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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지역의 최고 수령 은행나무를 당산목으로 모신 용당마을/심상도 박사 화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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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웅상지역의 최고 수령 은행나무를 당산목으로 모신 용당마을/심상도 박사 화요 칼럼

서낭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대표적 민속신앙으로 그 기원이 오래되었다. 민초들이 의지하고 믿어왔던 서낭당은 현실적인 욕구의 발현이었다.

 

1.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끈질기게 이어져 온 서낭당 

 

서낭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대표적 민속신앙으로 그 기원이 오래되었다. 민초들이 의지하고 믿어왔던 서낭당은 현실적인 욕구의 발현이었다.

 

 

살고 있는 마을의 수호, 가정의 안녕, 개인의 복을 비는 발복, 병의 치료를 기원하는 치병 등의 간절한 소망이 반영되었다. 마을공동체의 행복과 더불어 개인의 평안을 기원하는 서낭당은 민중과 가장 밀착되어 있었다. 

 

 

문명발달에 따른 근대화로 인하여 서낭당은 차츰 미신으로 치부되어 타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농촌개발의 성공으로 현재까지 외국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반면 농촌지역의 전통적인 서낭당 신앙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유의 민족 전통인 서낭당은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차츰 없어졌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주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는 이농현상으로 주민이 감소하는 바람에 마을 공동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도시에 집중된 사람들도 먹고살기 바빠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었고, 새로운 도시지역의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으니 서낭당은 관심사에서 자연스레 밀려났다.

 

조사에 의하면 1970년대, 1980년대에 마을주민들이 마을의 당산목을 모시고 올리는 제례인 동제가 많이 없어지고 당집도 사라졌다.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 본동 서낭당의 당집과 신목인 소나무가 최근 사라지고 대신 태양광 집열판이 들어섰다고 한다. 

 

동제를 지내지 않은 이후 마을에서 사고가 빈발하고 젊은 사람들이 죽는 경우도 있어 동제를 다시 지내는 마을도 있다. 어떤 마을에서는 동제를 주민들이 지내는 대신 인근의 사찰에 돈을 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래도 동제는 마을사람들이 돈을 걷고 정성을 들여 지내는 것이 마을 단합에 도움이 된다. 

 

시골의 서낭당들은 동제를 주관할 수 있는 마을의 어르신인 노인 계층이 감소하면서 당집도 버려지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마을의 젊은이가 동제를 이어가기 힘든 절차가 번거로운 유교식 제의는 없애고, 누구나 자유롭게 절하는 방식으로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축문 같은 것도 딱딱하고 알아듣기 힘든 한문 투의 문장을 버리고 마을주민의 소원을 한글식의 소원문으로 만들어 낭독하는 것도 권장할만하다. 마을의 젊은 세대를 동제의 주관자로 참여시키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 

 

2. 수난을 겪은 당산나무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서낭당의 신목들이 도로구역에 포함되어 수난을 겪기도 했다. 당산나무와 함께 마을이 없어지기도 하였다. 양산에서도 북안마을의 당산목인 느티나무 노거수가 잘려 나갔다고 한다.

 

현재의 발전된 조경기술로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살릴 수 있었지만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될 당시 1960년대말에서 1970년대 초반에는 나무를 보호하겠다는 의식도 약했고, 기술과 예산도 부족하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건국 이래 최대 건설 사업이었던 만큼 희생자도 많았다. 특히 충북 청원군 옥산면에서 옥천군 청성면 묘금리까지 이어지는 대전공구 70㎞ 구간이 난공사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당 평균 1억 원이 들었다. 대전공구는 평균 1억 2천만 원, 대전에서 묘금리 구간은 1억 7천만 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당재터널 공사는 가장 난공사 구간이었다. 옥천군 금강휴게소 동남쪽 28㎞ 지점에 있는 당재터널 공사 지역은 토사로 된 연약한 퇴적층으로 발파작업을 하면 토사가 쏟아져 내려 공사가 지연되었다. 처음 20m가량 뚫고 들어갔을 때 바위가 떨어져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당재터널 공사 현장 인근 마을주민들이 신령스런 나무로 모시던 당산나무인 느티나무를 벤 고속도로 공사에 파견나온 군 장교 책임자가 사고를 당하자 겁에 질린 작업자들이 도망가는 일이 있었다. 터널 입구에 있던 느티나무를 벤 조재삼 감독관이 사흘 뒤 교통사고를 당하자 괴담이 돌았다고 한다. 

 

낙반 사고는 13차례나 이어져 모두 11명이 사망했다. 상하행선 합쳐서 1.1㎞밖에 되지 않는 짧은 구간이었지만 공사는 해를 넘겼다. 공사가 위기에 봉착하자 다급해진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은 공사 이익을 포기하고, 단양 시멘트 공장 라인 가동을 중단시키고 조강(早强) 시멘트 생산을 지시했다. 조강 시멘트는 가격이 세 배지만 48시간이면 굳는다. 이틀에 한 번 발파 작업이 가능해졌다. 또 운송 시간이 긴 열차 대신 비싼 트럭으로 시멘트를 날랐다. 근로자 수를 두 배로 늘리고 전표 대신에 현금으로 노임을 지불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이 된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치밀한 계획과 강한 의지,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공사 현장 책임자와 근로자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실공사를 방지하기 위하여 공사 감리단에 현역 군인을 투입하여 규정과 원칙대로 공사를 진행하도록 지휘한 덕분에 최소한의 예산으로 짧은 기간에 경부고속도로를 완성하였다. 

 

두 번째 당산나무 수난 이야기는 용계리 은행나무다.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던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744번지에 있던 천연기념물 제175호(지정일 1966년 1월 13일)인 추정 수령 700년의 은행나무는 죽지 않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무려 23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4년간의 공사로 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15m 정도 들어 올려 수몰을 피했다.

 

용계리의 당산나무였던 은행나무가 마을 사람들의 투철한 보호정신 때문에 살아난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필자도 몇 년 전 직접 방문하여 구경한 적이 있었다. 

 

원래 용계리 은행나무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던 당산나무로서 주민들이 의지하여 살아온 소중한 나무였다. 은행나무는 높이 37m, 가슴높이 둘레 14.5m에 달한다. 이 나무는 가슴높이 둘레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이며, 암나무다.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이곳에 낙향한 다음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과 행계(杏契)를 조직하여 매년 7월에 이 나무 밑에 모여서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탁씨의 후손들은 아직도 이 나무를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한 번씩 간단한 제를 드린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밑부분의 속이 썩고, 윗부분에서도 썩은 가지를 통하여 빗물이 들어가 나무가 상하기 시작하였으므로 1982년에 외과수술을 실시하였다.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이 나무의 9m 정도가 수몰될 처지가 되어 위기가 도래하였다. 마을주민들은 수몰을 피해 높은 곳으로 이주하였지만 은행나무는 물속에 잠길 판이었다. 주민들은 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관계 당국에 청원하였다. 

 

끈질기게 이어진 주민들의 간절한 청원 끝에 공사를 맡은 한국수자원공사는 정부의 지원을 얻어냈고 나무 이식 공사를 결정했다. 고규홍에 의하면 1990년부터 1993년까지 4년간에 걸쳐  높이 15m에 이르는 흙을 쌓아올려 제자리에서 들어올리는 공사를 하여 나무를 구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이식(利殖)이 아니라 높이만 들어 올리는 상식(上植) 공사였다. 상식 공사는 H빔 공법을 이용해 나무를 조금씩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나무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부터 15m 높이까지 들어 올려졌고 나무 주변에는 자연스레 인공 산이 쌓였다. 

 

나무를 들어 올리는 공사를 하면서 불가피하게 상당 부분의 뿌리와 나뭇가지를 잘라서 은행나무는 원래보다는 왜소해졌다고 한다. 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23억 원의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4년간의 긴 공사 끝에 성공적으로 살려낸 것은 조경업계 세계 최초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용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를 살린 것은 획기적인 일로 이후 노거수 보호와 이식에 관한 표준이 되었다. 

 

3. 양산의 편들마을 당산제 

 

양산시 용당동 1187번지에 있는 용당마을 당산나무인 은행나무는 수령 729년(2020년 현재)으로 웅상지역의 최고령 당산나무다. 보호수 고유번호는 12-14-2로 1982년 11월 10일에 지정되었다. 은행나무 높이는 22m, 나무둘레 6.3m로 노거수다. 관리는 용당마을 주민회에서 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고려말경에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 자시(밤 11시에서 1시 사이)를 기해 국태민안, 마을의 발전과 대동단결, 풍년기원, 권선징악을 위해 제를 올린다고 한다.

 

성역의 표시로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당산나무와 당집에 두르고 잡귀를 쫒기 위하여 대나무 잎과 제를 올릴 소지 종이를 그 새끼줄에 묶어둔다. 옛날에는 자식이 귀한 가정에서 당산 어른께 정성들여 제를 올렸으며,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마을에서 동중계를 조직하여 제를 올렸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에 의하면 양산시 용당동 편들마을 당산의 당명은 야제당으로, 당집은 용당리 북쪽에 남향으로 1칸짜리 기와집으로 세워져 있다. 안에는 밤나무로 만든 목조상과 제기가 있다. 신목은 높이 15m, 둘레 4m의 은행나무인데, 밑 둘레에 돌무더기 제단은 없다. 용당주신, 산신을 모시고 있으며, 당집에서 기원하면 자식을 낳게 된다고 한다. 

 

제관은 부정이 없고 맑은 사람에 한하여 뽑으며, 제일 일주일 전부터 목욕 재계하고 부정을 피한다. 보통 일반적인 제사와 형식은 동일한데, 제가 끝난 다음날 음복을 하고 회의를 한다. 제일은 음력 정월 14일 밤 12시에 하며, 제수로 술, 과실, 백병, 백반, 소고기를 준비한다. 경비로 각 호당 5,000원씩 갹출한다. 

 

필자가 11월 28일에 방문했을 때 당집 앞에는 소주, 생수, 막걸리가 놓여 있어 마을주민들이 정성껏 모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웅상지역의 7번국도 우회도로인 ‘통신사로 용당교차로’가 당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용당교차로에서 나온 차량들이 7번국도로 접속하는 도로가 2차선으로 정체가 심해 현재 4차선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당집 바로 앞으로 4차선 확장이 끝나면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은행나무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어 접근성은 좋아지나 소음이나 매연공해가 당산나무에 약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나무는 유주가 발달하여 7개 정도 달려 있었다. 유주(乳柱)란 ‘젖기둥’이라는 뜻으로 모양이 마치 여인의 젖가슴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당산나무 밑에는 쉼터, 정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바로 옆에 빈집 창고가 있어 당산나무와 당집의 미관을 해치고 있다. 양산시에서 매입하여 건물을 철거하고 은행나무의 시식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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