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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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화요칼럼,천성산철쭉제와동산철죽제천성산 철쭉제와 동산 철쭉제의 비교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양산의 중심에 자리 잡은 천성산은 양산의 대표적인 진산으로 양산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성산(해발 922m)이 너무 넓고 산이 높아 서부 양산과 동부 양산이 양분되어 과거에는 양쪽 주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국지도 60호선의 동원과기대 터널이 뚫린 이후에는 주민간의 이동과 소통이 많이 개선되었다. 천성산에는 양산을 대표하는 철쭉 군락지가 있으며, 접근성은 미타암을 통해서 등산을 하면 쉽게 갈 수 있다. 반대로 서부 양산 주민들은 천성산 철쭉 군락지가 멀고, 천성산 정상이 지뢰 제거작업으로 폐쇄되어 등산하기가 쉽지 않다. 서부 양산에는 동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는데, 서부 양산시민들은 철쭉 군락지에 계원사, 신기마을, 다방동 등에서 등산로나 둘레길로 쉽게 등산할 수 있다. 천성산 철쭉 군락지는 자연스럽게 생겨난 관광 명소이고 동산의 철쭉 군락지는 기존 군락지에 추가로 철쭉을 식재하여 인위적으로 조성한 새로운 명소이다. 천성산 철쭉제를 여는 군락지에 2008년 5월 18일에 천성산철쭉제 추진위원회에서 천성산 철쭉제 기념비를 세웠다.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이곳에서 양산팔경 천성산 철쭉을 상징하는 ‘자연과 꽃과 사람의 향연’ 천성산 철쭉제를 자연환경문화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양산시 북부동 산4-2번지 일원에 10,000㎡ 규모로 조성된 철쭉 군락지는 동산의 북부산성 안에 있다. 산성의 성벽 돌과 조화를 이룬 철쭉꽃은 마치 천상의 화원처럼 화려하고 아름답다. 2009년 ‘희망으로 날다’ 일자리 창출사업으로 철쭉과 금낭화 등 야생화를 심어 새로운 명소를 만들었다. 천성산 철쭉 군락지는 해발 785m의 고산지대에 형성되었으며, 철쭉제 추진위원회에서 추가로 식재하였다. 동산의 북부산성은 해발 285m~300m 정도의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천성산 철쭉 군락지는 5월 초순에 절정을 이루는데, 날씨에 따라 개화기가 늦춰지기도 한다. 필자가 지난 5월 5일에 답사했을 때 꽃이 절정기를 지나 시들기 시작하였다. 천성산 철쭉제는 올해 열리지 않았다. 동산의 북부산성 철쭉 군락지는 4월 중순경에 절정을 이룬다. 올해 동산 철쭉제 산신제는 4월 16일에 지냈는데, 철쭉이 만개하여 아주 보기 좋았다. 천성산과 동산의 철쭉 군락지의 특색을 비교해보면 각각의 개성이 있다. 천성산에는 철쭉을 추가로 보식할 때 기존의 철쭉과 어울리지 않는 영산홍을 일부 심어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천성산에는 거대한 기념비를 세워놓았는데, 동산에는 안내판만 있다. 또한 천성산에는 등산객을 배려하는 쉼터, 벤치가 거의 없는 편이다. 반면 동산에는 정자, 벤치, 운동시설, 평상과 탁자 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등산객이 쉬거나 점심, 간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동산에는 등산객 이동통로도 다양하게 개설되어 있어 군락지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천성산 철쭉제는 민간 단체에서 주도하고 있다. 사랑·존중·봉사를 슬로건으로 하는 양산천성산철쭉회(회장 박종규)에서 산신제, 노래자랑, 어린이 사생대회 등을 주관하고 있다. 한편 동산 철쭉제 산신제는 중앙동행정복지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어 관민 협력체제를 이루고 있다. 민간 주도와 관민협력체제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나름의 특색을 살려 철쭉제를 잘 운영하고 있다. 특히 박종규 회장은 철쭉제와 어르신 효잔치도 개최하며 참된 봉사를 이어나가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앞으로 양쪽의 철죽제 행사는 잘 이어지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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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화요칼럼,"서운암 꽃길"~서운암의 꽃길을 거닐고 꽃시화 감상하며 힐링...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통도사의 부속암자인 서운암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꽃절이라 할 수 있다. 봄을 맞이하여 진한 향기를 풍기는 금낭화가 활짝 피면 서운암의 분홍색 꽃길이 열린다. 서운암의 들꽃축제는 올해로 20회를 맞이했다. 전국문학인들이 모여 여는 꽃축제와 꽃시화전은 12회이고, 한국꽃문학상 시상식은 제10회를 맞이하여 대상은 ‘낙엽의 꽃말’을 쓴 김종철 시인이 수상하였다. 가을바람에 낙엽 한 잎 제 창가에 떨어집니다... / 여름날 씩씩하고 푸른 자태로 작열하던 태양과 휘몰아치는 태풍을 견디며모든 것을 나무에게 쏟아부은 나뭇잎/ 이제 빛바래고 여위어 짐이 된다고 나무에서 스스로 떨어졌습니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다 내어주고 빛바래었지만 꽃보다 고귀한 추억을 품은 낙엽/ 꽃말도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낙엽의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김종철 시인은 2019년 「여기」 시 신인상으로 등단한 변호사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시집은 모든 만남, 모든 이별이 스며들어 우리가 되었구나」 등이 있다. 대상을 비롯한 꽃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된장 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곳에 시화로 걸려있고, 나머지 총 324점의 출품작이 금낭화와 이팝나무꽃길에 걸려 있다. 필자는 4월 22일과 23일에 방문하여 꽃시를 감상하였다. ‘낙엽의 꽃말’은 대상 수상작으로 소개되어 있어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대체로 자식을 위해 평생 꽃길을 걷기보다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시를 감상하니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서운암의 5천여 평의 대지를 물들인 금낭화 꽃길은 사람만 걸어 다니는 길이 아니다. 서운암의 명물인 공작새도 금낭화 꽃길을 유유히 걸어 다닌다. 저녁 늦은 시간에는 멧돼지 가족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안겨준다. 금낭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열심히 사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꽃 이름이 궁금한지 질문을 했다. 금낭화라고 알려주니 일행들도 꽃 이름을 따라 부르며 아름다운 금낭화를 알게 되어 만족한 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일부 구절이 생각났다. 서운암 장경각 앞 물속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의 작품인 ‘나전옻칠 반구대 암각화’, 나전옻칠 울주 천전리 암각화 그림이 있다.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7000년 전 그려진 암각화 문양들을 나전옻칠이라는 창의적인 기법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더욱 생생하고 율동감 있는 작품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수중 전시라는 기법을 통해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기념비적인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울주 천전리 암각화(국보 제147호)는 대곡천 상류에 있으며 너비 약 9.5m, 높이 약 2,7m의 중심 암면과 주변 여러 곳의 암면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에는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그림, 문자 등이 확인된다. 성파스님의 전통 나전옻칠 기법으로 탄생한 작품은 세월이 흘러 사라져가는 기록유산의 대체 보존이라는 중요한 의미와 더불어 새로운 시각으로 고대 예술의 원류를 바라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서운암 꽃길에서 요즘 볼 수 있는 꽃은 금낭화, 황매화, 이팝나무꽃이며, 곧이어 작약꽃, 붓꽃을 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행복한 순간은 잠깐이며, 힘들고 험난한 고난의 길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현실에서 아름다운 꽃길을 산책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소확행이라 할 수 있다. 꽃길도 거닐고, 꽃시화도 감상하고, 16만 도자대장경도 참배하고, 성파스님의 나전옻칠 반구대 암각화, 나전옻칠 천전리 암각화도 구경하면 저절로 힐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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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 화요칼럼철과 관련한 원동면 화제리 지명 유래철과 관련한 원동면 화제리 지명 유래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는 다양한 역사적 유적이 분포한 중요한 지역이다. 철과 관련한 광산으로 화제리와 인접한 물금철광산이 가야시대부터 최근까지 철을 생산해왔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경치 좋은 낙동강변의 임경대를 지나다가 시를 한 수 남김으로써 임경대는 양산팔경으로 지정되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화제리 인근에는 조선시대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었던 황산잔도, 경파대, 토교 석비, 황산잔로비, 보물 제491호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된 용화사, 동래부사 정현덕 공의 영세불망비가 있다. 낙동강을 오르던 황포돛배를 끌던 고딧줄꾼의 밧줄자국이 황산잔도의 바위에 남아있다. 화제리는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의 소설 ‘수라도’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미륵당인 용화사, 오봉선생 댁이 있는 명언마을, 태고나루터인 토교마을, 냉거랑다리인 화제교, 대밭각단인 죽전마을, 오봉선생의 호인 오봉산 등이 소설의 무대로 펼쳐진다. 화제리에는 고려시대 가마터인 도요지도 있다. 화제리 가마터는 국내에 몇 안 되는 11세기 전후의 녹청자(綠靑磁) 도요지이다. 녹 청자는 녹갈색 유약을 씌워 구운 초기 청자로서 고려시 대 전기(11세기 후반) 이후 일상 생활품으로 생산되었다. 주로 지방과 하급 관청 등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져 고급 청자에 비해 표면이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화제리는 제철 유적인 야철지가 있는 곳으로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이 철 슬래그를 최초로 발견하였으며, 필자와 함께 답사하였다. 화제리 지명에는 철과 관련된 지명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가야시대, 조선시대에 철을 생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철광석이 있어야 하고, 숯을 만들기 위한 풍부한 산림자원, 제철과정에 필요한 물, 철 제품을 운반하기 위한 수로가 있어야 한다. 낙동강, 화제천이 있어 물이 풍부하고, 배를 이용하여 무거운 철 제품을 운반하기 용이하였다. 화제리를 둘러싸고 있는 오봉산, 토곡산은 철광석의 산지이자 숯을 만들기 위한 나무도 쉽게 구할 수 있어 입지 조건이 양호하였다. 한편 화제리의 넓은 들판은 쌀, 딸기, 채소, 미나리, 화훼류 등의 농산물이 생산되는 곳으로서 옛날부터 현재까지 농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먹거리가 풍부하였다. 국가지방지원도 60호선의 노선 설정이 화제리의 핵심적인 절대농지를 관통하게 되어 곡창지대가 감소하고, 화제천 주변의 청정지역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도 피해를 입게 되어 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다.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이 주장하는 오봉산 자락으로 노선을 변경하면 이런 악영향을 방지할 수 있다. 화제리의 철과 관련한 지명이 현재의 마을 이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명은 한번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 속성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상으로 약간 변화할 수 있지만 그 특성은 남아 있어 지명의 본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다. 화제리 마을 지명 중 쇄편, 갓골, 불무골, 다갈점, 쇄꼬지골, 도장골, 쇠꼽모랭이 등은 철과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있다. 즉, 쇠를 이용하여 철을 만들고 무기, 농기구를 생산하는 데서 연유한 지명들이다. 쇄편은 쇠의 조각을 의미하는데, 내화마을의 서편마을이 당초에는 쇄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 가깝게 쓰이고 있지만 원래는 쇳조각을 만드는 생산단지였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포스코와 같은 제철단지, 공업단지였을 것이다. 불무골, 불뫼골, 불메골은 철을 만들 때 숯불의 온도를 높이는데 필수인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와 연관있는 용어이다. 쇄꼬지골은 화살촉, 창, 말발굽 등 무기의 도구나 연장을 만들던 곳으로 역시 제철 장인들이 모여 일하던 일종의 제철단지라 할 수 있다. 타지역의 지명에도 이와 같은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화제리와 마주 보고 있는 지역인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生鐵里)는 문자 그대로 생철을 만들던 곳이다. 김해가 가야시대 철의 바다였는데, 생철리가 철 주요 산지이다. 경남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돈평마을도 가야시대 철산지로 추정되는 지역 중 하나다. 돈평마을 뒷산은 불무골(또는 불뫼골)로 불리며 주명에는 금평(金平)마을, 금굴동과 같은 철산을 암시하는 지명들이 있다. 화제리는 조선시대에 화자포로 불렸다. 양산읍지초(1878) 지보 교량(橋梁)편에 수록된 화자포교(火者浦橋)가 나온다. 화자포교(火者浦橋)의 ‘자(者)’는 ‘놈 자’로 쓰이지만 장소를 나타내는 ‘곳’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화제리의 제철 유적은 전문기관의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발굴할 때 지역의 향토사에 관심이 많고, 제철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자주 답사를 하고 있는 필자와 영남삿갓의 자문을 받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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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양산 땅 구포를 되찾기 위한 양산군민들의 노력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양산향교 앞의 비석림 사이에 세 개의 비석이 있는데, 이를 구포 복설비(龜浦 復設碑)라고 한다. 이는 영상대감(領相大監) 이유원(李裕元)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군수(郡守) 어윤중(魚允中)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군수(郡守) 이능화(李能華)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를 말한다. 영상대감 이유원 영세불망비 뒷면에 ‘구포복설 장두(狀頭)’라 해서 세 명의 유림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선 고종 6년(1869년)에 양산군 소속이던 구포(龜浦)로 불리는 좌이면(左耳面)이 동래군에 강제 편입되어 빼앗기게 되었을 때 양산군민들은 이를 되찾기 위해 들고 일어났다. 당시 동래부사는 정3품 당상관(堂上官)인 정현덕 부사였는데, 권력자인 대원군의 신임을 받고 있어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 구포는 수운창과 선착장을 갖춘 유통과 물류의 중심지였다. 수운창은 조창(漕倉)으로 조세로 거둔 현물을 모아 보관하고 이를 중앙에 수송하기 위해 수로연변에 설치한 창고 및 이 일을 담당하던 기관이었다. 구포지역은 백성들이 이동하고 물류가 유통되는 요지로서 세수가 엄청났다. 구포는 장사를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세금 수입도 막대하여 동래군에 그냥 넘겨줄 수는 없었다. 양산의 유림(孺林)에서 우석규(禹錫奎), 서상로(徐相魯), 이기수(李基洙) 세 사람을 공의(公議)로 추대하여 중앙 관리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한양으로 보냈다. 시골 선비들로서 백방으로 노력해도 연줄이 닿지 않아 임금이나 고위 관료들에게 직접 뜻을 전달할 수 없었다. 구포를 양산으로 환속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향하기에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고심 끝에 관료들의 관심을 끌어낼 방법을 강구하였다. 최후 수단으로 목숨 걸고 목멱산(남산) 봉수대에 몰래 가서 밤에 봉화(烽火)를 올리기로 하였다. 목멱산 봉수대는 각 지방에서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올리는 봉화가 최종적으로 모이는 중요한 봉수대였다. 만일 허위로 봉화를 올리면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거짓으로 봉화를 올린 이들은 결국 포졸에게 체포되어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되었다. 사건의 자초지종이 영상(領相)대감 이유원(李裕元)에게 보고되자 대감은 삼인의 의기(義氣)를 가상히 여겨 봉수대 봉화 사건을 면책하였다. 이들의 상소를 수용하여 고종 12년(1875년)에 구포(좌이면)를 양산군에 환속토록 조치하였다. 정현덕 부사는 그 전해에 파직되어 유배 중이었다. 이 세 비석은 구포를 되찾았다는 뜻의 구포복설비(龜浦復設碑)라고 한다. ‘영상대감 이유원 영세불망비’는 구포를 양산군에 복원 조치한 영상대감의 은혜를 기리는 비석이며, ‘군수 어윤중 영세불망비’는 복원될 때 군수의 공덕을 기린 것이고, ‘군수 이능화 애민선정비’는 비석을 건립할 당시의(1879년) 군수 공덕을 기린 것이다. 이 세 비석은 양산의 내원사 입구 국도변에 세워져 있다가 현재는 양산 향교 앞으로 옮겨 세워져 보존되고 있다. 양산시립박물관은 개관 4주년을 기념해 2017년 4월 11일부터 6월 25일까지 특별기획전 ‘삼인행(三人行) 1874, 한양으로 간 세 사람’을 개최한 바 있다.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봉홧불을 피워 구포를 지킨 양산 사람들의 고향 사랑을 담은 구포 환속과정을 시간순으로, 입체적으로 스토리텔링하여 전시하였다. 양산시립박물관에서 마련한 특별기획전은 부산 구포 환속문서를 통해 양산의 옛 땅이었던 구포의 역사를 살펴보고 환속과정을 통해 양산의 선조들이 보여준 애향심을 재조명하기 위하여 개최되었다. 특별기획전에는 양산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구포복설(龜浦復設) 상서문(上書文) 12점을 비롯해 구포 관련 역사 자료 100여 점이 전시되었다. 상서문에는 구포가 500년간 양산에 속해 있었으며 당시 구포의 가구 수가 1만호에 달하고 세금의 수입도 구포를 제외한 양산지역을 다 합한 것보다 100배나 많아 구포가 동래에 귀속될 경우 양산이 직면할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포는 1904년 다시 동래 땅이 되었다. 양산군의 선조들이 구포를 동래에 부당하게 빼앗겼을 때 용감하게 목숨 걸고 지킨 애향심은 후세들이 본받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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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세계문화유산인 통도사 매화나무 관리세계문화유산인 통도사 매화나무 관리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한국의 3대 사찰 중 으뜸인 불지종찰 통도사는 천년고찰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7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 경북 안동 봉정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위원회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대해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과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이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기준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전했다. 세계유산위는 아울러 산사의 종합정비 계획과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경내 건물 등에 대한 관리방안, 등재 뒤 늘어날 관광객 대책을 마련하고, 건물을 새로 지을 경우 세계유산센터와 사전 협의할 것도 추가 권고사항으로 요구했다고 문화재청은 덧붙였다. 세계유산위의 권고사항을 보면 산사의 종합정비 계획, 건물 관리방안, 관광객 대책, 신규 건물 건립은 세계유산센터와 협의 등이 있다. 여기에 세부적으로 통도사 자장매, 홍매화 등 매화나무에 관한 사항은 물론 없다. 그러나 증가하는 관광객 대책의 범주에 수목 관리도 포함시킬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의 일부인 통도사의 수백 년 된 고목, 수십 년 된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옮기는 것도 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를 새로 심을 때도 신중하게 고려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통도사의 명물인 영각 앞의 자장매, 극락보전 옆의 연분홍 매화나무, 진분홍 매화나무도 잘 관리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년 자장매와 홍매화를 보기 위하여 전국에서 많은 불자와 관광객이 몰려들어 통도사 입장 수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소중한 매화나무는 잘 관리해야 하지만 매번 전지를 심하게 하여 꽃이 볼품없게 되는 것이 문제다. 자장매, 홍매화가 풍성하고 화려한 꽃을 피우면 관광객, 사진가들이 엄청나게 몰려든다. 올해는 매화나무 전지를 심하게 하여 꽃이 초라하여 예년에 비해 매화꽃을 감상하는 방문객이 대폭 감소하였다. 지난 2월 21일에 가보니 자장매는 2021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3월 8일에 다시 가보니 자장매가 이미 시들기 시작하여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연분홍 매화나무와 진분홍 매화나무도 전지를 많이 하여 꽃이 볼품이 없었다. 한송정 앞에 있는 수양매화 역시 전지를 심하게 하여 땅으로 늘어진 가지가 없고 깡총한 느낌이 들었다. 전지를 한 사람이 수양매화의 특성을 모르고 무조건 잘랐기 때문에 이런 형편없는 모습이 된 것이다. 앞으로 2022년에는 매화나무 전지를 하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경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멋대로 나무를 자를 바에야 차라리 그대로 두면 내년에는 틀림없이 풍성한 매화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는 바이다. 진분홍 매화나무 옆에서 매화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김창한 화백을 올해 처음 만나서 반가웠다. 매화꽃이 볼품없다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올해 자장매가 화려한 꽃을 피웠다면 김창한 화백은 일찍부터 자리잡고 매화꽃을 그렸을 것이다. 통도사 자장매, 홍매화는 방문객의 눈길을 끄는 인기 스타다. 여기에 김창한 화백이 매화나무 밑에 캔버스를 펼치고 매화꽃을 그리는 것이 어우러져야 자연스런 풍경이 완성된다. 자장매 안내판도 글자가 전부 마모되어 알아 볼 수 없다. 통도사에서 매화나무 관리에 신경을 써서 전지는 제발 아주 조금만 하길 바란다. 아울러 거름도 주고, 영양제도 주입하며 병충해 방제도 잘하길 당부드리는 바이다. 방문객은 아름다운 매화꽃을 감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어울리는 자장매, 홍매화의 전지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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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서울개발나물과 선제비꽃의 보호"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서울개발나물과 선제비꽃의 보호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당곡천이 있는 원동습지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된 서울개발나물과 선제비꽃의 서식지가 있다. 서울개발나물은 이름 그대로 서울에서 발견되었으나 1967년 마지막 채집된 이후 현재는 멸종 상태이다. 환경부 국립생활자원관은 2011년 양산에서 서울개발나물을 극적으로 발견하였다. 현재 유일하게 양산의 원동습지에서 자라고 있다. 서울개발나물은 미나리과 여러해살이풀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식물이다. 중부 이남 풀밭과 습지에 매우 드물게 살며, 7~8월경에 흰색 꽃이 피고, 8~9월 열매를 맺는다. ‘지촌인삼실바디’, ‘나도감자개발나물’, ‘나도감자가락잎’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한국적색목록에 멸종위기범주인 위급종(CR)으로 평가되어 있다. 선제비꽃은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식물이다. 국내에 분포하는 제비꽃속 식물 중에서도 높이 70cm까지 자라는 대형종이다. 하천이 범람하기 쉬운 축축한 풀밭에서 서식한다. 우리나라 경기도 수원, 경남 양산에 자생한다. 현재 한국적색목록에 멸종위기범주인 위급종(CR)으로 평가되어 있다. 선제비꽃은 원동습지에 서식하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야생생물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보호를 위하여 환경부가 지정 보호하는 생물들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인하여 개체 수가 현격히 감소하거나 소수만 남아 있어 가까운 장래에 절멸될 위기에 처해 있는 야생생물을 말하며, 법으로 지정하여 보호·관리하는 법정보호종으로, 현재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과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나누어 지정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멸종위기종에 관한 각종 금지조항 및 의무사항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최대 7천만 원까지 벌금을 물거나 7년까지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은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인하여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로서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종으로 현재 60종이 지정되어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은 현재 207종이 지정되어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을 법적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이다. 특정야생동식물은 다른 법률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파충류, 양서류, 곤충류와 식물류 92종을 지정하였다. 지정목적은 자연생태계 유지와 종의 멸종방지를 위한 것으로 멸종위기 개념이 도입된 최초의 법정보호라 할 수 있다. 이후 1993년도에 지정 대상이 확대되어 179종으로 늘어났고, 1996년도에는 어류가 추가되었으며 특정야생동식물의 정의를 학술적 보호가치가 있거나, 멸종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야생동식물로 규정하였다. 2017년 12월 29일 2차 개정을 통해 9개 분류군 267종 지정(I급 60종, II급 207종) 및 관찰종 34종, 신규 지정 25종(신규 19종, 관찰종→지정종 6종), 4종(해제 1종, 지정종→관찰종 3종), 11종을 등급 조정(상향 10종, 하향 1종)하였다. 또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단순히 금지 및 의무사항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멸종위기종의 보호와 생존을 위한 국가의 의무, 즉, 서식지 보전,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 조사·연구, 서식지외 보전기관 지정, 멸종위기종의 복원사업 추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서울개발나물의 세계적인 분포를 보면 한국, 중국, 일본에 국한되어 있다. 서울은 서울개발나물의 북방한계선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도시개발로 사라지게 되었다. 일본 역시 습지개발, 자연천이로 인해 멸종위기를 맞고 있어 일본적색목록 위협종(EN)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선제비꽃은 세계적으로 한국, 러시아, 중국, 일본에 분포한다. 여러해살이풀로 저지대의 습지에서 갈대나 물억새와 같은 정수식물에 기대어 산다. 꽃은 5~6월에 피고, 열매는 삭과로 6~7월에 익는다. 짧은 뿌리줄기가 있다. 줄기는 가늘게 여러 개가 모여 나며 곧게 선다. 보통 높이는 30~50cm 정도이다. 잎은 어긋나며, 삼각상 피침형으로 밑은 얕은 심장형이나 끝으로 갈수록 점차 뾰족해지고 가장자리에 낮은 톱니가 있다. 잎의 길이는 4~8cm이고 너비는 1~2cm이다. 서울개발나물과 선제비꽃이 서식하는 원동습지에는 당곡생태학습관이 건립되어 2021년 9월 7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귀중한 자원을 보호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낚시꾼들이 원동습지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한다. 낚시꾼들에 의해 서울개발나물과 선제비꽃의 서식지가 훼손되고 있다. 서식지에는 보호 방책을 설치하고 CCTV도 설치하여 귀중한 자원의 외부 반출이나 훼손을 막아야만 한다. 서울개발나물과 선제비꽃의 인위적인 증식을 통해 관광객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전시포를 조성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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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 화요칼럼심상도박ㄱ사 호요칼럼=통도사의 자장매는 개화가 빨라 한겨울에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에 많은 불자, 관광객, 사진 동호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영각 앞에 있는 자장매는 이르면 1월 초순부터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하여 거의 3월 중순까지 꽃을 볼 수 있다. 또한 극락보전 옆에 있는 연분홍 홍매화, 진분홍 홍매화는 개화는 좀 늦지만 자장매가 시들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개화한다. 피는 시기가 달라서 전체적으로 홍매화를 볼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늘어나 장점이 된다. 수령이 오래되지 않았지만 성보박물관 옆에 있는 한송정 식당 앞의 수양매화도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축 늘어지면서 꽃이 피어 방문객들을 즐겁게 만든다. 아직 개화하지 않았는데, 전지를 심하게 하였다. 그리고 전라도에서 이식해온 굵은 가지가 다섯 개로 쭉 뻗은 ‘오향매’도 있다. 현재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잔가지가 많지 않아 앞으로도 몇 년이 더 지나야만 아름다운 매화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장보각 옆에는 새로 심은 홍매화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통도사 자장매와 홍매화가 올해는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풍성한 꽃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필자는 매년 통도사의 홍매화 사진을 찍고 있어 연도별로 비교 가능한 사진을 많이 갖고 있다. 2월 21일 방문하였을 때 자장매의 개화 상태가 좋지 않아 깜짝 놀랐다. 매화꽃의 아름다움을 좌우하는 첫 번째 요인은 겨울 날씨와 기온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홍매화 나무를 관리하는 것이 영향을 미친다. 필자가 자주 지적하는 사항이지만 나무를 전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경회사에서 나무를 전지할 때 너무 바짝 자르면 꽃이 필 가지가 줄어서 화려한 꽃을 기대할 수 없다. 끝으로 병충해 방지와 영양 공급도 매우 중요하다. 자장매는 사람 접근을 제한하는 보호책이 나무였는데 이번에 보니 철제 펜스로 바뀌었다. 자장매 안내판은 망가져 글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 밑둥치에는 영양제 통을 4개 꽂아놓았다. 자장매와 홍매화는 통도사 입장객 수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나무이므로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사정을 잘 아는 조경회사에 맡겨 홍매화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조경회사가 경우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여름에 가지치기를 할 때 전문 조경사가 심혈을 기울이면 그해 겨울의 홍매화는 꽃이 풍성하고 화려해 방문객의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가지치기를 심하게 하거나 무자격자가 마구잡이로 전지하면 그해 겨울 매화꽃은 볼품이 없어져 관람객들이 실망하게 된다. 극락보전 옆의 홍매화 두 그루는 어떤 해는 마치 분재를 만들기 위해서 전지를 하는 것처럼 바짝 자를 때도 있어 꽃이 풍성하지 않아 관광객들의 외면을 받기도 하였다. 올해의 전지 상태는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자장매는 전지를 심하게 한 상황이어서 작년 2월 16일에 찍은 사진과 올해 2월 21일에 찍은 사진을 대조해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올해 자장매는 부분적으로 개화하였으며 꽃이 풍성하지 않다. 극락보전 옆의 홍매화는 아직 거의 피지 않은 상태이다. 통도사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경로우대 입장객 연령을 70세로 상향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전각 안의 참배객도 제한하고 있다. 단체 방문객 해설도 전면 금지하여 위반할 경우 퇴장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2월 21일에 사진가 몇 명이 대형 카메라를 들고 와 자장매를 찍고 있었는데 꽃이 화려하게 피었던 작년에 비하면 숫자가 대폭 줄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매년 자장매 밑에서 매화꽃을 그리던 김창한 화백도 보이지 않았다. 자장매와 홍매화 관리를 잘하면 매화꽃 구경하고 사진 찍으러 오는 방문객이 증가하여 입장객 수입을 많이 올릴 수 있다. 전지를 심하게 하지 말고, 매화나무에 거름과 비료를 주면서 잘 보살피면 매년 화려한 꽃을 피워 방문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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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 화요칼럼심상도 박사 화요칼럼 = "증산성 산책로와 차나무"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성 둘레길 남부공원 삼거리에는 차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증산성 둘레길로 올라가는 물금남부공원 입구에는 도로를 중심으로 양산물금LH1단지아파트, 양산물금LH천년나무1단지아파트가 마주보고 있다. 물금남부공원에는 주차장이 없고, 증산성 방문객은 아파트에 주차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주차할 곳은 일반택지 안에 있는 물금중부공원 주변의 골목밖에 없다. 이곳에 주차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된다. 천년나무아파트 옆에 있는 진입로에는 트릭아트 포토존이 두 군데 설치되어 있다. 트릭 아트(Trick Art) 포토존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을 찍었을 때 착시효과가 극대화된다. 첫 번째 포토존은 높은 낭떠러지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을 연출할 수 있다. 두 번째 포토존은 스파이더맨과 함께 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히트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주인공 톰 홀랜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 팬임을 깜짝 고백한 바 있다. 월드 클래스로 인정받은 손흥민 선수는 득점했을 때 스파이더맨 포즈로 골 세리머니를 하여 톰 홀랜드에게 화답하였다. 포토존을 지난 산책로 입구에 도달하면 ‘문학 속 양산의 곳곳들’ 안내판이 있다. 「김정한 소설 산서동 뒷이야기 속 물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김정한 소설가는 ‘수라도’라는 작품을 통해 물금읍 용화사와 원동면 화제리를 무대로 일제강점기 때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의 지조를 견지한 가야부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묘사하였다. 양반 집안의 며느리로서 고단한 삶을 이어간 가야부인의 일생이 담겨 있다. ‘산서동 뒷이야기’의 소설 속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낙동강 하류에 있는 ㅁ(물금)역을 지나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산서동이란, 벼랑에 매달린 듯한 작은 마을 철둑 너머 <모랫등>이란 개펄 마을이었다. 그곳은 개펄에 뚝뚝 떨어져 자리 잡고 있는 들마을이니 오리숲이니 하는 조그만 부락들과 함께 넉넉잡아 3년들이 한 번씩은 물난리가 나는 호된 물난리를 겪는 위험지대였다.” 소설에 나오는 산서동은 현재 증산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는 남부마을이다. 증산에는 현재 남부마을 당집이 남아 있다. 증산성 둘레길과 가까워 쉽게 갈 수 있다. 필자가 전에 소개한 대로 남부마을 당집은 나비보살이 관리하고 있다. 남부마을 당집은 현재 움막처럼 볼품없는데, 양산시에서 증산마을 당집처럼 기와집으로 번듯하게 다시 신축해주었으면 좋겠다. 산책로 입구에는 ‘물금읍 증산성 산책로’ 안내판이 있는데 낡아서 제구실을 못하고 있으므로 교체를 해야 하겠다. 유수지 주변에 체육시설도 있고, 산책 후 옷에 묻은 먼지를 에어로 터는 시설도 있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여러 갈림길이 나온다. 증산성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주요 산책로다. 둘레길 주변에 먼저 털머위 군락지가 있다. 겨울에도 잎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왼쪽 위로 보면 파란색을 띤 차나무가 보인다. 증산은 차나무의 주요 군락지가 있는 생태학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양산에는 차나무 군락지가 다방동에도 있고, 웅상지역의 우불산성에도 있다. 귀중한 자원에 대해 양산시에서 안내판도 설치하지 않고 보호에 무관심하다. 증산성 둘레길 개설 때 오히려 차나무 군락지가 훼손되는 사례도 있었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차나무 재배지를 지나 동아중삼거리 방향으로 가는 대나무 숲속에 차나무가 서식하고 있다. 대나무 아래 이슬을 먹고 자란 차는 죽로차라 하여 귀하게 대접받는다. 동아중 삼거리 이정표에서 둘레길을 직진하지 않고 산쪽으로 난 시루능선 오거리로 올라가는 곳 등산로 주변에도 차나무가 분포하고 있다. 길옆에 무덤이 여러 기가 있는데, 무덤 쪽으로 가면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대나무 아래에 차나무가 일부 자라고 있다. 남부공원 반대쪽인 증산마을에서 증산 귀암으로 오르는 등산로 주변도 차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증산마을 당집 주변에도 차나무가 많다. 앞으로 증산성 둘레길 주변에 차나무를 심어서 명소로 가꾸고 시민들에게 홍보하여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하겠다. 신기산성 둘레길에는 이미 녹차길이 조성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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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EWS심상도 총괄이사,관광경영학박사 의 화요칼럼Ynews심상도 총괄이사(동남 문화관광연구소소장. 관광경영학박사)의 화요칼럼 신기리산성 복원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양산 신기리산성은 사적 제97호로 지정되었다. 성벽이 많이 무너졌지만 중간 중간에 일부 남아 있고, 성벽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답사하기에 편하다. 귀중한 문화유산인 신기리산성을 복원하면 역사유적을 양산시민들에게 확실하게 홍보할 수 있고, 등산로서의 이용가치도 매우 높다. 신기리산성은 양산시 동북의 성황산(해발 330.6m) 정상부에 띠를 두르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양산군 동북방 5리 되는 곳에 있다고 한다. 신기산성은 둘레 4,368척, 높이 6척으로 성안에 우물과 6개의 연못, 2개의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행정구역명을 붙인 신기리산성은 원래 성황산성으로 불리우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성황사의 정상부는 남쪽과 북쪽의 높은 봉우리가 작은 분지를 둘러싼 모양으로 바깥쪽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벽은 분지를 둘러싼 높은 곳을 따라 쌓아 타원형에 가까운 평면을 취하고 있다. 성벽은 주변에 있는 안산암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아 올렸는데, 틈새는 작게 깬 돌로 메웠다. 성벽은 아래가 윗면보다 30~50cm 정도 넓게, 3~5단 정도의 높이로 쌓아 올렸다. 무너져내린 곳이 많은데, 현재 높이는 약 2m 정도이다. 산성의 서쪽은 남쪽으로 낙동강에 합류되는 양산천이 있고, 남쪽은 북부천을 건너 북부동산성을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남해에서 양산천을 거슬러 양산천으로 북상하는 교통로를 통제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산성 안팎에서 채집되는 토기편으로 보아 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축조연대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463년(자비왕 6년) 왜구가 삽량성(歃良城)에 침입하였다가 패퇴한 사실과 673년(문무왕 13)과 687년(신문왕 7년)에 삽량주(歃良州 : 현재의 양산)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는 신기산성을 명확히 가리키는 내용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기리산성의 우물은 현재까지 남아 있어 약수터로 이용되고 있다. 산성의 필수 시설은 우물인데 산성의 터를 잘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약수터 부근은 운동시설도 설치되어 있으며, 등산로에 야간 조명등도 있어 안전한 산행을 돕고 있다. 오근섭 전 양산시장 당시에 만든 정자인 성황정도 등산객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성황정 주변은 성내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인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농토를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어 자연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처음 산성을 축조한 신라시대 때 이 농토 근처에 우물과 연못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산시내에서 신기리산성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여러 군데 개설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다. 주요 등산로 중 첫 번째는 신기리 고분군 옆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비교적 완만한 편이어서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양산시립박물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갈 수 있다. 신기리고분군 왼쪽으로는 북정리고분군이 있어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신라시대 고분들이 흩어져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도굴되어 움푹 들어간 구덩이만 보인다. 두 번째 등산로는 신기 해강아파트 근처에서 올라가는데, 야간 조명등도 설치되어 있다. 약간 가파른 구간이 있다. 계속 올라가면 성황정 정자가 나오며, 무분별하게 개간된 밭 사이로 등산로를 지나게 된다. 끝으로 성락사를 거쳐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등산로 주변에 도굴된 고분들이 많이 눈에 띈다. 등산로에 체육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산막일반산업단지와 인접해 있어 등산로 왼쪽에 많은 공장 건물들이 보인다. 성락사 주변은 아파트도 많아 산막일반산업단지와 신기리산성 사이에 완충 녹지가 있어야 하는데, 모조리 개발하려다가 성락사와 주민들 반대로 일부 녹지가 남게 되었다. 성락사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옆으로 신기리산성 녹차길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양산시립박물관, 북정리고분군, 신기리고분군, 해강아파트 방향으로 연결된다. 신기리산성을 복원하면 양산을 대표하는 성곽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산의 또다른 산성으로는 북부동산성, 새미기고개에 있는 마고산성, 웅상지역의 우불산성 등이 있다. 산성 복원에는 많은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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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면 화제리의 돌로 만든 소규모의 적석총은 도굴로 인해 봉분 위가 무너져내렸는데, 발굴 전문 조사기관에서 조사를 해봐야만 무덤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적석총이 있는데, 지난 1월 10일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과 함께 답사를 했다. 돌로 쌓은 무덤으로 봉분 위쪽이 무너져 있어 도굴된 것으로 보였다. 규모가 크지 않고 아담했다. 양산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적석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산 207-5번지의 은현리적석총이다. 마을 뒤편 야산에 위치하며 경사가 10˚ 이내로 완만한 곳에 축조되어 있다. 사람 머리 크기의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삼국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붕괴로 말미암아 확실한 구조는 알 수 없다. 화제리 적석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경남도내에 있는 것으로는 산청군의 가야시대 금관국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진다는 뜻에서 전 구형왕릉으로 불리는 적석총이 대표적이다. 적석총(積石塚)은 일정한 구역의 지면에 구덩이를 파거나 구덩이 없이 시체를 놓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묘역을 만든 무덤을 말한다. 돌무지시설을 한 점에서 침촌리형(남방식) 고인돌과 공통되므로, 원래 고인돌인 무덤이 후대에 상석이 없어져 돌무지무덤으로 된 가능성도 있다. 석총의 범주에는 고구려의 적석총을 포함하여, 백제의 초기 묘제로 추정되는 북한강, 남한강, 한탄강 등지에 분포하는 즙석분구묘들도 이에 해당한다. 고구려의 대표적 무덤 양식이 적석총이다. 고구려의 적석총은 중국 요동지역을 포함한 동북지역 일대에서 청동기시대를 즈음하여 나타났던 적석묘 축조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압록강과 한강유역에 보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돌무지무덤은 형태상 무기단식 적석총(돌각담무덤, 적석총) - 다곽식 무기단식 적석총이다. 남한에서 조사된 백제 적석총은 개성 장학리, 경기도 연천군의 횡산리, 삼곶리, 학곡리, 삼거리, 우정리, 동이리, 전곡리에 있다. 필자는 연천군에 있는 적석총을 작년에 답사하였다. 강원도 춘천시 중도, 신매리, 위라리,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 금남리, 신원리, 양수리, 대석리에도 있다. 또한 강원도 정선군 덕천리 소사, 덕천리 제장, 강원도 평창군 하안미리, 중리, 종부리, 응암리, 마지리에도 있다. 충북 제천군 도화리, 양평리, 교리,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경기도 용인시 마평동 등 28곳에서 40여 기가 보고되었다.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주인공인 온달장군 무덤으로 전해지는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적석 구조물을 필자는 작년에 답사한 바 있다. 한양대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으나 돌 속에서 무덤이나 유물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태장이묘로도 불리는 적석총은 경사가 가파른 산 경사면을 이용해 피라미드식으로 수많은 돌덩이와 자갈을 단을 이루며 쌓아 올린 것으로 판명됐는데 총단수는 계곡 아래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서쪽이 11단으로 맨 아래쪽 단은 총길이 22.5m에 이르며 3단이 확인되었다. 원동면 화제리의 돌로 만든 소규모의 적석총은 도굴로 인해 봉분 위가 무너져내렸는데, 발굴 전문 조사기관에서 조사를 해봐야만 무덤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적석총 인근에는 고인돌처럼 보이는 큰 바위도 있었지만 고인돌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전문가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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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시의 역사적 의의공주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시의 역사적 의의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 전시 충남 공주시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7일에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굴된 백제 굴식 벽돌무덤으로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묘지석이 출토되어 축조연대가 확실해 삼국시대 고고학 편년 연구의 주요한 기준을 제시한 획기적인 발굴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무령왕릉의 발굴 5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출토 유물 전체가 공개됐다.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시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를 마련하였다. 무령왕릉 출토유물을 한자리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상설전시실에서는 무령왕릉 출토유물 중 왕과 왕비가 착용한 대표적인 국보들을 새롭게 전시하였다. 기획전시실에서는 1971년 무령왕릉 조사와 지금까지의 연구성과, 앞으로의 연구과제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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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태자곡가의가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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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면화제리화제천에서식하는,반딧불이의보호원동면 화제리 화제천에 서식하는 반딧불이의 보호 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1. 반딧불이의 특성과 종류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화제천에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다. 현재 공사가 예정된 국지도 60호선 도로 노선이 원동초등학교, 화정천, 화제천 부근을 경유하고 있어 반딧불이 서식지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귀중한 생태자원인 반딧불이의 보호대책을 강구해야 하겠다. 반딧불이는 환경지표곤충으로 인식되고 있는 신비스런 곤충이다. 반딧불이는 맑은 물, 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대지에서만 살고 있다. 반딧불이는 자연생태계가 잘 유지되는 환경에서만 살기 때문에 산업화,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도로, 주택, 아파트, 공장 등의 건설로 반딧불이 서식지가 파괴되는 것은 인간의 생존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환경 변화와 오염은 반딧불이에게 치명적 해를 끼치게 된다. 반딧불이는 정서적 곤충으로 사랑받고 있다. 반딧불이는 인간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반딧불이는 사람들에게 동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대표적인 정서곤충이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반딧불이의 서식지와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반딧불이와 그 먹이(다슬기) 서식지를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2002년 1월 무주 일원의 반딧불이와 그 먹이(다슬기) 서식지로 명칭을 변경, 3곳으로 확장하여 지정하였다. 반딧불이는 딱정벌레목 반딧불이과의 곤충으로 이칭(異稱)으로 개똥벌레, 불벌레, 형화(螢火)라고 한다. 딱정벌레목 반딧불이과는 흔히 ‘개똥벌레’로도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약 1,900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애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등 8종이 기록되어 있다. 몸길이는 4∼20㎜ 정도이다. 체색은 노란색인 것, 검고 바깥가장자리가 노란색인 것, 앞가슴등판이 주황색인 것 등이 있다. 배마디 끝은 흐린 노랑 또는 주황색이다. 날개는 2쌍이며, 날 때에는 뒷날개만 사용한다. 늦반딧불이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가장 큰 종으로 가을에 성충으로 나타나며 눈이 가슴 아래에 위치한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배 끝의 마디들에서 나온다. 그 부분에 발광세포가 있으며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을 원료로 노란색 또는 황록색의 빛이 만들어진다. 반딧불이는 암수 모두 빛을 내며 대부분 밤에 활동한다. 낮에는 습기가 있는 곳에 숨어 지내며 밤이 되면 빛을 내어 짝을 찾는다. 종에 따라 불빛을 내는 파장, 강도 등 차이를 보이며 위협신호 및 위급상황을 알리는 신호로서도 불빛을 낸다. 알, 애벌레 시기에도 일부 빛을 내며 99%가 빛이고 1% 정도가 열로 빠져나가므로 뜨겁지 않은 냉광이다. 암컷은 풀 밑, 이끼 또는 습한 흙 등에 산란한다. 성충은 대부분 먹이를 먹지 않는다. 애반딧불이 등을 제외한 유충은 대부분 육지에서 생활하며 밤에 활동한다. 먹이로 다슬기, 달팽이 등 연체동물을 날카로운 큰 턱으로 물고 소화액을 주입하여 빨아먹는다. 애반딧불이의 성충시기는 약 15일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반딧불이 종류는 운문산반딧불이(파파리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가 있다. 운문산반딧불이(파파리반딧불이)의 생태적 특성은 국내에서 가장 빨리 출현하는 종이다. 5월 하순경부터 출현하며, 지역에 따라 7월 중순에 출현하기도 한다. 크기는 10~14mm로 애반딧불이보다 약간 크다. 암컷은 국내에 서식하는 애반딧불이나 늦반딧불이와는 달리 크기가 수컷보다 작다. 암컷의 속 날개는 퇴화되어 날지를 못한다. 유충은 주로 습한 지역에서 활동하며, 달팽이류, 고동류 등을 먹고 생활하는 육서종이다. 애반딧불이는 수서종으로 성충은 6월경부터 출현하여 7월까지 활동한다. 암컷은 출현 후 1~3일 안에 교미를 하면서 산란을 몇 회에 걸쳐 이끼나 풀의 틈에 알을 낳는다. 알은 약 20~25일 정도면 부화한다. 유충은 약 10개월 동안 물속으로 들어가 다슬기, 물 달팽이 등을 먹고 자란다. 늦반딧불이는 국내에서 가장 큰 종으로 8월~9월에 출현한다. 일몰 후 출현하여 약 1시간 정도 빛을 발광한다. 크기는 암컷이 20mm, 수컷이 15mm 내외이며, 암컷은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를 못한다. 성충 수명은 약 15일 정도이며, 빛과 성페르몬(Permone)에 의해 교신한다. 2. 반딧불이의 어원 현대 국어 ‘반디’의 옛말인 ‘반되’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났다. 근대국어 후기에 자음 뒤에서 이중모음 ‘ㅢ’가 ‘ㅣ’로 바뀌는 경향에 따라 ‘반듸’로부터 현대 국어와 같은 ‘반디’ 형태로 변화하였다. 훈몽자회(訓蒙字會) 상권 21에 의하면 ‘반도’로 나와 있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서는 ‘반되’로 기록되어 있다. 청구영언에서 보면 이들이 내는 불빛인 ‘반딧불’은 ‘반되불’로 표기하고 있다. 현재의 국어사전에서는 ‘반디’는 [동물] 반딧불잇과의 딱정벌레를 통틀어 이르는 말. 몸의 길이는 1.2~1.8cm이며, 검은색이고 배의 뒤쪽 제2마디에서 제3마디는 연한 황색으로 발광기가 있으며 머리의 뒷부분이 앞가슴 밑에 들어가 있다. 성충은 여름철 물가의 풀밭에서 사는데 밤에 반짝이며 날아다니고 수초에 알을 낳으며 애벌레는 맑은 물에서 산다.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생물학 분야에서는 1948년에 출간된 동물학 교재에서 애반딧불이류를 서술하면서 ‘개똥벌레’ 또는 ‘반딧불’로 표기하였다. 늦반딧불이는 ‘늦반디’라고 명시하였다. 1968년 한국동물명집 곤충편에서는 반딧불 + 접미어 ‘이’가 붙어서 ‘반딧불이’가 곤충 이름이 되었다. 이 곤충이 내는 불빛만을 ‘반딧불’로 표기하게 되었다. 개똥벌레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우리 선조들은 반딧불이가 개똥, 소똥에서 생겼다고 생각해왔다. 옛사람들이 본 것은 반딧불이의 성충이었을 것이므로 밤에는 날아다니지만 낮동안에는 습기가 있는 곳에 가서 쉬게 되고, 똥 밑에 숨어지낼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시골에 사는 노인들은 두엄광에서 반딧불이를 보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이와 같이 반딧불이가 똥을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똥이란 말이 들어가는 것은 보잘것없고 천한 것을 뜻한다. 과거에는 반딧불이가 매우 풍부하여 지천에 깔린 곤충이었다는 뜻에서 ‘개똥’이 ‘벌레’ 앞에 붙어 개똥벌레가 된 것으로 유추할 수도 있다. 3. 형설지공(螢雪之功) 형설지공(螢雪之功)은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功)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工夫)하여 이룬 공(功)을 일컫는 말이다. 출전은 진서(晉書)이다. 형설지공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중국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말과 행동이 곱고 얌전한 노력가(努力家)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켜는 데 사용하는 기름조차 없었다. 소년은 밤에도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엷은 명주 주머니를 벌레통처럼 만들어 그 속에 반디를 수십 마리 집어넣어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비추어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상서랑(尙書郞)이라는 중앙 정부의 고급 관리로 출세했다. 여기에서 차윤성형(車胤盛螢), 차윤취형(車胤聚螢)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또한 같은 시대의 손강(孫康)이라는 소년은 어릴 때부터 악한 무리들과 사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으나 역시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켤 기름을 살 수가 없었다. 소년은 궁리 끝에, 겨울날 추위를 견디며 창으로 몸을 내밀고 쌓인 눈에 반사되는 달빛을 의지해 책을 읽었다. 그 결과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관원을 단속하는 관청의 장관이 되었다. 여기에서 손강영설(孫康映雪)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이 두 사람의 성공사례를 합하여 형창설안(螢窓雪案)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형창설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반딧불이 비치는 창과 눈에 비치는 책상(冊床)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학문에 힘씀을 비유한 말이다. 4. 반딧불이 축제와 서식지 복원사업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반딧불이 축제는 무주반딧불이 축제이다. 제25회 무주반딧불축제가 지난 8월 28일~9월 5일까지 ‘반디의 꿈, 산골생태도시, 무주이야기’라는 주제, ‘당신을 달래줄 무주에서의 휴식’이라는 슬로건으로 전북 무주군에서 열렸다. 제1회 축제는 1997년에 개최되었다. 1998년 제2회 축제는 우수기획문화축제 지정(한국문화예술원), 1999년 제3회 축제는 문화관광축제 지정(문화관광부), 2000년 제4회 축제는 새천년밀레니엄축제 지정(문화관광부), 2001년 제5회 축제는 우수축제(문화관광부), 2002년 제6회 축제는 우수축제(문화관광부), 한국방문의 해 문화관광부 지정축제로 선정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2003년 제7회 축제 ~ 2012년 제16회 축제 정부 지정 우수축제 10회, 2013년 제17회 ~ 2017년 제21회 축제 정부 지정 최우수축제 5회, 제22회 ~ 제23회 정부 지정 대표축제, 제24회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명예문화관광축제로 인정을 받았다, 축제 위상을 보면 새천년준비위원회 선정 뉴밀레니엄 축제, 2016년 소비자가 뽑은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대상 지역축제 부문 대상 수상, 2016~2017년 대한민국축제 콘텐츠대상 축제관광부문 대상 수상 등으로 이름을 떨쳤다. 무주반딧불이 축제는 반딧불이를 통해 국내 대표적 청정지역인 무주군을 알리고, 글로벌 축제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제25회 축제는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상황을 감안해 자연과 향토자원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진행하였다. 축제 프로그램은 ‘반딧불이 신비탐사’, 태권도원과 연계한 ‘1박 2일 생태탐험’, 지역대표 역사문화행사인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 봉안행렬 재현’ 등이다. 축제장은 따로 조성하지 않고 ‘반딧불이 신비탐사(1일 탐사 인원 200명)’와 ‘1박 2일 생태탐험(1회 참가 인원 40명)’은 사전예약제로 운영하였다. 부산광역시 영도구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태종대에서 지난 6월 13일 ‘제20회 태종대 반딧불이 관찰 체험행사’를 ‘영도 어게인! 자연의 빛을 발하다!’라는 주제로 개최하였다. 태종대 유원지내 체육공원 및 태종사 일원에서 열렸으며 반딧불이 우화교실, 관찰과 체험, 생태전시회, 도보체험 등 가족과 함께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반딧불이와의 한마당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야간에는 반딧불이 출몰시간에 맞추어 반딧불이를 직접 감상하면서 동심으로 떠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의해 체험 참여자는 모두 사전접수를 통해서 실시하였다. 경기도 광주 화담숲 반딧불이 이벤트는 2021년 11회째를 맞이하였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반딧불이다. 지난 6월 18일부터 27일까지 9일 동안만 진행된 ‘반딧불이 이벤트’는 1일 200명 한정으로 선착순 진행하였다. 화담숲 반딧불이 이벤트는 반딧불이에 대한 영상물 상영, 유충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학습 등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밤 시간대 숲속에서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불을 밝히는 애반딧불이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해설가가 동행해 반딧불이 성장 과정, 생태환경에 대한 해설도 하였다. 화담숲 반딧불이 이벤트는 1일 총 8회,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15분 간격으로 진행되었으며, 하루 선착순 200명까지만 예약을 받았다. 입장료는 1만 5천 원. 올해 사용 가능한 화담숲 입장권 1장(10월, 11월 사용 불가)이 포함되었다. 반딧불이 이벤트 기간 ‘생태 숲 체험 패키지’도 판매하였다. 6월 18일부터 27일까지 금, 토, 일요일 총 6회 진행하는 ‘생태 숲 체험 패키지’는 주간 생태 체험과 야간 반딧불이 이벤트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이다. 반딧불이원, 곤충 생태관, 민물고기 생태관에서 다양한 곤충 및 생태 해설과 함께 먹이주기 및 관찰을 체험할 수 있다. 화담숲 생태 체험 패키지는 하루 선착순 20명만 이용 가능하며, 가격은 주간 생태 체험 및 반딧불이 이벤트 입장을 모두 포함하여 4만 원으로 책정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서구는 지난 10월 1일 구청 대강당에서 반딧불이 보호를 위한 ‘수밭골천 생태환경조사 용역’ 중간보고회를 가졌다. 이 조사는 도시생태축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도심 속 소하천인 수밭골천에서 발견되는 반딧불이 서식지에 대한 생태환경조사와 보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5월에 착수했다. 대구 도심의 반딧불이 집단 서식지로 알려진 수밭골천은 주변 경작지 확대와 하천공사 등 각종 개발 행위로 반딧불이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올해 8월말~9월초 늦반딧불이가 다수 발견되어 복원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보고회에선 반딧불이 서식에 영향을 주는 주변 경작, 불빛 교란 등 서식환경개선사업을 시작으로 2단계 반딧불이 증식사업 그리고 3단계 주민 체험프로그램 운영 등 단계별 보전 계획이 제시됐다. 달서구는 10월 말까지 생태환경조사 용역을 마무리하고 복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충북 옥천군이 대청호 일원 반딧불이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9월 29일 옥천군은 사업비 6억 원(기금 4억 2천 3백만 원, 군비 1억 8천만 원)을 들여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와 안내면 장계리 등 5곳에 반딧불이 서식지 조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올해 환경부 주관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대청호 안터지구가 선정되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옥천군은 내년부터 2년간 습지를 조성하고 반딧불이 유충을 키워 성과를 내기 위해 사업비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옥천군은 지난 9월 28일 금강유역환경청에 반딧불이 복원사업 추진계획을 제안 설명하고 금강수계 특별지원기금 지원을 요청했다. 한편 충북도에 반딧불이 복원·생태 네트워크 구축사업에 환경보전기금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반딧불이 서식지를 관리할 수 있도록 습지 조성, 유충 방사 등 사업 전반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옥천군은 예산 확보를 토대로 주민, 학계, 옥천군과 협력해 생물서식처 조성, 반딧불이 생태계를 복원하기로 하였다. 4. 원동면 화제리 화제천의 반딧불이 원동면 화제리 명언마을에 인공습지가 조성되어 있다. 인공습지 주차장, 산책로, 운동기구, 정자, 의자 등이 설치되어 있어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그러나 낮에 이곳을 산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민, 관광객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있다. 인공습지 바로 앞은 화제천이 흐르고 있다. 밤에 화제천 제방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화제천은 서편마을에서 흘러내려 온다. 오른쪽의 화정천은 지나마을을 거쳐 화제초등학교 앞을 돌아서 화제교 바로 위에서 화제천과 합류한다. 필자가 여기서 반딧불이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은 것이 2019년 9월 18일 초저녁이었다. 화제천 제방 위 산책로에는 2명이 산챈나온 주민을 만나고 그다음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제천 제방 위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는 정보는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이 알려주었다. 영남삿갓은 저녁식사 후 이곳을 즐겨 산책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서식하는 반딧불이 종류는 8~9월에 출현하는 가장 큰 늦반딧불이다. 영남삿갓에 의하면 8월 말에서 9월에 걸쳐 볼 수 있다. 이 귀중한 반딧불이 서식지가 잘 보전되어야 하는데, 국지도 69호선 공사가 이 근처를 경유하게 되어 있어서 문제다. 국지도 60호선은 화정천을 거쳐 화제초등학교 앞으로 경유하여 화제천 옆으로 지나가게 된다. 국지도 60호선 도로 공사로 인해 화정천, 화제천이 흙탕물이 일거나 환경오염으로 다슬기 서식지와 반딧불이 서식지가 피해를 볼 수 있다. 화제천은 다슬기의 주요 먹이인 다슬기가 서식하고 있다. 필자가 10월 2일 방문했을 때 화제교 바로 화제천에서 다슬기를 줍는 사람이 있었다. 현재 명언마을 바로 앞에 인공습지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이 교육차원에서 방문하여 생태학습을 하기에 좋은 장소다. 습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고, 인위적으로 인공습지를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양산시도 충북 옥천, 대구광역시 달서구처럼 반딧불이 서식지를 보호를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하겠다. 여태까지 화제천에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영남삿갓에 의해 최초로 알려졌다. 반딧불이는 환경지표 곤충이고 인간의 동심을 자극하는 정서적 곤충으로 사랑받기 때문에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앞으로 명언마을 앞의 인공습지와 화제천을 활용하여 화제 반딧불이 축제도 할 수 있다. 반딧불이가 살지 못하게 되면 그만큼 인간의 생활환경도 파괴되는 것이므로 자연생태계를 잘 보호해야 하겠다. 국지도 60호선 공사를 하게 되면 반딧불이 서식처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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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대에아름다운꽃무릇을심는사람들,동남문화관광연구소소장관광경영학박사심상도1. 꽃무릇 종류와 특성 상사화(相思花)와 꽃무릇(석산)은 분명히 서로 다른 꽃인데, 일반인들은 정확하게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꽃무릇은 석산(石蒜)이 올바른 명칭으로 돌마늘이다. 석산의 알뿌리가 마치 마늘 뿌리처럼 생겼다. 상사화는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학명은 Lycoris Squamigerera로 분포지역은 남미의 중남부지방으로 산과 들에 알뿌리로 번식한다. 특징은 따뜻하며 맵고 뿌리에는 독성이 있으며 약효는 비늘줄기에 있고 키는 50cm~70cm로 여러해살이풀로 수선화과에 속한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공통점과 서로 다른 점이 있다. 공통점은 두 꽃 모두가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사화는 잎이 먼저 돋아나고 그 잎이 진 다음에 한참 있다가 꽃이 피고, 꽃무릇은 꽃이 먼저 피고 그다음에 잎이 돋아나기 때문에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다. 상사화는 7~8월에 피는 여름 꽃이고, 꽃무릇의 개화 시기는 9월 중순부터 10월 초에 피는 가을꽃이다. 상사화는 여름에 잎이 없는 꽃자루 위에 4~8송이씩 무리 지어 연분홍색 꽃을 피운다. 잎은 꽃이 피기 전에 말라 죽는다. 꽃무릇은 새빨간 꽃이 피어 ‘석산‘, ‘상사화‘, 그리고 ‘이별초‘라고도 불리는데, 꽃과 잎이 다른 시기에 피어 서로 그리워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불교 신자들은 천상계의 꽃 ‘만주사화‘라고 부른다. 지상의 마지막 잎까지 말라 없어진 곳에서 화려한 영광의 꽃을 피운다 하여 피안화(彼岸花)라고도 한다. 별명인 ’만주사화는 법화경 등의 불경에서 유래했다. 또한 ‘천상의 꽃’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서로 상반되는 점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만주사화는 ‘하얗고 부드러운 꽃’이며, 석산의 외견과는 닮은 곳을 찾을 수 없다. 사찰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어 ‘스님꽃‘이라고도 한다. 사찰 주변에 꽃무릇이 많은 이유는 꽃무릇의 비늘줄기에 있는 녹말의 쓰임새 때문이라고 한다. 석산의 녹말로 풀을 쑤어서 탱화를 그리는 염료에 섞어서 사용하면 염료의 점성 때문에 흘러내리지 않고 벽에 잘 칠해지기도 하고, 또 천연 방부제 기능이 있어서 색이 바래지 않고 오래 가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종이가 좀이 쓸지 않게 막아주기도 하여 불경을 제본하거나 고승들의 초상화를 붙이는 데에도 썼다고 한다. 영문 이름은 ‘Red Spider Lily’로 거미의 다리와 비슷한 꽃술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서양인들은 꽃무릇에서 거미를 연상했다. 꽃무릇은 ‘지옥꽃‘이라고도 불리운다. 피처럼 빠알간 빛깔의 꽃과 알뿌리에 있는 독성 탓이다. 꽃말도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픈 추억’이다. 알뿌리에서 독성을 추출하여 독화살에 바르기도 했다. 핏빛처럼 새빨간 붉은 색상과 먹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독성을 비롯해 여러모로 죽음을 연상하기에 좋은 꽃이었기 때문인지 사인화(死人花), 장례화(葬礼花), 유령화(幽霊花), 지옥화, 면도날꽃, 여우꽃(狐草), 기아화(棄兒花), 붉은가재무릇, 노아산, 산오독, 산두초, 야산, 리코리스, 저승화 등의 이명이 있다. 2. 상사화 전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러 온 젊은 여인이 있었다. 불공을 끝낸 여인이 돌아가는 찰나 때아닌 여우비가 심하게 내렸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어느 젊은 스님의 가슴에 비에 젖은 새처럼 가여운 모습의 여인이 고스란히 들어앉게 되었다. 속세를 떠나 출가한 스님은 오욕칠정의 굴레를 벗어나야 함에도 수행의 정도가 어느 경지에 못 미쳐 이때부터 상사병에 걸렸다. 그날 이후 스님은 모든 식음을 전폐하고 오직 여인만을 연모하면서 시름시름 앓더니 석 달 열흘 만에 피를 토한 뒤 죽고 말았다. 이에 노스님이 시신을 고이 묻었다. 그러자 이듬해 9월 초순경 스님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꽃대가 솟아올랐다. 이루지 못한 연정을 대신하듯 붉은 핏빛 꽃을 피우는 꽃무릇이다. 반대 스토리의 전설도 있다. 젊은 여인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잘생긴 스님에 반하였지만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후 무덤가에서 핀 꽃이 상사화라고 한다. 상사화의 분류체계는 수선화과에 속한다. 상사화는 세계적으로 20여 종이 분포돼 있다. 한국, 중국, 일본에만 분포하는 동북아시아 특산소이다. 염색체 크기가 크고 수가 다양하며 구근식물이고 종간 자연교잡종이 많이 있다. 상사화 종류는 다양하며 지역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진노랑상사화는 불갑산, 내장산에 분포하며 멸종위기 2급이다. 붉노랑상사화는 불갑산, 변산, 강화도 등지에 서식하고 있다. 백양꽃은 전남 장성의 백양사에 있다. 위도상사화는 전북 부안군 위도면의 변산반도 앞바다에 있는 섬인 위도에서 자라고 있다. 상사화는 불갑산, 내장산, 쌍계사 등에 분포하고 있다. 제주상사화 제주도에 있으며, 석산(꽃무릇)은 불갑산, 선운산, 용천사 등에 대규모 군락지가 있다. 3. 용천사, 불갑사, 선운사 꽃무릇 축제 전남 함평군 해보면에 있는 용천사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지만, 9월 하순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꽃무릇을 보기 위해 찾는다. 전남 함평 용천사 꽃무릇 군락은 3대 꽃무릇 군락지 중 선운사와 불갑사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진다. 확실히 용천사라는 사찰의 명성이 약하고 유명한 문화유산이 없다 보니 덜 알려진 느낌이다. 사찰 자체의 역사와 전통, 지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갑사와 용천사는 산 하나 사이를 두고 가깝게 붙어 있다. 꽃무릇 규모로 보나 그 매력으로 보나 다른 두 곳에 절대 뒤지지 않는 곳이 용천사 꽃무릇 군락이다. 용천사 내부 곳곳에 숨은 꽃무릇들이 아름답다. 용천사 꽃무릇 군락이 덜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사찰 진입로 상에 주목할 만한 넓은 군락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3대 꽃무릇 군락지를 여러차례 답사한 바 있다. 자연스런 느낌을 받은 곳은 용천사 군락지다. 선운사와 불갑사는 사찰로 가는 길가에 눈에 띄게 넓고 평탄한 군락이 있어 강렬한 인상을 받고 규모가 대단하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용천사 진입로에는 이에 필적할 만한 곳이 없어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길 따라 사찰까지만 갔다가 나오면 용천사 꽃무릇의 진면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용천사 대웅전, 석등, 삼층석탑 주변의 꽃무릇은 규모가 작지만 예쁘게 자라고 있어 사찰과 잘 어울린다. 용천사의 진정한 꽃무릇 군락지는 용천사를 중심에 두고 뒤로 한 바퀴 도는 산책로 주변에 있다. 용천사 주위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면 석산을 질리도록 볼 수 있다. 빽빽한 대나무 숲 그늘 아래 무리지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 장관이다. 석산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숲속의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 밝은 연한 녹색의 꽃대, 그 위에 마치 왕관처럼 붉게 핀 석산의 꽃술은 대 그림자에 아래에서도 모습이 도드라진다. 용천사 주변의 산자락에 있는 꽃무릇 군락지는 무려 30만 평에 달하는 큰 규모다. 용천사를 들어가는 지방도 도로변에도 꽃무릇이 식재되어 있어 드라이브 하면서 꽃무릇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꽃무릇이 나무가 아니고 초화류이기 때문에 벚나무 가로수 꽃길 같은 웅장한 느낌은 들지 않아도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4Km에 이르는 모악산 등산로와 용천사 진입 도로에 꽃무릇 꽃길 조성이 이루어져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꽃무릇 공원은 함평팔경 중의 하나이다. 전남 영광군 불갑사의 꽃무릇 축제가 열리면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불갑산에는 7월 중순부터 진노랑상사화가 피기 시작하여 붉노랑상사화, 백양꽃 등 다양한 상사화속 꽃이 차례로 피어나며, 9월 중순에는 전국 최대의 군락지를 가진 석산(꽃무릇)이 불갑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활짝 피어나 절정을 이룬다. 영광군에서는 상사화가 차지하는 상징성 등을 감안하여 ‘상사화’라는 꽃을 주제로 축제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2009년에는 상사화 속 식물 모두를 영광군화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영광의 불갑사는 상사화 종류 중 석산(꽃무릇)은 약 300만㎡ 규모로 대규모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다. 불갑산 상사화는 영광 9경 중의 하나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1741년(영조 17) 이만석(李萬錫)이 쓴 사적비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384년(침류왕 1)에 행사존자(行士尊者)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행사존자는 마라난타(摩羅難陀)의 다른 이름이다. 이 설을 따르면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뒤 최초로 세운 절이 되는데, 마라난타가 불갑사 부근의 법성포(法聖浦)를 통하여 들어왔으므로 다소 신빙성이 있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문주왕 때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 절이 크게 번창한 것은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머무르면서부터이다. 당시 이 절에는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고, 사전(寺田)이 10리에 미쳤다고 한다. 진각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700여 년의 참식나무가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사화의 고장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하여 2009년 기존의 군화인 진달래를 상사화로 변경하였다. 2015년 영광군 관광 슬로건으로 “상사화 피는 굴비의 고향”을 선정하여 상사화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2001년 제1회 영광불갑산 상사화꽃길등반대회 및 제5회 불갑면민의 날 행사, 2005년 제5회 영광불갑산 상사화축제로 축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20년과 2021년 제21회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는 코로나19로 인해 2년 연속으로 공식행사는 취소되었다. 꽃무릇을 영광군에서는 굳이 상사화라고 한다. 축제의 공식 명칭도 ‘불갑산상사화축제’이다. 상사화의 여러 종류 중 붉은 상사화인 석산을 꽃무릇이라고 한다. 한때 상사화와 꽃무릇은 같은 꽃으로 취급되다가 어느 때인가부터는 완전히 다른 꽃이라고 하며 혼선을 일으키기도 했다. 꽃무릇은 여러 종류의 상사화 중 하나이다. 불갑사 꽃무릇 군락은 선운사 입구와 달리 넓게 펼쳐지지 않고, 길 따라 깊게 펼쳐져 있다. 꽃밭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무리 지어 핀 군락지 사이로 길을 내 자연스럽게 꽃을 보호하고 있다. 불갑사 뒤로 불갑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작은 호수가 나오는데, 이 일대의 풍경이 아름답다. 비단잉어와 금붕어가 노니는 호수가 꽃무릇과 어울리는 풍경이 좋으며, 호수 옆 산 경사면에 무리 지어 피어난 꽃무릇 군락은 마치 비밀의 숲처럼 매력적이다. 불갑사 꽃무릇 군락 불갑사에서 불갑산 쪽으로 걸어가면 호수와 만나는 산비탈에서 정말 아름답고 그윽한 꽃무릇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사찰 방문객들은 절까지 왔다가 돌아가지만 절을 지나 이곳까지 가면 아름다운 석산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 경사면 깊은 숲에 끝없이 펼쳐진 꽃무릇 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전북 고창군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정조 18년(1794) 임우상이 기술한 선운사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이곳에 와서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법명을 법운자로 한 진흥왕은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진흥굴 윗산에 중애암을, 만월대 아래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5년(1318)에 효정선사가 중수하였고 공민왕 3년(1354)에 재중수하였으며 조선 성종 5년(1474)에 행조선사가 중창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무장태수 송석조가 원준대사를 통해 1619년까지 5년간에 걸쳐 재건하였다. 절 주변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검단선사에게 쫓긴 이무기가 당황하여 바위를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龍門窟), 조망이 뛰어난 만월대(滿月臺),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 등의 명소가 있다. 선운산도립공원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며 깊고 그윽한 계곡과 빼어난 모습의 기암, 천년 이상된 고찰 선운사를 지닌 명승지이다. 선운산은 도솔산(兜率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한다.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며, 예로부터 도솔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선운사 꽃무릇은 사찰 입구에서 도솔암까지 3.6km의 계곡과 산책로 주변에 붉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펼쳐져 있다. 축제가 벌어지면 관광객이 몰려들어 차량정체가 심해진다. 꽃무릇 군락지가 사찰 주변, 하천 주변으로 몰려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4. 전남북 꽃무릇 축제 공동 마케팅 꽃무릇 명소인 전남 함평군, 영광군, 전북 고창군 3개 군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 상사화축제, 꽃무릇 축제 행사를 관광 벨트화하기 위해 협약을 맺었다. 3개 군의 군수와 문화관광과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영광군청 영상회의실에서 2006년 9월 6일 공동 협약식을 체결하였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전북 고창군(군수 이강수)과 전남 영광군(군수 강종만), 함평군(군수 이석형)이 도(道) 경계를 넘어 광역 관광 벨트화로 상생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3개 군은 협약서에서 상사화, 꽃무릇 관광 벨트화로 관광 효과를 극대화하고 공동 홍보 및 참여 등을 통해 대회 이미지 제고와 지역발전에 기여키로 했다. 3개 군 간의 축제, 관광발전에 필요한 상호 정보교류 및 협력 확대로 공동발전과 이익 추구를 도모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나가기로 했다. 2006년 꽃무릇과 상사화 축제 때 상호 연계하여 공동 홍보물을 제작한바 있는 3개 군은 2007년 상호 협력을 더욱 확대해 3개 군을 아우르는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연중 공동 홍보물 제작, 축제기념식 자치단체장 참석, 고속도로휴게소 공동 홍보물 발송, 관광안내소 활용 관광지 교차 홍보 등 다각적인 관광진흥사업을 추진하였다. 2007년 6월 27일에는 고창, 정읍, 장성, 담양 등 노령산맥 인접 자치단체들의 관광실무협의회를 개최하였다. 꽃무릇 축제 공동 마케팅을 실시함으로써 인접 자치단체간 연계로 축제 예산을 절감하고, 관광객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 각 자치단체가 모두 윈윈하는 효과를 올렸다. 이를 더욱 확대해 연중 협력이 가능하도록 3개 군을 묶는 관광밸트를 형성하고 노령산맥에 인접한 자치단체들과도 상호 연계하여 노령산맥 관광밸트화를 추진하였다. 전국적으로 유사한 축제가 많이 열리고 있는데, 전남북 3개 시군 축제의 공동 마케킹 시도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축제의 예산 낭비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공동으로 홍보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지게 된다. 5. 양산팔경인 임경대를 꽃단장하는 사람들 양산팔경은 제1경 통도사, 제2경 천성산, 제3경 내원사계곡, 제4경 홍룡폭포, 제5경 배내골, 제6경 천태산, 제7경 오봉산 임경대, 제8경 대운산 자연휴양림이다. 양산팔경 중 제7경인 오봉산 임경대를 꽃단장하는 사람들과 단체가 있다. 그 주인공은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과 양산숲길보전회 심상도 회장이다. 영남삿갓은 임경대 바로 옆에 있는 원동면 화제리 토교마을에 거주하고 있어 임경대, 황산잔도, 황산베랑길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영남삿갓은 임경대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꽃무릇(석산), 금낭화, 참나리꽃, 억새를 심고, 임경대, 임경폭포, 황산베랑길과 연결되는 둘레길을 사비를 투입하여 만들었다. 양산에서 개인이 만든 최초의 둘레길이다. 양산시에서 개설한 임경대에서 용화사까지 둘레길은 대부분 금경사 데크 길이어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에는 힘든 코스이다. 양산숲길보전회에서 이 코스를 정기답사한 적이 있는데, 회원들은 용화사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가자고 하니 힘들어서 못간다고 하였다. 차를 가져온 회원들만 가람사를 거쳐 1022번 지방도로 걸어서 임경대 주차장으로 올라왔고, 나머지 회원들은 황산베랑길을 따라 토교마을까지 걸어갔다. 영남삿갓이 만든 임경대 둘레길을 따라가면 임경대폭포도 구경할 수 있는데, 비가 많이 와야만 멋진 폭포를 볼 수 있다. 영남삿갓은 임경대를 아름답게 꽃단장을 하기 위해 꽃무릇 뿌리를 구해왔다. 양이 많아서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의 협조로 2020년 10월 25일 정기답사 때 식재하였다. 그후 영남삿갓은 더 많은 꽃무릇(석산) 뿌리를 구해와 원동면 최기주 면장의 협조를 통해 임경대에 식재하였다. 2021년 4월 21일 원동면 직원, 원동면의 자원봉사자, 정덕유, 김순연, 필자 등이 합세하여 꽃무릇을 심었다. 최기주 원동면장은 생수, 음료수, 과자도 준비해 왔는데, 감사드리는 바이다. 곽종포 시의원도 석산을 심을 때마다 함께 작업하였다. 감사드린다. 필자와 영남삿갓은 시간 날 때마다 임경대에 들러 수시로 석산을 심고, 사후관리를 하였다. 용화사로 내려가는 데크 길 옆에도 심고, 임경대폭포 내려가는 곳에도 심었다. 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어서 멧돼지가 진흙 목욕하는 웅덩이가 있는데, 근처에도 심었다. 석산의 알뿌리에는 독성이 있어 멧돼지가 뿌리를 캐먹지 않아 잘 자라 꽃이 피었다. 석산의 알뿌리는 마치 마늘처럼 생겼는데, 생명력이 매우 끈질겼다. 작년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이 식재하고, 금년 4월 21일 원동면의 협조로 식재할 때 알뿌리가 땅에 흘러 방치되어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었다. 영남삿갓과 필자가 올해 꽃이 피는 걸 관찰하기 위해 임경대에 갔을 때 뒤늦게 발견되어 다시 땅에다 심었다. 보통 식물의 뿌리였다면 땅 위에 방치되자마자 죽었을 것이다. 석산 뿌리의 생명력은 얼마나 강한지 땅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몇 달이 지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어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땅 위에 떨어져 있어도 뿌리를 땅 속으로 내리고 살아남았다. 뿌리는 마치 흰 수염같이 여러 개가 땅으로 스며들어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알뿌리가 땅에 노출된 상태에서 꽃대가 올라와 꽃이 핀 것도 있었다. 석산의 생명력은 실로 놀라웠다. 다시 심을 때 김태정 문화관광해성사도 함께 작업을 하였다. 영남삿갓은 임경대에 금낭화를 심을 계획을 세우고, 금낭화 뿌리를 구해와 지난 9월 3일에 심었다. 작업할 때 필자는 영남삿갓과 항상 함께 하며 조수 역할을 하였다. 영남삿갓의 고향사랑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그렇게 샘솟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사업구상을 양산시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돈과 노력을 투입하여 바로 실행을 하는 적극적인 행동파다. 지난 9월 8일, 10일에는 황산잔도의 풀을 예초기로 정리하였다. 필자는 뒤를 따라가며 낫으로 길을 정리하고, 칡덩굴을 잘랐다. 첫날에는 예초기가 고장나 작업을 중단하고 물금농협의 농기구수리센터에 가서 수리하였다. 10일에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황산잔도 풀을 베었는데, 거의 마지막 구간에서 기름이 떨어졌지만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하였다. 지난 4월에 경파대 주변, 황산잔도에 심은 꽃무릇이 꽃이 피어 반가웠다. 임경대에 식재한 꽃무릇(석산)이 아름답게 피어 관광객들이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땀 흘린 보람이 있었다. 임경대도 다른 지역처럼 꽃무릇 명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식재해야만 한다. 양산시에서 꽃무릇(석산) 뿌리 구입에 예산지원을 해준다면 영남삿갓과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이 심어서 멋진 군락지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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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공부인은망부석으로변하고새가되어~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관광경영학박사'심상도박제상 공 부인은 망부석으로 변하고 새가 되어. . .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박사 심상도 1. 망부석 설화 망부석은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설화로 전국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 첫째, 아내가 죽어서 돌이 된 경우, 둘째, 아내가 자연석인 돌 앞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경우 두 가지 모두 포함된다. 대표적인 설화는 신라시대 박제상 공의 아내가 치술령에서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눌지왕 때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王弟)인 복호를 구해 온 박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왜국에 건너가 또 다른 왕제인 미사흔을 구해 신라로 보냈다. 왜국에서 붙잡혀 왜왕이 회유해도 끝까지 신라의 신하임을 내세우다 고문을 받고 죽는다. 그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되고,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주민은 부인의 정절을 칭송하고 추모하는 행사를 해왔다. 박제상의 부인은 죽어서 치(鵄)라는 새가 되고 같이 기다리다 죽은 두 딸은 술(述)이라는 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박제상 공 부인과 딸들이 치술령신모(鵄述嶺神母)가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사당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볼 때 사람이 돌로 변한다는 화석(化石) 모티프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돌’에 찬양받을 만한 기념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추모하게 된 것이다.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서 죽은 장소에 있는 돌, 또는 나중에 인공으로 기념비를 세워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대상물로 삼게 되면 후세들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곳을 방문하는 참배객들은 망부석(자연석), 기념비를 대할 때 정절을 지킨 훌륭한 부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유교에서 강조하는 삼강오륜 정신에 입각하여 충, 의, 효, 열의 덕목을 백성들의 교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왕조 국가에서 박제상 공 부인의 망부석은 그 교육 효과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인이 죽어 새가 되었다는 ‘치술령 망부석 전설’에서 새의 의미는 일본에 건너간 뒤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릴 때 차라리 새가 되어 훨훨 날아 바다를 건너가 남편을 보고 싶어하는 데 있다. 죽어서 새로 변하여 현실적인 공간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제 현생에서 부부의 만남이 살아서는 불가능하므로 죽은 뒤에 새가 되어 소원을 푸는 것이다. ‘이 몸이 새가 된다면’ 하는 살았을 적의 소원이 죽어서 실현이 된다는 의미는 죽음을 초월한 부부의 사랑을 뜻한다. 딸들도 마찬가지로 새가 되어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소원 때문에 새가 된 것이다. 치술령 아래에 금교 김씨 부인과 딸들이 새가 되어 살았다는 은을암(隱乙岩) 바위가 있으며, 이곳에 지은 암자인 은을암(隱乙庵)과 위패를 모신 당(堂)이 있다. 이들을 추모하는 기념정신은 망부석으로 남아 있고, 죽어서라도 남편과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의지에서 새로 변한 영혼이 은을암에 깃들어 있고, 주민들의 박제상 공 부인과 딸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심은 치술령 신모(神母)로 남아 있다. 치술령 정상에는 1999년 5월 치산사보존회에서 세운 신모사지(神母祀址) 비석이 있다. 치우산악회에서 1995년 1월 2일 세운 치술령 정상석은 높이가 765m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 국립지리원에서 2002년 10월에 세운 삼각점 설치에서 766m로 나타나 있다. 치술령의 정확한 높이는 해발 766m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사공원에 있는 망부석은 아내가 장사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곳을 기념한 돌이다. 『정읍사(井邑詞)』 노래와 이 노래를 이야기로 꾸민 전설이 있는데, 이것도 오랜 기념 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경북 포항시의 ‘망부산(望夫山) 솔개재전설’은 신라 말 경애왕 때 소정승(蘇政丞)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죽어 산 이름이 망부산이 되었다. 부인을 기념하는 뜻에서 사당인 망부사(望夫祠)를 짓고 같이 기다리던 개와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치술령 망부석 전설’과 유사하다. 망부석이 망부산으로 규모가 커진 것이 다르다. 고기를 잡으러 갔거나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아내가 떨어져 죽었다는 서해안의 ‘낙화암 전설(落花巖 傳說)’도 이 ‘망부석 설화’의 변형이다. 한 여인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후세 주민들이 이를 추모하는 ‘망부석 설화’는 유교의 삼강오륜 정신에 충실한 의식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2.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타난 박제상 공과 그의 부인 행적 삼국유사에는 내물왕 김제상(柰勿王 金堤上)편에 나온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제상이 신라를 떠날 때 부인이 듣고 남편의 뒤를 쫓아갔으나 따르지 못했었다. 이에 망덕사(望德寺) 문 남쪽 사장(沙場) 위에 이르러 주저앉아 길게 부르짖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하여 그 사장을 장사(長沙)라고 불렀다. 친척 두 사람이 부인을 부축하여 돌아오려 하자 부인은 다리를 뻗은 채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을 벌지지(伐知旨)라고 이름 지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오래된 뒤에 부인은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치述嶺)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를 ‘치술신모’라고 하는데, 지금도 그를 제사 지내는 사당(祠堂)이 있다.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 편에 나오는 박제상 공과 그의 부인인 금교 김씨의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상은 이에 죽기를 맹세하고 처자도 만나지 않은 채 율포로 가서 배를 타고 왜로 향하였다. 그의 아내가 이 소문을 듣고 포구로 달려가 배를 바라보면서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잘 다녀 오시오!” 제상이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내가 명을 받들고 적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대는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지 마시오.” 하고, 드디어 그 길로 곧장 왜국에 들어갔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 왜에 볼모로 잡혀간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왜로 건너 갔다가 그를 구출하고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왜의 온갖 회유와 고문을 뿌리친 그의 정신은 신라 백성을 감동시켰고 후대로 이어져 백성 교육의 표상이 되었다. 왜국으로 떠난 남편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금교 부인은 날마다 치술령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남편을 기다렸지만 결국 순절한 비보만 듣게 된다. 왜국으로 떠난 님을 기다리던 그 여인은 하염없이 울다 이내 돌이 되어버렸다. 애통한 마음이 죽음으로 승화한 자리엔 망부석(望夫石)이 남고 죽은 부인과 딸은 새가 되어 은을암(隱乙岩)에 자리를 잡았다. 3. 치술령의 망부석 박제상 공의 부인 금교 김씨는 남편이 떠난 율포(현재 울산시 북구 정자)와 동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치술령 아래인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친정)로 이사하였다. 이후 치술령 정상 부근(현재 망부석이 있는 자리)에서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며 참새미 물로 연명하였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참새미는 망부천(望夫泉)이라고도 한다. 훗날 지역 유림들이 금교 부인의 정절을 기려 봄과 가을에 향제를 지낼 때 참새미의 물을 길러 목욕하고 이 물로 밥을 지었다. 참새미의 물은 겨울철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다. 9월 4일 답사했을 때 참새미의 물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바가지는 걸려 있었지만 수량이 많지 않아 마시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박제상 공의 아내 금교 김씨 부인은 남편에 대한 짙은 그리움의 사연을 간직한 신라의 여인이다. 그녀는 망부석이 되어 처연한 모습으로 치술령 정상을 오늘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치술령 망부석은 전국의 수많은 망부석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다. 필자가 사진을 찍으면서 바위를 다각도로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여인의 옆 모습이 나타났다. 마치 박제상 공의 부인인 금교 김씨 부인의 얼굴처럼 눈, 코, 입이 뚜렷하게 보여 신기했다. 망부석은 정상에서 서쪽으로 400m 가량 떨어진 지점에 있다. 울산 앞바다를 볼 수 있게 전망대를 설치하였다.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망부석 바위를 올려다 볼 수 있다. 망부석에는 ‘望夫石’이라고 한자가 새겨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글자를 발견할 수 없다. 망부석 전망대에서는 두동면 만화리와 은편리 일대가 까마득히 내려다보인다. 망부석 좌우에는 두 돌이 더 있는데 이는 큰 딸 아기와 막내딸 아경도 어머니를 따라 죽어 화석이 되었다. 차녀 아영은 동생 문량을 양육하기 위해 죽지 않았다고 한다. 치술령 정상에는 그 옛날 박제상 부인의 넋을 기린 사당이 있었음을 알리는 신모사지(神母祠址) 표석이 세워져 있다. 화강석 기둥으로 둘러쳐진 구획 안에 오석으로 만들어진 표석이 있다. 박제상의 아들 문량은 누나 아영에 의해 키워졌다. 눌지왕은 아영을 동생 미사흔과 혼인시키고 변한국부인에 봉했다. 문량은 올곧게 자라서 눌지왕 다음의 임금 자비왕 때의 명신(名臣)이었다. 그러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자비왕에게 내침을 당했다. 문량은 벼슬을 잃은 것을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여생을 보냈다. 신라인들이 신유림(神遊林)으로 부르며 신령시한 낭산 기슭에서 살았다. 방아타령을 지은 백결 선생이 바로 박제상의 외아들 문량이다. 원래의 망부석 말고 경주시에서 새롭게 주장하는 망부석이 또 하나 있다. 경주의 망부석은 치술령 정상석 근처에 있는 ‘치술령망부석’ 표지판을 따라 급경사 데크 계단을 내려가면 있다. 망부석 아래는 매우 가파른 절벽이고 경주시에서 세운 안내판도 있다. 바위 위에서 바라보면 울산 앞바다, 경주시 외동읍 석계와 모화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경주시 향토사학자들은 울산의 원래 망부석은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아 밑으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경주 망부석은 위치가 높아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도 있다. 필자의 견해로 본다면 원래 망부석이 맞다고 판단된다. 경주에서 주장하는 망부석은 치술령 정상에서 좀 떨어져 있고, 정상에서 볼 때 나무가 가려서 쉽게 찾을 수 없다. 원래 망부석은 바위에 글자도 새겨져 있고, 생존에 필요한 샘물도 가까이 있어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다. 유림들이 망부석에서 추모제를 할 때도 이 샘물을 이용하였다고 하니 가까이 있는 것이 진짜 망부석이다. 치산서원에서 1㎞쯤 가면 하천을 끼고 갈림길이 나온다. 바로 가면 망부석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암자인 은을암(隱乙庵)으로 가게 된다. 망부석 쪽으로 가면 충효사라는 절이 나오고, 포장된 도로로 계속 가면 법왕사까지 갈 수 있다. 법왕사 입구에 주차하고, 절 오른쪽의 등산로를 따라가면 망부석이 있는 치술령으로 갈 수 있다. 법왕사 안으로 들어가면 사나운 개가 짖으며 달려드니 사찰 경내로 들어가지 말고 등산로로 가면 된다. 법왕사에서 40~50분 정도 정상을 향해 오르면 망부석이 나온다. 등산로는 계속 오르막으로 가파르다. 4. 금교 김씨 부인의 영혼이 깃든 은을암 부인의 몸은 돌이 되어 망부석으로 그 자리에 굳었지만 넋은 자유로워졌다. 부인의 넋은 치술조로 변해 박제상이 목숨을 잃은 곳으로 알려진 목도까지 날아가 남편의 넋을 맞아 신라로 돌아왔다고 한다. 어느 날 왕이 있는 마루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 구슬픈 소리로 지저귀며 ‘목도의 넋을 맞아 고국에 돌아오니 뉘라서 그것을 알리요’라는 뜻의 글자를 쪼아 놓고 날아가자 왕이 이상히 여겨 뒤쫓아 가보게 했더니 치술암 기슭의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왕은 비로소 그 새가 박제상 부인의 넋임을 알고 그 바위를 은을암이라 하고, 그 바위 위에 영신사를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 후 왕은 박제상의 딸을 미해공의 부인으로 삼고 박제상에게 대아찬으로 관위를 높여주고, 김씨부인은 국대부인에 추봉했으며 사당을 짓고 그 뜻을 기리는 제를 봉행토록 한 곳을 치산서원이라 한다. 부인의 영혼은 새가 돼 근처 마을에서 잠깐 쉰 뒤에 국수봉 아래 바위틈으로 날아 들어갔다. 잠시 쉰 마을이 울주군 두동면 비조(飛鳥)마을이다. 날아 들어간 바위가 범서읍 척과리 국수봉 아래의 은을암(隱乙岩)이다. 현재는 은을암(隱乙庵)이라는 조계종 소속의 암자가 있다. 울주군 척과리 국수봉에 있는 은을암은 절벽처럼 가파른 산비탈에 마치 제비집처럼 붙어 있다. 국수봉 꼭대기에 매달리듯 자리 잡은 위치 자체가 신비스런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절 앞까지는 승용차로 갈 수 있지만 외통길로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주차한 후 올려다보면 은을암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무거운 짐을 올리는 계단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리프트 시주자는 ㈜태화관광, ㈜태진관광, ㈜태화공항버스, ㈜현대관광이다. 은을암의 전각은 터가 좁아서 옆으로 늘어서 있다. 은을암 앞마당은 절벽이라 기둥을 세우고 나무 판자를 깔아서 공간을 마련하였다.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극락전이 나오고 범종루가 보인다. 범종루는 너무 가파른 절벽에 있어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극락전 오른쪽으로 가면 금교 김씨 부인과 딸들이 새가 되어 숨었다는 커다란 바위틈이 나온다. 바위틈새에서 샘물이 흘러나온다. 샘은 기다란 용으로 장식되어 있다. 울창한 숲에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스럽다. 박제상 공과 그의 금교 김씨 부인의 유적지인 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은을암, 망부석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면 하루에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박제상 공 유적을 잘 정비하여 볼거리가 많고, 망부석으로 가는 둘레길도 잘 조성되어 있었다. 반면 박제상 공의 탄생지인 양산시는 미흡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애초에 성역화 사업을 할 때 부지를 넓게 잡아야 하는데, 협소한 편이고, 효충사, 징심헌에도 컨텐츠가 없어 볼거리가 없다. 시급히 보완해야 할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