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학 박사 심 상 도
1. 송진을 군수물자로 강제 채취한 일제
일제 강점기에는 강제 징용, 징병 등으로 고생한 사람 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수난을 당했다. 일제가 전쟁물자인 송탄유(松炭油)를 만들기 위해 소나무에 상처를 내고 송진을 채취했기 때문이다. 송탄유는 군수물자인 항공유에 쓰기 위해 송진으로 만든 기름을 말한다. 송진은 옛날부터 약재로 쓰였고, 어두운 밤을 밝하는 등불의 원료로 사용되었다. 일제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송탄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송진을 강제로 채취하느라 송림을 파괴하였다.
소나무에 ‘V’자 모양의 상처를 낸 다음 통을 매달아 송진을 받아서 끓인 다음 송탄유를 만들었다.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거나 상처가 나면 소나무는 이를 치유하기 위하여 송진을 내뿜었다. 소나무의 이런 특성을 활용하여 일제는 잔인하게 소나무에서 송진을 착취하였다. 해방 이후 7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국 곳곳에 일제 강점기 때 상처를 입은 소나무가 남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실태는 파악되지 않았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이 소나무 피해 실태 조사에 2017년 2월부터 나섰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송진을 채취하면서 남긴 상처를 조사해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하여 송진 채취 피해목의 역사적 의미를 기록문화로 남길 계획을 수립 후 ‘송진 채취 소나무 전국 분포도’를 만들었다.
일제는 1933년부터 1943년까지 10년간 우리나라에서 총 9,539t의 송진을 수탈했다. 1943년 한해에만 송진 4,074t을 채취했는데 이는 소나무 92만 그루에서 채취해야 하는 양이다. 해방 이후에도 공업 원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안면도, 속리산 등에서 송진을 채취하였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조사, 연구에 따르면 피해목 서식지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각종 문헌 조사 결과 경북 문경, 충북 제천, 충남 보령, 충남 태안과 서산, 경남 함양, 전북 남원, 경남 합천, 인천 강화 석모도, 강원 평창, 강릉, 삼척, 인제, 영월, 속초, 춘천 등에 송탄유 피해 소나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피해 지역을 중점 조사 지역으로 정하여 안내판을 세우기로 하였다. 국립산림과학원 조사 결과 대부분의 피해목은 건강상태가 양호하지만 ‘V’자 상흔이 최대 1.2m 높이까지 남아 있어 미관상 좋지 않다고 한다.
당초의 피해목 서식지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필자의 현장 조사에 따르면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있는 석남사 일주문 진입로에 피해목이 많았는데, 안내판이 있었다. 내용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으며, 일부 소나무에서는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연리목의 형태를 보이는 것도 있다고 나왔다.
양산의 송진 채취 피해목을 알아보기 위하여 필자는 양산시청을 방문하여 김종렬 환경녹지국장을 만나 물어보았다. 김국장은 내원사에 피해목이 있다고 하였다. 필자가 통도사 무풍한송로를 둘러보니 피해목이 없다고 하자 김국장은 통도사 스님들이 잘 지켜냈다고 하였다.
내원사 관광안내소를 찾아가 이형분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나 피해목에 대해 물어보았다. 자장암에도 일부 남아있다고 알려주었다. 이형분 해설사는 관광객들에게 해설할 때 피해목의 상처가 어떻게 보이느냐고 질문하면 아이들은 하트 모양 같다고 답변한다고 하였다. 자장암을 가보니 송진 채취 피해목은 충전재로 메워놓았다.
2. 한민족과 운명을 함께 하는 소나무
소나무는 수명이 길어 장생(長生)을 상징한다. 소나무는 해, 산, 물, 돌, 소나무,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의 십장생 가운데 유일하게 등장하는 나무이자 장수의 대표적인 식물이다. 추위와 눈보라에도 변함없이 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이 꿋꿋한 절개와 의지를 나타낸다고 보아 ‘초목의 군자’, ‘송죽과 같은 절개’ 등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민간신앙으로서 소나무를 귀하게 여겼으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생을 소나무와 함께하였다. 소나무 기둥을 사용한 집에서 태어나 죽으면 소나무 관 속에 묻혔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삼칠일(21일) 동안 집 앞에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쳐서 잡인, 잡귀를 물리쳤다. 아들을 낳으면 빨간 고추를 매달았다.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목(洞神木) 중 소나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에 있는 산신당의 신목은 거의 소나무다. 소나무는 신성한 나무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신이 내려올 때에는 높이 솟은 소나무 줄기를 택한다고 믿었다. 신목으로 정해진 소나무는 신성수이므로, 함부로 손을 대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면 재앙을 입는다고 믿었다.
귀신을 쫓는 벽사와 정화(淨化)의 의식에도 사용된다. 동제를 지낼 때, 제사 지내기 여러 날 전에 신당은 물론, 제수를 준비하는 도가집, 공동 우물, 마을 어귀 등에 금줄을 치는데 금줄은 솔가지를 꿰어 두어서 밖에서 들어오는 잡귀의 침입과 부정을 막아 제의 공간을 정화 또는 신성화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세시 풍속의 하나로 정월 대보름 전후에 소나무가지를 문에 걸어놓아 잡귀와 부정을 막는다, 동지 때 팥죽을 쑤어 삼신과 성주에게 빌고, 병을 막기 위해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리는데 이 때의 솔잎과 팥죽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덤 주위에 둘러서 있는 도래솔 또한 벽사와 정화의 역할을 하며, 저승에 가 있는 조상이 이승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가리는 역할을 한다.
3. 송진으로 만들어진 가장 귀한 보석인 호박
보석인 호박은 진주, 산호와 함께 정의상 광물은 아니지만 보석으로 취급되는데, 고대의 송진이 굳어서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노리개, 비녀, 마고자 단추 등 각종 장신구에 사용하였다. 송진이 굳어서 100만 년 정도 지나면 보석 호박이 된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기 전에 생성된 것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호박은 예부터 보호의 마력을 지녔다고 여겨졌으며,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믿어졌다. 또한 호박같은 황색의 보석은 뇌, 신경, 허파를 튼튼하게 해 당뇨병이나 우울증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호박은 불순물이 많이 섞일수록 가치가 높다. 호박 안에 모기나 벌레 등이 들어있으면 보석으로서 더욱 귀하게 취급된다. 호박은 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장신 보석 중의 하나다. 투명한 호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미, 개미, 갑충 등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다.
투명한 황색 호박은 '금패(錦貝)'라고 하며, 불투명한 누런색 호박은 '밀화(蜜花)'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엘렉트론이라고 한다. 잘 문질러 광을 낸 호박이 머리카락이나 먼지를 끌어당기는 현상을 보고 정전기를 발견했기 때문에 일렉트론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호박이 생긴 유래에 관해서 다양한 설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호랑이의 혼이 굳어진 보석이라는 전설이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태양의 열이 너무 뜨거워 땅이 흘린 땀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호박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신화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호박을 포플러 나무의 눈물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궁전에는 호박방(Amber Room)이라고 불리는 호화로운 방이 있다. 많은 양의 호박 조각들로 장식한 아름다운 방이다. 자연 호박만이 아니고, 호박에 열처리 등의 다양한 기법을 써서 색과 모양을 변형시킨 호박들, 자연 호박들을 섞고, 금과 거울을 같이 써서 매우 화려한 방을 만들었다.
원래 이 호박방은 독일에 있던 것으로 1701년 프로이센 왕국 국왕 프리드리히 1세가 아내인 조피 샤를로테 왕비를 위해 지은 것이다.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 설치될 예정이던 이 호박방은 계획과 달리 완공 이전에 프리드리히 부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의 사치 행각을 싫어하던 지독한 구두쇠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즉위하면서 공사가 중지되었다. 호박방은 베를린 궁전에 임시로 설치되었다가 1716년 러시아로 옮겼다.
러시아는 스웨덴과의 대북방전쟁을 치르고 있던 와중으로 프로이센은 러시아의 편을 들어 이 전쟁에 참전한 상황이었다. 전쟁 와중에 우호 증진을 목적으로 프로이센을 방문한 표트르 대제는 이 방을 보며 감탄했고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이 패널들을 표트르에게 외교협정의 대가로 넘겨주었다. 러시아로 옮긴 호박 패널에 예카테리나 2세 때 더 많은 양의 호박들이 추가되어 더욱 아름답게 변했다. 화려한 호박방은 제2차 세계대전 와중인 1941년 나치 독일이 강탈하여 행방이 묘연해졌다. 지금의 호박방은 공들여 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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