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1 (화)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금관국과 신라는 왕실 혼인으로 우호적 관계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금관가야와 신라는 적대적 관계라기보다는 왕실간의 혼인, 인적 교류 등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삼국사기』 법흥왕조와 『화랑세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법흥왕 9년(서기 522) 봄 3월, 가야국 왕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기에, 임금이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여동생을 보냈다. 법흥왕 11년(서기 524) 가을 9월, 임금이 남쪽 변방을 두루 돌아보며 영토를 개척하였다. 가야국 왕이 찾아와 만나보았다.
19년(서기 532), 금관국(金官國)의 왕 김구해(金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인 맏아들 노종(奴宗), 둘째 아들 무덕(武德), 막내 아들 무력(武力)과 더불어 자기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항복하였다. 임금이 예를 갖추어 대접하고 상등(上等)의 직위를 주었으며, 금관국을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 아들 무력은 벼슬이 각간(角干)에 이르렀다. 구해왕 또는 구형왕이라고도 한다.
금관국의 국력이 미약하여 전쟁을 하지 않고 나라를 신라에 넘긴 구형왕에게 양왕(讓王)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국고(國帑 : 나라의 창고, 재산)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했다는 표현은 구형왕이 끝까지 신라와 혈전을 벌이다가 끝내 사로잡히거나 전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라를 들어 항복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나라를 신라에 양보(讓步)했다고 해서 양왕(讓王)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은 것이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신라와 금관국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나오고 있다. 위서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실린 제16세 풍월주 김유신 편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관국은 수로청예왕(首露靑裔王)에서 비롯되었는데 황룡국의 여자 황옥을 아내로 맞아 거등(居登)을 낳았다. 거등은 천부경 신보의 딸 모정을 아내로 맞아 마품(馬品)을 낳았다. 마품은 종정감 조광의 손녀 호구를 아내로 맞아 거질미(居叱彌)를 낳았다. 거질미는 아궁 아간의 손녀 아지를 아내로 맞아 이품(伊品)을 낳았다. 이품은 사농경 극충의 딸 정신을 아내로 맞아 좌지(坐知)를 낳았다.
좌자는 색을 좋아하여 각국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 왕후로 삼았는데, 우리나라(신라)에서도 도량 아찬의 딸 복수를 보내어 아들 취희를 낳자, 좌지가 크게 기뻐하여 정후(正后)로 삼았다. 금관에서 우리나라(신라) 여자를 왕후로 삼는 것이 이로써 비롯하였다.
취희(吹希)가 왕위에 오르자 복수는 태후로서 집정하여 우리나라(신라) 사람을 많이 등용하였다. 금관인 또한 우리나라에 많이 왔으며, 사이좋게 친한 관계가 점점 깊어졌다. 취희는 우리나라 진사 각간의 딸 인덕을 아내로 맞아 질지를 낳았는데, 곧 공(김유신)의 5세조이다.
양산대학의 엄원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금관국과 신라의 동맹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3세기경의 포상팔국 전쟁은 금관국과 신라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포상팔국 전쟁 당시 주요 동맹은 함안의 보라국 혹은 가시라국을 중심으로 골포국, 사물국, 고자국 등의 소국 동맹, 금관국과 신라의 동맹으로 구분할 수 있다.
포상팔국이 침략해오자 금관국은 왕자를 신라로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금관국과 신라의 긴밀한 동맹관계로 볼 때 나중에 금관국의 구해왕이 국력이 약해진 다음 신라에 합병을 요청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 대가로 김무력 장군을 비롯한 왕족들은 신라의 귀족인 진골로 편입될 수 있었고, 김해를 계속 식읍으로 하사받고 통치할 수 있었다.
2. 김무력 장군과 후손들이 삼국통일에 결정적 기여
신라는 오랜 기간 금관가야와 왕실 혼인, 관리의 등용을 통해 인적 교류를 해왔기에 피를 흘리는 전쟁을 하는 대신에 평화롭게 항복하였다. 국력이 약화된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스스로 항복하여 신라에 복속되는 절차를 밟았다.
역사에 기록된 구체적 내용은 없지만 신라에서 금관국의 왕과 왕자에 대한 예우를 후하게 해준 것을 보면 합병 조건이 가혹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형왕은 금관가야의 통치권을 확보하고 그의 자손들은 신라의 진골귀족으로 편입되면서 고위 벼슬을 약속받았을 것이다.
신라가 가야를 합병함으로써 얻는 이점은 단순한 영토확장 뿐만 아니라 철의 왕국이었던 금관가야의 철 기술을 습득하고, 김해와 양산의 철광산을 고스란히 확보하여 국방력을 튼튼히 하는 효과도 누렸다. 또한 금관국의 강력한 철기병도 영토확장 전쟁에서 활용할 수 있었다. 향후 백제 정벌을 위해 낙동강 서안으로 진출하는 든든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6세기 초에 신라에 합병된 금관국은 삼국의 기록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대신 금관국 출신 인사들은 신라인으로서 백제, 고구려와의 전쟁에 있어서 커다란 공을 세우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의 막내아들인 김무력 장군이다.
첫 부인 박씨는 신라 법흥왕의 처제로 보도부인 박씨의 여동생이다. 뒤에 취한 두 번째 부인 아양궁주는 진흥왕과 사도왕후의 딸이었다.
564년 둘째 아들 김서현이 태어났는데 그가 후일 김유신, 김흠순 형제 및 김보희, 김문희(문무왕의 생모)의 아버지가 된다. 김무력은 579년 10월 16일에 사망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향년 62세였다.
김무력 장군은 관산성(현재 충북 옥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신라가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관산성은 신라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가 지키다가 백제 왕자인 부여창(뒷날 위덕왕)에 의해 함락되어 후퇴한 상황이었다.
신주 군주인 김무력 장군은 신라군을 구원하기 위해 백제군에 대해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백제의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하고, 좌평(佐平) 4명을 죽이고, 백제군사 3만여 명을 죽이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백제의 태자 여창은 간신히 탈출하였다.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관산성(管山城) 전투는 두 나라 미래의 명운을 결정짓는 한판의 승부였다. 패전한 백제는 중흥의 기틀을 빼앗기고, 승전한 신라는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관산성 전투는 국가의 운명을 걸었던 건곤일척의 싸움이었다.
승리한 신라는 이미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 유역에 대한 기득권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백제는 막대한 전쟁 손실과 그 여파로 인해 동성왕 이후 성왕대에 일시 강화되었던 왕권이 다시 동요되기 시작하였다. 기로(耆老) 중심의 비전파들은 관산성 패전과 성왕의 전사를 계기로 정치적 발언권을 증대시켰다. 왕권중심의 정치운영체제가 귀족중심의 정치운영체제로 점차 전환되어 나갔다.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1세기 이상 양국 사이에 지속되었던 나제동맹(羅濟同盟)은 완전히 파탄이 났다. 관산성 전투 이후 양국관계는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적대관계가 계속되었다. 신라와 백제의 역학관계는 완전히 뒤집혀 백제가 쇠퇴일로를 걸었다. 대고구려전에 비중을 두던 백제의 정책기조는 관산성 전투를 기점으로 대신라전으로 옮겨갔으며, 이후 백제는 가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대가야는 관산성 전투 당시 약 1만여 명의 병력을 참가시켰는데, 백제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을 병력을 잃게 되었다. 그 충격이 너무도 엄청나서 백제와는 달리 가야는 회복을 못하고 8년 뒤 신라의 보복 공격을 받고 신라에 합병되었다.
김무력 장군은 이후로 승승장구하여 최고 관직인 각간으로 승진하였다. 후손들까지 신라 조정에서 요직을 맡아 삼국통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무력 장군을 필두로 아들 김서현 장군은 양주(양산)총관을 지냈고, 손자 김유신 장군은 삼국통일을 이룩하였으며, 증손자 김원술 장군과 김시득 장군은 당나라 군사를 한반도에서 몰아내며 4대에 걸쳐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3. 김무력 장군의 묘소 도굴과 보호대책
김무력 장군과 부인의 묘소는 양산시 하북면 영취산 능선에 있다. 이 묘소는 통도사 창건 전에 조성되어 통도사 경내에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신라 조정에서는 김무력 장군의 공을 기려 영축산 자락에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였다.
묘소 앞에 상석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김해 김씨 문중에서 돌을 들어서 확인한 결과 ‘가(嘉) 병오(丙午) 십일월(十一月) 일(日)’ 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중국 연호인 천가(天嘉)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무(文武) 석상(石像)의 특징은 석상의 형태가 일반적으로 좌상우(左上右)의 고름 매듭이 김유신 장군 묘의 십이지신상 고름과 비슷하다고 한다.
묘 서쪽의 문인상 어깨에 석문이 새겨져 있다. 동아인쇄의 김종완 대표에 의하면 탁본을 하여 확인하였으나 마모가 심하여 왕자라는 글자만 알아볼 수가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8월 24일 오후에 묘소를 답사하여 글자를 확인하였다. 석상의 코와 귀가 훼손되어 있었다.
김무력 장군의 생몰 연대, 묘소의 위치에 관한 역사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오지 않는다.
조선조 숙종 병인년(1686년)에 간행되었다고 전하는 김해 김씨 삼현파보(三賢派譜)의 시조선원세계(始祖璇源世系)에 휘(諱) 무력(武力)에 대한 생졸년, 묘소 기록이 있다.
‘묘소는 취산 아래 계좌에 있고, 주위에 석물이 함께 서 있다. ‘취서산 일대를 사패지로 삼았으며, 취선사를 건립하여 장군의 묘를 수호하게 했다.’고 기록하였다.
1990년대 이후 김무력 장군의 묘는 가야국의 왕자이자 김유신의 조부 묘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도굴과 수난의 대상이 되었다. 김종완 대표의 증언에 따르면 도굴꾼들이 무덤 옆에 비닐을 깔고 흙을 파서 모았다고 하였다.
흔적을 감쪽같이 없애기 위해 도굴한 후에 흙을 그대로 도로 메웠다. 나중에 가보니 잔디가 흙에 눌린 자국이 보였고, 묘소 주변에서 미처 되메우지 못한 흙, 도굴할 때 나온 숯을 발견했다고 하였다. 도굴된 봉분 주위에서 5~6세기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이 흩어져 있어 김무력 장군의 묘소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김무력 장군의 추모사업은 양산시 차원에서 해야만 한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후에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삼국통일의 시발점은 관산성 전투의 승리에 있다.
김무력 장군의 아들인 김서현 장군, 손자인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 낭비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김유신 장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당나라를 몰아내는 데는 증손자인 김원술, 김시득 장군이 기여하였다.
백제의 성왕, 위덕왕의 추모사업을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성왕의 유적을 찾아 옥천군 월전리 구진벼루의 성왕유적기념비, 성왕교, 옥천군의 도로명 주소인 성왕로, 부여의 성왕 동상, 부여박물관, 벡제금동대향로, 부여 왕흥사지를 답사하였다.
양산시에서 할 일은 김무력 장군 묘소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정비해야 한다. 도로명주소에 김무력 장군로를 만들고, 동상도 건립하고, 역사 인물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여 양산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삽량문화축전 등 지역의 문화행사에도 김무력 장군, 김서현 장군을 중요 인물로 부각시켜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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