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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땅을 기부한 부자 덕분에 단합이 잘 되는 백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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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박사 화요칼럼,땅을 기부한 부자 덕분에 단합이 잘 되는 백동마을

1. 5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마을과 인물

천성산 자락에 위치한 양산시 소주동에 있는 백동마을은 5백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유서깊은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에서 천성산을 올려다보면 높은 산 바위 벼랑에 마치 제비집처럼 붙어있는 미타암이 잘 보인다. 미타암은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기도발 잘 받는 도량으로 양산시민 뿐만 아니라 부산시민, 전국 각지에서 불자들이 모여든다.


천성산의 깊은 계곡의 기암절벽을 타고 흐르는 물은 곳곳에 멋진 폭포를 만들고, 물줄기는 마을 한가운데를 흘러 혈수천을 이룬다. 원적암 상류에서 취수된 계곡 물은 마을주민들의 식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백동소류지에 모인 물은 농업용수로 이용된다.

 


백동마을은 웅상지역에서 가장 오래 된 마을 중의 하나이며, 인물도 많이 태어난 동네로 알려져 있다. 양산의 진산인 천성산의 정기를 직접 받고,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인 미타암의 기도 원력을 받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만한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마을이지만 백동마을의 지도자들은 2세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웅상에서 서당이 제일 먼저 개설된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옛날부터 웅상지역이나 울주군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백동마을에 가서 글 공부했다는 자랑을 하지 말라는 말이 회자되었다고 한다. 백동마을의 울산 박씨 문중에서 사재로 정사를 건립한 후 훈장을 두고 후세 교육에 힘썼다. 글공부를 많이 한 선비들은 과거시험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직 인재양성에만 신경을 썼다.


조선시대 숭덕전 참봉을 지낸 박상옥 초대 훈장, 초시에 급제하고도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후학을 길러낸 박수묵 훈장, 여러 문집을 발간한 박한묵과 박시현이 벼슬에 한 눈 팔지 않고 정사의 훈장으로 오로지 후진 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천년고찰 미타암이 가까이 있어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으므로 백동마을과 인연이 깊은 스님들이 많다. 성수 스님(이성수)은 해인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해인총림방장을 역임하면서 팔만대장경 보존을 위해 일제 때 옥고까지 치렀다. 태흥 스님(김태호)은 미타사 주지,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불교 방송국을 설립하였고, 캐나다로 가 사찰을 건립하고 해외 포교에도 노력하여 성과를 올렸다. 서운 스님(김건욱)은 밀양 석골사 주지를 역임하고 자은사를 창건하였다.


백동마을 출신의 정치인으로는 박봉수와 성계관은 도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박일배 시의원은 양산시 최초의 5선 시의원으로 활동하으며, 과거에는 양산시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백동마을 당산나무 바로 옆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한빛어린이집은 박일배 시의원이 설립하였다. 


박봉수 씨는 웅상지역 발전에 기여한 최대의 공로자라 할 수 있다. 박봉수 씨의 12대 조부 박지영 씨는 1500년대 초에 울산에서 웅상의 명곡으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백동마을에서 태어난 박봉수 씨는 동아대 법대 졸업, 개운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였다고 한다. 
초대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경남도의원을 역임하였다. 1991년 웅상지역의 발전에 장애 요소인 환경보존지역 해제, 수원보호구역 지정계획 취소에 공헌, 소주공업지구 개발, 웅상지역 아파트 식수문제 해결, 명동공원 조성에 기여 등의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2. 백동마을 당집과 당산나무

 

백동마을에는 440년 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나무 옆에는 당집이 있는데, 옆으로 혈수천이 흐르고 있다. 최장호 통장의 말에 의하면 혈수천이 과거에는 흐름이 달랐는데, 치수사업을 통해 현재처럼 정비되었다고 한다. 당산나무와 당집은 마을 주민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당산나무 일원은 ‘백동 어린이공원’으로 근처에 있는 백동초등학교 학생들의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를 오갈 때 등학교 길의 길목에 있어 반드시 거치는 필수 코스다. 하교할 때는 학원다니는 학생들이 학원차량이 올 때까지 잠시 쉬는 정류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물론 어린이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 어르신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마을의 당집과 당산나무가 마을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주민과 학생들의 이용도가 이렇게 높은 곳도 드물 것이다.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쌈지공원을 만들어 주민 휴식과 화합, 공동체 활동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산의 전통마을 중에서 백동마을처럼 당산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라고, 어른들의 쉼터와 운동기구를 잘 갖추고, 백동 어린이공원까지 동시에 조성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찾는 당산나무 공원은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마을의 당산제는 정월대보름날 아침 7시에 지낸다고 한다. 제관으로 박일배 시의원, 노인회장 등 마을 유지들이 참석하고 있다. 최장호 통장에게 당산제 사진을 달라고 하니 당산제 제물 준비하고 행사 진행하기 바빠서 사진 찍을 틈이 없었다고 한다. 앞으로는 소중한 행사에 사진 담당자를 지명하여 사진을 찍어야 하겠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백동제당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산시(梁山市) 웅상읍(熊上邑) 소주리(召周里) 소재(所在) 백동(栢洞)마을 줄기찬 천성산(千聖山) 아래 터를 잡아 5백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로써 선대(先代) 행적이 미상(未詳)하여 기록(記錄)치 못함이 많지만 본 마을은 원래 백씨(白氏)가 뿌리를 시작하여 해마다 마을에 수호목으로 정월대보름을 기하여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망월당산제를 지내 왔고 음력 6월(六月)에는 그해 풍년을 기원하는 풍년제를 정성을 다하여 모셔오다가 그후 어느 해(미상)부터 정월 망월제만 거행하여 왔다.
그러다가 병신(丙申, 1956년) 4월(四月) 15일(十五日)에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금으로 목조 건물로 당산신(堂山神) 제당을 건립하여 마을의 평온을 더욱 제사하였다. 세월이 흘러 제당이 붕괴 위기에 놓여서 경신(庚申, 一九八0年) 8월(八月) 10일(十日) 동민의 새로운 정신과 정성을 모아 초라하게 보르크 구조물인 제당을 개축하여 수로하여왔다. 
우리마을 조상들의 얼과 체취가 살아숨쉬고 전통적인 귀중한 문화(文化)라 생각하며 이를 잘 보존하고 가꾸어 후세에 길이 물려주어야 한다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전마을 주민이 통감하였기에 많은 마을주민과 기업체에 의존 협찬을 하여 철근 콘크리트 구조이지만 옛날 문화적 미각을 최대한 살려 병자(丙子, 一九九六年) 양(陽) 10월(十月) 11일(十一日)(陰 八月 二十九日) 十二時(12시)에 준공을 보았습니다. 오직 이 당산신(堂山神)을 높고 적조깊은 듯으로 모신다면 영구이 썩지 아니하고 긴 세상에 남은 음덕이 두터워지리라.”
백동제단비의 비문은 박정호씨가 지었다고 한다. 박정호 씨는 백동마을 새마을 지도자로 활약하면서 마을 발전에 기여하였다. 백동마을 주민들은 회야강을 건너가야 주요한 볼일을 볼 수 있었는데, 장마가 지거나 폭우가 내리면 회야강을 건너가지 못하고 고립되어 생활의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새마을 지도자인 박정호 씨가 쌀 20가마를 양산군 불우이웃돕기에 기증하며 다리를 놓아달라는 열성적인 노력을 한 덕분에 정부 지원으로 백동다리가 놓였다고 한다.

3. 백동마을 백공제단비와 박씨 할머니 불망비

현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주민들간에 단합이 잘 되고, 잘 사는 마을이 된 백동마을에는 역사적인 두 명의 인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두 인물의 공로를 각각 기리는 비석이  있다. 백공제단비(白公祭壇碑)와 박씨당(朴氏堂) 할머니 불망비(不忘碑)가 바로 주인공이다.
백동(栢洞)마을은 원래 백홈마을이라고 불렀다. 500여 년 전 이 마을에 백씨(白氏)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랫들(지금의 사평마을)에 농사를 지으려고 잣나무로 만든 수로 홈통 백 개를 이어 농업용수로 사용하였기에 백홈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일제 식민지 시절 마을의 고유한 이름이 한자화 하면서 잣나무와 연관된 백명(栢椧) 또는 백동(栢洞)으로 바뀌었다.
500여 년 전에 백홈에 살던 백씨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의 논(1,500여 평)을 마을에 기부하고 죽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 공로를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음력 9월 9일 백씨의 묘를 벌초하고 제사를 지내왔다. 일제 때 백씨가 기부한 논의 일부가 군유지로 강제 몰수되고 지금은 500여 평만 남아 있다고 한다.
원래 백씨의 묘는 모랫들(현재의 새진흥4차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묘는 없애고 제단 비만 세우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의 백공제단비(白公祭壇碑)다. 비석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하여 고심하다가 박극수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의 친절한 안내로 함께 답사하였다. 더운 날씨에 답사와 해설을 해준 박극수 본부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다.
박씨당 할머니 불망비 역시 마을주민의  안녕과 건강에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박씨당 할머니는 백동마을에 살았던 분으로 후손이 할머니의 제사가 필요 없다 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았더니 각종 재난이 발생했다. 요즘의 코로나19 팬데믹 현상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제사를 안 지내니 주민들이 병에 걸리고 농사가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겹치는 불행에 할머니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다시 제사를 지낸 뒤로는 역병이 없어지고 농사가 대풍이 들었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백공(白公)과 박씨당(朴氏堂)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최장호 백동마을 통장에 의하면 마을의 재산도 다른 마을에 비하여 많은 편이라고 한다. 경로잔치를 해도 마을 주민의 자발적인 협찬금으로 행사 비용을 충당하고 남기 때문에 협찬 강요는 없다고 한다. 마을 기금이 충분하고 마을 소유 재산으로 나오는 월세가 있어 주민 단체관광도 다닌다고 하였다. 통장의 설명을 듣고보니 조상을 잘 둔 덕분에 마을 토지, 건물도 있어 마을 재정이 탄탄함을 알 수 있었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화합이 될 것으로 보였다.
통장 9년차의 베테랑으로 인맥도 다양하고 마을을 위한 봉사정신이 투철한 최장호 통장도 애로점은 있다고 하였다. 마을 재산이 통장 명의로 되어 있어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 부담금이 높게 나온다고 하였다. 마을 재산 때문에 추가로 많이 납부하는 금액은 마을기금으로 대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주민들이 통장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기꺼이 봉사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통장의 관리하에 마을 재산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마을 회관도 3층으로 주민이 사용하지 않는 여유 공간은 세를 놓고 있었다. 마을회관 1층에는 카페 뜨락이 입주하여 손님이 많이 찾고 있었다. 3층에는 지역아동센터가 들어와 있다.
백동마을의 재산인 ‘양웅백 법인’ 건물에는 영지농산이 입주하여 양산지역에 잡곡을 납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최장호 통장은 법인 이름을 ‘양웅백’이라고 한 것은 양산, 웅상, 백동마을의 첫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영지농산을 방문하여 방문목적을 이야기하니 대표 부부가 함께 일하다가 사진도 찍으라고 허락하며 질문에 답변해주었다.
카페 주인 김정원 씨는 미타암 가는 길목에서 청화산방을 운영하다가 이곳으로 이전하였는데, 전부터 잘 아는 분이라 반가웠다. 카페 내부를 각종 공예품으로 멋지게 꾸며놓고, 소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고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김정원 대표는 각종 재주가 많아 다양한 강좌의 특강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백동마을 당산나무가 멋있다고 정보를 알려준 사람은 강동환 씨로 함께 사진 찍으러 가보니 카페 뜨락의 김정원 대표도 있어 인사를 나누고 당산나무 구경을 하였다. 두 분에게 감사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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