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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의 수련지 경주 금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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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화랑도의 수련지 경주 금장대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화랑도의 기원

 

삼국사기 제4권 신라본기 제4 진흥왕 조에 보면 화랑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진흥왕은 처음에는 미녀를 뽑아 원화 제도를 도입하였다. 두 여성의 질투로 제도를 폐지하게 되었고, 나중에 잘 생긴 남자를 선정하여 곱게 꾸며 화랑이라고 하였다.

 

37년(서기 576) 봄, 처음으로 원화(源花, 화랑의 전신)를 받들었다. 일찍이 임금과 신하들이 인재를 알아볼 방법이 없어 걱정하다가, 사람들 여럿을 모아 함께 놀게 하고 그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본 후 천거하여 쓰고자 하였다. 마침내 두 미녀를 뽑았으니 하나는 남모(南毛), 하나는 준정(俊貞)이었다. 3백여 명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런데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서로 질투하다가,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에 유인하여 억지로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하고는 끌고 가서 강물에 던져 죽였다. 준정은 사형에 처해졌으며, 무리들은 화목을 잃어 흩어지고 말았다.

 

그 후에 다시 잘생긴 남자를 택하여 곱게 꾸며 ‘화랑(花郞)’이라 이름 짓고 그들을 받드니,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도의를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는데, 산과 물을 찾아 노닐고 즐김에 멀더라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로 인하여 그 사람됨의 악함과 바름을 알게 되어, 선량한 이를 택하여 조정에 천거하였다.

 

김대문(金大問)은 『화랑세기(花郞世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이로부터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부터 생겼다.”

 

최치원은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에서 말하였다.

“우리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가르침의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거니와, 실로 이는 유불선 삼교(三敎)를 포괄하여 뭇 백성들을 교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에 들어와서는 효를 행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함은 노나라 사구(司寇, 공자)의 가르침이고, 억지로 하는 일을 하지 않고 말없는 가르침을 실천함은 주나라 주사(柱史, 노자)의 뜻이며, 모든 악행을 하지 않고 모든 선행을 하라 함은 축건태자(竺乾太子, 석가모니)의 교화이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은 『신라국기(新羅國記)』에서 말하였다.

“귀족의 자제 중 아름다운 이를 택하여 화장을 시키고 곱게 꾸며서 이름을 화랑(花郞)이라 하였는데,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높이 받들어 섬겼다.”

 

2. 금장대

 

(1) 금장대는 신라팔괴의 하나

 

금장대는 형산강과 경주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 경주의 하늘을 지나가는 모든 기러기들이 반드시 쉬어간다[金藏(丈)落雁]는 경주 삼기팔괴(三奇八怪)의 장소 중 한 곳이다. 금장대 아래 형산강의 본류인 서천과 북천이 만들어낸 예기청소(藝妓淸沼)는 경주가 고향인 소설가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巫女圖)’ 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자비왕 때 한 여인이 왕과 연회를 즐기는 도중에 실수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며,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자연의 아름답고 영원함과 유한한 인간의 삶, 과거를 통해 오늘을 경계하며 시를 읊조리던 공간이었다.

 

또 임진왜란 때 경주성(慶州城) 수복 정찰기지 역할을 하였고, 왜군들이 물러났을 때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던 곳이기도 하다. 선사시대 경주인들의 주술적 기원을 담고 있는 얼굴, 동물 등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암각화(岩刻畵)도 발견되었다. 맑고 탁 트이고 우뚝한 금장대[금장청광(金藏淸曠)]는 형산강의 대표적인 절경(絶景)으로 형산강팔경(2016)에 선정되었고, 석장동 암각화는 경상북도 기념물 (1994)로 지정 보전되고 있다.

 

금장대는 신라 팔괴의 하나이다. 금장대는 화랑도의 수련지였으며, 화랑이 하늘에 맹세한 곳이었다. 임신서기석이 금장대 인근에 있는 석장사지 근처 천수답 논에서 발견되었다. 임신서기석의 임신년은 550년, 612년이라는 주장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용현 씨는 ‘임신서기석의 문체와 연대의 재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임신서기석 연대가 문체 분석을 통해 552년임을 입증했다. 그동안 임신서기의 연대는 612년설이 주류로 인식돼왔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임신서기석은 신라시대 젊은이 두 사람이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충성을 다바칠 것과, 유교경전을 3년 안에 습득할 것을 맹서한 것으로, 임신년 연대에 대해서는 그간 정해진 의견이 없었다.”며 “간지(干支) 연대가 60년마다 반복되는 데다가 결정적인 자료가 결여됐던 탓에 유교 경전이 신라 사회에서 학습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을 기준으로 732년, 612년, 552년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용현 학예연구사는 논고에서는 ‘맹서하기를 … 라고 맹서한다’라는 서술어 반복 문체가 6세기대 신라 금석문에 보이는 것을 근거로 임신년의 연대를 552년으로 특정했다.”며 “이번 연구를 계기로 임신서기석이 국어학에서 이두 발전 연구의 기준 연대를 새롭게 제시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뉴스1, 2017, 1.24).

 

김유신은 화랑 3년째인 612년 열박산(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에 들어가 하늘에 빌었다. 15살 때부터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렸으며, 17세 때에는 외적을 물리치기 위에 홀로 중악(中嶽) 석굴에 들어가 빌었더니 산신이 나타나 방술(方術)을 전해 주고는 오색찬란한 빛을 남긴 뒤 모습을 감쳤다. 18살에는 열박산(咽薄山) 골짜기에 들어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자 빛이 내려와 보검에 실리고 칼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했다.

 

(2) 형산강팔경(兄山江八景), 경주 8색

 

형산강(江)은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忍耐山)에서 발원(최장 63.9km)하여 천년 신라의 역사, 문화와 근대 산업 정신을 품고 있다. 형산강 유역의 경주시와 포항시, 그리고 경상북도는 상생 발전 협력을 위하여 형산강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 2월 형산강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경관지 8경을 선정하였다.

 

영일대(迎日臺), 포항운하(浦項運河), 부조정(扶助亭), 양동마을(良洞마을), 보문 물너울교(普門 물너울橋), 금장대(金藏臺), 월정교(月精橋), 삼릉솔숲(三陵솔숲).

 

‘경주 8색’으로 꾸미는 야간경관 개선사업, 경주 8색은 화랑 적색, 불국 홍색, 서라벌 황색, 남산 녹색, 동해 청색, 첨성 자색, 금관 금색, 삼국흑색.

 

(3) 제78차 국제펜대회

 

금장대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곳에서 함께 나눈 시낭송회가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면서

 

2012. 9. 12

제78차 국제펜대회

금장대 시낭송회 개최 기념

 

금장대藏에서

 

권위 Gwon Wi(權暲, 1552-1630)

 

동도의 전한 자취 찾아 두루 돌아왔지만

고요한 하늘에 새도 지나지 않는구나

오직 금장대 아래로 흐르는 물이 있어

봄바람에 오히려 옛 연기 물결 띠 되어 흐르네

 

3. 신라 삼보, 삼기 팔괴

 

삼보(三寶)는 신라를 지킨 보물이다. ‘황룡사 장육존상’과 하늘이 내렸다는 ‘천사옥대’, ‘황룡사 구층목탑’을 지칭한다.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몽고 침략으로 소실된 장육존상은 현재는 황룡사지에 석조대좌만 남아있다. 『삼국유사』에는 ‘고려 왕이 신라를 치려고 하다가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삼기팔괴(三奇八怪)는 경주의 예로부터 세 가지 진기한 보물과 여덟 가지 괴상한 풍경을 말한다. 삼기(三奇)는 금척(金尺), 옥적(玉笛), 화주(火珠)이다. 금척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받았다는 금으로 만든 자다. 묻힌 곳이 금척리고분군이라 전해진다. 옥적은 옥으로 만든 피리로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의 혼령이 합해져 신문왕에게 내려 준 만파식적이라는 설이 있다.

 

화주는 선덕여왕이 지녔던 수정 돋보기로 햇볕을 비추면 솜에 불이 붙어 화주라고 불렀다. 신라 옥피리 2점과 분황사 탑에서 나온 돋보기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삼기에는 성덕대왕신종이 들어가기도 한다.

 

팔괴는 금장낙안(金丈落雁), 남산부석(南山浮石), 문천도사(蚊川倒沙), 계림황엽(鷄林黃葉), 압지부평(鴨池浮萍), 백률송순(栢栗松筍), 불국영지(佛國影池), 나원백탑(羅原白塔), 서산모연(西山慕煙), 금오만하(金鰲晩霞)이다.

 

금장낙안(金丈落雁)의 금장은 서천과 북천(알내)이 합치는 곳으로 임금이 노닐던 금장대를 말한다. 높은 바위에 올라서 바라보면 서라벌이 한눈에 굽어 보이는데, 예기청소 푸른 물에 비치는 전망이 아름다워 날아가던 기러기도 잠시 내려서 쉬어 갔다고 한다.

 

남산부석(南山浮石)은 버선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버선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며, 남산의 국사골에 있다. 큰 바위 위에 또 한 개의 바위가 얹혀 있는데, 실을 넣어 당겨보면 바위가 공중에 뜬 채로 있기 때문에 실이 빠져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문천도사(蚊川倒沙)는 문천(남천)의 모래가 너무나 부드러워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모래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문천은 예로부터 모기내 또는 물개(모래)내라고 불렸다.

 

계림황엽(鷄林黃葉)은 계림의 나뭇잎이 움이 트면서 붉은색을 띄는 것이다. 압지부평(鴨池浮萍)은 안압지에 부평초가 무더기로 떠다니는데, 뿌리가 땅에 닿지 않은 채 바람에 밀려 다니는 모양이 또한 장관이다.

 

백률송순(栢栗松筍)은 소나무에는 순이 돋아나지 않는데 백률사에 있는 소나무는 가지를 치면 거기서 새순이 난다. 불국영지(佛國影池)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얽혀있는 영지에는 날이 밝으면 불국사의 전경이 물에 비치는데, 다보탑만이 보이고 석가탑은 비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석가탑을 무영탑이라 부른다.

 

나원백탑(羅原白塔)은 현곡면 나원리에 있는 나원리 오층석탑이 백색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오래도록 흰 빛깔을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다. 서산모연(西山慕煙)의 서산은 선도산인데,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성산으로 선도성모가 계신 곳으로 크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석양이 비친 노을이 빼어나 서산모연이라고 한다.

 

금오만하(金鰲晩霞) : 금오산(남산)은 언제나 아지랑이가 끼어 있다. 아지랑이가 저녁놀에 반사되어 연분홍 빛으로 피어오르는 광경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아름다움이다.

 

필자는 금장대를 2월 4일, 2월 7일 2회에 걸쳐 답사하였다. 첫 번째 방문 때는 저녁 시간대이고 흐린 날씨여서 암각화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 맑은 날인 2월 7일에 다시 방문하였다. 맑은 날이어서 암각화가 잘 보여 사진 찍기 좋았다. 재방문한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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