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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화요칼럼 김유신 장군 백제 정벌 출정 때 깃발을 꽂았던 기둥

기사입력 2023.12.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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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傳) 김유신 장군 기간지주(旗竿支柱)

김유신 장군이 백제 정벌 출정 때 이곳에 진을 치고 깃발을 꽂았던 기간지주이다. 경주시 건천읍 건천 2리 206번지 안기복(安基福) 씨의 집 앞뜰에 있는, 화강석으로 된 둥근 사다리꼴의 기간지주이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이 지주(支柱)는 깃대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이런 기둥이 두 개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한 기둥만 남아 있다. 기둥의 크기는 아래쪽이 너비 47cm 두께 40cm이고, 현재 높이는 60cm 남짓하다.

지주의 안쪽 면 상부에는 깃대를 잡아주는 간(杆)을 걸쳤던 긴 홈(杆溝)이 있으며, 크기는 너비 7cm· 길이 12cm·길이 40cm이다. 이 지주의 겉모습은 당간지주(幢竿支柱)와 같으며, 위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사다리꼴(梯形)이다. 또한 지주의 네 모서리에는 희미하나마 모죽임이 남아 있다.

한편 이 기간지주는 김유신 장군이 이곳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있는 작성에서 백제군을 무찌르기 위하여, 수많은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을 때, 군대의 깃발을 달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기간지주가 있는 작원마을의 골목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라는 김유신 장군의 어록도 적혀 있다. 신라 향가인 모죽지랑가도 써놓았다. 화랑도가 기간지주 앞에 깃발을 들고 무릎 끓고 있는 모습의 벽화도 있으며, 매화꽃도 그려놓았다. 말을 타고 달리는 화랑도가 뒤돌아서 활을 쏘는 장면도 있다.

2. 백제의 공주와 작원성(鵲院城)

경주시 건천읍에는 작원성, 또는 작성(鵲城)이라는 토성이 남아 있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이 성의 이름 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을 남기고 있다. 백제를 공격할 당시 김유신 장군이 서라벌 왕궁에서 30리가량 떨어져 있는 이곳에 주둔하였다.

백제의 왕이 이 소식을 듣고 걱정하자, 둔갑술에 능하여 적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싸우는 자용병기(自勇兵器)라는 신비한 무기를 부릴 줄 알았던 공주가 왕을 안심시키고자 자청해서 까치로 변신하여 신라 진영을 염탐하기 위해 이곳으로 날아왔다.

서쪽에서 날아온 까치 한 마리가 대장기 끝에 앉아 울자 군사들은 불길한 징조로 생각해 진중(陳中)이 크게 어수선해졌는데, 김유신 장군이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빼 들고 까치를 향해 겨누자, 까치는 땅에 떨어져 버렸고 그만 변신이 풀려 본래 사람 모습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은 까치가 이미 백제의 공주임을 알고 소리쳤다.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빌었고 이후 이 성의 이름을 까치 작(鵲) 자를 써서 작성(鵲城)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을 작원(鵲院)이라고 하였다.

 

3. 건천의 지명 유래

 

1) 연혁

 

- 조선말기 : 경주군 내서면

- 1910.10 : 경주군 서면으로 개칭

- 1913.03 : 면사무소를 모량리에서 현 건천리로 이전

- 1917.10 : 광명동을 경주면에, 고지동을 영천면에 편입

- 1928.01 : 19개 행정리동을 29개로 분동

- 1952.07 : 29개 리를 35개 리로 분동

- 1955.09 : 경주읍의 시 승격으로 월성군 서면으로 개칭

- 1973.07 : 11개 법정리, 24개 행정리로 분리, 건천읍으로 승격

- 1989.01 : 월성군 명을 경주군으로 환원

- 1995.01 : 시군통합으로 경주시제 실시

 

2) 유래

 

- 건천리(乾川里)

마을은 약 150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번창하였다. 마을 옆 건천강변이 배수가 잘되어 물이 고이지 아니하고 항상 건조되어 한발이 심했으므로 건천이라고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 태종 23년에 경주 대도독부, 조선시대에는 경주부에 예속, 1895년 경주군 서면에 속해 오다가 1914년 부군통폐합 시 마을이름을 건천(乾川)이라고 하였고 1973년 읍(邑)으로 승격하면서 건천읍 소재지가 되었다.

 

- 건천(乾川)[마을] : 거치내, 건치내라고도 하며, 천포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건천(乾川)[내] : 거치내, 건치내, 건천내라고도 하는 건천 앞으로 흐르는 내.

- 건천교(乾川橋)[다리] : 건천 앞 국도에 있으며, 모량과 아화를 잇는 다리이다.

- 건천읍장(乾川邑場)[장] : 건천에 있는 건천읍의 시장으로 건천장, 서면장이라고도 했다. 예전에는 3일, 8일에 섰으나 지금은 5일, 10일에 장이 선다.

 

건천읍장은 가게가 아주 많아서 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작원마을 주민들에게 작원성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작원마을, 건천마을을 일주하면서 작원성을 찾아다녔다.

 

마을 외곽을 지나는 도로인 대경로 밑으로 지나가니 커다란 하천인 대천이 나왔다. 대천 건너편에 야산이 보였는데, 작원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었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대곡리 쪽의 작원성이 있던 임야를 경주시에서 민간에게 매각하여 유적 훼손의 우려가 있다고 하였다. 작원마을에 김유신 장군이 백제 정벌을 위해 출정하면서 진을 치고 있을 때 깃발을 꽂았던 기둥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마치 기적과 같은 일이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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