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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김유신 동생 문희와 보희 자매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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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김유신 동생 문희와 보희 자매의 엇갈린 운명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 보희와 문희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에게는 아름다운 여동생 두 명이 있었다. 소극적인 성격의 보희(아명은 아해)와 당차고 적극적인 성격의 문희(아명은 아지)라는 여동생이었다. 여동생 두 명의 대조적인 성격은 후일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문명왕후와 태종무열왕과의 결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서악(경주시내 서쪽에 있는 선도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서라벌이 다 잠기는 이상한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나 보희는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그 꿈을 사겠다고 했다. 꿈을 사는 값으로 비단 치마를 주겠다고 했다. 비단 치마를 받고 보희는 문희에게 꿈을 팔았다.

적극적인 성격의 동생 문희에게는 소극적인 성격의 언니 보희와 달리 후일 왕비가 되는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문희는 그 꿈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꿈을 사들인 것이다.

꿈의 효능은 빠르게 나타났다. 열흘 뒤 김유신은 김춘추와 함께 자기 집 앞에서 공차기(축국)를 하다가 일부러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서 찢었다. 김유신은 여동생 보희에게 김춘추 공의 옷고름을 달아드리라고 했으나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자 김유신은 둘째 누이인 문희에게 부탁했다.

문희는 김춘추 공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옷고름을 달아드렸다. 이때 김춘추는 문희의 빼어난 미모에 반하게 되었다. 그 뒤부터 김춘추 공은 축국(공차기)을 핑계로 김유신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문희와 밀회를 즐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희는 김춘추 공의 아기를 갖게 됐다.

김유신은 동생 문희의 임신 사실을 알고, 짐짓 문희를 크게 꾸짖었다. 부모의 허락 없이 잉태했다는 이유로 문희를 불에 태워죽일 것이라는 소문을 서라벌에 퍼뜨렸다. 그런 다음 선덕여왕이 남산으로 행차하는 날을 택해 뜰 안에 나뭇단을 높이 쌓아 놓고 불을 지펴 연기가 많이 나게 했다.

선덕여왕이 그 까닭을 알게 되자 문희를 구하라고 명한다. 김춘추는 왕명을 받들어 득달같이 달려가 문희를 구했고, 그들은 정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그 후 20여 년이 흘러 김춘추가 왕이 되자 문희는 왕후가 되었다.

문명왕후(文明王后, ?~?)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왕후로, 이름은 문희(文姬), 아명은 아지(阿之)이다. 소판(蘇判) 김서현(金舒玄)의 차녀로, 김유신의 둘째 누이이다. 인물과 지혜가 뛰어났는데, 언니인 보희의 꿈을 사서 김춘추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국유사』에서는 훈제부인(訓帝夫人)으로 불린다.

 

2. 삼국유사에 나오는 꿈 이야기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 태종 춘추공(太宗 春秋公)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보희가 꿈을 꾸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니의 꿈 이야기를 듣고 동생 문희는 길몽이라 생각하여 비단 치마를 주고 꿈을 사들여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이며 성은 김씨이다. 용수(龍樹)[용춘(龍春)이라고도 한다.] 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다. 왕비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로, 곧 김유신(金庾信) 공의 막내 동생이다.

 

처음 문희의 언니인 보희(寶姬)가 꿈에 서악(西岳)에 올라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수도인 경주에 가득 찼다. 다음날 동생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문희가 말하였다.

 

“내가 그 꿈을 사겠어요.” 언니가 말하였다.

“무엇을 주겠니?”

“비단치마를 주면 어때요?”

“그러자!”

언니가 허락하여 동생 문희가 옷섶을 벌리고 꿈을 받으려고 하자, 언니가 말하였다.

“어젯밤 꿈을 너에게 주노라!” 동생은 그 값으로 비단 치마를 주었다.

 

10일이 지나 유신이 춘추공과 함께 정월 오기일(午忌日)[앞의 사금갑(射琴匣)에도 보이는데, 곧 최치원(崔致遠)의 설이다.]에 자기 집 앞에서 공을 찼다. [신라 사람들은 공을 차는 것을 ‘구슬을 가지고 노는 놀이’라고 하였다.] 김유신은 일부러 춘추 공의 옷을 밟아 고름을 떨어뜨리게 하고 말하였다.

“우리 집에 들어가서 꿰맵시다.”

 

춘추 공은 그 말을 따랐다. 유신이 아해(阿海)에게 바느질을 하라고 하자 아해가 말하였다.

“어떻게 이런 사소한 일로 함부로 귀공자를 가까이 하겠어요?”

그러면서 아해는 한사코 못하겠다고 하였다. [고본(古本)에는 병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아지(阿之)에게 시켰다. 춘추 공은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문희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자주 유신의 집을 왕래하였다.

 

유신 공은 누이 동생이 임신을 한 것을 알고 꾸짖었다.

“네가 부모님께 아뢰지도 않고 임신을 하였으니 어찌된 일이냐?”

 

그리고는 곧 서울 안에 소문을 내기를 동생 문희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하였다. 어느 날 선덕왕(善德王)이 남산에 행차할 때를 기다려서 마당에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붙여 연기가 일어나게 하였다. 왕이 그것을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묻자,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 아뢰었다.

 

“아마도 유신이 그 누이동생을 불태우려나 봅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 누이 동생이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이것은 누구의 소행이냐?”

때마침 춘추공이 왕을 모시고 있다가 얼굴색이 크게 변하였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이것은 너의 소행이구나. 속히 가서 구하도록 하여라.”

춘추공은 명을 받고 말을 달려가 왕명을 전하고 화형을 중지시켰다. 그 후에 세상에 드러내놓고 혼례를 올렸다.

 

김문희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비인 문명왕후(文明王后)이다. 왕실 사회에 보기 드문 이 설화는 ‘서악사뇨몽(西岳捨溺夢)’이라고도 하고 ‘선류몽(旋流夢)’이라고도 한다. 즉, 높은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면 그 오줌이 장안에 가득 차게 되고, 그 꿈을 꾼 사람보다 산 사람이 국모(國母)가 된다는 설화이다.

 

고려 건국 설화 가운데 보육(寶育)이 곡령(鵠嶺)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삼한의 산천이 은해(銀海)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는 내용 역시 이 설화의 영향이다. 「문희매몽설화」가 왕권과 관계되기 때문에 심리적·신화적 측면에서 보다 깊은 검토가 요구된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명왕후 소생 아들로는 문무왕인 태자 법민(法敏), 각간(角干) 인문(仁問), 각간(角干) 문왕(文王 : 강릉 김씨의 시조), 각간(角干) 노차(老且), 각간(角干) 지경(智鏡), 각간(角干) 개원(愷元) 등이 있다. 딸은 지소공주(智炤公主, 智炤夫人 : 김유신 장군과 결혼)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지조(智照)'라 기록돼 있고, 열전 김유신전에는 ‘지소(智炤)’라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김유신 장군이 60세가 되던 해에 혼인하였다고 전해진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기록에선 훗날 보희는 이를 후회하다가 나중에 김춘추의 첩이 되어 아들 둘을 낳았다. 보희는 보희부인, 영창부인이라고 불렸고 요석공주의 어머니인데, 요석공주가 김흠운과 혼인하여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은 후일 신문왕의 왕후인 신목왕후가 된다. 그러나 김흠운과 일찍 사별하고 태종 무열왕의 소개로 요석공주는 원효와 만나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 아들인 설총을 두어 훗날 설총은 이두를 만들어 신라의 문자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된다.

 

3. 선덕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의 이야기

 

만약 선덕여왕의 명으로 문희와 결혼했다면, 아이를 낳았을 때는 632년 이후여야 할 것이다. 632년에 선덕여왕이 즉위했을 때 김춘추는 603년생으로 서른 살이다. 김춘추와 문희의 첫번째 아들인 법민(문무왕)은 626년생이다. 문희가 법민을 임신했을 때는 선덕여왕이 즉위하기 5년 전인 진평왕 때이다.

 

꿈 설화의 시기가 맞지 않다. 그 당시는 현재보다 빠른 나이에 결혼했던 관습을 고려해보면 김춘추는 이미 기혼자였을 것이다. 김춘추에게는 첫 번째 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문희와 결혼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신라 진골이 아닌 멸망한 가야 왕족 출신의 진골과 결혼한다는 것은 김춘추에게는 약점이 될 수 있어 결혼을 망설인 사유도 있었을 것이다. 김춘추의 딸인 고타소가 대야성 전투에서 남편과 함께 사망한 사실을 통해 볼 때 첫 번째 부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랑세기』는 학계에서 위작으로 의심받고 있는데, 김춘추의 첫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보라궁주 설씨(寶羅宮主 薛氏, ? ~ ?)는 『화랑세기』에서 태종무열왕의 첫 번째 정궁부인(正宮夫人)이라고 기록된 인물이다. 미실궁주의 손녀이자, 신라 16대 풍월주 보종전군(宝宗)의 딸로, 둘째 아이를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했다고 전해진다.

 

보량궁주와 혼돈되기도 하나, 보량궁주와 보라궁주는 동일인이 아닌 자매지간으로 보량궁주는 신라 30대 문무왕 10년(670년) 남편 김양도가 당나라에서 옥사하자 자결하였다 전해진다. 보라궁주는 사서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아 실존인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위키백과).

보희가 선도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서라벌에 가득찼다는 꿈 이야기를 동생 문희에게 이야기하고, 문희는 이 꿈을 사들여 나중에 태종무열왕의 왕후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설화의 현장을 1월 12일 답사하였다. 따뜻한 날씨에 땀을 흘리며 선도산을 올라가 정상에서 경주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정상에서는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성모사지 있는 곳에서 잘 보였다.

 

태종무열왕릉 앞에 꿈 설화를 만화로 스토리텔링하여 안내판을 설치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선도산에서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고분군도 잘 보였다. 올해는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로 와이뉴스 화요칼럼 독자 여러분들도 용꿈을 꾸고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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