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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다방동과 차를 다루는 관청인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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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박사, 화요칼럼, 다방동과 차를 다루는 관청인 다방

1. 다방동 지명의 역사적 유래

 

조선총독부가 1914년 3월 1일 시행한 부군면 통폐합(府郡面 統廢合)은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관할 구역 변경 및 부·군의 명칭·위치·관할 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1913년 12월 29일 공포)에 의하여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13도 12부 329군 -> 13도 12부 220군)하고, 이어서 4월 1일 각 도의 영에 의하여 각 군의 면을 개편하였다.

 

동·리의 정리도 1914년 3월~4월의 부군면 통폐합과 동시에 행해졌으나, 실제로는 부군면 통폐합 전후 1912년부터 1917년 사이 광범위한 기간에 걸쳐 시행되었다. 다방동은 본래 양산군 읍내면에 속해 다방리(茶房里)라고 불렸으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동으로 승격되어 다방동(多芳洞)이라고 하였다. 1918년 읍내면이 개칭된 양산면에 속하였다.

 

다방동은 차나무가 많은 곳으로 마을 이름을 다방(茶房)이라고 하였는데, 조선총독부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 이름이 바뀌어 다방(茶房) 대신, 많을 다(多) 꽃다울 방(芳)으로 다방(多芳)이라 하였다. 향기가 많은 마을이라는 의미인데 차 향기와 연관 지을 수 있으나 본래의 차(茶)라는 의미는 소멸되었다. 총독부가 우리의 고유 문화를 말살하고 파괴하는 차원에서 마을 이름을 바꾼 것으로 유추된다.

 

1930년대부터 1940년대에 법정리(동)에 행정 마을을 만들어 분동시킴으로써 다방동에 두 개의 마을이 생기게 되었다. 1979년 5월 1일 양산면이 양산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어 양산읍이 3개 동으로 분할되었는데, 그때 다방동은 중앙동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다방마을과 금촌마을이 있으며, 주요 지명으로는 다방삼거리, 당절, 승방골, 주막거리, 칠산, 황산, 차밭골, 패총터, 신강만리 등이 있다. 지명 중 다방삼거리, 차밭골 등은 차와 관련 있는 지명이다. 지명은 쉽게 바뀌지 않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는 경향이 있어 지명을 통해 그 지역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다방동은 조선총독부가 마을 이름을 강제로 변경했지만 지명에 다방삼거리, 차밭골 같은 이름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도 야생 차나무 군락지가 있는 마을이므로 원래의 고유 지명인 다방(茶房)으로 변경하는 게 필요하다. 민족 고유의 문화와 민족 정기 회복 차원에서 지명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명을 바꾸는 게 행정 공무원 입장에서는 번거로울지 몰라도 양산시민들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2. 고려시대 차를 조달하는 관청인 다방(茶房)

양산의 다방동과 똑같은 명칭인 다방(茶房)이라는 차를 다루는 관청이 있었다. 다방은 고려시대 주요한 관청의 하나로 국가 행사를 치를 때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므로 차와 연관된 역사도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태조 17년부터 다방(茶房)이라는 관청이 등장한다.

 

왕실을 중심한 사례(四禮)와 각종 행사, 상원 연등회의(上元 燃燈會儀), 중동 팔관회의(仲冬 八關會儀) 등을 할 때 반드시 다방(茶房)이 집례(集禮)를 주관하여 다례(茶禮)를 행하거나 쌀(米), 면(麵), 차(茶), 차향(茶香), 차약(茶藥) 등을 부의(賻儀 : 상가에 부조로 보내는 돈이나 물품) 또는 하사(下賜 :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했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후손들에게 연등회와 팔관회를 성실하게 거행할 것을 당부하였다.

고려시대(936-1392)는 불교가 국교로서 팔관회와 연등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불교 행사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차 공양은 육법공양 중의 하나로 중시되었다. 국가의 중요 행사에 차가 많이 사용되고, 차를 마시는 다문화(茶文化)는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대중화되었다.

고려 때 예부(禮府)의 98종 의식 중에서 차(茶)를 내는 의식이 11번 나온다고 한다. 차 행사를 주관하는 다방(茶房)이 곳곳에 있었고 여기에서는 차뿐만 아니라 주과(酒菓 : 술과 과일)가 함께 나왔다. 왕이나 귀족, 승려, 고위 관리들만 차를 독점하지 않고 일반 백성들에게도 차를 마시는 풍습이 전파되었다.

왕실 행사에서 사용되는 차를 조달하기 위하여 다방(茶房)이란 관청이 생겼다. 차를 파는 다점(茶店), 차를 재배하는 지역인 다소(茶所), 다촌(茶村)도 생겼다. 통도사의 차 공양에 쓰이는 차는 언양쪽의 다소촌(茶所村)에서 재배했다. 다소촌은 양산과 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 차를 다루는 관청인 다방(茶房), 양산시 다방동의 조선시대 지명인 다방(茶房)은 한자어가 동일하다. 다방동에 현재도 야생 차나무 군락지가 있고, 지명에도 다방동 삼거리, 차밭골이 남아 있으므로 차와 연고가 깊은 동네이다. 조선총독부에서 강제로 개명한 다방동 한자 이름의 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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