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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산과 바위의 정기가 뭉친 아름다운 취운암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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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박사, 화요칼럼,산과 바위의 정기가 뭉친 아름다운 취운암 산신각

산과 바위의 정기가 뭉친 아름다운 취운암 산신각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취운암의 역사

 

취운암은 통도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내 암자로 보타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있다. 취운암은 효종 1년(1650) 우운대사가 처음 창건하였고, 정조 19년(1795)에 낙운대사가 중건하였다, 그 후 1969년 태일화상이 다시 중수하였다. 원래 취운암 법당 뒤쪽에는 많은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통도사 부도전으로 모두 이전되었다.

취운암의 건물로는 주 법당을 중심으로 2층 강당과 요사, 종각 등이 있으며, 법당 뒤편으로 산신각이 있다. 건물은 모두 6동 128칸에 이르는 큰 규모이다. 취운암에는 1896년 동호 진철이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기록된 통도사 취운암 지장시왕탱이 문화재 자료 제364호로 지정되었다.

통도팔경 중의 하나인 취운모종(翠雲暮鐘)은 취운암의 저녁 종소리를 말한다. 통도팔경을 기대하고 취운암의 종각을 가보면 약간 실망하게 된다. 종각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영축총림율원 건물과 통도사 보살선원 건물 사이에 있어 구경할 수는 있지만 제약을 받게 된다. 취운암 종각은 탁 트인 공간에 별도의 건물로 지은 다른 사찰의 종각과는 다르다.

 

2. 취운암 영축총림 율원

 

취운암에 영축총림 취운선원, 영축총림율원이 있다. 초대율주는 중산혜남(2007~현재), 율원장은 중산혜남(2005~2007), 2대 율원장은 우설덕문(2007~현재), 현재 강사진으로 율감은 정본스님, 강사는 무진스님이 맡고 있다.

율원은 종단 기본 교육과정을 이수한 비구, 비구니에게 율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게 하며 청정 지계의 가풍을 확립하게 하는 교육기관을 말한다. 율원 2년(석사)과정과 연구원(박사) 3년 과정으로 교육기간이 설정되어 있으며, 율장의 전문적 연구습의와 예참의 올바른 전승과 율학을 전수할 율사의 양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통도사 영축율학승가대학원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 불기 2549년(2005) 4월 29일 종단 전문교육기관인 영축율원으로 취운암에서 개원

- 불기 2551년(2007) 2월 율원 1회 졸업생 배출

- 불기 2551년(2007) 3월 연구과정 개설

- 불기 2552년(2008) 2월 2회 졸업생

- 불기 2553년(2009) 2월 3회 졸업생

- 불기 2554년(2010) 2월 연구과정 1회 졸업생, 전문과정 4회 졸업생

- 불기 2555년(2011) 2월 연구과정 2회 졸업생, 전문과정 5회 졸업생

- 불기 2555년(2011) 4월 교육원 법령에 의해 명칭이 영축율원에서 영축율학 승가대학원으로 변경.

- 불기 2563년 (2019) 2월 연구과정 10회 졸업생, 전문과정 13회 졸업생 배출

 

3. 사찰과 산신각

산신숭배 전통은 우리나라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신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의 산신신앙이 점차 불교에도 수용되어 사찰 내에 산신각(山神閣)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사찰에서 산신각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두고 산신을 모시는 것은 한국 불교만의 독특한 현상이고 우리 고유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 사람의 종교신앙적 뿌리는 산신령(山神靈) 신앙이다. 한국인의 고유 신앙은 산신령교이다. 대략 1만 년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산신령 신앙을 바탕으로 시루떡을 쌓듯이 불교가 들어왔고, 유교가 들어왔고, 기독교가 들어왔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토속신앙을 배제하지 않고 융합한 것이 산신령, 용왕, 칠성신 등이다.

사찰에는 토착신을 모신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등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불교가 인도, 중국, 한국에 있어서 각국의 토착신앙과 융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산신을 모신 산신각은 우리 나라 토착신앙과 불교가 융화된 모습을 나타내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통도사에는 터를 지키는 신을 모신 가람각(伽藍閣)이 있다. 통도사 가람각은 통도사를 수호하는 신을 모신 곳이다. ‘가람’의 의미는 ‘승가람’의 약칭으로 범어로는 ‘상가라마’의 음역으로 ‘절’을 뜻한다. 가람각은 통도사 모든 것을 수호하고 보호하는 신장을 모신 전각이다.

절의 산문 근처나 사찰 입구에서 장승이나 돌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산신각이나 사찰 입구의 장승은 한국사찰의 특징이며, 이는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융화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산신각은 불교와 상관이 없지만 웬만한 사찰에는 산신각이 있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차차 나타나기 시작한 산신각은 하근기(下根機) 사람들을 위한 방편으로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근기라는 것은 중생이 불법을 듣고 깨달아서 아는 능력을 말한다. ‘상근기’, ‘하근기’ 하는 것은 중생이 다겁생래로 겪어오면서 쌓인 번뇌와 업장의 차이를 의미한다. 부처님은 일체중생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고 하였다. 전생에 오랜기간 수행을 한 사람이면 이번 생에는 깨달음을 이루기 쉬운 상근기가 되고, 반면 전생동안 욕망, 번뇌에 이끌린 사람은 그 업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힘든 것을 하근기라 한다.

불교에서 산신의 연원을 찾아보면 『화엄경(華嚴經)』, 『지장경(地藏經)』 등 불교 경전에 호법신중(護法神衆)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다가 점차 독립적인 신앙으로 바뀐다. 이러한 산신신앙이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사찰에서 산신의례가 이루어지고 있다.

『불교상용의례집』에는 산신각에 대한 의례와 산신헌공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사찰 내에 산신신앙과 산신의례가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간에서 이어져 오던 산신신앙이 불교에 수용이 되고, 그 안에서 다시 독립신앙이 되는 과정은 의례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현재의 산신은 가람수호신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산속 생활의 평온을 비는 외호신(外護神)으로서도 받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불교 본연의 것이 아니라 하여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현재 이 산신각에서는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 기도가 많이 행하여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갖추어져 있다.

산신탱화는 크게 세 가지 형식이 있다. 도교적 탱화는 산신이 백발의 파초선을 든다. 유교적 탱화는 머리를 정좌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다. 불교적 탱화는 불경과 염주가 등장한다. 중국 도교의 칠성이 불교에 습합돼 칠성신앙이 생겨났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산신이 호법신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전국토의 7할이 넘는 산을 갖고 있는 산악지형인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산악숭배 사상이 있었다. 이러한 산신신앙은 모든 자연물에는 정령이 있고 그것에 의하여 생성이 가능하다고 믿는 원시신앙인 정령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 상고사를 보면 단군이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나온다. 단군이 ‘당골’로 변하였다고도 한다. 애국자도 죽어서 산신이 된다고 믿었다. 이 나라 국토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애착이 있는 임금, 관리, 장군이 죽으면 산신이 되었다.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 고려 최영 장군도 산신이 되었다.

단군 신화에 따르면 환인의 아들인 환웅은 지상세계로 내려와 웅녀와 혼인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은 고조선을 세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특히 단군신화를 맨 첫머리에 실은 것은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단군은 제사장을 뜻하는 터키, 몽고어의 ‘탱그리(Tengri)’와 동의어다. 안재홍에 따르면 하늘의 왕을 의미하는 몽고의 등거리, 돌궐의 탱그리, 여진어의 당걸, 당굴에서 유래한다. 우리가 ‘단군’, 즉 ‘당골래’라고 부르는 이름은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탱그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산신각은 불교 고유의 신격이 아닌 까닭에 산신각의 입지는 불전의 배후에 떨어져 산과 가까운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찰에서 산신각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에도 건물의 크기가 작은 이유는 산신 신앙의 개인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간결한 산신각의 모습을 통하여 산천 정기가 집약되고, 응축된 장소임을 강하게 나타내려는 상징적 의도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신각은 산천의 정기가 사찰 안으로 흘러 모여드는 입구이자 불교의 고유한 신앙체계가 무한한 산과 자연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출구이기도 한 다목적 통로이다.

산신기도의 전통이 깊은 산사에서는 산신 하강일로 여기는 음력 3월 16일마다 기도를 올린다. 안으로는 조왕, 밖으로는 산신을 중시하는 ‘내호조왕(內護竈王) 외호산신(外護山神)’의 전통에 따라 매달 초사흘과 그믐에 각각 산신기도와 조왕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사찰에 따라 초하루부터 사흘간 하거나, 날짜가 초엿새나 보름인 곳, 3월 삼짇날과 9월 중양절의 산신기도로 정착된 곳 등 다양하다.

 

4. 취운암 산신각

 

취운암에는 거창한 전각들이 늘어서 있다. 영축총림선원과 영축총림율원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대흥루라는 큰 전각의 중앙으로 나 있는 통로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격인 취운전이 정면에 있다. 왼쪽에는 선원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율원이 있다. 영축총림율원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오른쪽 기둥에 대웅전, 산신각이라는 프린트하여 코팅해 붙여놓은 작은 안내 표지판이 있다.

무심한 방문객은 그냥 지나칠 수 있고, 눈 밝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표지판이다. 오른쪽에는 세로로 만들어 세운 플래카드 형태의 산신각 안내문도 있다. “산신기도 영험도량 취운암 산신각 신축불사 접수 받습니다.” 산신각은 이미 지었는데, 또 무슨 신축불사 인가? 하는 의문점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아직 산신각 단청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불사가 필요한 것이다.

산신각은 취운전과 율원 사이로 들어가 왼쪽으로 가면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취운전 왼쪽으로 돌아가도 된다. 계단을 오르면서 산신각이 산 위에 보이고, 거대한 바위들이 나타난다. 이런 모습이 다른 사찰의 산신각과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기묘하게 생긴 웅장한 바위가 산신각을 떠받치고 있어 놀라움을 안겨준다.

기기묘묘한 바위 뒤로 단정하게 쌓은 축대 위에 새로 지은 산신각이 작게 보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거대한 암반 틈새에 좌정한 산신령을 먼저 친견하게 된다. 실물처럼 모형으로 만든 호랑이 등에 걸터앉은 산신령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산신령 앞에는 공양물로 바친 과일, 과자, 술 등이 놓여 있다. 산신령님께 1차로 인사하고 기도를 드린 후에 계단을 계속 올라가면 진짜 산신각이 나타난다.

구부러져 자연스런 느낌이 나는 계단을 올라 산신각 입구에 도착하면 큰 나무가 두 그루가 서있다. 산신각 문은 활짝 열려 있어 벌써 산신령의 옆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으로 그린 산신도가 아니고 조각을 한 산신도라서 입체적인 사실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신도를 살펴보면 중앙의 바위 양옆으로 폭포수가 흐르고, 오른쪽의 소나무 아래에 호랑이가 엎드려 있고, 백발 수염의 산신령은 오른손에 단장을 들고, 왼손은 호랑이 머리 위에 올려놓고 앉아 있다. 시봉하는 작은 동자승 한 명은 꿇어앉아 손에 산삼을 들고 있고, 큰 동자승은 과일이 든 바구니를 들고 있다. 동자승 옆에는 아기 사슴 두 마리가 산신령을 쳐다보고 있다.

제물은 바나나, 포도, 사과 등 각종 과일, 시주금, 공양미, 과자, 초 등이 있다. 특이한 공양물로는 오이와 당근이 놓여 있었다. 산신령이 좋아하는 공양물은 메밀묵, 미나리, 오이, 당근, 호박, 당귀 같은 생야채, 백설기, 각종 과일 등이다. 필자도 시주함에 돈을 시주하고 삼배를 하며 산신령님께 기도하였다. 기도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보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도발 잘 받는다고 한다.

일반 불자들은 스님들처럼 해탈하여 부처님이 되기는 어려우니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산신령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불자는 절을 찾아가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은 기본이고, 부차적인 기도 대상으로 재물을 주는 산신, 자식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 복락을 선사하는 독성께 직접 공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즐겨한다.

산신각 앞에 서서 취운암을 내려다보면 경치가 일품이다.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통도사 보살선원 건물도 잘 보인다. 산신각 주변에는 우람한 금강송, 각종 거목들이 도열해 있고, 거대한 바위도 있어 산신령이 있을 만한 자연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다.

취운암이 깊은 산중도 아닌 낮은 야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신령이 거주할 분위기를 지닌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불자가 산신령님께 시주금, 공양물을 정성스레 올리고 간절하게 기도하면 산신령님이 감응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전국 사찰을 많이 답사하였지만 취운암 산신각처럼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산신각은 거의 보지 못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취운암 산신각을 방문하여 기도하고 소원성취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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