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1. 원효대사와 천 명의 제자 구도의 길을 이끈 천성산 산신령
깊은 계곡과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천성산은 자연경관이 뛰어나 원효대사가 창건한 내원사와 함께 경상남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성산의 주봉은 원효봉으로 원효대사가 천 명의 제자에게 화엄경을 강설했던 화엄벌이 펼쳐져 있고, 내원계곡, 성불동계곡, 법수계곡, 홍룡폭포, 공룡능선 등 기암괴봉의 산세가 이어져 산을 사랑하는 양산시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천성산은 습지 보호지역인 화엄습지를 비롯해 22개의 산지 늪을 품고 있어 생태학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달, 삵, 끈끈이주걱, 꼬마잠자리, 부엉이, 소쩍새 등 30여 종에 이르는 보호 동식물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현재 천성산 일대에는 내원사, 원효암, 미타암, 안적암 등의 문화재 사찰과 원효대사와 천 명 대중을 인도하던 산신령이 홀연히 사라진 자리에 세워진 산신각이 있다.
시원한 계곡과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이곳 천성산은 뛰어난 자연경관만큼이나 많은 유적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원효대사가 장안사 척판암에서 참선에 들어가 중국을 바라보았는데, 같은 순간, 당나라의 태화사라는 절에서는 1천 대중이 장마로 무너진 흙더미 속에 묻힐 위험에 처해있었다.
원효대사는 그것을 보고 판자를 내던졌다. 태화사의 대중들은 공중에 떠 있는 이상한 판자를 보고 법당에서 뛰어나왔고, 그 순간 뒷산이 무너져 내려 법당을 덮쳤다. 그 판자에는 ‘해동(동쪽에 있는 나라, 신라)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하다(海東元曉擲板救衆)’ 라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 1천 대중들은 신라의 원효대사를 찾아와 제자가 되었고, 원효가 그들이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나와 길을 인도하며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원효는 이 일대에 내원사(상내원암, 중내원암, 하내원암), 대둔사를 비롯한 89개의 암자를 지어 1천 명의 제자를 머물게 하였다.
천성산 정상 부근의 짚북재에 짚으로 만든 커다란 북을 달아 놓고 쳐서 제자들을 소집하여 화엄경을 설법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원효 밑에서 수도한 1천 명의 제자들은 성불하였다고 하며, 천성산이라는 명칭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내원사 산문 매표소를 지나 심성교를 건너자마자 입구에 있는 산신각의 현판은 산령각으로 되어 있는데, 내원사 안에는 산신각이 없다. 산령각에서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만 내원사가 나온다.
이 산령각은 천성산을 찾아온 원효대사와 천 명의 제자를 안내하고 홀연히 사라진 산신령을 기념하여 건립한 유서 깊은 곳이다. 필자는 몇 년 전 내원사 안에서 지내는 산신제를 참관한 적이 있다. 내원사 안에는 산신각이 없지만 절 뒤편에서 산신제를 올렸다.
산령각 안에는 산신도가 있었는데, 산신령은 편하게 앉아서 오른팔을 호랑이 등에 올려 의지하고 있다. 호랑이는 얌전하게 엎드려 있고, 뒤에는 두 명의 동자가 등장한다. 한 동자는 커다란 연꽃을 일산처럼 받쳐 들어 산신령을 호위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음식이 든 바구니를 안고 있다. 산신령 뒤로는 소나무가 가지를 뻗고, 천성산의 기암괴석, 두 줄기의 계곡으로 쏟아지는 폭포수가 보인다. 호랑이는 위엄이 넘치기보다는 산신령을 수호하는 온순한 이미지로 느껴진다.
산신각의 신목은 소나무로 붉은색을 띤 우리나라의 전통 소나무인 금강송이 둘러싸고 있어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신목 중에서 가장 오래 된 소나무는 수령 721년으로 2000년 3월 18일에 양산시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필자가 1월 12일, 17일에 답사했을 때 신목 아래에 막걸리가 한 병 놓여 있었다.
산신각 앞을 지나는 양산시민과 관광객들 중에는 참배를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영험한 천성산 산신령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 산신각에는 촛불이 커져 있고, 향냄새가 나 전설은 지속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2. 천성산 내원사의 유구한 역사
전통사찰 제7호로 지정된 내원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대둔사, 상내원암, 중내원암은 없어지고 하내원암만 남았다.
1898년(광무 2)에는 유성(有性)이 수선사를 창설하고 내원사로 개칭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의천대사가 중건하였고, 1845년(헌종 11)에 용운선사가 중수하였으며, 1876년에는 해령선사가 중수하였다. 1898년에 유성선사가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고 절 이름을 내원사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혜월(慧月), 혜명(慧明:1861∼1937) 스님이 주석하면서 많은 선승(禪僧)들을 배출했다.
이때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 이름 붙인 이후 선찰(禪刹)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선사가 조실로 주석하면서 운봉선사, 향곡선사 등 한국 선종사(禪宗史)의 맥을 잇는 많은 선승(禪僧)을 배출한 도량이 되었다.
6·25 한국전쟁 때 산속에 숨어 있던 공비들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된 뒤 1955년에 수덕사(修德寺)의 비구니 수옥(守玉) 스님이 5년 동안에 걸쳐 13동의 건물을 재건하여 현재는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 새롭게 중창되었다.
내원사의 문화재로는 보물 제1734호 양산 내원사 청동금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6호 양산 내원사 아미타삼존탱, 문화재자료 제342호 양산 내원사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금고는 범종, 운판, 목어 등과 함께 사찰의 행사 때 사용하는 불구(佛具)를 말한다.
징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양쪽 모두를 사용할 수 있는 쇠북이라는 뜻에서 금고라 부르고, 한쪽 면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반자라고 하였는데, 후대에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내원사의 청동금고는 한쪽 면만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으로, 가운데 부분에 이중선을 돌려 안과 밖을 구분하였다. 안쪽에는 6개의 잎을 가진 꽃을 새겼고, 바깥쪽 원에는 4곳에 구름과 꽃무늬를 새겼다.
옆면의 위쪽에는 동그란 구멍을 가진 돌출된 귀를 달았고, 아래에는 고려 선종 8년(1091년)에 금인사에서 만들어진 것을 알려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청동금고는 만들어진 시기가 분명하고 상태도 양호한 편으로, 고려 전기의 금속공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내원사 전시품은 모형이며 진품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3. 우리의 토속 신앙인 산신신앙
우리나라의 산신신앙은 단군 이래로 가장 오래된 전통 신앙이다. 산신신앙은 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산신에게 종교적인 믿음을 바치는 민간신앙으로 백성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다. 산신신앙과 산악숭배가 자연숭배의 일단으로 상고대 북방계열의 사회에서 지켜졌음을 중국측 사료에서 볼 수 있다.
중국의 후한서 동이전 예조(後漢書 東夷傳 濊條)에 보면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서 함부로 서로 간섭할 수 없었다.” 이 기록의 뒷부분에는 “범에게 제사드려서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라는 조항이 보인다. 후세에 범을 산신과 동일시하여 숭앙한 원류가 역사자료에 나와 있다.
우리 민족이 이 산신제를 지낸 것은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되었다. 『구당서(舊唐書)』에 의하면, 백제는 “먼저 천신과 지신을 제사지내고 산곡신에게까지 미쳤다.”고 하였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오악의 세 산신(五岳三山神)에게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단군신화와 수로신화는 산악신앙의 가장 오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두 신화에서 산은 신으로서는 그가 강림하는 자리이고, 백성들로서는 강림하는 신을 받드는 자리이다. 단군신화에서의 산은 신의 강림처이면서 아울러 신의 주거처로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단군의 죽음이 입산 후 산신이 된 것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속신앙에서의 산악과 산신은 지역수호신의 성격을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다. 지역수호신으로서의 산신은 서낭신과 겹쳐서 동신, 곧 마을신으로 섬겨지면서 동신제(洞神祭), 서낭굿, 별신굿, 당산굿 등의 주신(主神)이 되어 민간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신으로 부상하게 된다.
불교 전래 이후 우리의 전통 신앙인 산신신앙과 불교는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포용력이 큰 불교는 산신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산신각(山神閣) 신앙이라는 형태로 받아들였다.
토속 신앙이 불교와 접합하여 점차 불교에 흡수되면서 절에 봉안되어 숭배를 받고있는 대상이 된 것으로 ‘산신(山神), 독성(獨聖), 칠성(七星), 용왕(龍王)’ 등이 있다.
신라시대의 산신신앙은 오악(五嶽)에서 볼 수 있다. 오악은 국가의 제사 대상이 되었던 다섯 산을 말한다.
오악에 대한 제사는 각 산에 거주하는 산신에 대한 제사였다. 국가수호와 재해방지를 위한 기도와 기우 등이 이 산들을 대상으로 하여 치러졌다.
삼국통일 이전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주변 산을 오악으로 정하여 제사를 지냈다. 신라의 국력이 커지고 영토가 확장되었던 삼국통일 이후에는 오악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21, 경주부 산천조에는 토함산(吐含山)을 동악, 금강산(金剛山)을 북악, 함월산(含月山)을 남악, 선도산仙桃山)을 서악이라고 하였고 『삼국사기』41, 열전 1, 김유신(상)의 단석산(斷石山)이 중악이었다.
삼국통일 후 동악은 토함산, 서악은 계룡산(鷄龍山), 남악은 지리산(地理山), 북악은 태백산(太伯山), 중악은 부악[父嶽 : 팔공산(八公山)]이다. 신라 오악은 서악인 계룡산 하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가 소백산맥 일대와 그 동남쪽에 있는 산악들로,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구분되어 있는 신라통일기의 국가제사에서 중사에 편입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가 산천의 음우(陰祐)로 나라를 일으켰다고 한 유훈(遺訓)을 따라 신라처럼 국가수호와 왕실보존의 진산(鎭山)으로 산악을 숭앙하였다. 고려왕조는 창업에 앞선 선대에 이미 부소산(扶蘇山), 송악(松嶽), 그리고 곡령(穀嶺) 등이 풍수설과 관련되어 왕조의 텃밭이 되었음이 여러 기록에 나타난다. 풍수지리설은 산악숭배의 고려왕조적인 변형이다.
4. 산신신앙의 대표적인 사례인 중악단
충남 공주시 계룡산 신원사에 있는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 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하여 마련한 조선시대 건축물로 보물 제1293호로 1999년 3월 2일에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쌓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년)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년)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년)에 고종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 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 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현재 상악단과 남악단은 없어지고 중악단만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 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건물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 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었다.
건물은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로 건축하였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하고, 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내원사를 답사할 때 꼭 봐야 할 곳은 내원사 매표소를 지나 심성교 건너 왼쪽에 있는 산신각, 수령 721년의 보호수인 소나무, 내원사 경내에 있는 청동금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유구한 역사를 지닌 천성산 내원사, 원효대사, 천 명의 제자를 인도한 천성산 산신령 등은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므로 잘 살펴봐야만 한다.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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