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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문화박사의 세계문화 유산인 통도사 부처님 오신 날! / 그 어느것과 비교 할 수 없는 생생한 2019 봉축행사 현장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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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뉴스

심상도 문화박사의 세계문화 유산인 통도사 부처님 오신 날! / 그 어느것과 비교 할 수 없는 생생한 2019 봉축행사 현장 스토리텔링

본 뉴스의 제목은 세계 어느 언론을 견줄 수 없을 만큼 길고 상세 하다.
이것이 인터넷에서 모바일화, 즉 5g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돋 보이게 하는 나름의 전략이다.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하여 불기를 말하지 않고 2019년 봉축행사라 칭한다.
646년 자장율사가 당(唐)에서 신라에 돌아와 문수보살에게 사리를 모실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 곳을 묻자, 꿈에 동자(童子)가 나타나 동국(東國)에 부처님으로 모시라고 일러주었다. 자장은 동국이 신라를 가리키는 것은 알았지만 신라의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어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동쪽으로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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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처음 양산에 와서 거주하며 기도하던 곳은 자장암이었다. 통도사 터는 큰 저수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저수지를 메우고 사찰을 건립하였다.

 
통도사 불연, 부처님을 모시는 가마
 
 
646년 자장율사가 당(唐)에서 신라에 돌아와 문수보살에게 사리를 모실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 곳을 묻자, 꿈에 동자(童子)가 나타나 동국(東國)에 부처님으로 모시라고 일러주었다. 자장은 동국이 신라를 가리키는 것은 알았지만 신라의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어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동쪽으로 날려 보냈다.

얼마 후 오리는 한 송이 칡꽃을 물고 돌아왔다. 자장은 칡꽃이 피어 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는 뜻임을 알고 한겨울에 칡꽃을 며칠 동안 찾아 나서던 중 양산에서 좀 떨어진 영축산에 이르러 칡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 절을 세운 것이 통도사였다.

통도사 창건 설화나 전설은 지어낸 이야기나 황당무계한 스토리로 평가절하 하면 안 된다. 전해오는 이야기 속에 역사의 숨은 그림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것은 학자의 몫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겨울에 칡꽃이 핀 곳이 양산의 영축산 자락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보자. 양산은 따뜻한 남쪽나라에 있어 겨울에도 눈이 거의 오지 않고 기온도 온화하여 사람살기 좋은 고장이다.

통도사의 350년 넘은 자장매는 한겨울에 꽃망울을 일찍 터뜨린다. 거의 1월초부터 한 두 송이 꽃이 피기 시작하여 2월말 3월 초순에 만개하며, 중순까지 꽃을 볼 수 있다. 영각 앞의 자장매 외에도 극락보전 옆의 진분홍, 연분홍 홍매화 두 그루가 연이어 꽃을 피운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겨울은 1,2월이다. 통도사의 자장매와 홍매화는 추위가 심한 한겨울에 꽃을 피운다. 통도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한겨울에 핀 칡꽃'은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창건설화는 이와같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과 연결된다.






필자는 양산에 온지 27년째 되었는데, 통도사와 부속암자의 매력에 푹 빠져 한창 때는 사나흘에 한번쯤은 통도사를 방문하여 사진을 찍곤 하였다. 통도사나 양산의 명소를 사진찍어 페이스북에 올려 전세계에 홍보를 하였다.

필자의 글과 사진을 보고 양산을 방문한 외지인들이 많다. 사전에 약속을 하고 방문하면 안내도 하고 점심을 사준 경우도 많다. 양산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통도사와 부속암자를 안내하고 해설해주면 감탄사를 연발한다.

● 구룡의 전설

대웅전 옆의 연못은 구룡지(九龍池)로 불리며, 통도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가 서려 있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문수보살이 진신사리와 가사를 주면서 신라 영축산의 독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는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봉안하라고 알려주었다.
 


 
구룡지에 살고 있는 금붕어
 


자장율사가 여덟 마리의 용은 쫓아 보냈으나 마지막 남은 용은 연못에 남아 터를 지키고 싶어하여 연못 일부를 메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지금의 구룡지라는 전설이다.

용과 관련된 전설을 해부해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원래 저수지였던 통도사 터를 어느 날 자장율사가 나타나 선덕여왕의 명령이라며 절을 세우겠다고 하니 기존에 여기에 살던 양산의 토착민들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 통도사에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경내에 한들못이 있다. 통도사 인접한 곳에 갈밭들못도 있다. 통도사 대웅전 있는 곳이 옛날에 저수지였다는 전설은 합리적이다. 통도사 앞은 양산천 상류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저수지가 있었으면 물대기 좋은 위치다.

또한 통도사 앞을 가로자르는 양산천 상류 계곡은 영축산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린다. 계곡 때문에 통도사는 하천과 나란히 전각을 지어서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구분한다.



구룡지 수호신인 용
 


저수지로부터 물을 공급받아 편안하게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청천벽력의 뉴스였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한 자장율사와 9마리 독룡의 싸움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토착민이 소유한 저수지와 통도사 터를 놓고 여왕의 명령이니 내놓으라는 자장율사의 요청에 농민들은 거부감을 갖고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섰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봉축 법요식
 

요즘도 국책사업으로 신도시, 공단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농민이나 토지 소유주들은 법에 따른 강제수용과 낮은 보상가에 불만을 품고 극렬하게 저항하거나 분신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용산재개발 참사는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에 발생하였다. 재개발 보상 대책에 반발하며 농성을 벌인 철거민 5명과 이를 진압하던 경찰 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 참사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불교라는 생소한 외래종교가 처음으로 양산에 들어와 토착종교를 무시하니 극렬한 반발이 생긴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통도사를 짓기 위해 선덕여왕의 왕명을 받든 자장율사와 이에 반대하는 양산 백성들의 반발은 아마 그 당시 신라 뉴스 톱 10 중에서 1위를 차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은 매우 비극적이다. 남종삼과 홍봉주가 모반부도죄로 서소문 밖에서 처형됐고, 베르뇌를 비롯한 프랑스 신부 4명은 불법 입국, 전도죄로 노량 백사장에서 처형되어 효수됐다. 푸르티에와 프티니콜라 신부가 노량 백사장에서 처형됐고, 다블뤼 주교, 신부 오매트르와 위앵이 처형됐다. 1866년에 대략 8천 명이 처형되었다.

유교와 천주교의 충돌로 죄없는 백성들이 순교하였다. 요즘도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유대교 사이의 분쟁과 충돌이 발생하여 안타깝다.



통도사 창건 당시 양산 백성들이 믿었던 신앙은 자연신, 칠성신, 용신, 선교(仙敎) 등 다양하였을 것이다. 선교(仙敎)는 환인을 신으로 모신 것에서 시작되어, 환웅(桓雄)의 신시배달국의 제천(祭天),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계승되었다.

자장율사는 용에게 '절을 지을려고 하니 떠나달라'고 요청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장율사가 종이에 글을 써서 연못에 던지니 물이 펄펄 끓어서 용들이 달아났다. 아홉 마리의 용 중 다섯 마리는 오룡산으로 도망을 갔고, 세 마리는 동쪽으로 달아나다 한 마리가 무풍한송로 근처 용피바위라는 바위에 떨어져 죽었다. 현재도 하얀 바텅의 바위가 마치 용의 피로 물든 것처럼 얼룩져 있다.

자장율사는 도술대결에서 이긴 후 눈 먼 용 한마리만 구룡지에 남아서 불법을 수호하라고 하였다. 통도사 입구 땅바우공원은 바위가 많은데, 구전에 의하면 용과 자장율사가 협상을 한 곳이라 전해진다. 통도사에서도 구룡지 전설을 스토리텔링하여 성보박물관 앞 하천에 8마리, 구룡지에 한 마리를 용등을 배치하여 인기를 끌었다.
 


● 통도사 창건과 민속 신앙의 타협

불교가 수용한 민간신앙의 유형은 산신신앙, 칠성신앙, 용왕신앙, 조왕신앙, 장승신앙 등이 있다. 불교가 포용한 민간신앙의 대표적인 경우는 산신신앙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할이 산악이므로 산간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상고시대부터 산을 중심으로 수렵채취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단군신화를 비롯한 신라의 6촌장과 김수로왕 등 거의 모든 신들은 산을 통해서 하강한다.

불자들이 연등을 달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태백산(묘향산, 구월산)에 하강하여 신단수를 중심으로 신시(神市)를 베풀었다고 했는데 이때 산은 우주의 중심이고 신단수는 우주목이 된다. 그리고 단군은 아사달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됨으로써 후손을 보살피는 신격을 획득한다.

씨족이 분화하면서 산신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좌정하게 되는데 비록 산간을 떠나 평야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모시는 신은 산신이며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은 조상신의 성격과 수호신의 성격을 가진다. 마을마다 있는 서낭신도 수호신으로서 근본은 산신에서 유래하였다.

산신은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나 호랑이로 표상화된다. 우리나라 산신의 성별은 남성 신이 많으며 여성 신인 경우도 있다. 남성 산신은 천신의 성격이 있고 여성 산신은 지모신의 성격이 있다. 통도사에는 산령각이 있다.

산신각과 함께 사찰 경내에 있는 칠성각이 있다. 칠성신앙은 본래 중국 도교의 성숙숭배(星宿崇拜) 신앙이 민간신앙으로 정착하였던 것인데 다시 불교에 수용된 경우다. 칠성은 남두칠성과 북두칠성이 있으며 우리나라는 북두칠성 신앙이 강하다.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과 복록을 관장한다고 믿는다.
 

 
가람각은 통도사를 수호하는 가람신을 모신 전각으로 가람신은 사찰의 토지를 관장하는 신이라 할 수 있다. 가람각은 사찰의 토지를 관장하는 토지대신을 모신 곳으로사찰의 주인은  부처님이지만 부처님이 계신 사찰의 본래 주인은 땅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타협의 결과로 토착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용왕과 조왕단도 불교에 수용된 민간신앙이다. 용은 우리말로 ‘미르’라 하는데 물(水)의 고어 ‘믈’, 은하수의 우리말 ‘미리내’와 관련이 있는 물의 신이다. 용신 신앙은 민간에서 비를 내려주는 신으로 숭앙되며 6월 보름에 용신제를 지낸다.

용왕굿을 하여 농사의 풍년과 바다의 풍어를 기원하는 대상 신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용은 호법신중에서 천룡팔부의 하나다. 불법을 옹호하는 신중이지만 사람들은 ‘용왕할머니’ ‘용궁마님’ ‘용신할머니’처럼 부르며 가뭄에 비를 내려 풍작을 돕고 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는 풍어의 신으로 숭앙한다.

● 보궁 헌다례와 육법 공양

부처님 오신 날이나 특별한 날에는 육법 공양(六法供養)을 올린다. 육법 공양은 등, 향, 차, 꽃, 과일, 쌀 여섯 가지다. 첫 째, 향은 '해탈향(解脫香: 희생, 화합, 공덕)', 인격의 향을 의미한다.
모든 향이 한 줄기의 연기가 되듯이 아집을 버리고 자신을 태워 주위를 맑게 하므로 해탈향이라고 한다.

둘째, 등은 '반야등(般若燈 : 지혜, 희생, 광명, 찬탄)'을 의미한다. 반야는 깨달음의 지혜 광명으로 미혹한 어둠 속에서 지혜와 광명을 비추어 중생들을 정법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차는 '감로다(甘露茶-부처님의 법문이 만족스럽고 청량)'를 의미한다. 청정한 감로수는 삼독심에 의해서 생긴 중생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고 하여 감로다라고 한다.

삼독은 탐욕(貪慾), 진에(瞋恚), 우치(愚癡)를 의미한다. 줄여서 탐·진·치라고도 하며, 이 세 가지 번뇌가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이라고 한다.

넷째, 과일은 '보리과(菩提果 : 깨달음)'라고 한다. 화엄경에서 보면 이 과일이 칠보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이 아니고 보리과를 말한다. 이 과일을 먹는 것은 칠보를 먹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정등정각을 이룬 것을 보리라 하고, 우리도 그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행하듯 과일을 올리면서 정등정각, 위없는 결과를 얻어 중생들을 자비심으로 제도하겠다는 의미다.

다섯째, 쌀은 '선열미(禪悅米 : 기쁨,환희)'라고 한다. 법으로 가득한 기쁨을 이야기하고, 안과 밖이 맑고 깨끗하여 아주 기쁜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여섯 째, 꽃은 '만행화(萬行花 : 수행, 장엄, 찬탄)'라고 한다. 만행은 지혜와 자비를 기반으로 한 만 가지의 행동을 의미한다. 꽃이 핀다는 것은 지혜가 밝아졌다는 뜻이다.

금강계단에서 9시부터 보궁 헌다례가 진행하였다. 일단 입장하면 10시 행사 끝날 때까지 이동하거나 사진 촬영을 제한하였다. 절차에 따라 행사를 진행하고 육법공양을 하였다.
 
 
 
 
 

 
 
통도사 헌다회 회원들이 헌다 행사를 맡아서 봉사하였다. 헌다회 종료 후 마음씨 착한 회원에게 부처님께 올린 차를 한 잔 얻어마셨다. 감사드리는 바이다.

왼쪽에 있는 분이 필자에게 차를 마시라고 한 고마운 분, 목마른 필자에게 감로수와 같은 차를 보시했으니 나중에 복을 받을 것이다.
 
 
통도사에서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모든 불자와 관광객에게 공양을 제공하였다. 공양을 위해 늘어선 줄이 하루종일 끝없이 이어졌다. 설거지도 신도들이 담당하여 봉사하였다. 필자는 점심 공양을 하고 고마운 마음에 공양미 4개(2만 원)를 사서 극락보전 부처님 전에 바치고 참배를 하였다.
 
 
 
● 초파일 연등

초파일 연등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연등회에 대한 기록은 신라 경문왕 6년(866)에 황룡사에서 연등회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처음이다. 그리고 진성여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로 행차하여 간등(看燈)한 내용이 보인다.
 
 
 
 
진주 유등축제에서 빌려온 해학적인 연등, 속담을 중심으로 하였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감나무 밑에 누워 입애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개천에서 용난다. 과거급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
 
 
연등 시기가 정월이라는 점과 간등(看燈) 후에 잔치를 베풀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종교적 의례라기보다 왕실 번영의 기원 또는 연희의 성격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등회가 정월과 2월에서 사월초파일에 행해진 것은 고려 중기 의종(1146 ~1170) 때부터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사월 초파일의 연등회는 궁중에서 행한 것이라기보다 특정 신분의 계층이나 민간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궁중과 관계없이 민간에서 초파일 연등행사를 했다는 것은 부처님 탄생과 관련된 불교적 의미가 강한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공민왕 때에는 4월 8일에 집집마다 연등을 다는 국가적인 축제로 발전하였다. 연등회는 고려사회가 만들어낸 불교 문화적 행사로서 고려문화를 대표하는 핵심이었다.
 
 
 
 
고려의 초파일 연등은 조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이 유교주의를 표방했으므로 국가적 명절은 아니었으나 이미 민간에 깊이 뿌리박은 초파일 풍속을 금지시키는 데까지 통제하지는 못했다.
 
 
통도사 연등 점화식은 오후 7시에 진행되었다. 주지 스님, 이종희 양산시의원이 참석하였다. 사회 진행자는 점등식 스위치 누르는 이벤트에 중학생과 초등생을 대표로 뽑아 참여시켰다. 불자는 연세 든 보살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젊은 계층에게도 포교가 되어야 하겠다.

● 전통낙화 시연회

일주문, 성보박물관 앞 삼성반월교가 있는 하천 아래와 위쪽에서 전통낙화 시연회가 저녁 7시 30분에 열렸다. 주지스님, 이종희 양산시의원 등이 참석하여 행사가 진행되었다. 줄을 매달고 불꽃이 타오르는 심지를 매달았다.

낮에 일주문 앞 도로에서 전선으로 연결하는 용역을 맡은 회사의 책임자급 직원에게 자동 점화를 하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지나가는 사람 800명 마다 질문을 하면 자신은 똑같은 답변을 800번 해야 한다며 불친절한 태도로 답변을 회피하였다. 괘씸하여 한참 지켜서서 살펴보았지만 질문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사람은 필자가 양산의 유명한 스토리텔러라는 걸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필자는 매년 전통낙화놀이 시연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왔다. 그래서 그 불친절한 직원이 만든 낙화가 자동으로 점화되는지 남아서 확인하기로 결심하였다.

오래 기다려 7시 연등 점등식 후 7시 30분이 되었다. 자동 점화를 기대하였으나 전통낙화는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아 일부만 성공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불발이어서 실패작이었다. 가스 불은 든 직원 여러 명이 하천에 내려가 일일이 불을 붙이는 수고를 했다. 그 순간 잘난체 하던 낮의 그 불친절한 직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에 전통낙화 시연은 수동으로 직원들이 횃불을 들고 하천에서 힘들게 불을 붙였다. 올해는 자동 점화라고 프로그램에 나와 있었으나 수동이나 마찬가지였다. 낙화놀이를 구경할 때 유의할 점은 오래 타기 때문에 처음부터 구경하지 말고 좀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에 조용히 사진을 찍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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