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신라 석탈해왕의 후손인 흘해 이사금
대석마을에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왕릉이 하나 있다. 천성산에서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계단 논 가운데 위치한 길이 50m, 높이 15m의 이 능은 석씨왕릉(昔氏王陵)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석탈해 왕 후손인 석씨왕(昔氏王)들 중 가장 마지막인 왕인 16대 흘해왕(訖解王)의 무덤이라고 전해진다. 김씨 왕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왕인 내물왕과 펼쳤던 치열한 왕위쟁탈전에 패한 흘해왕은 양산으로 쫓겨나 죽었다고 한다.
석씨 왕의 시조인 석탈해 이사금(昔脫解 尼師今)의 성은 석씨(昔氏)이며 토해(吐解)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다파나국(多婆那國)의 왕, 용성국(龍城國)의 함달파왕(含達婆王), 또는 완하국(琓夏國)의 함달왕(含達王) 등이라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어머니는 여국왕(女國王)의 딸 또는 적녀국왕(積女國王)의 딸이라고 한다. 왕비는 남해왕(南解王: 南解次次雄)의 딸 아효(阿孝, 阿尼, 또는 남해차차웅의 누이동생 아로-阿老)부인이다.
이처럼 탈해의 출신지와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대체로 북아시아의 기마민족 계통으로 보는 북방설, 해양세력으로 중국이나 일본 열도를 거쳐 왔다고 보는 남방설, 낙랑계(樂浪系) 유이민으로 보는 낙랑설(樂浪說)이 있고, 이밖에 목지국설(目支國說), 고조선설(古朝鮮說), 사로국(斯盧國) 본토설 등이 있다. 양산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부왕(父王)인 다파나국의 왕이 비(妃)를 맞아 임신 7년 만에 큰 알〔卵〕을 낳자, 왕은 좋지 못한 일이라 하여 버리게 하였다. 이에 보물과 함께 비단에 싸서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궤짝에 실린 탈해는 금관가야(金官加耶)를 거쳐 계림(鷄林) 동쪽 아진포(阿珍浦)에 이르렀다. 이때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는 노파에 의해 발견되어 길러졌다. 석탈해는 어촌에서 고기를 잡아 생업을 유지하며 양모(養母 : 거두어 준 노파)를 공양하였다.
양모인 노파는 탈해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공부를 시켜서 학문과 지리에 두루 통달하게 되었다. 당시 이름난 신하인 호공(瓠公)의 집터가 명당임을 알고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에 묻어놓고는 자기의 집이라 우기니 관가에서 주장하는 근거를 요구하였다.
이에 자신은 본래 대장장이[(冶匠)였으니 땅을 파서 조사하자고 하였다. 파보니 숫돌, 숯이 나오자 탈해가 승소해 그 집을 차지하였다. 석탈해는 철이 풍부한 양산출신의 제철기술자라는 설도 있다.
옛적 내 집이라 해서 남의 집을 빼앗았으므로 성을 석씨(昔氏)라 하였다. 또는 까치로 인하여 궤를 열게 되었으므로 '작(鵲)' 字에서 '조(鳥)' 字를 떼고 석씨(昔氏)라 하였다고도 하고, 또 궤를 풀고 탈출해 나왔으므로 이름을 탈해라 하였다 한다.
“탈해이사금(토해-吐解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이 때 나이가 62세였다. 성은 석이며 왕비는 아효부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서문). “3년, 봄 3월, 왕이 토함산에 올라가니 우산 모양의 검은 구름이 왕의 머리 위에 피어 났다가 한참 후에 흩어졌다.” (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3년조).
“어느 날 토해(吐解=탈해)는 동악(東岳=토함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백의(白衣)를 시켜 물을 떠 오게 했다. 백의(白衣)는 물을 떠 가지고 오다가 중로에서 먼저 마시고는 탈해에게 드리려 했다. 그러나 물그릇 한쪽이 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탈해가 꾸짖자 백의는 맹세하였다. ‘이 뒤로는 가까운 곳이거나 먼 곳이거나 감히 먼저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물그릇이 입에서 떨어졌다.
이로부터 백의는 두려워하고 복종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기이편 탈해왕조). 이는 지역의 유력한 세력인 백의를 제압하여 복종시키는 일화가 신비한 전설로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2. 신라 왕호의 변천과 이사금 유래
신라의 왕호는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麻立干)→왕(王)으로 변천되었다. 왕호의 변천은 신라 사회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거서간'은 불구내, 즉 태양의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신령한 제사장, 군장, 대인이라는 뜻이다. '차차웅'은 무(巫)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군장의 칭호에 무당이 사용되었다.
'이사금'은 연장자, 사왕(嗣王), 계왕(繼王)의 뜻을 지닌 것으로 군장의 자리를 이은 대왕이란 칭호로 나중의 임금과 연관되는 명칭이다. '마립간'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대수장(大首長)이란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호칭이다. 후세의 군장을 의미하는 상감(上監)과 같은 뜻이라고 본 견해가 있다. 왕권의 성장을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 신라인의 계급 제도가 정치에 반영되기 시작한 때에 불렀던 명칭이다.
신라의 제2대 임금인 남해차차웅은 박혁거세거서간(朴赫居世居西干)의 맏아들로, 시조의 무덤을 짓고 석탈해를 사위로 맞아 정치, 행정상의 일을 맡겼다. 석탈해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신하로 삼아 곁에 두었다. 석탈해가 온갖 어려운 일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자 맏딸과 결혼을 시켰으며, 또 대보(大輔)의 벼슬을 주어 나라의 일을 맡겼다.
남해왕이 왕위에 오른 지 21년이 되던 가을에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겨 석탈해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했다. 남해왕의 아들 유리와 신하들이 왕의 유언대로 석탈해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석탈해는 이를 반대하였다.
유리 왕자가 계속 사양하자, 석탈해는 예로부터 덕이 높은 사람은 치아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며 떡을 깨물어 둘 중 치아의 수가 더 많은 사람이 왕위에 오르도록 제안했다. 떡을 깨물어 치아의 수를 세어 보니 유리 왕자의 것이 한 개 더 많았다. 하지만 사실 석탈해는 그전부터 유리 왕자의 치아 수가 자신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임금의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이런 꾀를 쓴 것이었다.
석탈해의 꾀로 유리 왕자가 신라의 세번째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유리 이사금이다. ‘이사금’이라는 말은 잇자국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데, 임금을 뜻하는 ‘이사금’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석탈해는 유리 이사금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
신라에서는 견직물과 마직물의 제직이 발달하였다. 시조 박혁거세거서간 17년(기원전 41)에 왕과 왕비가 6부를 순행하며 백성들에게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였으며, 파사 이사금 3년(기원후 82)에도 농사와 양잠을 장려한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포가 농민들의 가내수공업으로 직조되어 상품으로 활발하게 유통되었음을 의미한다. 신라의 견직물은 국외로 수출되기도 하였다. 흘해 이사금 20년(329)에는 견 1,460필을 일본에 수출하였고, 진덕왕 4년(650)에는 왕이 신라금(新羅錦)에 오언시 태평송(太平頌)을 써서 당나라에 선물로 주었으며, 진덕왕 5년(651)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금총포를 선물하기도 하였다.
3. 도굴된 흘해왕릉과 하마비인 돌탑
석탈해 이사금의 왕릉은 경주에 있으나 후손인 벌휴 이사금, 내해 이사금, 조분 이사금, 첨해 이사금, 유례 이사금, 기림 이사금, 흘해 이사금의 능이 경주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석씨 계열 왕인 흘해 이사금의 왕릉이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다는 것은 권력 투쟁에서 패한 결과로 보인다.
양산읍내에 있는 북부동 신기동 고분들이 석씨왕릉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울산의 향토사학자인 이양훈 씨는 일제시대인 1930년대에 발굴된 부부총과 1990년대에 발굴된 금조총이 석씨왕릉임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미 작고한 정두영 옹의 증언에 의하면 왕릉은 도굴되었고, 옛날 도굴될 당시에 왕릉에서 된장이 나왔다고 하였다.
상북면 대석리의 흘해왕릉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약 100년 전인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견된 흘해왕릉은 안내판 조차 없으며 당국의 무관심으로 인해 방치되어 민간인 소유로 넘어가 김해 김씨 무덤이 4기가 들어섰다.
신라사에서 사라진 석씨 왕 중의 하나인 흘해 이사금 왕릉으로 알려진 이 숲은 개발 열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공단이 들어온다고 하면서 측량까지 하였다고 한다. 공단 개발은 무조건 막아야 하며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을 해야만 한다.
이곳은 계단식 다랭이 논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야트막한 언덕으로 거의 평지처럼 보이지만 왕릉이 존재할만한 곳이다. 바로 옆은 천성산이 있고, 앞을 내다보면 영축산이 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답사하면서 마을 주민인 김수영(77세) 씨를 만나 상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왕릉의 비석이 있었는데, 농민이 논의 물꼬를 막기 위해 비석을 옮겨 사용했는데, 현재는 사라져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아마 논 어딘가에 묻혀있을 거라고 하였다.
석탈해 왕의 후손들이 대석리 흘해왕릉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사라진 유적을 찾고 비석을 발견하기 위해 둘러봤지만 실패했다고 알려주었다. 왕릉을 조사하기 위한 연구원이나 교수들도 수차례 방문하였다고 들려주었다.
김수영 씨는 구소석 마을에 돌탑이 있다고 하였는데, 일종의 하마비라고 하였다. 흘해왕릉을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돌탑이 있는 곳에서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김수영 씨는 마을의 젊은이들은 돌탑의 내력을 모르니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이 죽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였다.
구소석 마을의 돌탑에 가보니 주택의 담장에 바짝 붙어 있었고, 돌탑 주변에 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어 사진찍기가 힘들었다. 집안에 여러 사람이 있어 한 아주머니에게 이 돌탑의 유래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였다.
양산시청 문화관광과에서는 안내판을 서둘러 설치해야 하겠다. 전에 인성산업 근처에 있는 조선시대 아기 기생 무덤에 안내판을 세우자고 하니 비지정 문화재는 소관이 아니라고 양산시 담당 과장이 변명하였다.
다른 도시에 알아보니 지정 문화재든 비지정 문화재든 시에서 적극 관리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왕릉의 모습을 사진 찍다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주민을 붙들고 왕릉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정말 운이 좋아서 잘 아는 분을 또 만나게 되었다. 모래불에 사는 정태규 씨(73세)는 한 20여 년 전에 왕릉이 경매로 나와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살려고 한 적이 있다고 얘기했다. 정태규 씨는 대석마을 입구에서 태어나 왕릉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왕릉은 터가 세서 사람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건축허가도 받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어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한 왕릉이 있는 곳에 가려면 다른 사람의 논을 사서 길을 내야 하기 때문에 포기하였다고 한다. 풍문에 의하면 왕릉 위에 묘를 쓴 집안이 우환이 심하고 운세가 잘 풀리지 않아 고생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흘해왕릉으로 전해지는 곳의 절대농지를 없애고 공단을 개발하는 것은 결단코 막아야만 한다. 또한 구소석 마을의 돌탑은 흘해왕의 하마비로 전해지는 문화유산이므로 양산시 문화관광과에서 안내판을 설치하여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내력을 알리고 적극 보호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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