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1. 장승의 의미
양산시청 쪽으로 가는 남부사거리의 화단에 양산의 도로원표가 있다. 양산으로부터 부산, 서울 등지로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옛날에 이러한 의미의 도로원표 구실을 한 것이 장승이라 할 수 있다. 장승은 통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을 가리키는 신목(神木)이다.
마을의 수문신이나 수호신 역할을 한다. 또는 사찰이나 지역간의 경계표, 이정표(里程標) 등의 구실을 하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다른 명칭으로 장생(長栍), 후(堠), 장생우(長栍偶), 장선주(長先柱), 장선(長先, 長仙)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필자가 가본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옥계마을에는 전통적인 나무 장승, 현대적인 이정표가 공존하고 있었다. DMZ 접경지역 4개 시군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 걷는 길인 ‘평화누리길’이 옥계마을을 경유하고 있었다.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옥계3리는 마을의 문화복지회관을 ‘평화누리길’ 도보여행자를 위해 게스트 하우스로 제공하고 있었다. 도로변에 있는 연천군에서 세운 평화누리길 이정표는 서울 64km, 신의주 313km, 두만강(선봉군) 550km, 강릉 166km, 한라산 530km 등으로 적혀 있었다,
신라, 고려시대에는 장생(長生), 장생표주(長生標柱), 목방장생표(木傍長生標), 석적장생표(石蹟長生標), 석비장생표(石碑長生標), 국장생(國長生), 황장생(皇長生)이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장승의 기원은 고대의 남근숭배(男根崇拜)에서 유래설, 사찰의 토지 경계 표시에서 나온 것이라는 장생고표지설(長生庫標識說), 솟대, 선돌, 서낭당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고유민속 기원설, 비교 민속기원설 등이 있다.
국장생 석표는 절 땅의 구역을 표시하는 경계표의 구실을 하였으며,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을 받아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막는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는 절의 경계 안에서는 생명 있는 동물의 사냥, 사람 죽이는 일을 금지했다. 석장생 석표는 단순한 절 경계 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울러 신성한 지역으로 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승의 시원으로 알려진 장생표주가 보물로 지정된 것은 양산시의 통도사 국장생 석표(보물 제74호)가 유일하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것으로는 통영시 문화동 벅수(제7호), 통영시 삼덕리 부락제당 벅수(제9호), 나주시 불회사 석장승(제11호),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지의 석장승(제12호), 실상사 석장승(제15호)이 있다.
그리고 부안군 서문안 당산(제18호), 부안군 동문안 당산(제19호)의 장승, 남원시 서천리 당산(제20호)의 석장승, 영암군 도갑사 석장생(제21호), 순창군 충신리 석장승(제101호), 순창군 남계리 석장승(제 102호) 등이 있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산114-4번지에 있는 죽정 국장생(지방민속자료 제18호)은 장방형의 자연 석재를 거칠게 다듬어 사용한 ‘사각 석비형’의 입장생이다. 군서면 구림리에서 도갑사 쪽으로 1km 쯤 되는 곳의 굽은 길 북쪽 숲속에 위치한다. 현재 장생의 위치는 도갑사의 옛길로 전하고 있어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위해 세워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중앙에는 해서체로 ‘國長生’이 음각되어 있다. 세로로 새겨진 이 국장생의 국자 크기는 26×27cm이다. 그리고 우측에는 대안6년(大安六年), 땅에 묻힌 하부에는 석표4좌(石標四坐)가 음각되어 있다.
이 국장생은 『동국여지승람』(1486년), 이중환의 『택리지』(1753년)에도 나온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번지에 있는 소전머리 황장생(지방민속자료 19호)은 동구림리의 영암, 목포, 도갑사가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도갑사 방향 오른쪽 400~500m 거리 소전머리 대나무 밭에 위치하고 있다.
뒷면 모서리가 약간 떨어져 나가, 사각 석비형 입장생인 이 황장생은 높이가 1.2m,로 전면에 ‘황장생(皇長生)’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황장생(皇長生)의 접두사인 ‘皇’은 임금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라 고려시대에 왕명, 국명으로 세워지던 격이 높은 장생에 붙던 접두사이다. 이는 도갑사와 관련되는 도선국사가 신라 말기, 고려 초의 양 시대에 걸쳐서 역대 임금에게 생전, 사후에 지극한 존대를 받았음을 생각할 때 가능한 일로 추론되고 있다.
2. 넓은 농토 한가운데 세워진 울주 상천리 통도사 국장생 석표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읍 상천리 산37-15에 있는 국장생 석표는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제 제2호로 지정되었다. 이 돌 비석은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장생(長生 혹은 長栍)으로 장승이라고도 한다. 국장생이라고 한 것은 국가의 명으로 세워진 장생이라는 뜻이다.
통도사에서는 1085년(고려 선종 2년)에 석표 12개를 세웠으며, 현재까지 울주군 삼남읍 상천리와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국장생 석표 2기가 남아 있다.
상천리의 국장생 석표는 기다란 자연석의 앞면을 깎아 글을 새겼는데, 윗부분은 잘려나가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다. 앞에 새겨진 글은 이두문으로 1085년(을축년) 5월에 상소한 대로 석표를 세우라는 나라의 명에 따라 그해 12월에 세웠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백록리와 상천리의 석표의 내용은 유사하다.
필자는 2020년 9월 3일에 상천리 통도사 국장생 석표를 답사하였는데, 그 당시 안내판은 글자가 대부분 지워져 있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올해 2월 2일에 다시 방문해보니 안내판을 새롭게 설치하여 글자가 잘 보였다.
국장생 석표 뒤는 아담한 언덕이 있고, 몇 기의 묘가 보인다. 바로 옆에는 울타리를 경계로 ‘울산돼지인공수정센터’가 있다. 국장생 석표로 들어갈 때는 센터의 진입로 옆의 왼쪽 밭 가장자리로 들어가면 된다. 별도의 주차장은 없지만 도로변 갓길에 여유 공간이 조금 있어 바짝 붙여 놓으면 다른 차의 양방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석장생 석표의 경계선은 많은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정면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무너져 돌은 흩어져 있다. 천 년 전에 세운 석표답게 돌의 색깔은 고색창연하여 오래된 티가 났다. 울주군에서 세운 낮은 문화재 보호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다.
석표 주변은 밭으로 넓은 평야지대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밭으로 전용하는 농토도 있고, 밭작물, 벼농사를 번갈아 하는 논도 있다. 석표와 도로변 사이의 농토는 지난 가을 옥수수를 심었다가 가을에 목초를 심었다. 석표 반대쪽의 도로 건너편에는 보리밭이 보였다.
석표에서 멀리 영축산 정상의 봉우리가 잘 보인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근처에 있는 농사용 저수지가 많았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 밭고개지가 있으며, 약간 떨어진 곳에 상천지는 두 곳, 원종장지, 아주 큰 심천지, 새삼곡지, 사촌지가 있고, 삼동낚시터도 있다.
근거리에 마을 집, 상천마을회관, 상천노인회관, 몇 개의 공장이 있었다. 석장생 석표 반대쪽 도로변에서 멀리 눈에 잘 보이는 ‘재남농장’이 있다. 2007년 1월 오우회가 세운 재남농장의 돌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 친구의 꿈이 펼쳐진 곳 축산부국의 보금자리 다섯 친구 오우회가 대남농장 이름 돌을 세우니 그것은 또한 오우회의 변함없는 우정을 새김이라’. 만 14년이 경과하고 그동안 축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었지만 오우회 농장은 아직 건재한 것으로 짐작된다.
상천리 석장생 석표가 처음 세워졌던 천 년 전이나 현재의 주변 모습은 물론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대부분이 농토라는 점은 여전하다. 통도사 산문에서 이곳 울주 상천리 통도사 석장생 석표가 세워진 곳까지 모조리 통도사 소유였던 것은 아니다.
통도사 사원전이 많았던 상천리의 중심에 석장생 석표가 세워졌을 수도 있다.
3. 울주 상천리 통도사 국장생 석표의 소개 글에서 나타난 오류
인터넷, 블로그의 여러 가지 글을 보니 통도사에서 하북면 백록리 통도사 국장생 석표까지의 거리가 4km, 2km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나와 있었다.
필자는 확실한 거리를 직접 측정해보기로 했다. 백록리에서 통도사 산문까지 차량 네비게이션으로 운전하며 측정해보니 2.5km였다. 물론 네비게이션은 복잡한 하북면 순지리 시가지를 통과하도록 안내하였다.
필자는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르지 않고 최단거리이며 편한 길인 35번 국도를 거쳐 하북교 다리에서 ‘착한고기식당’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양산천 강변길을 따라 산문으로 가는 코스로 재보니 2.5km였다.
성보박물관 앞 주차장까지는 4km였다. 백록리 석장생 석표에서 상천리 통도사 석장생 석표까지 네비게이션 안내 거리는 7.1km였다. 통도사 산문에서 상천리 통도사 석장생 석표까지는 5.6km였다. 통도사와 석장생 석표까지의 상호간 거리를 측정해서 글로 쓰는 것은 필자가 최초다.
옛날의 전통 농업시대 부자들은 농토를 많이 가진 땅부자들이었다. 그래서 부자들을 지칭하기를 집에서 다른 곳으로 출타할 때 자신의 땅만 밟고 간다는 말로 광대한 땅을 약간 과장하여 표현하였다.
300년간 부자를 지속한 경주 최부자도 역시 넓은 경주를 돌아다닐 때 자신의 땅만 밟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농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고려시대 통도사 스님들도 통도사에서 언양, 양산 방면의 상북면 쪽으로 탁발하러 다닐 때 통도사 땅만 밟고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도 통도사는 영축산 자락의 수백만 평의 너른 땅을 보유하고 있다. 통도사 말사인 내원사 역시 천성산의 대부분인 수백만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통도사 석장생 석표가 사천포천산에 2기를 세웠다는 고려시대 기록의 신빙성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포천산은 천성산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가 전에 친견한 내원사 주지 스님은 내원사 땅이 통도사보다 넓다고 말씀하였다.
필자가 사진에서 소개한 석비 앞의 하얀 둥근 물체는 곤포 사일리지라고 부른다. 사료작물을 곤포에 진공 저장 후 발효시킨 것이다. 곤포 사일리지는 1970년대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며 사일로(silo)가 없는 농가에서 사료 저장방법으로 이용되었다.
한국에서는 2003년부터 등장한 작물 포장법으로 주로 사료작물을 재배하여 봄철에 수확하여 제조하거나 가을에 추수 후 볏짚을 말아서 만든다. 곤포 사일리지 제조에 적합한 작물은 보리, 목초, 생 볏짚 등으로 소먹이로 쓰인다.
역사 유적지를 답사할 때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 볼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와 배경, 현재와의 연관성을 연결하여 그 의미를 파악해보면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알 수 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먼저 소개한 글에서 현재는 상황이 달라진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상천리 통도사 석장생 석표는 대부분 주소를 울주군 삼남면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삼남면이 2020년 11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으므로 삼남읍의 오류다.
또한 전에 쓴 어떤 글은 상천리 석장생 석표 주변에 축사가 많아 악취가 심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필자가 2020년 9월 3일, 2021년 2월 2일에 방문했을 때 악취가 전혀 나지 않았다. 주변의 많았던 축사가 요즘은 대부분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유적지를 답사할 때 항상 발로 뛰며 세밀하게 관찰하고, 사진을 많이 찍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궁금증을 해소한다. 양산의 초중고생, 대학생, 양산시민들이 필자의 글을 읽어보면 우리 고장 양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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