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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철 육군참모총장 덕분에 개설된 배태고개 도로/심상도 박사 화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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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서종철 육군참모총장 덕분에 개설된 배태고개 도로/심상도 박사 화요 칼럼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배태마을에서 산 너머 배내골 초입의 대리 고점마을로 이어지는 배태고개는 과거에 길이 좁고 매우 험난하여 주민들이 배내골로 넘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걱정했던 1970년대 당시 손기현 원동면장이 양산군 동면 사배리 출신 육군참모총장 서종철 대장에게 건의하였고, 이에 서 대장은 고광도 군수사령관에게 지원 요청하여 험난했던 고개는 사람들이 쉽게 통행할 수 정도로 정비되어 낮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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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학 박사 심 상 도

 

1. 양산 동면 출신의 서종철 육군참모총장의 도움을 받은 원동면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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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배태마을에서 산 너머 배내골 초입의 대리 고점마을로 이어지는 배태고개는 과거에 길이 좁고 매우 험난하여 주민들이 배내골로 넘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걱정했던 1970년대 당시 손기현 원동면장이 양산군 동면 사배리 출신 육군참모총장 서종철 대장에게 건의하였고, 이에 서 대장은 고광도 군수사령관에게 지원 요청하여 험난했던 고개는 사람들이 쉽게 통행할 수 정도로 정비되어 낮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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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발전을 위해 망설임 없이 나섰던 손기현 면장, 고향 양산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해준 서종철 육군참모총장, 주민을 위해 군 자원을 내준 고광도 군수사령관, 최갑동 공병단장(대령) 등의 공을 자손만대에 기리기 위해 여기 배태고개 마루에 2014년 5월에 양산시에서 공적비를 세웠다. 도로공사는 군수사 1203 건설공병단이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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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군 원동면 이천 3리 주민 일동이 1971년 9월 13일에 세운 비석과 양산시에서 새로 세운 비석이 배태고개 소공원에 나란히 서 있다. 소공원에는 운동기구,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주민들이 원래 세운 비석은 석질이 무른 돌에 세워 글자가 거의 마모되어 쉽게 알아볼 수 없다. 비문 앞면의 내용에 ‘이 도로는 양산군 오지 주민의 발전을 위하여 군(軍)의 지원으로 확장된 도로이다’, 뒷면에는 도와주신 분 참모총장 서종철 대장, 군수사령관 고광도 중장, 공병단장 최갑동 대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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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마모된 비문이 방치되어 있던 것을 박말태 전 시의원이 배태고개 쉼터 조성, 새로운 비문 설치 등에 적극적으로 힘을 써서 정비하였다. 박말태 시의원은 홍수진 시인의 시비를 2008년 11월 8일 원동면 원리 매화공원에 건립한 바 있다. 양산의 정치인들은 지역의 역사, 문화, 역사적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유적을 정비하여 관광명소를 만들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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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철 육군대장(1924년~2010년)은 양산군 동면 사배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달성,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소위였다. 학병 출신으로 징병되어 초급 장교 양성제도인 일본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강제였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1946년 육군사관학교 1기로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1기로 입대, 장교생활을 시작하였다. 6.25 전쟁 초기 수도지구방위 임무를 맡은 연대장으로 근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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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부터 1969년 4월까지 제1야전군사령부 사령관, 1969년 4월부터 9월까지 육군참모차장, 1969년 9월부터 1972년 5월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1972년 9월부터 1973년 12월까지 대통령비서실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1973년 12월부터 1977년 12월까지 국방부장관, 1978년 4월부터 1980년 5월까지 다시 대통령비서실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서종철 대장은 키가 185cm로 크고 풍채까지 좋아서 누가 봐도 장군감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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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3월부터 1983년 4월까지 반공연맹(현 한국자유총연맹) 이사장을 지냈다. 반공연맹 이사장이던 1981년 12월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초대 총재에 선출되었다. 1988년에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서 KBO 명예총재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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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으로는 정환(서일환경 대표), 국환(사업), 진환(사업), 승환(연세대 총장), 주환(경희대 교수), 성림 씨가 있다. 서승환 연세대 총장은 연세대 학사, 석사,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제18대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을 역임했다. 손주로는 배우 서배준, 가수 겸 배우 서지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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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태고개 도로를 개설한 군수사 제1203 건설공병단의 활약상

 

국방부 법무담당관실에 의하면 건설공병단은 육군건설공병단령 대통령령 제1156호로 1956년 4월 19일에 제정, 시행되었다. 제1조 육군의 후방건설공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육군건설공병단(以下 建設工兵團이라 한다)을 둔다. 건설공병단의 명칭과 위치는 국방부장관이 정하고 그 예속은 육군참모총장이 정한다. 제2조 건설공병단에 단장과 부단장을 둔다. 단장과 부단장은 육군령관급장교로써 보한다.

 

그 당시 제1203 건설공병단이 소속되었던 육군군수사령부(陸軍軍需司令部)는 부산에 있었으며, 초대 사령관은 박정희 소장이었다. 현재 대전광역시에 본부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 육군의 본부 직할의 군수, 병기, 병참 전담 사령부로 군수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1954년 부산광역시에서 제2관구사령부로 창설되었으나, 군수사령부 측에서는 2관구사를 부대의 전신으로 삼지 않는다. 1960년 군수보급 조정 및 통제를 위해 '군수기지사령부'라는 이름으로 재창설되었고, 군수사령부 측에서는 부대 역사의 시작으로 삼고 있다. 1970년 12월 15일 군수사령부로 개편되었다.

 

1982년 8월 16일 제53사단이 창설되자, 부산지역 위수임무를 53사단에 인계하였다. 과거 군수사 예하로 있던 항만단이 국군수송사령부로 넘어가고 여러 정비창, 보급창이 통폐합되는 등 개편을 거쳤다. 2007년 2월부로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대전광역시 유성구 소재 육군 교육사령부 옛 부지로 이전하였다. 이때 박정희 사령관이 기념식수한 나무도 같이 이전하였다.

 

박정희 대통령과 양산의 법기수원지는 인연을 맺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근무할 당시인 1960년 6월 어느 날 오후 일행 3명과 함께 방문하여 수원지 서편 호안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태종대가 있다. 태종대는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11월 1일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영도의 남동쪽 끝에 위치하는 해발고도 200m 이하의 구릉지역으로 뒤어난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울창한 숲과 기암 괴석으로 된 해식절벽 및 푸른 바다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옛날에 신선이 살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神仙臺)라고도 부르며, 신라 태종무열왕이 활쏘던 장소였다는 속전(俗傳 : 東萊府誌)에 따라 현재는 태종대라는 호칭이 보편화 되었다.

 

부산광역시 동삼동 산29-1 태종대 안에 육군 제1701부대가 건립한 ‘영도구 순직장병 추모비’가 있다. 태종대공원의 순환일주도로공사 시에 험한 절벽을 깨뜨려 만드는 중 1970년 12월 24일 육군 제1203부대 건설공병단 장병 네 사람이 귀한 목숨을 바쳤다. 

 

바위 절벽에 매달려 발파작업을 하다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일어난 후폭풍으로 순직하였다. 이때 순직한 고 육군 소위 강우철, 고 육군 병장 김대근, 고 육군 병장 이기춘, 고 육군 일병 김규삼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부산시민의 이름으로 새마을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태종대 입구에서 800m에 구명사라는 절이 있다. 태종대 전망대 휴게소 절벽을 이용한 자살자가 많아짐에 따라 일명 자살바위가 있다. 스님이 천막 절을 짓고 불교의 자비를 설파하여 자살을 예방하고 그 혼을 달래왔다 태종대 해안 작전도로 개설시에 순직한 유군 제1203 건설공병단 장병 네 사람의 영령을 봉안하기 위해 1976년 군 지원으로 건립하였다.

 

3.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제1203 건설공병단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을 계기로 고속도로 건설 구상이 잉태되었다. 최빈곤 국가였던 그 시절 박대통령은 전용기가 없어 서독의 민항기 루프트한자를 일반 여행객들과 함께 타고 갔다. 박 대통령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서독의 경제 발전 상황을 눈여겨보았다. 가장 주의 깊게 관찰한 것은 독일 나치 정부 시절 건설된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이었다. 뤼프케 대통령은 독일 부흥의 상징이라고 아우토반을 소개했다.

 

박대통령은 서독방문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도로, 철도,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시설의 정비가 필요하고, 분단국이 공산주의를 이기는 방법은 경제 번영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발표하자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 김대중, 언론의 반대가 심했다. 1967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42달러, 수출 3억 2천만 달러의 후진국이었다.

 

건설계획 당시부터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군의 지원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실정이었다. 자료수집뿐만 아니라 막대한 인적, 물적 지원에도 군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1968년 1월 29일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공사사무소가 설치된 이후에도 군도 구간을 설정하여, 직접 공사에 참여하였다.

 

한편, 1968년 1월 22일 고속도로 공사 군 담당지역을 협의한 각서작성 회의가 건설부에서 열렸다. 군 지원은 다리내고개, 평동, 몽단이, 영천, 동촌, 부산시계, 다부동 등 7개 공구를 선정했으나, 계획을 변경 1968~1969년까지 수원공구, 대전공구, 언양공구에 3개 공병단이 투입, 총 8.67km를 시공하였다.

 

1201 공병단 220 대대는 시공연장 3.0㎞인 서울의 달래내 고개를 담당, 1968년 1월 25일 착공하여 1968년 6월 30일에 완공하였다. 1202 공병단 209 대대는 시공연장 3.1㎞인 대전 몽단이 고개를 1968년 8월 15일에 착공하여 1969년 12월 31일에 완공하였다.

 

양산의 원동면 배태고개 도로를 개설한 1203 공병단 213 대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에 참여하여 부산시계 구간(언양 공구) 2.59㎞를 담당하여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공사 착공일은 1968년 9월 1일이었으며, 준공일은 1969년 6월 30일이었다. 공사기간 중 병력 총인원은 69,811명 1일 평균 인원은 347명이었다. 공사금액은 8천 1백 3십 6만 6천 원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건설회사의 규모는 빈약하였고, 건설장비 역시 보잘것없었다. 건설공병단의 중장비는 민간보다 뛰어난 최신이어서 고속도로 공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 1203단 투입장비는 도우저 2,542대(1일 평군 23대), 덤프트럭 6,092대(38), 그레이더496대(8), 콤프레서 1,135대(18), 로울러 1,176대(16)였다.

 

대통령은 이들 공병대원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현장에 투입했다. 공병부대의 활약상은 예상을 뛰어넘었으며, 어려운 공사 구간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원대 복귀했다. 1980년 2월 15일 한국도로공사는 공병단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길이 남기기 위해 서울 한남대교에서 12.2km 떨어져 있는 곳에 20톤이 넘는 자연석으로 기념비를 세웠다.

 

군수기지 사령부 종합보급창장을 역임하고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윤창호 씨의 증언에 따르면 서울-수원 구간 구역별 감독관은 64명의 현역 장교들이 맡았다. 이들은 원리 원칙을 준수하여 시방서를 들고 다니며 시방서에 조금 어긋나거나 차질이 발생하면 가차없이 재시공 내지는 공사를 중단시킬 정도로 철저히 관리 감독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을 발판으로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였다.

 

동면에는 사송신도시가 한창 조성되고 있는데, 서종철 대장과 송담 백수회 선생이 출생한 사배마을은 없어졌다. 공원에 지역출신 역사적 인물과 유적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해야 하겠다. 조선시대 영남대로 구간인 부산 동래에서 출발하여 동면을 지나는 구간을 걸어서 답사할 수 있도록 주요 관통도로에 인도를 마련하고 안내 표지판을 설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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