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천성산 화엄늪과 화전농업 연관성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화엄늪과 화전농업
환경부는 양산의 천성산 자락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화엄늪이 생태적으로 보전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여 2002년 2월 1일 자로 이 일대 12만 4천㎡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지난 1998년 정우규 박사(한국식물자원연구소장)가 발견하였다.
화엄늪의 습지보호지역 지정은 대암산용늪, 우포늪, 무제치늪 등에 이어 7번째이다. 늪이 발견된 화엄벌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천여 명의 제자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한 장소이며, 늪의 명칭인 화엄늪은 정우규 박사가 늪이 발견된 장소가 화엄벌이라 하여 그 지명을 따서 명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0년 양산시가 경남발전연구원(수석연구원 윤성윤 박사)에 의뢰해 늪 일대를 정밀조사한 결과, 화엄늪은 호소나 갯벌과는 다른 산지습지의 독특한 생태계를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높은 고도의 산지임에도 앵초, 물매화, 잠자리란, 흰제비란, 꽃창포 등 습지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발견된 235종의 식물종 중 16%에 해당하는 38종이 습지식물이었다.
습지의 천이과정을 알 수 있어서 일명 자연사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이탄층(泥炭層)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육지에서는 식물이 죽으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없어지나, 기온이 낮고 수분이 많은 습지에서는 식물이 죽은 뒤에도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짙은 갈색의 층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을 ‘이탄층’이라 한다.
손명원, 장문기 교수는 화엄늪을 인간의 화전농업 영향과 정상부에 내린 강우가 지하로 침투하여 흐르다가 절리를 따라 능선 부분에서 용출하여 형성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표토의 유기물 함량은 주 습지 주변에서 약 30~40%로 높게 나타나며, 주 습지 주변을 둘러싼 평탄지에서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다.
주 습지의 하류 구간에서 이탄층의 가장 깊은 부분의 유기물을 채위하여 탄소연대측정을 시도한 바, 화엄늪은 800여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화엄늪의 생성이 화전농업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옛날 화엄벌에서 화전민들이 숲을 불태우고 일시적으로 농사지은 것을 알 수 있다.
2. 화전의 역사적 유래
화전(火田)은 산이나 숲을 불태우고 농사를 짓는 원시적인 경작 방식으로 산림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화전은 산간지대, 고원에서 초지(草地)를 태우고 난 뒤 그 땅에 밭곡식을 심어 거의 비료를 주지 않는 방식이다.
나무를 베고 돌을 골라내어 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에 간단하게 불을 질러 화전을 만들고 나무나 풀이 타고 남은 재를 비료 대신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화전을 개척하면 그 동안에 쌓였던 부식물과 소각에 의해서 생기는 재가 풍부하므로 몇 해 동안은 작물의 생육이 양호하다. 중국의 화경(火耕)이나 일본의 야키바타(燒畑)도 이에 속한다.
우리 나라에서의 화전농업은 작물의 재배와 더불어 시작되어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구려 등 북부 여러 종족에서는 화전식 농경이 있었다고 하며, 경작도구로는 위원에서 발굴된 쇠가래가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시대 토지 제도하의 토지이용은 수전(水田), 한전(旱田), 화전(火田) 등의 분화된 농경방식이었으며, 작물은 쌀, 보리, 밀, 콩, 기장 등의 오곡이 재배되었다. 삼, 뽕나무, 닥나무 등의 섬유작물도 재배되었다.
화전이 기록상 분명하고 제도상으로 인정된 것은 고려시대이다. 고려시대의 전제(田制)는 불역전, 일역전, 재역전으로 구분된다. 일역전과 재역전의 경작방법은 근래의 화전경작 방법과 비슷하다.
조선시대에는 화전을 제도상으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과세를 매기기 위해 화전이 있는 지역을 기록한 지명록(地名錄)을 작성하기도 했으나, 화전민의 실제 파악은 어려웠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만성화된 인구의 증가, 심각한 토지의 부족으로 소작지의 차경(借耕)에서 밀려나고 있던 빈농, 땅 없는 농민들이 화전 개간에 참여하게 되면서 화전민의 파악은 더욱 어려워졌다.
1918년의 화전면적은 약 15만 3952정보였으며, 1926년에는 15만 2760정보로서 당시 겸화전민(兼火田民)의 가구수는 5만 9683호이고, 순(純)화전민은 3만 4316호였다. 1936년의 화전 총면적은 43만 7730정보로, 그 중 면적이 가장 큰 도(道)는 함경남도의 12만 5183정보이고 다음이 평안북도 12만 2257정보, 강원도 7만 6108정보, 평안남도 6만 7547정보였다.
1938년에는 44만 2044정보이며, 이 중 평안남도가 13만 2187정보로서 가장 크고, 다음은 함경남도 12만 4792정보, 강원도 7만 7460정보, 경상북도 4,477정보, 충청북도 2,247정보, 전라북도 1,036정보, 경기도 904정보, 충청남도 50정보 정도였다.
광복과 더불어 화전민은 대폭 감소하였으며 1955년 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3,088호였는데 6·25전쟁 후의 식량난으로 다시 증가하여 1961년에는 6,427호, 1965년에 1만 8380호, 1967년에 1만 7200호가 되었으나 산림녹화를 위해 1968년 ‘화전정리법’이 공포되면서 없어졌다.
3. 북한 무장공비 침투로 화전민촌 정리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자신의 토지가 없는 농민들이 일구는 화전이 전국 농가의 13%를 차지하고 있었을 정도로 많았다. 6.25 한국전쟁 중 정부의 청야작전 때문에 깊은 산골에 거주하는 화전민들을 강제로 큰 마을로 이주시켰다. 종전 후에도 지리산 뻘치산 토벌작전 때 화전민을 이주시켰다.
청야전술(淸野戰術)은 깨끗이 싹 비워버린 들판을 의미한다. 견벽청야(堅壁淸野), 청야수성(淸野守城)이라고도 불린다. 전쟁할 때 방어측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술이다. 방어군이 후퇴하기 전에 적군의 손에 들어간다면 유용하게 쓰일 만한 모든 물자를 없애 버려 적군에게 보급의 한계를 강요하는 전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당시 일부 남아있던 빨치산의 잔재나 북한 간첩, 공비들의 침투 혹은 게릴라전 전장이 될 지역인 산속에 숨어있는 화전민촌을 없애는 작업에 들어갔다. 1965년부터 화전정리사업과 산림녹화사업을 통해 화전민촌이 많던 주요 산간지역을 정리하였다.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발생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로 유명한 강원도 평창의 이승복 가족도 화전민이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인해 화전정리사업은 사실상 후방의 게릴라 침투를 막기 위한 군사작전이었다. 화전민촌을 없애 북한 무장공비의 침투를 막았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전되지 않고 농업의 비중이 큰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는 아직도 화전이 많다. 가난한 농민들 뿐만이 아니라 대규모로 농목업을 하는 농장주, 목장주들이 농장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의 밀림을 불지르는 경우가 많아 열대우림은 사라지며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국제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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