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 (월)
1. 고대의 도로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잔도(棧道)는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을 매달아 놓은 듯이 만든 길을 의미한다. 일명 잔로(棧路)라고 한다. 양산의 황산잔도, 밀양의 작원잔도, 경북 문경의 관갑천잔도는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 중에서 가장 험하기로 이름났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다. 그리고 3면이 바다로 둘려 있는 데다가 산지가 많다. 한반도의 남북을 달리는 높은 산맥이 많고, 그 사이에는 큰 강들이 놓여 있어서 남북을 종단(縱斷)하는 교통로는 제대로 발달할 수가 없었다. 역사 이래 중국, 일본으로부터의 침략이 빈번하였기 때문에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 방어를 위해 도로를 개설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도로망을 정비하였다. 계립령(鷄立嶺)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신라 아달라왕 3년(서기 156년)에 개통되었는데, 죽령(竹嶺)보다 2년 빠르다고 한다. 조선 시대부터 하늘재(해발 525m)라 불렀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허가를 받아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준식)이 2017년 6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조사한 옥천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 부지 내 유적인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431번지 일원에서 7세기 신라 고대 도로가 확인되었다. 확인된 도로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 정상 부근 사면과 계곡부를 이어 조성되었다.
길이는 약 320m가 넘는다. 노면 폭은 약 5.6m에 달하고, 도로의 표면에는 수레바퀴 자국과 수레를 끌었던 짐승의 발자국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충북 보은군 삼년산성의 성문지의 돌에도 신라시대의 마차바퀴 자국이 발견되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유 중의 하나로 도로의 건설과 수송과 이동에 편리한 마차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도 들 수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옥천군 관산성 전투에서 김무력 장군이 백제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하고 대군을 물리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신라는 관산성전투에서 백제, 대가야, 왜의 연합세력에 대승을 거두었다. 신라는 승전 이후 삼국통일의 길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하였고, 반대로 백제와 대가야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관산성전투 이후 대가야는 신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백제 역시 국토가 축소되고 국력이 쇠퇴하였다.
김무력 장군이 한강 유역의 신주 군주로 있을 때 관산성 전투가 벌어져 초기에는 신라군이 백제 왕자 부여창에 패배하여 전세가 불리하였다. 진흥왕의 긴급 호출을 받은 김무력 장군은 철기병을 이끌고 신속하게 남하하여 현재 금강 유역인 대전, 옥천군 지역으로 이동하여 백제 연합군 배후를 기습 공격하여 관산성 전투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 당시 신라가 도로망을 잘 정비하고 이용하였기 때문에 대규모 군사가 신속하게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도로를 중요도에 따라 대로(大路), 중로(中路), 소로(小路)로 구분하고, 도로 폭은 대로 12보, 중로, 9보, 소로 6보로 정하였다. 그러나 지역 실정, 환경 여건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고려시대부터 전국적으로 역도(驛道)가 조성되었으며, 이러한 교통 통신망이 조선시대로 이어져 더욱 발전하였다.
2. 황산잔도, 작원잔도, 관갑천잔도는 영남대로 3대 잔도
우리나라의 옛길은 산길과 하천을 따라 생긴 굽은 길이 많았다. 산길은 산봉우리와 산봉우리를 빠져나가는 꼬부랑길이며, 하천을 따라서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므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계절에는 내왕이 끊기는 등 불편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양산군의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동래(東萊)에 이르기 11리, 서쪽으로 김해(金海)에 이르기 17리, 남쪽으로 동래(東萊) 임내(任內) 동평(東平)에 이르기 29리, 북쪽으로 언양(彦陽)에 이르기 33리이다. 호수는 4백 25호, 인구가 9백 37명이며,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15명, 진군(鎭軍)이 43명, 선군(船軍)이 1백 31명이다.
역(驛)이 3이니, 황산(黃山), 위천(渭川) [예전에는 우천(亐川)이다.], 윤산(輪山)이다. 대저도(大渚島) [군(郡) 남쪽에 있는데, 육지와의 거리가 1백 60보이다. 국농소(國農所)가 있었는데, 지금은 혁파되어, 백성들이 들어가 산다.].
영남대로에서 황산잔도는 조선시대 부산 동래와 한양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다. 조선시대 양산 물금 지역의 낙동강을 황산강이라 불렀다. 황산강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밀양으로 연결되었다. 이 구간의 다니기에 위험하고 험난한 구간에 개설된 길을 황산잔도라고 하였다. 양산시에서 황산역과 황산잔도를 아울러 복원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2027년까지로 너무 늦게 진행되고 있다. 황산잔도는 별도로 신속히 복원하였으면 좋겠다.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도 황산잔도 복원을 위해 양산시민의 서명을 받아 각계에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영남삿갓은 황산잔도의 잡풀을 제거하고 위험구간에 나무로 임시 다리를 설치하여 통행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필자는 영남삿갓 덕분에 황산잔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영남삿갓은 경파대 바위에 새겨진 글자도 모래를 제거하여 잘 보이도록 하였다. 필자는 영남삿갓과 함께 황산잔도에 꽃무릇을 심었다.
밀양시 삼랑진읍에 있는 작원잔도는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 중에서 가장 험하기로 이름났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작원 밀양부의 동쪽 41리에 있다. 원으로부터 남으로 5~6리 가면 낭떠러지를 따라 잔도가 있어 매우 위험하다. 그 한 구비는 돌을 깨고 길을 만들었으므로 내려다보면 천 길 연못으로 물빛이 짙은 푸른 빛이라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졸이고 두려운 걸음으로 지나간다고 한다. 까마득한 절벽에 걸린 외줄기 길과 그 길을 떠받친 석축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적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작원의 남쪽으로 5~6리를 가면, 낭떠러지를 따라 잔도가 있어 매우 위험한데, 그 한 굽이는 돌을 깨고 길을 만들었으므로 내려다보면 천 길의 연못인데 물빛이 푸르고,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졸이고 두려운 걸음으로 지나간다. 예전에 한 수령이 떨어져 물에 빠진 까닭에 지금까지 원추암(員墜岩)이라 한다”고 나와 있다. 『대동지지』에는 잔도위험(棧道危險)이라 써놓았을 정도로 위험한 길이었다.
관갑천잔도는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穎江)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되는 곳에서부터 산간 협곡을 S자 모양으로 돌아 흐르면서 생성된 벼랑에 난, 길이 약 3㎞ 정도의 천도(遷道: 하천변의 절벽에 건설한 길)이다. 문경시 마성면의 석현성(石峴城) 진남문(鎭南門) 아래 성벽을 따라가면 이 길이 나온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험하다. 관갑천잔도(串岬遷棧道:관갑의 사다리길)는 토끼비리라고도 한다. 이 길은 조선시대 주요 도로 중 하나였던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져 있다.
‘비리’란 강이나 바닷가의 위험한 낭떠러지를 말하는 ‘벼루’의 경상도 사투리로, 927년(고려 태조 10)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이곳에 이르러 길이 없어졌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따라가 길을 내게 되었다 하여 ‘토천(兎遷)’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토끼비리를 걸어보니 바위를 깨뜨려 길을 내거나 축대를 쌓은 구간도 있었다. 토끼비리 아래는 바로 절벽 아래 영강으로 굴러떨어지면 죽을 정도로 위험한 길이다.
3. 작원잔도 답사
필자는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과 작원잔도 답사에 나섰다. 영남삿갓은 자전거를 타고 삼랑진읍이나 밀양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서 작원잔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자전거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며 낙동강, 경부선철도를 구경하며 걸어갔다. 주중이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데, 영남삿갓에 의하면 주말이면 많은 자전거 동호인들이 몰려나온다고 한다.
작원잔도는 바로 양산시와 밀양시의 경계면에 있었다. 양산시 구간에도 잔도가 일부 연결되어 있었다. 돌로 축대를 쌓거나 세로로 기둥을 세워서 위로 돌을 놓아서 길을 만들었다.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작원잔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극히 일부 이용자만 안내판을 읽어보거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영남삿갓은 통찰력이 뛰어나 새로운 발견을 잘한다. 작원잔도에서도 바위 벼랑에 난 커다란 구멍을 보고 설명을 해주었다. 이 구멍에 기둥을 박아서 길을 내었다고 하였다. 필자가 자세히 보니 풀이 나있 고 흙이 덮인 곳이 있어서 풀을 뽑으니 역시 도로 기둥 구멍이었다. 바위를 깨거나 돌 축대로 선반 모양의 길을 내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길이었다. 길에서 실수로 발을 헛디디거나 미끄러지면 바로 깊은 낙동강 물속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었다. 옛날 사또가 지나가다가 추락하여 죽었다는 말이 실감났다.
작원잔도에서 눈여겨볼 것은 경부선 철도였다. 영남삿갓이 알려준 경부선 터널 외부 절벽의 축대를 보니 실로 놀라웠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큰 절벽에 낙석방지를 위해 돌을 붙여놓았다. 요즘 현대적 고층건물의 외벽에 붙인 타일이 떨어져 자주 문제가 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만든 터널, 다리, 낙석방지 시설물이 100년이 넘어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일본의 토목기술과 성실 시공은 오늘날에도 되새겨 볼 만하다.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부실시공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작원잔도는 양산과 삼랑진읍의 작원관에서 접근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양산에서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삼랑진읍 작원관 쪽에서 가는 것 보다는 약간 멀다. 그러나 양산에서 삼랑진읍에 있는 작원관을 가기 위해서는 천태산으로 나 있는 1022번 지방도의 험한 길을 가야만 한다. 양산에서 작원관까지 함한 길을 왕복하는 바에는 양산 쪽의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낫다.
황산잔도를 하루빨리 복원하여 조선시대 옛길을 양산시민들이 걸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경의 토끼비리는 명승 31호로 지정되어 있어 많은 답사객이 방문하고 있다. 황산잔도는 일제강점기 때 철도부설로 많이 파괴되었지만 경파대, 정현덕 동래부사 영세불망비, 배를 끌던 바위 위의 고딧줄 흔적, 사람들이 밟아서 반들반들해진 바위 등이 일부 남아 있어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황산잔도를 복원하여 양산의 명물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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