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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박사, 와이뉴스총괄이사의 영축산 단조성과 단조늪

기사입력 2022.12.2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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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조성과 김무력 장군

영축산 정상을 중심으로 단조늪이 형성되어 있는데, 양산의 대표적인 고산습지 중의 하나이다. 영축산 단조늪 일대 억새는 화전민들이 땅을 일구기 위해 해마다 불을 질렀다. 주민들은 만리성 억새 만디에 횃불을 들고 올라가 불을 질렀다고 한다.

억새밭이 만리성 안에 있어 불이 산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억새밭만 홀라당 태웠다. 만리성이 바로 단조성(丹鳥城)이다. 단조성은 충북 옥천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한 신라의 김무력 장군이 쌓았다고 한다.

단조성(丹鳥城)은 영축산 정상의 평평한 분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김무력 장군이 충북 옥천의 관산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귀향하여 울주군 언양에 주둔하면서 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관산성 전투를 통해 백제, 왜, 가량의 국제 연합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진 신라를 구한 김무력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서라벌 남쪽인 태화관(太和關)으로 이동하였다. 태화관은 현재의 언양 석남사 인근의 배내고개 부근으로 추정된다.

김해 김씨 족보인 『숙종병인보』의 내용을 바탕으로 양산대학의 엄원대 교수가 해석한 내용을 정리하면 김무력 장군은 태화관으로 귀환한 후 교산윤산성(轎山輪山城)을 쌓았다고 한다. 이 산성은 영축산 정상에 있는 단조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단조성이 있는 산은 현재 영축산 또는 취서산으로 불리고 있다.

해발 940m~970m 능선부의 신불평원에는 약 250만㎡의 광활한 억새 군락지와 고산늪지인 단조늪이 형성되어 있다. 단조늪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단조성이다. 억새 군락지 너머로 긴 띠를 풀어놓은 듯한 석성은 신라시대 때 축조되었으며, 단조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던 주요 거점이었다.

이곳 지형이 단지 모양을 이룬다 하여 단지성(丹之城)이라고도 한다. 단지성이라 함은 바로 항성(缸城)으로 모양이 항아리(단지) 같이 생겼음을 뜻한다. 실제로 취서산은 정상이 동서로는 좁은 편이고 남북으로 긴 형태를 보이고 있어 이런 지형을 이용하여 성을 쌓아 그 모양이 마치 단지같이 생겼고, 따라서 천연 요새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취서산고성(鷲棲山古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조 3년(1727) 암 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영남을 시찰하는 도중 이 산성에 올라 “산성의 험준함이 한 명의 장부가 만 명의 적을 당해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해 이곳이 천연의 요새임을 알려주고 있다. 『증보문헌비고』에 는 언양의 남쪽 13리에 있는 취서산에 이 성이 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2. 천하의 요새 단조성 함락

 

임진왜란 당시 동래에서 출발해 양산, 언양을 거쳐 북으로 진군하려던 왜군들은 의병들이 단조성을 지키면서 강력히 대항하자 배후의 보급로가 끊길 것을 우려하여 더이상 북상을 할 수 없었다. 임진왜란 때 정규군은 왜군에 형편없이 패했지만 지방의 의병들은 왜적과 용감하게 싸우면서 이 땅을 지켰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언양 인근의 의병들이 북상하는 왜병들을 저지하기 위해 이 성에 모여들었다.

 

이때 왜군들은 단조성을 공략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웠으나 성의 함락이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지형 정찰에 나섰다. 왜군들은 영취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굴에서 베를 짜고 있던 사람을 발견하고 이 여인에게 이 성의 지형에 대해 물었다. 이 사람이 바로 여천각시였다고 한다.

 

왜군 정찰병은 아군으로 위장하여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물었기 때문에 여천각시는 의심하지 않고 영취산을 돌아 서편에 있는 백발등으로 들어가면 쉽게 입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왜군은 바로 백발등으로 들어가 배후에서 의병을 기습 공격하니 지금까지 후퇴하지 않고 이 성을 지켰던 의병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왜장은 이 정보를 토대로 정면전을 계속하는 척 하면서 주력부대를 양산 원동방면으로 투입하여 양산배내로 올라와 백연에서 주개덤의 좌우 계곡을 타고 올라, 기습작전을 펴니 격전 끝에 피차간에 큰 타격을 입고 급기야 왜적에게 성을 내주고 시살등에서 마지막 응전을 계속하였다. 이 등에서 활을 쏘았다 하여 ‘시살등’이라 전해온다. 단조성을 지키던 의병들은 왜적의 기습을 받아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의병들이 흘린 피가 못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또다른 전설에서는 왜군들이 여천각시에게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 떡 장사를 하는 노파에게 접근하여 떡을 모두 팔아주며 환심을 산 후 단조성으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단조성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단조성 뻐꾸기’라는 민요가 전해지고 있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인간 백발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등이 원수로다./ 오늘도 단조성 뻐꾸기는 저리도 슬피운다./

 

울주군 언양읍, 상북면 등의 지명에 신라시대 군사기지가 있었던 곳이 여러 군데 나온다. 상북면의 마을 유래에 군과 연관된 지명이 많다. 울주군 상북면 행정복지센터의 마을 유래를 살펴보면 다양한 군대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가지산, 석남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태화강의 상류가 된다. 이 근처에는 살터, 궁근정 등 군사기지와 관련되는 지명이 남아 있다. 울주군 상북면에는 궁근정리(弓根亭里), 궁평(弓坪), 마두배기(말을 길렀던 곳), 흥진(興陳 :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 사시야(射矢野 : 활쏘던 곳), 장성(長城 : 궁근정리 새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성이 있었음) 등 군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지명이 존재하고 있다.

 

단조늪을 돌로 쌓은 단조성이 산 정상의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토사 유출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축산 정상 한가운데로 산불방지를 위한 방화선이 구축되어 있다. 나무와 억새를 베어낸 자리는 맨땅으로 흙과 돌만 있다. 태풍이 내습하거나 폭우가 내리면 토사가 많이 흘러내리는데, 그나마 단조성의 성벽 돌이 있어 방어막을 이루고 있어 다행이다.

 

3. 단조늪의 특징과 주민생활

 

단조늪은 우리나라 고산습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길이가 영축산 정상에서 단조봉까지 1,100m 정도이고 너비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300~500m 정도 된다. 영축산 정상에서 평원을 내려다 보면 억새 일색이지만 아래쪽에는 진퍼리새처럼 키 작은 풀들도 있다. 지형이 남북으로는 평평하고, 동서로는 경사져 서쪽이 낮은 편이다. 단조늪 습지는 여러 군데 흩어져 있으며, 7~8곳이 눈에 띈다.

 

양산시에 따르면 단조늪에는 183가지 식물, 64가지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귀식물은 설앵초, 솔나리, 개족도리풀 등이 있고, 고산식물은 동자꽃, 노랑제비꽃, 쥐오줌풀, 잠자리난초 등 24가지다. 습지식물은 방울고랭이, 동의나물, 물매화, 흰범꼬리 등 30가지 정도 된다. 진퍼리새, 방울고랭이, 박새풀은 억새처럼 군락도 이루었다. 골풀, 매자기, 꽃창포, 원추리, 줄풀, 중나리, 범의꼬리, 세모고랭이 등도 있다.

 

소설가 배성동이 2013년 펴낸 책 『영남 알프스 오디세이』를 보면 "단조천지에는 열 개의 질펀한 못이 있었다. …… 온갖 기화요초와 나물로 반질반질하다가도 우수기에 접어들면 모를 심어둔 모판처럼 변했다. 반달비, 곤달비, 호망추, 배뱁추, 더덕, 고사리, 꼬치미가 지천으로 깔려, 봄이면 산이 물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단조늪 일대는 과거 산에서 입살이(먹고 살기 위한 벌이의 북한말)를 하던 주민들의 생명줄이었다. 사내들은 억새를 베어 날라 초가지붕을 이었다. 아낙네들은 지천인 나물을 캤다. …단조늪 일대는 말하자면 "과거 산에서 입살이를 하던 주민들의 생명줄이었다.

사내들은 억새밭에 올라 억새를 베어 날랐고, 아낙들은 나물을 캤다. …… 동네방네 아이들이 소를 몰고 오르던 소몰이 길이기도 했다. 봄과 여름의 억새는 소여물로 쓰였고, 억새밭에서 캔 나물은 식구들 식량과 의복이 되었고 자식들 책가방과 교과서가 되었다.

 

단조늪의 문제점은 안내판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지역에는 비교적 안내판이 잘 되어 있다. 양산시 행정구역에 속하는 단조늪, 단조성에는 해설 안내판이 부족하다.

 

영축산 산마루에 구축된 방화선도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는데, 토사가 다 흘러내리고 돌만 가득하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거센 바람이 동반되기 때문에 이 정도 넓이의 방화선은 별 의미가 없다. 동해안 산불지역을 보면 산불은 동해고속도로 4차선도 바람의 영향으로 쉽게 타고 넘어가 버린다. 볼썽사나운 방화선에 차라리 데크 로드를 설치하여 토양 회복을 돕고, 단조늪 습지도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산습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감시초소 설치, 임도의 차단막 설치, 보호대책이 시급하다. 영축산 단조높도 등산로 정비, 습지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 양산시에서는 단조성, 단조늪에 대한 안내판을 추가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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