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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 화요칼럼,매화정원을 지닌 힐링의 명소 신흥사

기사입력 2021.03.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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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흥사의 역사와 전통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268에 있는 전통사찰 제17호인

신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인 통도사의 말사다.

 

보물인 대광전의 고색창연한 건물과 벽화, 중창불사를

통해 새로 건립된 설법전, 원통전 등의 전각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사찰이다.

 

 

풍수지리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수려한

산세가 사찰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사찰 앞으로 영포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대광전 뒤로

 나지막한 산이 둘러싼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세다.

주변의 산은 높은 산이 보이나 험악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유순한 느낌이 든다.

 

 

일주문에는 ‘축천산신흥사’라 적혀 있는데, 멀리 떨어진

동쪽의 산 위에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것이 옥의 티다.

 

신흥사를 방문할 때마다 쳐다봐도 풍력발전기가 돌아가지 않는다. 전통사찰에서 보이는 산 위에 효율성이 낮은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천왕문 앞의 영포천에 놓인 웅장한 석교인 천왕교에서

신흥사를 바라보면 커다란 돌축대와 아름다운 돌담장이 잘 보인다.

 

축대를 쌓아서 높은 곳에 전각을 건립하였기에 영포천의 물이 홍수로 범람하여도 사찰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설계하였다.    

 

 

신흥사는 선조 15년(1582년) 성순(性淳)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연혁이라고 한다. 그 이전의 연혁은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에는 어느 정도 가람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흥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이 주둔하였던 거점으로

역할을 하면서 전각 대부분이 불타고 대광전만 남았다고 한다.

 

영조 33년(1757년)에서 영조 41년(1765년) 사이에제

작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신흥사의 존재에 관한

기록이 있어 그 사이에 중건되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여지도서에 신흥사는 양산군의 서쪽 육십리 이천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 41)까지 펴낸 것을 합한 것으로 295개의 읍지와 17개의 영지(營誌), 1개의 진지(鎭誌)가 포함되어 있다.

 

 

55책. 필사본으로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 간행하였다. 이 책은 간행된 지 270여 년이나 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다시 고치고 그동안 달라진 내용을 싣기 위해서 편찬되었다.

 

 

1757년 홍양한(洪良漢)의 건의로 왕명에 따라 홍문관에서 각읍의 읍지를 수집하여 간행하였다. 각 읍지의 첫머리에 채색지도가 실려 있고 거리와 방위 등이 정확한

대축척지도가 덧붙여져 18세기 중엽 지방사회의 실제

모습을 아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 이후에도 철종 5년(1854년)에 응향각을 건립하였으나 현존하지 않으며, 20세기 초에는 후불탱을 조성하는

등 불사를 이어왔으나 사세가 기울어 대부분의 현재 가람은 1983년부터 영규(靈珪)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

 

 

동운 영규 스님은 통도사로 출가한 후 신흥사 주지로 부임하여 원력을 세우고 중창불사에 착수하여 오늘날의

대규모 가람을 이룩하였다.

 

 

영규 스님은 현재 신흥사 조실로 있으며, 주지는 해동

호법 스님이 맡고 있다. 정덕유 윤은선 부부의 소개로

필자가 방문하여 주지 스님을 친견하고, 조실 스님께

인사를 하였다.

 

1995년 신흥사에 부임한 호법 스님은 그동안의 중창불사의 역사가 담긴 스크랩북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주지 스님이 제공하는 귀한 차를 마시며 국사당, 중창불사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대광전과 작은 요사채만 있었다고 하였다.신흥사 가람의 배치는 사찰 초입에 일주문이 있으며, 그 옆에 국사당이 있다.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을 통해 경내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가람의 중심에는 주불전인 대광전이 있고, 대광전 왼쪽에 응진전, 오른쪽에 향로전, 뒤쪽에는

산신각, 동쪽으로는 원통전, 지장전, 설법전, 삼성각, 서쪽에는 현풍루, 범종각, 화엄전 등이 있다. 엄청난 규모의 중창불사를 일으킨 두 분 스님께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신흥사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절로 필자가 자주 방문하며 좋아하는 사찰이다. 절의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 부처님께 참배하고 조용히 전각을 거닐며 사색하기에 좋다.

 

영규 스님과 호법 스님이 노력한 중창불사를 통해 많은 전각을 건립하여 전통사찰의 규모를 갖추었다. 사찰 주변에 민가도 없고 대자연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어 힐링하기에 딱 알맞은 명소다.

 

2. 신흥사 보물

 

신흥사의 중심 법당인 대광전은 보물 제1120호로 온

세상에 광명을 비추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한 곳이다. 1988년 대광전을 부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순치

십사년(順治 十四年)이라는 상량문이 발견되어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효종 8년(1657년)에 중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건물의 구조는 앞면 3간, 옆면 3간의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의 처마를 받치기 위한 공포는 다포식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대광전은 조선시대 중기에 지어진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건축기법에서 조선 전기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건물 좌우 벽면과 앞뒤 포벽의 안과 밖에는 불상, 신장상, 꽃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대부분 17~18세기에 조성된 것이며, 필치와 화풍이 유려하여 조선시대

후기불화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으나 건물 내부의 단청도 색채나 문양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199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흥사 대광전의 벽화는 건물의 내외벽과 포벽, 건물 내부의 대량(大樑 : 작은 들보의 하중을 받기 위하여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큰 들보)과 고주(高柱 : 안둘렛간을 감싸고 있는 기둥)에 그려진 것을 포함하면 총

70여 점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건물 내벽의 벽화는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가득 채워져 있어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다. 현재 후불탱

뒤에서는 탱화의 초안도가 발견되었다. 벽화는 보물 제1757호로 지정되었다.

 

절의 일주문에는 축천산신흥사((鷲遷山新興寺)라고

현판이 붙어있는데, 글씨는 통도사 주지 월하 스님이

썼다고 한다.

 

신흥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집결하여 왜군에 항거한 곳으로 왜군의 공격으로 절이 불타버리고 말았다. 신흥사는 단순한 전통 가람이 아니라 호국불교의 혼이 서린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지 공납 때문에 신흥사 스님들이 고통을 겪기도 했다. 신흥사가 위치한 영포리, 어영마을 등에 닥나무를 심어 한지를 만들었다. 조선시대에 많은 종이가 필요하자 원료인 닥나무 재배를 백성들에게 권장하고 지방수령들에게 잘 관리하도록 하였다.

 

종이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지방관청, 사찰, 민간에 공납이나 진상이라는 명목으로 종이 상납을 배정하였다. 승려들은 지나친 종이 공납 강요에 시달리다가 견디지

못하고 절을 폐하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3. 매화꽃으로 단장한 아름다운 꽃절 신흥사

 

신흥사가 1년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은 매화꽃이 피는 봄이라 할 수 있다. 신흥사 건너편 언덕은 사찰

소유의 매화농장으로 형형색색의 매화꽃이 피어나 서로의 맵시를 자랑한다. 사찰이 위치한 영포리 마을 전체가 매화농장으로 배내골로 향하는 69호선 국지도 좌우의 야트막한 야산에 온통 매화꽃이 만발하여 산골짜기

전체에 매화향이 그윽하다.

 

영포리는 원동매화축제가 시작된 곳으로 매년 봄이면

관광객이 몰려 차량이 정체되고 주차난이 심화된다.

경부선 철마가 달리는 낙동강변의 순매원 근처가 매화꽃 명소로 잘 알려져 원동면 원리에서도 매화축제가 열린다.

 

영포리, 장선리 등은 농림부에서 주관하는 배내골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에 2007년 선정되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7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원동면 영

포리에 쌍포매실다목적광장과 주차장을 조성하여 매화

축제를 개최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마련하였다.

 

원동매화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신흥사에서도 어린이

대상으로 매화꽃과 사찰풍경 그리기 사생대회를 매년

개최해왔다. 코로나 19 때문에 원동매화축제가 2020년, 2021년 연속 취소되어 행사가 열리지 못했다.

 

가족단위로 참가한 수많은 어린이들이 신흥사의 넓은

마당 곳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양산시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하여 행사를 개최하는 신흥사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매화꽃 향기가 진동하는 꽃절인 신흥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매화나무가 없다. 신흥사 사찰 경내에 매화나무가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흥사 앞 사찰 소유의 거대한 매화농장이 정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천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는 대자연을 신흥사의 정원으로 삼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신흥사 일주문 옆에는 매화꽃이 화려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신흥사 국사당은 사방팔방 매화꽃으로 포위되어 있다.

 

신흥사처럼 주변이 자연스럽게 매화꽃으로 장식된 꽃절은 전국을 둘러보아도 거의 없다. 신흥사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지도 69호선을 달려 영포마을을 거쳐 신흥사 일주문에 도달하면 바로 절의 영역이 시작된다.

 

국사당으로 연결된 오솔길은 매화꽃으로 단장하고 있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올라가도 매화꽃 천지다. 영포리 마을쪽으로 연결된 산책로로 매화꽃 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다.

 

쌍포매실다목적광장으로 가는 매화 명품산책로와도 이어진다. 신흥사 주차장에 도달하기 전 언덕에도 전부 매화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커다란 매화농장이 신흥사 앞마당을 장식하고 있는 형국이다.

 

신흥사 안의 전각 주변에는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다. 봄에는 대광전 앞에 할미꽃이 수줍게 고개 숙여 핀다. 가을에는 꽃무릇이 도처에 붉은 왕관을

머리에 이고 피어난다. 백일홍, 벚꽃, 영산홍, 낮달맞이꽃, 동자꽃 등 다양한 꽃도 보이고, 부처님을 상징하는

연꽃, 수련도 전각 앞을 장식한다. 화분에도 야생화를 심어 사계절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신흥사는 매화정원을 가진 사찰답게 매화꽃이 피는 봄이 가장 아름답지만 69호선 국지도에 벚꽃, 조팝나무꽃이 필 때도 드라이브 하기 좋은 곳이다. 신록이 우거지는 계절, 단풍이 드는 가을에도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에 연중 어느 때 방문해도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힐링을 하기에 알맞은 꽃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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