 시급히 자금지원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경우 씨, 월남전 백마부대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20여년간에 걸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틀 뒤인 12월 23일에는 학무총장 조상섭도 안창호에게 그동안의 경과를 자세히 보고하면서 미주대표 의정원 의원을 선정해 줄 것과 정부유지비로 〈다만 몇백 원이라도〉 보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임시정부는 이승만으로부터의 송금이 완전히 중단됨으로써 극도의 재정난에 빠져 있었다. 11월부터는 한 달에 100달러의 집세뿐만 아니라 전기료도 내지 못하여 단전되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임시정부는 인성학교 건축비로 광동은행에 맡겨 두었던 2,000달러를 인출하여 밀린 집세 300달러를 지불하고, 1925년 1월20일에 청사를 프랑스조계 蒲石路(포석로) 新民里(신민리) 14호의 대한적십자회 부회장 안정근의 집 2층으로 옮겼다. 그 돈은 1923년에 하와이에서 왔다가 병사한 평북 출신 朴아무개의 유산이었다.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이 작성해준 증언서를 들고
 
조상섭은 1925년 1월 5일에 다시 안창호에게 편지를 보내어 임시의정원과 국무원의 제도개혁에 대한 상해 인사들의 의견들을 보고하면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조상섭은 삼두정치제도를 마련하여 안창호, 이동녕, 김동삼 세 사람이 대통령 권한을 공동으로 행사하게 하자는 안도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자기는 제도가 어떻게 변경되든지 안창호가 수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의 결심을 촉구했다.
  
이규홍도 1925년 4월17일에 다시 안창호에게 편지를 보내어 미주에서의 재정 수합과 구미위원부 사무인계 문제에 대한 안창호의 의견을 묻고, 빨리 상해로 돌아올 것을 건의했다.

● 2018년 3.1절 특집에 EBS방송에서 방영하였던 이규홍 선생에 관한 특집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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