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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신평 3.1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동영상, 100년만의 함성!

기사입력 2019.03.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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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의 분수령을 이룬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양산 지역에서의 3·1운동은 신평의거와 양산읍의거가 있다. 1919년 3월 13일 신평 장날을 기해 통도사 부속 지방학림 학생 김상문(金祥文)을 선두로 학생과 통도사 승려들이 신평리 장터에서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감행하였다. 시위에 참가한 김진옥(金鎭玉)은 검거되어 징역 2년을 선고 받았고, 김상문은 검거를 피해 중국으로 탈출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참가하였다.
한편 양산읍 시위는 부산과 동래 지역에서의 3·1운동을 알게 된 엄주태(嚴柱泰)의 주도하에 전병건(全秉健), 박삼도(朴三道), 이기주(李基周), 정주봉(鄭周奉) 등이 1919년 3월 27일 양산 장날 독립 만세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양산 지역 헌병대원들은 시위 주동자들을 검거하였으나, 1차 시위 때 검거를 모면했던 이귀수와 류계문(柳桂文) 등이 1919년 4월 1일 다시 의거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운동가 [獨立運動家]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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