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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 화요칼럼/최백호 가수가 부른 ‘영일만 친구’ 모델 홍수진 시인

기사입력 2021.04.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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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원동면 원리 매화담 카페 옆에 있는 홍수진 시인 생가터

 

 

양산시 원동면 원리 출신 홍수진 시인의 시비가 2008년 11월 8일 매화공원에 세워졌다.

 

홍수진 시인은 1949년 3월 5일 양산시 원동면 원리

 92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한창 사회 활동할 나이에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타계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시인, 문학가, 예술가들은 술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원동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등 유년시절을 양산에서 보냈다. 부산에서 대신중, 동성고를 나온 후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중퇴하였다.

 

 

홍수진 시비를 건립하는데 앞장선 박말태 전 양산시의원을 만나서 자세한 전말을 들어보았다. 박말태 전 시의원은 4선 의원으로서 양산시와 원동면 발전에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 특히 필자가 박 전 시의원에 주목한 것은 정치인으로서  양산의 역사, 문화, 관광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2020년 5월 19일에 쓴 ‘서종철 육군참모총장 덕분에 개설된 배태고개 도로’는 조회수가 2백만이 넘어 독자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었다.

 

 

원동면 영포리에서 배내골로 넘어가는 배태고개는 양산시 동면 출신의 서종철 육군참모총장 덕분에 개설되어 차량이 쉽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서종철 참모총장이 고광도 군수사령관에게 지원 요청을 하고, 최갑동 공병단장(대령)이 군수사 1203 건설공병단을 투입하여

안전한 도로를 개설하였다.

 

 

군의 대민 지원 공적을 자손만대에 기리기 위해 배태고개 마루에 2014년 5월에 양산시에서 공적비를 세웠다. 원래 공적비가 있었지만 마모되어 새롭게 건립하고 주차장과 공원을 조성하였는데, 박말태 전 시의원의 적극적인 관심 덕분이었다.

 

 

박 전 의원은 원동면의 가로수 식재와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022번 지방도, 69호선 국지도에 벚나무, 조팝나무를 가로수로 심었으며, 화제천, 원동천 둑방에 조팝나무를 심었다. 이제는 벚꽃과 조팝나무꽃이 함께 어우러져 관광명소가 되었다.

 

 

원동면사무소 옆에 있는 매화담 카페에서 박 전 시의원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홍수진 시인의 생가터가 바로 매화담 카페 옆에 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홍수진 시인과 원동초등학교 35회 동창인 최봉열

씨를 소개해주었다. 최봉열 씨는 홍시인 이웃집에 살았다고 한다. 그를 통해 홍수진 시인의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들을 수 있었다. 홍시인의 부친은 어릴 적에 사고로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고 알려주었다. 홍시인의 고모, 삼촌이 있었고, 숙모는 교사로 근무하였다고 하였다.

 

 

홍시인은 원동초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 하였고, 글짓기

 뿐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하였다. 1967년 진주 개천예술제 백일장 일반부에서 ‘소금’으로 장원을 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박 전 의원은 홍시인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하였으며, 형님이 홍시인을 잘 안다고 하였다.

 

근처에 원리마을의 당집과 당산나무가 있어 물어보았더니 박 전 시원이 예산을 확보하여 건립하였다고 하였다.

 

 

홍시인의 생가터는 매화담 카페 근처에 있었다. ‘옛방앗간’ 안내판이 붙어 있는 자리다. 현재는 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생가 왼쪽 편에는 일제 강점기 때 ‘옛양조장’터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생가터 앞에서 박말태 전 시의원과 최봉열 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상세하게 안내해준 두 분에게 감사드린다. 홍수진 시인의 생가터라는 안내판을 새로 설치하여 관광객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2. 매화공원의 홍수진 시비 건립에 앞장선 박말태 전 양산시의원

 

원동면 원리 산106-1번지의 매화공원에 홍수진 시비가

서있다. 홍수진 시비는 박말태 전 시의원이 추진위원장을 맡아 앞장서서 건립하였다.

 

 

2008년 11월 8일 10시 제막식에 오근섭 양산시장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오시장은 양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고 인사말을 하였다.

 

박말태 시의원은 시비 건립에 적극 참여해준 양산과 울산의 예술계, 언론계 인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축사를

하였다.

 

울산에서는 이희석 울산예총회장, 조돈만 울산문인협회 회장, 김복만 울산대 교수, 김병길 울산매일신문 편집이사, 화가 홍맹곤, 심수구, 정기홍, 문인 최이락, 연극인 박용하, 무용가 현숙희 등 30여 명의 울산예술인들과 추진위원들이 참석하여 고인을 추모했다.

 

인기가수인 최백호 씨가 참석하여 그의 히트곡인 ‘영일만 친구’ 모델이 바로 친구인 홍수진 시인이라고 하여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고 홍수진 시인의 절친이었던 최백호 가수는 친구를 그리며 ‘영일만 친구를 불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순수한 영혼에다 천재성과 열정까지 갖추었던 친구였으니 그의 빈 자리가 여태 채워지지 않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친구이다”라고 홍시인을 추모하였다.

 

홍수진 시인은 자신이 태어난 원리마을에 있는 철도역을 주제로 ’경부선 원동역‘이라는 멋진 시를 남겼다. 이 시에 나오는 1969년은 홍시인이 만 20세 때이다. 시 구절은 먼 훗날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예감한 듯하다. 친구와의 헤어짐은 부정적 뉘앙스의 낱말이 자주 나온다.

 

헤어짐, 무거운 짐, 영혼, 저주, 이승의 끝, 아득할수록, 아픔뿐, 눈물 등의 단어는 이로부터 28년 후의 죽음을 일찍 예감한 것일까? 시의 마지막 연은 친구를 빗대 자신의 운명을 놀랍도록 예언하고 있다.

 

마치 독자가 “그대 떠난 후 남아있는 것, 시 한 줄의 아픔뿐,”이라고 추모할 때 홍시인은 독자들에게 스스로 답을 하고 있다. “너무 늦은 눈물로 내 다시 찾아오마”. 홍시인의 자문자답은 마치 자신이 독자와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의 직관력, 예지력이 번득이는 천재성이 돋보인다. 다음은 홍시인의 ’경부선 원동역‘이다.

 

우리는 그때 부산역에서 같이 떠나,/ 완행열차가 서는

곳,/ 경부선 원동역에서 헤어졌다./ 1969년 // 무거운

짐 진 그대 영혼 멀리 떠나거라/ 우리 헤어질 때/ 빈들에는 어둠이 더욱 넓게 번지고/ 강물도 고여 멎었다. // 소리없는 강물처럼 행렬 속으로 사라지던 그대 뱉는 침

/ 저주처럼 가라고 말하지만/ 역사에는 빛이 고이고/흐린 불빛은 나의 절망이었지 //떠나가는 것에 대해/ 다

시는 추억하지 않으마. 언약처럼/ 떠나거라 떠나는 길/ 이승의 끝이랴 // 휘어진 길 돌아서 가는 기치의 불빛/ 삼랑진, 낙동강변으로/ 이어진 길/ 추억이 아득할수록

그날의 불빛은 살아/ 차라리 따스하고 아름답다 // 그대 떠난 후 남아있는 것/ 시 한 줄의 아픔뿐,/ 너무 늦은 눈물로 내 다시 찾아오마/.

 

홍수진 시비가 있는 매화공원은 양산시 원동면 원리 산106-1에 있다. 순매원 입구에 있어 찾기도 쉽다. 낙동강과 경부선철도, 매화명소 순매원이 잘 보이는 명당자리에 시비가 있다. 매화공원은 정자가 있어 쉼터로 이용되고 있으며, 앞에는 화장실도 있으므로 가족단위 나들이 하기 좋은 곳이다.

 

매화공원에는 2014년 3월 30일, 4월 6일에 방영된

KBS 2TV 인기 프로그램인 1박 2일 촬영지(원동역-순매원, 영포리) 안내판도 있다. 매화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아주 좋은데, 마치 바다처럼 시원하게 펼쳐진 낙동강, 섬, 경부선 철도가 잘 보인다. 매화꽃이 피는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그리고 벚꽃이 피는 3월 말까지 관광객이 몰려들어 주말에는 주차하기 어렵다.

 

3. 최백호 가수의 히트곡 ’영일만 친구‘ 모델인 홍수진 시인

 

최백호 가수의 젊은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던 홍수진 시인이 히트곡 ’영일만 친구‘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최백호는 ’영일만 친구‘ 탄생의 비화에 대하여 1978년

당시 포항에서 음악다방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시인이며 부산지역의 인기 DJ였던 홍수진이란 친구, 소설가인 그의 친구 한 사람, 최백호 가수 셋이 포항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만든 노래라고 밝힌 바 있다.

 

대화를 통해 세상을 염려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친구의

처지를 보고, 악상을 떠올려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최백호 가수는 젊었던 시절엔 둥둥거리는 반주가 맘에

안 들어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영일만 친구‘ 노래가 그의 삶에 큰 힘을 주었음을 깨닫고 열심히 부르고 다닌다고 말하였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나 친구 홍수진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고하였다. ’영일만 친구‘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경북 포항시는 2012년 7월 농특산물 공동브랜드로 ‘영일만 친구’를 확정하고 가수 최백호씨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노래인 ‘영일만 친구’의 활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돈을 지불해야 하는 저작권과 상표사용 때문에 고민하였다. 공공기관은 예산 관계로 저작권 지출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항시 농업기술센터소장의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포항시 농업기술센터는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저작물 ‘영일만 친구’의 사용을 신청했고 협회로부터 사용료 산정에 앞서 저작 인격권자인 최백호씨에게 ‘저작 인격권료’를 지불함으로써 저작물 사용동의를 우선 얻어야 음악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나중에 최백호씨가 포항시 관련 농식품유통과로 보내온 저작물 사용 동의서에는 ‘편안히 사용하십시오’라는

글귀와 함께 지불할 인격권료는 ‘0원’으로 적혀 있었다.

 

최백호 가수는 평소에 포항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기에 감사하다며 무료 사용을 허락하였다.

 

1994년 포항시 호미곶 등대박물관 옆에 ‘영일노래비’

가 세워졌고 ‘영일군민의 노래’,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노래가 새겨져 있다.

 

필자는 호미곶을 방문하여 ‘영일노래비’를 사진 찍고, 영일만을 보기 위해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을 찾아갔다. 이곳은 포스코와 영일만이 잘 보였다. 영일만을 직접 보니 규모가 엄청나게 커 놀랐다.

 

4. 홍수진 시인의 일생

 

홍수진 시인(1949년~1997년)은 원동면에서 태어났지만 부산에서 중고교를 나오고 젊어서는 부산, 포항에서 활동하였다. 스물 일곱에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었다. 그는 포항에서 ‘해원’ 시동인과 극단 ‘은하극장’ 단원으로 활동하고, 최백호 가수와 친하게 지내며 노래 ‘영일만 친구’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주 활동 무대는 울산이었다. 1977년 12월 울산 중구 중앙시장길 8(옥교동) ‘사계절다방’에서 시집

『들풀』 (홍수진, 이준웅 2인 시집) 발간 및 시화전을

열었다. 1980년 울산MBC에 PD로 입사하여 울산에

정착하였으며 그해 8월 중구 성남동 ‘명다방’에서 2인

시 작품집(홍수진, 김종경) 발간 및 시화전을 열었다.

 

방송 활동뿐만 아니라 음악, 국악, 미술, 춤, 연극 등 다방면에서 창의적 예술 감각을 발휘하여 별명이 홍박(홍박사)이었다. 또한 ‘만능예술인’, ‘울산문화의 파수꾼’, ‘진정한 탤런트’ 등으로 불리었다. 방송인으로 말도잘

하고, 글도 잘 쓰는 천부적 재능을 지닌 전천후 예술가로 활동하였다.

 

1981년 최장수 시 동인이라 할 수 있는 『변방』의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81년 12월 지역문학의 새로운 모색과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변방문학의 수문장

역할을 하자는 뜻에서 「시동인 변방」을 창립했다. 창간호의 동인은 박종해, 최일성, 김종경, 신춘희, 문영, 이충호, 김종철 홍수진 등 8인이었다.

 

울산문인협회에 소속되어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변방』 1집부터 12집까지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였다. 시집 『오늘밤 내 노래는 잠들지 않는다』, 『민요기행』, 『변방의 풀 하나가』, 『헤드폰의 소리』, 『끈 』 등의 작품이 있다. 1998년 유고 문화 칼럼집

 ‘변방문화와 문화의 변방’이 출간됐다.

 

무용가 홍신자, 연극인 손숙, 화가 김인환, 사진가 조문호, 가수 최백호, 엄인호 등과 교우하며 지방과 중앙의

예술적 거리감을 좁혔고 문화 비평 형태의 칼럼과 에세이를 지역 신문에 발표하면서 예술 장르 간의 벽을 허물었다.

 

1997년 울산문인협회장을 맡아 활동하던 중 위암으로 그해 9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 산770-3번지 울산공원묘원에 있다.

 

홍수진 시인의 생전에 수집한 LP판 3천 장은 원동의 고향 후배인 이상국 씨가 지인을 통해 물려받았다고 한다.

홍수진 시인의 시비는 박말태 전 양산시의원이 앞장서

건립하였으나 양산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순매원 앞을 지나갈 때, 또는 매화꽃, 벚꽃 피는 봄에 매화공원에 들러 시도 감상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면 좋다.

 

요즘 둘레길 걷기가 유행인데, 매화공원, 순매원, 녹색사진 촬영명소, 원동역, 원리마을 벽화, 매화담 카페, 홍수진 생가터 등을 걷는 코스를 추천하고자 한다. 홍수진 시인의 생가터에도 안내판을 세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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