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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화요칼럼,통도사 자장율사의 계보를 이어온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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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박사,화요칼럼,통도사 자장율사의 계보를 이어온 주지 스님

 

1. 자장율사가 수행한 자장암과 금와보살

 

자장암은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가 수행하던 곳이다. 통도사를 창건하기 전에 이곳에서 기도하였다. 자장암은 명당자리인 거북 모양의 바위를 그대로 살려서 관음전을 건립하였다. 관음전 앞에는 거북의 꼬리, 바로 뒤에는 거북 머리, 바위 절벽에 금와공이 있다. 이 바위 구멍에 금와보살이 있다.

 

법당 오른쪽에는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자연 암벽을 살려 마애불을 조성하였으므로 온통 바위에 둘러싸여 있다. 바위에서 좋은 기운이 나와 기도발을 잘 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금와보살 친견을 위해 전국에서 불자와 관광객들 많이 찾고 있다.

법당인 관음전 뒤쪽에는 암벽에서 맑은 석간수(石間水)가 흘러나오고, 그 위의 석벽에는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자장율사가 수도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개구리가 물을 혼탁하게 하므로 신통력을 사용하여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고 개구리가 들어가 살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참배객들이 금와보살이라고 칭하면서 보기 위해 방문한다. 금와공 속의 개구리를 보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이로써 불심(佛心)을 헤아리기도 한다. 금와보살을 친견하면 행운이 따른다는 얘기가 회자 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금와보살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불자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지난 3월 27일 자장암을 방문하였다가 운 좋게 금와보살을 친견하였다. 자장암의 보살 한 명이 금와공 앞에서 지키며 찾아오는 불자와 관광객들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오래전에 금와보살을 친견할 때는 금와보살이 금와공 속에 깊이 들어가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금와보살이 입구 가까운 곳에 있어 잘 보였다. 금와보살을 친견한 분들은 모두가 기쁜 마음을 지니고 귀가하는 것으로 보였다.

자장암은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통도사를 짓기 이전에 이곳의 석벽 아래에서 움막을 짓고 수도하였으며 나중에 통도사를 창건하였다. 옛 이름은 자장방이라 하여 통도사 경내 칠방의 하나였으며, 자장율사의 제자들이 수행하던 곳이다.

통도사사적약록(通度寺事蹟略錄)에 나오는 통도사 칠방은 동서남북으로 구분해볼 때 동쪽은 조일방, 서쪽은 자장방, 명월방, 남쪽은 적운방, 호응방, 북쪽은 백운방, 곡성방이 있었다. 자장방은 현재의 자장암과 이름이 같아서 쉽게 알 수 있다. 북쪽의 백운방, 곡성방은 현재의 백운암, 극락암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통도사사적약록(通度寺事蹟略錄)은 한때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으로 오인되기도 하였으나, 이것은 이 책을 구성하는 첫 장의 제목이고, 이 책의 정식 명칭은 ‘통도사사적약록(通度寺事蹟略錄)’이다.

본문은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 사리영이(舍利靈異), 가사희기(袈裟稀奇), 사지사방산천비보(寺之四方山川裨補), 서천지공화상위사리가사계단법회기(西天指空和尙爲舍利袈裟戒壇法會記), 통도사창조자장행적(通度寺創祖慈藏行蹟) 등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어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래 통도사의 사적이 잘 정리되어 있다.

자장암은 연대는 미상이나 회봉(檜峰)이 중건하였고, 1870년(고종 7)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63년에 용복(龍福)이 중건하였으며, 1987년부터 1993년까지 현문화상이 감원실, 금와당, 취현루 등을 건립하였다. 자장암은 국내 사찰 중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프랑스 르몽드지 사장이 자장암의 다실에서 바라보는 영축산 경치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자장암에서 영축산 정상을 바라보는 풍광이 매우 아름다우며, 정면으로 보이는 영축산에서 이어지는 능선도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져 있다. 자장암의 아름다운 낙락장송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요즘 자장암에 벚꽃, 진달래꽃이 만발하였다. 자장암은 8월 7일까지 자장동천에 바로 이어서 문화재관리소 및 휴게소 건립공사를 하고 있다.

 

2. 영축산의 그림자가 비치는 극락암의 영지

 

통도사 극락암의 극락영지(極樂影池)와 홍교(虹橋 : 무지개다리)는 유명하다. 작은 극락영지에 영축산의 그림자가 비치기 때문에 불자들이 신기하게 여긴다. 연못인 '극락영지’는 통도 팔경 중의 하나이다. 봄이면 한그루의 벚나무가 극락영지를 장식하고, 여름이면 연꽃(요즘은 수련)으로 장엄하고, 가을이면 단풍 물든 영축산이 잠기고, 겨울이면 맑은 하늘 구름이 노닐다 간다.

 

극락영지를 가로질러 놓은 무지개다리인 홍교는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痴) 를 버리고 극락을 가는 다리로 경봉 스님이 71세 때인 1962년에 만들었다.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노여움,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삼독(三毒)이라 한다. 통도사의 구하 스님, 경봉 스님, 경하 스님이 쓴 시가 있다.

 

극락영지(極樂影池) - 구하스님

一杖徘徊數步立(일장배회수보립) 지팡이 짚고 몇 걸음 배회하다 우뚝 서니,

慤憨水國現山容(은근수국현산용) 연못 속에 은근히 산 그림자 비치네.

團團花葉承金露(단단화엽승금로) 둥근 연꽃잎은 금빛 이슬 머금었고,

秦樂法音散翠峰(진악법음산취봉) 연주하는 법음소리 푸른 봄에 흩어지네.

 

극락연지 (極樂蓮池) - 경봉스님

古庵佳景幾人逢(고암가경기인봉) 옛 암자의 멋진 풍경 몇이나 맛보았나.

碧水紅蓮鍊玉容(벽수홍련연옥용) 푸른 물에 홍련이 옥같이 피어나네.

風送香聲開錦谷(풍송향성개금곡) 바람이 향기 소리 보내 비단 골에 펼치니.

野來秋色倒金峰(야래추색도금봉) 들엔 가을빛 오고 연못엔 금빛 봉우리 잠기네.

 

극락영지 (極樂影池) -경하스님

極樂庵前池聳出(극락암전지용출) 극락암 앞의 연못에는 맑은 물이 솟는데,

虹橋橋下日遲遲(홍교교하일지지) 홍교 아래 해는 느릿느릿 넘어가네.

山橫水面魚遊 (산횡수면어유수) 산이 수면에 어리는데 물고기 한가로이 헤엄쳐 놀고.

松倒波心鳥睡枝(송도파심조수지) 소나무 넘어질듯 물결에 흔들려도 새는 가지에 앉아 잠들어 있네.

 

3. 통도사의 주지 스님 계보

 

불보사찰(佛寶寺刹)인 통도사는 천년가람으로서 자장율사, 환성지안(喚醒志安, 1664~1729), 구하, 경봉 선사 등 큰스님들이 연이어 주석하며 사격(寺格)을 높이고, 수행법을 반듯하게 해왔다. 통도사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전통이 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절, 사형(師兄)과 사제(師弟) 사이의 우애(友愛)가 남다르다.

 

근세에 성해(聖海南巨, 1854~1927) 선사는 큰 제자 넷을 두었다. 구하천보, 경봉정석, 제하법성(霽河法晟), 경하달윤(鏡河達允)이다. 그중 구한말 일제 식민지 시절의 구하(九河天輔, 1872~1965) 스님은 단신(短身)이지만 기상이 출중하고 통솔력이 뛰어났다.

 

경봉 선사는 20살 많은 사형(師兄)인 구하 스님을 속가의 맏형 섬기듯 했다. 스승인 성해 노스님은 공사(公私)를 엄격히 구분하여 어린 사미들에게 이르기를, “출가인이 성취대도(成就大道)는 못하더라도 물질로 인한 죄과(罪過)를 범하지 말라. 항상 공부하는 수좌외호(首座外護)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성해 스님은 구하 스님에게 통도사를 운영하게 하고, 경봉 스님에게 제방을 유력하며 공부에 힘쓰게 했다. 제자들은 1925년에 통도사로 돌아온 성해 스님을 안양암에서 공부에만 전념하게 해 1927년 극락암 화엄산림법회 도중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게 후원했다. 성해 스님은 1928년 1월 19일(음력 12월 27일)에 열반에 들었다.

 

이후 통도사는 구하 문도와 경봉 문도가 서로 번갈아 가며 주지 소임을 맡았다. 경하 스님과 법성 스님은 이를 보좌하는 형국이었다. 경하 스님은 통도사 성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당대 선지식 경봉, 구하, 제하 스님과 법을 나눈 사형사제지간으로 계율 수행하면서 평생을 정진과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제29대 통도사 주지를 지낸 영배(英培) 스님은 경하(鏡河) 스님의 제자로 당호가 향전이다. 어릴 때 불가와 인연을 맺은 동진(童眞) 출가자이며 1966년 사미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이사장, 불교신문 사장, 불교방송 상무 등의 소임을 두루 역임하였다.

 

현재 통도사 주지인 현문 스님은 1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시자 소임을 맡아 구하 대종사를 1년 3개월 가량 시봉하며 대종사의 노년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고 한다. 현문 스님은 “시대를 앞서간 구하 대종사의 역사 의식과 현실 인식은 지금의 한국사회와 한국불교에도 유효한 가르침”이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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