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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아름다운 벚꽃과 진달래꽃/심상도/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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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ing

양산의 아름다운 벚꽃과 진달래꽃/심상도/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

1. 양산에서 가장 빨리 피는 유광화성의 벚꽃

양산 유산일반산업단지의 ㈜유광화성 정원에 있는 벚나무가 양산에서 매년 꽃을 가장 빨리 피운다. 12년 근무한 직원 금동화 씨에게 물어보니 벚나무 수령은 2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정원에는 또 한 그루의 벚나무가 있지만 훨씬 늦게 핀다고 한다. 
벚나무는 양산천 옆 충렬로 도로변의 양지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있어 개화가 빠른 것으로 추측되나 원래 품종이 독특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지난 3월 14일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니 몇 개의 가지에 벚꽃이 피어 있었다. 3월 18일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었는데, 완전 만개 상태였다. 직원 금동화 씨에 의하면 이미 3일 전에 만개하였다고 한다.




인쿠르트(Incruit) 채용정보에 의하면 1996년 11월 25일에 설립되었으며, 종업원은 21명이다. 2018년 기준 자본금 7억 6,401만 원, 매출액 69억 744만 원, 순이익 248만 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동화 씨에 의하면 생산제품은 고무화합물이고, 외국에 수출도 하고 국내업체에 공급한다고 한다. 코로나 19사태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정상가동되고 있어 다행이었다.

화연인증원에서 품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았다. 한국화시험연구원에서 품질보증업체로 지정되었다.
 

하나은행에서 유망중소기업으로 인정하였다. 필자가 볼때 (주)유광화성은 작지만 탄탄한 강소기업으로 세계적인 코로나 19 전염병 확산에 의한 경제위기를 잘 극복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양산일반산업단지, 어곡일반산업단지에 수많은 공장이 있지만 공장 안에 화단을 조성하고, 초화류와 꽃나무를 심어놓은 공장은 흔치 않다. (주)유광화성은 박지석 대표와 직원들이 꽃과 식물을 귀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니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근무허기 좋은 직장으로 보인다.

2. 김소월의 진달래꽃

봄이 오면 전국 곳곳의 산하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요즘 산이 많은 양산에도 온통 진달래꽃이 붉은 피를 토하듯 앞다퉈 꽃을 피우고 있다. 필자는 진달래꽃을 찾아 임경대, 어곡공단에서 화제리로 넘어가는 새미기고개에서 마고산성으로 올라가면서 진달래꽃을 사진에 담았다.
 

진달래꽃 하면 먼저 떠오르는 시인은 김소월이다. 진달래꽃은 국민들이 아끼며 애송하는 시다.
 



김소월(金素月)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평안북도 구성에서 1902년 8월 6일(음력)에 태어났다.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를 거쳐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오산학교 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 이돈화(李敦化), 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소월이 두 살 나던 1904년 정주와 곽산을 잇는 철도를 부설하던 공사장에서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자가 됐다. 할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소월은 오산학교 2학년이던 1916년 14세에 할아버지 친구 홍명희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당시 그는 오순이라는 세 살 연상의 소녀와 연정을 나누고 지내던 터였다고 한다.
 


시작활동은 1920년『창조(創造)』에 시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춘강(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작품발표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인데,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년『개벽』에 실린 「금잔디」, 「첫치마」,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개여울」, 「제비」, 「강촌(江村)」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삭주구성(朔州龜城)」, 「가는 길」, 「산(山)」, 『배재』 2호의 「접동」, 『신천지(新天地)』의 「왕십리(往十里)」 등이 있다.
 


그 뒤 김억을 위시한 『영대(靈臺)』 동인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 무렵에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을 게재지별로 살펴보면, 『영대』에 「밭고랑 위에서」(1924), 「꽃촉(燭)불 켜는 밤」(1925), 「무신(無信)」(1925) 등을 『동아일보』에 발표, 「나무리벌노래」(1924), 「옷과 밥과 자유」(1925)를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발표, 「물마름」(1925)을 『문명(文明)』에 발표, 「지연(紙鳶)」(1925)을 발표하였다.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되었다. 소월의 조부가 하던 광산사업이 실패하였다. 소월은 구성군(郡) 남시(南市)에서 동아일보사 지국을 경영하였으나 운영에 실패하였으며, 그 후 실의의 나날을 술로 달래는 생활을 하였다.

33세 되던 1934년 12월 23일 부인과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는데, 이튿날 음독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술만 마시다 32세로 요절했다. 불과 5, 6년 남짓한 짧은 문단생활 동안 그는 154 편의 시와 시론(詩論) ‘시혼(詩魂’을 남겼다.


평론가 조연현(趙演鉉)은 “그 왕성한 창작적 의욕과 그 작품의 전통적 가치를 고려해 볼 때, 1920년대에 있어서 천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었다”고 평하였다.

1981년 예술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시비가 서울 남산에 세워져 있다. 저서로 생전에 출간한 『진달래꽃』 외에 사후에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素月詩抄)』(1939), 하동호(河東鎬)·백순재(白淳在) 공편의 『못잊을 그사람』(1966)이 있다.
 

진달래꽃

김소월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시의 화자는 이별의 슬픔을 감내하면서 임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은근히 드러내는 인종(忍從)적인 여성의 어조를 보이고 있다. '진달래꽃'은 김소월의 대표작으로, 이별의 슬픔을 인종의 의지로 극복해 내는 여성 화자를 설정하여 이별의 정한이라는 문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 시는 '이별의 정한(情恨)'을 민요조의 7·5조 3음보 율격으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어조와 태도를 통해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임과 이별하더라도 그 슬픔을 참고 견디겠다는 인종과 체념의 자세를 보여 준다. 특히 '드리우리다', '뿌리우리다', '가시옵소서', '흘리우리다' 등 여성적 어조의 종결형을 통해 더욱 애절하고 간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이러한 정서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가시리', '서경별곡(西京別曲)', '아리랑'으로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내려 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인 '이별의 정한(情恨)'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또, 꽃을 뿌리는 행위는 향가 '도솔가( 率歌)'의 '산화공덕(散花功德)'과 관련시킬 수 있다.
 

진달래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전국 어디서나 아름답고 화려한 진달래꽃을 볼 수 있다. 진달래는 꽃잎으로 차를 끓여 마시거나 화전을 지져 먹을 수도 있으며 꽃이 피어있을 땐 잎이 없는 것이 꽃과 잎이 같이 피는 철쭉과 다르다. 철쭉꽃에는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필자도 어린 시절 산으로 돌아다니며 진달래꽃을 따먹기도 하였다.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심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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