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8 (수)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삼국사기』의 기록에 나타난 백제 성왕의 최후
『삼국사기』 백제 성왕 본기 32년(서기 554) 가을 7월, 임금이 신라를 습격하고자 몸소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狗川)에 이르렀다.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혼전 중에 임금이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성(聖)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 진흥왕 본기, 15년(서기 554) 가을 7월, 명활성(明活城)을 보수하여 쌓았다. 백제 왕 명농(明穠)이 가량(加良 : 대가야)과 함께 관산성(管山城)에 쳐들어왔다. 군주 각간 우덕(于德)과 이찬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신주의 군주 김무력(金武力)이 주의 병사를 이끌고 나아가 어우러져 싸웠는데,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도도(高干都刀)가 빠르게 공격하여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고 싸워서 크게 이겼다. 좌평(佐平) 네 명과 병사 2만 9천 6백 명의 목을 베었으며, 돌아간 말이 한 마리도 없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할아버지인 무력(武力)은 신주도(新州道) 행군총관이었는데, 일찍이 병사를 거느리고 나가 백제왕과 그 장수 4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의 목을 벤 일이 있었다.
2. 『일본서기』의 기록에 나타난 백제 성왕의 최후
『일본서기』에는 『삼국사기』에 없는 관산성 전투의 상세한 내용이 나온다. 여창(餘昌)이 신라를 정벌할 것을 계획하자 늙은 재상이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니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간하였다. 여창이 “늙었구려. 어찌 겁내시오. 우리는 대국(大國)을 섬기고 있으니 어찌 겁낼 것이 있겠소.”하고, 드디어 신라국에 들어가 구타모라(久陀牟羅)에 보루를 쌓았다.
그 아버지 명왕(明王)은 여창이 행군에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한참동안 잠자고 먹지 못했음을 걱정하였다.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부족함이 많으면 아들의 효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생각하고 스스로 가서 위로하였다.
신라는 명왕(明王)이 직접 왔음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 이때 신라에서 좌지촌(佐知村 : 현재 충북 옥천)의 사마노(飼馬奴) 고도(苦都) 〔다른 이름은 곡지(谷智)다〕에게 "고도는 천한 노비고 명왕은 뛰어난 군주다. 이제 천한 노비로 하여금 뛰어난 군주를 죽이게 하여 후세에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얼마 후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명왕이 "왕의 머리를 노비의 손에 줄 수 없다."고 하니, 고도가 "우리나라의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노비의 손에 죽습니다."라 하였다. 다른 책에는 “명왕이 호상(胡床)에 걸터 앉아 차고 있던 칼을 곡지(谷知)에게 풀어주어 베게 했다.”고 하였다.
명왕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 흘리며 허락하기를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구차히 살 수는 없다.”라 하고 머리를 내밀어 참수당했다. 고도는 머리를 베어 죽이고 구덩이를 파 묻었다.
필자는 역사의 현장인 옥천군의 관산성, 삼거리토성을 답사하였다.
3. 고간 고도가 주둔했던 삼년산성은 난공불락의 요새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했던 고간 도도가 증원군으로 오기 전 주둔했던 삼년산성은 당시 신라가 만든 첨단의 성곽이었다. 동서쪽 성벽은 내탁외축(內托外築) 방식이며, 남북쪽은 내외협축(內外夾築) 방식으로 만들었다. 내탁외축은 바깥쪽에 돌을 쌓고 안쪽에 흙으로 다진 것이고, 내외협축은 안과 바깥 양쪽에 돌을 쌓고 그 안에 또 흙이나 돌을 채우는 방식이다.
삼년산성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하나의 거대한 석벽과 다름없을 정도로 튼튼한 산성이다. 당대 축성술의 최고 기술이 집약된 명작이고 신라의 국운을 걸었던 전략적 야심작이다. 그래서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
성벽의 폭이 7~8m에 이르고, 성벽의 높이는 13m~22m, 평균 15m로 한국의 많은 성벽 중 가장 높고, 두터운 성벽을 가진 성이다. 산의 능선 둘레를 따라 축조하였기에 높이는 지형에 따라 다르다.
삼년산성의 류재관 문화관광해설사가 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1983년의 발굴 결과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의 토기조각과 각종 유물이 출토되었다.
삼년산성은 보은의 평야지대 한복판에 있는 325m 높이의 오정산(烏頂山) 정상의 세봉우리와 서쪽 골짜기를 연결하는 포곡식 산성이다.
높이는 낮지만 정상부 아래쪽은 매우 가파르다. 거의 절벽에 이르도록 가파른 산세는 천연의 성벽을 이루고 있고, 그 위에 13~22m 의 매우 높은 성벽이 둘러싸고 있어 난공불락의 요새다.
삼년산성(三年山城)이라고 부른 것은 470년 신라 자비왕 때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완공하였기 때문이다. 486년 1월 이찬 실죽 장군이 일선군(一善郡 : 현재의 구미) 장정 3천 명을 징발하여 삼년산성, 굴산성(屈山城) 개축하였다고 ’『삼국사기』에 나온다. 축성, 개축 연대가 명시돼 가치가 높다.
8톤 트럭 2만 5천 대 분량의 돌 천만 개의 자연석을 일일이 다듬어서 쌓았다고 한다. 이 성을 쌓을 때 보은지역의 돌이란 돌은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당시 신라의 국력으로 이런 대규모의 축성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서문 쪽의 웅장한 성벽은 근래 복원을 했는데, 당시의 고증을 따르지 않고, 돌과 축성 방식도 달라서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실패했다고 한다.
성안에 여섯 곳의 우물, 논밭이 있어 식량을 자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문은 특이한 구조로 길이 없다. 성문을 나가면 바로 성벽 낭떠러지다. 남문은 5m가 넘는 사다리가 아니면 다닐 수 없도록 성벽 위쪽에 문이 있다.
서문의 성곽에 올라 내려다보면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매우 높다. 산 사면도 가파른데, 이렇게 높고 단단한 성벽까지 버티고 있으니 적군의 공략이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당시 이곳은 신라군에게는 방어하기가 쉽고, 적군들은 함락시키기 힘든 요새였을 것이다. 신라가 삼년산성을 완성한 이후 백제와 고구려는 이곳을 쉽게 넘볼 수 없었다.
서문은 현재 새로 만든 평탄한 길을 통해 차로 오를 수 있는데, 이 길이 30년 전만 해도 없었다고 한다. 서문 앞은 가파른 계곡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그 옆의 작은 오솔길이었다고 한다.
사면의 작은 오솔길로 올라서 끝에서는 성벽을 따라 서문에 이르도록 되어 있어 대규모 병력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서문지의 문지방석(門地枋石)에 수레바퀴 자국을 분석한 결과, 중심거리가 1.66m에 달하는 큰 수레가 다녔다고 한다.
서문의 옹벽과 양쪽에 튀어나온 치성들 그리고 좁은 진입로 때문에 적군의 접근이 매우 힘들다. 성문은 특이하게 성안에서 바깥으로 열리게 만들어 적을 급하게 공격할 때 유용하였다.
이렇게 철저한 방비 가운데에도 혹시나 성문이 파괴되어 적들이 밀려든다면 적들은 더욱 황당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서문지 바로 앞에 있는 대규모 연못이다.
적들은 연못에 빠지거나 연못을 피해 양쪽 성벽 옆으로 갈라지며 다시 공격을 받게 된다. 이런 단단한 방비 때문에 삼년산성은 쉽게 함락당하지 않은 난공불락의 성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삼년산성은 동서남북 어느 곳이든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인 보은의 평야지대에 우뚝 서 있다. 동쪽으로는 상주를 지나면 경주로 이어져 있고, 남쪽으로는 추풍령을 지나 김천으로 연결된다.
서쪽으로는 백제 땅 옥천, 대전, 금산으로, 북쪽으로는 청주, 진천을 통해 한강 유역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신라가 경주지역을 벗어나 한강을 확보하기 위한 확실한 교두보를 삼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함락되지 않을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였다.
태종무열왕이 백제를 정복한 후 삼년산성에서 3개월을 머물렀다고 한다. 북문 아래 예전 행궁이 있던 곳에 작은 건물이 있다.
1902년에 창건한 한국불교 해동종 직할 종찰인 보은사다. 당나라 황제의 조서를 가지고 온 웅진도독 왕문도를 여기서 만났다. 웅진도독이 신라의 견고한 성을 당나라 황제에게 보고하도록 일부러 보여준 것이다.
신라가 이 정도 난공불락의 산성을 가지고 있으니 신라를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이 산성은 한마디로 신라 국력의 상징이자 힘의 결정체며 자랑이었다.
4. 김무력 장군의 탁월한 지휘 능력
성왕을 사로잡은 부대 지휘관이 금관 가야계이며 삼국통일의 영웅인 김유신의 조부인 김무력(金武力) 장군이다. 신라의 한강유역 신주의 군주였던 김무력 장군은 관산성이 백제군의 공격으로 위태롭게 되자 후원군으로 급하게 달려오면서 주변의 신라군을 총동원하였다.
삼년산성의 비장인 고간 도도 역시 증원군으로 참전하였다.
『삼국사기』 백제 성왕 본기에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혼전 중에 임금이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고 나온다. 『일본서기』 ‘신라는 명왕(明王)이 직접 왔음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고 기록하였음을 볼 때 증원군을 지휘하는 김무력 장군의 군사 전략, 전술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첩보전에서 신라가 백제를 압도했다. 김무력 장군은 인맥을 활용하여 백제군 동향을 잘 파악하였다.
앞에서 살펴본 『일본사기』에 의하면 사마노(飼馬奴)로 천한 노비로 나오지만 고간 도도가 성왕을 참수할 때 왕에 대한 예의로 겸손하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에 국왕을 경호하는 부대인 겸사복(兼司僕)이라는 부대 이름도 명목상으로는 국왕의 마굿간지기라는 의미였다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겸사복은 조선시대 정예 기병 중심의 친위병을 말한다.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의 목을 벤 도도가 비장(裨將)이었다고 한다. 신라의 군인 계급으로 외위(外位)의 제3 관등이다. 『삼국사기』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서남 해안에서 해적 토벌의 공을 세워 신라의 비장(裨將)이 되었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고, 견훤이 양길을 비장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무력 장군이 백제 성왕을 사로잡고 참수하고, 백제군 2만 9천 6백 명을 전사시킨 것을 보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을 알 수 있다.
관산성 전투로 백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고 신라는 중흥기에 접어들었다. 김무력 장군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으며, 그의 아들인 김서현, 손자인 김유신이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적 위인을 양산시에서 제대로 선양사업을 하지 않고 있어 문제다.
패장인 백제 성왕은 전사지인 옥천군에 도로명주소, 다리 이름, 기념비로 남아 있다. 김무력 장군 묘소가 있는 양산시도 선양사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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