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1. 양산화제석교비(梁山花濟石橋碑)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토교마을 황산베랑길에 조선시대 석비가 있다. 화제석교비는 조선시대 영남대로 중 황산도인 양산 화제천에 있던 다리다. 원래 토교(土橋)였던 다리를 석교(石橋)로 고쳐 세우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비석이다.
비석의 내용에는 화제천을 건너기 위한 토교가 잦은 수해로 계속 무너지자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큰 돌을 모아 홍예석교(虹蜺石橋 : 무지개다리)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비석에는 다리의 이름, 위치, 세우게 된 내력, 당시 감독한 관리의 이름, 이 다리가 영남대로의 중요한 통로였음을 알려주는 내용이 적혀 있어 조선시대 교통로 연구에 중요한 사료다. 조선시대 제4로(동래로)상의 관로(官路)를 잇는 다리임을 밝히고 있다.
다리는 군의 서쪽 화제에 있는데 이는 관로의 중요한 자리다. 흙과 나무를 모아 완성했으나 큰 비를 만나면 붕괴되어 비록 바쁜 농사철이라도 갑작스레 보수해야 하니 백성들이 매우 번거롭게 생각했다.
새로 온 누군가가 그것을 고치고자 하니 백성들이 마음으로 기뻐해 몇 년을 두루 정사를 베풀었다. 지주 박공에게 시켜서 두 사람의 감동(監董)을 맡기고 돌을 잘라서 깎았다. 마침 방백인 이공께서 순행하다 보고 곡물을 내어 도왔다. 공사가 끝나고 보고하니 그 완전하고 치밀함이 나중에 번거로운 일이 없게 되었다.
길손들이 축하하며 말하기를 '양산 서쪽 백성들은 노역의 고통이 없게 됐으니 이 아름다운 일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 했다. 이때 공역에 참석한 여덟 동네는 이천, 내포, 범서, 화제, 증산, 범어, 별양, 어곡리 등이고, 세운 때는 영조 15년(건륭乾隆 4. 1739년) 기미 삼월이다.
화제석교비는 경부선 철도 아래쪽에 유실돼 있던 것을 한국수자원공사(K Water) 낙동강권역본부 울산지사의 원동취수장 건물을 지을 때 발견해 다리 곁에 두었다가 이곳에 도로가 나면서 토교마을 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토교마을에 거주하는 이시일 시인과 함께 화제석교비의 발견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이력을 알아보기 위해 답사에 나섰다. 이시일 시인은 마을 안쪽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한 지점에 정차하면서 화제석교비가 임시로 서 있던 위치를 알려주었다. 식수로 사용하기 위한 지하수 관정이 있던 자리라고 설명하였다. 나중에 박말태 전 시의원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울산취수장이 잘 보이는 언덕에서 이시일 시인은 현재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근처에 화제석교비가 서 있었다고 내력을 언급하며, 화제석교는 원동취수장의 하얀 건물 앞에 있었다고 하였다.
이시인은 경부선 철교 밑으로 흐르는 화제천 옆에 와서 낙동강 정비사업으로 인하여 물길이 바뀐 사유를 들려주었다. 낙동강 정비사업 때 화제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물길은 현재보다 왼쪽으로 흘러서 원동취수장 부근에 있는 큰 미루나무 쪽으로 나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물길을 새로 내면서 퍼올린 흙은 울산취수장 쪽으로 메웠다고 알려주었다.
화제석교비 상부는 옆으로 깨지 것을 붙여놓았다. 비석의 아래 부분에는 약간 깨진 흔적이 있었는데, 이시일 시인은 6.25 전쟁 때의 총탄 흔적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2019년 박정애 전 양산신문 이사와 함께 온 부산지역 낙동강 칠백리 답사단을 맞이하여 화제석교비에서 해설을 하였다.
황산베랑길을 따라 걸으며 부산취수장까지 동행하면서 중요 지점에서 해설을 하였다.
2. 우리나라와 외국의 도로 사정 비교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의 역대 왕조들은 도로정책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치도병가지대기(治道兵家之大忌: 길을 고쳐 닦는 일은 병가가 크게 꺼리거나 싫어함) 라는 조선시대 숙종의 말이 그 단적인 사례다. 군사적 측면에서 도로의 역기능이 강조됨으로써 도로 건설은 곧 외적의 침략을 부른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런 도로들은 적군, 특히 주적이었던 북방 기마민족들의 주 기동 경로가 되어버리고 평지 특성상 방어에도 매우 취약해진다. 고구려같이 넓은 벌판을 끼고 있다면 평시에도 도로를 통한 마차의 이용이 많았으나 신라나 백제는 전쟁시가 아닌 평상시에는 도로와 마차의 사용이 매우 적었다.
침략전쟁을 주로 수행하는 나라에서는 도로를 잘 닦아 놓을 필요가 있었지만 작은 예방전쟁 이상의 국가간 전쟁은 직접 일으키려 하지 않았던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도로 개설의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물금에서 신라시대 도로가 발굴된 바 있다. 충북 옥천에서 신라시대 도로가 얼마 전 발굴되었다.
신경준(申景濬)이 1770년(영조 46)에 전국 각 지역의 육로 및 수로 교통, 중국과 일본과의 교통로를 기록한 책으로 도로고(道路考)가 있다. 서문에서 “조선조의 도리(道里)는 주척(周尺)에 의거하여 설정되었으나, 지역에 따라 이수(里數)가 일정하지 않고, 도로 표지나 시설의 배치가 불규칙하여 여행자에게 주는 불편은 물론, 국정에 미치는 피해도 크다.”고 찬술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18세기 중엽 조선의 실학적 지리학을 대표하는 저작으로서, 이전의 전통적인 지리지의 방식이나 역사 지리학 등에서 벗어난 최초의 경제 지리적인 전문 저술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한, 이것은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전개된 도로와 시장에 대한 이용과 유통량의 증대를 중시하고, 그에 대한 정확한 실정을 파악함으로써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조선 후기의 지역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 홍양호 등과 같은 북학파들은 낙후된 조선의 경제를 개혁,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레를 상용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도로개설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영조와 정조대에 이들이 평가받으며 이에 따라 한반도 전토에 도로 건설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국가 도로에 대한 총집편이 바로 도로고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도로인 아피아가도는 로마와 이탈리아 남동쪽 지역에 위치해 있는 브린디시를 연결하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영어 속담은 이 아피아 가도에서 유래하였다. 아피아 가도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로마에 가면 한 번 걸어볼 만한 거리로,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아피아가도는 판석을 깔았고, 돌 양쪽에 배수로를 만들어 도로를 관리하였기에 오늘날까지 보전될 수 있었다.
로마의 감찰관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Appius Claudius Caecus)가 기원전 312년경, 삼니움 전쟁 중에 군사 목적으로 도로를 만든 것이 그 기원으로, 아피아 가도라는 이름은 그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하였다. 가도 중에서 먼저 건설된 구간은 로마~카푸아 구간이고, 카푸아~브린디시 구간은 나중에 연장된 것이다. 로마는 다양한 도로를 만들었기에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중국에는 진시황 당시에 만든 고속도로인 진직도(秦直道)가 있어 놀라움을 안겨준다. 2,200여 년 전 진시황이 만든 군사도로인 진직도는 총길이가 700㎞를 넘고, 폭은 대체로 23~27m지만 가장 넓은 곳은 47m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직도의 북쪽 끝은 만리장성이 위치한 네이멍구 (內蒙古)자치구 바오터우 (包頭)시 주위안(九原)이고, 남쪽 끝은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咸陽) 부근의 산시성 춘화(淳化)현 베이간취안궁 (北甘泉宮)이다.
진직도는 진시황(BC 259~BC 210)의 지시에 따라 몽염의 지휘하에 30여만 명의 군인이 동원돼 2년 6개월 만에 완공하였다. 이 도로는 당시 군사용은 물론 무역, 문화 전파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으며 한나라와 위(魏), 진(晋) 이후까지 주요 교통로로 쓰였다고 한다. 진시황이 건설한 '고속도로' 중 해발 1100~1300m 높이의 산시성 쯔우(子午)령에 있는 5.3㎞ 구간이 발굴되었다.
옛날 우리나라와 고대 로마, 중국 진나라의 도로정책은 매우 달랐음을 역사 기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소극적인 도로 정책을 시행한 대신에 수운을 통하여 물자를 운송하였으며 발전이 정체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의 아우토반을 시찰하고 벤치마킹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기간 고속도로망을 짧은 기간 내에 건설하여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고속도로 덕분에 자가용 보급도 진전되고 물류혁신을 이루었다. 전국토는 1일 생활권 내지 반나절 생활권이 되어 편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3. 흙다리인 토교와 섶다리
조선 태종 8년 광통교의 흙으로 만든 다리를 돌 다리로 개축하였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큰 비가 내려 물이 넘쳐서, 백성 가운데 빠져 죽은 자가 있었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광통교(廣通橋)의 흙다리(土橋)가 비만 오면 곧 무너지니, 청컨대 정릉(貞陵) 구기(舊基)의 돌로 돌다리[石橋]를 만드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하천의 양쪽 기슭에 나무를 걸쳐놓고 그 위에 흙을 덮었으므로 토교라고 하였다.
섶다리는 1428년(세종 10)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의 보광산에 위치한 청송심씨 시조묘에 사계절 전사일(奠祀日)에 용전천 강물이 불으면 유사(有司) 관원(官員)과 자손들이 건너지 못할까 걱정해 섶나무(잎나무와 풋나무 등)를 엮어 만들었다는 전설이 시초가 되었다. 한때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1996년 10월 당시 청송군수인 안의종(당시 62세)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면서 우리 곁에 다시 다가왔다. 2009년 10월 15일에도 섶다리는 설치되었다. 길이 80m, 폭 120cm였다.
영월군 주천면 주천강에 해마다 섶다리를 놓는다. 농번기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다리를 놓는다. 기둥이 될 다리를 세우고 긴 나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소나무 가지를 꺾어 깐다. 그 위에 흙을 깐다. 판운리에 섶다리가 설치된 유래는 1699년 조선 숙종 때부터였다.
왕은 강원관찰사에게 단종의 묘인 영월 장릉을 참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강원관찰사가 장릉으로 가는 도중 영월군 주천강에 도착하였는데,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주천강 양쪽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강원관찰사 일행들이 주천강을 건널 수 있도록 주천강에 임시 다리를 놓았다. 이 교량이 바로 섶다리라고 한다.
하회마을 섶다리는 2019년 영국 엔드루 왕자가 걸은 이후 5월 한 달 동안 하회마을 관광객을 9만 5천 782명을 불러들였으며,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만 5천여 명 증가하여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올해 5월 29일 새롭게 개통된 하회마을 섶다리는 하회마을 만송정 앞에서 옥연정사 방면으로 길이 114m, 폭 1.5m의 나무다리로 세워졌다.
하얀 메밀꽃, 섶다리로 유명한 평창효석문화제는 문화체육관광부 ‘2019 대한민국 우수축제’에 선정되었고, 2018년 41만 명, 2019년 35만 명이 방문하여 인구 5천 5백 명 남짓한 지역에 150억 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었다. 화제토교석비가 있는 양산의 원동천, 황산공원 등에 섶다리를 만들어 외지관광객 유치에 활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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