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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어평 영세불망비와 디자인공원/심상도 박사 화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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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타어평 영세불망비와 디자인공원/심상도 박사 화요 칼럼

물금읍에 있는 디자인공원 안의 작은 동산인 청룡등 5부 능선 위에 타어평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다. 오봉산에서 좌(동쪽)는 청룡등, 우(서쪽)는 백호등(白虎嶝)이 뻗어 내렸다. 마을앞(남쪽)으로 펼쳐진 것이 타어평(鼉魚坪 : 메기들)이었다. 현재 물금 신도시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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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어평 영세불망비 비석 발견과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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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금읍에 있는 디자인공원 안의 작은 동산인 청룡등 5부 능선 위에 타어평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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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에서 좌(동쪽)는 청룡등, 우(서쪽)는 백호등(白虎嶝)이 뻗어 내렸다. 마을앞(남쪽)으로 펼쳐진 것이 타어평(鼉魚坪 : 메기들)이었다. 현재 물금 신도시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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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조선시대 중과세에 시달리는 양산지역 메기들 농민들에게 세금을 영구히 면제해주도록 조치한 정원용 호위영 대장, 서헌순 경상도 관찰사, 심락정 양산군수 3명의 공을 기리는 타어평 영세불망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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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나면 물이 불어나 농사를 망치는 메기들에 세금 면제 조치를 내린 백성을 사랑하는 관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하여 양산군민이 정성을 모아 1865년에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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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이 제일 큰 것이 왼쪽에 있는 호위대장 정원용(鄭元容)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 후세 사람들이 영원히 잊지 않도록 어떤 사실을 적어 세우는 비석), 가운데는 경상도 관찰사 서헌순(徐憲淳) 휼민(恤民 : 빈민이나 이재민을 구제함) 영세불망비, 오른쪽은 군수 심락정(沈樂正) 애민(愛民 : 백성을 사랑함) 불망비가 차례로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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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이 발견되고 정비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원래 비석이 세워진 곳은 동산 아래 옛 영남대로변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경 양산수리조합의 승수로 개설로 인해 산 중턱으로 이전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비석의 머리와 본체는 흩어져 땅에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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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물금읍 가촌리에 사는 최만윤 씨가 양산시에 신고함으로써 실체가 드러났다. 전 양산향토사연구회 정진화 회장이 비석의 내력을 밝히고 양산대학 엄원대 교수가 비문을 해석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006년 가을 물금읍의 지원으로 비석을 현 위치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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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 있는 한글로 쓰인 ‘승수로’라는 단어는 처음에 혹시 물을 보내는 송수로의 오타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승수로(承水路)는 등고선 또는 필지의 구획선을 따라서 물을 대거나 배수하는 수로이다. 승수로는 포장 내의 승수로와 포장 밖의 승수로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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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내의 승수로는 빗물의 유하에 따르는 수식(水蝕 : 물에 의한 토양의 침식)의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하여 안전하게 집수로에 유도하기 위한 수로이며, 등고선에 평행하게 설치된다. 그러나 집수로는 보통 등고선에 수직으로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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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3기를 다시 세웠으나 공간이 협소하여 제향을 올리기에는 불편하였다. 그 당시 홍순경 경남도의원이 경남도비 3천만 원을 유치하여 영세불망비 유적의 성역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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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정비사업이 2013년 11월 11일에 완료되어 내력을 적은 안내판을 설치하였다. 타어평 영세불망비 추모제는 물금읍, 물금읍 주민자치위원회, 물금농협, 물금라이온스클럽이 상호 협조하여 주관하고 있다. 유교의식으로 거행되는 추모제 제례의 집례는 동아인쇄문화사 김종완 대표가 맡고 있으며 초헌관은 물금읍장이 하고 있는데, 매년 농민의 날인 11월 11일에 거행한다.

 

2. 호위대장 정원용

 

호위대장 정원용(鄭元容)의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동래(東萊).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 동만(東晚)의 아들로 1802년(순조 2)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가주서(假注書)를 거쳐 검열(檢閱), 부응교(副應敎),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내고 1821년 관서 위유사(關西慰諭使)로서 평안도의 민폐(民弊)를 조사 보고했다.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고 1831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1837년(헌종 3) 예조 판서, 이조 판서를 거쳐 1841년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843년 판중추 부사(判中樞府事)가 되고, 1849년 헌종이 죽자 영의정으로서 덕완군(德完君) 이원범(李元範 : 철종(哲宗))의 영립(迎立)을 주장, 즉위케 했다. 그 후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총호사(摠護使) 등을 지냈다.

 

호위청(扈衛廳)은 1623년 인조반정에 공이 있었던 김류(金瑬), 이귀(李貴) 등의 훈신들 호위청의 편제는 현종 때 호위3청으로 개편되었다. 왕권호위가 소홀하다고 하여, 반정 직후인 9월에 설치해 10월에 군영의 체제를 갖추었다.

 

관기(官紀)가 문란해지고 각처에서 민란(民亂)이 일어나자 암행어사 제도를 부활시키도록 건의했다. 1862년 궤장(几杖)을 하사받은 뒤 이정청(釐整廳)의 총재관(摠裁官)이 되어 삼정(三政)의 문란을 시정하려 했다. 

 

궤장은 왕이 70세 이상의 연로한 대신들에게 내린 하사품 지팡이다. 지팡이의 머리는 비둘기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국가에서 궤장의 하사는 연로한 대신을 극진히 우대하는 예법으로서 받는 사람들이 큰 영예로 여겼다. 1863년 철종이 죽자 원상(院相)이 되어 고종이 즉위할 때까지 정사를 보았다. 이듬해 실록청 총재관(實錄廳摠裁官)이 되어 『철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호위대장 정원용(鄭元容)은 장수하여 91세의 천수를 누렸다.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임금 4대에 걸쳐 72년 동안 벼슬을 하면서 6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다. 1857년에 회근(回巹)을 맞이하였다. 

 

회근(回巹)은 해로한 부부의 혼인한 지 예순 돌을 축하하는 기념잔치다. 회혼(回婚) 또는 회근이라 한다. 1862년에 회방(回榜)을 맞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회방은 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돌이 되는 해다. 대과 및 소과에 급제한 지 60년이 된 사람은 일품계를 승급해주었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에도 뛰어나 20여 년간 조정의 대책(大冊)을 찬술했고, 특히 관각문(館閣文)에 조예가 깊어서 당시 종(鐘), 정(鼎), 비(碑), 판(板)에 정원용의 글과 글씨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하외도(河畏圖)’ 10폭 병풍은 정원용이 이의성(李義聲)에게 주문하여 제작한 것으로 1829년에 정원용이 남긴 발문이 적혀 있다.

 

3. 서헌순 경상도 관찰사, 양산군수 심락정

 

서헌순(徐憲淳) 경상도 관찰사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치장(稚章), 호는 석운(石耘). 좌의정 서지수(徐志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서유후(徐有後)이고, 아버지는 진사 서기보(徐基輔)이며, 어머니는 박종신(朴宗臣)의 딸이다.

 

1829년(순조 29)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1844년(헌종 10) 성균관 대사성에 취임하였고, 3년 후 관북지방에 흉년이 들자 구제사업을 위하여 파견되었으며, 1850년(철종 1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호군(護軍), 공조판서, 형조판서를 거쳐 1854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경상도 관찰사로 오기 전에 예조판서, 한성부 판윤(오늘날의 서울시장), 병조판서, 형조판서, 사헌부 대사헌,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의 요직을 거쳤다.

 

그는 정사를 다스리는 데 청렴결백하며, 옳고 그름을 잘 판단했다고 한다. 경상감사를 역임할 때 부인이 사택에서 가지고 온 솥이 경상도 것임을 알고 그 솥을 경상감영으로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1862년 사은정사(謝恩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63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당시 경주 등지에서는 동학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여 조정에서는 선전관 정운구(鄭雲龜)를 파견하여 동학교도들을 체포하게 하였다. 

 

이에 최제우(崔濟愚) 등 동학교도 20여 명이 서울로 압송되던 중 철종이 승하하여 이듬해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서헌순은 대구 감영에서 이들을 조사하고 의정부의 지시방침에 따라 처형 또는 처벌하였다.

 

서헌순은 ‘수운이 제자들에게 글자를 써주고 돈을 받은 적은 있으나 토색질한 것은 없으며, 동학이 나라를 외적으로부터 막기 위한 학문이라 한다’면서 문초한 대로 조정에 보고했다. 조정은 동학이란 요사스러운 무리가 나타나서 많은 도당을 집결시켰다’며 동학을 서학과 마찬가지로 혹세무민의 사교로 내몰았다. 

 

결국 수운은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참형을 언도받고 나머지 12명은 유배 등 엄형을 받는다. 형조판서의 훈령에 따라 수운은 3월 10일 관덕당에서 처형됐다.

 

양산군수 심락정(沈樂正)은 한양 출신이며 본관은 청송이며, 음직(蔭職)으로 1858년(철종 9년)에 가감역(假感役)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1863년 양산군수로 부임하여 재임시 호위영에서 양산 메기들(타어평)에 중과세가 하령되자 백성들의 여론과 의견들을 수렴하여 조세탕감에 앞장섰다.

 

필자가 지난 5월 31일에 현장을 방문해보니 타어평 영세불망비에 대한 안내표지판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청룡등에 있는 항일독립운동기념탑, ‘가촌유아숲체험원’, 운동기구, 산책로, 정자와 쉼터를 방문하고 있었지만 영세불망비 안내표지판은 없어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양산시육아종합지원센터 옆에 주차장이 있어 주차를 하고 영세불망비를 거쳐서 청룡등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꿈나무유치원 옆으로 올라가서 ‘가촌유아숲체험원’을 지나 영세불망비로 갈 수 있으나 아무런 안내 표지판이 없어 초행자는 찾기 힘들다. 

 

디자인공원을 방문하는 양산시민들에게 조선시대에 양산의 백성을 사랑하여 세금을 면제해준 관리들의 치적을 알릴 필요가 있다.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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