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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김유신 장군 수도처인 불굴사 홍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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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김유신 장군 수도처인 불굴사 홍주암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불굴사

불굴사(전통사찰 등록번호 : 가-66)는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5번지에 있다. 신라 신문왕 10년(690년)에 창건한 것으로 흥성기에는 50여 동의 와가(瓦家, 기와집), 12개의 부속암자(庵子), 8대의 물레방아를 갖추고 쌀을 찧어 부처님께 공양하고 승려와 신도들의 식량으로 사용한 한 대사찰이었다고 전해온다.

조선 영조 12년(1736년) 큰비로 인한 산사태로 대파되어 퇴락하였는데, 그 후 전라도 송광사(松廣寺)에 있던 노(老)스님이 현몽(夢)을 받아 이곳에 와서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사찰 경내에는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과 석조입불상, 부도 등이 있다. 3층 석탑은 1965년 9월 1일 보물 제429호로 지정되었고, 석조불상은 2001년 4월 30일에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01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절이 갑자기 쇠퇴한 이유를 전하는 설화가 있다. 조선시대 들어 유생들이 절을 놀이터로 삼고 승려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등 횡포를 부려 불굴사는 곤욕을 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잖은 선비가 찾아왔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유생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방도를 묻자, 선비는 산 너머 솔밭에 가면 큰 거북돌이 있을 테니 그 거북의 눈을 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일러주었다. 스님들이 선비에게 들은 대로 거북의 눈을 빼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더니 산사태가 일어나 절이 모두 묻혀버렸다. 이후 작은 암자만 복원하여 은해사의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

사찰의 역사 중, 가장 최근에 밝혀진 것으로 1948년경에 백연아 보살이 쓰러져 가는 약사전에서 공덕을 드리며 이 절을 관리했다. 보살의 외손자인 회광스님(속명 김천석)이 사찰을 이어받아 인근의 불자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나가면서 가족과 신도의 힘을 모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전해에 미얀마(당시 버마)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이운하게 되었다. 사리탑은 불기 2531년(1987년) 회광원조 대선사께서 법당 내에 모셔놓은 것을 불기 2558년(2014년 음력 7월 15일) 주지 도광덕조 스님이 현 장소의 사리탑에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2. 김유신 장군 수도처인 석굴

불굴사 오른쪽의 가파른 백팔번뇌를 소멸하는 돌계단을 올라가면 기도처로 유명한 홍주암이 있다. 홍주암은 붉은 구슬이란 의미로 태양을 뜻한다. 음의 기운이 강한 불굴사 경내에서는 양의 기운인 아침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할 수 있는 장소이다. 홍주암에서 내려다보면 전망이 좋은 명당이다. 와촌 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영천까지 잘 보인다.

 

홍주암에는 석굴이 있는데, 김유신 장군(金庾信, 595~673년)이 삼국통일을 염원하여 기도한 곳으로 전해진다. 김유신 장군이 화랑도 시절 현몽을 받고 이 석굴에 와서 기단을 쌓고 기도 4일 만에 선인(仙人)을 만나 비법을 배워 삼국통일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석굴은 불굴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원효 대사(元曉, 617~686년)가 수도한 석굴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를 원효암(일명 불굴암)이라 부른다. 이곳에 원효대사가 토담을 쌓고 수행했던 장소인데, 당시 모셨던 불상이 1970년 2월에 발견되어 현재는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석굴의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는 김유신 장군이 기도할 때 사용했던 물이며, 일명 장군수라 부른다. 원효대사도 수도시 사용했던 식수다. 이 약수는 소화불량에도 좋은 약일 뿐 아니라 근래에 와서는 신장염에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석굴은 천연적으로 법당이 되어 있고 석벽 전체가 모두 불상 및 문형으로 나타나 있다. 필자가 6월 22일에 방문하였을 때 약수가 돌 틈에서 흘러나오는데 수량이 많지 않았다.

 

삼국사기 제41권 열전 제1 김유신 상(上)에 기도 관련 다음 내용이 나온다.

 

김유신 공은 15세 때 화랑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기꺼이 따르며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렀다. 진평왕 건복 28년(서기 611) 신미, 공의 나이 17세였을 때, 고구려(高句麗)ㆍ백제(百濟)ㆍ말갈(靺鞨)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외적을 평정하려는 뜻을 품었다. 그리하여 혼자 중악(中嶽)의 석굴에 들어가서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였다.(중략)

 

4일이 지나자, 홀연히 거친 베옷을 입은 한 노인이 와서 물었다.

“여기는 독충과 맹수가 많아서 무서운 곳인데 귀한 소년이 여기에 와서 혼자 거처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르신께서는 어디서 오셨으며, 존함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나는 일정한 거처가 없이 인연 따라 가고 머무나니, 이름은 ‘난승(難勝)’이라 하노라.”(중략)

 

“그대가 어린 나이에도 삼국을 병합하려는 뜻을 품고 있으니 장하지 아니한가!”

그리고는 곧바로 비법을 주면서 말하였다.

“조심해서 함부로 전하지 말라! 만약 이를 불의한 일에 쓴다면 도리어 재앙을 받을 것이다.”

 

3. 불굴사 석조입불상(佛窟寺 石造立佛象)

 

석조입불상은 경북 문화재자료 제401호이다. 석불입상은 화강암의 바위에 받침대를 조각하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운 형태로 전체 높이 233cm, 어깨너비 75cm, 머리 높이 53cm이다. 머리에는 굵고 둥근 육계가 있으며, 머리 모양은 특별한 장식없이 민머리 형태이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얼굴 부분은 훼손이 심하여 이목구비를 다시 조각 하였다. 수인은 오른손 손바닥이 앞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분실되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으나 현재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수리되었다.

 

뒷면에도 옷주름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목 아래쪽과 머리쪽에는 큰 구멍이 있는데 이는 석제(石製) 또는 금속 제(金屬製)의 광배를 부착하기 위한 삽입공으로 추정된다. 받침대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윗단은 둥근 형태로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았고 아랫단은 네모난 형태로 각면에 안상을 새겨 놓았다. 안상문(眼象紋)은 코끼리의 눈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문양이다.

 

불굴사 석불입상은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되며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상의 모습이며 불굴사 약사불은 족두리를 한 여성상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음양설로 조성되었다 전해온다.

 

불굴사 석불 입상은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되며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상의 모습이며 불굴사 약사불은 쪽두리를 쓴 여성상의 모습을 하고 있어어머니와 같은 자비로 중생을 제도한다 하여 부부라는 설화도 있다. 지리적으로 갓바위 부처님과 불굴사부처님 중간지역 지명이 음양동(陰陽洞)인데 불굴사 쪽은 음지이며, 갓바위 쪽은 양지인 것으로 보아, 음양의 이치에 맞춰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4. 불굴사 삼층석탑(佛窟寺 三層石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보물 제429호이다. 높이는 7.43m이다. 이중기단 위에 3층 몸돌을 쌓아 올린 형식으로 지붕돌은 넓고 추녀 밑이 수평이며, 각부의 비례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하며,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상륜부(相部)는 일부가 없어졌을 뿐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만든 시기는 9세기로 추정된다. 배례석, 석등, 3층 석탑이 대웅전 격인 적멸보궁을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불굴사는 입장료, 주차료를 받지 않다.

 

김유신 장군이 화랑도 시절 기도했던 중악은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 필자는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했던 곳인 경주 단석산을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 경산의 불굴사와 홍주암을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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