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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레깅스를 입다. [기고] 박만영 콜핑 회장

기사입력 2020.06.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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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가 2020년에 있었더라면 당당하게 레깅스를 입었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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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전성시대다. 한 때의 유행으로 지나칠 것 같았던 레깅스는 어느새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원마일룩(집 근처 간편히 외출할 수 있는 홈웨어룩)'으로 각광받던 레깅스가 등산, 낚시, 요가, 데일리룩 등으로 활동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 트렌드를 반영해 아웃도어 브랜드 콜핑에서도 레깅스를 출시했다.
 
최근 레깅스는 논란의 중심이다. 내가 뭘 입든 개인의 자유라는 주장과 보고 있으니 민망하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논란 어디서 많이 본 듯도 하다.
 
무릎 위 몇 센티까지 치마 길이를 재던 '그때 그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960년대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는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패션의 역사를 새롭게 휘갈기는 큰 사건이었지만 지금은 윤복희의 앨범 자켓에 찍힌 그 정도 미니스커트가 진짜 미니인가 싶을 정도로 단정하게만 보인다.
 
지금은 레깅스가 우리 삶에서 뿌리 내리기 까지 과도기인 셈이다.  미니스커트가 그랬던 것처럼 레깅스를 입고 출근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날이 올 것이다.
 
레깅스의 주체는 여성이다.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는 레깅스를 입는 여자들에게 발칙함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그 여자들이라 함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다. 자본주의와 보수적인 사회가 창조해낸 마돈나에게 냉소적인 비웃음을 짓는 자들이다.
 
시대의 트렌드다. '미움받지 않을 용기'와 자존감 수업과 같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도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나. 심지어 90년대 생들은 자신들을 빛내줄 무대가 없는 회사면 쉽게 이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시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들의 자화상이다. 
 
꼭 황진이를 닮았다. 미천한 출신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성리학 시대에 터부시되던 사랑을 절절하게 노래한 결과 박연 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에 이름을 올렸다.
 
사람이 죽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이름이라면 제일 명예로운 일이라고 하는데 이런 전제라면 황진이는 조선 여성 중에서도 제일 성공한 것이 아닌가. 관료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시조파트에서는 조선시대의 최고의 학자들과 견주어 소개되고 있으니 말이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 허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 허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의 남아있는 시조 중 가장 황진이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시조이다. 표면적으로는 흐르는 시냇물이 바다에 닿으면 다시 못 오니 쉬어가라는 것이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벽계수라는 사람을 유혹하는 중의적인 뜻에 있다.
 
이 시조를 듣고 나귀에서 떨어진 벽계수의 모습이 황진이 드라마의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혔다. 자신의 유혹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할 벽계수의 행동을 예측하여 시조를 부르는 장면에서 보여진 황진이의 모습은 참 당당한 조선의 여성이었다.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하는 황진이의 모습은 MZ세대와 닮아있다. MZ세대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보를 중시하며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별한 메시지를 담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미닝아웃'을 소비한다.
 
현 세대에게 사랑 받고 있는 레깅스는 단순 제품이 아닌 셈이다. 레깅스는 집단보다는 나의 행복이 우선이며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표현 수단인 것이다.

황진이가 만약 지금 있다면 레깅스를 기꺼이 향유했을 것이다. 

국내 유명 대기업의 여성들이 임원이 되는 시대이다. 보수적이기 그지없던 관료사회에서도 여성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들이여, 당당하게 레깅스를 입자. 자기 자신을 그대로 사랑하고 드러낼 수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레깅스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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