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황산벌로 진군한 화랑 관창이 거쳐간 곳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신라의 김유신(金庾信) 장군, 품일(品日), 김유신 장군의 동생 흠춘(欽春)이 각각 황산[(黃山: 지금의 연산(連山))으로 진군할 때 품일은 아들 관창(官昌)을 데리고 이곳 금성산 낙화대(落花臺)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며칠 뒤 관창은 백제의 계백(階伯) 장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670년(문무왕 10) 이곳 사람들이 낙화대 뒤에 있던 절을 중수해서 품관사(品官寺)라 하고, 그 산을 품관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당시 이곳의 지명은 길동(吉同)이었는데 경덕왕 때 영동군으로 고치고 상주에 예속시켰으며, 황간(黃澗)과 양산을 영현으로 두었다. 황간은 본래 소라현(召羅縣)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 황간이라고 고쳤다.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에는 부용리가 있다. 부용리 고개에서 국도를 따라 대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낙화대’라는 암벽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암벽은 뾰족하고 길게 튀어나온 형상이었으며, 옆에는 고목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낙화대에 올라서면 소백산의 봉우리와 영동천의 장관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낙화대는 1993년 5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진행된 영동-대전 간 도로 확장 공사 구역으로 편입되어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낙화대는 ‘꽃이 떨어진 곳’이라는 뜻을 지니며, 이에 관한 한 기생의 애틋한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2.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화랑
신라의 이름 높은 스님이었던 원광이 중국 유학에서 돌아와 가실사(加悉寺)에 머무르고 있을 때, 소년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찾아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교훈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원광이 5가지 계율을 말해 주면서, 불교 승려가 지켜야 하는 보살계(菩薩戒)와 구분하여 세속 오계라 하였다(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화랑도의 세속 오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충심으로 왕을 섬긴다[사군이충(事君以忠)]. 둘째, 효로써 부모를 섬긴다[사친이효(事親以孝)]. 셋째, 신의로써 친구를 사귄다[교우이신(交友以信)]. 넷째, 전쟁에 나가서 물러서지 않는다[임전무퇴(臨戰無退)]. 다섯째, 살아 있는 것을 죽일 때는 가려서 한다[살생유택(殺生有擇)]. 역사에 이름을 남긴 신라의 화랑도는 많이 있다. 충북 영동의 백제 조천성 공격에서 전사한 김흠운(金歆運)도 대표적인 화랑이다.
사관이 논평한다. 신라인은 인재를 알아 볼 방법이 없음을 근심하여, 무리지어 함께 노닐도록 하고 그 행동거지와 의리를 살핀 후에 등용하고자 하였다. 드디어 용모가 뛰어난 남자를 뽑아 곱게 꾸며 화랑(花郞)이라 이름 짓고 그들을 받드니,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혹은 도의를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는데, 산과 물을 찾아 노닐고 즐김에 멀더라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삼국사기 제47권 열전 제7).
이로 인하여 그 사람됨의 악함과 바름을 알게 되어, 선량한 이를 택하여 조정에 천거하였다. 그러므로 김대문(金大問)이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이로부터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부터 생겼다.”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3대의 화랑이 무려 2백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들의 꽃다운 이름과 아름다운 사적은 전기에 실려 있는 바와 같다. 흠운 같은 이도 역시 낭도로서 나라 일에 목숨을 바칠 수 있었으니,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
화랑 관창 역시 화랑도의 표상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5만 명의 신라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백제의 계백 장군이 지휘하는 5천 명의 결사대를 만나 네 번의 전투에서 연달아 패배하였다. 위기에 봉착한 김유신 장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하여 화랑도를 이용하였다. 신라의 지배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투철하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뜻의 프랑스어 표현이다.
가을 7월 9일, 유신 등이 황산(黃山) 들판으로 진군하였다. 백제의 장군 계백(階伯)이 병사를 거느리고 와서 먼저 험한 곳을 차지하여 세 군데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유신 등은 병사를 세 길로 나누어 네 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장수와 병졸들의 힘이 다하였을 무렵, 장군 흠순이 아들 반굴(盤屈)에게 말하였다[태종왕(太宗王), 삼국사기 제5권 신라본기 제5].
“신하에게는 충성만한 것이 없고 자식에게는 효도만한 것이 없다. 이렇게 위급할 때에 목숨을 바친다면 충과 효 두 가지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반굴이 말하였다.
“삼가 분부를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곧장 적진에 뛰어들어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죽었다.
장군 김흠순은 김서현(金舒玄)의 장군 아들이며,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동생이다. ‘흠춘(欽春)’이라고도 한다. 어려서 화랑이 되어 인덕과 신의가 깊어 크게 존경을 받았다. 660년(태종무열왕 7) 6월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할 때 품일(品日)과 함께 김유신을 도와 계백(階伯) 의 백제군과 황산(黃山)에서 결전을 벌였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민족대백과사전). 화랑 반굴의 큰아버지가 총사령관인 김유신 장군이었다.
3. 화랑 관창의 희생
관창(官昌)[혹은 관장(官狀)이라고도 한다.]은 신라 장군 품일(品日)의 아들이다. 용모가 우아하였으며 젊어서 화랑이 되었는데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 16세에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숙하여 어떤 대감이 그를 태종대왕에게 천거하였다(관창(官昌), 삼국사기 제47권 열전 제7).
당 현경(顯慶) 5년 경신(서기 660)에 왕이 군대를 내어 당나라 장군과 함께 백제를 치는데, 관창을 부장으로 삼았다. 황산벌에 이르러 양쪽 병사가 대치하였는데 아버지 품일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뜻과 기개가 있다. 오늘이야말로 공명을 세워 부귀를 얻을 때이니 어찌 용기가 없을쏘냐?”
관창은 “그렇습니다.”라 하고, 즉시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 바로 적진으로 달려들어가 여러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었기 때문에 적에게 사로잡혀 산 채로 백제의 원수(元帥) 계백(階伯)의 앞으로 끌려갔다. 계백이 그의 투구를 벗기고 그가 어린 나이인데도 용맹한 것을 애틋하게 여겨, 차마 해치지 못하고 탄식하여 말했다.
“신라에는 빼어난 인물이 많구나. 소년조차 이러하거늘 장사들이야 어떻겠는가?”
이에 관창을 살려 보내도록 하였다. 관창이 돌아와서 말했다.
“아까 내가 적진에 들어가서 장수를 베지 못하고 깃발을 뽑아오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다.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하리라.”
관창은 손으로 우물물을 움켜 마시고는 다시 적진에 돌입하여 맹렬하게 싸웠다. 계백이 사로잡아 머리를 베고는 그의 말 안장에 매달아 보냈다. 품일은 아들의 머리를 잡고 소매로 피를 닦아주며 말했다.
“내 아들의 얼굴 모습이 살아있는 것 같구나. 나랏일을 위해 죽었으니 후회가 없으리.”
전군이 그 광경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뜻을 다지고는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진격하니, 백제가 크게 패하였다. 대왕이 급찬의 직위를 추증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으며, 그 가족들에게 당나라 비단 30필과 이십승포 30필, 곡식 1백 섬을 부의로 주었다.
계백 장군은 의자왕이 충신인 성충, 흥수의 직언을 듣지 않고 간신들의 아첨에 취해 정치를 잘못하여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초래한 상황에서 백제가 멸망할 것을 예견하였다. 가족이 패전 후 치욕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처자식을 모두 죽이고 출전하였다. 황산벌에서 지형적으로 유리한 세 곳에 군사를 배치하고 용감하게 싸웠지만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였다. 초기 네 번의 전투에서 이겼지만 신라 화랑인 반굴과 관창의 희생으로 사기가 오른 신라군을 막지 못했다.
4. 화랑 관창의 역사 유적지 답사 소감
1364년 전 김유신 장군의 5만 군사와 계백 장군의 결사대 5천 장병이 최후의 격돌을 펼친 황산벌 전투는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전투 과정 자체가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이어져 역사를 배운 국민에게 비장미와 슬픔을 안겨주었다.
일기당천(一騎當千)이라는 고사성어는 한 명의 기병이 천 명의 병사를 상대해서 이긴다는 의미이다. 일당백(一當百)은 한 명이 백 명을 당해낸다는 뜻으로 매우 용감한 병사를 말한다. 객관적인 숫자로 볼 때 백제 군사 한 명이 신라 군사 10명을 상대해서 이겨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으로 승리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준익 영화감독이 2003년 ‘황산벌’이라는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황산벌 전투를 영화로 만들어 박중훈, 정진영, 이문식, 류승수 등의 배우가 열연함으로써 2,771,236명의 관중을 동원하여 히트했다.
처음에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평범한 코미디, 혹은 적당한 수위의 블랙 코미디 정도로나 받아들였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고 개그 뒤에 숨겨진 진지한 메시지와 기존 사극의 클리셰(프랑스어로 지겹고 예측 가능한 뻔한 설정, 표현)를 비튼 점들이 재조명되면서 한국 코미디 영화와 사극 영화의 역사에 남을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필자는 황산벌 전투 현장의 역사 유적을 답사하기 위해 충남 논산시를 방문하였다. 처음에 황산벌이라는 뜻이 넓은 들판을 의미하기에 넓은 평야 지대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거라는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허허벌판은 아니고 산자락을 끼고 있는 들판이었다. 계백 장군이 지휘하는 백제군은 방어하기 쉬운 산성 중심으로 진영을 펼치고 있었다. 물론 산성은 아주 높은 산이 아니고 벌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지대로 추정되었다.
황산대첩비가 설치된 곳은 산자락 아래에 있는 마을이었다. 황산벌이라고 알려진 동네는 신양리와 신암리였는데, 산자락 아래 마을이었다. 신양리에는 자연부락인 황산리가 있었고, 황산대첩비도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신양리에서 가까운 높은 산은 해발 394m의 깃대봉이었고, 신암리에서 가까운 산은 해발 404.4m의 함박봉이었다.
황산마을 주민에게 황산대첩비 위치를 물어보니 알려주었다. 황산대첩비가 있는 곳은 ‘연산황산벌오토캠핑장’ 바로 앞의 도로변이었다. 캠핑장에는 작은 장군 인물상이 있었다. 캠핑장에서 근무하는 젊은 직원에게 황산벌 전투와 계백 장군에 대해 물어보니 아무 것도 몰랐다. 캠핑장의 작은 장군상이 계백 장군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다는 것도 몰랐다.
지도상으로 살펴보니 황산벌 전투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인 충남 논산시 양촌면 황산벌로 1040에 국방대학교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육군 논산훈련소도 논산시에 있어 황산벌 전투 이후 거의 1400여 년이 지나도 논산시는 여전히 국방의 요충지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였다.
황산벌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여 신라군의 사기를 북돋운 장군의 아들인 화랑 관창이 죽은 곳인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를 주민의 정보 제공에 의해 알게 된 것은 현장 답사의 큰 수확이었다. 관동리는 옛날에 관창리로 불리다가 관동리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도로명 주소에 황산벌로, 계백로, 관동로 등 황산벌 전투와 연관된 것이 있어 논산시민들은 백제인 후예답게 역사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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