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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 공을 모신 치산서원과 박제상기념관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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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박제상 공을 모신 치산서원과 박제상기념관ㅡ

박제상은 양산을 중심으로 한 삽량주의 책임자인 삽량주간(歃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는 418년 왕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하여 인질로 잡혀 있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1. 치산서원과 박제상기념관

 

박제상은 양산을 중심으로 한 삽량주의 책임자인 삽량주간(歃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는 418년 왕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하여 인질로 잡혀 있는 왕의 동생 복호를 구출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다시 왜국에 볼모로 있던 또 다른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집에 들르지도 않고 왜국으로 떠났다. 미사흔의 구출에는 성공하였으나 자신은 붙잡히고 말았다. 왜왕은 박제상을 신하로 삼기 위해 협박과 감언이설로 회유했으나 박제상은 끝내 신라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가 고문을 받아 죽었다.

 

 

박제상 공과 그의 부인인 금교 김씨, 그의 딸들의 숭고한 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울주군에 있는 치산서원과 박제상기념관이다. 사당을 짓고 그 뜻을 기리는 제를 봉행토록 한 곳을 치산서원이라 한다.

 

 

치산서원의 전신은 박제상과 그 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사당터로서 영조 21년(1745년)에 최초로 세워졌다가 그 후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이후 1993년 복원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치산서원 내에는 충렬공 박제상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충렬묘와 박제상의 부인 금교 김씨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신모사, 박제상의 장녀 아기와 삼녀 아경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쌍정려가 있다.

 

 

8월 22일 치산서원을 방문하니 보수, 정비하느라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박제상기념관은 코로나19 방역으로 폐쇄를 걱정하였으나 개방하여 체온 체크를 하고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양산에 있는 박제상 공 역사유적 공원에 있는 효충사, 징심헌은 코로나 사태로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어 울산과 대조적이었다.

 

 

지난 2008년 9월 개관한 박제상 기념관은 9,641㎡ 부지에 박제상 전시관과 울주문화관, 로비, 교육영상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치산서원 바로 옆에 있는 박제상 기념관은 박제상과 그 가족에 얽힌 이야기를 주제로 충, 의, 효, 열의 의미를 되새기는 교육 체험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단위 방문객, 학생 단체, 역사유적 답사자 등에게 인상깊은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박제상 전시관에는 박제상의 일대기와 그의 가족 이야기가 담긴 삼국유사 등 각종 고서와 박제상 순절비 등이 전시돼 있다. 박제상 공이 왕자를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는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밀랍으로 당시의 배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그 당시 박제상 공이 일본까지 배를 타고 간 항로, 한일간의 항로도 보여주고 있다. 체험 코너에서는 삼국시대 복식 블록 맞추기, 신라시대 사신 찾기, 편지쓰기 등이 마련돼 있다.

 

 

울주문화관에는 박제상이 살았던 4~5세기의 신라시대 시장 풍경을 디오라마(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한 것)로 연출하고 당시의 다양한 유물도 전시됐다. 로비에는 박제상과 부인의 부조와 언양현의 고지도 복제판 등이 벽면에 전시됐으며 교육영상실에서는 홍보영상물 상영과 예절교육, 다도교육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의 체험학습을 위한 코스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2. 박제상 축제

 

요즘 전국적으로 자기 고장의 역사 인물을 기념하는 축제가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문화축제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사업이 되고 있다.

 

 

2010년 울주군과 울주문화원이 박제상 공을 기념하기 위한 첫 문화제를 시작하였다.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치산서원 일원에서 열리는 박제상 문화제는 역사적 인물인 박제상 공, 부인, 딸들을 기리는 행사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 가치인 충과 효, 정렬의 의미를 되새기는 새로운 문화축제였다.

 

 

박제상 축제는 참가자들이 과거의 역사 인물과 만나 그들이 남긴 정신의 면면을 짚어보고 이를 가슴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는 기회가 되었다. 문화제에서 박제상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치술령까지의 역사답사길, 퀴즈대회, 민속놀이 체험 마당을 통해 과거와 오늘이 소통하는 문화의 장이 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역사인물을 문화제화 하는 의미를 살려 한시와 시조 백일장도 개최하였다.

 

 

필자는 박제상 축제에 직접 참가하여 양산과 비교하는 기회를 가진 바 있었다. 우선 축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차장도 충분하고, 치산서원과 박제상기념관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공간적으로 활용하기 좋았다. 그 당시 양산의 효충사는 주차장도 제대로 없고 효충사 사당만 겨우 있었다. 현재는 주차장을 확장하고 동상도 건립하였지만 울주군에 비해서는 컨텐츠가 매우 빈약하다.

 

 

양산의 역사적 인물로 중요한 박제상 공은 울주군에서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바람에 울주군의 인물로 오인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고향의 봄 작사가인 이원수 선생도 창원시 마산에서 선수를 쳐서 양산에서는 생가 복원도 못하고 선양사업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양산의 역사적 인물로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인 김무력 장군도 있는데, 잊혀진 인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김무력 장군의 아들인 김서현 장군은 양주도독으로 양산에서 복무하여 춘추공원에 기념비가 있다. 역사에 무관심한 양산시민과 정치인들 때문에 지역의 대표적인 인물을 이웃 도시에 넘겨주거나 선양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안타깝다.

 

3. 충신 박제상 공과 『삼강행실도』

 

삼강오륜은 유교(儒敎)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3가지의 강령(綱領)과 5가지의 인륜(人倫)을 말한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 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한다.

 

오륜은 오상(五常) 또는 오전(五典)이라고도 한다. 이는 『맹자(孟子)』에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5가지이다.

 

부자유친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道)는 친애(親愛)에 있으며,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 부부 사이에는 서로 침범치 못할 인륜(人倫)의 구별이 있으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 벗의 도리는 믿음에 있음을 뜻한다.

 

삼강오륜은 원래 중국 전한(前漢) 때의 유명한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가 공맹(孔孟)의 교리에 입각하여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을 논한 데서 유래되어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과거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되어 왔다. 현재도 일상생활에서 은연 중에 의식구조의 일단을 차지하고 있는 윤리 도덕이다.

 

『삼강행실도』는 충신, 효자, 열녀의 세 가지 도리에 대해 실제의 예를 들어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조선 최초의 도덕책이다. 1428년(세종 10년)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김화의 부친 살해사건이 유교국가인 조선에 큰 충격을 안겼다. 세종은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않고 도리에 대해 깨우치게 하기 위해 편찬을 명령하여 세종 14년에 완성되었다.

 

『삼강행실도』는 무지한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과 함께 그림을 넣어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에는 조선 뿐 아니라 고려와 삼국시대의 예까지 모아 집현전에서 편찬하게 하였다.

 

1431년(세종 13년) 집현전의 부제학이었던 설순 등에게 왕명을 내려 권부(權溥)의 『효행록(孝行錄)』에 우리나라의 옛 사실들을 첨가하여 조선과 중국의 서적에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사례를 뽑아 그 행적을 그림과 글로서 칭송하도록 하였다.

 

이 책은 조선보다는 중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기초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각각의 사실에 그림을 붙이고 이를 설명한 영가(詠歌)나 찬(贊)을 달았다. 내용은 삼강행실효자도, 삼강행실충신도, 삼강행실열녀도의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강행실효자도에는 ’순임금의 큰 효성(虞舜大孝)‘을 비롯하여 역대 효자 110명을, 충신도에는 ’용봉이 간하다 죽다(龍逢諫死)‘ 외에 112명의 충신을, 열녀도에는 ’아황, 여영이 상강에서 죽다(皇英死湘)‘ 외 94명의 열녀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효자 4명, 충신 6명, 열녀 6명이 실려있다. 한편 이 책은 1481년(성종 12년)에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하여 한글로 언해한 것이 있으며 이것은 각 편당 인원을 줄이고 있으며, 조선 전기 한글 연구로 중요한 자료이다.

 

삼강행실효자도에는 ’호랑이를 잡은 고려의 누백(누백포호)‘을 비롯하여 효자 110명, 삼강행실충신도에는 ’신라 박제상의 충렬(제상충렬)‘외 112명의 충신을, 열녀도에는 ’백제 도미와 도미부인의 절행(미처담초)‘외 94명의 열녀를 소개하고 있다. 그중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인물로는 효자 4명, 충신 6명, 열녀 6명을 싣고 있다.

 

처음에는 효행에 관한 일만으로 시작했으나 후에 충신과 열녀의 이야기까지 포함해 만들어졌으며, 보통의 딱딱한 유교 경전이 아니라 실제 예를 그림과 더불어 엮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었다.

 

『삼강행실도』라는 제목은 세종이 직접 지었으며 여러 권을 인쇄하여 각 도에 보내어 읽게 하였다. 『삼강행실도』는 책 3권 분량의 어마어마한 양이었으므로, 받은 지방에서 인쇄 비용도 많이 드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책 분량이 방대하여 전체를 읽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후대에 갈수록 점점 축소되어 성종 때에 비로소 책 1권 분량이 되었다.

 

『삼강행실도』는 중앙에서 제작하여 각 지방에 몇 부씩 나누어주면, 각 지방에서 다시 이를 번각하여 일반 백성에게 배포하였다. 때문에 같은 시기에 제작된 『삼강행실도』라도 번각의 정도에 따라 판화의 격이 달랐다. 세종판(1434년)을 시작으로, 성종판(1490년), 선조판(1579년), 영조판(1726년) 등 여러 차례 복각되어 내용은 같아도 판화에는 시대적인 양식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성종은 『삼강행실도』에 언문(한글)을 포함해 개정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삼강행실도』는 ‘효자편’, ‘충신편’, ‘열녀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장에 그에 해당하는 실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양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삼강행실도는 경남 유형문화제 제 160호로 지정되었다.

 

’효자편‘,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살해당하자 최누백은 복수를 결심하고, 호랑이를 꾸짖고 죽인다.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무덤 곁에서 3년 동안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누백의 효를 칭찬하였다.

 

’충신편‘, 신라왕이 박제상에게 일본에 볼모로 간 동생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박제상이 일왕에게 거짓으로 항복하여 신라왕의 동생은 탈출시켰으나, 박제상은 탈출에 실패하여 잡혔다. 박제상은 일왕의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맞았다.

’열녀편‘, 왜적이 마을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는데 왜적이 최씨를 잡고 칼을 내보이며 위협했다. 최씨가 "죽어서 의를 지키겠노라"며 저항하자 왜적이 그녀를 해쳤다.

 

양산에서 태어난 박제상 공을 충분히 예우하지 못하는 사이에 울주군에서 선양사업을 본격적으로 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박제상 공을 울주군의 인물로 빼앗길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양산의 박제상 역사공원의 컨텐츠를 보완하여 제대로 선양사업을 해야 하겠다.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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