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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소장과 함께 떠나는 금정산 고당봉, 금샘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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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ing

심상도 소장과 함께 떠나는 금정산 고당봉, 금샘 답사

4월 13일 금정산 답사를 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사무소가 있는 산성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이시일 시인 덕분에 차량 통제소를 통과하여 차단기가 있는 입구까지 차로 가 편하게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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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오거돈 부산시장은 2017년 10월 시민행복을 위해 4년간 1조 600억 원을 투입해 금정산의 공원일몰제 대상 공원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공원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공원 공간의 유지가 '난개발 방지와 시민행복공간 확보’를 통해 현세대, 미래세대까지 포괄하는 공익적 투자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4월 13일 금정산 답사를 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사무소가 있는 산성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이시일 시인 덕분에 차량 통제소를 통과하여 차단기가 있는 입구까지 차로 가 편하게 등산을 시작했다.

 

 
 
금정산에 진달래꽃이 만발하였다.
 
 
 
동반자는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이다.
 
 
 
꽃길만 걷는 이시일 시인
 
 
부산에서는 금정산을 영구히 보전하는 차원에서 국립공원화 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금정산의 소유는 84.5%가 사유지로 존재하고 있어 토지 소유주의 반대로 난항이 예상된다.

금정산의 많은 부분이 양산시에 속해 있어 양산시민의 의견을 존중하며 진행할 필요가 있다. 금정산에서 국립공원에 들어가는 면적은 60.9㎢이다. 이 중에서 양산시 면적은 17.2㎢로 전체의 28%를 차지하고 있다.

전에 금정산 등산 후기에서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마애불상을 답사한 부산시민이 왜 양산 땅이냐고 불만을 얘기하는 걸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금정산 장군봉은 엄연히 양산시에 속한다. 장군봉에서 가까운 곳에 마애불상이 있다.

북문
 
 
 
 
 
 
 
 
 
 
금정산 고당봉은 부산광역시와 경남 양산시의 경계 지점에 있다. 고당봉에서 바라보면 양산이 잘 보인다. 고당봉 절벽 밑은 양산시에 속해 있다.
 
 
2016년 8월 1일 낙뢰로 파손된 고당봉 정상석
 
 
 
 
가도가도 꽃길만 이어진다.
 
 
 
멋진 포즈, 금정산 고당봉으로 오르내리는 동안 숱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모두가 호기심어린 눈초리와 웃음으로 삿갓 쓰고, 도사 지팡이를 든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을 바라보았다. 금정산 산신령의 출현이다.
 
 
수도자의 뒷모습은 일반인이 볼 때 고독하게 느껴지지만 당사자는 당당하고 거칠 것이 없다.
 
 
 
양산시 동면에 속한 금정산 지역은 대부분 그린벨트로 묶여 이미 철저한 개발제한 지역이다. 양산시민들은 국립공원 지정으로 인한 이중 규제를 달가와하지 않고 있다. 양산시민은 들러리로 세우고 금정산 공원화를 추진하면 성공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 금정산

금정산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로는 주봉인 고당봉(801.5m), 장군봉(727m), 계명봉(601.5m), 상계봉(638m), 원효봉(687m), 의상봉(620m), 파리봉, 미륵봉, 대륙봉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으로는 낙동강과 수영강의 분수계를 이루고 있으며, 낙동강 지류인 화명천을 바라보고 있다.
 
 
고당봉 정상에서 시 한수를 쓰는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
 
 
 
 
 
작품을 선물받고 기분 좋아서 한 컷
 
 
금정산에 대한 기록으로는 '동국여지승람'의 '동래현 산천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영남삿갓의 인기는 고당봉 정상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팬들과 기념촬영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데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가 3장(丈) 가량이다 그 위에 샘이 있는데 둘레가 10여척이고 깊이가 7촌(寸) 가량으로 물이 늘 차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색이 황금과 같다. 금어(金魚)가 5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하고, 그 산 아래 절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라 이름했다' 한다.

고당봉 정상석
 
 
 
금정산은 산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비교적 웅장하며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시민들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에서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선정하였다.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산으로서 호국사찰 범어사와 우리나라 5대 산성의 하나인 금정산성이 있다. 낙동강 지류와 수영강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고, 금강공원 및 성지곡공원 등이 있다.

● 금샘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2호로 지정일은 2013년 9월 25일이다.크기는 남북방향 : 약147㎝, 동서방향 : 약125㎝, 깊이 : 약51㎝. 신비로운 샘이다.
 
 
 
 
금샘에서 포즈를 취한 영남삿갓
 
 
 
 
금샘 앞에서
 
 
영남삿갓의 인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금정산이라는 이름도 이 우물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샘에 관하여 '세종실록지리지'과 동국여지승람'에서는 “금정산 정상 돌 위에 샘이 있는데 항상 마르지 않는 이 우물은 물빛이 황금색으로 빛난다고 전한다.

하트 모양의 미니 금샘
 
 
흔들바위,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이 발견하였다. 영남삿갓은 몸이 유연하여 날다람쥐처럼 만첩하게 바위와 나무 위에 쏜살같이 올라갔다. 허리도 숙이며 좁은 바위 틈을 통과하여 신세계로 나아갔다.
 
 
(유)금정산성토산주 삭품명인 49호 명인지정품목 산성막걸리 유청길 씨는 지금도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현재 누룩을 사용하던 우리의 전통 양조방법은 흑국, 황국 등의 일본식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퍼지며 거의 사라졌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도 일본에서 발효전문가들이 찾아와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일본에 가서 1년만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한다.

누룩을 제조하기 위한 종균이 생성되려면 적어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유청길 씨의 누룩방 종균실은 지금도 50년 이상 된 갈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방식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생
 
 
미니 금샘
 
 
양지꽃
 
 
금정산에 버려진 쓰레기가 너무 많았다. 양산숲길보전회 전현수 회원이 금정산 지킴이로 등산로에 방치된 쓰레기를 많이 수거했다 환경정화에 대한 집념이 강한 분으로 양산숲길보전회에서도 환경정화 활동에 맹활약을 하고 있다. 이제는 양산의 아름다운 지킴이로 변신하였다.
 
 
나무에 혹이 난 걸 발견한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
 
 
 
 
 
 
 
● 금정산성 축조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 길이 1만 7336m, 동래 온천장의 북서쪽 해발고도 801m의 금정산정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 4km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에 있어서 부산 동래가 차지하는 위치는 다른 어느 곳에 비할 수 없는 중요한 위치였으며, 한반도의 관문이라는 지리적인 조건에서 임진왜란의 발생과 함께 적의 첫 상륙지점인 부산진을 거쳐 왜군이 쳐들어와 동래부 군사와 일반 백성들이 굳센 항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성이 함락되면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의 장기화에 따라 동래부는 적의 교두보로서 오랜 기간 수난을 당한 곳이다. 해상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우리 수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우리 나라에 상륙한 왜군의 육군을 고립시켰다. 왜군은 남해를 거쳐 서해로 돌아 한양까지 올라가 군대와 군량미를 수송하려던 계획이 이순신 장군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금정산성은 동래부와 가깝고 지역 군량의 생산조달이 용이하면서도 험준한 산세를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하였다. 금정산성 안에 내동헌의 부사 집무소까지 두었다. 왜구가 쳐들어와 전쟁이 발발하면 군사와 백성들이 피난와 항쟁할 수 있도록 방비를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현재는 동서남북 4 대문이 있고 4 개의 망루가 있다.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 3읍의 소속군과 3읍 소재 사원의 승려들이 차출되어 방어토록 되어 있었다. 군기로는 화약 , 염소, 유황, 조총(鳥銃) 88,546개 등이다.

승병은 1713년(숙종 39년) 판결사 이정신(전 동래부사)의 건의에 따라 동래, 양산, 기장 등의 각 사찰의 승대를 조직하여 유사시에 산성의 방어를 맡게 하였다. 평상시에는 산성내의 국청사와 해월사의 승려 100여명과 범어사 승려 300여명으로 수첩하여 성역(城役)에 종사하였다고 하는 사실이 현재 국청사에 남아 있다.
 
 
 
조선시대는 유교가 국교였으며 불교는 배척당했다. 승려의 위상은 매우 낮아 신분이 불안정하였다. 승려층은 단일 신분층이 아니라 하층에서 상층에 이르기까지 여러 신분층이 포함된 복합적 특수계층이었다.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정한 부역에 참여하여 몇 달을 무보수로 노역함으로써 승려 자격증에 해당하는 도첩(度牒)을 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 승려들은 각종 부역에 시달렸다. 궁궐 공사, 성곽 축조, 관청 일 등에 무보수로 동원되었다. 또한 공납에도 시달렸고, 미투리(짚신), 한지 만들기, 누룩 만들기, 두부 만들기 등 관리나 양반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도한 부역에 시달리면 승려들은 몰래 절울 떠나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기도 하여 절이 텅빌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 불교와 스님들은 탄압을 받기도 하고 유생들애게 업신여김을 당했지만 임진왜란 때는 호국불교로서 누란의 위기에 빠진 조국을 위해 분연히 떨쳐일어나 용감하개 싸웠다. 임진왜란 때 구국의 영웅이 된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활약상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임란 때 동래출신으로 공을 세워 임진기토적 24공신(壬辰起討賊24功臣)의 후손들 중에서 재주가 있는 자를 뽑아 별전청에 집무케 하여 군사의 사기를 높이기도 하였다. 또한 금정산성 창고에는 미곡 2,000석과 백목 56동을 저장하였다.

● 양산군수 조영규 순절

양산군수로 재임 중이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의 선봉이 부산포, 동래성을 공격하자 경상우병사 이각은 군사를 버리고 도망쳤으나, 조영규 양산군수는 오히려 말을 달려 동래부사 송상현을 찾아가 생사를 같이하기로 기약하였다.

그 때 조영규 양산군수의 노모가 임지인 양산에 있었으므로 전황이 급박한데도 다시 양산으로 돌아와 노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동래성으로 갔다. 이미 왜병이 동래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단기 필마로 적진으로 돌진하니 왜군이 위세에 놀라 움찔하는 사이에 성문을 통과하였다. 성내로 들어가 송상현 동래부사와 만나 왜병과 끝까지 싸웠다. 성이 함락당하자 송상현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1669년(현종 10) 송준길(의 상계로 조영규의 효행, 충절이 알려져 호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동래의 안락서원, 양산의 충렬사, 장성의 모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영산시 교동 춘추공원에 있는 충렬사는 삼조의열인 충렬공 박제상, 양주방어사 김원현, 양산군수 조영규 양산군수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임란공신 28위, 항일독립운동유공자 39위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다. 양산향교에서는 삼조의열과 애국 지사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양력 3월 27일 충렬사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부산시에서 지하철공사중 발견된 성 해자에서 대량으로 유골이 출토되었다. 2005년 부산교통공사가 수안역을 건설할 때 임진왜란 당시의 유골과 유물들이 나왔다. 당시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그 자리에 역사관을 세웠다.

폭 5m, 높이 1.7~2.5m 크기의 동래읍성 해자에서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무기뿐만 아니라 칼에 베인 유골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에서 왜에 저항했던 치열한 현장이 420여 년이 지나 드러나게 된 것이다.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은 지하철 역사에서 참혹했던 역사를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2011년 1월 28일에 개관하였다.

금정산도 식후경
 
 
동래성 전투 이후 왜군의 대량학살이 있었다. 부녀자와 아이의 시신이 많고 목을 친 유골도 많이 발견되었다. 조선의 갑옷도 발견되어 말단 병졸도 간단한 갑옷을 장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도, 창, 화살 등 조선의 무기사를 새로 쓸 만큼의 무기류도 나왔다.

● 박정희 대통령과 금정산성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는 제조 공정에서 전통 양조 방식을 그대로 따라 만든 발효주로 우리나라 많은 막걸리 중에서 유일하게 향토민속주로 지정되어 있는 대한민국 민속주 1호 막걸리이다.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발효된 자연산 누룩과 250m 지하의
암반수를 사용한다.

금정산성 막걸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이던 시절 금정산성에서 우연히 마신 막걸리 맛에 흠뻑 빠졌다. 박대통령은 당시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를 즐겼으며 대통령이 되어서 밀주였던 금정산성 막걸리를 대통령령으로 양성화시켰다. 1978년에 민속주 지정 신청을 하고, 1979년에 허가가 났다.

막걸리병으로 만든 멋진 조형물
 
 
청의적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쓰레기, 재활용품으로 버려지고 쓰일 막걸리통이 예술품으로 재탄생하였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좋은 전통주를 없애면 되겠느냐고 말한 후 산성막걸리를 보호해주었다. 1979년 박 대통령은 부산에 순시차 내려와 산성막걸리를 찾았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막걸리 애주가로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시켜 비밀리에 산성막걸리를 말통으로 사가곤 했다.

1964년 만성적인 식량부족사태 해결의 일환으로 정부는 쌀 막걸리 제조를 금지하고 막걸리의 중요 원료인 누룩 제조 역시 금지했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족타식, 덧신을 신고 꼭꼭 밟아 500년 째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흑국, 황국 등 일본식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 대신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고 있어 우리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하루 평균 750ml 병을 기준으로 6천 병 가량이 최대 생산량이다.

금정산에 진달래와 벚꽃이 활짝 피었다.
 
 
 
 
이시일 시인의 지인 집에서 국수 한 그릇, 해물파전을 먹었다. 벚꽃은 화려하게 피었는데, 식당 간판이 없었다. 해물파전은 이시인의 지인께서 서비스로 주었다. 감사하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유)금정산성토산주 삭품명인 49호 명인지정품목 산성막걸리 유청길 씨는 지금도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현재 누룩을 사용하던 우리의 전통 양조방법은 흑국, 황국 등의 일본식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퍼지며 거의 사라졌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도 일본에서 발효전문가들이 찾아와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일본에 가서 1년만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한다.

누룩을 제조하기 위한 종균이 생성되려면 적어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유청길 씨의 누룩방 종균실은 지금도 50년 이상 된 갈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방식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 심상도 프로필

경기대학교 대학원 관광경영학과 관경영영학 박사
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전 동원과기대 호탤관광과 교수
전 한국관광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
전 (주)세기종합기술공사 부설 세기관광환경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문화체육관광부 정부 축제 평가위원
전 울산광역시 문화관광해설사 특강, 해설 안내기법
전 울산광역시 중구 문화원, 울산큰애기 관광해설사 특강
현 양산신문 10년 이상 칼럼 게재 중
현 양산시 마을만들기 지원협의회 공동위원장(양산시 부시장과 함께)
현 고성군 지역발전협의회 자문위원
현 의령군 의령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80억 원) 자문위원
현 밀양시 삼랑진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80억 원) 자문단장
현 농림축산식품부 일반농산어촌개발 자문
현 한국농어촌공사 일반농산어촌개발, 지역개발 자문
현 양산숲길보전회 회장
저서, 논문 : 양산의 문화관광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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