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 (목)
천성산 화엄벌 억새와 철쭉꽃 동시 개화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억새의 특징
억새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자라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2m이며, 잎은 긴 선 모양이다. 7~9월에 누런 갈색 꽃이 피는데 작은 이삭은 자주색이다. 잎을 베어 지붕을 이는 데나 마소의 먹이로 쓴다. 여러 가지 변종이 있다. 억새 숲은 억새가 무성하게 우거진 곳을 숲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억새 숲은 억새 군락지로 억새가 무리 지어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이 돋보여 억새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억새 줄기는 원기둥 모양이고 마디가 있으며 약간 굵다. 잎은 길이 40~70cm의 줄 모양으로, 너비는 1~2cm이며 끝부분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며 가장자리는 까칠까칠하다. 맥은 여러 개인데, 가운데 맥은 굵고 흰색이며 기부는 긴 잎집으로 되고 긴 털이 있다. 가을에 줄기 끝에서 산방꽃차례를 이루어 작은 이삭이 빽빽이 달린다.
잎이 은근히 예리해서 억새를 꺾다가 베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에서 드물게 서식하는 여치베짱이의 주 먹이이기도 하다. 한가위 벌초할 때 성묘객을 가장 애먹이는 풀 중의 하나다. 뿌리도 억세고 굵은데 재생력도 강해서 겨울철에 약을 뿌려도 봄이 지나면 반드시 싹을 틔우는 매우 강인한 식물이다.
뿌리는 약으로 쓰고 줄기와 잎은 가축 사료, 지붕 잇는 데 쓴다. 이엉은 볏짚, 보릿짚, 풀잎, 억새, 갈대, 왕골, 창포, 삼대, 띠 등으로 엮어 만든 지붕재료 또는 그 지붕을 말한다. 볏짚의 밑부분으로 한움큼 정도의 분량을 새끼나 여러 가닥의 짚으로 엮어서 지붕면에 깔 수 있도록 가공한 것을 한줄엮기이엉이라고 한다. 지붕의 용마루에 얹혀지는 이엉은 용마름이라고 한다.
2. 억새로 덮인 태조 이성계 건원릉 봉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건원릉 봉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잔디 대신 억새가 식재돼 있어 유명하다. 아버지 이성계의 유언에 따라 셋째 아들인 태종 이방원이 고향인 함경도에서 가져온 흙으로 봉분을 만들고 함께 가져온 억새를 봉분에 심었다고 한다.
이성계는 자신이 죽으면 둘째부인 신덕왕후가 묻혀 있는 정릉에 합장하기를 원했다. 아들인 태종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무척 미워했다.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 때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방번과 방석을 죽였고, 신덕왕후는 그 일로 인해 화병으로 사망했다.
이성계는 자신이 죽으면 태종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고향인 함경도 함흥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태종은 왕조를 일군 태조를 멀리 함흥에 묻을 경우 제사를 지내기 어렵고, 아버지의 유언을 거스를 수도 없는 문제에 봉착했다. 이때 신하들이 타협점을 궁리해 냈다. 함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봉분을 덮는다는 것이었다.
잔디를 덮은 다른 왕들의 능은 1년에 5~6차례 벌초를 하지만 태조의 봉분은 매년 한식에만 한차례 벌초를 하고 있다. 잔디는 벌초해도 금방 다시 자라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성장을 계속하는 억새는 베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억새는 한자로 청완(靑薍)이라고 하는데, 건원릉의 억새를 자르는 행사를 ‘청완예초의(靑薍刈草儀)’라고 한다.
3. 억새와 갈대의 차이점
억새와 갈대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차이점이 꽤 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더욱 혼란을 부추긴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와 갈대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면 비슷하게 보인다,
우리 주변에서 갈대보다는 억새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갈대는 서식지가 강변, 호수, 바닷가 등 물이 있는 곳이고, 억새는 산과 들, 강변 둔치, 논두렁 등 육지로 서식지가 광범위하여 쉽게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는 억새를 갈대로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대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억새가 바람에 이리저리 잘 흔들린다. 억새는 집 주변의 논두렁과 들판, 동네의 야트막한 산, 해발 700m~1,000m 산악지대, 해발 천 미터 이상의 고산지대 등 곳곳에 무리 지어 하얀 꽃을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갈대는 한여름에서 가을까지 꽃을 피우지만 억새의 경우는 늦가을까지 꽃을 피운다. 그리고 갈대는 세계 온대 지역에 고루 분포하지만 억새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한정으로 서식 범위가 제한되어있다.
억새와 갈대는 자생지역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쉽다. 억새는 산이나 뭍에서 자란다. 산에 있는 것은 무조건 억새이다. 갈대는 산에서 자라지 못한다. 갈대는 습지나 물가에서 자란다.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도 있으나 산에 자라는 갈대는 없다. 억새는 은빛이나 흰색을 띤다. 가끔 얼룩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 억새는 억새아재비, 털개억새, 개억새, 가는잎억새, 얼룩억새 등 종류에 따라 색깔이 다소 다를 수 있다. 갈대는 고동색이나 갈색을 띠고 있다.
억새는 대부분 키가 1m 20cm 내외이나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사람의 키만한 억새도 있다. 갈대는 키가 2m 이상 큰다. 또 다른 점으로는 억새의 뿌리가 굵고 옆으로 퍼져나가는 데 비해 갈대는 뿌리 옆에 수염같은 잔뿌리가 많고, 억새의 열매는 익어도 반쯤 고개를 숙이지만 갈대는 벼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4. 억새 제대로 감상하기
억새는 보는 방향에 따라 아름다운 은색 물결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약간 검게 보이기도 하는 마술을 부린다. 해를 정면으로 보는 역광의 상태일 때가 은색 갈대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다. 해를 등지며 억새를 바라보면 금새 은색은 사라지고 검은 색조를 나타내며 표변한다.
또한 억새꽃을 해가 넘어가는 낙조일 때 지는 해를 마주한 채 역광으로 보면 매우 아름답다. 억새가 낙조의 붉은 빛을 머금으며 역광으로 빛나는 모습이 장관을 연출한다. 저물어가는 가을의 쓸쓸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 억새, 석양, 인생을 연관지어 관조할 수 있다면 인생을 잘 살아 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위대한 대자연 앞에서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억새는 자연발생적으로 자생하는 군락지가 대부분이다. 옛날 화전민들이 고산지대에서 산에 불을 질러 화전으로 농사짓던 곳에 나중에 억새 군락지가 형성된 곳이 많다. 천성산 화엄벌도 옛날 화전농업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억새 군락지를 인위적으로 조성하여 새로운 명소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 볏과의 다년생 식물인 외래종 핑크뮬리를 심어 관광명소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환경부에서는 핑크뮬리를 2급 유해종으로 지정하였다.
양산의 천성산 화엄벌, 울산광역시 울주군 영남알프스 일원 신불산, 간월재, 밀양시 재약산 사자평, 창녕 화왕산, 합천 황매산, 부산광역시 승학산, 홍성군과 보령시의 오서산, 정선군 민둥산, 서울특별시 하늘공원 등의 억새 군락지가 유명하다. 온산을 뒤덮은 억새의 은빛 물결을 즐기러 온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이들 산은 몸살을 앓고, 주변 도로는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는다.
5. 화엄벌 억새와 철없는 철쭉의 조화
천성산은 봄에 피는 철쭉이 아름다워 5월에 ‘천성산철쭉제’ 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화엄벌이 아니고 철쭉 군락지가 펼쳐져 있는 철쭉제단이 있는 곳이다. 미타암에서 1.1km 거리에 있으며, 화엄늪에서는 2.5km 떨어져 있다.
천성산 철쭉제단의 철쭉 군락지는 봄에 만개했을 때 축제를 열어 수많은 등산객이 방문하고, 화엄벌은 가을의 억새가 볼만하여 등산객이 몰린다. 철쭉과 억새는 봄과 가을을 대표하는 천성산의 명물인데, 피는 계절이 달라 이 둘을 한꺼번에 볼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계절을 거슬러 피는 철쭉꽃 때문에 철쭉꽃과 억새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10월 8일 천성산 화엄벌을 답사했을 때 때아닌 철쭉꽃을 볼 수 있어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억새의 흔들거림 속에서 철모르고 피는 철쭉꽃, 철없이 피는 철쭉꽃 덕분에 눈이 호사를 누렸다. 제철을 만난 듯 피어난 철쭉꽃을 보려면 드넓은 화엄벌로 올라가야 한다.
철은 일반적으로 계절을 의미한다. ‘철 지난 옷’과 같이 쓰이는 ‘철’은 ‘알맞은 시절’을 뜻하는 ‘철’로 제철과 같은 의미다. ‘제철을 만난 가을 전어’, ‘제철 맞은 망둥어 낚시’, ‘철모르고 꽃망울 터뜨린 가을 벚꽃’, ‘철모르고 핀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등이 시절과 연관된 고기잡이, 시절과 어긋나게 핀 꽃을 말할 때 철이 자주 사용된다.
‘철이 나다’, ‘아이들이 철이 너무 없다’, ‘나이 댓 살 위였으나 어려서는 그 뒤를 졸졸 쫓아다녔고 철이 들어서는 함께 모든 일을 의논했다.’와 같이 쓰이는 ‘철’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을 뜻하는 말이다.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를 뜻하는 표현으로 동사 ‘철들다, 철나다’, ‘철이 들다, 철이 나다’로 표현한다. ‘지각없이 굴던 사람이 정신을 차려 일을 잘할 만하니까 이번에는 망령이 들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를 비난조로 이르는 말’로 속담 ‘철들자 망령이다’를 써 왔다.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다.’를 뜻하는 표현으로 형용사 ‘철없다’, ‘철이 없다’를,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함부로’의 뜻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부사 ‘철없이’를 써 왔다.
천성산 화엄벌에서 양산 시가지, 하북면 통도사 입구 신평마을, 물금지역 낙동강, 부산 해운대, 광안리 등이 잘 보인다. 화엄벌에는 억새 틈 사이로 철모르고 핀 철쭉꽃뿐만 아니라 가을꽃인 구절초, 용담, 쑥부쟁이, 산국, 감국, 미역취, 산부추꽃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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