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1. 구하 스님의 일생
근현대의 고승으로 호는 구하(九河), 자호는 축산(鷲山), 성은 김씨이다. 본관은 경주로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에서 출생했다. 구하 천보(九河 天輔·1872∼1965)스님의 부친은 김한술(金漢述) 선생. 본관은 경주. 모친은 신씨(申氏)였다. 법명은 천보(天輔), 법호는 구하(九河)이다. 축산(鷲山)이란 자호(自號)를 사용했는데, 통도사의 영축산(靈鷲山)을 상징한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부모에게 출가하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이때가 1884년 겨울로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였다. 13세가 되던 1884년 천성산 내원사에서 출가하여 행자생활을 시작했고, 경월도일(慶月道一)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이듬해인 1890년 예천 용문사에는 용호해주(龍湖海株)스님 문하에서 경학과 참선을 공부하고 1896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같은 해 성해남거(聖海南巨)스님의 전법제자가 되어, 구하라는 법호를 받았다. 수행을 거듭하여 1905년 통도사 옥련암에서 정진하다 오도의 경지를 맛본다.
1908년 명신학교를 비롯해 입정상업학교(지금의 부산 해동고등학교, 1932년)와 통도중학교(지금의 보광중학교, 1934년)를 설립하여 교감, 교장을 역임하면서 어려운 절 살림과 암울한 일제치하의 시대 속에서도 인재양성에 힘썼다. 또한 통도사 주지로서 1910년 한일합방 후 30본산 주지가 되었으나 사규가 점차 무너짐을 보고는 후진으로 물러나 있었다.
1911년 11월부터 1925년 8월까지 통도사 주지를 역임했고, 1917년 1월부터 3년간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을 지냈다. 불교중앙학림(지금의 동국대학교) 학장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썼다.
포교의 중요성도 강조하며 마산 포교당 정법사(1912), 진주 포교당 연화사(1923), 창녕 포교당 인왕사(1923), 물금 포교당(1924), 언양 화장사(1927), 창원 구룡사(1929), 의령 수월사(1930), 부산 연등사(1932), 울산 포교당 해남사(1936), 양산 포교당 반야사(1940) 등 많은 포교당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전법을 전하는 데 힘을 쏟았다. 또한, 역경사업에도 힘써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3곳이 힘을 모아 해동역경원(海東譯經院)을 설립하기도 했다.
2. 구하 스님의 독립운동
구하 스님은 일제강점기 한국불교를 대표했기에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스님은 1917년 이회광, 강대련 등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면서 이곳에서 일본을 칭송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1920년대 중후반 ‘조선불교총보’ 등에 친일 성향의 글을 발표해 불자들의 친일을 선동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구하 스님은 친일 행적 때문에 해방 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파 명단에 올랐다.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현문 스님을 비롯한 구하 스님의 제자들은 스승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하여 유품을 정리하다가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전달하고 받은 영수증을 발견하였다. 이런 영수증 때문에 친일파 명단에서 삭제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구하 스님은 일본의 신문물을 배우러 일본에 드나들었지만 실제로는 상해임시정부에 많은 독립운동자금을 대는 큰 자금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독립운동 행적을 감추기 위하여 겉으로 친일활동을 한 것이다. 구하 스님의 독립자금 영수증은 양산시립박물관에서 양산의 항일투쟁 특별전을 할 때 공개되어 양산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구하 스님은 나라를 잃은 상태에서 수행 정진하며, 겉으로는 친일활동을 했지만 실제로는 국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은밀하게 자금 지원을 하였다. 후세들은 현재의 가치 기준에 입각하여 선조들의 행적을 함부로 친일로 단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목숨을 유지하며, 장기적 안목에서 인재를 육성하고 불교 교단을 수호하는 것도 하나의 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구하 스님은 통도사의 재정으로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인 안창호가 보낸 밀사에게 5천 원, 경성 「화신공보」 사장 초월동조(初月東照)에게 2천 원, 지암 종욱(鍾郁)이 군자금을 모집할 때 3천 원, 독립운동가 정인섭에게 1천 원 등 모두 1만 3천 원의 독립자금 지원 영수증이 발견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구하 스님이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주지에서 쫓아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통도사가 독립운동 자금을 댄다는 소문이 나자 일본 형사들이 절의 재정 상태를 조사하였다. 구하스님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하여 사제인 경봉스님과 함께 절 밑 사하촌의 기생집에서 일부러 며칠을 머무르곤 하였다. 통도사의 자금 지출이 독립자금이 아니라 기생집에서도 발생했다는 것을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구하스님 말년에 시봉을 들었던 통도사 주지였던 현문(玄門) 스님은 “독립운동 자금을 받으러 오는 사람은 항상 걸인 행색을 하고 구하스님 방 앞에서 행패를 부리면 구하스님이 데리고 들어가 슬며시 자금을 건넸는데, 어찌나 은밀하고 눈 깜짝할 새 건네지는지 바로 옆에 있던 시자 스님들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상해에서는 그와 성월 등이 함께 대한승려연합회 대표자 12인 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항일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어린이 교육에도 힘써 마산 대자유치원, 진주 연화사 유치원, 울산 동국 유치원 등을 설립하였다.
그 외에도 1912년 11월 대한승려연합회 독립선언서 발표 동참, 백산상회 안희제와 범어사 김상호를 통해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 제공, 1920년 3월 의춘상회(의춘신탁)를 설립해 독립자금 마련, 1920년 4월 동아불교회를 설립해 항일불교운동을 시도하는 등 조국해방을 위해 힘을 쏟았다. 1949년에는 중앙불교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1965년 10월 3일 원적에 들었다. 세수 94세. 법랍 81세였다. 제자는 전 종정 월하(月下) 스님 등 30여명의 출가 제자가 있다.
문손들에 의해 구하스님의 시문과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인 『축산문집(鷲山文集)』과 『금강산관상록(金剛山觀相錄)』이 1998년에 출간되었다.
3. 금강산 가는 길
임신년(1933년) 4월 17일, 통도사를 출발하였다. 양산읍을 지나서 물금역에 도착하여 역장과 요금을 교섭하니, 역장은 단체의 경우에는 4할, 개인 왕복은 3할, 편도는 할인해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금강역까지의 요금은 11원 68전이었다.
경성역에 도착하였으나 벗들을 찾아보지 않고 곧바로 경원선 열차를 바꾸어 타고 철원역에 도착하니、「금강산전철도(金剛山電鐵道)」라는 글씨를 철로써 크게 써 놓은 표지와 금강산행 전차를 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인형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
잠시 동안 철원역을 둘러본 다음 전철을 타고 금강산 입구로 향하였다. 잠깐이면 금강산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십여 역을 정차하고도 계속 지나갔다. 전차 속에서 철원의 신개척지를 살펴보니 평원과 광야가 대단히 넓게 펼쳐져 있었다. 김화역을 지나니 해가 저물었으므로, 금성역에서 내려 홍복선의 여관에 투숙하였다.
5월 2일, 다시 전차를 타고 단발령 터널을 통과하였다. 산을 뚫고 길을 만들어 전기를 통하게 한 것이 경상남도 성현 터널보다 훨씬 뛰어났다. 또한 굴 안에 전등을 연속으로 밝혀 마치 별들이 펼쳐져 있는 듯하였다. 굴을 지나 길게 굽이진 길로 나아가는 것도 굉장하였다. 이를 두고 「돈이 있으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한 것인가?
단발령역에 도착하자 저 멀리 금강산이 보이는 듯하더니, 마침내 말휘리역을 지나 내금강역에 도착하였다。이곳은 원래 장안사 탑거리였으나 지금은 정거장이 되었다. 내금강역은 우리나라식의 단청을 찬란하게 하였으며, 온 마을은 불빛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각 여관의 안내자들은 서로 다투어 손님을 모시고자 하기에 말하였다. 『나는 운주문에 있는 여관으로 가겠노라.』
이에 유일여관의 안내자가 와서 나의 행장을 찾은 다음 자동차를 탈 것을 권하였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일본인이 경영하는 부지화여관(不知火旅館)이 있고、「금강각(金剛閣)」이라 는 공회당, 전철회사 사장인 구미민지조(久米民之助) 씨의 유골비가 있었으며、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하는 여관과 인가들도 몇 채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장안동천으로 들어서니 좌우에 명산품을 파는 상점들,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여관과 호텔, 사진조합 등이 가득하였다. 큰길 옆에는 노송나무, 측백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하였고,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은 그지없이 희고 맑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운주문
이윽고 운주문의 유일여관에 도착하여 보니, 여관 주인은 장안사에서 법무 일을 맡아 보는 배금봉(裵錦峰)의 은사인 이운허(李運虛) 스님이었다. 일찍이 서로 만난 적이 있어 반가이 환영해 주었다。행장을 방에 들여놓고 발을 씻은 다음 옷을 갈아입고 운주문을 구경하니, 그곳에는 해강 김규진(海岡 金奎鎮) 선생의 글이 있었다.
오로지 한산에 머물며 모든 일을 쉬었더니
잡된 생각 다시는 마음에 걸림이 없도다
한가로이 저 석벽에 시구들을 적으면서
매여 있지 않은 배를 마음대로 운전하네
나(구하 스님)도 한 수의 시를 지었다.
지금에야 유명한 금강산에 도착하니
금강산이 나를 위해 洞門을 열었다네
산과 산 물과 물 세상 티끌 없는 이곳
깊은 구름 푸른 숲 속에는 절이 있도다
운주문 앞을 두루 둘러보다가, 다행히 장안사에 있는 금운 화상(錦雲 和尙)을 만나게 되었다. 일찍이 서로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잠깐 대화를 나눈 다음 법의를 입고, 함께 만천교(萬川橋)를 건너 장안사로 들어갔다。주지인 현의룡(玄懿龍) 화상을 방문하여 금강산에 들어와 피서를 하게 된 까닭을 말하고、여관으로 돌아와 투숙하였다.
장안사
이튿날인 5월 3일 이른 아침에 주지 스님과 법무를 맡아보는 스님이 함께 찾아와 장안사로 갈 것을 청하였다。하룻밤의 숙박비를 지급하였으나 유일여관 주인은 기어이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장안사로 들어가니 강대련의 스승인 진허(震虛) 대선사께서 거처했던 화엄각(華嚴閣)을 숙소로 정해 주었다。더욱이 진주 청곡사(靑谷寺)의 전 주지인 최월봉(崔月峰) 화상이 네 번째 금강산 순례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었다.
5월 4일에는 편안히 휴식하고 5일에 장안사를 구경하였다. 이 절은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하여「장안(長安)」이라 하였다. 「나라의 큰 행복이 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성인의 존상을 봉안한다(永長邦家之洪祚 奉安聖人尊像).」는 뜻이다.
고구려의 석혜량(釋惠亮) 대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충혜왕 4년(1343)에 고려 출신의 여인으로 원나라 순제(順帝)의 왕후가 된 기씨(奇氏)가 중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쳤고, 근세에 또다시 퇴락하자 총독부에서 4만 원을 출자하여 대웅보전(大雄寶殿), 범왕루(梵王樓), 해광전(海光殿), 수정문(水晶門) 등을 중수하였다.
전각은 17동에 246칸이 있으며、새로 지은 집이 15칸이다。대문 옆에는 우체국과 주재소(駐在所)가 있다. 주요 전각은 다음과 같다.
水晶門(일명 萬水亭) 四聖之殿(宏卞 大師 친필), 梵王樓, 海光殿, 大雄寶殿 (高正普 친필) 篆香閣, 梵鐘閣, 神仙樓(豐恩 大監 친필), 極樂殿, 毘盧殿, 冥府殿(宏卞 大師 친필), 大香閣, 御香閣,
보물
羅漢像(십육나한 및 시자, 나옹 스님께서 친히 만든 작품), 華嶽(書幅、秋史의 예서체), 菩提達摩像 (雪翁 道人 明福의 그림), 造玉像, 香爐, 香盒 (大明 宣德 年號).
부속 암자
안양암(安養庵), 장경암(長慶庵), 중관음(中觀音), 보문암(普門庵) 영원암(靈源庵), 옥천암(玉泉庵), 지장암(地藏庵) 화엄각(華嚴閣)
장안사에서는 옛날의 선원제도(禪院制度)에 의거하여 수좌들이 좌선을 하고 있다. 공양과 예불은 대중 모두가 참여하여 한곳에서 행하지만、결혼을 하였거나 여관을 경영하는 승려는 예외로 삼고 있다. 주지 스님은 설명하였다. 「만천교(萬川橋) 바깥에 대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지만, 만천교 안에서는 선규(禪規)에 따라 행합니다.」
우리는 대중과 함께 선규를 지키며 지내게 되었다。이날 금강산을 보고 감상하는데 필요한 도구들, 밀짚모자와 지팡이, 점심, 그리고 망원경 등을 챙겨 어깨에 메고 월봉(月峰) 화상과 함께 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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