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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의 화요 칼럼/양산의 청도김씨 재실 죽산재와 김동휘 상공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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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 박사의 화요 칼럼/양산의 청도김씨 재실 죽산재와 김동휘 상공부장관

청도 김씨 시조 영헌공(英憲公)의 휘(諱)는 지대(之岱), 초휘는 중룡(仲龍)이며, 신라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명종 20년 1190년 청도 대성리에서 태어났다.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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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도 김씨 시조 영헌공 김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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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청도 김씨 시조 영헌공(英憲公)의 휘(諱)는 지대(之岱), 초휘는 중룡(仲龍)이며, 신라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명종 20년 1190년 청도 대성리에서 태어났다.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손이다. 

 

김지대는 1217년(고려 고종 4) 거란군의 침입과 몽골군의 북변 침입을 막는데 공을 세웠다. 1241년(고종 28)에는 진주 촉석루를 창건하였다. 원종 즉위 초 정당문학, 이부 상서(吏部尙書)가 되고 수태부 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에 올라 오산군(鰲山君)에 봉해졌고, 시호(諡號)는 영헌공(英憲公)이다. 그 후 오산이 청도로 개칭되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청도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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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361번지에 있는 남계서원(南溪書院)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9호로 1996년 3월 11일에 지정되었다. 영헌공 김지대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지대(1190∼1266)는 고려 고종 때 문신으로 청도 김씨의 시조이다. 고종 4년(1217)에 거란이 침입하자 병환 중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가 싸워 충과 효를 동시에 이루었다. 남계서원은 조선 숙종 30년(1704)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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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366에 있는 영헌공실기책판(英憲公實記冊板)은 경상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304호이다. 이 책판은 고려중기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영헌공(英憲共) 김지대(金之岱)가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터에 종군(從君)하면서 지은 시(詩)와 그의 행적(行蹟) 등에 관한 기록을 후손들이 모아 판각(板刻)한 44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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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후손들은 영헌공(英憲公)의 종군시(從軍詩) "국환신지환 친우자소우 대친여보국 충효가쌍수(國患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에서 충효쌍수(忠孝雙修)의 위업을 숭상하기 위해서 쌍수당(雙修堂 : 南溪書院)을 짓고 이 책판을 보관하고 있다. 시의 뜻은 다음과 같다. “나라의 걱정은 신하의 걱정이오, 어버이의 근심은 아들이 근심할 바이요,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하면 충(忠)과 효(孝)를 함께 하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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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산자 김정호 선생

 

김정호 선생은 청도 김씨 봉산파로 황해도 토산에서 1804년 무렵에 태어났다. 생몰 연도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도 김씨 대동보에 따르면 청도 김씨 봉산파는 현재 한국 전쟁으로 실계(失系)되었으며, 한국 전쟁 이전에 편찬된 예전 족보에도 김정호는 실려있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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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형편은 빈한했고 지도 제작 등에 필요한 지식 등에 비추어 볼 때 몰락한 양반이나 중인으로 추정된다. 언제 한양으로 이주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주한 뒤에는 남대문 밖 만리재에 살았다고 한다.

 

김정호 선생 덕분에 우리나라는 대동여지도라는 세계적인 지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대동여지도란 ‘큰 조선 땅의 지도’라는 뜻이다. 대동여지도란 뜻은 조선(大東) 여지(輿地) 도(圖)로 여지는 수레라는 의미에서 파생해서 땅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대동여지도의 축척은 실물의 16만 분의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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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는 전국을 남북 22층, 동서 2∼8면으로 구획해 가로 39.5㎝, 세로 29.5㎝ 크기의 지도 총 120장에 나눠 실어놓은 지도다. 지도 120장을 모두 이으면 전체 크기가 가로 3.8m, 세로 6.7m에 달한다. 크기는 3층 높이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만 전체를 펼칠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 김정호 선생은 대동여지도를 200여 개의 조각으로 나눠서 제작한 후 다시 연결하여 접었다가 펼칠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대동여지도의 제작은 1800년대 역사에서 실학과 지리정보학 측면에서 큰 획을 그은 업적이다. 김정호가 교류했던 신헌, 김정희 등이 권력자인 흥선대원군의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창안한 기호체계로 기록되어, 과거에 일일이 한자로 써넣었던 지도에 비해 편리하고 직관적이다.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훨씬 정확해졌으며, 대량 인쇄 보급도 가능했고, 인구와 면적 등이 조사된 통계자료까지 포함하고 있다.

 

김정호 선생의 작품인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를 3대 작품으로 꼽는다. 김정호는 지리서도 제작했는데,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를 그의 3대 지리서라고 한다. 지리서는 그림으로 표현 못 하는 기록과 묘사를 글로 적은 것인데, 당시의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3. 청도 김씨의 양산 죽산재

 

청도 김씨 재실인 죽산재(竹山齋)는 양산시 월리길 12-29에 있다. 석산 일동미라주아파트 바로 옆에 있어 찾기 쉽다. 김정희 전 양산시의원의 안내로 죽산재 내외부를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 죽산재 건물은 죽산파 문벌에서 1980년 4월 21일 공사를 착공하여 그해에 본건물, 축대, 대문, 객사를 완공하여 내부 정리를 하고 첫 제사를 지냈다. 1983년까지 옹벽공사, 진입로 공사, 유허비 설단 공사를 하였다.

 

죽산재는 양산 입향 중조(中祖) 진강공(振綱公)의 부친 의산공(義山公)을 모시고 중조공 아래 후손이 없는 선대와 제주로부터 삼대 선조의 위패를 상시 모시고 제주의 대가 바뀔 때마다 삼대조의 위패를 제단에 봉안하는 일은 대대손손 계승할 것이며, 매년 음력 10월 9일부터는 선조의 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면서 대대손손 영겁을 이어갈 것이니라. 계해 서기 1983년 10월 13일 죽산재 건립추진위원장 종친회장 29세손 김덕량, 종친회 총무이사 31세손 김형철 찬문(부산대학교 박지홍 교수의 고증을 받음)

 

의산조(義山祖) 설단(設壇) 기념비는 죽산(竹山), 교항(橋項), 은산(殷山), 합천(合川), 이천(梨川), 진남(鎭南)에 분파된 일천여 세대 후손들이 실전된 의산조 묘소를 복원키 위한 숭조목종의 숭고한 정성으로 성금을 모아 설단 사업이 준공을 보게 됨에 따라 1984년 9월에 세웠다.

 

4. 김동휘 상공부장관 추모비의 건립 취지와 경위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8분 버마의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행사장에 도착하기 2분 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폭탄이 터져 그 자리에서 대통령의 동남아 5개국 순방에 수행했던 인사 17명이 숨졌다. 

 

북한의 테러 도발로 당시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재익 경제수석,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자부 장관과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의 테러였지만 전 대통령은 자동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했다. 김동휘 상공부 장관은 양산의 다방동 출신으로 청도 김씨의 후손이다. 1954년 서울대 재학 당시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했으며, 주 이란대사, 주 이란대사를 역임하고, 1982년 5월 21일부터 1983년 10월 9일까지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양산의 죽산재에 김동휘 장관의 추모비가 있는데, 추모비의 건립 경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선진조국 창조를 앞당겨 실현하고자 하는 숭고한 사명을 띤 서남아순방길에서 대통령 각하의 공식 수행원 일행이 서기 1983년 10월 9일 버마국 아웅산국립묘지에서 잔악한 북괴 만행으로 순국하심에 통념함과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특히 본군 출신이신 김동휘 상공부장관의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애국심과 청렴한 공직자상은 타의 귀감이 되었기에 선조의 얼이 담긴 이곳에 추모비를 건립하여 군민의 산 교육장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본도 이규효 지사께서 손수 비문을 지으셨고, 그 통념함과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1984.8.31일 군정자문위원회에서 군민의 전체 뜻으로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하여 1984.9.1.일 양산향교 전교를 위원장으로 본위원회가 발족되었음. 본위원회는 양산상공회의소 회장단을 비롯한 군민의 협찬으로 1주기를 맞이하여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추모비 건립은 서기 1984년 10월 9일 자문위원 군수 안강식, 경찰서장 전병익, 교육장 박덕기, 위원장 향교전교 김두성, 부위원장 새마을운동군지회장, 라이온스클럽 회장 이종관, 감사 사회정화협의회장 이형우, 위원 평통군협의회장 안상원, 군정자문위원장 정경모, 상공회의소회장 노성권, 문화협의회부회장 김치덕, 로타리클럽 회장 윤근수, 청년회의소회장 박정창, 군정자문위원 박봉수, 청도 김씨 죽산파 문중회장 김덕량, 감사 상공인 회장 배복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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