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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군수 이연상 묘소, 임경사지와 임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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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양산군수 이연상 묘소, 임경사지와 임경대

이연상 군수가 편찬한 『양산읍지(梁山邑誌)』 불우조(佛宇條)에는 ‘在郡西 黃山麓 大江上 今廢’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양산군수 이연상이 쓴 『양산읍지 불우조』에 “군의 서쪽 황산 기슭 큰 강 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사되고 없다(在郡西黃山麓大江上今廢).”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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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연상 군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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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임경대는 물금에서 1022번 지방도를 따라 원동면 화제리로 가다가 물금과 원동 경계를 지나 왼쪽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약 300m 지점에 임경대가 있으며, 인근에는 조선 순조 때 양산군수를 지낸 이연상(知足堂 李淵祥, 1788~1846년)의 묘소가 있다. 묘소 앞은 바로 임경사가 있던 절터다. 현재 잡풀이 우거져 있으며, 땅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 구전에 따르면, 인근 임경대에서 관원과 풍류객들이 풍악을 울리고,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임경사는 폐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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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상 군수가 편찬한 『양산읍지(梁山邑誌)』 불우조(佛宇條)에는 ‘在郡西 黃山麓 大江上 今廢’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양산군수 이연상이 쓴 『양산읍지 불우조』에 “군의 서쪽 황산 기슭 큰 강 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사되고 없다(在郡西黃山麓大江上今廢).”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통해 이연상이 군수로 있었던 1832~1834년에 임경사는 이미 폐사되었다고 추정된다. 건물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건물 초석과 기와편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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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상(李淵祥) 군수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계우(季愚)로 이언적(李彦迪)의 9세손이다. 이실중(李實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헌일(李憲一)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정진(李鼎搢)이며, 어머니는 손극중(孫克中)의 딸이다. 이연상(1788년, 정조 12년~1846년 헌종 12년)은 사간원정언, 양산군수,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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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순조 1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대교・봉교, 세자 시강원설서,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예문관 검열(藝文館 檢閱)은 조선 시대에, 예문관에서 사초 꾸미는 일을 맡아보던 정구품 벼슬이다. 사관은 역사의 기록을 담당하여 역사의 초고(草稿)를 쓰던 관원을 말한다. 사관은 국사가 논의되는 조회(朝會), 조참(朝參), 상참(常參), 윤대(輪對), 경연 등에 참석한다. 중신회의, 백관회의, 의정부, 중추원, 육조 등의 대신이나 삼사 관원이 국왕을 면대하는 장소, 국왕의 각종 행차 등에 입시, 호종하며 사초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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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는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인 사관이 작성한 기록으로 실록을 만드는 데 기초 자료이자 가장 중요한 자료였다. 사관은 왕이 참석하는 모든 행사에 동행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실록이 공정하게 만들어지려면 실록의 재료인 사초부터 공정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왕은 사초를 볼 수 없었다.

 

세자(世子) 시강원(侍講院)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로 왕세자를 모시고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을 강의하며 도의(道義)를 가르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연상이 역임한 세자 시강원 설서(說書)는 정7품이다.

 

이연상은 이후 10여 년간 홍문관의 문한직에 종사한 뒤 양산군수로 나갔다. 1836년(헌종 2)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당상관에 오르고, 1840년 대사간이 되었다. 성품이 민첩, 강직하였고 검약, 검소한 생활로 시종하였다.

 

사간원(司諫院)은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했던 기관이며, 국왕에 대한 간쟁(諫諍)과 논박(論駁)을 담당한 관청이다. 간원(諫院), 미원(薇院)이라고도 한다. 사헌부와 함께 대간(臺諫)이라 불렀고, 홍문관(弘文館), 사헌부와 함께 삼사(三司)라 하였고, 형조(刑曹), 사헌부와 함께 삼성(三省)이라 하였다. 수장은 대사간이었으며 정3품의 벼슬이었다.

 

관료는 첫째, 국왕에 대한 간쟁, 신료에 대한 탄핵, 당대의 정치, 인사 문제 등에 대하여 언론을 담당했으며, 둘째, 국왕의 시종신료로서 경연(經筵), 서연(書筵)에 참여하였고, 셋째, 의정부 및 6조와 함께 법률 제정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였으며, 넷째, 5품 이하 관료의 인사 임명장과 법제 제정에 대한 서경권(署經權)을 행사하였다. 이처럼 간관의 임무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화요직(華要職)으로 인정되어 학문이 뛰어나고 인품이 강직한 사람 가운데서 선발하였고, 교체시에도 지방관으로 폄출하지 않았으며, 승진시에는 파직 기간도 근무 일수에 포함시켜 주었다.

 

2. 독립투사 이석채

 

이연상 양산군수 묘소 아래에 그의 4대손인 독립투사 이석채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경주시 양동마을에 강학당이 있다. 강학당은 여주이씨 집안의 서당으로 지족당 이연상(知足堂 李淵祥)이 먼저 터를 정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후 문중에서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고종 4년(1867)에 학당을 세워 큰 아들 경암 이재목(敬庵 李在穆, 1817~1879)이 많은 후학들을 길렀다.

 

공부하는 곳이니만큼 대문과 담장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으며 앞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강당은 명리재(明理齋)이며 장판각(藏板閣)이라는 편액이 걸린 방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동쪽에 있는 행랑채는 서당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곳이다. 여주이씨 집안은 이 서당 이외에도 규모가 좀 더 큰 양좌서당이 있었고 경산서당도 있다.

 

강학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주요 터전으로 활용되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이석채(李錫埰, 1892~1948)는 이연상의 4대손이며 이 집에서 태어나 활약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원(外務員)으로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이석채는 1919년 12월경 경남 동래(東萊)에서 군자금 2,000원을 모금하였고, 이를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해줄 목적으로 1920년 1월 만주 유하현(柳河縣)으로 망명하였다. 1월 중순경에 유하현에 도착한 이석채는 그곳에서 임시정부 요원인 노백린(盧伯麟)을 만나 1,000원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그는 임시정부의 외무원이 되어 국내의 민정을 시찰하고, 임시정부원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로 입국하였다.

 

1920년 2월경에 국내로 돌아온 이석채는 이후 경성과 강원도 일대에서 임시정부원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래서 강원도 강릉군 주문진에 거주하는 최명일(崔命一)과 삼척군 삼척면 읍상리에 거주하는 김동석(金東錫) 등에게 독립운동 참여를 권유하였다.

 

이 일로 이석채는 일본 경찰에게 피체되어 1920년 4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3. 이연상 군수의 아들 이재목 묘소

 

이재목(李在穆)은 이연상 군수의 아들이며, 조선 후기 유학자다. 호는 경암(敬庵)이며, 본관은 여주(驪州)다. 증조부는 이헌일(李憲一)이고, 조부는 이정진(李鼎搢)이다. 부친 이연상(李淵祥)과 모친 경주최씨(慶州崔氏 : 최현진(崔鉉鎭)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병운(李秉運)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다. 슬하에 2남 이능엽(李能燁)과 이능찬(李能燦)을 두었다.

 

1878년(고종 15) 영남의 유림들과 함께 서원 복구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저서로 『경암집(敬庵集)』이 있다. 이 책은 1905년(광무 9) 그의 종질 능렬(能烈)과 윤인석(尹仁錫) 등이 편집, 교정하고 그의 손자 상구(庠久)가 간행하였다. 문집은 선생이 이학(理學)의 심오한 뜻을 새롭게 해석한 바가 많은 것으로 우리나라 유학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여주 이씨(驪州 李氏)는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3파(派)가 있다. 이인덕(李仁德)을 시조(始祖)로 받드는 교위공파(校尉公派)가 있고, 이은백(李殷伯)을 시조(始祖)로 하고 이규보(李奎報)를 중조(中祖)로 모시는 문순공파(文順公派)가 있으며, 이세정(李世貞)을 시조(始祖)로 받드는 경주파(慶州派)가 있다.

 

경주파(慶州派)는 ‘을축대동보(乙丑大同譜)’부터 ‘여강(驪江)’이란 관향(貫鄕)을 정(定)하였다. 그러다가 근년에 이르러 ‘여흥(驪興)’, ‘영의(永義)’, ‘하음(河陰)’ 등의 관향(貫鄕) 이름을 ‘여주(驪州)’로 단일화(單一化)했다. 경주파(慶州派)에서 독자적(獨自的)으로 사용(使用)한 ‘여강(驪江)’이란 관향(貫鄕)도 갑자보(甲子譜)부터는 ‘여주(驪州)’라는 관향(貫鄕)과 함께 쓰기도 하였다. 이연상 군수, 그의 아들 이재목, 4대손 이석채 묘비는 모두 여강 이씨로 나와 있다. 양산시는 후손들과 협의하여 이연상 군수의 묘소와 임경대, 대나무밭을 연계하여 안내판 설치하고 관광객을 위한 데크로드를 만들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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