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 (월)
고려다완과 막사발 / 도예가 / 조국영
Ⅰ. 인류문명은 불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 불을 이용한 최초의 창작물은 흙으로 만들어 구운 토기와 도기들로서 그릇을 비롯한 생활용기들을 만들었다. 그 후 자기로 발전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활용기 뿐만 아니라 미적감상의 대상으로도 존재해 왔다.
또, 18세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황금으로 비유되었던 동양도자기를 누가 몇 점 소장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귀족들의 부와 명예, 그리고 사회적 등급이 다르게 존재하기도 했다.
1910년 유럽 최초의 자기
16세기 말 일본에서는 고려 다완으로 불려지는 그릇들 가운데 다인들이 선호하는 이도 다완(井戶 茶碗)의 가치는 일국(一國) 일성(一城)을 준다고 해도 한 점의 이도 다완과는 바꾸지 않겠다고도 하였다.
이러한 도자기들은 나라마다 사회적,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그 용도와 가치를 달리해 왔다. 본고에서는 고려 다완의 모양과 명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 오늘날 일본에서 고려다완이라 칭하는 그릇은 사실 고려시대에 찻그릇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고 15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조선시대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그릇을 통칭한다.
처음부터 찻그릇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용도에 관해서는 서민들의 밥사발 즉 잡기라는 설(야나기 무네요시)이 일반화되어 있다. 또한 제기설(신한균)과 스님들의 공양바루설(정동주)로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본에서 고려다완이라고 최초의 기록으로 발견된 사료로선 1506년에 쓴 實隆公記의 일기 속에서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국보 기자에몬 다완
일본이 말차가 처음 보급된 것은 송나라에 유학한 승려 에이사이가 귀국하면서부터 카마쿠라, 무로마치 시대를 거치면서 서원차롤 발전하였다.
화려하고 넓은 서원에서 중국에서 수입한 천목다완에 점다를 행하는 권위적 찻법었다. 그러나 불교적 청빈함과 禪의 고즈넉함이 차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였다.
따라서 화려한 천목다완에서 송나라 민간요에서 생산한 거칠고 환원 소성이 보장되지 않은 붉은 계열의 주광 청자를 사용하게 된다(무라타 주코). 이로부터 와비차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다인들은 딱딱하고 아직도 형식이 남아 있는 청자보다 더 와비의 정서에 접근된 다완을 찾으려고 하였으며, 그 결과 고려다완을 발견하게 되면서 와비사비차가 완성된다. 그 중심에 이도다완이 있으며 대덕사 기자에몽 다완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다완의 명칭과 형식에 관하여 조선시대 기록은 거의 없다.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국교가 1609년 기유조약으로 통교가 재개되면서 다인들의 고려다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2년 후인 1611년 3월 초 변례집요에 의하면
『.왜인이 지참한 서계에 의하면 바라건대 도기 견본과 다기, 보아. 와기 등물을 김해부사에 청하여 김해 장인에게 만들어 달라는 연유』
즉, 왜인이 제출한 외교문서에 의하면 다완의 견본 보아는 보시기로 크기를 의미하며 와기는 질그릇과 같은 거친 것을 주문한 듯하다. 고려 다완의 주문으로 다완의 크기와 질감 등을 서술한 유일한 기록이고, 주문 다완 시대를 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1639년에는 부산 두모포 왜관 밖에 하동 장인을 불러 가마를 짓고 본격적으로 다완을 생산하였다<다기번조류초>. 이후 초량 가마가 폐요된 1743년까지 104년간 도자기를 비롯한 다완들을 구웠다.
이 때 다완 크기와 종류는 종이에 그리고 치수를 적거나 종이로 만들거나 나무로 깎거나 흙으로 견본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남아 있는 일본 측 주문 사료는 원록 4년(1701년)에 주문한 <어조물공>과 정덕3년(1713년)에 <제방어호지어소물, 어주문유 차외어조물지공> 에 주문에 관한 양식과 치수, 색상, 문양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 측 도공두가 조선 도공에게 만들게 한 것이 어본 다완이다.
고려 다완의 크기와 양식에서 변례집요에 기술된 보아를 중심으로 후기 조선시대 일상용기에 관한 자료로는 1894년 작성된 <분원자기 공소절목>을 들 수 있다. 분원 자기 공소에서 만들어진 자기에 관한 공가를 책정하는 절목이나 내용에는 그릇별로 大大, 大, 中, 小로 나누며 치수를 기록하고 있다.
대사발 경 목척 8촌 8분
대대접 경 목척 8촌 7분
대사발 경 목척 6촌 2분
대대접 경 목척 7촌
대탕기 경 목척 5촌 5분
대보아 경 목척 5촌 5분
대종자 경 목척 3촌 7분
대대접시 경 목척 7촌 4분
대대합 경 목척 8촌
위의 기록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사발과 대대접은 大大로 볼 수 있겠다. 고려다완의 크기와 비슷한 치수로는 구경이 14-15cm 내외의 크기로 대탕기와 대보아가 가장 근사치에 있으며 탕기는 오목하면서 깊은 형태를 띠며, 보아는 보시기의 한자어로 구연이 외반된 김치 등을 담는 그릇으로 본다면 <변례집요>에 언급된 다완의 크기와 양식이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릇에 관한 근세 사료로는 1931년 40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사카와 다쿠미가 쓴 <조선도자명고>를 들 수 있다. 그 해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도자기 명칭과 쓰임새, 형태 등을 설명과 삽화를 곁들여 기술하고 있다.
다쿠미의 조선도자기에 관한 애정과 소반을 비롯한 공예품에 조선의 미를 알리고 예술 세계로 승화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다쿠미의 <조선도자명고>에서 그림과 함께 설명되는 그릇들 중에 <분원자기공소절목>에 기술된 그릇명이 비슷하게 등장한다.
사발-밥 담는 그릇
바라기-사발로서 입이 끝으로 벌어진 것
입기- 밑과 입이 같은 사발을 입기라 한다.
발탕기-입이 안으로 굽어진 것을 말한다.
여자들 밥 담는 그릇
탕기- 발탕기와 비슷한 꼴로 더 큰 것 탕을 담는다.
보시기(보아기)-사발보아 좀 작은 것으로 보시기 종자 종발 찻종이 있다. 보시기, 보, 보아라고도 한다. 사발 종발의 중간치
종발-종자와 같은 구실을 하는 작은 그릇
발(鉢), 접(楪), 보아(甫兒), 접(接), 종자(鍾子) 등은 원래 의미를 가지지 않는 허어로 전해 내려오는 구어를 이두식으로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발은 밑이 깊고 구연이 약간 벌어진 그릇을 뜻하고 접은 구연이 많이 벌어진 그릇이고 보아는 작은 발과 접의 중간 형식을 띤다. 접은 구연이 많이 벌어진 접시를 뜻하고 종자는 작은 그릇으로 간장을 담아낸다.
다쿠미의 설명 탕기와 발탕기의 설명을 탕기는 탕을 담는 그릇이 그림과 일치하지만 발탕기는 입이 안으로 굽어진 게 아니라 외반한 형상을 띤다, 그리고 사발, 입기, 함, 보시기 등은 그림으로 봐서는 유사하며 종자와 탕기도 구별이 안 되는 듯하다.
다쿠미 사후 5개월 뒤 일본에서 출간하였으므로 저자가 탈고를 못하였을 것이다. 다쿠미의 <조선도자명고>에서도 고려 다완의 크기를 별도로 설명하지 않고 일본에서 잘못 쓰이는 다완의 종류를 나열하면서 고려다완의 일본식 명칭에 대하여 “그렇지만 이것을 조선어에 근거를 둔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 온 경로와 그와 관련된 지명, 또는 기물의 형태, 유약색의 변화 등과 관련해 아무렇게 붙인 이름이라면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고려다완을 막사발이라 부르고 있다. 심지어 막사발 축제 , 막사발 공모전, 막사발 미술관 등 함부로 쓰이고 있으며, 심지어 고려다완을 소개하면서 발간되었던 책의 제목에서도 막사발로 붙인 책들이 시중에 범람하고 있다.
세계 도자사를 보면 고려다기가 출현했던 16세기에서도 자기를 구울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중국, 조선, 베트남 정도 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도 자기는 18세기가 되어서야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잡아간 조선 도공을 중심으로 도자 산업을 육성 발전시켰으며 중국의 명, 청 교체기와 세 번의 난으로 인해 중국 최고의 도자 도시 경덕진의 파괴로 인하여 유럽으로 도자기 공급은 일본의 아리다 야끼로 대체되면서 일본은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이룰 수 있었다.
이때까지의 유럽은 도기 밖에 못 만들었고 동양 도자기는 엄청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유럽의 자기는 독일 아우구스트 공의 열망과 후원으로 1710년 드레스덴에서 베르그에 의해 유럽자기가 탄생된다.
동양 도자기에 대한 유명한 일화로 아우구스트 1세는 동양도자기 100점을 얻기 위해 기병대 600명을 프러시아 왕에게 헌납하였다. 이러한 최첨단 도자기 산업을 영위해 나가던 조선의 고려다완을 오늘날에 막사발이라 부르며 스스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내팽개쳤다.
19세기 말 조선의 국운은 저물어가고 사옹원의 분원은 민영화되면서 1883년 분원자기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후 재정난과 운영 미숙으로 도공들은 지방으로 흩어져 민간요 운영자에 의지하거나 전업을 하게 된다. 한일합방 전후 일본의 도자기술자들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진보된 도자기 기술을 선보이게 된다.
오름가마를 사용하지 않고 석탄을 원료로 하는 단가마에서 소위 왜사기라는 생활식기를 생산하게 된다. 원료도 정선된 태토에 스탬프를 이용한 문양 시문으로 깨끗하고 비교적 정교한 도자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도공은 해주, 문경, 청송, 단양, 청도 등 지방에 머무르며 도자기를 생산하게 된다. 소성 방식도 조선 도공들은 상번으로 노출식 소성을 하지만 일본도공은 갑번을 하면서 깨끗하고 맑은 제품을 생산하였다.
시장에서는 서로 비교된 명칭이 탄생되었다. 일본도공의 그릇들을 왜사기라 불렀으며 조선도공의 그릇은 거칠고 매우 두터우며 투박하다하여 막사기라 불렀다. 두 제품에 우열이 심하여 가격적으로는 차이가 났으며 왜사기는 이 왕가를 비롯한 귀족들과 일본인이 주로 애용하여왔다.
1940년대에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유기공출로 도자기 사용량이 많아졌지만,조선백자는 기술개발이 없이 대량 생산되면서 막사발, 막사기라 칭해지며 팔려나갔고, 1950년 6.25동란 전후까지 성업하였다.
또, 한일합방은 일본골동품계를 흔들어 놓았으며 그에 관한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수집에 열을 올렸으며 그 중에서도 고려다완 도자기류는 단연 인기품목이었다.
그 결과 개성과 강화도의 고려 왕릉은 거의 도굴되었고, 도요지는 일본사람이 다녀가 곳이 부지기수였으며 이 때에도 일본의 수집가들은 고려다완을 한국인에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막사발이라면서 그림 혹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해방후에도 일본 수집가와의 골동 거간꾼들은 막사발이라 당연한 듯 불렀다. 이리하여 고려다완은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비운의 명칭으로 남아 막사발로 계속 불리고 있다.
Ⅲ. 우리나라 도자기를 사랑했던 호소카와 다쿠미는 그의 저서 <조선의 소반>에서 “올바른 공예품은 사용자의 손에 의해 차차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휘한다. 따라서 사용자는 완성자”라 하였다.
고려다완이 조선도공이 만들었지만 일본다도의 쓰임새에 완성되었고 우리는 이름도 못가진 채 막사발로 치부되었다. 당시의 첨단 기술을 갖추었지만 우리는 그것은 깨닫지 못하고 자긍심과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몰락시켜버렸다.
일제 강점기 이데카와를 중심으로 한 조선공예품의 편견은 결국 고려다완을 막사발로 고착시켰다. 일본다도는 에이사이에 의해 말차가 도입되고 고려다완으로 완성되었다고 하여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고려다완을 막사발로 불러야 할 것인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베를린 샤틀로렌 부르크 궁전 내부 중국자기 수집실
주광청자
왜사기 종자
막사발
막사발 대접
왜사기
막사발
막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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