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2 (수)
화랑도가 이름을 남긴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울주 천전리 각석 이름 변경
국보인 ‘울주 천전리 각석’의 이름이 변경되었다. 문화재청은 지난 2월 28일부터 ‘울주 천전리 각석’의 명칭을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蔚州 川前里 銘文과 岩刻畫)’로 바꾼다고 2월 26일 밝혔다(연합뉴스, 2024, 2.26.). 문화재청에서는 1973년 국보 지정 당시에는 돌에 글과 그림을 새겼다는 의미로 ‘각석(刻石)’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산의 특징과 가치를 온전히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명문(금속이나 돌 등에 새긴 글)의 학술적 가치와 암각화의 중요성을 모두 담은 이름으로 바꾸게 됐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름을 바꾼 천전리 각석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반구천의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상태이다.
울산광역시가 신라시대 진흥왕과 화랑의 흔적이 있는 국보 ‘울주 천전리 각석’ 명칭 변경을 추진한다. 울산광역시는 문화재 자료 검토와 전문가 자문을 거친 뒤 문화재청에 명칭 변경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지난 7월 7일 밝혔다. 지난 6월 시는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천전리 각석 명칭을 천전리 암각화로 변경하는 안을 가결했다(매일경제, 2023, 7.7.).
그동안 학계에서는 울주 천전리 각석은 신라시대 글자 외에도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다양한 바위 그림이 있기 때문에 포괄적이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암각화’로 명칭을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울산시가 추진 중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 명칭이 ‘반구천 일원 암각화’로 두 유산의 명칭을 통일해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문가 권고도 있었다. 시는 국보 명칭 변경을 위해 7월 11일 강봉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하는 학술 토론회도 개최하였다.
지난 3월 20일에 현장에 가보니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명칭이 변경되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안내판도 문화재청과 울주군에서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붙인 변경된 명칭이 떨어져 관리인이 손으로 눌러 다시 붙이기도 했다. 사진 찍기 위해 바위 앞의 경계를 넘어가면 자동 인식으로 방송이 나왔다. 필자 옆에서 사진 찍던 한 여성이 자꾸 들락날락하니 관리인이 현장에 와서 심하게 나무랐다.
2.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의 중요성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2에 있는 ‘울주 천전리 각석’은 1973년 5월 4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태화강 물줄기인 대곡천 중류의 기슭 너비 9.5m, 높이 2.7m의 바위에 각종 도형과 글, 그림이 새겨진 암석으로, 아래, 위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하다.
윗단에는 쪼아서 새기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이 조각되어 있다. 사실성이 떨어지는 단순화된 형태인데 중앙부의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원을 중심으로, 양 옆에 네 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과 맨 왼쪽의 반인반수(半人半獸 : 머리는 사람, 몸은 동물인 형상)상이 눈에 띈다.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상징성을 갖고 있는듯한 이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문화재청).
아랫단은 선을 그어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는데, 기마행렬도, 동물, 용, 배를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기마행렬도는 세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간략한 점과 선만으로도 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배그림은 당시 신라인의 해상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글자는 800자가 넘는데 왕과 왕비가 이 곳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법흥왕대에 두 차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중에는 관직명이나 6부 체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느 특정 시대를 대표한다기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이다.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능선 자락 아래에 병풍처럼 펼쳐진 장방형의 대형 암면과 북편으로 이어진 여러 개의 바위 가운데 4개의 암면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울주 천전리 각석 맞은편에 있는 급경사의 높은 암벽 자락은 이곳으로부터 약 2㎞ 떨어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이어진다. 동남향인 천전리 각석의 대형 암면은 15도 가량 앞으로 숙여져 있다. 앞의 높은 산봉우리로 말미암아 암면에는 한낮에만 잠깐 볕이 든다.(울주군, 울산역사문화대전).
천전리 각석 앞 물길 둘레에는 100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넓고 편평한 반석이 펼쳐져 있다. 반석 위에는 직경만 30㎝에 이르는 백악기 공룡발자국 200여 개가 남아 있다. 1970년 12월 24일, 황수영 교수와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울산지구 불적 조사대’가 원효대사의 반고사 터를 조사하다가 근처에서 주민들의 안내로 울주 천전리 각석을 발견하였다. 주민들은 동국대 조사대가 오기 전에도 각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3. 바위에 새겨진 화랑도 이름
천전리 각석은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상단에는 동물 그림과 동심원, 마름모, 나선형 등 선사시대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 대체로 서석의 가로 중심선 하단부에 산재한 명문들은 내용이나 서체 등으로 볼 때 5~6세기 무렵에서 통일 신라 말기에 걸치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중에는 글자 크기나 새기는 방법 등이 판이한 것들도 섞여 있고, 시기를 달리하는 내용이 중복되어 기록되기도 하여 판독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내용 또한 간략하게 인명이나 간지만을 기록하기도 하였으며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까닭에 판독 가능한 명문들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221점이 분포하는데 그 가운데 3점은 근현대에 제작된 이름과 연도이다.
나머지 218점은 다수가 세선 긋기 형식으로 홀로 혹은 구획되어 표현되었으며, 바위면 쪼기 기법으로 새긴 것도 일부 눈에 띈다. 신라 시대 사람들이 남긴 대략 천 여자 가량의 명문은 도보 인물 및 기마행렬 위로 개성삼년명(開成三年銘), 병술명(丙戌銘), 을미명(乙未銘), 계해명(癸亥銘) 등이 새겨졌다(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하단의 중간 부분에 하체만 남아 있는 인물상 위로 이 암면의 중심 명문이 남아 있는데, 중심 명문 가운데 먼저 새겨진 것을 원명(原銘), 뒤에 새겨진 것을 추명(追銘)이라 부른다. 중심 명문 주변에 신해명(辛亥銘)을 비롯한 간지명과 승려 및 화랑의 이름들, 뜻이 명확하지 않은 다수의 명문이 흩어져 있다.
하단에는 신라시대의 세선화와 300여 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 중에는 문첨랑, 영랑, 법민랑 등 신라 화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랑성업(戌年六月二日 永郎成業)이라는 글자는 화랑 ‘영랑’이 술년 6월 2일 업을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목표를 성취했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영랑이 화랑으로서의 수련기간을 마친 것을 기념한 각문(刻文)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 영랑이 바로 효소왕 때의 영랑 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랑은 술랑(述郎), 남랑(南郎), 안상(安詳) 등과 더불어 이른바 사선(四仙)의 하나로 꼽혔으며, 금강산 방면의 여행과 놀이로 이름났다. 그의 족적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문인들 사이에 회자되어 ‘영랑도남석행(永郎徒南石行)’이라 바위에 새겨진 삼일포(三日浦 :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 방면을 답사, 기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금강산에는 실제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영랑재[永郎峴]’가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그의 낭도 가운데는 진재(眞才), 번완(繁完) 등이 특히 유명하였다고 한다(『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 제4의 ‘백율사(栢栗寺)’조).
세상에서는 안상을 준영랑(俊永郎)의 무리라고 하였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영랑의 무리에는 오로지 진재(眞才)와 번완(繁完) 등의 이름만 알려져 있는데, 이들 역시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있는 ‘영랑명(永郞銘) 석구(石臼)’에는 신라의 선인으로 나온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구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랑도(花郞徒)란 신라에 있었던 화랑(花郞)과 그를 따르는 낭도(郎徒)로 구성된 청소년 집단을 말한다. 화랑이란 ‘꽃처럼 아름다운 사내’라는 뜻으로 국선(國仙), 화판(花判), 선랑(仙郎), 풍월주(風月主)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화랑도는 함께 수련하고 가무를 즐기며 유람하였으며, 여기에서 인재가 많이 길러지고 발탁되어 특히 삼국 통일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신라 진흥왕(534~576) 때 창설된 화랑도는 대개 15~18세의 청소년으로 구성되었다. 화랑들은 경주 남산, 금장대, 단석산, 강릉 경포대, 속초 영랑호, 금강산, 지리산, 천전리 계곡 등과 같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면서 심신을 수양하고 단련했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 새겨진 화랑의 이름 중 ‘법민랑(法民郞)’이 바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화랑 시절 이름이다. 천전리 계곡이 신라 서라벌 귀족과 화랑이 즐겨 찾던 명소이자 수련지였음을 알 수 있다. 문무왕은 태종무열왕의 왕자로 김유신 장군과 함께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화랑도의 수련지인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의 화랑도 유적을 지난 3월 20일, 21일 연 이틀간 답사하였다. 같은 날 암각화박물관도 방문하여 암각화와 명문을 살펴보았다. 첫날은 12시 넘어 답사했는데, 앞산에 해가 가려 암각화와 명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내일 아침 10시 무렵에 오면 해가 비쳐 잘 보인다고 정보를 알려줘 다음 날 바로 달려갔다. 계곡 건너편에는 공룡 발자국 회석이 많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암각화와 명문도 비바람에 풍화작용이 심하여 바위가 일부 떨어져 나가거나 선명하지 않아 모형을 만들어놓은 암각화박물관에 가서 자세히 보며 사진을 찍었다. 글자를 판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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