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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김유신 장군 기도처 열박산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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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박사 화요칼럼,김유신 장군 기도처 열박산 동굴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삼국사기 기록

1) 열박산에 들어가 기원하다

삼국사기 > 열전 제1(列傳 第一 > 김유신 상(金庾信 上) > 열박산에 들어가 기원하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열박산에 들어가 기원하다 [612년 (음)]

건복 29년(612년, 진평왕 34년)에 이웃한 외적(外賊)들이 〔신라를〕 한층 더 바싹 핍박해오자, 공은 마음에 품은 장렬한 뜻이 더욱 더 강렬해져 홀로 보검(寶劒)을 들고 열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향불을 피우고 하늘에 고하여 기원(祈願)하기를 중악(中嶽)에서 맹서한 말과 같이 하였다.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천관(天官)께서 빛을 드리워 보검에 신령(神靈)을 내려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3일째 되는 밤에 허성(虛星)과 각성(角星) 두 별이 밝게 빛을 발하며 내려와 드리우니, 마치 보검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2) 열박산(咽薄山)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 산천조에 “열박산(咽薄山)은 부의 남쪽 35리에 있다. 속설에 전하기를, ‘김유신이 보검(寶劍)을 지니고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서 향(香)을 피우고 하늘에 고유(告由)하여 병법(兵法)을 기도하던 곳이다.’고 한다.”고 전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의 내와리와 상북면의 소호리 사이에 위치한 백운산을 신라 때에 열박산이라 불렀고,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감투봉에 김유신과 관련된 전설이 전하고 있다고 한다(울산문화원, 1996).

 

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에 열박재라고 부르는 고개가 있다. ‘咽薄山’에서 ‘咽’자를 ‘인’, ‘열’로 읽을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울산지역에서 부르는 명칭에 따라 ‘열’자로 읽고 있다(정구복 외, 2012, 657쪽).

〈참고문헌〉

울산문화원, 1996, 『울산의 전설과 민요』

정구복 외, 2012, 『개정 증보 국역 삼국사기 4(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3) 천관(天官)

 

별 중에 큰 별을 말한다(정구복 외, 2012, 657쪽). 『사기(史記)』 권27 천관서(天官書)를 주석한 사마정(司馬貞)은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 『천문(天文)에 보건대, 5관(五官)이 있다. 관이라 함은 별을 관리하는 관리를 말한다. 별자리에도 존비(尊卑)가 있는데, 이는 사람으로 치면, 관리의 서열에 존비가 있는 것과 같으니, 이래서 하늘을 맡은 관리라고 부른다[按天文有五官 官者星官也 星座有尊卑 若人之官曹列位 故曰天官]고 하였다.

 

이밖에 천관을 도가(道家)에서 이야기하는 삼신관(三神官), 즉 천관과 지관(地官), 수관(水官) 가운데 천관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이병도, 1977, 617쪽; 이강래, 1998, 752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2012, 『개정 증보 역주 삼국사기 4(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이병도, 1977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이강래, 1998, 『삼국사기Ⅱ』, 한길사

 

4) 허성(虛星)

 

동양의 전통적인 별자리인 28수(宿) 가운데 북방에 있는 별자리이다. 이 별은 인간의 생명과 벼슬살이의 운명을 맡았다고 생각해왔다. 여기에는 두 개의 별이 있다. 한 별은 물병자리(Aquarius)이고, 다른 한 별은 조랑말자리(Equuleus)이다(박창범, 1998,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그림 분석」, 『한국과학사학회지』 20; 정구복 외, 2012, 『개정 증보 역주 삼국사기 4(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638쪽).

 

5) 각성(角星)

 

28수(宿)의 별자리 가운데 첫째 별자리이다. 동쪽 하늘에 있는데, 오늘날 금성(金星)을 말한다. 이 별은 인간의 형벌과 군사를 맡았다고 한다(정구복 외, 2012, 『개정 증보 역주 삼국사기 4(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658쪽).

 

3일째 되는 밤에 … 내려와 드리우니: 종래에 열박산에 들어가 기도하자, 전쟁을 담당하는 별인 허성(虛星)과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인 각성(角星)의 빛이 보검에 드리웠다는 표현은 도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점에서 본 기록을 후대에 윤색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정구복, 2002, 「김유신(595~673)의 정신세계」, 『청계사학』 16·17, 598쪽 및 603쪽).

 

2. 울주군 지명지리지

 

1) 활천리(活川里)

 

본래 경주 외남면 지역으로 살근내 또는 활천이라 하였다. 경주 외남면 때는 전천(箭川)이라고도 하였다. 1906년(광무 10) 9월 울산군에 편입되고, 그 후 두서면 관할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장동(柯長洞)을 병합하여 활천리라 하였다. 현재 행정마을은 활천리 한 곳이다.

 

열박재(咽薄峴)는 활천 남쪽(가정)에서 미호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재의 본래 이름은 열박재(咽薄嶺)로서, 열리고 환하게 밝다는 열박산(咽薄山)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2) 내와리(內瓦里)

 

본래 경북 경주군 외남면 지역으로 샛골 안쪽이 되므로 아내 또는 내와라 하였는데, 옛날에 기와를 구운 곳이라 한다. 1906년(광무 10) 울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외와(外瓦), 중점(中店), 탑곡과 경주군 내남면의 고사리(古舍里) 일부를 병합하여 내와리라 하였다. 현재 내와(內瓦), 외와(外瓦) 등 2개의 행정마을이 있다.

 

3) 백운산(白雲山)

 

신라 때는 열박산(咽薄山)이라 칭했던 산높이: 907m)으로 신라 김유신(金庾信)이 삼국통일의 영기(靈氣)를 얻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김유신이 17세 때 단석산(斷石山) 석굴에 들어가서 고구려, 백제, 말갈(靺鞨)의 적을 물리치고 나아가 삼국을 통일할 힘을 하늘에 빌고 있을 때, 난승이라는 한 늙은이가 나타나서 그로부터 방술을 배웠다.

 

이듬해(612년) 다시 적침(敵侵)을 당하여 더욱 비장한 마음이 들어 혼자서 보검을 들고 열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서 향을 피우며 하늘에 빌기를 “적국이 무도하여 시랑(豺狼 : 승냥이와 이리)과 범이 되어 우리 강역(疆域)을 침요(侵擾)하여 거의 편안한 해가 없었습니다. 나는 한낱 미약한 신하로서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뜻을 화란소청(禍亂掃淸)두고 있사오니, 상천(上天 : 하느님)은 하감(下瞰 : 위에서 내려다봄)하시와 나에게 능력을 빌려주십시오.”라 하였다.

 

그랬더니 천관신(天官神)이 빛을 내리어 보검(寶劍)에 영기(靈氣)를 얻었고, 3일째 되는 밤에 허숙(虛宿)과 각숙(角宿)의 두 별이 뻗친 신령한 빛이 환하게 내려 닿으니 동요(動搖)하는 것 같다고 전하여 온다.

 

위와 같은 사실을 볼 때 열박산은 예부터 신령한 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열박이라 함은 신라의 고유한 말로서 인(咽)은 이두로 된 신라의 향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郎歌)에도 ‘인오이처미(咽嗚爾處米)’라 하여 나오는데, 열의 음차이다. 또 박(薄)은 ‘밝’의 음차로서, 신라의 박(朴)과도 같은 밝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열박산은 환하게 열리고 밝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이다.

 

열박산이 언제부터 백운산(白雲山)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열의 본뜻은 그대로 가진 산이다. 옛날에는 지금의 백운산은 물론이고 그 동편 산 일대를 모두 열박산이라 한 듯, 지금도 마리골(嵋湖)에서 살그내(활천)로 넘어가는 재를 열박재 또는 열박이라 하고 있다.

 

백운산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김유신 장군 기도처가 나온다. 기도처를 둘러보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와 북쪽으로 가면 삼강봉이 나온다. 삼강봉(三江峰 : 해발 845m) 꼭대기에 떨어진 빗방울이 지세에 따라 세 방향으로 흘러간다. 동남쪽 탑곡으로 흐른 물은 미호천과 대곡천을 거쳐 선바위를 휘돌아 태화강으로 흘러가고, 동북쪽 큰골은 경주 시내를 지나 형산강으로 흐르며, 서쪽으로 흐른 물은 소호리 동창천으로 흘러 밀양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강원도 태백시 적각동에 위치한 오십천 공원 ‘삼수령’도 분수령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방향에 따라 세 갈래로 갈라진다. 물방울의 운명은 한강을 따라 서해로,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 각각 제각각 흩어진다. 흐르는 방향이 달라지는 분수령이 된다 해서 ‘삼수령’으로 불린다고 한다.

 

또한 삼수령은 '피해 오는 고개'하는 뜻으로 ‘피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날부터 황지 지역은 도참설에 의해 이상향(理想鄕)으로 여겨져서 어수선한 시절에 삼척 지방 사람들이 이 재를 넘어 피난을 온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강봉과 삼수령의 유사점은 분수령이고, 차이점은 삼강봉은 힘들게 등산해야만 올라갈 수 있고, 태백시 삼수령은 차량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수령에는 멋있는 문양과 아름다운 모양의 정자 삼수정과 삼수령의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3. 내와리의 사연많은 길

 

1) 탑골과 탑곡 공소

 

탑골은 내와마을의 탑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탑골에는 한때 많은 절들이 있었다. 그런데 한번 홍수가 나면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절의 탑들이 무너져 마을로 내려온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내와마을은 옛날부터 도시와 거리가 먼 두메산골로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

 

오랜 세월 북으로는 괘밭, 덕천, 이조까지 걸어가서야 경주로 왕래할 수 있었고, 동으로는 활천과 봉계를 지나 울산으로 통하였으며, 서로는 소호령을 넘어야만 청도와 밀양 등지로 통할 수 있었다. 경주나 언양에 있는 시장으로 갈 때 말이나 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두메산골이다 보니 박해를 피해 내와로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고종 3년(1866) 병인박해를 일으켜 천주교를 탄압하자 경주 양남 출신 김씨 일가가 박해를 피하여 깊은 산속으로 찾아든 곳이 바로 탑골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하고 신자를 확보하여 교세를 펴왔으나 현재는 ‘탑곡공소 입구’라는 팻말만 잔존하고 있다. 내와마을은 자연석으로도 유명하며, 특히 내와 흑돌은 수석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2) 천주교 피난길, 순례길

 

내와마을은 영남알프스(YEONGNAM ALPS) 둘레길이 있다. 또한 천주교 순례길도 있다. 탑골 상류에는 태화강의 발원지가 있다. 1801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탑골에서 살기 시작했고 공소는 그 뒤 만들어졌다. 탑곡 교우촌(1839~1983. 3.)은 경주, 밀양, 의성에서 피난 온 고령 박씨, 밀양 박씨, 반남 박씨 집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였다.

 

이후 전성기에는 신자가 100명을 넘기도 하였다. 탑곡 공소는 예씨네 집안이 상선필로 옮겨가면서 상선필 공소의 발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풍 피해로 공소가 내려앉은 데다. 독가촌 강제 이주 정책으로 거의 이농하면서 현재는 공소 터만 남아 있다.

 

탑골공소 삼거리에는 많은 이정표가 달려있다. 탑골샘으로 가는 길은 신앙의 길로서 선원과 암자, 수련원 표지판이 많다. 주문모 신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강이문이 1801년 신유박해로 언양으로 귀양간 기록이 있다. 그 귀양지가 탑곡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강이문은 이곳에서 예씨 성을 가진 사람을 영세시키고, 그 예씨들이 선필로 너머가 신앙촌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3) 빨치산 활동

 

당시 아미산은 신불산 빨치산 남도부 부대 산하의 홍길동 부대가 은거지를 두고 활동하던 곳이다. 홍길동 부대는 울주군 두서면 선필마을과 전읍마을 주민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1949년 이승만 정권의 동계 대토벌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지역 야산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인민군과 결합하여 다시 무장 유격대 활동을 강화시켰다.

 

울산 지역 야산대와 무장 유격대는 남로당 경남도당 동부지구당 소속이었다가, 전쟁이 나면서 동해남부지구당으로 바뀌었고 다시 전쟁 중에 남로당 제4지구당 제3지대로 편제되었다. 이들은 상북·두동·두서의 서부 지구와, 온양·웅촌의 남부 지구, 농소·강동의 동부 지구 등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울산 지역 무장 유격대 중 가장 세력이 컸던 부대는 서부 지구에서 활동한 남도부(본명 하준수) 부대였다. 남도부 부대는 1950년 5월 24일 북한에서 출발한 300여 명의 강동정치학원 출신 유격대원 가운데 신불산까지 같이 온 130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상북면 이천리의 681고지를 근거지로 삼았는데 병력은 최대 220여 명에 이르렀다. 자체적으로 군관학교를 세워 유격 전술 훈련, 보급 투쟁 방법 등을 교육할 정도였다. 이들의 활동 구역은 신불산을 중심으로 양산과 울주 지역이었고 주로 부산, 경상남도 일대에서 후방 교란 활동을 하였다.

 

4) 말구부리길과 논중바위

 

선필마을로 가는 마당미기길은 벽운사로 가는 길이다. 처음에는 힘들지 않지만 갈수록 가팔라진다. 말구부리길 고갯마루는 백운산, 아미산 등으로 연결된다. 이 길은 눈 푸른 신부가 탑골 공소에서 선필 마을 공소로 걸어간 신앙의 길, 순례의 길이다. 또한 백성들이 걸었던 장터길이었다.

 

말이 짐을 메고 올라가다 고꾸라져서 넘어질 만큼 가파른 길이라 하여 이곳 주민은 말구부리길'로 부른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독특한 바위와 마주하게 된다. 일명 '논증바위'로 이곳 인보리, 내와리 일대의 만장들판 논에 자리 잡은 큰 바위이다. 논 한가운데에 있는 논증바위는 농부가 논농사를 짓기에 매우 거추장스럽고 얄미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선필마을은 신앙촌이었다. 기해박해를 피해 온 예씨 성들이 모여 집성촌을 이루었던 예씨골로, 간월 교우촌과 함께 언양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교우촌이다. 상선필 공소는 평범한 신앙공동체의 전형을 보여주는 초기교회 모습이다. 소박하게 마당 한 곳에 성모마리아상이 있을 뿐이다. 길과 공소 정면이 등지고 있어 공소인지 알기 어렵다. 건물 기둥은 옛 모습으로 지붕만 개량되었다.

 

5) 풍천 임씨 집안의 호식과 명당이야기

 

내와리 탑곡에는 풍천 임씨 집안의 분묘 5기가 한곳에 있다. 원래 이곳은 내와리에 사는 안동 권씨 문중에서 묘를 쓰려고 잡았던 터였다. 당시 유명한 지관은 “여기에 묘를 쓰면 후일에 큰 인재(人材)가 나오지만 당장은 하관(下棺)과 동시에 상주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된다.”라고 일러주었다.

 

그 후 경주 남산에 풍천 임씨 임인중(仁重)의 처 월성 김씨 묘를 그 자리에 쓰려고 했지만 지관의 말이 떠올라 집안에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상주가 “내가 호사(虎死)하더라도 우리 후손이 번성하면 그걸로 충분하니 내 기꺼이 묘를 쓰겠다.”라고 주장하여 하관하였다.

 

역시나 하관을 마치자마자 난데없이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상주를 순식간에 채어 갔고, 이후 상주의 거룩한 희생을 바탕으로 그의 자손들은 대대손손 번성하였다고 전한다.

 

4. 내와리 백운산 김유신 장군 기도처 답사

 

두서면 활천리 석문암 계곡 답사 다음 날인 10월 17일에 바로 백운산 답사를 하였다. 김유신 장군 기도처가 백운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다고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다. 백운산 등산을 위해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로 향하였다.

 

내와마을의 사찰인 삼백육십오일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을 시작하였다. 태화강의 발원지 백운산 탑골샘이 있는 곳을 거쳐 백운산으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김유신 장군 기도처도 답사하고 분수령인 삼강봉도 가보기로 하였다.

 

내와리 118에 위치한 탑골샘은 울산의 젖줄 태화강의 최장거리 발원지 (유로 연장 47.5km)이다. 백운산 계곡 해발 550m 지점의 절터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 물줄기는 계곡을 따라 흘러 미호저수지와 대곡천으로 흘러 태화강으로 합류된다. 가지산 쌀바위보다 길다고 한다.

 

삼백육십오일사 근처에서 탑골샘으로 가는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오른쪽으로 계곡을 끼고 완만한 경사로를 올라가면 태화강 발원지인 탑골샘이 나온다. 탑골샘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바위 너덜지대였다. 장마철이 아닌데도 바위 틈새에서 계속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탑골샘에서 백운산으로 가는 등산로에는 울주군에서 만든 이정표가 없어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등산객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을 보며 가다가 어느 순간 리본이 없어져 난감하였다. 무작정 산 능선 위로 올라가기 위하여 직선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나무가 우거져 있지 않아 올라가기는 쉬웠다. 능선에 도착해서 우측으로 올라가는 도중 희미한 등산로를 발견하였다.

 

리본도 많이 달려있어 쉽게 백운산 정산에 도달하였다. 정상에서 한숨 돌리고 김유신 장군 기도처를 향해 능선 따라서 조금 가다가 산악회 리본이 잔뜩 달려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신 밑으로 내려갔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큰 바위가 보여 이곳이 기도처라고 판단하였다. 등산 안내 표지판이 없으므로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해야 한다.

 

백운산 정상 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바위 하단부에 작은 굴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답사 목적지인 열박산 김유신 장군 기도처이다. 줄자를 이용하여 바위굴의 크기를 측정하였다. 바위굴은 가로 길이가 9m로 옆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굴의 높이는 1m 10cm로 허리를 구부려야 운신할 수 있었다. 굴의 깊이는 4m 60cm 정도 되었다.

 

기도처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어야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 양산의 천성산에 있는 원효대사의 기도처로 알려진 적멸굴, 큰바위 석굴 등도 거대한 암벽과 동굴이 있다. 또한 기도처의 환경 조건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물이 있어야 한다. 열박산 바위 동굴에도 바위 틈에서 석간수가 약간씩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김유신 장군이 화랑도였던 청년 시절 이열박산 동굴에 와 간절히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하늘의 응답을 받았던 기도처이다.

 

화랑도들은 전국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심신을 수련하였다. 강원도 강릉 경포대, 속초 영랑호, 금강산 등 동해안 쪽에도 화랑의 수련지가 있다. 답사 목적을 달성하고 이제 분수령인 삼강봉을 지나 내와리로 내려가면 된다. 기도처에서 다시 능선 위로 올라와 삼강봉으로 향했다. 능선 따라서 내리막길, 바위 길을 지나 삼강봉에 도착하였다.

 

삼강봉에서 내와마을에 있는 삼백육십오일사 절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만 하면 된다. 그런데 능선 따라 내려가는데, 등산 안내 표지판이 없었다. 우측 내와리 마을 쪽으로 내려가기 위하여 내려다 보면 나무가 울창하여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능선 끝까지 내려가니 임도가 나왔다. 기나긴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산의 바위를 파쇄하여 골재를 만드는 공장이 나왔다.

 

계속 내려가니 내와마을은 아니고 소호리 쪽이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배낭에 후레시를 가져와 다행이었다. 포장도로를 걸어서 내와리 삼백육십오일사 주차장에 7시 20분쯤 도착하였다. 포장된 임도에서 주차장까지 두 시간 반 정도 걸었다. 왼쪽 등산화가 작아서 엄지 발가락이 몹시 아팠다. 집에 와서 보니 엄지 발가락 발톱이 피멍이 들어 있었다. 김유신 장군 기도처를 답사하며 생긴 영광의 상처로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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