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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공부인은망부석으로변하고새가되어~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관광경영학박사'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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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박제상'공부인은망부석으로변하고새가되어~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관광경영학박사'심상도

박제상 공 부인은 망부석으로 변하고 새가 되어. . .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박사 심상도

 

1. 망부석 설화

 

 

망부석은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설화로 전국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 첫째, 아내가 죽어서 돌이 된 경우, 둘째, 아내가 자연석인 돌 앞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경우 두 가지 모두 포함된다.

 

 

대표적인 설화는 신라시대 박제상 공의 아내가 치술령에서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눌지왕 때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王弟)인 복호를 구해 온 박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왜국에 건너가 또 다른 왕제인 미사흔을 구해 신라로 보냈다.

 

 

왜국에서 붙잡혀  왜왕이 회유해도 끝까지 신라의 신하임을 내세우다 고문을 받고 죽는다.

그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되고,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주민은 부인의 정절을 칭송하고 추모하는 행사를 해왔다. 박제상의 부인은 죽어서 치(鵄)라는 새가 되고 같이 기다리다 죽은 두 딸은 술(述)이라는 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박제상 공 부인과 딸들이 치술령신모(鵄述嶺神母)가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사당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볼 때 사람이 돌로 변한다는 화석(化石) 모티프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돌’에 찬양받을 만한 기념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추모하게 된 것이다.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서 죽은 장소에 있는 돌, 또는 나중에 인공으로 기념비를 세워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대상물로 삼게 되면 후세들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곳을 방문하는 참배객들은 망부석(자연석), 기념비를 대할 때 정절을 지킨 훌륭한 부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유교에서 강조하는 삼강오륜 정신에 입각하여 충, 의, 효, 열의 덕목을 백성들의 교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왕조 국가에서 박제상 공 부인의 망부석은 그 교육 효과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인이 죽어 새가 되었다는 ‘치술령 망부석 전설’에서 새의 의미는 일본에 건너간 뒤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릴 때 차라리 새가 되어 훨훨 날아 바다를 건너가 남편을 보고 싶어하는 데 있다. 죽어서 새로 변하여 현실적인 공간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제 현생에서 부부의 만남이 살아서는 불가능하므로 죽은 뒤에 새가 되어 소원을 푸는 것이다. ‘이 몸이 새가 된다면’ 하는 살았을 적의 소원이 죽어서 실현이 된다는 의미는 죽음을 초월한 부부의 사랑을 뜻한다. 딸들도 마찬가지로 새가 되어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소원 때문에 새가 된 것이다.

치술령 아래에 금교 김씨 부인과 딸들이 새가 되어 살았다는 은을암(隱乙岩) 바위가 있으며, 이곳에 지은 암자인 은을암(隱乙庵)과 위패를 모신 당(堂)이 있다.

 

 

이들을 추모하는 기념정신은 망부석으로 남아 있고, 죽어서라도 남편과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의지에서 새로 변한 영혼이 은을암에 깃들어 있고, 주민들의 박제상 공 부인과 딸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심은 치술령 신모(神母)로 남아 있다.

 

 

치술령 정상에는 1999년 5월 치산사보존회에서 세운 신모사지(神母祀址) 비석이 있다. 치우산악회에서 1995년 1월 2일 세운 치술령 정상석은 높이가 765m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 국립지리원에서 2002년 10월에 세운 삼각점 설치에서 766m로 나타나 있다. 치술령의 정확한 높이는 해발 766m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사공원에 있는 망부석은 아내가 장사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곳을 기념한 돌이다. 『정읍사(井邑詞)』 노래와 이 노래를 이야기로 꾸민 전설이 있는데, 이것도 오랜 기념 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경북 포항시의 ‘망부산(望夫山) 솔개재전설’은 신라 말 경애왕 때 소정승(蘇政丞)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죽어 산 이름이 망부산이 되었다.

 

 

부인을 기념하는 뜻에서 사당인 망부사(望夫祠)를 짓고 같이 기다리던 개와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치술령 망부석 전설’과 유사하다. 망부석이 망부산으로 규모가 커진 것이 다르다.

 

고기를 잡으러 갔거나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아내가 떨어져 죽었다는 서해안의 ‘낙화암 전설(落花巖 傳說)’도 이 ‘망부석 설화’의 변형이다. 한 여인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후세 주민들이 이를 추모하는 ‘망부석 설화’는 유교의 삼강오륜 정신에 충실한 의식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2.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타난 박제상 공과 그의 부인 행적

 

삼국유사에는 내물왕 김제상(柰勿王 金堤上)편에 나온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제상이 신라를 떠날 때 부인이 듣고 남편의 뒤를 쫓아갔으나 따르지 못했었다. 이에 망덕사(望德寺) 문 남쪽 사장(沙場) 위에 이르러 주저앉아 길게 부르짖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하여 그 사장을 장사(長沙)라고 불렀다.

 

 

친척 두 사람이 부인을 부축하여 돌아오려 하자 부인은 다리를 뻗은 채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을 벌지지(伐知旨)라고 이름 지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오래된 뒤에 부인은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치述嶺)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를 ‘치술신모’라고 하는데, 지금도 그를 제사 지내는 사당(祠堂)이 있다.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 편에 나오는 박제상 공과 그의 부인인 금교 김씨의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상은 이에 죽기를 맹세하고 처자도 만나지 않은 채 율포로 가서 배를 타고 왜로 향하였다. 그의 아내가 이 소문을 듣고 포구로 달려가 배를 바라보면서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잘 다녀 오시오!” 제상이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내가 명을 받들고 적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대는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지 마시오.” 하고, 드디어 그 길로 곧장 왜국에 들어갔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 왜에 볼모로 잡혀간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왜로 건너 갔다가 그를 구출하고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왜의 온갖 회유와 고문을 뿌리친 그의 정신은 신라 백성을 감동시켰고 후대로 이어져 백성 교육의 표상이 되었다.

 

왜국으로 떠난 남편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금교 부인은 날마다 치술령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남편을 기다렸지만 결국 순절한 비보만 듣게 된다. 왜국으로 떠난 님을 기다리던 그 여인은 하염없이 울다 이내 돌이 되어버렸다. 애통한 마음이 죽음으로 승화한 자리엔 망부석(望夫石)이 남고 죽은 부인과 딸은 새가 되어 은을암(隱乙岩)에 자리를 잡았다.

 

3. 치술령의 망부석

 

박제상 공의 부인 금교 김씨는 남편이 떠난 율포(현재 울산시 북구 정자)와 동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치술령 아래인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친정)로 이사하였다. 이후 치술령 정상 부근(현재 망부석이 있는 자리)에서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며 참새미 물로 연명하였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참새미는 망부천(望夫泉)이라고도 한다.

 

훗날 지역 유림들이 금교 부인의 정절을 기려 봄과 가을에 향제를 지낼 때 참새미의 물을 길러 목욕하고 이 물로 밥을 지었다. 참새미의 물은 겨울철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다. 9월 4일 답사했을 때 참새미의 물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바가지는 걸려 있었지만 수량이 많지 않아 마시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박제상 공의 아내 금교 김씨 부인은 남편에 대한 짙은 그리움의 사연을 간직한 신라의 여인이다. 그녀는 망부석이 되어 처연한 모습으로 치술령 정상을 오늘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치술령 망부석은 전국의 수많은 망부석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다. 필자가 사진을 찍으면서 바위를 다각도로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여인의 옆 모습이 나타났다. 마치 박제상 공의 부인인 금교 김씨 부인의 얼굴처럼 눈, 코, 입이 뚜렷하게 보여 신기했다.

 

망부석은 정상에서 서쪽으로 400m 가량 떨어진 지점에 있다. 울산 앞바다를 볼 수 있게 전망대를 설치하였다.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망부석 바위를 올려다 볼 수 있다. 망부석에는 ‘望夫石’이라고 한자가 새겨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글자를 발견할 수 없다. 망부석 전망대에서는 두동면 만화리와 은편리 일대가 까마득히 내려다보인다.

 

망부석 좌우에는 두 돌이 더 있는데 이는 큰 딸 아기와 막내딸 아경도 어머니를 따라 죽어 화석이 되었다. 차녀 아영은 동생 문량을 양육하기 위해 죽지 않았다고 한다. 치술령 정상에는 그 옛날 박제상 부인의 넋을 기린 사당이 있었음을 알리는 신모사지(神母祠址) 표석이 세워져 있다. 화강석 기둥으로 둘러쳐진 구획 안에 오석으로 만들어진 표석이 있다.

 

박제상의 아들 문량은 누나 아영에 의해 키워졌다. 눌지왕은 아영을 동생 미사흔과 혼인시키고 변한국부인에 봉했다. 문량은 올곧게 자라서 눌지왕 다음의 임금 자비왕 때의 명신(名臣)이었다.

 

그러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자비왕에게 내침을 당했다. 문량은 벼슬을 잃은 것을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여생을 보냈다. 신라인들이 신유림(神遊林)으로 부르며 신령시한 낭산 기슭에서 살았다. 방아타령을 지은 백결 선생이 바로 박제상의 외아들 문량이다.

 

원래의 망부석 말고 경주시에서 새롭게 주장하는 망부석이 또 하나 있다. 경주의 망부석은 치술령 정상석 근처에 있는 ‘치술령망부석’ 표지판을 따라 급경사 데크 계단을 내려가면 있다. 망부석 아래는 매우 가파른 절벽이고 경주시에서 세운 안내판도 있다.

 

바위 위에서 바라보면 울산 앞바다, 경주시 외동읍 석계와 모화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경주시 향토사학자들은 울산의 원래 망부석은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아 밑으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경주 망부석은 위치가 높아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도 있다. 필자의 견해로 본다면 원래 망부석이 맞다고 판단된다.

 

경주에서 주장하는 망부석은 치술령 정상에서 좀 떨어져 있고, 정상에서 볼 때 나무가 가려서 쉽게 찾을 수 없다. 원래 망부석은 바위에 글자도 새겨져 있고, 생존에 필요한 샘물도 가까이 있어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다. 유림들이 망부석에서 추모제를 할 때도 이 샘물을 이용하였다고 하니 가까이 있는 것이 진짜 망부석이다.

 

치산서원에서 1㎞쯤 가면 하천을 끼고 갈림길이 나온다. 바로 가면 망부석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암자인 은을암(隱乙庵)으로 가게 된다.

 

망부석 쪽으로 가면 충효사라는 절이 나오고, 포장된 도로로 계속 가면 법왕사까지 갈 수 있다. 법왕사 입구에 주차하고, 절 오른쪽의 등산로를 따라가면 망부석이 있는 치술령으로 갈 수 있다. 법왕사 안으로 들어가면 사나운 개가 짖으며 달려드니 사찰 경내로 들어가지 말고 등산로로 가면 된다. 법왕사에서 40~50분 정도 정상을 향해 오르면 망부석이 나온다. 등산로는 계속 오르막으로 가파르다.

 

4. 금교 김씨 부인의 영혼이 깃든 은을암

 

부인의 몸은 돌이 되어 망부석으로 그 자리에 굳었지만 넋은 자유로워졌다. 부인의 넋은 치술조로 변해 박제상이 목숨을 잃은 곳으로 알려진 목도까지 날아가 남편의 넋을 맞아 신라로 돌아왔다고 한다.

 

어느 날 왕이 있는 마루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 구슬픈 소리로 지저귀며 ‘목도의 넋을 맞아 고국에 돌아오니 뉘라서 그것을 알리요’라는 뜻의 글자를 쪼아 놓고 날아가자 왕이 이상히 여겨 뒤쫓아 가보게 했더니 치술암 기슭의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왕은 비로소 그 새가 박제상 부인의 넋임을 알고 그 바위를 은을암이라 하고, 그 바위 위에 영신사를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 후 왕은 박제상의 딸을 미해공의 부인으로 삼고 박제상에게 대아찬으로 관위를 높여주고, 김씨부인은 국대부인에 추봉했으며 사당을 짓고 그 뜻을 기리는 제를 봉행토록 한 곳을 치산서원이라 한다.

 

부인의 영혼은 새가 돼 근처 마을에서 잠깐 쉰 뒤에 국수봉 아래 바위틈으로 날아 들어갔다. 잠시 쉰 마을이 울주군 두동면 비조(飛鳥)마을이다. 날아 들어간 바위가 범서읍 척과리 국수봉 아래의 은을암(隱乙岩)이다. 현재는 은을암(隱乙庵)이라는 조계종 소속의 암자가 있다.

 

울주군 척과리 국수봉에 있는 은을암은 절벽처럼 가파른 산비탈에 마치 제비집처럼 붙어 있다. 국수봉 꼭대기에 매달리듯 자리 잡은 위치 자체가 신비스런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절 앞까지는 승용차로 갈 수 있지만 외통길로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주차한 후 올려다보면 은을암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무거운 짐을 올리는 계단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리프트 시주자는 ㈜태화관광, ㈜태진관광, ㈜태화공항버스, ㈜현대관광이다.

 

은을암의 전각은 터가 좁아서 옆으로 늘어서 있다. 은을암 앞마당은 절벽이라 기둥을 세우고 나무 판자를 깔아서 공간을 마련하였다.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극락전이 나오고 범종루가 보인다. 범종루는 너무 가파른 절벽에 있어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극락전 오른쪽으로 가면 금교 김씨 부인과 딸들이 새가 되어 숨었다는 커다란 바위틈이 나온다. 바위틈새에서 샘물이 흘러나온다. 샘은 기다란 용으로 장식되어 있다. 울창한 숲에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스럽다.

 

박제상 공과 그의 금교 김씨 부인의 유적지인 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은을암, 망부석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면 하루에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박제상 공 유적을 잘 정비하여 볼거리가 많고, 망부석으로 가는 둘레길도 잘 조성되어 있었다. 반면 박제상 공의 탄생지인 양산시는 미흡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애초에 성역화 사업을 할 때 부지를 넓게 잡아야 하는데, 협소한 편이고, 효충사, 징심헌에도 컨텐츠가 없어 볼거리가 없다. 시급히 보완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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