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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역사 / 양산왜성의 훼손 / YNEWS 조국영 향토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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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양산의 역사 / 양산왜성의 훼손 / YNEWS 조국영 향토사위원장

양산의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임진왜란 흔적으로는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소재 증산왜성이 경남문화재 자료 276호로 남아 있다. 증산왜성은 동서로 양쪽 봉우리에 아성을 두고 그 봉우리을 잇는 부곽을 설치하고 남북으로 문은 낸 주성과 그 아래 남쪽 등성을 이용한 부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군마훈련 장소로 비정되는 넓은 평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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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EWS 조국영 향토사위원장

 

물금 증산왜성(甑山倭城)의 훼손 위기

 

양산의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임진왜란 흔적으로는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소재 증산왜성이 경남문화재 자료 276호로 남아 있다. 

 

증산왜성은 동서로 양쪽 봉우리에 아성(芽城)을 두고 그 봉우리을 잇는 부곽을 설치하고 남북으로 문은 낸 주성(主城)과 그 아래 남쪽 등성을 이용한 부성

(附城)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군마훈련 장소로 비정되는 넓은 평지가 있다.

 

양산시는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696번지와 구 증산 교회 일대의 부근 필지에 도시계획에 의한 계획도로 개설을 위한 측량과 기초적 수목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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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로 개설 위치가 증산 왜성의 부성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서 문화재 훼손의 우려가 현실화 되었다. 

 

양산시 관계자에 문의하니 매장 문화재 지표조사 신청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측량 결과는 성벽 전체를 관통하는 도로개설이 확실함으로 훼손에 따른 명확한 대책이 필요하다.

 

증산리 주민 k씨에 의하면...

 

“한 가구도 살지 않는 지역 쪽으로 문화재를 훼손해 가면서 도로를 개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기존 동네 내에도 미개설 계획도로로 불편함이 너무 많은데 예산 낭비인 것 같다.”고 한다.


또한 양산 시민 L씨는 “양산지역의 임진왜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증산성으로 후세를 위한 산교육장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없애면 안 된다.”고 하였다.

 

증산성 부성 왼쪽 측면 지역은 토기들이 발굴되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고분군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부성을 따라 증산 마을 안쪽으로 돌아 현 증산사를 지나면서 남부동까지 신라시대의 메테식 산성의 흔적이 여러 곳 발견되며 여기에 사용된 석재들은 왜성을 쌓을 때 훼손되고 경부선 부설 때 마지막으로 없어졌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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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도 신라 증산성에 대한 연구가 있으며 건너편 김해 각성산성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황산지역(물금의 옛 이름)에서 가야와 신라가 많은 전쟁을 하였다.‘ 정상부 기단층에는 신라성 흔적이 보이며 그 기초 위에 왜성을 쌓았다’ <향토문화 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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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성을 일제 강점기에는 양산성이라 부르다가 해방 후 증산성이라 부르며 축성 시기는 정유재란시 울산에서부터 순천까지 방어성 구축에 필요한 7개 성을 쌓았는데, 선조 30년(1597) 12월 8일에 나가 히가시 마사이에(長束 正家), 마스다 나가오리(增田 長盛), 이시다 마쯔나리(石田 三成), 마에다 겐지가(前田 玄以)연서로서 구로다 나가마사(黑田 長政)에게 보낸 서장에서 나타난 축조 시기는 1597년 겨울에서 1598년 봄에 완성되었지만 얼마 안가서 폐기되었다가 모리 테루모(毛利 輝元)토, 고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 秀秋)등이 병사와 조선인을 징벌하여 수축하고 구로다 나가마사와 그 아들 구로다 여호수아가 수비하면서 주둔하였다. 

 

다른 이설로는 센다이 영주 다테 마사무네(伊達 政宗)가 쌓았다고 하여 이달정종성이라고도 한다.

 

<구로다(黑田)가보(家譜)>에 의하면...

 

‘북쪽 왕성 가는 길목엔 양산에는 구로다가 주둔한다.’ 그 후 가토 기요마사(加藤 淸正)는 울산 왜성에 구로다는 서생포 왜성으로 옮겼다가 다시 증산성으로 왔다.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가 간행한 <경남의 성지>에는 다음 해 3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 秀吉)의 명령으로 감동포 왜성을 옮겼다고 가덕도 왜성으로 가서 본국으로 철수하였다고 <구로다 가보>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식민지 시대 증산 왜성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메기들 매립공사와 경부선 부설로 훼손도 되었고 식민사관교육에도 이용되었다. 

 

1938년 11월 26일자 동아일보에 고적보존회가 제4회 총회에서 101종의 문화재를 새로 지정했다고 한다. 지정된 문화재 성격으로 ‘금번 지정되는 문화재는 내선 일체의 관념을 정확히 표명하는 것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고적의 경우 경남 일원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재들을 허구적 주장인 임나일본부설과 관계있는 고적들이라고 지정하였으며 내선일체의 식민지 사상을 강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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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테마사무네

 

이 때에 증산 왜성이 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이유로 다테 마사무네가 쌓은 성으로 문록경장의역(임진왜란을 일본식으로 부르는 이름)의 유적으로 등록되었다.

 

해방 후 1963년 1월 21일에 물금 증산성으로 명칭하고 대한민국 사적 6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1996년 11월 27일 문화재 관리국의 일제 잔재 청산 작업 일환으로 왜군에 의해 축조되었던 8개 산성을 국가 지정 문화재인 사적 지위에서 지방문화재인 지방 기념물로 격하시키고 성 이름에도 왜자를 표기했고 1977년 1월 1일에는 물금 증산성은 사적 지정이 해지되었다.

 

1988년 11월 13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276호 증산리 왜성으로 등재되었으며 2018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문화재 자료) 명칭 변경 고시에 따라 재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도로 개설로 훼손 위기에 처한 부성은 비록 종속적인 부성이지만 보존 상태가 주성보다 매우 양호하고, <구로다 가보>에서 밝혔듯이 왕성 가는 길목인 양산의 아주 중요한 위치에 증산 왜성이 자리 잡고 있으며 구로다 부자(후쿠오카 영주), 다테(센다이 영주), 모리(하기성 영주), 고바야카와(오카야마 영주, 토요토미 양자) 등 임진왜란 전쟁 사령관들로 증산 왜성이 가장 거물급 영주들과 관계가 깊으므로 매우 중요하다고 사료된다.

 

증산왜성의 국가 사적을 폐지한 1996년 문화재 3분과 위원장이었던 한병삼(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당시 그 자리에서 “왜군에 의해 축조되었지만 문화재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 지방문화재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고 보존의 중요성을 당시에 밝혔다.

 

증산왜성을 중심으로 증산 전체를 양산시가 공원일몰제에서도 다시 공원으로 지정하였으므로 앞으로 시민들의 보다 높은 삶의 질을 기대하면서 역사적 유적을 반드시 보존하고 학문적으로 정리되어서 교훈으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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